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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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바이한테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직방 들이대야겠어, 자꾸 에돌지 말고…)

삶은 감자 몇알로 대충 요기하고 어뜩새벽에 집을 떠난 동길은 줄곧 그 생각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하여 삼지연방향으로 가는 렬차를 얻어타고 한시간가량 달렸을 때에야 끝없이 마주쳐오던 천리수해너머 먼 하늘가녁이 희끗희끗해지면서 바야흐로 해돋이가 시작되였다. 아니, 아직은 해돋이가 아니였다.

해돋이이전의 싱싱하면서도 숭엄한, 딱히 이름할수 없는 어둠과 빛의 신비스러운 그 무엇이였다.

지금 동길이가 찾아가는 최풍수로 말하면 4년전 김정일동지께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를 이끄시고 여기 삼지연지구에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의 첫 자욱을 찍으실 때 하루밤 류숙하신 집 로인이였다.

그때 콜롬부스의 아메리카대륙발견이상의 자랑과 희열에 넘쳐 돌아온 리영림, 김전희네들의 이야기속에 이름을 익힌 사람이였다. 무슨 이야기이든 문학적으로 다듬고 나름의 뜻을 부여하기 좋아하는 채순경은 말했다.

《1939년 봄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신 김일성원수님을 자기 마을에 하루밤 모신것을 자랑과 긍지와 함께 그처럼 초라하기 짝없는 집에 모셨다는 죄스러움을 안고사는 로인이예요. 한데 그 로인이 그때로부터 17년후에는 자기 집에 오신 빨찌산 김대장의 자제분을 평양에서 온 학생답사단의 평범한 성원으로 생각하고 모신걸 알게 되면 아마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거야요.》

《재미있는 로인이였소. 별명은 얼마나 많이 지고다니는지. <최독립군아바이>, <제3자아바이>, <장수아재비>, <뻐꾸기눈아바이>…》

많기도 한 로인의 별호를 쭉 내리엮어대며 리영림이 저 혼자 시물시물 웃어댔다. 동길이로 하여금 함께 가보지 못한 아쉬운 감정을 더욱 자극하려는 심보같았다.

《재미도 있지만 뜻이 높은 아바이였어요.》

무슨 말이나 우스개소리로 희화해버리기 좋아하는 그를 흘기며 김전희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누가 시킨 사람도 없는데 39년봄부터 지금까지 항일유격대원들의 자취어린 그 땅의 귀중한 사적물들을 남모르게 지켜온 아바이예요. 이제 두번째로 자기 집에 와닿은 그 영광에 대해서 알게 되면 자기 집을 아예 사적관으로 만들자고 접어들거예요.》

이 일대의 지리와 력사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하여 찾아온 사람으로 거짓소개를 하고 지금까지 수차에 걸쳐 만난 동길의 견해에 의하면 로인에 대한 둘의 평가가 기본적으로 그럴듯했다.

정확하기는 재미있는 로인이라고 본 영림이쪽보다 뜻이 높다는 김전희쪽이 더 정확한것 같았다. 그에 동길의 눈으로 본 새로운 평가를 더한다면 무엇보다 대바르고 성격이 뚜렷한 로인이였다.

《뭣하러 왔다구?! 지리나 력사책 같은걸 만들어볼가 해서 왔다구?》

처음으로 집에 찾아갔을 때 찾아온 용건을 여쭙는 그를 미덥지 않아하는 눈으로 건너다보며 로인이 되물었었다.

신령앞에 마주서지 않았을가싶을 정도로 검은머리 한오리 섞이지 않은 백발을 떠인데다 눈섭마저 하얗게 세여버린 로인을 숭엄하게 쳐다보며 동길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임자가 <삼국사기>나 <리순신전>같은 책을 쓰는 학자선생이란 말이겠소?》

새파랗게 젊어가지고 학자연한 티를 내는 동길을 찬찬히 훑어보던 로인이 흰 장미를 쭝긋하며 다시금 따져물었다. 동길은 붉어지는 얼굴을 돌리며 그렇다고 입속말로 외마디대답을 했다.

《음- 세월이 이렇게까지 젊어졌는가! 하긴 자고로 흰머리로 생각하는건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래 임자 나한테서 듣자고 하는건 뭔가?》

《벌써 시작하십니까?》

《응?!》

《전 몇해 바치자고 여기 백두산기슭에 아주 옮겨왔는데요.》

《그래?! 뜻이 높은 젊은이군. 그럼 들어오게나.》

이렇게 시작된 둘의 교제였는데 같이 여러 전적지들을 편답하면서 친해지기 시작하자 곧 허물이 없어져버렸다.

《그런데 아바이한테 웬 별호가 그렇게 많습니까?》

어느날 로인이 직접 발굴해냈다는 숙영지부근의 샘물터와 그 주변정리를 같이하면서 동길은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물어보았다. 샘물바닥에 동길이가 멀리 강가에서 골라온 하얀 조약들을 깔아주던 로인이 《별호라니? 오, 별명 말인가? 나한테 몇개나 붙어있다고들 하던가?》하고 눈을 슴벅거리며 모르쇠를 했다.

《네댓개 잘되는것 같습니다.》

동길은 넘죽한 바위돌로 샘터길을 만들면서 속는체 했다.

《그-래?! 그럼 임자 한번 꼽아보게나, 내가 고민할것 없이 아는껏 설명해줄테니까.》

《우선 <최독립군아바이>라고 하더군요.》

《오, 그건 내가 한때 화승총을 둘러멘 독립군들을 좇아다니다가 온것때문에 붙은 별명이네. 하지만 나같은게 무슨 독립군이겠나. 요만했을 때니까. (로인은 피줄이 툭툭 불거진 손으로 그때의 자기 키를 가리켜보였다.) 심부름이나 좀 하다가 쫓겨왔는걸. 그다음 또 뭐라던가?》

《무슨 <장수아재비>라던지…》

《내가 한때는 맨손으로 메돼지는 물론 늑대 같은 맹수도 후려잡군해서 붙은 별명인데 <장수아재비>가 아니라 <장수찌꺼기>라고들 하지. 림꺽정의 4촌쯤 된다는 소리지. 뭐 그렇다구 고민할건 없어.》

《하하하… 다음 그건요?》

《그거라니?! 또 있나?》 로인이 재미있는듯 조약들을 손에 쥔채 동길을 돌아보며 제편에서 은근히 말끝을 재촉했다.

《예, <제3자아바이>.》

《그건 말이지, 사람들이 사느라면 가끔 언쟁이 일어날 때도 있질 않나. 헌데 듣고보면 누구나 제 말만 옳다고 하기때문에 끝이 나지 않구 더 격렬해지군 하거던. 그래 보다못해 나서서 갈라주군 했는데 아마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을 자꾸 입에 올린 모양이야. <임자, (로인은 제 말을 흉내내여 곱씹었다.) 임자가 아무리 옳다고 우겨서 쓸데 있나? 그걸 제3자가 인정해야 진짜로 옳은거지. 그러니 곰곰히 생각해보라구, 제3자의 립장에서 말이야.>하는 식으로 말일세. 했더니 남의 뒤소리 잘하는 녀석들이 그런 별명을 붙여놓고는 히히닥거리는것데 그렇다고 고민할건 없어.》

《하하하… 그랬군요. 그다음?》

《아니, 아직두 더 있나?》

이번에는 진짜로 더 있을수 없다는듯 로인의 눈이 커졌다.

《마지막인것 같은데.》하고 동길은 조금 머뭇머뭇하다가 계속했다. 《아바이보고 <뻐꾸기눈아바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대요.》

《오, 그거?! 있지. 한데 임자가 잘못 들었군.》 로인이 그 이야기 역시 새로운건 아니라는듯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건 <뻐꾸기눈>이 아니라 뻐꾸기거… 있잖나? 암놈, 수놈이 재미보느라고 붙어돌아가는걸 두고 하는 상소리 말일세.》

《오- 그러니까 뻐꾸기… 그-거요?!》

말을 떼면서 동길이가 머뭇머뭇한것은 입에 올리기 거북한 그 상소리와 련결된 별명인 까닭이였다. 지금도 절로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느끼며 동길은 눈길을 떨구었다.

《임자, 눈둘바를 모르는걸 보니 틀림없는 숫총각일세.》

웃음어린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던 로인이 샘물터에서 물러나 동길이한테로 오더니 길바닥에 돌을 까는 일을 도와주면서 시작했다.

《우리 마을로 군에서랑 도에서랑 큰 어른들이 무슨 해설담화 같은걸 하러 내려올것 같으면 날 꼭 뒤에 달고다닌단 말일세. 내가 김일성장군님을 집에 모셨던 사적인물인 까닭이겠지. 그래서 어느날 군당위원장어른뒤를 따라갔더니 빙 둘러앉아 하는 모임 주석단에 나도 같이 앉자고 하질 않겠나.

별수 있나, 나가앉았지. 그날 사람들앞에서 군당위원장어른이 목이 쉬도록 하는 호소인즉 나무를 찍기만 할것이 아니라 심어야 한다는것이였네. 수령님교시가 계시잖았나. 나무 한대를 베고는 열그루를 심자고 하신 교시 말일세. 위원장은 호소하더군.

나무는 후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재부다, 찍기 전에 열그루를 심고 찍은 후에 또 그만큼 심자고 말이야. 헌데 내 보기엔 사람들이 별로 깊은 감동을 받지 못하는 눈치야. 덤덤하거던.

한즉 나도 주석단에 앉은 집행부성원중의 한사람인데 위원장어른이 날 거기에 앉혀준 값을 해야겠더란 말일세. 그래 위원장어른의 연설이 끝나자 웅성웅성 일어서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했지.》

《어떻게요?》 낑- 하고 돌을 들어다앉히며 동길은 재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큰 실수였네.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임자들 군당위원장어른의 말씀을 흘려듣지들 말라구.

일구삼구년 봄에 일본놈들을 쳐부시려고 저 두만강을 건너오신 우리 수령님께서 왜놈들이 벌거벗겨놓은 산을 보시고 너무도 가슴아파 나무씨를 뿌리고가신 얘길 임자들도 다 알질 않나.>

내 말이 그네들의 마음을 면바로 때린것 같았네. 모두들 눈시울을 슴벅슴벅한단 말일세. 이때다 하구 난 한마디 덧붙였네.

<아, 오죽 나무심는 문제가 중하면 할일이 산같은 군당위원장어른이 이른아침부터 눈이 뻐꾸기 거…> 있잖나? 상소리부분이야. 듣기 좋게 <뻐꾸기아래샘>이라고 해둡세. <군당위원장어른이 할일이 없어 이른아침부터 눈이 뻐꾸기아래샘이 돼가지고 식수, 식수… 하며 돌아치겠나.> 했더니 와… 하고 웃더군.

난 내 말이 우스워 웃는가부다 하구 같이 웃어넘겼는데 위원장어른이 돌아간 다음 동리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내가 크게 잘못했어. 아, 위원장어른을 돕는다는 노릇이 그의 눈뒤에다 그런 험한 상소리를 마구 붙여놓아 웃음판을 만들어놓았더라니까.

그때부터 사람들이 내 이름앞에다 더러 그 상소리를 붙여놓고 뒤소리를 하질 않나. 하지만 고민할거 없어, 그렇다고 내가 뻐꾸기 거 상소리가 되는건 아니니까.》

《하하하… 하하하…》

《이 사람 웃긴 왜 자꾸 웃나? 못써, 늙은 사람 세워놓고 그렇게 웃으면.》

《말끝마다 <고민할것 없다>, <고민할것 없다>하니까 웃는겁니다. 그러다 별명이 또 하나 생기겠습니다.》

《생기라지, 고민할거 뭐 있어? 나라없던 그 세월에두 백두산에서 싸우시는 장군님을 믿구 고민 안했는데 지금같은 세월에… 땅이 없나? 나라가 없나? 지켜줄 제 나라 군대가 없나? 글쎄 뭘 고민해? 고민하긴!》

《뭘 고민해?!》하고 동길은 로인의 마지막 그 말을 그 억양까지 그대로 곱씹어 외워보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고민할게 뭐 있어?》하고 말이 끝날 때마다 노래의 후렴구처럼 반복하여 덧붙이는 그 말이 우스개소리같이 들리면서 그 어떤 깊은 뜻이 메아리처럼 점점 더 크게 증폭되여 따라서는것이였다. 로인이 경구처럼 써먹는 그 짤막한 말속에 백발을 이도록 살아온 한생을 통하여 체득한 인생총화가 담겨져있는것 같았다.

적어도 그러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말이였다.

《임자 이제 보니 내 진짜 별명은 모르는것 같군.》 로인이 생각에 잠겨 동공이 흐려진 동길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진짜 별명이요?》 동길은 금시 빠져든 생각에서 미처 깨여나지 못한채 로인의 말을 기계적으로 받아외웠다.

《뭡니까?》

《최풍수.》

《최풍수요?! 아니, 그거야 아바이의 성함이 아닙니까?》

《성함이란건? 이름 말인가? 내 이름은 최억준이야.》

《그럼 최풍수는요?!》

동길은 바싹 동하는 호기심으로 또다시 그의 말에 끌려들었다. 그러기를 기다린듯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로인은 계속했다.

《내가 풍수를 잘 본다고 해서 붙여진 딴이름이지.

나같은게 풍수를 보면 얼마나 잘 보겠나. 허나 독립군을 따라다니다 물에 뜬 얼음덩이처럼 점점 형체없이 녹아드는 모양을 보고 돌아온 뒤로 이 나라는 다됐구나 하고 속으로 통탄하던 나머지 우리의 운이 과연 5천년을 못 넘기고 끝나고마는 운이였는가싶어 내 짐을 꿍져메고 조상대대로 물려오는 삼천리금수강산을 밟아보기로 했네. 내나름으로는 민족의 운을 건 뜻있는 걸음이라 어덴들 안 가봤겠나. 내 나라에 인물이 나오는것을 막아보려고 악독한 왜놈들이 정기를 품어보일만한 산꼭대기에다 박아놓은 쇠말뚝을 볼 때면 그게 내 가슴에 박힌듯 숨이 꺽 막혔네.

그러던 어느날 백두산에 올랐는데… 임자 백두산에 가봤나? 》

《아직 못 가봤습니다.》

동길은 무엇인가 심각한 의미가 앞질러오는 로인의 이야기가 또다시 헛가지를 칠가봐 짧게 대답하며 촘촘한 주름살이 부채살같이 모여든 그의 입만 쳐다보았다.

《한번 가보라구.》하고 로인은 계속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이 수령님같은 대영걸을 모시게 된 행운이 어디서 온것인가를 알수 있을거네.

하긴 그런 무게있는 풍수를 볼려면 임잔 너무 젊었지만 또 알겠나? 임자 젊은 나이에 이 나라 지리와 력사를 전공하겠다고 나섰으니까. 지리나 력사쟁이라는게 사실은 풍수쟁이와 비슷한데가 많거던. 욕하지 말라구. 이를테면 당당한 학자님들을 쟁이라고 마구 불러댄다구 말일세.

이거 얘기가 자꾸 헛가지를 치는군. 이젠 늙어서 그래. 내 얘기를 어디까지 했더라?》

《어느날 백두산에 오르셨던 이야기를 막 시작하더랬습니다.》

《응, 그랬지. 올라보니 성산이였네.

높아서 하는 소리가 아닐세. 높기루야 세상에 우리 백두산보다 더 높은 산이 얼마나 많을텐가? 그러나 그 높이가 우주 한끝에 닿았다 한들 그 신령스러움에 있어선 그 산들을 백두산에 갖다대지 못해. 사시장철 흰눈을 떠이고 서있는 산, 눈에 묻힌 높다란 산정에 푸르디푸른 호수가 있고 순간에도 구름에 덮였다가 해빛에 쌔우고 우뢰 울고 번개불을 내뿜다가 칠색령롱한 무지개가 드리우며 천지조화를 일으키는 산…

멋있다고 할가, 한데 멋있기루야 세계 명산중의 명산인 금강산이 있지. 하지만 멋있기로 그처럼 소문난 금강산도 조선을 대표할수는 없거던! 웅장하다고 할가, 웅장하기야 묘향산도 손꼽히는 산이지. 그러나 그 산들이 우리 민족을 대표하지는 못하지! 암, 못하고말고…

그런데 백두산에 오르는 순간, 이게 조선이구나! 우리 조선이 여기서 시작되였구나!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수 없는 신비를 지닌 산, 그래서 성산이라고밖에 달리는 부를수 없는 조종의 이 백두산이 있어 우리 조선민족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구 5천년세월 찬란한 문화를 이룩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심장을 치더란 말일세.

환희였네, 기쁨이였네. 그리고 무엇보다는 희망이였네.

이처럼 신령스러운 산이 자기가 낳은 민족을 구원해주고 세계의 앞장에로 이끌어줄 위인을 아니 내고 운이 다할수는 없지. 기다리자, 희망을 안고 기다리자!

그래서 백두산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여기 천고의 밀림속에다 보짐을 풀고 화전농사로 근근히 목숨을 이어가며 백두산이 뿌리는 눈부신 광채가 비껴오는 광명의 그 시각을 학수고대하던 어느날 드디여 기다리고기다리던 행운의 그 순간을 맞이했네. 왜놈의 백만 관동군을 삼대베듯 하시는 김대장께서 백두산 깊은 밀림에서 몸소 키워내신 신식군대를 거느리고 나오시여 초라하기 짝없는 우리 마을에 들리셨단 말일세.

그분을 뵈옵는 첫 순간 나는 놀랐네.

그분의 존안에서 풍기는 기상은 더 이를데 없는 백두산기상이였구 그분의 안광은 우주를 비껴담고 출렁이는 천지의 그 정기요, 그분의 호방함은 어깨우에 만년장설을 떠이고 대공을 향해 활짝 날아오른듯 한 백두산천만산악의 줄기참이요, 그분의 인자함은 만고의 장설도 순간에 녹여주는 백두산정의 태양빛이였네.

한마디로 그이는 곧 백두산이시였네.

그래서 난 무엄하게도 그분께 한마디 여쭈었네.

<장군님, 고향이 혹시 백두산이 아니시옵니까?>하고 말일세.

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며 대답하셨네.

<아닙니다. 저 평양 만경대라는 곳입니다.>

그때 난 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속으로는 무릎을 쳤네.

평양이라면 대동강기슭에 자리잡은 우리 민족의 발상지이고 고조선의 옛 도읍지요, 대동강으로 말하면 랑림, 맹산에서 시원이 열린 조선의 이름난 강이요, 랑림, 맹산 할것 같으면 그 지맥이 백두대산줄기에서 뻗었은즉 대동강도 실은 백두산천지에 그 시원을 두고있으니… 그분은 바로 백두산이 반만년 유구한 세월의 정기를 다 합쳐 낳은 우리 민족의 절세의 영웅이란 말일세.

백두산은 그분을 모시자고 수억년세월 높이 솟아있었고 반만년세월 꾸준히 우리 민족을 길러왔더란 말일세.

그리고 이날을 보자고 실날같은 목숨을 버리지 못하며 내 또한 살아왔은즉 소원을 이뤘으니 당장 죽어도 원이 없다 하겠네만 나로서 해야 할 일감이 생겼네. 그분의 거룩한 자취가 새겨진 이 땅의 흙 한줌, 나무 한그루, 풀포기 하나도 민족의 재보로 고이고이 보존하면서 대대손손 전하는데 일생을 바쳐야 되겠다는 생각이였네.

그래 이 땅을 뜨지 않고 지금 사람들이 혁명전적지라고 부르는 이 성지에 적으나마 땀을 바치며 살아가던중 꿈이 아닌지 모르겠네. 4년전 6월 열흘께쯤 해서 평양에서 온 혁명전적지 첫 답사대생 몇이 우리집에 다녀갔는데 그중 한 학생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열일곱해전 5월, 김일성장군님을 뵈옵던 그때와 꼭같은 환각이 일어나데. 꼭 백두산을 보는것 같더라니까.

이른아침 해돋이순간을 방불케 하는 그 환한 모습이며 평범한 속에 특이하고 비범한 그 무엇인가를 품은듯 한 그 언행이며가 범상치 않은 젊은이였네. 그래 같이 온 다른 학생에게 물어봤더니 그저 웃기만 할뿐 대답을 피하더군. 그들이 돌아간 다음에도 신이 들린것 같은 그 생각을 놓을수가 없어 집에 찾아온 간부어른들한테(리진수라고 도안전국장하고 또 누구였네.) 물어봤더니 그 사람들도 시물시물 웃기만 하더라니까.

그 학생 역시 하늘이 낸 위인임에 틀림없을듯 한데 조선의 하늘이 5천년만에 처음으로 낸 행운을 입어 왜놈세월에 백두산대성인을 몸가까이 뵈옵는 영광을 지닌 나한테 그런 행운이 두번다시 찾아올리가 있나 해서 꿈인게다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꿈은 아니였단 말일세. 그렇다 하세, 그래 꿈이 아니라면 나같은 사람은 살아 생전에 그런 꿈같은 행운을 거듭거듭 받아안을만큼 비범한 인물이란 말인가? 응, 대답해보게, 학자선생.》

동길은 더이상 듣고만 있을수가 없었다.

꿈이 아님을 로인에게 알려주어야 했다. 하여 꽛꽛하게 떡살이 앉은 로인의 손을 잡고 열띤 어조로 말했다.

《아바이, 그건 꿈이 아닙니다. 아바이뿐아니라 우리 민족이 그와 같은 행운을 또다시 받아안았음을 알게 될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응?!》

동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로인이 그에게 거듭하여 물었다.

《임자, 분명 뜻을 두고 하는 말같은데… 그건 무슨 소린가? 무슨 뜻을 가지고 하는 얘긴가 말일세.》

《아바이가 몇해전에 만나뵈온 그 학생은 백두산이 낳은 또 한분의 빨찌산아들로서 위대한 수령님의 자제분이십니다.》

《뭐, 뭐라구?! 앗따따, 내 글쎄 그렇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 눈이 멀었기로 분수가 있지 백두산이 내려준 성인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이젠 늙었군! 과시 늙었어!… 허허, 하하하…》

지탄끝에 장쾌하게 줄웃음을 웃고 그 웃음끝에 곧 정색해진 로인이 불꽃이 반짝반짝 튕기는 눈길로 동길을 면바로 쳐다보며 그루박듯 따져물었다.

《헌데… 임잔 대체 어디서 온 누군가?》

동길은 더이상 자기를 숨기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 전적지에 찾아오게 된 사연을 자초지종 다 이야기했다. (물론 자기와 누나가 그들의 친자식들이 아니라는 말만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며 흰눈섭이 수북한 량미간을 모았다벌렸다 하던 로인의 눈에 점점 놀라운 표정이 어리더니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러니 자네 아버지가 왜정때 이 고장에 와 얼마간 살다가 어디론가 떠나간 그 북청집의 <남북머리>란 말인가?》하며 동길의 두손을 덥석 잡는것이였다.

《<남북머리>라니요?》

《나도 방학때 놀러온 임자 아버질 한두번 봤네만 그 사람 머리생김이 앞뒤로 쑥 삐여나오질 않았나?》

《예, 그…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이때부터 <남북골>이라고들 불렀대. 임자 아버지 골이 좋았다고 소문이 났댔어. 그 사람 부친의 말이, 저 후치령너머 북청에 살 때 왜놈집애들과 조선부자집자식들만 공부시키던 왜놈학교 교장도 혀를 내둘렀다니까. 오죽했으면 서울에 올라가 중학공부를 마친 임자 아버질 왜놈 대자본가가 눈독을 들였다가 제놈의 양자로 삼겠다고 데려갔겠나.》

《그럼 우리 아버지가 왜놈 양아들이 됐단 말씀입니까?》

《듣자니 그 자본가놈이 제 병신딸한테 장갈 들이자고 그런 흉계를 꾸렸다더군. 어떤 얼빠진것들은 머리좋은 아들을 둔덕에 팔자를 고치게 됐다고 부러워했지만 정신이 똑바로 배긴 사람들은 나라를 빼앗긴 덕에 아까운 인재가 그런 불행을 겪는다고 얼마나 동정했는지 모른다네.》

그때의 일을 돌이켜보는듯 량미간을 쪼프리고 앉아 먼산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로인이 이야기가 깊어짐에 따라 질린듯 새파래지는 동길의 얼굴을 지켜보다가 눈길이 굳어졌다.

《그럼 임자가?!》로인의 입에서 튀여나온 말이였다.

(그럼 우리 어머니가?!) 그 순간 동길의 머리속을 무섭게 스쳐간 생각이였다. 쾅! 하고 흉곽을 때리는 마음속의 목소리-

《우리 어머닌… 그럴수 없다! 절대로!》

동길은 로인의 손을 잡고 흔들며 급히 물었다.

《그후 <남북골>의 소식은 모릅니까?》

《모르네. 그의 아버지도 인차 이 고장을 떴으니까.》

그다음 둘사이엔 더이상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 두세번 더 만나 빨찌산들이 껍질을 벗기고 전체 조선인민에게 알리는 구호들을 써놓고 간 나무들도 돌보며 전적지 꾸리는 일을 같이하면서도 그 말만은 다시금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 옛적의 고향지기가 자기 자식들앞에 여직 숨기고있는 부끄러운 과거를 서뿔리 이야기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감으로 해서 로인이 그 이야기를 피한다고 동길은 추측하였다.

한편 동길이로서는 이제 다시 그 말을 꺼냈다가 로인이 얼결에 던진 청천벽력같은 그 말이 사실이라는것이 재삼 확인되는것을 겁내여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아니, 자기 집에 대한 애착이라고 할가 그것이 아주 식어져버릴가봐 무서웠던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겁날수록 진실을 알고싶어지는 마음은 나날이 더해졌다. 그 어떤 단순한 호기심때문만이 아니였다. 일단 그들의 친아들로 생각하고 효도를 다하기로 결심한 이상 반드시 알아야 할 심각한 사회계급적문제라고 생각된때문이였다.

(그렇다. 나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괴롭더라도 꼭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나의 태도와 립장을 명백히 해야 한다.)

어제밤 잠자리에 누워 이 하루동안 해야 할 일을 곰곰히 따져보다가 다시한번 더 선명하게 가다듬은 결심이였다. 하지만 동길은 오늘도 종시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무슨 일로 잔뜩 흥분해있던 로인이 그를 만나자 왕청같은 이야기를 꺼낸때문이였다.

《임자, 앞으로 일을 더 잘해야겠네.》

《예?! 갑자기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어제 군당위원장어른이 날 찾더군. 이러저러한 사람과 이러저러한 일을 한다는데 사실인가? 하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임잘 특별히 잘 도와주라고 하더란 말일세.》

《날 잘 도와주라는건 어떻게 하라는 소립니까?》

깨도가 되지 않아 되묻는 동길에게 로인은 벌컥 화를 냈다.

《아따, 젊은 사람이 공부깨나 했다는게 말귀가 어두워두 분수가 있지. 나더러 임자 머리속에다 백두산물을 단단히 먹여주라는 소리란 말일세.》

그리고는 군당위원장이 부탁한 《백두산물》을 단꺼번에 다 먹여줄 셈인지 꽤 넓은 옛 숙영지터를 거두면서 하루종일 빨찌산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이였다. 그때 유격대원들이 어떤 군복을 입었으며 어떤 노래를 불렀고 어떤 총을 멨으며 저 대홍단에서 따라오는 적들을 보기좋게 답새겨놓고 유유히 두만강을 건너간 뒤 놈들이 어떻게 혼비백산하여 지랄을 부렸는가 등등.

로인의 이야기도 처음 듣는 이야기로 재미있고 뜻이 깊은데다 정열적인 그의 직통배기성격미에 끌려 아침부터 입에 담고온 그 말을 종내 꺼내지 못한채 헤여지게 되였는데 귀익은 목소리가 로인네 집앞에서 금시 헤여지려는 동길을 불러세웠다.

《동길동무!》

온 육신에 익은 그 부름소리에 반사적으로 홱 돌아서던 동길은 입이 헝- 벌어졌다. 목소리가 울려오는 마을입구쪽으로 고개를 들고 눈을 쪼프리던 로인도 흰장미가 쭝긋하면서 얼굴에 가득 덮인 주름살이 활짝 펴졌다.

《저게 누군가?!》

저녁해빛이 길게 드리운 마을길로 풀색단체복을 떨쳐입은 한무리의 학생들이 달려오고있었는데 그 뒤켠에 조금 처져오는 아래반이였던 김전희를 알아본것이였다.

그들과 퍽 떨어져 오는 누나를 알아본것은 다음순간이였다.

그날 밤 최풍수로인네 집마당엔 모닥불이 타올랐다.

4년만에 전적지를 다시 찾아온 전희와 그 아래반 답사대원들을 위하여 최로인이 삼태기에 담아내온 묵은 감자가 그 불밑에서 구수한 고산향기를 풍기며 구워지고있었다.

솟구치며 퍼덕이며 화악- 화악- 타오르는 우등불이 어둠을 몰아내고 그려준 불그레한 빛의 넓고 둥그런 원속에 빙 둘러앉은 답사대원들이 경임의 바이올린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있다.

어머니와 토론하고 전희와 함께 온 경임이였다.

바이올린은 답사생들앞에서 한번 타줬으면 하는 전희의 요구를 받아들여 예까지 들고온것이였다. 곡목은 이제 최종경연에 내놓게 될 《내고향의 정든 집》이였다. 바이올린을 위한 전형적인 합주곡으로서 관현악반주에 따르는 바이올린독주로 되여있는데 처음에는 경임의 날렵하면서도 박력있고 우아한 기교에 반하여 쳐다보기만 하던 답사대원들이 서정적인 선률대목으로 넘어가자 약속이나 한듯 목소리를 합치는통에 바이올린반주에 맞춘 합창이 된것이였다.

 

    …

    기다리라 나의 고향 나서자란 산천이여

    …

 

목청을 모아 읊조리는 가사도, 바이올린이 그어주는 선률도 뜨겁게 가슴을 적시는 열렬한 고향찬가, 불같은 애국송가였다.

노래는 끝없이 너울거리며 허공으로 피끗피끗 사라지는 모닥불자락을 타고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는듯싶었다. 아니, 모닥불이 노래의 가락에 실려 끝없이 퍼덕이며 먼먼 우주공간, 찬란한 별들의 세계로 솟구쳐오르는것 같았다.

동길은 저고리 안섶주머니에 손을 들이밀어 아까 거듭거듭 읽고 넣어둔 편지를 다시 꺼내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전희를 통하여 친히 보내주신 편지였다.

보고 다시 보고 두었다 또 보려고 주머니에 넣은지 불과 몇분 안되였는데 또다시 보고싶어 꺼내든것이였다.

황홀하달만큼 우아한 자세로 열심히 활을 긋는 누나를 물기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던 김전희가 금시 편지를 꺼내드는 동길을 돌아보더니 방긋이 웃으며 눈굽을 훔친다.

(고마운 동무!) 동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목소리였다. 무슨 말인가 심장속에서 뜨겁게 맴도는데 꺼낼 길이 없다.

동길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편지를 펴들었다.

《동길동무.

동무가 최억준로인과 함께 전적지를 돌보는 사업을 맡아하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린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전적지에로의 길은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영광스러운 혁명의 길을 끝까지 이어걸어야 할 중대한 사명을 맡아안은 우리들이 한생토록 걷고 또 걸어야 할 위대한 전통의 길, 계승의 길인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전통속에 총대로 개척해온 우리 조선혁명의 근본이 있고 앞으로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푸는 모든 해답의 열쇠가 있기때문입니다.

단지 섭섭한것은 동길동무 혼자 그 걸음을 하는것입니다.

내 생각엔 동길동무가 우선 그 길에 아버지를 이끌어드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아버지도 수령님께서 어찌하여 국방중시, 총대중시정책을 펴고계시는지 그 뜻을 알게 될것입니다.

수령님으로부터 동길동무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민족이 약세해지면 매개 인간들의 운명이 얼마나 비참해지는가를 통절하게 느꼈습니다. 그것은 힘이 약하고 총대를 틀어쥐지 못한 민족이 당해야하는 수난의 축도, 치욕의 락인이였습니다.

동무의 아버지는 참으로 비참했던 자기의 과거사에 대하여 수치스럽다고 망각해버릴것이 아니라 가슴에 새겼어야 했습니다.

아버지한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수령님의 로작들과 참고서적들을 보내니 전달해주시오.

부디 앓지 말고 건강하여 아버지의 사업도 더잘 도와드리고 자신의 앞날도 있는 힘껏 훌륭하게 개척하길 바랍니다.

1960년 3월 ×김정일.》

동길은 앞이 콱 흐려오는 바람에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자 우등불도 흐린빛으로 너흘너흘 춤추며 하늘로 치솟아오르는것이였다. 마주앉은 김전희도 흐린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누나도 흐린 모습으로 바이올린을 타고있었다. 우등불빛에 훤하게 드러난 숲도, 그 숲우로 아득히 펼쳐진 하늘 한가운데 휘영청 떠오른 달도 흐린빛으로 대지를 굽어보고있었다.

하지만 아직 겨울의 흔적을 말끔히 털어버리지 못한 고산지대 4월 초순의 밤은 창창하게 맑았다

다음날, 경임은 최종경연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으로 떠났고 동길은 아버지와 함께 무거운 쌀배낭을 메고 새 채벌장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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