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2

 

땅! 밖에서 벼락치는듯 한 총성이 울렸다.

《무슨 일이요?》

대장방에서 무기소제를 하고있던 전윤필은 깜짝 놀라 제꺽 권총을 조립해들고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부대장인 류치선이 한 대원의 멱살을 잡고 뒤뜨락에서 나타났다. 무명바지저고리를 입은 젊은이는 사색이 되였다.

《대장동지, 글쎄 이게 오발을…》

권총을 주머니에 쑤셔넣은 전윤필이 미간을 쪼프리고 류치선을 쏘아보았다.

《그 동무를 놔주오. 혁명동지들사이에 그게 뭐요?》

류치선은 손아귀를 풀고 빼앗아들었던 보총을 대원에게 던져주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혁명동지요? 옳지요. 하지만 이런 해괴한 바지저고리는 내 보다 처음입니다. 글쎄 총을 받은게 기뻐 한방 갈겨봤다는겁니다. 이런걸 군대라고 할수 있습니까? 내 원참! 언제야 군대꼴이 잡히겠는지.》

거침없이 내뱉는 류치선의 푸념소리를 들으며 전윤필은 쓴입을 다셨다. 입대한지는 한달 잘되는데 오늘에야 낡은 총 몇자루가 생겨서 공급했더니 이런 사달을 빚어낸것이다. 잘못을 말한다면 별동대장인 자기와 부대장에게 있었다. 무기를 제멋대로 다루지 못하게 미리 타일러주고 오금을 박았어야 했다. 전윤필은 오발사고를 낸 대원을 외면해버린채 류치선에게 눈짓하며 쓸쓸히 말했다.

《그만 떠들구 내 방으로 갑시다.》

류치선은 뚜걱뚜걱 요란한 군화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그는 동북땅을 다 뒤져봐도 흔치 않을 황포군관학교경력자였다. 해방전에 전윤필과 한마을에서 살면서 반일투쟁을 함께 했는데 왜놈들의 심해지는 탄압을 피해 관내로 들어갔다가 해방전야에 이런 멋쟁이가 되여 돌아왔다.

방에 들어선 전윤필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부대장, 이자도 느꼈지만 싸움준비가 문제요. 지금 호마영이네 〈치안유지대〉가 우리 별동대를 습격하겠다구 벼른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글쎄말입니다. 그놈들은 거개가 위만군이나 공안국에 복무하던 놈들인데 우린… 한데 정확한 정보입니까?》

《음, 놈들속에 들어가있는 정두철동무가 보내온거요.》

정두철은 전윤필이 《치안유지대》에 박아넣은 공작원이였다. 해방전부터 중국인들과 장사거래를 하는척 하면서 비밀공작사업을 해오던차에 해방후에는 아예 《치안유지대》의 후근부에 침투해들어갔다.

외투자락을 핑핑하니 당기며 생각을 더듬던 류치선은 한숨을 쉬였다.

《참 난감하군요. 조선인민혁명군은 조국으로 나갔지. 팔로군은 만리장성너머 너무나 멀리에 있지, 쏘련동지들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건만 그들은 중쏘조약때문에 발목이 묶이웠지. 대장동지, 차라리 우리도 두만강건너 조국으로 나가면 어떨가요?》

《뭘? 조국으로 간다구?》 전윤필은 꿈쩍 놀랐다. 《그럼 이 룡정을 국민당한테 내맡기고? 여기에 사는 조선사람들은 어떻게 해?》

《그러게 난사라는겁니다. 이러지도 못하구 저러지도 못하구.》

전윤필도 은연중 한숨이 나갔다.

《가긴 가더래두 룡정을 평정해놓고 가야겠는데…》

그때 창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장님, 아니, 대장동지, 누가 찾아왔습니다.》

류치선이 창문을 열어젖히며 성칼지게 물었다.

《누구라구?》

오발사고를 낸 그 대원이 창문아래에 목을 움츠리고 서서 곱씹어외웠다.

《혁명군파견원이랍니다. 김일성장군님의 혁명군…》

《뭐라구? 그게 정말이요?》

먼저 소리친것은 전윤필이였다.

두사람은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나갔다.

단정한 군복차림의 사나이가 계단을 올라오고있었다. 순간 전윤필의 머리속에는 기쁨과 의혹이 마구 엉켜돌았다. 조국으로 나간 혁명군이 어떻게 나타날수 있는가. 다음순간에는 해방전야에 김일성장군님께서 련락원을 보내주셨던 생각이 들었다. 장군님께선 조국으로 개선하셨지만 우리를 잊지 않으셨을것이다. 외롭던 감정이 썰물처럼 밀려나가고 행복감과 감격이 밀물처럼 가슴에 밀려들었다.

마주 달려나오는 그들을 보고 손님이 먼저 반겼다.

《전윤필동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생면부지의 새파란 젊은이였다. 얼굴이 동그스름한것이 군인치고는 무척 귀염성스럽다. 웃는 얼굴 왼쪽볼편에 약간 패이는 보조개가 인상적이였다.

《그동안 얼마나 수고가 많았습니까. 조선인민혁명군 파견원 박락권입니다.》

《반갑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자, 어서 방으로 들어갑시다.》

전윤필은 격정에 목이 꺽 메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란 말만 들어도 감격이 앞섰다. 그는 덤벼치며 책상우의 서루들을 걷어모으고 책상아래서 늄주전자를 꺼내여 손수 차를 끓였다.

《이 지방의 특산인 록차입니다. 룡정차라고 하지요. 듣자니 장개석이두 이런것만 찾는다더군요.》

《하, 그래요? 룡정별동대가 잘사는데요.》

《말도 마십시오, 잘산다는게 다 뭡니까. 총이 있나, 탄약이 있나…》

혁명군파견원은 스무나문살쯤 나보였다. 그러니 마흔에 가까운 전윤필의 나이에 절반정도밖에 안된다. 그런데 김일성장군님의 파견원이다. 후생가외라고 20대에 아득한 영광의 절정에 나래쳐오른 박락권과 미궁에서 헤매는 자신사이의 격세지감을 받아안게 되는것이였다.

놀랍게도 파견원은 이곳 실정을 자상히 알고있었다. 전윤필이 10년나마 풍마다형무소와 대전감옥에서 감옥살이를 했다는거며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권총을 받고 해방전야에 별동대를 무어 왜놈들의 병영을 들이친 사실까지도 모르는것이 없었다.

그들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차잔을 조금씩 기울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끝에 박락권이 물었다.

《〈치안유지대〉의 두목은 룡정시〈정무위원회〉 군사책인 중국인 호마영이라던데 그자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그놈이 문젭니다. 국민당이 내세운 〈시장〉이란자는 중국인자본가이긴 하지만 푸수한 인물인데 호마영 이놈은 상악질이여서…》

《그렇다?》

《생각같아선 그놈부터 박살내고싶은데 당장은 무장충돌이 일면 안되겠고… 속수무책이여서 속엔 불이 입니다.》

다 비운 차잔을 탁자우에 탁 놓은 박락권은 오른손주먹으로 왼손바닥을 딱 소리가 나게 쥐여박았다. 눈에서는 불꽃처럼 강렬한 광채가 뿜어나왔다.

《문제될게 없습니다.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하면 됩니다. 장군님께서는 불원간 있게 될 국민당반동들과의 전쟁을 예견하시고 우릴 파견하시면서 무엇보다 무장대오를 튼튼히 꾸리는게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호마영이 같은 일개 반동분자를 제거하는것보다 〈치안유지대〉의 책동을 분쇄하고 군사상의 주도권을 쥐는겁니다. 군력을 틀어쥐여야 반동분자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닥쳐오는 전쟁에서 이길수 있습니다.》

전쟁소리가 튀여나오자 전윤필과 류치선은 어마지두 놀랐다.

(국민당과 전쟁을 한단 말인가?!)

그들의 놀라움을 감촉한듯 박락권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동북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세력권의 변화와 길동보안사령부의 임무에 대해 설명했다. 국민당군의 진공을 격파하지 못하는 경우에 초래될 후과와 조중혁명가들사이의 혁명적의리를 말하는 이야기는 퍽 론리적이였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장군님께서는 중국혁명을 잘 돕는것이 조선혁명을 잘하는것으로 된다고 말씀하신겁니다. 우리는 여기에 든든한 근거지를 꾸리고 진공해오는 국민당군을 맞받아쳐야 합니다. 놈들이 쳐들어올 날은 눈앞에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전쟁이 아닙니까?》 류치선이 눈을 흡떴다. 《지금의 실정에서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직접 체험한바이지만 국민당군은 비록 일본군에는 비할바가 못된다손쳐도 대군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미국의 후원까지…》

박락권은 소리내여 웃었다.

《그건 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전쟁을 각오하고 왔습니다. 적아의 대비를 말하면 적들의 병력이 우세한것은 부인할수 없으나 조선인민혁명군에 비해 일본관동군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면 대답을 찾을수 있을겁니다.》

우람진 체격은 아니나 박락권의 모습이 거인처럼 느껴져서 전윤필은 탄복을 금치 못했다. 그럴수록 류치선이 민망스러웠다.

(역시 장군님께서 키우신 빨찌산이 달라, 생각하는 품이랑 잡도리랑…)

박락권은 강건의 지시를 전달했다. 강건의 계략은 전윤필을 흥분시켰다.

 《…이렇게 〈치안유지대〉의 무기를 몽땅 빼앗고 조중인민의 련합된 무력인 경비대를 내오자는겁니다. 룡정시의 무장인원들을 모두 집합시켜놓고 쏘련동지들의 협력하에 놈들의 무장을 해제합시다. 동북의 행정권이 현재 쏘련군의 수중에 있기때문에 국민당은 그들의 명령을 거부할수 있을게고 또 중쏘조약을 믿고 안심할겁니다. 우린 바로 이때…》

다음날 아침 전윤필은 강건의 지시대로 별동대를 이끌고 거리를 가로질러 시《정무위원회》건물이 있는 해란강건너편으로 행진해갔다.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무명천에 가둑나무물을 들여 자작 만든 군복을 입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흰 바지저고리차림도 있고 관동군의 낡은 군복에 경찰복… 제마끔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보고 《까치부대》라고 불렀다.

군복차림도 그렇지만 무장상태는 더 볼것이 없었다. 38식보총이 몇자루, 99식보총이 둬자루 그게 전부였다. 그래도 기세는 충천했다. 오발사고를 냈던 그 대원도 어깨를 한껏 펴고 땅을 구르며 걸어갔다.

룡정은 왜놈들의 등쌀에 고국에서 쫓겨난 조선사람들이 이주해와서 개척한 곳인데 처음에는 룡드레촌이라 불렀다. 논없던 고장에 신답을 풀고 물을 퍼올리는 용드레가 신기하게 보여서 토배기들이 붙여불렀다는 조선인마을의 이름이다.

오불꼬불한 거리의 골목길을 따라가느라 길게 늘어졌던 별동대의 대렬은 이윽해서야 시《정무위원회》앞뜨락에 들어섰다.

미구에 뜨락에는 각이한 무장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검은 가죽잠바에 승마바지를 입은 호마영이 《치안우지대》를 끌고 으시대며 걸어왔다. 맨 꼬리에는 흰수염을 드리운 늙은이들까지 서넛이 따라왔다.

《오늘은 된변이 날려는게군. 포수령감들까지 불러댄걸 보니께.》

일본군의 저고리를 한족어깨에 벗어걸멘 땅딸보가 장총을 지팡막대기처럼 짚고가며 쑹얼거렸다.

《포수?》

걱실걱실 따라오던 꺽다리가 긴 허리를 굽히고 묻자 땅딸보는 이발빠진 입을 하 벌리고 웃어댔다.

《군사책이 포수쟁이들을 호적에 올렸다잖아. 그리군 오늘 몽땅 끌어내라고 불호령을 내려서 내가 청산에까지 갔다왔다니께.》

뜨락은 조선말, 중국말에 여러 소수민족의 말까지 뒤섞인 소음에 법석 끓었다.

오래지 않아 연길에서 조양진을 지나 룡정으로 들어오는 큰길입구로 자동차행렬이 달려왔다. 맨앞에는 찌프차가 섰는데 강건이 틀지게 앉아있었다. 찌프차뒤에는 두대의 화물차가 따라왔다.

꺽다리가 때국이 게저분한 손으로 두툼한 입을 가리고 속살거렸다.

《아니, 저게 그 사람들이 아냐?》

손채양을 하고 두눈을 쪼프렸던 땅딸보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삼키고 수군거린다.

《맞다! 노루고개에서 만났던 량반들이군. 이상한데?》

그들은 고개길에서 자동차들을 감히 막아나섰다가 박락권이한테 혼쭐이 났던 그 작자들이였다.

《분명 아라사군대사령부에서 나온다지 않았어?》

《그랬지. 그러니께 저 량반들이 아라사군대란 말이여? 분명 백두산빨찌산이라구 했는데?!》

《넉살머리 떨어질 때니깐 잘못 들었을수 있지. 저들이 거짓말했을수도 있구.》

《하긴… 쏘련에두 우리같은 아시아족이 많다니께. 그게 맞다문 아라사는 국민당을 인정했다니께 인제 저 별동대아이들 혼쭐내줄거야. 우린 합법적인거구 저것들은 비합법적이니께.》

《아쥬- 꽤 개명했구만.》

《호마영군사책이 그렇게 말했잖아, 으히히…》

객설스럽게 떠들어대는 소리들이 호마영의 귀전에까지 들려왔다. 그는 득의만면하여 으험으험 군기침을 깇었다.

일은 그의 뜻대로 되는것 같았다. 어제 쏘련사람들은 국민당편역을 들어줄것이다. 호마영은 제 생각에 내심 웃었다.

(쏘련이 비호하고 국민당이 냅다미는 때니까 이제 이 호마영이 군장쯤은 될수 있지.)

련대장이나 사단장이 아니라 군단장의 거성을 어깨에 얹은 자기 모습을 벌써 그려보게 되는것이였다. 잡생각에 빠졌던 그는 자동차들이 요란한 경적소리를 지르며 마당에 들어서는 바람에 화닥닥 소스라쳤다.

《기척!-》

목청을 돋구어 호기있게 웨치고는 맨앞의 찦차를 맞받아 뛰여나갔다. 룡정의 전체 무장대를 대표하는듯 기세좋게 영접보고를 시작했다.

《룡정시무장대들은 지금 당신의…》

쥐눈이 반짝거리는 얼굴에는 삵의 웃음이 흘렸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선 강건은 그를 외면해버리고 묵직한 걸음을 계단쪽으로 옮겨갔다.

호마영은 잔뜩 뽑아올리던 소리를 꿀꺽 삼켰다. 관자노리에 올렸던 손도 멋적게 떨어졌다.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욕감에 얼굴이 수수떡처럼 되였다.

망두석마냥 못박혔던 그는 삵처럼 날렵하게 강건을 앞질러 계단을 달려올라갔다. 그리고는 《정무위원회》의 밤빛현관문을 두손으로 공손히 열고 강건을 쳐다보았다. 청사안에 들어가려는줄로 알고 친절을 부린것인데 아첨은 이번에도 무시당했다. 강건은 현관문앞으로 가지 않고 계단우에서 뜨락을 향해 삑 돌아선것이였다.

총을 꺼꾸로 멘 놈, 배포유하게 땅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은 놈, 강건의 가시눈에 찔리우자 오금이 저려 엉거주춤 일어서는 놈… 무질서하기짝이 없는 광경은 강건의 화를 돋구었다.

《모두 정렬하라!》

강건이 푸르딩딩해서 소리쳐서야 대렬 비슷한것이 늘어섰다. 그 모양을 사나운 눈길로 지켜보던 강건은 무게가 느껴지는 음성으로 말머리를 뗐다.

《내 동북일판을 메주밟듯 했지만 이런 바지저고리오합지졸은 보다 처음이다. 이렇게 한심하니까 손바닥만 한 룡정시내의 질서조차 바로 잡지 못하는게다.》

그는 한참 욕설을 퍼붓다가 본론으로 넘어갔다.

《안되겠다, 안되겠어! 각 무장대들은 일단 해산하고 차후 정제된 무장대를 새롭게 조직해야겠다. 우선 무기를 일체 회수한다는걸 선포하는바이다. 만주치안은 주지하는바와 같이 당분간 우리가 책임진다. 헌데 룡정에 제멋대로 무어진 비합법적무장대들은 지금 질서를 세우는게 아니라 혼란만 조성하고있다. 의견부릴게 없다. 이번에 무기를 회수하는건 온전한 부대를 만들어 시내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하는것이니 명령에 불복종하는자는 군법에 따라 엄하게 처리될줄 알아라.》

무슨 말인가 해서 현관문앞에 엉거주춤 서있던 호마영은 벌레씹은 상이 되고말았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였다.

《저, 저… 장관님…》

말을 붙여볼셈으로 강건의쪽에 다가서는데 경호원이 싸창을 빼들고 감때사납게 소리친다.

《뭐야?》

최광이였다.

《난 항의하오. 우리 치안유지대는 국민당의 합법적인 군대요. 장관님께…》

침방울을 튕기며 부르짖던 호마영은 최광이 목갑총을 나꿔채는 바람에 비칠거렸다.

《예가 어디라구 국민당타령이야, 새빠지게스리… 군사책이라니 당신부터 제깍 무기회수에 모범을 뵈야지.》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모든 무장인원들이 한명한명 자동차앞에 나와 무기를 바쳤다. 덜컥, 덜커덕… 총들이 쌓여 더미를 이루고 그우에 가지가지 무기들이 계속 던져졌다. 38식보총, 99식보총, 단총, 장총, 싸창, 륙혈포… 누구도 말이 없었다.

한 로인이 다가왔다. 외알배기렵총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보시우, 군대오른, 우린 포수들이요. 이런 총도 바쳐야 하겠소? 이건 우리네 목숨이나 같으웨다.》

《포수들도 왔습니까?》

수첩에 수량을 기입하던 최광이 의아해서 되물었다. 허리굽은 여러명의 늙은이들이 처량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있었다.

《군사책이 명령하는데야 어떡할 도리가 있겠소. 포수대란걸 만들어가지구선…》

최광은 강건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물음이였다. 강건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눈을 꾹 감아보였다. 큰일을 두고 작은 감정에 사로잡혀 빈틈을 남기지 말라는 뜻이였다.

《로인님, 심정은 알만 하지만 군령은 군령이니만치 지키고 봅시다. 로인님을 비롯한 룡정사람모두를 위해 필요한 군령이 아닌가요.》

《룡정사람들모두를 위해서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니 복종해야 합니다.》

락심한 로인은 군소리없이 총을 놓아버렸다. 덜커덕! 무기더미우에 그 한자루의 렵총도 던져졌다.

무기를 만재한 자동차들은 부르릉거리며 연길로 떠나가버렸다. 빈손뿐인 사람들은 떡심들이 풀려서 뜨락에 펄썩펄썩 주저앉았다.

《총이 없으니 인젠 싸울 일도 없어졌군그래.》

《치안유지대》의 꺽다리가 완장을 벗어던지며 맹랑한 타령을 한다.

《제길할, 군사책헌테 록용 두틀 섬기고 겨우 가졌던걸 공짜루 빼앗겼군.》

《무슨 놈의 총 두틀씩이나 받아처먹어?》

《그만한 값에야 가는거댔지 뭐. 오련발이였으니까.》

《그러니 자네가 제일 막심한 손핼 봤네그래.》

그다음엔 흐하하… 웃음이 터졌다.

망연자실해서 자동차들이 사라져간 언덕길우에 뽀얗게 일어난 먼지구름을 바라보던 호마영이 이즈러진 얼굴을 돌렸다. 끝없는 저주와 몸서리치는 살기가 쥐눈에 이글거렸다.

《버새같은 자식들! 뭐가 좋아 웃는거야?》

거칫하면 손찌검이라도 서슴지 않을 팽팽한 공기가 흘렀다.

《총도 없는 주제에 무슨 큰소리칠게 있소?》

꺽다리가 대들자 땅딸보도 지지 않고 탁성을 돋구었다.

《빈털터리군대도 군대야? 군대가 아닌 담에야 무슨 말라비틀어진 군사책이야?》

왜정때 경찰이나 군대장교질을 해먹던 놈들이여서 일단 악청질로 맞서니 당해내기 어려웠다. 중구난방 떠드는 기세에 눌리운 호마영은 자세를 얼른 낮추고 버릇처럼 으험으험 군기침을 깇었다. 우선 한걸음 양보해서 사나와진 무리를 얼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제군들! 량해하시오. 나 역시 무장을 잃고보니 분이 나서 참을수 없은거요. 그러나 제군들! 락심할건 없소. 중쏘우호동맹조약이 있는 한 우리의 무기는 그 누구도 빼앗을수 없소. 이제 국민당이 공식요구하면 그자들은 세상리치를 깨닫고 반드시 가져간 총을 다시 반환하게 될것이요. 나는 그것을 확신하는바이요.

자- 우리 괜히 언성만 높이지 말고 저조한 기분을 술로 전환합시다. 〈정무위원회〉 지하실에 고량주가 얼마든지 있소. 가기요!》

그날 저녁 호마영은 《시장》을 협박해서 지하실의 술통들을 말짱 굴려냈다. 적산물자를 그렇게 소비하면 안된다고 말리던 《시장》은 술취한 망나니한테 눈통을 얻어맞기까지 했다.

때를 놓칠세라 정두철이 후근부의 턱을 낸다면서 생파와 한함지나 되는 기장떡까지 털어내놓아 술판은 꽤 풍성해졌다.

호마영의 패거리들이 화술을 마시며 법석이던 그 시각 전윤필은 강건의 비밀시지를 받았다. 김대현이 와서 지시를 전달했다. 《치안유지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무기를 비밀리에 받아가라는것이였다.

별동대원들은 류치선의 인솔하에 연길에 가서 무기를 접수했다.

강건이 전윤필을 불렀다.

《반동들은 이젠 적수공권이나 같소. 이제 뭐가 더 필요합니까? 국민당패거리를 짓눌러버릴 자신이 있습니까?》

《있구말구요. 이젠 무서울게 없습니다. 정말 제갈량도 찜쪄먹을 한 수로 통판 메친셈입니다, 허허…》

전윤필은 마음이 후련해서 크게 웃었다.

《통판 메쳤다?! 하… 다음번엔 장개석을 통판에 메칩시다. 그것두 자신있지요?》

《예. 자신있구말구요.》

탄약상자를 마차에 올려실어주고난 최광이 팔소매를 털며 끼여들었다.

《룡정별동대가 이젠 부자인셈입니다, 하하…》

모두들 즐거운 기분이였다. 전윤필이도 웃음이 헤퍼졌다. 마음속의 무겁던 짐을 털어버리고 오래간만에 마음껏 웃었다. 최광은 전윤필의 눈앞에 주먹을 흔들어보이며 걸걸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이만한 무장을 가지고서도 주눅이 들면 아예 바질랑 벗어버리시우. 드립다 들이족치란 말이우.》

《최광동무는 또 대부대를 휘몰아 료하계선에 진출하자는게 아니요?》

전윤필이 대꾸할 사이도 없이 박락권이 씨까슬렀다.

최광은 연신 팔뚝을 휘두르며 고집을 세웠다.

《못할건 뭐요. 난 북상하는 국민당을 산해관계선에서 막아치웠으면 시원하겠소.》

《어따! 어벌뚝지두…》

박락권도 강건도 혀를 내둘렀다. 최광의 말이 진담인지 롱담인지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전윤필은 그 담대한 기질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참…》 불쑥 생각키운듯 최광이 제 이마를 탁 쳤다. 《포수대의 무기는 어떻게 하랍니까?》

《모두 몇정이요?》

《여섯정입니다.》

《그렇소? 보잘것없구만. 포수들에겐 사냥총이 생계수단인데…》

강건은 결심을 쉬이 내릴수 없어하는것 같았다. 머리를 기웃하고 생각을 굴렸다.

《의견을 말하랍니까?》

급한 성미 그대로 최광이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말해보오.》

《〈치안유지대〉의 무장을 돌려달라고 국민당 현당부에서 쏘련군경비사령부에 항의할수 있는데 포수대의 총을 돌려주면 물의가 일어날수 있다고 봅니다. 포수대의것은 돌려주고 〈치안유지대〉의 무기만 돌려주지 않은것이 들장나면 국민당이 걸고들게고 그러면 붉은군대동무들이 난처해질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리가 있소. 전윤필동지생각은 어떻습니까?》

《최광동지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우리 별동대의 무기를 가져가는걸 비밀에 붙이는건 가능하겠지만 군사체계에 망라되여있지 않는 포수들이 비밀을 지키리란 담보야 없지 않습니까.》

강건은 무엇이 석연치 않은지 머리를 기웃하고 골똘한 생각을 더듬는듯 하더니 불쑥 전윤필에게 물었다.

《군사체계에 망라되지 않은 그들을 왜 포수대라고 합니까?》

《그건 호마영놈이 한 짓거립니다. 국민당의 인정을 받자면 무장대인원수가 많아야 하기때문에 머리수를 불구자고 로인들까지 명단에 올린거지요. 오그랑수를 쓰다가 그런 희비극을 논겁니다.》

《그렇다면 더 문제로구만. 국민당이 포수들을 시야에 넣고있다는게 아니요?》

《예, 그렇습니다.》

강건은 한손을 결단성있게 홱 내리그었다.

《그런 조건이면 총을 돌려줘선 안되겠소. 보류해둡시다.》

때를 기다렸다는듯 최광이 제꺽 한수 썼다.

《그 총들을 명월구의 공정수동무네한테 보내주면 어떻겠습니까? 보잘것 없긴 하지만 공정수동무의 말이 거기 중국인대대의 무장상태가 말이 아니랍니다.》

별로 머리썩일 일이 아니였다. 강건은 선듯 응낙해버렸다.

《그렇게 합시다.》

대렬이 흘러갔다. 군복차림은 번듯하지 못해도 기관총까지 메고 사기충천하여 룡정으로 돌아가는 대원들의 모습은 볼수록 미더웠다. 대오는 어둠을 직차며 나아갔다.

《역시 옛소대장이 다르군.》

전윤필을 바래주고난 뒤 최광을 돌아보며 강건은 흐뭇해서 누구에게라없이 중얼거렸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공정수네를 도와주지 못해서 감질이 나하는 최광이였다.

이제는 길동지구를 장악할수 있는 무력이 초보적인 기초를 가지게 된셈이다. 그 성과를 공고히 해서 각처에서 대오를 더욱 확대해야 했다.

련재
[총서 《불멸의 력사》]의리의 전역 (제1회)
[총서 《불멸의 력사》]의리의 전역 (제3회)
[총서 《불멸의 력사》]의리의 전역 (제4회)
[총서 《불멸의 력사》]의리의 전역 (제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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