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서  장

 칸쿤마을

 

2001년 10월 8일 새벽이 가까와오는 깊은 밤.

타이 북방의 관광도시 치엥마이에서도 140㎞ 떨어진 먄마국경과 린접한 깊은 원시림을 꿰지른 삥강우로 네사람을 태운 커누 하나가 물살을 헤가르고있었다.

구름속을 헤염치는 초생달빛이 조심히 젓는 노질에 술렁술렁 번져지는 강물우를 어슴푸레하게 비칠뿐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했다.

멀리 지나간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간단없는 불빛에 꿈틀거리는 시커먼 자루들곁에서 노를 젓는 두사람과 배머리에 앉아 묵묵히 앞을 주시하는 다른 또 두사람의 얼굴이 드러나군 한다.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들이였지만 그 얼굴들에선 누구라 없이 섬뜩한 살기가 내풍기고있었다.

커누가 강기슭에 닿자 그들은 서두름없이 두개의 자루를 들어안고 기슭에 내려섰다.

이름모를 관목이 꽉 들어찬 강기슭을 헤치느라 살이 베지며 피가 흘렀으나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강기슭을 벗어나자 열매가 익어가는 팜오일을 비롯한 야생야자나무숲이 꽉 우거진 넓은 둔덕이 나졌다.

푹 썩은 락엽냄새가 축축한 밤공기속에 시큼하게 풍겨왔다.

앞장에 선 나이먹은 사나이가 이끄는대로 숲가운데로 난 작은 오솔길을 벗어나자 크지 않은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가 나졌다.

자루를 든 네 사나이는 다시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다리를 건너 도로 한옆에서 그들은 맞들고 온 자루들을 내려놓았다.

마을입구에 있는 작은 주유소마당에 켜놓은 불빛에 그 너머 울타리뒤로 나무무지들이 가득 쌓여있는것이 희끄무레 보였다.

목재를 가공하는 공장인듯싶었다. 자정이 넘은 깊은 밤이라 골안깊이 자리잡은 마을쪽은 불빛 하나 없이 조용하다.

중키에 나이먹은 사나이는 앞에 멈춰선 두 청년에게 마을로 들어오는 길옆에 자리잡고있는 작은 불교사원을 손짓했다.

앞선 큰 키의 젊은이가 한손을 들어 응대하더니 짧은 상고머리의 청년과 함께 내려놓았던 자루를 쳐들었다. 그들은 긴장한 눈길로 사위를 둘러보며 재빨리 사원을 향해 걸어갔다.

두 청년이 사원쪽의 석축한 계단을 올라서자 중키의 사나이는 옆에 선 뚱뚱한 젊은이에게 공장의 울타리가 시작되는 어구에 높다랗게 서있는 아름드리나무를 가리켰다. 그들은 별로 커보이는 다른 하나의 자루를 힘들게 맞들고 그 나무쪽으로 걸어갔다.

그사이에 앞선 두 청년은 마당을 꿰질러 사원앞에 다달았다.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본 그들은 곧바로 사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원안은 옆에서 뺨을 쳐도 모를만큼 짙은 어둠에 꽉 잠겨있었다.

두억시니같이 그 형체만 보이는 부처앞에 그들은 맞들고 온 천자루를 내려놓았다.

큰 키의 청년이 초불을 켜서 단우에 세워놓았다.

밖에서 새여들어온 음산한 바람에 초불이 불안스레 꺼불거리며 그의 그림자를 흔들어놓았다.

터질듯 한 긴장이 흐르는 속에 가쁘게 쉬는 숨소리만이 사원안의 불안한 정적을 깼다.

부처앞에 잠간 눈을 감고 합장했다 돌아선 키큰 청년이 비수같이 번뜩이는 눈으로 상고머리에게 천자루를 눈짓했다.

상고머리가 자루의 가운데를 잡고 북- 내리찢었다. 자루안에서 얼굴을 내민것은 뜻밖에도 30대안팎의 젊은 녀인이였다.

입에 물린 자갈을 뽑아던지자 공포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젊은 녀자는 막혔던 긴숨을 후- 내쉬더니 허둥거리는 눈빛으로 사원안과 옆에 버티고선 키큰 청년을 쳐다보았다.

《당신… 누구야?》

그 녀자의 입에서 나온것은 뜻밖에도 일본말이였다.

《누구야? 당신, 나 어쩔려고 이래. 응?》

후두둑 떨려나오는 녀자의 목소리…

말없이 지켜보던 키큰 청년이 씹어뱉듯 뇌였다.

《네년의 추악한 악업이 너를 여기로 데려왔다. 그 녀자처럼, 너는 꼭 그렇게 죽어야 한다!》

철추를 매단것 같이 나직이 외우는 청년의 눈빛은 금시 타끓는 분노가 뚝뚝 맺혀 떨어지는것 같았다.

《죽인다고? 나를? … 아, 안돼! 이놈아!》

순간에 게거품을 물고 비명을 지르는 녀자의 치째질사 한 눈에 바늘같은 심이 살아나더니 악의가 바글거리며 끓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 몰라? 내가 왜 죽어? 아… 안돼!》

녀자는 묶인채로 몸부림치고 목을 비틀며 발광을 했다.

일순 키가 큰 청년의 얼굴에 픽- 쓰거운 선웃음이 지나갔다.

불어치는듯 한 살기가 그의 얼굴에 바람을 일구고있었다.

키큰 청년이 《판따시웅!》 하며 눈짓하자 상고머리젊은이는 두손을 모으고 흐릿한 불빛속에 음울하게 올려다보이는 부처앞에 무릎꿇고 앉았다.

《인과응보, 지은만큼의 업이고 뿌린만큼의 죄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상고머리는 향 한개피에 불을 달아 향대에 꽂았다.

향타는 냄새가 사원안에 야릇하게 떠돌았다.

《안돼, 안돼… 아, 아.》

키큰 남자의 처연한 얼굴에서 돌처럼 굳어진 의지를 감득한 녀자는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남자는 그 녀자의 발광이 난 몰골을 가소로운 눈길로 추연히 내려다볼뿐이였다.

키작은 청년의 주문은 계속되였다.

《저지른 죄악의 결과 어찌 아니 받을수 있겠습니까? 심은만큼 거두라하신 부처님의 섭리이옵니다.》

사원안에서는 사나이의 절규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뒤이어 째지는듯 한 녀자의 비명이 눅눅한 열대의 밤공기를 갈랐다.

한편 사원과 반대방향의 큰 나무밑에 이른 중년의 사나이와 밤빛고수머리를 길게 귀밑으로 기른 뚱뚱한 청년은 앞서간 두 청년이 법당안으로 사라지자 옆에 놓인 자루끈을 풀었다.

자루에서 나온것은 입에 자갈을 물리운 흰 대머리의 로인이였다.

나이든 사나이가 거칠게 자갈을 뽑아버렸다.

린광이 번뜩이는 깊은 눈확속의 차거운 눈길로 쏘아보며 로인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지?》

《…》

석상처럼 굳어진 로인은 대답이 없었다.

《저 삥강, 저 사원, 모르겠는가?》

《…》

삥강이라는 말에 로인은 흠칫하며 전률하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르겠는가?》

로인은 눈을 감은채 씹어서 뱉듯 말했다.

《칸쿤?》

나이먹은 사나이는 앞에 높이 선 구새먹은 티크나무를 가리켰다.

《보라! 저 나무도 기억하겠지?》

그제야 로인은 눈을 떴다.

전지불에 비쳐진 로인의 얼굴은 검버섯이 돋고 잔주름이 덮였으나 랭혈의 차거운 빛이 내뻗치는 우묵한 두눈과 꾹 다문 두툼한 입술이 세월의 풍상속에 굳어진 과단성과 담력의 두께를 느끼게 했다.

《하아-》

검푸른 밤하늘에 주유소쪽의 어렴풋한 불빛을 받아 부러진 우듬지가 창백하게 드러나는 수백년 자란 티크나무, 그 나무를 바라보는 로인의 눈에 모든것을 체념한 절망과 회오의 쓰거운 빛이 서리였다.

습윤한 밤안개가 열대의 쟝글속을 축축히 떠돌고있었다.

력사에는 한 시대의 응결점이 가장 평범한 장소에서 누구도 의식 못하게 운명의 한 단락을 짓고 넘어가는 때가 있다.

하면서도 그 시각에는 그 사건이 내포한 충격적인 의미를 누구도 쉽게 감득하지 못하는것이다. …

이날이 바로 그런 날이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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