(제 20 회)

제3편 조국이 부른다

1

 

정세가 급변했다.

영용한 조선인민군 지상련합부대들의 반격에 의하여 퇴각을 거듭하던 미제침략군과 《국군》은 마파람에 휩쓸린 풀검불처럼 경상남도 부산지역까지 밀려갔다.

펜타곤은 멸망에 직면한 제놈들의 운명을 역전시켜보려고 마지막주패장을 던지였다.

이미전부터 제놈들이 도용해온 《유엔군》의 간판을 단 15개 추종국가 군대를 들이미는것과 함께 제1해병사단과 7보병사단을 기간으로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이딸리아전선군 92사단장을 하던 에드워드 알몬드를 군단장으로 하는 제10군단이라는것을 편성하였다. 약 7만의 병력을 가진 놈들의 10군단무력과 제8군은 제7련합함대와 합세하여 땅과 바다, 하늘에서 먹이를 본 번대수리떼처럼 달려들었다.

적들은 인천에 대병력을 상륙시켜 인천과 서울을 점령하고 38°선과 대전, 원주방향으로 진출하여 우리의 전선과 후방을 차단하며 락동강계선의 저희 지상무력과 협공함으로써 남진했던 인민군주력부대들을 《포위소멸》하고 짧은 시일안에 전조선을 강점하려고 획책하였다.

이리하여 적들은 지원병력과 포, 땅크, 비행기들을 동원하여 락동강부근에서 《공세》를 취하는 한편 인천에서 대규모적인 상륙작전을 개시하였다.

《유엔군》사령관 맥아더가 수하 침략군우두머리들을 데리고 직접 기함 《마운트마레킨》호에 올라 300여척의 함선에 태운 5만의 병력과 1 000여대의 비행기를 지휘하였다.

적들은 수많은 함선들과 비행기들을 동원하여 인천의 관문인 월미도에 무려 이틀동안이나 대대적인 폭격과 함포사격을 가한 다음 9월 13일부터 상륙을 시도하였다. 비행대들과 함선들의 엄호밑에 경비정, 상륙함, 상륙정을 들이밀었다. 섬이 온통 불도가니처럼 타번지는 속에서 우리 방위자들은 적함선들을 800메터까지 접근시켜놓고 불의의 사격을 개시하였다. 소월미도에 배치된 보병중대원들은 대구경기관총과 중기관총들로 해안에 거의 와닿은 놈들의 선견대들을 소멸하였다. 첫날 상륙전에서 실패한 적들은 다시금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을 들이대면서 14일과 15일에 련속 상륙을 기도하였다. 리대훈중대 전투원들은 단한문이 남은 해안포의 마지막포탄까지 쏜 다음 비장한 전보를 날리고 마지막결사전에로 나아갔다.

그들은 적구축함 3척을 포함한 13척의 함선을 격침시킴으로써 맥아더의 상륙을 3일간이나 지연시키고 아군부대들의 차후작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자그마한 월미도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시작된 맥아더의 저급한 수준의 인천상륙작전을 두고 서방의 비평가들은 그만한 무력이면 《오장》이 지휘하여도 섬을 일거에 점령하였을것이라고 조소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변화된 군사정치정세에 대처하여 적에 대한 새로운 타격을 준비하며 전반적형세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변시키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주력부대들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명령하시였다. 그러되 적들의 유생력량을 소멸하면서 놈들의 진공속도를 지연시켜 시간을 쟁취하며 인민군주력부대들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들을 보장하는 한편 새로운 후비부대들을 편성하여 강력한 반공격집단을 형성하도록 하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전쟁 제2계단의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성과적보장을 위하여 전선사령부련합부대들로 하여금 련합부대 호상간의 익측과 린접점을 믿음직하게 보장하면서 공격으로부터 신속히 방어로 넘어가 적의 공격을 저지시키도록 하시였다.

한편 후비부대들을 준비하기 위하여 전투에서 단련된 전사, 하사관, 군관들을 대담하게 등용하고 군관학교들에서 보다 많은 군사정치간부들을 양성하도록 하는 한편 해방된 남조선지역에서 수많은 예비부대들을 조직편성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제2전선을 형성하여 전선에서의 작전과 적배후타격을 배합하도록 하시였으며 군수생산기지의 이동과 군수생산의 확대 등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대책들을 세워주시였다.

영웅적인 월미도방어전투에 이어 치렬한 인천-서울방어전투가 벌어졌다.

적들은 인천에 상륙하기 위하여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였다.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의 작전적방침을 높이 받들고 서해안방어사령부관하 부대들은 적의 침공을 물리치기 위하여 희생적으로 싸웠다. 아군부대들은 맹렬한 집중사격으로 적상륙함 4척을 격파하고 육박전을 벌려 수많은 적들을 소멸하였다.

9월 15일 밤 방어부대들은 반돌격과 적후방에 대한 습격전들을 대담하게 벌려 인천시가지에 침입한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9월 16일 아군부대들은 6대의 땅크와 함께 인천방향으로 반돌격하여 적들을 수안계선까지 격퇴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적아간의 력량대비에서 큰 차이가 생기게 되자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조성된 정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예비대의 일부를 서울방어에 돌리시는 한편 락동강까지 진출했던 몇개의 련합부대들을 이 지역에 기동시키시였다.

아군부대들은 적비행기의 맹폭격속에서도 애국적서울시민들의 원호를 받으며 종심이 얕은 서울에 원형방어진을 치고 10일간이나 견지하였다.

인천-서울방어전투에서 아군부대들은 적유생력량과 전투기술기재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피어린 이 격전의 나날에 쟁취한 귀중한 시간은 락동강계선까지 진출했던 조선인민군련합부대들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성과적으로 보장하는데서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는것이였다.

채정보는 상부로부터 전략적이며 일시적인 후퇴명령과 함께 미제침략군이 인천에 상륙했다는 정보를 받고 그 관문인 월미도에서 방어하던 리대훈해안포중대장이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했으리라고 직감했다. 그를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리대훈으로 말하면 채정보가 부교장으로 있은 해군군관학교의 잊지 못할 졸업생이였다. 채정보는 그와 인천에서 흔연히 작별하던 일이 다시 상기되면서 가슴이 찌르는듯이 아파났다. 리대훈과 해안포중대원들이 흘린 피와 천금같은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광주에 위치한 지휘부에서 이러한 명령과 변화된 상황을 해군지휘관들에게 통보한 채정보는 손에 잡은 색연필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한쪽엔 붉은색, 다른쪽엔 푸른색연필이 그의 손에서 금시 부러져나갈것만 같았다.

지휘관들은 급변한 정세앞에 얼굴표정들이 굳어졌다.

채정보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의견들을 말해보시오. 이런 때 우리 부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는가?》

모두들 그의 물음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지 난감해하는것같았다. 누구도 인차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 침묵…

드디여 윤지환참모장이 밭은 기침을 깇더니 먼저 방안을 내놓았다.

《전략적이며 일시적인 후퇴명령을 받은 이상 부대의 행동방향이야 명백하지 않습니까. 목포와 려수의 기뢰부설조들에 련락해서 배와 기뢰들을 전부 처리하고 신속히 여기 광주로 집결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다음 주로 산발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는것이 합리적일것입니다. 적들의 포위와 추격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부대의 행동에서 신속성을 보장해야 할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지휘관들이 저마다 의견을 말했다.

《우린 아직 려수앞바다에서 기뢰부설임무를 채 수행하지 못하고 이렇게 갑자기 떠나면…》

《정세가 달라진걸 모르오? 후퇴란 말이요, 후퇴! 여기서 어물거리다간 앞길이 막히게 되오.》

《목포에 있는 기뢰부설조는 이제 배들을 타고 려수로 이동하게 되여있었는데 그러지 맡고 지체없이 륙로로 해서 여기에 도착하도록 련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마끔 말을 하던 지휘관들은 부대장의 얼굴을 쳐다보고 그가 기대하는것은 방금전에 자기들이 제기한 그것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은듯 하나, 둘 입을 다물었다.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채정보는 쥐고있던 색연필을 책상우에 넓게 펼쳐진 해도우에 무겁게 내려놓았다.

그는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의 후퇴가 전략적이며 일시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을 다시금 명백히 해두고싶소.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적의 포위를 빠져나가는 후퇴조직을 하는것으로 그칠수는 없단 말이요. 급급히 후퇴하는건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바라시는 조직적인 후퇴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오. 우리 부대는 이전에 계획했던대로 남해의 주요항구들과 서해로 올라가는 해상통로에 기뢰를 마저 부설하여 적들의 진공속도를 최대한 지연시켜야 하오. 지금 락동강계선에 진출했던 아군지상부대들이 일단 방어에로 넘어갔소. 이것은 적들의 새로운 대규모적인 공세에 대처하여 주력부대들을 보존하며 전략적이며 일시적인 후퇴를 보장할 시간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요. 이런 정황에서 만일 우리 부대가 기뢰부설임무를 완결하지 못한채로 여기서 철수한다면 부산과 일본에서 배를 타고 떠난 적의 무력이 려수나 순천만으로 들어와 진주-김천-안동-영덕계선에서 방어하는 아군지상부대들의 배후를 타격하며 포위할수 있소.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이미 시작했던대로 려수와 순천만에 기뢰망을 형성한 다음에 철수합시다.》

채정보는 매 지휘관들을 둘러보고나서 말을 이었다.

《혹시 이 자리에는 이러나저러나 위험에서 빨리 벗어나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동무들도 있을수 있소. 우리가 포위될 위험을 무릅쓰고 남해기슭에 머물러 기뢰를 마저 부설하는것이 상부의 명령에 따른것인가고 의문을 품는 동무들도 아마 없지 않을거요. 물론 그런 직접적인 명령은 받지 않았소. 이것은 최고사령관동지의 뜻을 따르는 병사의 량심이 명령한것이요. 우린 반드시 적의 해상통로를 봉쇄한 다음에 여기서 철수해야 하오. 또한 그래야 상륙하는 적들이 우리 부대를 인차 추격하지 못할수 있소.》

군관들은 흥분하여 혁띠끈을 조이며 옷매무시를 바로잡았다.

구체적인 전투임무가 수립되였다. 목포에서 활동하던 기뢰부설조가 배를 타고 려수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들의 임무가 추가되였다. 진도와 해남반도사이의 배길이 적함선들의 기동을 막는데서 중요한 길목으로 되고있는만큼 그 수역을 통과하면서 기뢰밭을 조성해야 했다. 그 임무를 끝내고는 려수반도앞으로 이동해서 그곳에 있는 부설조와 합세하여 임무를 마저 수행해야 했다.

이렇게 부대가 이틀동안 지체할것을 예견하였다.

그다음 후퇴를 하여 광주에 있던 지휘부의 동무들과 남원군초입의 3호지점에서 만나 소백산줄기를 타기로 락착지었다.

목포에 주둔한 부대로는 윤지환참모장이 내려가고 려수의 기지로는 채정보자신이 직접 내려가 기뢰부설전투를 지휘하기로 하였다.

나머지 지휘부성원들은 곧 철수하여 남원방향으로 떠나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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