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3편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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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순 어느날, 세사람이 젖색갈의 안개자욱한 산길을 내려가고있었다. 유격대의 정찰조였다.

해안선을 완전봉쇄한 적들은 《비민분리》를 떠들어대면서 이미 산입구마을과 산중부락들을 초토화하였고 해안가마을들은 집단부락을 만들어놓았다. 집단부락들에는 돌을 쌓고 가시울타리를 치고 출입증제를 실시하여 사람들의 출입을 엄중단속하고있었다. 이 시기 제주도인민유격대는 최대의 시련을 겪고있었다.

오늘 아침 유격대지휘부에서는 세개의 방향 즉 표선지구와 서귀, 조천지구에 산을 포위한 적들의 《토벌》병력배치상태, 놈들이 설치한 초소… 등을 정찰할 임무를 주어 정찰조들을 동시에 파견하였다. 조천일대에 파견된 정찰조는 고창생을 조장으로 하고 거기에 날파람있고 용감한 두 대원이 망라되였다.

지금 앞에 두 대원이 주위를 살피며 소리없이 걷고 그뒤로 조장인 고창생이 따라가고있었다. 가파로운 산길을 내려가는 그들의 옷에는 온통 검불이 들어붙고 나무가지에 긁힌 얼굴에는 땀이 보슬비를 맞은듯 흘러내리고있었다.

《섯!-》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앞에서 산을 내려가던 두 대원은 멎어섰다.

키가 크고 어깨가 구부정한 고창생이 삐죽 나온 아래턱을 쳐들고 가까이로 다가오자 두 대원중의 담기있어보이는 다부진 젊은 대원이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조장동무, 무슨 정황이라도 있습니까?》

《정황은 무슨… 좀 쉬잔 말이요.》

고창생은 까닭모를 고뇌에 잠긴듯 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왜 그럽니까? 어디 몸이 불편한가요? 아, 얼굴색이 말이 아니구만요.》

류달리 팔이 길고 억세게 생긴 중년의 대원이 걱정스럽게 한숨까지 내쉬며 조장인 고창생을 여겨보았다. 고창생의 얼굴은 어딘지 열에 지치고 중병을 앓고난 사람같았다.

《허, 그저… 어제부터 오한이 나는걸 참았는데… 여름철감기는 개도 안 먹는데… 더럽겐 됐소.》

조장 고창생은 웬 일인지 대원들의 눈길을 피하며 두덜거렸다.

《거참, 공교롭게도 이런 때에 병이 심해지면 야단인데요. 조장동무, 힘들면 여기서 좀 쉬십시오. 우린 산아래로 더 내려가보겠습니다.

무엇인가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는데 여기 어딘가 가까이에 적들의 잠복초소가 있는듯 한 느낌이 든단 말입니다.》

다부진 젊은 대원은 총기있는 눈을 번뜩이며 긴장한 표정으로 예리하게 주위를 살폈다.

《뭐, 적들의 잠복초소가?》 하고 고창생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흠칫했다.

《네, 이건 저의 륙감입니다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한놈을 감쪽같이 생포해서 심문하면 이쪽의 적<토벌>무력의 집결정형을 알아내고 초소들의 위치도 알아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다부진 청년의 총기있는 눈에서는 불꽃이 튕기고있었다.

《그건 무모한 모험이 아닐가? 정찰임무란 최대한의 신중성과 조심성으로… 소리없이 해야지…》

고창생은 마치 꿈꾸는듯 한 목소리로 혼자말처럼 대꾸하면서 늘 그러하듯이 억지로 웃는것 같은 내키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녜? … 적을 생포하여 심문하는게 무모한 모험이라구요?》 하고 다부진 청년은 조장인 고창생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면서 되알지게 말했다.

초점을 잃고 방황하며 이리저리 헤염치는 조장 고창생의 눈은 무엇인가 고뇌속에 잠겨있는것 같았다.

《조장동무, 우리가 받은 정찰임무를 수행하는데는 그게 가장 빠르고 효과있는 방법이 아닙니까?》

다부진 청년은 깜박거리지 않는 눈으로 줄곧 조장 고창생을 여겨보며 말하였다.

《그럼, 좋도록 하오. 하지만 최대로 조심해야지 로출되면 모든걸 망친다는걸 잊지 마오. 먼저들 내려가오. 내 뒤따르겠소.》 하고 고창생은 오한이 나는듯 삐죽 나온 턱을 잘게 떨었다.

두 대원이 잡관목사이로 소리없이 사라지자 고창생은 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거뭇한 바위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이놈의 칼물고 뜀뛰기놀음을 끝장내야겠는데… 지금이 내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야! 음, 이제는 끝장낼 때가 됐어!)

그는 눈을 감은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이미 며칠전부터 마음속에 스며든 좌절감과 절망감으로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군 했었다. 지금도 눈을 감고있는 그의 뇌리속으로 홀연 또다시 가장 무서운 환영이 홱-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자기가 체포되여 총살당하는, 생각만 하여도 오싹 몸서리쳐지는 환영이였다.

(아니… 아니… 그럴수 없다.) 하고 그는 눈을 번쩍 뜨고 항변하듯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래… 지금이 나에게는 살아날수 있는 좋은 기회일수 있다.)

고창생은 자신이 이렇게 중얼거린것 같기도 하였고 생각만 한것 같기도 했다.

고창생은 일제때 밥술이나 먹는 집안에서 출생하여 부모덕에 제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는 소문난 건달군, 난봉군으로 돌아쳤었다. 그는 어느날 밤새껏 도박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가 감옥살이를 하였다.

그때 그가 있는 감방에는 반일지하투쟁을 하다가 체포되여 감옥살이하는 한 반일애국자가 있었다.

해방후 감옥에서 나온 고창생은 그의 연줄로 그때 왕성하게 벌어지던 좌익운동에 뛰여들었었다.

《일본놈에 대한 앙갚음》하는것이 좌익운동에 뛰여든 그의 속심이였다.

하여 이 우연분자는 4. 3봉기에도 휩쓸리고 제주도인민유격대에도 입대했었다. 제주도에서 반미, 반괴뢰항전이 한창 고조되고 승승장구할 때는 신바람이 나서 《조국》과 《성전》을 부르짖으며 뛰여다니던 그는 최근 적들의 공세가 강화되고 시련을 겪게 되자 기가 죽어다녔고 자기의 속마음을 숨기고 분풀이로 신대원들에게 함부로 욕설을 퍼붓고 주민들앞에서까지 호통치게 된것이다.

결국 자기밖에 모르는 이 우연분자인 고창생은 유격대가 가장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는 지금 드디여 반역의 길, 귀순하여 목숨이라도 부지할 결심을 굳혔고 정찰나온 이 기회가 하늘이 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것이다. …

고창생은 마음을 가다듬고 서슴서슴 두 대원이 내려간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해방된 그때 이놈의 놀음에 참여말고 그저 술이나 마시면서 제멋대로 놀았어야 하는건데… 내가 그때 무슨 놈의 도깨비가 붙어서 길을 잘못 들어 지금까지 죽을 고생만을 했담.)

그는 자기가 인생길을 잘못 선택했던것을 마음속으로 통탄하며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갔다.

《조장동무, 그냥 거기 있을걸 그랬습니다. 몸은 좀 일없는가요?》

앞에서 문득 한 대원이 가까이 오는 그에게 속삭이는듯 한 낮은 소리로 말했다.

《뭐? 가까이에 적들이?》

번뇌에 잠겼던 고창생은 귀먹은 이야기상대가 이쪽 질문에 당치않는 대답을 하듯이 왕청같은 말을 내뱉았다.

《아니, 몸은 일없느냐구요.》 하고 다부진 청년은 고창생에게서 아무런 이상한것을 느끼지 못하고 순박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응, 뭐… 그저 그렇소… 내가 잘못 들어서… 그만…》

고창생은 장님이 발을 옮기듯 띠염띠염 응대하였다.

잠시 멎어섰던 그들은 다시 긴장하여 앞을 살피며 소리없이 걸어갔다.

《개자식들, 사방에 삐라를 뿌렸군.》 하고 맨앞의 다부진 젊은 대원이 혼자소리처럼 조용히 욕설을 퍼부었다.

《뭐요? … 무슨 일이요?》

고창생은 본능적으로 몸을 흠칫하며 나직이 물었다.

《이것 보십시오. 사방에 널린게 놈들의 삐라장이란 말입니다. 너절한 놈들.》

다부진 젊은 대원은 분개한듯 풀숲에 침을 내뱉았다.

아닌게아니라 나무가지우에도 풀숲에도 사방 어디나 놈들이 뿌려놓은 삐라가 널려있었다.

《가만, 어디 좀 보자구. 놈들이 뭐라고 지껄여댔는지…》 하고 고창생은 앞의 젊은 대원이 주어 찢으려는 삐라를 나꿔채듯이 집어들었다.

삐라의 앞면에는 《안전보장증명서》라고 굵직한 활자로 찍혀있었고 뒤면에는 《이것을 소지하고 귀순하는 사람에게는 죄를 묻지 않고 평화로운 생활에로 돌아가도록 할것을 담보한다. 제주도지구 토벌사령부》라고 씌여져있었다.

《으음…》

고창생은 한동안 자기도 모르게 삐라장을 쥔채 미묘한 미소를 머금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더니 삐죽 나온 턱을 쭈빗 내밀고 다부진 청년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시간이 퍼그나 갔는데 적을 한놈이든 두놈이든 생포하자면 놈들을 만나야겠는데… 좀더 앞으로 나가보아야겠소.》 하고 고창생은 명령조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두 대원이 앞으로 소리없이 전진하자 고창생은 그들의 등에 대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어슴푸레 웃음을 띠였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삐라 한장을 집어 빠르게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들이 한동안 숲속을 헤치고 산밑가까이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한낮이 기울고 잡관목숲속은 어스레하였다. 세사람은 잠시 거기서 휴식했다.

《조장동무, 아무래도 완전히 어두워진 다음에 적 집결력량과 초소들을 정찰해야 할것 같습니다. 적병을 생포하여 심문하자고 해도 어두운 밤에 활동하는것이 좋을것 같은데…》 하고 다부진 젊은 대원이 묻듯이 고창생을 바라보았다.

《응? … 그래서?》

무슨 생각에 옴해있던 고창생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래서 여기에서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휴식하다가… 이제 조금 더 내려가면 필경 적초소들과 병력집결처가 있을겁니다.》 하고 젊은 대원은 자신있게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이 고장태생이여서 이곳 지형지물을 잘 알고있을뿐아니라 이미 수차례 이곳으로 정찰임무를 수행하러 나왔던 경험이 있었던것이다.

《좋소. 놈들이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을 때 적보초소들을 통과해서 혀를 잡는게 옳은 방법일것 같소. 그런즉 동무의 의견대로 여기서 날이 완전히 어둡기를 기다리자구.》

고창생은 무슨 생각에선지 선뜻 동의하고는 두 대원을 향해 선심이나 쓰듯이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동무들은 가지고 온것으로 요기들을 하고 잠시 눈들을 붙이오. 어뜩새벽에 떠나느라 잠들을 설쳤겠는데… 그동안 내가 경계근무를 서겠소.》

《그래요? 그렇다면 먼저 좀 자야겠군. 조장동무, 정확히 30분후에는 나를 깨워주십시오. 그 다음 제가 경계근무를 설테니까요.》 하고 억세게 생긴 중년대원은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

두 대원은 가지고 온 구운 감자 두알과 산열매를 게눈감추듯 훌꺼덕 먹어치우더니 가랑잎으로 몸을 가리우고 눈을 감았다. 행군의 피곤과 지난 밤 잠을 설친탓인지 그들은 곧 잠들었다.

고창생은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눈을 희번득거리며 두 대원이 잠들었는가를 확인하느라 가까이 다가가 숨소리를 들었다. 두 대원은 조장을 믿고 벌써 잠속에 빠져있었다.

고창생은 슬며시 두 대원의 총을 빼내고는 장탄한 탄알을 뽑아 멀리 숲속으로 휘뿌려던졌다. 그 다음 그들의 옆구리에 차고있는 수류탄을 뽑아내려고 손을 뻗쳤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적들이 달려드는가요?》 하고 잠들었던 다부진 청년이 화닥닥 일어나 총을 틀어잡으며 나직이 소리쳤다.

《찍소리말아, 반항하면 개새끼처럼 죽여버리겠다.》

권총을 쥔 손을 내밀며 고창생은 피발이 선 흉한 두눈을 부라리며 사납게 소리쳤다.

《아, 이건… 왜 이러는겁니까?》

잠들었던 억세게 생긴 중년대원이 뒤따라 벌떡 일어나며 아연해하였다.

《야, 너희들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으라. 나는 이미 귀순하기로 결심했다. 머지않아 산속의 유격대는 괴멸된다. 대세는 이미 기울어진지 오랬어. 제주도의 해안선은 완전봉쇄되고 후방보급이 없는 유격대는 산속에서 굶어죽든가 아니면 체포되여 총살당한다. 이건 정해진 운명이야. 고립무원한 여기 제주도에서의 장기적인 유격전은 불가능해. 그러니 이제 살아남으려면 귀순하는 길밖에 없어, 자 선택하라. 나와 함께 귀순하겠는가? 아니면 이 산속에서 개죽음을 하겠는가?》

고창생은 불시에 전간발작이라도 일으킨듯 사람의 목소리같지 않은 거쉰 목소리로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쳤다.

그 순간 다부진 청년은 바로 자기 면전에서 야수처럼 번뜩이는 고창생의 서슬푸른 눈을 보았다.

《너절한 변절자, 개자식!》 하고 말하려 했으나 너무도 놀라고 격분하여 목안에서 말이 새여나오지 않았다. 다부진 청년은 마치 목구멍에 걸린 말마디를 뽑아내려는것처럼 손가락으로 한참동안 목을 주무르며 한옆을 바라보았다.

《대답하라. 나를 따라 귀순하겠는가?》

고창생은 장탄한 권총을 쳐들고 험상한 얼굴표정으로 쏘아보며 다그치듯 말했다.

《나는… 당신을 지금까지…》 하고 다부진 청년은 드디여 목안의 경련이 멎는듯 떠듬거렸다.

고창생은 거쉰 목소리로 독촉했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개똥같은 그래서야. 너를 너절한 변절자, 반역자로 총살하겠다.》

다부진 젊은 대원은 서리발같은 눈으로 변절자의 눈을 곧추 쏘아보면서 민첩하게 총을 들이댔다. 그에게서 두세걸음 떨어져있던 고창생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흉물스럽게 웃었다. 몸서리치는 징그러운 미소였다. 짐승이발처럼 삐죽한 고창생의 이발에 침이 자개빛으로 아른거렸다.

《야, 그 총에는 총알이 없어! 내가 이미 뽑아버려 멀리 던졌어. 자, 빨리 대답하라! 내 말을 듣고 같이 귀순하겠는가? 거역하면 가차없이 개처럼 쏴죽이겠다.》

고창생은 이발사이로 짜내듯이 으르렁거렸다. 두 대원은 순식간에 야수로 돌변한 변절자를 쏘아보며 억이 막힌듯 몸을 부르르 떨고있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나와 함께 귀순하겠는가?》

《이, 너절한 변절자, 개보다도 못한 놈!》 하고 다부진 청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치며 불시에 고창생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땅- 고창생이 쳐든 권총에서 불이 번쩍하였다. 다부진 청년은 《비렬… 한… 놈.》 하고 땅을 걷어잡으려는듯 허리를 굽히더니 풀썩 앞으로 쓰러졌다.

《야, 너도 이놈처럼 뒈지고싶은가. 살고싶으면 나와 같이 귀순하잔 말이다.》

살기가 뻗친 고창생은 무섭게 낯짝을 이그러뜨리고 빨갛게 충혈된 눈시울을 들고 피발이 선 흉한 눈으로 중년대원을 쏘아보았다.

《개수작말아! 난 네놈의 그 흉한 상통만 봐도 구역질이 난다.》 하고 억세게 생긴 중년대원이 불을 토하듯 소리쳤다.

《그렇단 말이지. 좋아, 네놈도 천당으로…》

고창생이 쑤알거리며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억세게 생긴 중년의 대원은 불의에 달려들며 놈의 면상을 총탁으로 후려갈겼다.

《땅!-》

총성은 울렸으나 총알은 어딘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중년대원의 총탁에 되게 얻어맞은 고창생은 돌덩이처럼 경사진 산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내려갔다.

그러다가 소나무밑둥에 걸려 멎어선 고창생은 권총을 쥔채 벌떡 일어나 정신없이 허둥지둥 뛰기 시작하였다.

《서라, 이 너절한 변절자놈아.》

중년대원이 소리치며 따라 내려갔으나 고창생은 벌써 어둠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런 신념도 주견도 없이 성스러운 투쟁대오에 끼여들었던 우연분자들은 정작 시련을 겪게 되면 비겁해지고 공포에 사로잡히여 제 목숨 하나에만 정신이 팔린다. 하찮은 제 목숨 하나때문에 동지들을 배반하고 의리를 저버리는자들이 모두 그러한 인간추물들이다.

산에서 허둥지둥 내려온 고창생은 적들의 산입구초소로 찾아갔다.

《누구얏? 정지!》

적 보초놈의 째는듯 한 고함소리가 들리자 고창생은 흠칫 몸을 떨며 멎어섰다.

《웬 놈이야?》

《귀순이요. 여기 <안전보장증명서>가 있소.》

고창생은 몸을 떨며 품속에서 삐라장을 꺼내들며 머리를 연방 끄덕거렸다.

《총을 버려라.》

어둠속에서 놈들의 전지불이 고창생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비쳤다.

고창생은 후들후들 떨리는 자기의 발밑에 권총을 내던졌다.

《개자식, 꼼짝말고 그 자리에 서있어. 까딱 움직이면 쏴갈길테다.》

긴장한 보초병은 례의 째는듯 한 악청으로 고창생에게 소리치며 무섭게 위협했다.

잠시후 완전무장한 괴뢰군 몇놈이 우르르 달려들어 느닷없이 고창생을 개잡듯 두들겨패면서 두팔을 비틀어 뒤로 묶었다.

《왜 이러오. 이건 너무하지 않소. 나는… 투항… 귀순한 사람이란 말이요.》

고창생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쑤알거렸다.

《뭐야? 이 폭도놈아, 뭐, 귀순이라구?》

《그렇소, 난 유격대원이였소. 나를 토벌사령부로 속히 안내하여주기 바라오. 나에게는 유격대의 비밀… 유격대본부가 지금 은거해있는 지점을 알고있소.》

《개자식, 허튼 개수작 아니야?》

《아니요. 빨리 안내해주오. 서둘러야지… 이동할수 있소.》

고창생은 산에서 억센 중년유격대원의 총탁에 얻어맞아 찌부러진 코망울을 벌름거리며 중얼거렸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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