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3편 조국이 부른다

5

 

철썩, 처절썩-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 모래불을 적시는 남해의 광양만기슭에 72명의 해병들이 횡대로 정렬하였다. 대렬과 좀 떨어진 곳에 유일한 사민인 림종훈도 서있었다. 자기도 해병대오를 따라 북으로 가겠다고 굳게 결심한것이였다. 그는 생활체험을 통해서 이 길에서만 자기와 딸의 장래가 담보된다는것을 믿게 되였다.

그들은 밀려오고 또 밀려오는 파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대렬앞에서 채정보는 파도를 가리키며 격조높이 말을 이었다.

《보시오. 파도는 언제나 기슭을 향해 밀려옵니다.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파도는 어머니의 품을 그리는 어린애마냥 언제나 변함없이 조국의 기슭으로 달려옵니다.

오늘 우리는 바다를 뒤에 두고 떠나지만 저 파도를 가슴마다에 간직합시다.

우리앞에 어떤 시련과 난관이 가로놓인다 해도 그리움과 신념으로 뚫고 헤치며 기어이 최고사령부를 찾아갑시다!》

그는 약간 갈린 목소리로 구령을 쳤다.

《전체 우로 돌앗! 앞으로 갓!》

남해를 뒤에 남기고 대오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해병들이 배와 기재들을 처리하고 이제는 륙로를 타게 된것이였다.

여느때같으면 우렁찬 대렬합창이 울려퍼졌을것이나 모두들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병사의 량심이 가리키는대로 기뢰부설임무를 끝까지 수행한 자랑을 안고 떠나는 그들이건만 님해와의 리별은 못내 서운한 감정을 자아냈다.

잘있으라 남해여, 우리 기어이 다시 오리라.

그날엔 너의 푸른 물에 풍덩 몸을 잠그고 미제와 그 주구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느라 불과 포연에 그슬리고 달대로 단 이 몸을 식히리라.

대렬이 부지런히 순천쪽으로 빠져나가는데 윤지문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 려수까지 왔다가 고향인 제주도에 끝내 가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고통스러운 느낌은 지문이나 그의 형 지환이나 다를바 없으련만 동생은 더욱 그 감정을 누르기 힘들어했다. 그는 오열을 씹어삼키느라 날리는 해군댕기를 앞으로 돌려 입에 물었다. 그의 형인 윤지환은 그곁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걸어간다.

채정보는 대렬앞에서 걷다가 이따금 뒤를 돌아보군 하였다.

20리남짓이 걸어 순천어귀에 들어섰을 때 오슬오슬해오던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기침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일도 참…)

그는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나른해지며 땅속으로 잦아드는것 같았다·

제 병을 제가 모르는것은 아니지만 소백산줄기를 탈 때까지는 그런대로 참아보자고 한노릇이 일도 참 맹랑하게 되였다.

요즘 며칠사이 너무 과중한 부담을 안고 자기의 육체를 혹사한데서 오는 동통인것을 그는 알고있었다.

며칠째 해병들과 함께 배를 타고나가 직접 기뢰부설전투를 지휘했었다. 초시계에 맞춰 규칙적으로 울리는 텀벙소리를 듣느라 들씌워지는 파도에 온몸이 젖는것도 몰랐다. 늘 귀항의 길에 올라서야 자기의 몸이 떨려나는게 정상이 아님을 느끼군 하였다. 순천군 소재지를 지나온 대오가 4시간만에 휴식에 들어갔을 때 언제 눈치챘는지 윤지환이 그의 몸에 비옷을 덧씌워주며 다급히 물었다.

《어떻게 된겁니까? 몸이 불덩어리같습니다!》

채정보는 허구프게 웃으며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누가 들었는가 하여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들은 사람이 없음을 알자 윤지환을 자기의 곁으로 끌어당겨 앉혔다.

《참모장동무한테야 무얼 숨기겠소. 글쎄 시월에 접어들었다는걸 잊었거던. 위탈과 해수병이 환절기에는 꼭 도진단 말이요. 오랜 바다생활이 이렇게 만들어놓은것 같애. 하지만 난 기쁘구만. 우리가 적들의 상륙기도를 며칠이라도 저지시켰다면 그건 성공한거요. 동무들이 이번에 정말 큰일을 했소.》

그는 터져나오는 기침을 참느라 한동안 신고하더니 변명하듯 말했다.

《한동안 이러다가 또 나을거요. 기침약은 자주 먹으니까 군의한텐 알리지 마오. 건강관리를 잘못했다고 또 성화를 먹이겠는데 그게 야단이거던.》

그의 말을 들은 윤지환은 기가 막혔다.

눈감아줄게 따로 있지 병이나 건강문제를 놓고 에누리를 한단 말인가. 그는 이런 때일수록 군의편에 서는것이 자기의 도리를 다하는것임을 알고있었다. 속이 타들었다.

《부대장동지, 그렇게 하다간 병을 기릅니다. 이런 병치료야 별로 품도 들지 않는건데… 어, 군의가 어디 갔나?-》

윤지환이 이쯤 되고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채정보는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아니아니, 내 병은 그런 성질의 병이 아니요. 옛날부터 알고 죽는게 해수병이라고 했는데 제발 조용하오. 군의한테 약을 타서 먹고있는데 이제 새삼스럽게 무슨 치료를 한다고…》

부대장에게 병이 있고 그것을 군의가 다 알고있다는 바람에 윤지환의 눈이 둥그래졌다.

이건 무슨 생뚱같은 소린가, 알고있어서 이렇게 속수무책인가?

윤지환은 군의가 한심하게 생각되였다.

그는 안타까이 말했다.

《빨리 손을 써야 합니다. 이렇게 고열이 날 때야 무슨 합병이 왔다는 소린데 이러다간 정말 큰일납니다.》

윤지환은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대오앞에서 머리에 부상을 입은 전사의 붕대를 감아주고있는 리설경을 찾아갔다.

《동문 아직도 모르오? 대좌동지의 몸이 불덩어리같소.》

《예?!》

놀란 리설경은 대원의 머리에 감던 붕대를 잽싸게 마무리하고 채정보를 찾아 뒤로 달려갔다.

리설경이 다가오자 채정보의 얼굴엔 랑패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만큼 알리지 않으려고 했건만 군의는 벌써 달려와 청진기부터 꺼내든다.

《진찰을 좀 해야겠어요·》

채정보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대오는 곧 떠나야 하오. 내 이제 기침약을 먹겠소. 한시가 급하오. 오늘 구례까지 가닿아야 하오.》

《아이참, 진단을 다시 해봐야 하겠습니다. 그저 약만 자시면 어떻게 합니까?》

리설경은 어처구니가 없어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뒤미처 그들에게로 다가온 윤지환이 설경의 말을 듣더니 진단을 내릴때까지 휴식을 연장하자고 부대장을 설복하였다.

본인의 말과 같이 해수병에 위탈이 겹친데다가 과로로 몸살까지 와서 안정치료를 해야 할 형편이였다.

그러나 그럴 조건이 못되였다. 채정보는 주사 한대를 맞고 일어나 출발구령을 내렸다.

대오는 다시 움직였다. 피로에 싸인 그들은 묵묵히 걷기만 하였다.

현준은 행군이 시작되면서부터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문채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이야기판의 가운데서 돌발적인 익살과 롱담으로 동무들을 웃기던 하명찬의 듬직한 모습이 자꾸 눈앞에 떠올랐다.

해방전엔 함께 밥을 빌어먹으면서 막돌처럼 굴러다니다가 나라가 해방이 되여서야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다시는 지난날의 생활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총을 잡은 하명찬과 현준이였다. 부대에서도 직급은 서로 다르지만 언제나 《쌍두마차》로 불리우며 사랑과 믿음을 받아온 그들이였다.

짝을 잃은 현준의 슬픔을 너무도 잘 아는 동무들은 누구도 말을 걸치지 않았다.

지어는 꽃술을 찾아온 벌처럼 언제나 하명찬의 주위를 맴돌며 떨어질줄 모르던 해철이까지도 고개를 떨군채 한옆에서 잠자코 걷는데 이따금 주먹으로 눈굽을 뻑 훔치는품이 아직도 하명찬을 잃은 설음이 가셔지지 않은 모양이다.

해병들은 전방척후를 따라 묵묵히 걸음을 다그쳤다. 그러나 모두들 피로에 싸여 걸어가는것이 한눈에 알리였다.

채정보는 대오안에 떠도는 이 무거운 분위기를 가셔야 할 책임을 느꼈다. 그러나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도리여 엄습하는 진통과 고열속에 시달려야 하였다. 처음 떠날 때부터 좋지 못하던 몸상태가 긴장한 기뢰부설전투와 하명찬을 잃은 타격으로 이제는 쓰러질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것 같았다.

리설경과 련락병인 기태서는 얼굴이 새까매서 속을 썩였다.

그래도 현준대위가 먼저 자기가 할바를 찾았다. 그는 군의를 만나보고는 담가를 만들어 채정보를 눕히려고 하였다.

그러자 채정보는 성을 내기까지 했다.

《내가 말한걸 잊었소? 행군속도를 높여야 하오. 이렇게 담가를 메고 가서야 언제 구례에 닿겠소?》

채정보가 역증을 내다싶이 했으나 현준은 요지부동이였다.

《손톱 곪는건 알아도 염통 곪는건 모른다고 부대장동지가 그렇게 병을 기르면 도리여 대오의 행군속도가 떠질수 있습니다.》

지휘관들과 해병들이 하도 사정하는 바람에 채정보는 별수없이 담가에 누웠다.

그는 윤지환참모장을 불렀다.

전투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무릎가에 펼쳐놓았다. 그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소백산줄기가 시작되는 한점을 짚었다.

《나때문에 참모장동무가 수고하게 됐소. …당분간 대렬을 인솔해주오. 원래계획은 오늘 저녁까지 남원에 가닿을 계획이였는데 소해함과 싸우느라고 하루일정이 늦어졌소. 남원에서 기다리던 동무들은 래일 아침에는 무조건 그곳을 떠날거요. 그들이 떠나기 전에 도착해야 하오.

그러자면 이제 구례에 도착해서 저녁밥을 해먹고 곧장 야간행군을 할수밖에 없소. 그렇지 않으면 걸음이 빠른 동무들로 선발대를 무어 먼저 가닿게 할수도 있소. 그래야 남원에서 동무들과 만날수 있고 행군을 같이할수 있소.》

윤지환에게 지도를 넘겨준 채정보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참고참았던 동통을 견뎌내기 힘들어 의식을 잃어서인지 담가에 실린 몸을 맥없이 늘어뜨렸다.

《대좌동지!》

《대좌동지!》

담가주위에 모여든 지휘관들이 목메여 찾았다.

대답이 없었다.

리설경이 캄파주사를 놓아 그가 정신을 차리게 하였다.

그가 신음소리를 내다가 잠이 들자 윤지환참모장이 멈춰선 대렬을 둘러보았다.

《동무들! 대좌동지는 래일 아침까지 남원에 도착하라고 지시했소. 행군을 다그칩시다. 자, 출발!》

대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걷고있던 현준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부대장의 차운전사가 눈에 뜨이자 그의 팔을 잡아 한옆으로 끌었다.

《왜 그럽니까?》

운전사는 영문을 몰라했다.

현준은 주위를 힐끗 일별하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미군의 스리쿼다 같은것도 몰수 있겠지?》

운전사는 시답지 않게 대꾸했다.

《차라는거야 이거나저거나 다 어슷비슷하지요. 갑자기 그건 왜 묻습니까?》

현준은 귀속말로 말했다.

《동문 부대장동지가 저렇게 담가에 실려가는데 운전사로서 뭘 생각되는게 없소?》

그제야 현준의 말뜻을 알아차렸는지 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러지 않아도 려수항구에 세워놓았던 군용승용차를 적의 눈먼 포탄에 페물로 만든것으로 하여 컴컴한 얼굴을 하고있던 운전사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놈들의 차를… 찬성입니다.》

현준이 그의 등을 툭 쳤다.

《배짱이 맞누만.》

《그런데 꽤 승낙할가요?》

《누가?》

운전사가 고개를 기웃거리자 현준이 걱정말라는듯 기관단총을 추슬러올리며 참모장 윤지환에게로 달려갔다.

윤지환은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는 전투가방에서 지도를 꺼내서 펼쳐들었다. 그는 지도에 그려진 도로와 산, 강들을 유심히 살펴보고나서 마디진 손가락으로 한점을 짚었다.

《적들이 벌써 이 부근 도로와 강들을 차단하기 시작했을거요. 매사에 주의해야겠소. 여기 이 지점에서 만나자구.》

현준은 운전사와 또 한명의 대원을 데리고 등성이를 내렸다.

기태서가 련락병인 자기도 함께 가야 한다면서 기를 쓰고 따라나섰으나 부대장동지를 잘 돌보라고 부탁하고 세명만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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