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살아있는 사람들의 주소

3

 

서울에서 돌아온 후 창수의 잔등에 났던 종처는 날이 가자 아물기 시작했으나 심장에 새로 생긴 상처는 이제 막 입을 벌리려 하고있었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린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창수에게 물어보았으나 처음에는 대답을 안하다가 몇번만에야 윤옥이가 서도이췰란드로 떠난 사실을 전했다. 두 집안사이에 서로 약혼한것은 아니지만 자기들끼리 좋아하기에 장래에 가서는 며느리로 삼겠다고 탐탁하게 보아오던 윤옥이가 외국으로 가버렸다고 들었을 때 어머니는 잠이 오지 않았다. 창수가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기때문에 깊은 사연은 몰라도 아들의 심중이 어떠랴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기의 생각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아들의 상처를 혹여 다칠가 해서였다.

어머니와는 달리 창수의 누이는 이쪽에서 안아주려고 해도 자꾸 버그러져나가려는 동생을 못마땅해했다.

윁남에서 돌아오던 길로 말라리아를 앓아 덜덜 떨고있던 그가 간신히 일어나서 서울에 갔다오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그런 몸으로 어떻게 길을 떠나겠느냐, 며칠 더 조리를 하고 가라고 했지만 누이는 어머니의 말을 꺾어 어서 갔다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돌아온 후부터는 벙어리가 되였는지 무슨 말을 건늬여도 대답조차 하기를 싫어하는 동생이다. 어머니를 통해 윤옥과 그와의 관계를 대강 알게된 누이는 동생이 윤옥이때문에 그럴것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윤옥이에게 편지를 쓰는가 해서 살펴보아도 그런 일은 없고 편지를 쓰라고 권해보아도 대꾸조차 하지 않는것이다.

윤옥이에게 편지를 못 쓰겠으면 달포전에 서울 윤전이한테서 온 편지에 회답이나 해주거라, 그 편지가 윤전이 이름으로 왔지만 어디 그애 편지냐, 윤옥이 부모님의 편지나 같지 않느냐 하고 거듭 타일러도 아직도 답장을 쓰는것 같지도 않다.

누이는 윤옥이 일때문에 동생이 저러는것이 아니라면 여러번 퇴짜를 맞은 취직문제로 해서 속이 상한거겠거니 하는 생각도 해본다.

매부가 앞에 나서서 처음에는 어느 회사 서무과에 리력서를 내고 다음 리력서는 모토건회사 사무원자리가 비였다기에 거기에도 냈으나 감감무소식이다. 그밖에도 리력서를 두장이나 더 낸것을 알고있다.

워낙 칠칠하지 못한 남편(누이는 남편을 자주 그렇게 불렀다.)이 나섰는데 다 뢰물먹일 밑천도 없는터에 취직이 그리 쉽게 되겠는가, 사지에서 간신히 살아온 동생에게 취직문제로 해서 언짢은 얼굴 한번 지어보인 일 없는데 동생이 그 일로 해서 저렇게 괴로와할 까닭은 없겠다고 생각되였다.

누이는 이렇게 동생의 태도에서 가리새를 잡지 못하고있는데 며칠전부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동생이 마치 이 집에서 천년만년 살것처럼 노마(쫄랑말의 이름)가 들어있는 마구간곁에 자기 혼자 있을 방을 새로 꾸리느라고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있다. 방이 두칸이니 어머니와 함께 있어도 되겠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 그것도 하필이면 마구간옆에다 저럴가 하고 가만히 지켜보고있었는데 오늘 아침엔 제손으로 풀을 쑤어 직심스레 도배를 한다, 장판을 한다 부산을 피우더니 또 벌렁 자리에 드러눕고말았다.

보다못해 아까 그의 방문을 열어보자 어디서 난건지 윤옥이의 사진을 두손에 받쳐들고는 눈을 좁히고 바라보고있는것이 아닌가.

누이는 동생의 꼴이 가엾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그에게 하려던 말을 뒤로 미루고 사진에 대해 물었다.

《윤옥이가 보내준거냐?》

《…》

《편지를 안 썼는가 했더니 그새 보낸게로구나.》

《…》

창수는 어릴 때부터 두려워하던 누이를 피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얘 창수야, 내 말 좀 들어.》

창수는 할수없이 도로 자리에 앉았다.

《난 네 속을 몰라서 그런다. 어머니생각도 좀 해봐라. 너더러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라는게 아니야. 네 매부가 아무리 못났어도 아직은 일없다. 돈은 안 벌어와도 좋으니까 제발 속시원히 말이나 좀 해다오.》

《…》

동생이 대답이 없자 어릴 때부터 항상 창수보다는 꾀가 많고 령리하다고 자부해왔었고 또 창수도 그것을 인정하고있는 누이는 이런 소리를 했다.

《너 내 집에 있는게 괴로와서 그러지? 네 매부가 어머니나 너한테 섭섭한 말을 했던게로구나. 섭섭한 일이 있었다 해도 모른척 해야 한다. 어머니를 생각해서도…》

누이의 꾀에 넘어간 동생은 그때까지 하던 말중에서 가장 긴말을 했다.

《누님은 왜 사람좋은 매부를 자꾸 건드려요? 저렇다니까…》

이제 말문이 열렸다고 기뻐한 누이는 앉은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글쎄, 그런게 아니라면 좋지만 혹시나 해서 말해봤을뿐이야. 그래 윤옥이네 집이나 하병원댁에 갔던 일은 어떻게 잘됐니? 네가 어머님한테는 말씀드린것 같더라만 나한테는 말 않더구나. 누이가 누이같잖아서 그러는지…》

《에이 참, 누이는 언제나 저렇다니까.》

동생은 눈의 흰자위를 번쩍이며 일어섰다.

《말하기 어려우면 그만둬라. 나도 대강 알고있다.》

딸의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있던 어머니가 념려스러운듯 방안으로 들어왔다.

《뭣들 가지구 그러니?》

어머니의 조용한 목소리를 듣자 누이는 입을 다물었다.

《넌 또 그애를 못살게 들볶는가보다. 그렇게도 먼길을 갔다온 사람이면 생각인들 오죽이나 많겠냐? 좀 가만히 놔두어라.》

창수는 자기가 윁남으로 끌려간 후 한두해사이에 갑자기 늙어버린 어머니의 희디흰 귀밑머리를 구슬픈 눈매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념려마세요. 누이가 제일을 걱정해서 그러는거예요.》

그는 누이보고도 말했다.

《누이도 너무 걱정말아요.》

누이는 동생이 얼마나 역겨운 일들을 보았으면 그랬으랴 하고 코마루가 찡 울려 더 말을 못했다.

어머니가 재촉하는대로 방문을 열고 나서면서 누이는 이런 소리를 했다.

《마구간옆에 무슨 방이랴 했더니 꾸려놓은걸 보니 누가 보면 깜짝 놀라겠구나.》

어머니와 누이가 밖으로 나가자 창수는 윤옥이의 사진을 다시 꺼내여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윤옥이와 함께 오르던 수락산의 저녁노을이 그의 등뒤에서 너울거렸다.

이쪽에서 보면 온통 바위덩어리로 이루어진 그 산 뒤면에는 동화속에 나오는 신기한 숲처럼 소나무, 잣나무들이 파랗게 자라나고있었다.

새봄을 맞아 키를 돋구고있는 그윽한 숲속을 윤옥이가 앞장서서 걸어가고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우듬지에서 새여든 눈부신 해살이 처녀의 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과 함께 춤추고있다. 꿈속에서처럼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봄볕을 받은 산자락에서 풍겨오는 싱싱한 땅냄새가 두사람을 취하게 한다. 두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어느때보다도 그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것만 같다.

앞장서가던 윤옥이 문득 발길을 멈추더니 상기한 얼굴로 창수를 뒤돌아본다. 수줍은 미소가 피여오르고있는 처녀의 단정한 입술은 쉴새없이 그 무엇인가를 그에게 속삭이고있다. 입술에 올리고있는 감미로운 속삭임과는 달리 한껏 크게 뜬 그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인생의 첫 새벽길에 만난 청년의 가치를 다시한번 확인해보고 가늠해보려고나 하듯이 그윽히 떨고있다.

돌연 고개를 되돌린 윤옥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앞으로 달음질친다.

그의 발밑에서 꽃들이 흩어지고 관목들이 설레이고있다.

그날 윤옥과 주고받은 깨끗한 맹세가 창수의 심장을 아프게 죄여왔다. 그날에 다진 맹세를 지키기 위해 무릎까지 빠지는 진창길과 피비린내나는 밀림을 헤쳐왔건만 처녀는 먼 나라에 가고 없다.

다만 그가 뒤쫓아오기를 기다리고있던 윤옥의 청결한 옷섶에 묻어있던 찔레나무가시들이 보석처럼 빛나고있을뿐이다. 그의 발밑에 피여있던 오랑캐꽃이며 민들레들이 생각날뿐이다.

어느 산야에서나 흔하게 볼수 있는 그 진달래꽃과 민들레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로만 여겨지던 그 기억이 생동하다.

두사람이 서로 상대편을 못내 그리워하고있음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것이 그날이였다.

자기에게로 향하고있는 아름다운 처녀의 몸과 마음을 바라보았을 때 창수는 눈이 부시였다. 그에 맞게 자기의 몸과 마음도 아름답고 깨끗해야 한다는것을 그는 알았었다. 그날의 그 의식은 항상 그에게 선량하고 깨끗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어디에 가나 함부로 몸을 굴릴수 없게 하였던것이다.

그리움이 조수처럼 밀려왔다.

둘이서 수락산에 올랐던 그날 저녁이였다. 두사람은 붉게 타는 저녁노을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푸른 꿈을 서로 펼쳐보였었다. 창수는 인간의 고된 로동을 덜어주는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기사가 되겠다고 했었다. 그러면 윤옥은 사람들의 건강을 보살펴주고 그들의 수명을 지켜주는 의사가 소원이라고 했었다.

꽃들이 피여있는 들길을 걸어오던 창수의 눈앞에는 청진기를 귀에 꽂고 어른들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애쓰는 윤옥이가 나란히 가고있었고 윤옥의 곁에는 우람한 치차들과 윙윙거리는 발동기들사이를 오고가며 크고작은 기계들을 만지고있는 젊은 기사가 함께 가고있었다.

들길이 끝나자 미아리고개가 저만큼 나타났었다. 그전에는 부모들이 있는 자기 집가까이에 자주 오는것을 꺼리던 윤옥이 그날따라 자기 집앞으로 해서 돌아가라고 그에게 당부하는것이였다. …

그를 처음 알게 되였던 하병원이 눈앞에 뚜렷이 그려진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기고 간 소규모의 견방직공장을 맡아보던 매부마저 사업에서 실패했을 때 창수는 하준혁의 힘을 입어 하병원의 단골손님이던 어느 집에서 가정교사로 있었다. 가끔 하준혁을 찾아 병원으로 가게 된것이 윤옥을 알게 된 나날이였다.

창수가 윤옥의 부친 김학배를 알게 된것도 그 병원에서 있은 일인데 모종합병원에 있다가 개인병원을 차려나오게 된 하준혁의 형이 그 종합병원 서무과에서 일하던 김학배의 청을 받아들여 윤옥을 간호원으로 쓰게 된 사정을 알게 된것도 그무렵이였다.

윤옥이 자기의 아버지에 대해 구슬픈 얼굴로 이야기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김학배의 소원은 대서사가 되는것이라 했다.

학력이라고는 옛날 서당을 다녔고 일정때 학비부족으로 중학을 중퇴했을뿐인 윤옥의 아버지는 글씨 하나는 뛰여나게 잘 썼다.

윤옥이는 소녀때부터 아버지가 글씨를 쓰게 되면 먹을 갈아드리기도 하고 흰종이에 분명히 찍혀져나오는 아버지의 붓글씨를 숨을 죽이고 지켜보군 했었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도 일손을 멈추고 함께 지켜보는것이 락이였다고 했다.

윤옥이 아버지가 대서사자리를 바란것은 무슨 특별한 까닭이 있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학력과 능력에 비추어 그런 자리가 알맞춤하다고 생각한것이였고 더군다나 이웃에 대서사를 하면서 딸을 상급학교에 보내고있는 사람이 있어서 항상 그 자리를 외우고있었다고 했다.

창수는 자기가 찾아갔을 때 불편한 몸을 일으켜세우려고 허우적거리던 윤옥이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자리에 누운채 벽에 걸어둔 족자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던 그의 목소리와 자기를 바라보던 당황하고 실망한 눈길이 뒤쫓아왔다.

《와아! 와아!》

문밖에서 마구간에 말을 몰아넣는 매부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중단시켰다.

창수가 문을 열고 나가자 매부는 노마의 배를 떠주고 고삐를 맨 다음 처남에게 말했다.

《부산에 있는 내 친구에게 부탁했던 일이 이번에는 됨직도 하니 며칠후에 떠나보게.》

처남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있는 취직자리를 묻기 전에 매부는 말을 이었다.

《여러곳에 찌어보겠다 했으니 좌우간 결판이 날거야.》

세면을 마친 매부는 마구간옆에 창수가 든 방문을 벌컥 열어보더니 들어가지는 않고 문고리를 쥔채 방안을 둘러보았다.

창수를 향해 무슨 말을 하려다말고 그는 도로 문을 닫고 볼일이 있는지 밖으로 나가버렸다.

매부가 사라지자 창수는 무료한 나머지 마차바퀴 굴대통에 기름을 치기도 하고 마구간에 들어가 말 뒤다리를 들어 말굽의 편자를 살피기도 했다. 그것을 끝낸 후 솔로 말갈기를 빗겨주고있는데 부엌에서 동생의 거동을 지켜보고있던 누이가 달려나왔다.

《얘 창수야, 할 일이 없으면 낮잠이나 자거라.》

창수가 뒤돌아보자 누이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여있다.

《어디 할노릇이 없어서 처남매부가 떨쳐나서 마부노릇을 할 작정이냐? 아무 일 안해도 좋으니까 제발 마구간에는 들어가지 말아라.》

창수를 꾸짖는 딸의 목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등에 업힌 외손자를 다독거리며 나타났다.

《내버려두거라. 저도 생각이 있어 그러는것인데…》

《어머니는 가만히 계셔요. 사위 잘 보아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까지 말몰이군이 됐다구 누가 손가락질하지 않을것 같애요?》

《그런 욕은 들어도 일없다.》

밖에서 말에게 먹일 밀기울과 짚단을 사들고 온 매부가 마당에 들어서자 누이는 더한층 소리를 높였다.

《처남매부간에 떨쳐나서 꼴 좋겠수!》

창수의 매부 문대식은 안고 온 말먹이를 소리나게 땅에 내리우고는 마른손으로 얼굴을 뻑 문지르고 이발을 보이며 웃었다.

대기업에 밀려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조그만 견방직공장을 날려버린 그는 안해의 지청구에 버릇이 붙어있는것이다.

그러나 며칠후 남편이 갑자기 그즈음 돌고있던 리질을 앓게 되여 자리에 눕게 되자 창수의 누이는 자기가 한 말을 잊은듯이 동생이 매부대신 마차를 끌고 나가도 입을 다물고있었다. 창수라도 마차를 부리지않으면 당장 어머니와 가족들의 입에 풀칠이 어려웠던것이다.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8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