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살아있는 사람들의 주소

2

 

어느덧 눈이 그치고 변덕스런 해는 먼발에 바라보이는 수락산에 화려한 락조를 던지고있었다. 군데군데 주름잡힌 골짝들에 진한 자주빛이 어리기 시작하더니 하늘과 또렷이 갈라져나와 희끄무레 드러내고있는 산마루 바위너설에도 붉은 해살이 비치고있다.

리창수는 윤전이가 사라진 후에도 그냥 그 자리에 서있었다.

분하고 야속했다. 윤옥이 비우고 간 그 집에 앉아있는 시간이 참을수 없는 아픔과 모욕감으로 되살아났다. 그럴수록 가슴이 찢기고 저려올랐으며 눈앞이 캄캄했다.

하루에도 몇번이나 눈먼 죽음이 오고가던 윁남의 수치스런 싸움마당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을 때 그가 맨 먼저 그려본것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처녀의 얼굴이였다.

어머님을 모시고 윤옥이와 함께라면 팅팅 부어오른 두발과 함께 긁히고 닳은 청춘, 매맞고 찢기고 멍든 청춘을 밀림속에 파묻고 와도 다시 새 삶을 시작할수 있을것만 같았었다.

윤옥의 정겨운 눈길을 아침저녁 받기만 하면 자기가 맛본 그 무서운 공포와 수치감과 잔인한 추억들도 고스란히 파묻을수 있을것 같았다.

어머니와 누이가 살고있는 땅에서 윤옥이와 함께 살아보겠다는것이 구사일생으로 사지에서 돌아온 그의 유일한 희망이였고 기쁨이였고 바람이였으며 그 모든것이였다.

그러나 윤옥이 그를 기다리고있을줄 굳게 믿고 윁남땅 죽음의 밀림속에서 시작되였던 그 규칙적인 잰걸음을 쉬임없이 놓아왔었는데 사랑하는 처녀는 이미 먼 나라로 떠나고 없었다.

창수는 자기가 마지막으로 안고 온 그 꿈이 눈앞에서 부서져나가는듯 했다. 그는 땅을 치며 울고싶었다.

온몸의 맥이 풀린 그는 허둥거리는 눈을 사방에 돌렸다.

기대에 부풀어오른 가슴을 안고 윤옥의 집을 찾아갈 때는 눈에 띄지 않던 판자촌의 낮은 지붕들, 거기 지질러둔 칙칙한 돌들이며 혹은 판자쪽으로 씌운 초라한 집들이 그의 시야에 나타났다.

갑자기 걸죽한 악취가 사방에서 풍겨왔다. 아까와는 다르게 모든것이 보기에 거슬리고 화가 났다.

창수는 뻐스정류소가까이에 있는 의자를 보자 더는 걸을 힘을 잃고 주저앉고말았다. 어깨죽지와 잔등에 난 부스럼이 가려워왔다.

차창마다 두터운 철판으로 가위다리를 쳐놓은 군용렬차에 올라 윤옥이와 마지막으로 헤여지던 그날이 선명히 눈앞에 떠올랐다.

헌병들과 경찰들이 총과 곤봉을 빼들고 위협하고있었으나 역구내에까지 밀려든 《국군》장병들의 가족들속에 섞여 그날 윤옥은 윁남으로 끌려가는 그를 바래주었다. 렬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까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창수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있던 처녀는 별안간 무어라고 부르짖으며 군중을 비집고 나왔다.

윤옥은 자기를 제지하는 헌병을 뿌리치며 이쪽으로 달려오다가 무엇에 걸채였는지 푹 앞으로 꼬꾸라졌다.

가까스로 일어선 처녀는 속력을 더해가는 렬차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오며 쉴새없이 부르짖었다. 창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윤옥이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고있음을 알수 있었다. …

《윤옥!》

그는 머리를 싸쥐며 낮게 부르짖었다.

문산쪽으로 옮겨갔다는 하병원을 찾아가보고싶은 생각이 불같이 일었다.

하준혁선생을 찾으면 윤옥의 자세한 소식을 들을수 있을것 같았다. 윤옥의 집에서는 캐여물어보지 못한, 아니 더 듣고싶지도 않던 그에 대한 이야기를 거기 가서 듣고싶었다.

《잠간!》

누군가 그의 옆구리를 다쳤다. 앞에 낯선 가죽잠바가 서있었다.

《증명서!》

창수가 꺼내보인 제대증명서를 깐깐히 살펴본 후 가죽잠바의 사나이는 그의 아래우를 훑어보면서 주의를 준다.

《조심해야 돼. 따기군들이 집적거려도 모르고있더군.》

그때문에 불시심문을 했다는 어투다.

여전히 아무 대꾸도 없이 어깨죽지를 긁고있는 창수를 노려보던 가죽잠바는 발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돈 놈이군!》

그로부터 약 두시간후 창수는 문산역앞 검문소를 거쳐나와 하병원을 찾고있었다. 검문소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며 시작되는 거리에는 저녁불빛이 들어오고있었다.

그는 어방대고 간판들에 눈을 주었다. 신문사건물을 지나자 산파간판이 눈에 띄였다. 나이듬직한 그 집 녀인이 하병원을 가리켜주었다.

다방, 술집, 식당, 당구장, 양장점, 미장원, 가발상, 전당포, 법률사무소, 금은시계점, 은행, 구멍가게 등으로 이루어진 거리 한끝에 그가 찾는 병원의 2층건물이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 응접실에서 손님을 맞고있던 하준혁이 급히 달려나왔다. 창수는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스승앞에서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창수군이 아닌가?》

준혁은 그의 팔을 덥석 쥐며 큰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제자를 자기가 거처하는 2층으로 데리고 간 준혁은 자리를 권하며 그간 지나온 형편을 묻기 시작했다. 창수는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였다.

제자의 초췌한 얼굴에서 그가 겪은 마음고생을 본 스승은 많이 묻지 않았다.

준혁은 남달리 활달하고 등산을 좋아했으며 학과성적도 첫째둘째를 다투던 제자에게 은근히 걸고있었던 스승으로서의 기대가 아쉽게 회상되였다.

준혁이 묻는 말에 대답하면서 창수는 초라한 자신을 옛날에 그처럼 따르고 존경하던 스승앞에 드러내놓고있는것이 부끄러웠다. 그의 대답이 자주 한자리에서 맴돌았다.

《너무 락심하지 말게. … 그새 자네를 념려해서 애태우신 어머님을 잘 봉양해드리게. 자네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얼마나 기뻐하시겠나.》

《…》

《윤옥이네 집에 들렸었나? 전번에 나도 들린 일이 있네만…》

《예.》

창수와 윤옥의 사이를 알고있는 준혁은 그가 윤옥의 집을 거쳐왔다는 말에서 자기를 찾아온 제자의 뜻을 알아차렸다. 준혁은 얼굴빛을 고쳤다.

《윤옥이는 잘 있네… 아니, 자네앞에서 진실을 감출 필요가 없지. 여기서 간 간호원들은 무척 힘들게 살고있네. 그럴수밖에 없지. 남의 나라에 가서 일해주어야 하니…》

준혁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러나 너무 념려말게. 윤옥이는 워낙 령리한 처녀니까.》

준혁은 그새 두어번 함부르그의 자기가 사는 아빠트에 윤옥이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며 고생스럽지만 힘껏 살기 위해 애쓰고있다는 소식을 소상히 들려주었다.

창수는 바로 몇주일전까지도 윤옥을 만나보았다는 스승이 한층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윤옥이가 자기곁에 없는 아픔이 심장을 찔렀다.

하준혁은 제자의 기분을 돌려세우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내 대학동창들이 와있는데 아주 멋진 친구들이야. 싸움군들이고… 자네가 알아두어서 나쁠것이 없을거네.》라고 하면서 창수를 일으켜세워 아래층 응접실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손님 둘이 있었다. 준혁은 허물없이 그들에게 창수를 소개했다.

의자에 빳빳이 등을 세우고 앉아있는 길쑴한 얼굴에 시선이 날카롭고 강마른 체구를 한 사람은 모신문사 지국장이였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몸집이 틀진 손이 류달리 희고 큰 사나이는 이곳에서 법률사무소를 차리고있는 변호사라고 했다.

그들은 창수가 윁남에서 귀환한줄 알자 이것저것 그쪽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다가 창수에게 량해를 구한 후 일시 중단되였던 자기들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두사람은 무고한 혐의를 받은 어떤 피고 하나가 살인범으로 몰려 종신금고형에 처해졌다는 원죄사건을 화제에 올리고있었다.

지국장이 변호사를 추궁했다.

《변호인들이 내세운 갖가지 반증도 배제하고 피고인의 상소도 기각하고서 그따위 오심, 오단으로 종신의 형벌을 들씌울수 있단 말이지?》

《문제는 자네가 관심을 두고있는 그 증거나 반증이나 진실에 있는것이 아니라니까. 어떤 사건이든 유죄판결에 의문이 있다 해도 일단 언도가 된 판결은 부동의 힘을 가지는거지. 법의 안전성이 그것을 요구하니까.》

신문사 지국장이 가운데손가락을 곧추세우고 변호사를 위협했다.

《판결리유라는게 사후에 붙인 합리화에 불과할 때도 말이지?》

《그렇다네.》

《자네가 신봉하는 그것이 무슨 법인가?》

하준혁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자네들은 대학시절때처럼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군.》

변호사가 지국장을 놀려주었다.

《보다 중요한것은 자네와 내가 존재하는 한국의 법치하에서 살자면ㅡ》

그는 하던 말을 잠간 멈추고 창수쪽을 곁눈질하며 뜨적뜨적 입을 놀렸다.

《내가 잘못 선택한 직업인 변호사가 되기보다 검사나 판사직이 바람직하다 그 말일세.》

《왜 대통령이라고는 하지 않는가?》

지국장이 비꼬았다.

《나는 군인이 아니니까.》

창수는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으나 차츰 흥미를 잃고 덤덤히 앉아있었다.

지국장과 변호사의 언쟁이 다시 시작되자 하준혁이 그들을 말렸다.

《자네들은 새로 온 손님앞에서 자기들의 이야기에만 열중하고있군!》

준혁의 말에 두 사나이는 그제서야 론쟁을 중지하고 창수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국장이 창수에게 물었다.

《윁남에서 어느 전선에 가있었다고 했지요? 딘빈지구라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윁남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유가족들에게는 비닐봉지에 든 유골들이 보내지는데… 듣는데 의하면 그속에는 불타죽은 윁남의 물소뼈다귀도 섞여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지국장은 자기의 직업상 꼭 이것을 알아야 하겠다는 뜻으로 물었다.

《내가 어떻게 그런걸 알겠습니까!》

창수의 어성이 높아졌다.

지국장은 변호사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격전지에 가있었군. 아무리 청부전쟁을 한다손치더라도 파병의 규모나 방법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있었을게 아닌가 말이야. 하필이면 사상자들이 가장 많이 나는 그런데다 파병할건 무어란 말인가. 다른 나라들은 약은 수를 다 쓰는데…》

《그런 재량권을 행사할수 있었다면 애당초 워싱톤의 위협에 놀라지 않았을게 아닌가? 파병을 안하면 38도선에서 저네들 군대를 거둬가겠다고 했을 때 말이야.》

지국장은 그 말에는 대꾸없이 중얼거렸다.

《지금 이남에 주둔하고있는 미군이 얼마더라?》

《그런거야 자네가 더 잘 알 일이지.》

지국장이 문득 창수쪽으로 몸을 돌렸다.

《맹호사단이라 했지요? 군에서는 공로가 현저한자들에게 태극, 을지, 충무, 화랑 등 멋지고 영광있는 이름의 무공훈장을 준다는걸 알고있는데요.》

창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까부터 그들이 나누고있는 대화를 수긍하고있었으나 지싯지싯 육박해오는 지국장의 끈덕진 말투가 자기를 놀려주는것으로만 생각되였던것이다.

사회에 대한 지국장의 풍자와 해학을 자신에 대한 풍자와 모욕으로 잘못 받아들였던것이다.

창수가 흥분하여 무어라고 대답하려는데 하준혁이 지국장을 향해 정색을 해서 말했다.

《자네는 방금 상처를 입고 돌아온 력사의 희생자에게 너무 지나친 질문을 하고있군. 구태여 아픈 상처를 다칠게 뭐람.》

그는 창수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그의 목덜미에 나있는 상처를 보았다.

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창수에게로 다가갔다.

상기한 얼굴을 숙이고있던 창수의 목덜미아래쪽에 나있는 부스럼자리가 그의 눈에 띄였다.

《어떻게 다쳤는가?》

《아닙니다.》

준혁은 창수가 몸을 빼려고 했지만 그의 저고리 뒤자락을 조심스레 들어보았다. 그리고는 놀라며 말했다.

《어서 치료를 해야겠네.》

밝은 불빛아래 드러난 창수의 잔등에는 거뭇거뭇 딱지가 앉은 커다란 부스럼자리가 여러개나 나있었다.

어깨죽지와 잔등에 앉은 종처에서는 진물이 흐르고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덜미에는 파편에 맞은듯 길게 째진 상처자리가 드러났다.

좌중은 물을 뿌린듯이 조용해졌다. 준혁은 보아서는 안될것을 본 사람처럼 창수의 옷자락을 도로 내리웠다.

《이 댁 하박사에게 그 상처를 어서 보여야 하겠소.》

지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숨을 쉬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종전과 같은 가시돋힌 어조가 가셔지고있었다.

《호오! …》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며 변호사가 감탄도 아니고 한숨도 아닌 소리를 냈다.

지국장과 변호사가 돌아가자 하준혁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내가 상상한것보다 고생이 더 심했군! 웃동을 벗게, 약을 바르게.》

창수는 웃도리를 벗었다.

스승은 제자의 목덜미에 건너간 파편자국과 윁남의 모기에 물려 벅벅 긁어서 생긴 커다란 부스럼자리들을 이윽토록 지켜보며 간호원을 불렀다.

간호원이 나타나자 준혁은 약을 가져오게 하여 창수의 잔등에 발라주며 입을 열었다.

《자네의 잔등을 보니 마치 이남사회의 얼굴을 보는것 같군. …》

《…》

창수는 스승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면서 그가 약을 바르고 붕대를 다 감아주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잠시후 준혁은 다시 창수와 마주앉았다.

창수는 이상하게 마음이 산란했다. 스승의 따스한 정이 가슴에 젖어들수록 자기가 서있는 지점이 더욱 뚜렷해지고 그것이 원통하고 슬펐다.

이윽고 그는 스승에게 말했다.

《저는 윁남전쟁터에 끌려가서 목덜미와 잔등과 어깨죽지에만 상처를 받은것이 아니였습니다. … 저를 그 무서운 사지에서 건져준것은 어머니였고 누이와 매부와 그리고 선생님들과 또 저를 기다리고있을 윤옥이였습니다.》

《음!》

《저는 오직 한가지 생각만을 안고 이렇게 돌아왔습니다만…》

준혁은 담담한 창수의 목소리에서 윤옥이가 없는 땅을 치며 통곡하고있는 제자의 울음소리를 듣는듯 했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를 위로할수 있는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잠시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창밖에서 취주악단이 연주하는 선률이 울렸다.

술에 취한 미국인들이 부르는 목쉰 노래소리가 뒤섞였다.

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창수의 어깨에 두손을 얹고 말했다.

《고맙네. 나를 스승이라고 잊지 않고있었다니…》

그는 창수의 두눈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부끄럽게도 아직 나는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좋을지 그것을 찾지 못하고있네. 그러나 나는 자네에게 약속하네. 자네가 나를 잊지 않았듯이 나도 자네를 결코 잊지 않겠네.》

스승과 제자는 얼굴을 마주한채 한참이나 서있었다.

그날 저녁 창수는 스승의 집에서 저녁을 한 후 준혁이 쉬고 가라고 권했으나 서울로 되돌아가 부산행 막차를 탔다.

이튿날 낮 창수는 부산에서 약 70리 되는 매부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얹혀사는 매부집은 그의 집이기도 했는데 마부노릇을 하는 매부 문대식은 창수대신에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있었던것이다.

서울에서 돌아온 침울한 창수를 맞은 어머니와 누이는 근심에 싸여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무슨 일이 있었겠다고 보았기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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