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살아있는 사람들의 주소

1

 

늦추위를 하던 그해 봄은 3월에도 눈이 날렸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무슨 이변을 꿈꾸던 사람들은 꽃이 필무렵에 어지럽게 내리는 때아닌 눈송이들이 땅에 닿기 바쁘게 스러지는것을 지친 눈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철아닌 때에 눈이 내려 가뜩이나 민심이 뒤숭숭하던 3월 상순 어느날 저녁무렵 맨머리바람으로 얼굴에 부딪치는 눈을 맞으며 서울변두리 미아리고개쪽으로 급히 가고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짧게 다스린 머리모양이며 폭양에 그슬린 시커먼 얼굴 그리고 발뒤꿈치를 땅에 붙이는 일이 없이 사뿐사뿐 규칙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있는 그는 첫눈에 보아도 군대에서 갓 풀려나온 사람으로 보이였다.

키낮은 처마밑에서 눈을 그으러 허리를 구부리고 서있던 두세명의 늙은이들이 주고받던 이야기를 뚝 그치고 날랜 그의 걸음발을 유심히 지켜보고있다. 청년은 마치 자기의 규칙적이며 빠른 걸음을 즐기기나 하듯이 잰걸음을 조금도 늦춤이 없이 오고가는 사람들과 차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자욱한 눈발속에 북한산과 도봉산봉우리들이 뿌잇하게 보인다. 한참이나 그쪽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돌려 멀리 수락산쪽에 눈을 준다. 어딘지 모르게 꼿꼿하고 어두운것을 느끼게 하던 그의 얼굴에 따스한것이 내비친다. 그쪽에서 뗄줄 모르는 그의 시선이 부드럽게 떨리고있다.

《거름차요! 거름차!》

맞은편쪽에서 집집의 거름을 모아오던 손달구지군이 소리쳤다.

청년은 하마트면 스칠번 한 긴 자루끝에 달린 거름바가지를 슬쩍 피하며 씽긋 웃어보인다. 고개를 돌린 그의 앞쪽으로 고급자가용차 두대가 수유리쪽을 향해 물매미처럼 달려간다. 운전수옆자리에 앉아가던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체육복차림을 한 젊은이가 거름바가지를 피해 날쌔게 몸을 피하던 그에게 놀란 시선을 던지며 사라졌다.

길모퉁이를 돈 청년은 공동묘지자리에 일렬로 들어선 주택지구의 집들을 바라보며 여전한 속도와 걸음걸이로 가고있다.

이윽고 양회다리를 건너 정릉쪽에서 내려오는 개울을 따라가던 그는 한 골목안으로 들어섰다. 질척거리는 골목끝에 낡은 스레트지붕의 네댓칸은 됨직한 조그만 솟을대문이 달린 《김학배》라는 문패가 붙은 집앞에서 그는 멈춰선다.

흥분을 애써 누르며 집주인을 찾는 그의 목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윤호야! 윤호야!》

잠시 기다려도 대꾸가 없자 그는 쾅쾅 대문을 두드린다.

문밖에서 나는 귀익은 목소리에 자리에 누워있던 김학배와 남편의 머리맡에서 삯봉투를 붙이고있던 임씨는 놀랍고 복잡한 심정으로 귀를 세웠다.

목소리의 임자는 바로 두달전에 서도이췰란드에 간호원으로 떠난 맏딸 윤옥의 애인 창수가 분명했기때문이다.

두해전에 윁남파병에 걸려 그쪽에 가서 간간이 윤옥이에게 소식을 전해오군 하더니 이제야 돌아온것이 틀림없었다.

김학배는 당황한 시선을 안해쪽으로 돌렸다. 임씨 역시 얼떨해진 시선을 남편에게 보내다가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그새 다들 안녕하세요?》

달려나온 임씨를 본 청년은 머리를 깊이 숙였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 언제 돌아왔나? 기별이나 할 일이지.》

《일이 그렇게 되였습니다. …》

마당에 들어섰던 청년은 무춤 발길을 멈추고 닫겨진 건너방 퇴돌곁에 놓인 풍로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전세로 살고있는 김학배네 집에서 그 방은 윤옥의 형제들이 거처하던 방이였다. 난데없이 그앞에 풍로며 남비들이 놓여있는것을 본 청년은 의아한 시선으로 임씨를 뒤돌아본다.

윤옥이가 서도이췰란드로 떠난 후 월세로 사람을 들이고있는 임씨는 방주인이 바뀌여진 사연을 묻고있는 청년의 시선을 피해 잠시 헛기침을 깇었다.

그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려다말고 방안을 향해 소리쳤다.

《창수가 돌아왔어요!》

《뭐, 창수군이 왔다고?! …》

반년전부터 병으로 내내 자리에 누워있는 김학배는 불편한 몸을 가누며 일어나려고 허우적거리다가 고개만 주억거리고있다.

만리밖에서 불속을 헤치고 자기의 딸을 찾아온 청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없이 군색하기만 한데 청년이 들어섰다.

《아니? …》

그는 자리에 누운 김학배를 보자 엉거주춤 멈춰섰다.

《어서 앉게.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나.》

《어디 몸이 불편하신지요?》

임씨가 그를 자리에 앉히며 껴들었다.

《좀 오랬네만 곧 일어나실거네. 그래,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나. 윤옥이가 한 편지를 받지 못했던가?》

《아니요.》

청년은 임씨와 이렇게 말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앓는이의 병문안도 채 하기 전에 자기 생각에만 골똘하고있는것을 엿보인것이 비록 사랑하는 처녀의 부모들앞이라 해도 어쩐지 부끄러웠기때문이다.

그는 약간 떠듬거리면서 화제를 돌려 학배의 병이며 열흘전에 제대된 후 고향집으로 갔었던 이야기며 며칠전까지 계속 앓아누워있었기에 오늘에야 비로소 찾아보게 되였다는 사연을 이야기하고 들고 온 보자기를 내밀었다.

그속에서 자주색과 빨간색 그리고 물색목수건과 만년필이 나오고 어디서 구했는지 황모로 맨 붓이 한자루 나왔다. 자주빛갈은 물으나마나 윤옥이를 위해 들고 온 선물임에 틀림없었다. 윤옥은 자주빛을 좋아했던것이다.

임씨는 청년이 들고 온 선물을 받으면서 울상이 되여 남편의 얼굴을 살핀다.

잠시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청년은 윤옥이가 거처하던 건너방 퇴돌곁에 놓여있는 풍로를 바라보다가 힐끗 되돌아보던 그 시선으로 임씨를 똑바로 바라본다.

큰 키에 벌어진 어깨는 여전한데 꺼멓게 탄 여윈 얼굴의 날카로운 륜곽이며 얼굴보다 더 시꺼매보이는 목덜미에서(거기에는 길게 건너간 상처자리가 나있었다.) 엄하고 딱딱한것이 풍기였다.

더우기 두손을 맞쥔채 똑바로 앉아있는 그 자세를 허물지 않고 어찌 보면 무엇에 무섭게 골몰하고있는듯싶지만 또 어찌 보면 주위의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방심상태에 있는듯도 한 그의 퀭한 눈동자며 말대답, 한마디로 그의 온몸에서 풍기는 인상이 이쪽을 불안하게 하는것이였다.

남의 말을 믿기 잘하고 웃기 잘하던 그의 옛 모습을 어디서도 찾아볼수가 없는것이다.

청년은 자기의 침묵으로써 그쪽에서 이쪽을 대하기가 고통스럽듯이 그도 그쪽을 대하기가 고통스럽다는것을 로골적으로 나타냈다.

딸을 낯선 외국으로 떠나보내지 않을수 없었던 한스러운 처지와 딸의 장래이자 곧 기울어진 집안의 장래이기도 했던 청년에게 걸고있던 기대가 눈앞에서 허물어지는듯 하여 윤옥의 부모는 말문이 막혔다.

이때 마침 둘째딸 윤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그는 창수를 보자 환성을 올리며 매여달렸다.

윤옥을 닮은 반듯한 이마며 눈매를 바라보며 청년은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윤전이의 긴 속눈섭이 떨리더니 커다란 눈동자가 기름방울을 떨군듯이 빛나올랐다.

《아저씨, 이건 내거죠? 이건 언니꺼고…》

《응.》

《이건 언니에게 내가 붙여주겠어요. 참, 아저씨도… 왜 진작 돌아오시질 않았어요? 언니가 있을 때 오시지 않고…》

《?》

임씨가 딸을 나무랜다.

《네가 무슨 소리를 하고있니? 그것이 마음대루 되는 일이냐?》

윤옥의 부친이 더는 그냥 있을수 없어서 마침내 입을 열었다.

《창수군! 윤옥이가 자네에게 편지를 띄운줄로 알고있는데 엇갈린 모양이고 어차피 자네도 알아야 할 일이네만 그애는 할수없이 서도(서도이췰란드)로 떠났네. 3년후이면 돌아올걸세.》

《서도로요?!》

청년의 두눈에서 번쩍 번개가 일더니 여태껏 허물지 않고 앉아있던 그의 자세가 크게 좌우로 흔들렸다.

《글쎄, 우리하고는 의논도 없이 제 혼자서 그렇게 정하지 않았겠나. 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되자 이리저리 애를 태우는것 같더니만 돈을 벌어 보내겠다구 갔네.》

애인도 모르게 먼 나라로 떠나버린 딸을 대신하여 임씨가 변명조로 말했다.

《돈을요? …》

혼자말로 뇌이던 청년은 입을 다물고말았다. 그의 량미간에 패인 주름살이 물결쳤다.

입을 봉하고있던 그는 보낼데 없는 시선을 책상우에 놓인 윤옥의 사진쪽으로 가져가다가 그것이 가슴에 찔린듯 얼굴을 찡그리며 벽에 걸린 족자에 시선을 옮긴다.

윤옥의 부모는 그의 신음소리를 들은듯 했다. 량주는 또 한번 가슴을 옥죄였다.

《선우후락》

붓글씨를 쓰기 즐기는 윤옥의 부친이 완당의 필체를 따 써붙인 족자는 예나 다름없이 거기에 걸려있었다.

청년에게는 낯익은 글씨였고 그 뜻을 학배로부터 한두번도 아니게 듣기도 했던 글귀였다.

청년이 족자를 쳐다보고있자 김학배는 마침 좋은 화제가 생겼다고 입을 열었다.

《이제 이렇게 몸까지 자리에 눕게 되였으니 선우후락은커녕 인생이 점도록 가족들만 울리게 되였네.》

《…》

윤옥의 부친은 사위감으로 찍어둔 청년에게 자기 심회의 일단을 펼쳐보이려고 했건만 상대방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마음의 여지가 없는듯 대답이 없다.

화제가 또 중단되고말았다.

윤전이가 방안의 공기를 재빨리 알아차리고 어른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언닌 아저씨이야길 얼마나 자주 했었는지 몰라요. 떠날 때도 아저씨생각을 하면서 밤새 울었어요. 비행기승강대를 밟고 올라가면서도 막 비틀거리면서 아저씨생각을 하며 울었어요. 어머니 그랬죠?》

《오냐, 그런가보더라.》

임씨는 서글픈 미소를 그려보인다.

청년은 곁에서 조잘거리는 윤전이를 끌어당겨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윤전이는 눈물이 글썽한 눈을 들어 청년을 쳐다본다.

《3년계약이니까 곧 돌아올거예요. 3년이면 서른여섯달밖에 더 돼요? 벌써 두달이 지나갔어요.》

청년은 괴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윤호는 어데 갔습니까?》

《그앤 신문배달을 하면서 고등학교에 다니고있네. 저녁신문을 돌리고나면 올거네.》

다시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김학배는 청년이 대답을 피하던 화제를 꺼냈다.

《그래, 윁남에서는 얼마나 고생이 심했나?》

청년은 짧게 뱉아내듯이 대답했다.

《이 땅의 청년이면 겪어야 할 일을 저도 치르었을따름입니다.》

《그럴테지.》

어른들의 대화가 서먹서먹해지자 윤전이가 청년을 불렀다.

《아저씬 왜 언니에 대해 더 묻지 않으세요? 서도이췰란드면 어느 지방의 무슨 병원엘 갔고 편지는 몇번 왔고 그리고 또…》

청년은 소녀의 머리를 쓸어주며 웃어보였다. 김학배부부에게는 그것이 자기들을 문책하는 아픈 채찍으로 느껴졌다.

임씨가 입을 열었다.

《서도이췰란드에 가서 공부하는 하병원댁 작은 선생님이 잠간 다녀가려고 돌아오셨다네. 전번에 윤옥이가 보낸 편지며 아버지에게 드리라는 약들을 전해주러 일부러 찾아왔을 때 그애 이야기도 들려주었지.》

《예…》

청년의 입에서는 더 물어보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임씨는 가볍게 한숨을 쉬였다.

《요다음에라도 짬이 있으면 한번 들려보게. 부친님 삼년상을 치르느라고 오셨다는데… 참, 하병원이 문산으로 옮겨간걸 자네도 알고있겠지?》

《알고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언젠가 윤옥의 편지를 통해 창수도 알고있었다.

윤옥이가 간호원으로 있던 하병원은 창수의 고교시절 영어교원이던 하준혁의 형이 경영하는 병원인데 그가 윁남으로 가게 되였을 때 준혁은 도이췰란드문학을 전공하기 위해 류학갔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하준혁선생은 자네를 퍼그나 아끼던분인줄 알고있는데…》

김학배가 청년에게 물었다. 그러나 간단한 대답외에 별다른 반응이 없다.

임씨는 부엌으로 나가 딸이 사랑하는 청년을 위해 쌀을 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방안에서는 남편이 청년을 붙잡는 소리가 나고 이어 문을 열고 나오는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어델 가려구? 날이 저무는데…》

임씨가 달려가 굳이 말렸건만 청년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선다.

임씨는 눈물을 감추고 딸 윤전이와 함께 청년을 바래주었다.

청년이 저만큼 멀어져갔을 때 윤전이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별안간 집쪽으로 달려가더니 되돌아나왔다.

《아저씨! 제가 깜빡 잊어버릴번 했어요. 이건 언니가 아저씨 오시면 드리라고 했어요. 그리고 여기 적은게 언니주소예요.》

숨을 할딱거리며 소녀가 내민것은 책상우에 있던 사진틀에 끼워져있던 윤옥의 사진과 그가 있다는 함부르그의 병원주소였다.

《고맙다.》

청년은 윤전이앞에서 잠시 사진을 바라보더니 윤옥의 주소가 적힌 종이쪼각과 함께 안주머니에 간수한다.

《아저씨, 언니에게 꼭 편지하세요. 저도 언니에게 편지하겠어요.》

청년은 머리만 끄덕여보이고 윤전이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자리에 우뚝 서있었다.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8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