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3편 조국이 부른다

4

 

려수항구에 또 하루 새날이 밝아왔다.

지난밤 시내에 함포탄들이 떨어져 생긴 화재터에서 아직도 푸실푸실 연기가 피여오른다.

기뢰부설장에 나갔다가 새벽녘에 들어온 채정보부대장은 지휘부건물에서 잠간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다.

석유등을 켜놓고 팔목시계를 보았다. 벌써 6시가 넘었다.

그는 다시 등불을 죽이고 창문에 쳤던 두터운 차광막을 걷어올렸다. 그다음 탁자우에 군용지도를 펴놓고 바다가 아니라 륙지부분을 훑어보았다. 이제 도보행군으로 거쳐야 할 로정을 다시금 확인하는것이였다.

락동강계선에서 공세를 취하기 시작한 미제침략군의 주력은 지금쯤 기동에 유리한 대도로와 철길을 따라 대구, 김천쪽으로 올리밀고있을것이고 역시 대도로를 타고 진해, 진주쪽으로도 진출하여 남해에 머물고있는 우리 부대의 퇴로를 차단했을수 있었다.

이제 복으로 가는 길은 겹겹이 막아서는 적지상부대들의 포위를 뚫는 간고한 로정으로 될것이다.

이젠 여기를 떠날 때가 되였다. 순천만과 려수앞바다에서의 기뢰부설전투는 지난밤까지 완결을 지었다.

야간의 부설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해병들을 한시간 더 재우고나서 인민들의 배들을 돌려주고 철수준비를 마무리하게 해야 하였다.

그다음 해병들을 두척의 기관선에 태워 광양만으로 들어가서 거기서부터 북으로 행군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배들은 침몰시키고 순천을 거쳐 구례를 지나 남원쪽으로 가야 한다. 그곳 집결지점에 우리 동무들이 약속한 날자까지는 남아있을것이다.

그러니 그전에 남원에 가닿으면 된다.

로정을 지도우에서 찾아보느라니 벌써부터 조바심이 난다.

그러나 해병들을 조금이라도 더 재우고싶었다.

참으로 혈육이상으로 귀중한 전우들이였다. 밀려드는 해적들을 막기 위해 매일 밤 기뢰전을 벌리면서 그날 잡아치운 《상어》가 몇마리인가를 통쾌한 웃음속에 세여보군 하던 해병들이였다. 채정보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런 전사들과는 이 세상에 못해낼 일이 없다는 신심이 한가득 차올랐다.

기뢰망이 펼쳐진 바다쪽에서 때때로 웅글은 폭음이 울려왔다. 적들의 함선이 기뢰에 걸려 깨지는 소리였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채정보는 부대가 놈들의 상륙기도를 좌절시켰다는 긍지를 느끼군 하였다.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그는 허리를 폈다. 돌아보니 련락병 기태서가 군용밥통을 들고 서있었다.

그는 부대장의 꺼칠한 얼굴과 책상우의 지도를 번갈아보다가 시무룩이 웃으며 손에 든것을 탁자가녁에 올려놓았다.

《엊저녁에도 식사를 제대로 안하시구 시장하시겠는데 이제라도 좀 드십시오. 국이 끓자마자 인차 떠왔습니다 》

일에 너무 파묻힌데다가 건강까지 좋지 못하여 때식을 건늬군 하는 그를 념려해서 기태서는 여러가지로 왼심을 썼다. 이른새벽에 밥그릇을 가져온것을 보니 뭔가 특식을 차려온것 같았다.

그는 숟갈을 집어들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게 웬 도미요, 낚시질을 나갔댔소?》

《지금 어느 겨를에 낚시질을 다니겠습니까?》

《이놈은 낚시질로 잡는건데…》

《포탄에 얼친 놈들을 해철이가 나가서 건져왔습니다.》

채정보는 어이없이 웃었다.

《그가 바다로 나갔댔나. 무전기는 안 지키고 그저 바다에만 정신이 쏠려있지, 바다를 처음 보는것처럼. 신평산골내기여서 그런가?!》

그는 해철이가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바다물에 뛰여든다고 복새통을 피우던 일이며 자기들이 군산으로 간다는것을 어느새 알고서는 무전기를 메고 밤중에 따라나서던 일들이 돌이켜져서 빙그레 웃었다.

이때 순천만쪽에서 폭죽이 터지는것처럼 자지러진 폭발음이 들려왔다.

이것은 적함이 기뢰에 맞아서 생긴 폭음과는 다른것이였다. 혹시 적소해정이 또 기뢰밭에 나타나 소해작업을 시작한게 아닐가? 아니, 몰방으로 터지는 소리로 미루어보면 소해정이라기보다 120톤이 넘는 소해함인것 같았다.

채정보는 그 폭음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동안 우리가 부설해놓은 기뢰들이 헛되이 터져나간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곁방에서 자던 윤지환소좌가 군복상의단추를 채우며 급히 들어왔다.

채정보가 근심스레 말했다.

《적의 소해정 두세척이 순천만에 들어온것 같소. 아니면 큰 소해함일수도 있고…》

윤지환이 체념하듯 긴숨을 내쉬였다.

《놈들이 제아무리 발악을 해도 그걸 다 해체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겁니다. 그 시간이면 부대의 철수는 능히 보장할수 있습니다.》

채정보의 꽉 다물린 입새에서 가느다란 신음같은것이 새여나왔다. 다음순간 그가 노여운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기뢰를 부설한게 단지 부대의 후퇴를 보장하기 위한건 아니잖소? 적들이 본격적으로 소해작업을 시작한것을 보면 순천만으로 많은 병력을 상륙시키려고 작정한것 같소. 우린 여기 초입에서부터 그 기도를 파탄시키고 적들의 기동을 한걸음이라도 더 저지시켜야 하오. 우리가 여기서 할수 있는껏 하고 떠나야 할게 아니겠소.》

《그 요구는 원칙적으로 옳습니다. 하지만 대좌동지, 이젠 추가로 부설할 기뢰재고량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적소해정들과 환한 대낮에 맞다들어 싸울만 한 함상포도 없습니다. 밤이라면 어떻게 은밀히 접근해보겠지만…》

윤지환은 대낮에 적선들을 공격한다는게 무모하게만 생각되는 모양이였다.

채정보는 생각에 잠겼다.

정말 내가 욕망에 사로잡혀 무모한 시도를 하는것인가?

그는 머리를 젖고나서 탁상두리를 거닐다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윤지환의 어깨를 툭 쳤다.

《거 참모장동무답지 않게 뭘 난감해서 그러오? 방도는 찾으면 나타나기마련이요. 전번에 로획한 적소해정이 있지 않소! 그걸 리용하면 대낮에도 조우전을 할수 있을것 같단 말이요.》

《떠나기 전에 파괴해서 침몰시켜버리려던 그 소해정 말입니까?》

《그렇소. 한번 본때있게 써먹고 파괴해버리자는거요.》

채정보의 확신에 찬 말에 윤지환의 얼굴도 차츰 밝아졌다. 멋진 계책이 떠오르는 모양이였다.

《해봅시다. 승산이 있습니다. 대담하게 행동하면 적함에 대낮에도 접근할수 있습니다.》

《좋소, 나와 함께 가기요. 하명찬동무의 조만 깨워서 승선시키시오.》

《대좌동지, 이번 전투만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건강이 좋지 못한데...》

 윤지환이 진정으로 만류하였다.채정보는 아닌게아니라 자리에 누워 좀 쉬고싶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로 오늘이야말로 자기가 꼭 참가해야 한다고 여겼다. 적을 기만하면서 접근하려면 자기가 앞에 나서야 하였다.

《아니요. 내가 지휘하겠소.》

바다로 나갈수록 남서풍이 세지면서 파도가 높았다.

로획한 소해정은 요란한 발동소리를 울리며 산마루같이 솟구치는 물멀기를 가까스로 타고넘었다. 이어 회록색의 아찔한 골짜기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어느덧 배머리가 물속에 푹 잠겼다가 겨우 쳐들린다. 일시 물우에 드러난 추진기가 바람을 째면서 맹렬히 공회전을 하는데 배밑창이 금시 깨여져나갈듯 쿵쾅소리가 진동한다.

《이놈의 파도가 심술부리는게 아니야?!》

기우뚱거리는 선수갑판의 쇠란간을 짚고 입으로 스며드는 짠물을 연신 뱉으며 리해철이 투정질을 했다.

그는 이 마지막해상전투에는 꼭 참가시켜달라고 생떼질을 하다싶이 승선하였다.

채정보는 바다일에서는 난다긴다하는 하명찬을 불러 따로 주의를 주었다.

《해철일 이번 전투에 참가시키기요. 너무 암닭 병아리끼듯 아끼다가 진짜해병이 될수 없지. 전투때 동무가 맡아 잘 돌봐야겠소.》

이렇게 되여 바다로 나오게 된 리해철이였다.

하긴 전시의 이 몇달동안에 해철은 짠물동이깨나 마시면서 바다와 친숙해져서 몸도 실해지고 어떤 임무도 수행할수 있는 만능해병으로 자랐다.

겨우 개헤염을 치던 어제날의 애숭이가 아니라 구리빛의 헌헌장부가 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리설경군의도 강경히 우겨서 배에 올라왔다.

사실 채정보는 그를 목숨을 내댄 이 마지막해상전에 참가시키지 않으려고 했었다.

《저 바다를 보라구. 군의는 멀미에 견디지 못해! 전에 한번 혼나보지 않았나?!》

멀미에 빗대고 말했지만 녀군의를 아끼려는 채정보의 마음을 본인인들 모르랴.

그러나 설경은 막무가내였다.

《이번엔 대낮에 적선과 맞서 싸우는것만큼 부상자가 날수 있습니다. 전투현장에서 제때에 처치를 못하면 나중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하여 이렇게 승선하게 된것이였다. 지금 설경은 선실에 들어가 멀미와 싸우고있을것이였다.

해철은 바다물이 쏟아지는 번들번들한 선수갑판에서 기관포수로 임명된 하명찬의 조수격이 되여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옛날 배사람들처럼 제법 걸죽한 욕설을 퍼부었다.

《젠장할 놈의 바다라구야!- 꼭 미친것처럼 날뛰누만.》

기관포에 씌웠던 얼럭덜럭한 방수포씌우개를 벗기던 하명찬이 자기를 도와주는 해철이를 보고 큰소리로 시까슬렀다.

《이 바다도 조선의 바다야. 그렇게 욕을 하면 쓰나? 파도가 높은건 조선인민군해병들을 도와주느라고 이러는거야.》

《리해가 안되는데요?》

리해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멀기가 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보라구, 바다가 이렇게 하얗게 뒤번져지니 놈들의 소해함이 제대로 작업을 할수가 없지. 자칫하면 우리 기뢰에 부딪칠가봐 행동을 자유롭게 못할게거던. 게다가 적들은 물보라가 눈앞을 가리우고 배들이 물속에 숨박곡질을 하는통에 이 소해정을 저희편이라고 착각할수도 있다 이거야.》

《거야 로획한 소해정이니까 그럴수밖에요. 한데 이제 생각해보니 한가지 까리까리한 문제가 있어요. 우리는 전투가 개시될 때까지 이렇게 갑판에 나와서 어정거릴게 아니라 선실에 숨어있어야 할것 같단 말이예요.》

《그건 어째서?》

《챠, 이렇게두 각성이 무디다구야. 우리 해군복장을 놈들이 알아보면 어떡하겠나 말이예요.》

파도소리와 발동소리가 요란한 속에서 해철은 하명찬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자 하명찬은 호걸스럽게 웃었다.

《아하하하, 아주 세심한걸! 세심하단 말이야! 》

《체, 난 정색해서 말하는데 웃기만 하니 어디…》

《이보라구 해철이, 마음 놓아도 돼. 해군복장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멀리서 보면 구별이 잘 안되니까.》

《하긴 그렇군요. 해군모댕기랑 푸른 깃에 흰줄을 띠운거랑…》

《적함이다!-》 하명찬이 돌연히 부르짖으며 기관포에서 슬금슬금 물러나는것이였다.

적이라는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 해철은 마음의 균형을 잃고말았다.

그는 다짜고짜 기관포에 다가서면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려다가 명찬이가 밀치는 바람에 몇걸음 밀려나며 비칠거렸다.

해철이 벌컥 성을 내였다.

《이거 왜 이래요?》

《가만가만- 침착해야지. 적을 놀래워서는 안돼.》

《?! …》

뗑해졌던 해철은 점차 깨도가 되였다. 떠나기 전에 채정보대좌가 주의를 주던 일이 생각났다.

그가 보기에 하명찬은 금시 잡게 된 큼직한 물고기를 본것처럼 기뻐하는 기색이였다.

《아하, 예견대로 저건 소해정이 아니라 소해함이군. 꽤 큰 놈인걸. 적어도 120톤급은 되겠어!》

재빛으로 보이는 소해함이였다. 그 배의 앞뒤에 기관포가 한문씩 설치되여있는데 먼 뒤쪽에서 흰 물기둥이 하늘을 찌르며 올라가고 뒤미처 귀청을 때리는 되알진 폭음이 울려왔다.

소해함은 지금 바다물에 잠겨있던 우리 기뢰의 닻줄을 끊은 다음 떠오르게 하여 폭파시키는것이였다.

《엉?! 저 죽일 놈들이 우리 기뢰를 다 터뜨려요. 명찬동지, 아직두 참아야 돼요? 아니, 조타실에서 정황을 알고있을가요?》

《물론이지. 벌써 부대장동지가 저 선수에 나와 서있잖아.》

이미 선수갑판에 나와 배사람의 안정된 자세로 두다리를 벌리고선 채정보부대장은 오른손에 나팔같은 메가폰을 들고있었다.

( 왜 저럴가? 아하, 함화를 들이대자는거군. 그런데 저 큰 배놈들이 쉽사리 항복을 할가?)

해철은 다시금 얼떠름해졌다.

그는 점점 긴장하던 나머지 분별력을 잃고말았다.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목표가 사거리안에 들어선것 같은데 명찬동지는 어째서 조준도 안하고 기관포주변을 빙빙 도는거야? 한바탕 갈기지 않고…아직도 기만전술을 쓰는건가?!)

이편 소해정이 파도를 가르며 점점 더 적함가까이로 접근하자 그편에서도 알아보고 점차 속도를 늦추는것 같았다.

저들의 소해정이 접근하는줄 알았는지 갑판에서 어물거리던 적해병들이 구경거리라도 생긴듯 현측란간에 몰켜들어 이쪽을 바라보았다. 점점 거리가 가까와지면서 흰 해군복을 입은 키가 껑충한 미군병정들의 우멍한 눈확이며 주걱턱까지 다 구별해볼수 있었다.

어떤 놈은 반갑다는듯이 둥근 해병모를 벗어 높이 휘저으며 댕기를 날려보인다.

메가폰을 입에 가져다댄 채정보대좌가 일본말로 뭐라고 자꾸 반복하여 소리치기 시작했다.

증폭된 그의 와랑와랑하는 목소리도 배전을 치는 세찬 파도소리에 섞여 선명하게 들리지 않는다.

기관포곁에 선 하명찬은 왼손으로 댕기가 날리는 해병모를 벗어 크게 원을 그리며 제법 반갑다고 인사를 보내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면서 오른손을 슬그머니 기관포손잡이로 가져갔다.

그 바람에 눈이 덩둘해졌던 해철은 후닥닥 정신이 들었다.

(아하, 놈들이 잘도 속아넘어간다. 정말이지 멋진 기만전술이다!…)

자기도 역시 손을 흔들어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사이가 없었다.

채정보대좌의 손짓에 따라 하명찬의 기관포가 어느새 불줄기를 뿜어대기 시작한것이였다.

선원실에서 멀미에 시달리던 리설경군의는 총소리가 귀따갑게 울리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위생가방을 찾아들고 기울거리는 현측을 짚으며 기관포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바줄퉁구리에 걸채여 엎어졌다.

세찬 파도에 갑판이 기울떡거렸다. 그는 비칠거리며 다시금 일어났다.

그의 눈에 제일 크게 띄운것은 적함의 뒤부분에서 삼단같이 일어나는 연기타래였다. 시꺼먼 연기속에서 이쪽에 대고 사격하는 빨간 예광탄줄기들이 보였다. 리설경이 후에 안 일이지만 하명찬의 기관포 련발사격에 적소해함의 연유탕크가 면바로 맞은것이였다.

우리의 기관포는 이미 멎고 해철이가 그 자리에 주저앉은 하명찬을 부축하면서 목갈린 소리로 그를 부르고있었다.

리설경은 멀미도 잊고 그들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가 하명찬의 피흐르는 가슴팍에 붕대를 감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심장가까이의 어느 대동맥이 끊어졌는지 뿜어나오는 피를 멈추기가 어려웠다.

눈에 불이 달린 리해철이 피자박이 된 손에 기관단총을 들고 배전으로 달려가 온갖 저주를 다 퍼부으면서 적함에 대고 탄알을 날렸다. 그러다가 직성이 풀리지 않아 기관포에로 달려오려는데 거기서는 벌써 채정보부대장이 사격하고있었다.

적소해함은 불이 붙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있었다. 물결에 불길이 반사되여 마치도 거대한 검붉은 물감덩어리가 바다물에 풀리면서 녹아들어가는것처럼 보였다. 그 광경은 점점 멀리로 물러갔다.

해철은 자기네 배가 어느새 귀로에 올랐다는것을 몰랐으며 자기는 기관단총 예비탄창의 남은 탄알들을 조준사거리에서 벗어난, 그것도 거의 침몰된 적함에 대고 헛되이 쏘고있다는것을 깨닫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다가 뜨겁게 단 격발기에서 철컥소리가 나자 고요해진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전우들에게 안겨 운명하고있는 하명찬에게 허겁지겁 다가갔다.

걷잡을수 없이 눈물이 왈칵 솟아오르며 울음이 터져나왔다.

해병들은 고개를 돌리고 주먹으로 눈물을 닦기도 하고 하명찬을 부르기도 하였다.

《중사동지! 정신차리십시오.》

《명찬동지, 우리 함께 최고사령부를 찾아가야지요. 왜 대답이 없습니까?》

배전을 때린 파도의 비말이 하명찬의 얼굴을 적시였다. 그러면 리설경군의가 그 물기를 닦아주군 하였다.

채정보의 무릎우에 머리를 기댄 하명찬이 가까스로 눈을 떴다. 초점이 없이 둘러선 전우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피가래 끓는 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해철인 일없소? 부대장동지가 날 보고…해철일 잘 돌보라고 했는데…》

《나 여기 있어요.…》 해철은 울먹이며 전우들이 자리를 내주자 하명찬의 곁에 한무릎을 끓고앉았다. 하명찬은 그의 모습을 보자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무사했구나.‥무사했어.…이젠 됐다.‥넌·다치면 안돼.…무전기가 있지 않니. ·최고사령부보도를…들어야지. ‥》

《예 , 걱정말아요. …》

하명찬은 가까스로 눈망울을 굴려 곁에 있는 채정보를 보았다.

채정보는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부대장동지, 그동안 저때문에…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응, 그래‥명찬이, 힘을 내라구.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우리를 부르시는데 함께 가야지.》

하명찬은 미소를 지었다.

《예.  함께 가고싶었습니다, 함께 …》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명찬이!》

《중사동지!》

해병들은 전투에서 사자처럼 용맹하던 그가 이렇게 자기들곁을 떠나간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아 그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의 입가에는 한가닥 미소가 피여나다가 굳어졌다. 줄문양이 간 해군내의를 입은 하명찬은 온몸에 붕대를 몇겹으로 감은채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있었다. 그러다가 금시 눈을 뜰것만 같았다.

해철은 하명찬을 붙안은채 오열을 터뜨렸다.

《명찬동지, 눈을 뜨라요! 내 이제 윤옥누이한테 가서 뭐라고 말하라요?!》

그러나 끝내 눈을 뜨지 못하였다.

《하동무!》

《중사동지!》

목메인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채정보는 하명찬의 머리를 받쳐들고 물에 젖은 그의 머리칼을 하염없이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느라면 금시라도 눈을 뜨고 일어나리라고 믿는것만 같았다.

해방이 되던 해에 청진에서 기뢰를 함께 회수하던 명찬이였다.

정세가 긴장해지자 채정보를 찾아와 입대를 청원하던 름름한 모습도 돌이켜졌다.

언제나 해병들의 앞장에서 어려운 고비를 뚫고나가던 싸움군이였다.

그런 귀중한 사람을 수천리 먼 조국땅 한끝에 묻을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채정보는 전쟁의 처절성을 모르는바 아니였으나 생때같은 병사들이 쓰러질 때마다 제 살점을 저며내는 쓰라린 아픔을 느끼군 하였다.

고인의 눈을 감기며 채정보는 조용히 뇌이였다.

《명찬동무, 북과 남의 온 겨레가 장군님품에 안겨 행복하게 살 통일의 그날을 보겠다던 동무의 념원을 우리 기어이 현실로 꽃피울것이요.…》

고개를 쳐드는 채정보의 얼굴엔 비장한 기색이 피빛노을처럼 떠오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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