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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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기념일이다.

조선회관에서 진행하는 예술공연에서 성옥이가 독창을 하게 되여 이른새벽부터 온 집안이 기쁨으로 들끓었다.

여느때없이 일찍 일어난 고성옥은 이방저방 다니며 화기를 돋구었다. 아무리 할머니가 엄하다 해도 그에게만은 통하지 않았다. 집안의 기쁨이고 락이여서 식솔들의 사랑은 다 자기의것으로 인정하고 살아온 그였다.

워낙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아이들은 응석받이로 되기마련이다. 부모들의 엄한 눈길도 할머니곁에 가면 유순해진다는것을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성옥이도 례외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남달리 예민하고 감수성이 빨랐다.

결코 응석과 어리광으로 몸을 감싸며 자라지 않았다. 어릴적부터 할머니의 손목에 끌려 인생에 대해서, 또 그것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새기며 자랐다.

그 연고로 할머니가 하는 일은 다 옳다고 생각했고 자기에게서 바라는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있었다. 언제나 주위세계를 대하는 할머니의 눈길에 자기의 초점을 함께 하려고 했다. 그래서 음악공부를 해도 조국을 그리는 동포들의 노래, 지난날 일본땅에 강제로 끌려와 노예로동을 강요당하던 동포들이 피눈물을 뿌리며 부르던 노래를 수집하겠다고 했다.

원족가는 어린애마냥 기분이 떠있는 손녀를 보는 부향녀의 마음은 즐겁기만 했다. 인생의 기쁨이란 오늘과 같은 날을 두고 하는 소리같았다.

《할머니! 나 오늘 이 옷을 입고 갈래요.》

고성옥이가 어느새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와 춤추듯 방안을 빙그르르 돌았다.

부향녀가 평양에서 사온것이다. 까만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받쳐입은 성옥의 모습은 새벽이슬을 한껏 머금은듯 청아하고 생신한 맛을 풍기고있었다.

《오냐, 오늘같이 기쁜 날에 입지 않으면 언제 입겠느냐.》

부향녀는 대견스럽고 흐뭇한 눈길로 손녀를 바라보았다.

고성옥이가 할머니의 곁에 다가와 가볍게 기대여앉았다.

《할머니두 차비를 해야지요?》

《그럼, 해야지.》

손녀의 독촉을 받으며 부향녀도 서둘렀다.

부향녀는 손녀의 손목을 잡고 거리에 나섰다. 그의 기쁨은 한량없었다. 거리에 대고 소리치며 자랑하고싶은 마음이다.

《똥벌레》로 갖은 멸시와 천대를 받던 이 부향녀의 손녀가 대학생이 되였고 오늘은 또 화려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나란히 걷던 성옥이가 불쑥 앞으로 튀여나왔다. 부향녀와 마주서서 뒤걸음하며 정색한 어조로 물었다.

《할머니, 오늘 같은 날 제게 좋은 말씀을 해주세요.》

《이 할머니에게 무슨 신통한 말이 있겠다구 그러느냐.》

고성옥은 그의 오른손을 두손으로 잡고 칭얼거렸다.

《으-음, 난 할머니의 조언을 듣고싶어요.》

부향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듯싶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한마디 할가? 너두 알겠지. 오늘 무대가 어떤 무대냐. 단순히 기량이나 재주로 나설 자리겠니? 이역의 아들딸들을 따뜻이 보살펴주는 어머니 내 조국의 사랑을 심장으로 절절히 노래해야 한다는걸 꼭 명심해다오.》

《알겠어요, 할머니.》

품에 안겨드는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향녀는 생각에 잠겼다.

어느모로 보나 사랑스러우면서도 어엿하게 다 자란 손녀였다. 하건만 부향녀는 안심보다 근심이 앞섰다.

응석과 어리광의 요람이던 가정을 벗어나 사회라는 저울대우에 서게 된 손녀가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대학은 사람들에게 사회와 인간들사이에 필요한 학문과 지식을 주는 곳이다. 그 과정에 사람들사이에 서로 인간관계를 맺고 집단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서 매 개인의 인간됨이 평가되게 된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정생활에서는 랭정한 평가보다 너그러운 융화속에 인정이 오고간다. 남편의 부족점을 안해가 리해하고 안해의 결점을 남편이 눈감아주며 가정을 유지해가는것이다.

허나 사회란 그렇지 않다. 리해와 아량에서 에누리를 모르는 딱딱한 기준이 존재한다.

매 인간의 무게는 그의 재주와 쓸모에 따라 론의된다. 쓸모없는 인간일수록 주체를 잃고 아첨과 비굴로 자기의 존재를 평가받으려고 헛되이 애쓴다. 지성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자존심이 강하고 객관의 평가에 허심하며 쓸모있는 존재로 자신을 부단히 련마해가는것이다.

《성옥아, 어디서 무엇을 하든 조국에 필요한 존재가 되여야 한다.》

고성옥은 정색하여 그의 말을 새겨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발씬 웃음을 지었다.

《할머니, 그리구 또…》

《참, 넌 쇼뺑이 누구인지 아냐?》

《으-음, 할머니두. 아무렴 내가 <피아노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이며 연주가인 그를 모르겠나요.》

부향녀는 자신심에 넘쳐있는 손녀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있지. 하지만 중요한것은 8살에 공개연주회에서 피아노를 타서 큰 파문을 일으킨 그가 자기의 생을 어떻게 살았고 마무리했는가를 아는것이다.》

고성옥은 그제서야 어째서 할머니가 이 말을 꺼냈는가 하는 의미를 깨닫게 되였다. 그는 쇼뺑의 음악활동과 인생행로에 대해서 뜬금으로 외울수 있으리만큼 잘 알고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윈에서 살면서도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자기 조국인 뽈스까를 그리며 살아온 그의 인생이 안겨주는 의미를 오늘에야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는 그였다.

《할머니, 나도 언제나 조국을 가슴에 안고 살기 위해 노력하겠어요.》

《그래라. 꼭 그렇게 살아야 한다.》

부향녀는 대학생들속에 끼워 회관정문으로 들어가는 손녀를 믿음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이, 선생님. 뭘 그렇게 보십니까?》

지향숙이 다가오며 묻는 말이였다.

부향녀는 대학생들을 가리켰다.

《저애들을 보느라고 그런다. 즙이 없는 이 땅에 억척같은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우리 자식들을 말이다.》

《참, 선생님. 성옥이도 오늘 독창을 한다지요?》

부향녀는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담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조선회관은 도꾜의 한복판인 지요다구 후지미쪼에 세워졌다. 지하 2층과 지상 10층으로 된 건물이였다.

회관으로 들어서던 부향녀는 창공에 펄럭이는 공화국기를 감회깊게 바라보았다.

정원은 그야말로 고향집에 온듯 한 기분을 자아냈다. 조선잔디가 한벌 깔리고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치를 나타내는 배경과 조국의 향기를 풍기는 홍송, 진달래를 비롯한 수십여종의 나무들이 심어져있었다.

《선생님, 공연시간이 되였습니다.》

함께 온 조성호가 재촉했다.

그들은 2층에 있는 강당으로 올라갔다. 객석에는 벌써 수많은 조선대학교의 교직원, 학생들과 동포들이 자리를 잡고있었다.

《허, 우리가 늦었는데…》

조성호는 오리목이 되여 앞쪽을 주시했다. 혹시 남은 자리가 없는가 해서였다.

지향숙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 길지 않은 목은 그만 빼드세요. 저기 자리가 있지 않나요.》

조성호는 흠칠 목을 움츠리며 그가 가리키는쪽을 바라보았다. 맨 뒤켠에 자리가 남아있었다.

부향녀는 벌써 그쪽으로 가고있었다. 아쉬운 표정을 금치 못하며 다시금 무대쪽을 내다보던 성호는 입을 다시며 지향숙의 뒤를 따라가 자리를 잡았다.

이어 소개자가 나오고 공연이 시작되였다. 드디여 고성옥의 독창이 시작되였다.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손에 마이크를 든 그의 모습은 황홀하기가 그지없었다.

《야, 우리 성옥이가 정말 고운데…》

조성호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정숙된 분위기에 어색한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드디여 노래소리가 강당에 울리기 시작했다.

 

    나라에서 나라에서 돈을 보낼줄은

    꿈결에도 꿈결에도 생각을 못했지요

    교육원조비 장학금의 많고많은 귀한 돈을

    바다너머 저 멀리 조국에서 보내왔어요

    아 수령님의 높고 큰 이 사랑을

    산이나 바다에 그 어이 비기랴

    …

 

뜨거움에 젖어 울리는 노래소리는 관중들의 심금을 울려주고있었다. 여기저기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조국에 대한 고마움이 그대로 뜨거운 눈물로 화했던것이다.

누구의 선창이라 없이 온 강당에는 노래소리가 합창되여 울렸다.

 

    이역에서 이역에서 나서자라는

    아들딸도 아들딸도 지덕체 갖추어서

    사회주의조국의 역군이 되여라

    어버이심정으로 수령님이 보내셨어요

    아 수령님의 높고 큰 이 사랑을

    산이나 바다에 그 어이 비기랴

    아 그 어이 비기랴

 

조성호도 눈을 슴벅이고 지향숙은 그대로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으며 노래를 불렀다.

손녀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는 부향녀의 생각은 깊었다.

얼마나 행복한 세대인가. 바로 저 나이에 나는 너무도 풍파사나운 인생길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불현듯 흘러간 날들이 어려왔다. 의학의 꿈을 품고 짓밟힌 조국땅을 떠나 이 일본땅에 발을 들여놓던 일… 식민지민족이라는 수모를 참아가며 배워야 했던 날들이 어려왔다. 손에 수술칼을 들고 원쑤들의 상처를 치료해야 했고 그 수치와 모욕, 부모들과 고향땅앞에 죄를 짓는 자기의 행위를 피할수 없어 스스로 자살의 길을 택하려 했던 그밤, 한생을 바쳐서라도 기다리자고 굳은 마음속에 그려보던 사랑하는 사람의 다리를 제손으로 잘라야만 했던 날들이 가슴을 저미며 떠올랐다. 그러나 성옥이는 지금 조국이라는 그 뜨거운 손길이 있어 근심과 걱정을 모르고 저렇듯 아름답게 피여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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