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제3편 성전

11

 

미명.

정적.

바다 한복판에 우뚝 솟은 한나산, 백록담과 계곡들, 울울창창한 원시림… 날이 채 밝기 전의 대자연은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거창한 한폭의 그림처럼 고요하다.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자리잡은 동쪽의 바다에는 희끄무레한 새벽빛이 비꼈는데 그 맞은켠의 서쪽기슭은 아직 밤인듯 컴컴하다.

이 이른새벽에 한나산정 백록담 한쪽의 유격대본부초막에서는 희미한 등잔불이 타오르고있었다. 어제 깊은 밤에 소집된 유격대지휘관들의 긴급비상회의가 지금까지 계속되고있는것이다.

《지휘관동무들, 우리는 이제까지 론의한바와 같이 현재 우리는 가장 엄혹한 시련을 겪고있소.》 하고 유격대 대장 리덕구는 지휘관들의 긴급비상회의를 결속하면서 며칠사이에 몰라보게 변모된 사람들의 낯익은 얼굴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리덕구는 최근 며칠사이에 옷차림새며 용모들이 변한 이 지휘관들이 어느 정도 지쳤고 어느 정도의 시련을 이겨낼수 있는가를 잘 알고있었다. 그는 긴급비상회의에 모인 지휘관들모두가 지금의 준엄한 시련앞에 자기들의 모든것, 생명도 서슴없이 바칠수 있는 애국적각오가 충분히 되여있기때문에 그 어떤 가혹한 시련도 이겨내리라는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리덕구는 조용하고 엄숙한 눈길로 지휘관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우리는 지금 무기, 탄약, 식량, 의복… 모든것이 다 부족한 형편이요. 발동선을 타고 섬에서 빠져나간 후방공작조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했소. 섬전체를 사면으로 봉쇄한 적들은 하늘과 바다, 지상에 방대한 무력을 집결하고 련일 악착하게 달려들고있소. 집단부락들에는 돌담과 가시울타리를 치고 주민들의 통행을 단속하고 출입증제까지 실시하면서 발광하고있소. 산입구마다에는 이미 제놈들의 초소들을 설치해놓았소. 이 모든 류례없는 악랄한짓들은 우리 제주도인민유격대를 산중에서 질식시켜 괴멸시키려는것이요.

그러나 우리는 방금 이 난국을 타개하면서 사생결단의 각오로 끝까지 싸울 불같은 결의들을 표명했소. 그렇소. 우리가 만일 싸우다 죽더라도 그것은 영원히 빛나는 죽음으로 될것이요! 그러나 동무들, 우리는 되도록 무모한 희생을 피하고 살아서 싸움을 계속해야 하오! 여기 모인 지휘관들은 이 모든 준엄한 정황을 대원들에게 사실그대로 알려주고 끝까지 싸울 각오와 함께 무의미한 희생을 피하도록 해야겠소. 지휘관동무들, 오늘 회의에서 결정된것처럼 지대들과 중대들은 담당한 지역들에서 부단한 이동과 불의의 기습, 이것이 당분간 우리의 행동전술이라는것을 명심하고 잘 싸워나갑시다.》

지휘관들의 긴급비상회의에서는 독자적으로 활동하게 될 각 지대들의 활동지역들을 확정하였다. 제주, 조천, 구좌면일대, 표선, 남원면, 서귀일대, 대정, 안덕면일대, 한림, 애월면, 금덕일대… 4개 지구에서 각각 부단히 이동하면서 적들을 타격하기로 결정한것이다. 담당한 지역의 지형과 지세를 잘 아는 그들은 적들의 익측과 배후에로 감쪽같이 스며들어 불의에 기습하고 종적을 감추면서 고정된 기지가 없이 수시로 이동하게 될것이다. 회의에서는 있을수 있는 모든 일을 면밀히 검토하고 고려했다.

《지휘관동무들, 유격대본부는 제주, 조천, 구좌면일대에서 활동하게 될 1지대와 당분간 함께 활동하겠소. 물어볼것이 있으면 물어보시오.》 하고 리덕구는 마지막으로 나직이 말했다.

회의에 참가한 지휘관들은 피끓는 투쟁의지와 신념을 가다듬으며 잠잠히 앉아있었다. 그때 문득 어스레한 구석쪽에서 누군가 앞의 한 지휘관을 쿡 찌르며 잘 들리는 귀속말로 유쾌한 롱담을 던졌다.

《이보라구, 이제는 헤여져 싸우게 됐은즉, 임자하고 사격경기승부를 못하게 됐구만, 그게 섭섭하단 말이야.》

《이 사람, 사팔뜨기주제에 매눈인 나와 사격경기승부란 무슨 뚱단지같은 소리야.》

앞의 우둥부둥한 지휘관이 천연스럽게 나직하나 역시 롱담조로 퉁을 주었다.

《허, 이 사람아, 사팔뜨기눈이 더 잘 본다는걸 모르누만. 아무래도 임자는 모르는게 너무 많아 상대할 멋이 없다니.》

《사팔뜨기가 잘 본다지만 헛보는게 탈이지.》 하고 동안을 두지 않고 앞의 지휘관이 응수했다.

그들의 주위에서는 나직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리덕구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지휘관동무들, 더 질문할것이 없으면 이제부터 1시간이내로 모든 준비를 갖추고 각기 활동할 지역으로 출발하시오.》 하고 리덕구는 며칠밤 잠을 자지 못해 잔모래가 들어간듯 깔깔한 눈으로 지휘관들을 바라보며 엄하게 명령하였다.

그때 뒤늦게 1지대장이 일어서면서 리덕구를 향해 빠른 어조로 물었다.

《대장동무, 각 지구에 나갔던 정찰조들이 돌아온것으로 알고있는데… 제주, 조천, 구좌면일대로 파견되였던 동무들도 돌아왔습니까?》

《아직 돌아오지 못했소. 1지대장동무, 그 지구의 적정은 우리가 그쪽으로 진출하여 직접 정찰하기로 합시다. 참모장동무, 아직까지 그 동무들 소식은 없지요?》 하고 리덕구는 참모장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재삼 확인하듯 물었다.

《예, 다른 정찰조는 이미 다 돌아왔는데 그쪽으로 나간 정찰조는 약속된 시간이 퍽 지났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것으로 보아 필경 무슨 일이 생긴것 같습니다.》

참모장은 그 어떤 불길한것을 예감하는듯 쉴새없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때 유격대본부초막 아래쪽에서 보초근무를 서던 애젊은 대원이 가쁜 숨을 내쉬며 급히 초막안으로 들어왔다.

《대장동지, 조천면과 구좌면지구로 정찰나갔던 영호동무가… 심한 부상을 입고 방금 도착했습니다.》

《영호동무가 부상을? 다른 동무들은 어떻소?》 하고 리덕구는 자기도 모르게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호동무는 심한 중상인데 다른 동무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영호동무는 의식을 잃었다가 깨여나기만 하면 줄곧 대장동지에게 긴급히 알려드릴게 있다고 헛소리처럼 자꾸 뇌입니다. 그래서…》

애젊은 보초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말을 더듬거리는데 초막안으로 옷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중년대원을 없고 한 유격대원이 부리나케 성급히 들어왔다.

《영호동무!-》 하고 리덕구는 그에게로 허리를 굽히고 나직이 소리쳐 불렀다.

《아, 대장동지… 군요. 급히 부대를… 이동… 해야겠습니다. … 고창생 그놈이 변절… 했습니다. 그놈이… 한국철동무가 함께 귀순하기를 거부한다고… 총으로 쏘아죽이고… 저는 격투끝에… 대장… 동지, 부대를 빨리… 이동…》 하고 그는 종시 말을 끝맺지 못하고 중도에서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 부상당한 몸으로 여기까지 간난신고하여 오느라 온몸의 피와 기운을 깡그리 빼버렸던것이다.

《영호동무!》

《영호-》

초막안의 지휘관들이 의식잃은 그를 둘러싸고 소리쳐 불렀으나 눈감은 그는 잠잠했다.

《개자식… 고창생 그놈이 차마 변절까지 할줄이야.》 하고 누군가 분개하여 이발을 갈며 소리쳤다.

《소문난 난봉군, 투전군이였던 놈. 그 개자식이 끝내 더러운 본성을 드러냈군.》

《그놈은 우리 대렬에 끼여들었던 우연분자였소. 그런 놈들이 갈길은 추악한 변절의 길밖에 없소.》

유격대지휘관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치를 떨었다.

《대장동무, 이러고있을 때가 아닌것 같습니다. 적들에게 여기 우리 부대의 집결지점과 본부위치가 알려진 이상 빨리 부대를 활동할 지역으로 분산하여 출발시켜야 할것 같습니다. 적들은 벌써 기동을 개시했을겁니다.》 하고 실무가인 참모장은 긴장한 표정으로 빠르게 말했다.

그때 갑자기 사방의 보초소들에서 자지러진 총성이 울리고 유격대원들이 달려왔다.

《대장동지, 적들이 숱한 병력으로 여기를 포위하고 은밀히 접근하고있습니다.》

《대장동지, 사방에서 적들이… 어느새 놈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달려듭니다.》

대원들의 다급한 목소리에는 숨길수 없는 긴장과 불안이 울리고있었다.

《음…》

그처럼 침착하고 강한 의지와 담력을 가진 리덕구도 긴장했는지 몇순간 낯색이 조금 변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평상시의 침착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잠시 눈을 번쩍이며 무엇인가 생각하고있었다.

적들은 끊임없이 총을 쏘아대며 사방에서 차츰차츰 포위환을 좁혀들고있었다. 리덕구는 지금 이 시각 완전히 포위된 이상 빠질 길이 어렵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때문에 이 포위된 긴박한 정황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빠져나갈 출로와 방향을 신속히 결정해야 하였다. 그는 위급한 정황속에서도 유격대의 기본주력을 구출할 한가지 가능성을 찾아냈다.

적 포위환 한쪽의 화력을 일시에 제압하면서 기본대오가 빠져나가는것이다.

그러자면 자신이 일부 유격대원들을 인솔하고 적들의 화력과 주의를 그쪽으로 끌도록 하여야 했다. 지금의 이 불의의 조성된 정황에서는 오직 그 한가지 방법이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모든 지휘관들은 내 명령을 들으시오! 이제부터 각 지대는 자기 위치를 차지하고 적들을 맞받아 치시오. 사면이 포위된 상태에서 내가 대원 몇명을 인솔하고 적들을 타격하면서 적의 화력을 집중케 하겠소. 전체 부대는 참모장동무의 지휘하에 한쪽방향 즉 지형이 험한 서쪽방향으로 일제사격으로 적들의 화력을 제압하면서 빠져나가시오. 그 다음 각기 분산하여 분담된 활동지대에로 진출하시오.》 하고 리덕구는 순간에 결심한 전투구도에 따라 지휘관들에게 명령하였다.

지휘관들은 본부초막에서 급히 나왔다. 밖은 이미 동이 트고있었다.

《나를 따라 앞으로!-》

밖으로 나온 리덕구는 유격대원들에게 소리치며 총성이 세차게 울리는 쪽으로 날쌔게 달려가 엎드렸다. 거기에는 해묵은 들쭉나무들과 진달래나무들이 무성하였으며 바위들이 듬성듬성 솟아있었다.

《대장동무, 이런 작은 인원으로는 이곳을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대장동무자신이 여기에서 전투를 하는건… 저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다른 지휘관을…》

군사실무가 상당한 실력자인 참모장은 리덕구대장의 의도를 잘 알고있었기때문에 극히 반대해나섰다. 리덕구를 가장 위험한 전투장에 남겨둔다는것은 참모장으로서는 가슴아픈 일이였던것이다.

《명령이요, 참모장! 동무는 기본대오를 이끌고 빠져나가라는 나의 명령을 집행하시오. 목숨으로 명령을 책임져야 하오. 기본대오가 살아서 싸움을 계속해야 한단 말이요. 가시오.》 하고 엄격히 소리치는 리덕구의 입에서는 말이 아니라 불이 튀여나오는것 같았다.

참모장은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단념한듯 손을 내젓고 저쪽으로 허리를 굽히고 달려갔다.

리덕구는 적들을 향해 맹사격을 퍼부었다. 그의 주위에는 30명정도의 유격대원들이 남아 사격을 개시하였다. 적기관총이 쏘아대는 웅글은 소리, 사방에서 미국제엠완총이 내는 째는듯 한 울부짖음, 유격대원들의 대응사격소리…

리덕구는 막대한 력량의 적들에게 포위된 이 정황에서 필연코 전 부대의 모든 성원이 다 살아남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에 분노와 슬픔이 욱- 치미는것을 느꼈다.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될수록 많은 인원, 유격대의 주력은 빠져나가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이것만은 명백하다.)

리덕구는 이제 유격대의 주력이 빠져나갈 기회가 조성되리라는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있었다. 문제는 적들의 기본화력을 자기쪽으로 줄곧 집중케 하는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하여 그는 사격을 거듭하면서 총성이 뜸해진 사이에 적들을 향해 열기있게 소리쳤다.

《이놈들아- 리덕구가 여기 있다!- 내가- 유격대장 리덕구란 말이다!- 몇백만원의 현상금이 붙은 리덕구가 여기 있다!-》

리덕구는 만일 자기가 탄알이 떨어져 더는 사격할수 없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면 고함을 지르고 웨치며 그 어떤 행동을 해서라도 적들의 화력을 자기한테로 집중케 하리라고 결심하고있었다.

문득 그는 적들의 화력이 자기가 있는쪽으로 집중되고있음을 정확히 감촉했다. 바로 그 순간 리덕구에게서 얼마간 떨어진 뒤켠에서 돌연히 유격대의 무시무시한 일제사격소리가 요란히 울리고 진달래나무가 무성한쪽으로 유격대의 기본대오가 내달리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유격대의 기본주력은 드디여 가장 정확한 순간에 위력한 일제사격으로 그쪽의 적화력을 제압하면서 적 포위환 한쪽을 돌파해나간것이다. 불쑥 돌파해나가는 대원들속에서 《대장동지, 돌-파-성-공!-》 하고 누군가의 흥분한 웨침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기본대오는 산등성이아래로 사라졌다. 그들속에서 《돌-파-성-공!-》 하는 거리가 멀어서 똑똑히 알아들을수 없는 말들이 기쁨의 환성같이 회오리쳐오르더니 이어 잠잠해졌다.

(무사히 빠져나갔구나!)

리덕구는 몇분어간에 모든것이 의도대로 결판이 난것을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그 순간 불시에 잠시 멎었던 총성이 일제히 다시 터졌다. 뚜루룩… 뚜루룩… 따따 뚜루룩… 적들이 쏘아대는 기관총이 연방 불을 토했다.

리덕구는 엎드린채 약간씩 이동하면서 앞과 좌우의 적들에게 사격하였다.

그는 지금 한결 마음이 안정됨을 느끼고있었다. 유격대의 주력이 적들의 막강한 무력의 포위속에서 빠져나가기 전까지 가슴속에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있던 불안은 이미 사라진것이다.

그러나 사방에서 죄여들며 쏘아대는 적들의 총성과 험악한 공기속에는 죽음이 완강히 배회하고있는것 같았다. 멎을줄 모르고 연방 울리는 적들의 총성은 앙심을 품은듯 째는듯 한 새된 소리를 질러대며 죽음의 씨앗을 휘뿌리고있었다.

리덕구가 엎드린 정면의 산등성이에서는 여전히 적기관총이 맹렬히 불을 내뿜고있었다. 등뒤와 좌우량측면에서도 점차 강해진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동시에 유격대원들의 맞총질이 무섭게 터졌다.

사방에서 총성이 콩볶듯 울리고 불시에 귀가 멍멍해지면서 화약내가 코를 찔렀다.

《동무들, 사격을 일시 중지하시오. 탄알을 아껴야 하오. 놈들의 포위를 돌파한 우리의 기본대오가 안전한 지역으로 진출할 때까지 놈들을 여기에 붙잡아두고… 견지해야 하오. 그 다음 내 명령에 따라 이곳에서 돌격으로 빠져나가야겠소.》

리덕구는 자기 주위에 엎드린 대원들에게 소리치고나서 축축한 이마를 훔쳤다. 손바닥에 줄줄이 발가우리한 피땀이 묻어났다.

《대장동지, 알았습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얼마간 떨어진 곳에서 조성철이 잘 울리는 흥분한 목소리로 응답하였다.

《성철이, 그리고 동무들, 내 말을 명심해들으시오. 무모한 용감성, 객기는 어느때나 불필요한 금물이요. 동무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오. 내 말의 뜻을 알겠소?》

리덕구는 절절한, 진정에 찬 목소리로 다시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대장동지, 너무 우리들 걱정은 마시고 대장동지, 조심하십시오!》 하고 누군가 혈기차게 웨쳤다.

유격대원들이 리덕구에게서 늘쌍 느끼고있는 매력의 하나는 언제나 그가 스스럼없이 대원들에게 보이는 진정한 애정과 사랑이였다. 때문에 대원들은 누구나 다 리덕구에게 존경이상의 애정을 품고있었다.

유격대원들이 잠간 사격을 중지하고 숨을 돌리는 사이에 적들은 총을 쏘아대며 가까이로 차츰차츰 접근해오고있었다. 이제는 누런 복장의 적들이 얼핏얼핏 키높이 자란 들쭉나무들사이로 얼른거리는것이 보였다.

놈들이 연방 내갈기는 총탄에 꺾이운 들쭉나무가지들과 잎들이 땀에 젖은 리덕구의 등허리에 우박처럼 떨어져내렸다.

《사격!-》

리덕구는 침착하게 웨치며 다가오는 적들에게 연방 총탄을 퍼부었다. 동시에 멎었던 유격대원들의 총성이 일시에 터졌다.

(어림없는 소리, 더는 다가서지 못해!) 하고 리덕구는 놈들을 쏘아보며 몸을 약간 옆으로 이동하면서 련속 사격했다. 순간 리덕구의 가까이에서 꽝- 적의 수류탄이 날아와 터졌다. 푸실푸실한 흙들과 검불, 나무가지들이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리덕구는 움푹 패인 홈채기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잠시후에 그는 완강한 의지로 흙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안돼!- 네놈들이 나를 어쩌지 못해!-) 하고 리덕구는 입안의 흙먼지를 뱉으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는 온몸이 화끈 달아오르고 사방 어디라없이 쑤시는듯 한 아픔을 느꼈다.

어느새 적기관총이 가까이 접근하여 뚜루룩거리며 쉴새없이 불을 토하고있었다.

《동무들, 이제 몇분간만 더 견지하고는 돌격으로…》 하고 흥분한 목소리로 웨치던 리덕구는 돌연 무엇인가 가슴이 선뜩함을 느꼈다. 눈앞이 불시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의식이 캄캄한 장막속에 싸인듯 흐릿하였다.

적의 총알이 그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간것이다.

리덕구는 이상스레 입을 비틀고 괴로운듯 눈을 찡그리고 밑둥을 잘리운 나무처럼 쓰러졌다.

(내가 왜… 이러는가…)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희미한 의식속에서 그는 무엇인가 안타깝고 괴로운감을 느끼고있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나는 학생들과… 좋은 때… 좋은 날 김일성장군님께 인사를 올리려 배를 타고 평양으로 가자고… 약속… 약… 속…)

리덕구는 힘들게 한번 그리고 또 한번 눈을 뜨고 고향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리개 한마리가 푸르스름한 하늘에서 한쪽으로 기웃하고 날고있었다.

(수… 난많은 내 고… 향… 제주…)

그러다가 모든것이 사라지고 캄캄해졌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가 폭신한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나서자란 고향땅과 융합되는듯 한감을 느꼈다.

《대장동지,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인가 말입니다.》 하고 적들에게 사격하던 조성철이 리덕구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대장동지, 왜 대답이 없습니까?》 하고 조성철은 이상한 예감에 다시 소리치며 리덕구가 있던 들쭉나무숲쪽으로 달려갔다. 성철의 왼쪽눈 어름에는 갓 입은 부상으로 피가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는 쓰러진 리덕구를 와락 안아 일으켰다.

《대장동지, 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어서 말을 좀 하십시오.》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조성철은 울고 또 울었으며 웨치고 또 웨쳤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하고 조성철은 너무도 가슴아파 몸부림쳤다. 그에게는 영원히 잊을수 없는 참다운 스승이였으며 다정한 손우벗이였고 엄한 형님이였다.

《개새끼들! 이놈들아, 어서 다가오라! 너 죽고 나 죽고 결판을 내자.》 하고 조성철은 누를길 없는 격렬한 분노와 증오로 눈을 무섭게 번뜩거리며 몸을 벌떡 일으키고 서서 련속 총을 쏘았다.

그 순간 수류탄이 날아와 가까이에서 꽝- 터졌다. 조성철은 총을 틀어잡은채 풀떡 솟구쳤다가 머리를 땅에 짓쫗으며 쓰러졌다. 그는 입안에 뜨끈하고 쩝쩔한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쓰러진 리덕구의 초연에 그슬린 얼굴에는 들쭉나무잎들에 맺혀있던 아침이슬이 구슬처럼 떨어져내렸다. 눈감지 못한 리덕구의 눈은 고향의 맑게 개인 6월의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있었다. 떠오른 해의 붉은 아침노을이 기폭처럼 쓰러진 리덕구를 감싸고있었다.

이로써 불같은 심장을 지녔던 교사출신의 제주도인민유격대 대장 리덕구는 갔다. 그의 나이 29살, 한창 꽃피는 젊은 때였다.

장하여라 제주도의 용감한 아들이여! … 그는 민족의 통일제단에 자기의 청춘을 서슴없이 바친 제주도의 장한 아들이였다.

그의 희생적인 투쟁으로 적들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나온 제주도인민유격대의 기본대오는 미제와 괴뢰들의 악착한 민족분렬책동을 짓부시며 힘찬 투쟁을 계속해나갈것이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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