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살아있는 사람들의 주소

4

 

지금은 삼륜차, 용달차 등에 밀려나고말았지만 이 이야기가 시작되던 몇해전만 하여도 리창수의 매부가 사는 B읍에서는 주로 마차가 읍내를 중심으로 한 반경 50리안팎의 화물수송을 전담하고있었다.

이 고을은 부근농촌들에서 나는 농산물들의 집산지로서 인구 약 3만을 헤아리는 군소재지이기도 해서 비교적 물동량이 많아 중소도시의 운송업을 죄다 틀어쥐려는 C기업이 노리는 대상지의 하나이기도 했다.

열흘만에 서는 고을 장날에는 부근농촌들에서 오는 농민들로 제법 붐비고 근대화의 바람은 여기에도 불어와 농민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들의 간판도 《골목주점》, 《하와이홀》, 《다이야몬드식당》등으로 바뀌여져있었다.

이런 음식점들에 들어가면 읍내에 있는 미장원보다 약 2할가량 료금이 싼 마을돌이 눅거리미용사에게 노랗게 지진 머리를 한 젊은 녀인이 파리를 날리며 앉아있거나 늙수그레한 로파가 무뚝뚝한 경상도사투리로 막걸리며 지짐, 돼지발쪽, 순대국 등을 팔고있었다.

열흘장이 선 그날 읍내 중심에 있는 군청건물부근에서는 부산에서 온 책행상인이 낡은 잡지들과 소설책, 고담, 이야기책, 중학교 교과서며 참고서, 만화책따위를 벌려놓고 전을 펴고있었다.

얼굴이 둥글넙적하고 눈도 둥글둥글한 방울눈을 한 스물예닐곱 된 책행상인은 량손에 책을 들고서 행인들을 부르고있었다. 한손에 잡힌것은 《춘향전》이고 다른 손의것은 《천수경》이였다.

부근마을에서 온듯 한 아낙네들이 다가오자 그는 《춘향전》을 흔들어보이며 소리쳤다.

《자아- 렬녀 춘향전이요, 렬녀 춘향전! 전라도 남원땅 광한루에서 청화 5월 꾀꼬리 노래할 때 장림속에 그네 매고 당사실로 쌍그네 매고 월매 딸 춘향이가 사또자제 리몽룡과 그네바람을 일으키며 련애한 로만스를 모르고서는 녀성이라고 자랑할수 없습니더!》

노래부르듯 하는 그 소리에 끌려온 파마머리들이 낡은 《아리랑》, 《명랑》, 《사랑》등 책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눈은 책에 있으나 그네들의 귀는 행상인의 목소리에 있었다. 책장사는 기회를 놓칠세라 《춘향전》을 펼치더니 제 소리를 섞어가며 읽기 시작한다.

《춘향이 매맞는 십장가라, 리도령이 서울로 가버린 후로 어느덧 1년이라, 신관사또 변학도가 춘향을 조기는구나, 집장사령 거동보아라.… 8척장신 키큰 사령 한아름 형장을 안아다가 춘향이 코앞에 좌르르 벌려놓으니 철썩 간장이 다 떨어진다. 이놈 잡고 능청능청, 저놈 잡고 능청능청, 매우 치라, 예-이, 소리에 발맞추어 물러섰다 달아들어 한개를 딱 붙이니 부러진 형장가지 공중에 푸르르 떠나가며 오뉴월 급한 비에 벼락치는 소리로다.》

《아리랑》을 손에 들었던 녀인이 옆의 동행을 보고 걱정을 한다.

《저녁 보리쌀 안칠 때가 됐고마, 안 갈라카나?》

그 소리를 듣자 책행상은 한층 목소리를 높인다.

《재미있는 페지는 이제부터 나옵니더. 한대를 탁 치자 고추같이 독한 춘향이 가로되 1자로 아뢰리다, 일조리별 우리 랑군 일각삼추 못 잊겠소, 일편단심 굳은 마음 일시형액 가소롭소, 일만번 죽사온들 일호변경 있을소냐.》

십장가가 나오자 가자고 하던 녀인도 귀를 강구고 말이 없다. 십장가를 읊조리는 책장사의 랑랑한 목청이 울려퍼지자 장보러 나왔던 늙은이들은 물론 젊은 농군들과 학교에서 돌아오던 조무래기들까지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그속에는 외손자를 업고 나온 창수의 어머니도 섞여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오자 책행상은 더한층 소리를 높여 읊조리기 시작한다.

《두대를 딱 붙이니 2자로 아뢰리다, 이군불사 충신이오 이부불경 렬녀오니 이천리에 정배간들 이심을 두오리까, 이팔청춘 춘향정곡 이천명촉 하옵소서. …》

책장사의 어조는 처음에 보이던 장사기는 싹 없어지고 춘향이의 가련한 정상을 동정하는 진지한 목소리로 변해갔다.

《춘향전》의 랑독이 계속되자 눈이 여린 로파들이 쪼그리고 앉아 손등으로 눈물을 씻고있는데 젊은 아낙네들도 훌쩍거렸다.

파마기계를 자전거뒤에 싣고 마을돌이를 하고 오던 미용사 하나가 녀인들이 울고있는 책전 짝지발이앞에서 찍 소리나게 한발을 내려 자전거를 세우고 함께 듣고있다가 무엇이 우스운지 혼자 싱긋 웃으며 내렸던 발로 자전거 발디디개를 콱 밟았다.

《춘향전》의 선전이 끝났으나 젊은 녀인들은 무슨 리유에서인지 그책을 사라고 해도 얼굴을 붉히며 외면하는데 그것을 사고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돈이 없었다.

책장사에게 미안한듯 《춘향전》말고 낡은 잡지를 한권 산 젊은 녀자가 하나 있었고 만화책을 사간 코흘리개가 둘 있었을뿐이다.

행상인은 건너편 다이야몬드식당이며 골목주점안으로 떼를 지어 들어가는 손님들을 부러운듯이 잠시 흘겨보다가 왼손에 든 《천수경》을 펼쳐 낮은 목소리로 흥얼거린다.

《슬프고 슬프도다 어찌하여 슬프던고, 이 세상이 나아질줄 큰산같이 바랬더니 고생고개 넘어서다 백발되니 슬프도다. 어화청춘 소년들아 백발로인 웃지 마소, 티없이 가는 세월 넌들 아니 늙을소냐.》

여기까지 제 말을 섞어 읽어내려가도 한산해진 거리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책행상은 오늘 장사는 단념한듯 서산우에 한발기장밖에 남지 않은 해와 저 멀리 역광을 받으며 마차 한대가 오고있는 길쪽을 번갈아 보군 한다. 돌아갈 길을 근심하는 모양이다.

이윽고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책행상은 벌려놓았던 책들을 하나하나 먼지를 털어내여 껍데기에 영어문자가 쓰인 지함에 거두기 시작한다.

책행상이 가끔 내다보군 하던 부산쪽에서 읍내 앞으로 난 길로 쫄랑말이 끄는 마차 한대가 멀리 오고있다.

낯선 행인들과 지나칠 때마다 흘깃 돌리군 하는 령리한 눈을 가진 쫄랑말의 목에서는 유난히 큰 방울소리가 나고있다.

고무바퀴마차우에는 말채찍을 쥔 손을 로동복저고리 호주머니에 깊숙이 찌른채 역광이 눈에 부시여 고개를 숙이고있는 청년이 앉아있다.

그는 이날 아침 약 40리 밖에 있는 면소재지로 가는 짐을 부려다주고 오는 리창수였다.

마차가 굴러갈 때마다 상체를 흔들며 멍히 말방울소리를 듣고있던 창수의 몸이 읍내의 불빛이 저만치 바라보이는 산모퉁이길을 돌다가 허턱 앞으로 엎질러졌다.

그를 태우고 오던 노마가 말걸이를 옆으로 뿌리치며 돌연 길바닥에 쓰러진것이였다. 넘어진 말의 배가 부풀어오르고있었다.

땅에서 일어난 창수는 엉겁결에 내던졌던 말채찍을 집어들고 말 앞뒤를 오가며 살펴보았다.

원인을 알수 없었다. 그는 채찍의 힘으로 넘어진 말을 일으켜세우기로 결심했다.

그의 손에 잡힌 채찍이 몇번이나 소리를 냈다. 그러나 세차게 채찍을 울려도 노마는 사람같은 눈으로 창수를 올려다보면서 앞다리와 뒤다리를 번갈아 가며 허공만 차고있다.

창수의 채찍은 더 세차게 울었다. 그럴 때마다 노마는 더 크게 울음을 울며 허공을 향해 발길질만 한다.

털이 벗기 시작하는 봄철에 잘 먹이지 못한 말들은 병을 앓기 일쑤인데 무슨 병이 났는지 모르는 창수는 봉긋이 부풀어오른 배를 안고 뒹구는 노마에게 채찍을 먹이고있었던것이다.

그때 읍내쪽에서 달려오던 자전거 하나가 그앞에서 멈춰섰다. 얼굴이 둥글넙적하고 주먹코에 방울눈을 한 그 사람은 한번만 보아도 좀해서 잊혀질것 같지 않던 책행상이였다.

《참, 별난 마부도 다 보제!》

《춘향전》을 읊조릴 때와는 판판 다른 경상도사투리가 그의 입에서 튀여나왔다.

자전거에서 내린 청년은 호주머니에서 집게칼을 꺼내더니 《보이소, 말주인! 네발에 사관을 떠서 피를 내주면 되는기니까 채쭉질은 고만하고 이리 와서 말다리나 잡으소.》하며 노마곁에 가 쭈그리고 앉는다.

그가 시키는대로 하자 청년은 익숙한 솜씨로 노마의 네발에서 피를 뽑아준다.

한스러운 눈으로 창수의 채찍을 올려다보며 허공을 차다가는 이리저리 뒹굴며 울어대던 말은 얼마 안 있어 일어서더니 부르르 갈기를 털었다.

《내가 안 봤으믄 멀쩡한 말 한마리 죽일뿐 했네. 허어 참!》

이렇게 말하며 마부쪽을 쳐다본 책행상이 《이기 도대체 어뚜케 된 일인고? 리병장 아니가!》하며 깜짝 놀란다.

그 순간 창수도 《야! 윤상병!》하는 소리와 함께 책행상의 손을 덥석 쥐였다.

저녁녘이였고 더우기 말이 넘어져 뒹구는데만 마음이 급급하던 창수는 상대방의 얼굴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았던것인데 알고보니 노마를 구해준 청년은 일찌기 그와 함께 《국군》살이를 하다가 윁남으로 끌려가던 도중에 도망한 윤영태였다.

그는 강원도 홍천에서 중대편성이 끝나고 4주간의 유격훈련을 받게 되였을 때 취사반에 있는 기회를 리용하여 탈영하는데 성공했던것이다.

당시 창수가 속한 250명 전체 중대원들은 《비상》에 걸려 온종일 무서운 기합을 받았었는데 그날 보초근무를 섰던 창수는 누구보다도 더 가혹한 기합을 받지 않으면 안되였었다.

실로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된 두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맞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세상이라는기이 넓기도 하지만 알고보면 좁은거제. 너까지 해서 그때 친구들을 세사람이나 만나봤으니 말이다. 그때 내가 잠간 오줌 누러 갔다가 길을 몰라서 몬 돌아갔는데 벌써 3년이나 되제?》

윤영태는 자기가 철조망을 뚫고 탈영했던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네 말이 옳네. 세상이란 좁군. 또 어떤 때는 너무 넓고…》

《너무 넓어?》

윤영태는 모르겠다는듯이 머리를 기웃하더니 인차 동의했다.

《그래서 강산두루미들도 죽지만 않으믄 이렇게 만나보게 되여있는기라. 고생이 많았제?》

《뭘!》

《내사 약장수를 하고있다. 늬 솜씨를 보니까 마부가 된지 메칠 안되는갑다. 아까 저거이 말이다. 묵은기 내려가지 않아 그랬던기이다.》

창수는 얼굴이 붉어졌다. 식체로 그러고있은것도 모르고 채찍만 휘두르고있었으니 말이다.

윤영태는 물었다.

《뭣꼬, 니가 내보다 두살 밑이었제? 마누라 있나?》

《없어.》

《그래-》하며 말끝을 길게 뽑으며 놀라던 영태는 재차 물었다.

《병원에 다니던 춘향이가 있지 않았는가베. 편지 자꾸 해쌌던거말이다.》

창수는 묻는 말에는 대답을 안하고 되물었다.

《자네는 어떤가?》

《나도 없니라. 넘치고 처져서 아직 외기러기신세다.》

그들은 읍내에 들어섰다.

창수는 후날 이날에 있은 일을 회상할 때면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자기를 올려다보며 허공을 차던 말을 먼저 생각했다.

윤영태가 도와주기 전까지 소화불량증으로 넘어진 말에 채찍질만 하고있은 자신의 맹목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넘어진 그 말은 그때까지 그가 인생이라고 생각하고있은 바로 그것이였던것처럼 생각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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