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살아있는 사람들의 주소

5

  

지난 한때 쓰라린 《국군》살이를 하면서 함께 기합을 받고 함께 아파해본 두 청년은 《국군》막사안에서는 나누고싶어도 나눌수 없던 우정을 우연한 상봉에서 한꺼번에 나누려 했다.

읍내 어귀에 있는 락키식당이 나타나자 우선 들어가서 이야기하자는 윤영태를 끌고 창수는 시장 뒤켠 늙은 버드나무가 서있는 언덕아래에 있는 집으로 갔다. 창수를 뒤따라 마구간옆에다 낸 방에 들어선 영태는 놀란 눈으로 둘레둘레 방안을 살피다가 감탄했다.

《니 방이가? 참 조화제! 마구간옆에다 분통같이 꾸려놓고 사는구마!》

겉보기에는 반주그레하나 문을 열어보기만 하면 말이 아닌 집들을 자주 보아오다가 구지레한 마구간옆에 있는 방이 의외로 깨끗한것이 희한한 모양이였다.

방안을 둘러보다가 밝은 불빛아래서 창수의 얼굴을 뜯어본 영태는 저으기 놀란다.

《아이고 이 사람아, 얼골이 거기이 뭣꼬! 어디 아픈가?》

《일없네. 자네는 어떻게 지냈나? 약장수를 한다지?》

《그건 그런기이고 윁남에 가서 죽을 고생했제? 말 안해도 다 안다.》

영태는 그러면서도 궁금한듯 이것저것 묻던 끝에 《막걸리 받아주겠다고 편지 자꾸 써달라 카던 충청도내기 송일병은 살았나?》하며 같은 부대에 있던 한 청년의 운명에 대해 물었다.

문맹자이던 송일병이 고향에 보낼 편지를 좀 써달라는 때면 사병들은 그 대가로 의례히 그에게 막걸리를 사낼것을 요구하군 했었는데 영태는 그를 잊지 못하고있는 모양이다.

창수가 윁남에서 돌아오지 못한 송일병과 역시 같은 분대에 속해있은 황상병의 죽음을 전하자 《륙자배기 잘 부르던 그 전라도 륙사크도 죽었다 말이제.》하며 영태는 눈을 가다듬고 혀바닥끝으로 입술을 추긴다.

영태는 자기도 노래를 좋아하지만 어찌다 쉴참에 두눈을 감고 구성지게 륙자배기를 넘기면서 자기 고향의 한을 뽑던 한 청년의 모습을 그려보는것 같았다.

《뭐 얻어묵을라구 사자밥을 지고 날 잡아 잡주소 하고 갔나 말이다. 달라빼지 몬하고…》

영태는 큼직한 주먹을 쥐고 방바닥을 툭 쳤다.

《그기이사 죽을 코가 뻔한데 말이다. 살아와도 병신밖에 더 되겠나.》

창수는 친구가 한 마지막말이 자기를 두고 하는 말로만 느껴졌다.

《그뿐인가. 거기 가는기야 양코배기들 앞잡이노릇 하는긴데 양코배기들 대신에 내가 와 죽겠노? 내 부모 모시제도 힘드는데. 텍도 없는 소리!》

읍내에 있는 양복점에서 재봉공으로 일하는 창수의 누이가 돌아와 동생의 친구가 온것을 알고 술을 받아왔다. 누이는 옛친구와 만나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있는 동생을 보는것이 기쁜듯 했다.

《아이고 아주무이, 뭘 이러십니꺼?》하면서도 영태는 창수가 권하는 술을 사양하지 않았다.

《창수, 니 어무이 아직 안 오셨나? 아즉 내가 보이지 몬했는데…》

영태는 술을 하면서도 창수 어머니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못한것이 마음에 걸리는듯 했다.

창수는 술을 즐기지 않았다. 좀해서 술을 입에 대는 일이 없을뿐더러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그것이 그의 정신적결백성의 한 표현인것을 리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은 세상을 몰라서 그렇다고 했지만 그는 자기의 신조를 굽히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날 영태가 권하는 잔은 말없이 받았다. 그것을 본 누이가 기뻐하며 부엌으로 들어와 그때 마침 밖에서 돌아온 어머니에게 웃어보였다.

《쭉 따르라. 술은 꺾어묵으면 맛이 달아나니라.》

영태가 권하는 소리가 부엌에도 들렸다.

창수는 친구가 권하는대로 연거퍼 잔을 비우고있었다. 그가 싫어하는 취기와 현훈증이 왔다.

《한잔만 더해라. 이노무 세상 살아갈라문 술도 묵을줄 알아야 되니라.》

《더러운 세상이야!》

창수가 대꾸했다.

《망탕 도둑놈들 판 아니가!》

《개판이다!》

잔기침소리가 나더니 창수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영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수 어무이십니꺼? 어서 들어오이소. 인사가 늦었심더.》

《누군고 했더니 가끔 장에서 만나본 젊은이네.》

어머니도 오늘 낮에 영태가 장마당에서 《춘향전》을 읊조리는 소리에 눈물을 흘렸던것이였다.

《그렇심니더 어무이, 군청앞에서 책 펴들고 깨진 북소리를 내고있는기이 짐니더.》

《그게 왜 깨진 북소리겠소. 얼마나 좋은 책들이라구.》

《좋기야 뭐이 좋슴니껴. 하늘에 방맹이 매어달 재주가 없어서 그런노릇을 하고있심더.》

창수는 영태가 약장사를 한다기에 그런줄 알았었는데 그가 약장사처럼 소리를 지르며 고객을 끄는 책장사를 하고있음을 알게 되였다. 문밖에 잘 나가지 않던 그는 장날이면 나타나군 하던 영태를 볼수없었던것이다.

《어무이, 창수하고 지하고는 한형제와 꼭같습니더. 창수가 지를 살려주지 않았심니껴. 이 사람 아니면 지는 이 자리에 몬 왔을낍니더.》

《이 사람,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게.》

창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국군》살이를 할 때 있은 자기들 두사람만이 아는 비밀을 영태가 털어놓으려고 하자 그것을 말린것이였다.

《그럴가, 그만둘가…》

영태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 비밀이란 다른것이 아니였다. 식사당번임을 리용하여 영태가 몰래 탈영하던 날 저녁 그 부근에서 보초를 서고있던 창수는 영태의 행동을 보고도 못 본척 했던것이다.

그때 철조망을 끊고 막 빠져나가던 영태는 보초를 서고있던 창수와 눈길이 마주치자 벙글벙글 웃어보였는데 창수는 얼굴을 돌리고말았던것이다.

두 청년은 처음 산모퉁이에서 만났을 때도 이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었다. 자기들이 살고있는 무서운 땅에서는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해주거나 혹은 도움을 받았을 경우에도 그런것을 내색 안하는것이 피차 유익하다는것을 암암리에 리해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영태는 창수의 어깨를 한번 쳐주고는 잔에 술을 따르어 창수 어머니에게 공손히 두손으로 권했다.

어머니는 마다하지 않고 자기앞에 온 술잔을 받아 상우에 놓더니 부엌에 있는 딸에게 술잔 하나를 더 가져오라고 일렀다.

창수는 어머니가 술잔을 받는것을 처음 보았다. 누가 덜컥 문을 열어보아도 어머니를 모시고 아들과 그 친구가 술잔을 나누고있는것으로 보였다.

창수는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불빛탓인지 머리의 흰빛이 한물 더한듯 하다.

《부모님들은 계시오?》

어머니가 영태에게 물었다.

《밀양에 계십니더. 지가 모셔야 하겠는데 그런 행편이 몬돼서 명태 한마리로 두군데다 전을 벌려놓고있습니더. 불효막심입니더.》

《너무 상심마오.》

영태는 자기가 윤씨문중의 종손이라는것과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사는 부모님과 문중을 떠나 부산에서 동생과 함께 자그마한 책가게를 본다고 했다.

애놈들 코묻은 돈을 노리는 만화책가게만으로는 입에 풀칠을 할수없어 군소재지나 면소재지의 장날이면 가게를 동생에게 맡기고 이렇게 떠돌아다닌다는것이다.

농사를 짓고 살수만 있다면 이런노릇을 어떤 《떡대가리》가 하겠냐고 하던 그는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 종손의 몸으로 태여났음에도 고향을 등지고 봉도 아니고 학도 못되여 강산두루미가 되였노라는것이였다.

종손이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어머니의 눈에는 그가 의젓하게 보였다. 영태는 앉음새를 고치면서 말했다.

《우찌 생각카믄 차라리 잘됐지러요. 농사군들이사 그기이 사는검니꺼. 새처럼 묵고 소처럼 일해도 빚더미밖에 더 남습니꺼. 그래도 지는 부모님덕택으로 국민학교를 마쳤으니 약장수노릇이라도 해묵지만 다 죽었십니더. 다 죽었어.》

영태는 제손으로 술을 부어 마셨다.

《농사군들 자식들이사 흙김을 쐬지 않으믄 몬사는데 기중 똑똑하다고 하던거이 고향을 등지고 이 꼴이 아닙니꺼.》

그 이야기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인듯싶었다.

어머니는 무슨 말로 그를 위로해줄수 있을가 하고 생각하다가 타일렀다.

《음지에 볕들 날도 있지 장천 이러겠소?》

《그래서 사는기이 아닙니꺼. 허기사 지도 언덕이 없는 사람은 아님니더.》

《종가집자손이라 하지 않았소?》

《예, 지가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버젓이 네활개를 치고 다녀도 날 잡아갈 놈 없심니더. 우리 집 지손들중에는 온갖기이 다 있음니더. 춤 잘 추는 놈, 술 잘 묵는 놈, 손이 큰 놈, 입이 큰 놈… 없는기이 없심더. 선거때만 되믄 가관임니더. 여너때는 보고도 몬 본척 하는것들이 서로 몬저 종가집을 뵙겠다고 문지방이 닳을 지경임니더.》

《그럴테지.》

《닭을 안 가져오나, 소갈비짝을 안 보내나, 어떤것들은 노루고기도 다 보냄니더. 아부님은 술도 몬 잡숫는데 양주, 일주, 백학, 진로, 춘향-춘향의 이름을 붙인 소주도 있슴니더- 춘향포도주, 오비맥주, 크라운맥주, 아무도 몬 묵어본 죠니워카위스키라카는것도 다 가져오지 않슴니꺼. 우리 아부님께서 아무리 그러믄 몬쓴다고 해도 소용없슴니더. 이렇게 안고 와서는 종가집어른을 보이러 왔다고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해싸면서 우는소리를 합니더. 허허허.》

영태는 유쾌한듯 웃어제꼈다. 어머니도 창수도 따라웃었다.

《그럴테지.》

어머니는 그의 말이 좀 헤픈것 같기는 했으나 어쨌든 사람이 좋아보이는 아들의 친구네 어른앞에서 문중을 동원해서 자기를 찍어달라고 《국회》의원들이 코가 땅에 닿게 절을 한다는 소리에 웃음을 금할수 없었다.

《내사 족보 팔아 밥 사묵는 종가집귀신이 아님니꺼.》

어머니나 창수가 보기에 이 말은 너무 지나친듯 하였다. 기껏 자전거꽁무니에 헌 책나부랭이를 싣고 장터로 돌아다니는 그가 족보를 팔았대야 얼마나 팔았으랴싶었다.

어머니와 창수가 얼굴을 마주보며 웃고있고 부엌에서도 창수 누이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두손으로 간신히 틀어막고있었다.

자기의 생활체험에 근거해서 미국놈이나 일본놈들은 우리를 도와주러 온것이 아니라 제속을 채우자고 온 불청객이라는것을 제꺽 알아내고 판단해낼줄 아는 그도 일단 자기의 혈연과 관련될 때에는 그 판단이 흔들리군 했다.

《윤씨문중에는 맘 독한 사람이 없심더. 두고보이소, 지 말이 그른가.》

《다 젊은이같다면…》

어머니는 사위가 맡아보던, 남편이 남긴 공장을 빼앗은 사람의 성이 윤씨였음을 문득 회상하고는 그의 말에 동의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어머니는 더 놀고 가라고 영태에게 이르고는 부엌으로 되돌아갔다.

잠시 잠잠하던 방안에서 영태의 목소리가 울렸다.

《니도 야단이지만 나도 야단이다. 아모리 돈이 좋다 해도 술장수는 할수 없는 몸이라. 꽃시렁밑에다 닭, 오리 기르는셈 치고 시작한기이 책장순데 술 사묵는 놈들은 있어도 돈내고 책사보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야지. 목구멍에 피가 나도록 악악 소래기를 질러도 책가지겠다는 놈 하나 없다. 무슨 놈의 세상인지…》

영태는 뒤가 든든하다고 아까 한 말과는 다르게 숨을 길게 내쉬였다.

《일가라케도 그렇니라, 지앞이 급할 때는 종가집이라고 날 살려주십소 하다가도 선거때만 지나가믄 내 언제 그랬노 하고 아닌보살을 하지러, 믿을기이 못되지러. 그기이 세상 아니가. … 허기사 지손들이 아모리 많기로 만날 등만 긁어달라칼수 없는노릇이고 죽을 지경이다. 그렇다고 죽으라케도 안 죽은 몸인데 죽을수는 없는기고…》

영태는 그동안 적잖게 마신 술로 허옇게 풀어진 눈언저리를 주먹으로 씻었다.

《그래서 마춤 내 족질간이 되는 사람 하나를 찾아갔더니 하는 말이 한번 세계에 웅비해볼 야심은 없나카더구마.》

《어디로? 동남아로 진출한다고?》

창수는 전에 《세계에 웅비하는 한국! 동남아로 진출!》을 운운하던 신문기사와 사진따위를 보았기에 이렇게 물었다.

《그쪽이 아니고 서도이다.》

《뭐, 서도라고?!》

《이 사람이 와 그렇게 놀라노? 누가 거기서 상사났나?》

영태는 뜻하지 않게 서도이췰란드라고 한 자기 말이 친구의 마음속에 파문을 던진것은 모르고 말을 이었다.

《뭣고, 서도에 가서 국위를 떨치고 오라카지 않나. 탄부로 가서 말이다. 내 족손벌이 되는 그 사람 맏아들은 국회의원이지러, 둘째아들이 서도대사관에서 수석로무관이라는 자리를 맡아보는데 근근 탄부들과 간호원들을 데리러 온다는기이다.》

《…》

《제비도 짝이 있어야 다니는데 내 혼자 가겄나, 어쩔래? 소갈머리없이 불쌍한 쫄랑말만 채찍질해싸겠나, 니도 같이 안 갈래?》

부엌에 있던 어머니와 누이는 긴장했다. 창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영태가 재촉했다.

《내 족손이 수석로무관이니 내가 가도 괄시는 몬할거고, 20안 자식 30안 천량인데 니나 나나 이대로 여기서 세월타령만 할수 없는기 아니가.》

그래도 창수의 대답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영태가 또 재촉하자 《그런 생각없네.》하고 창수는 딱 잘라버린다.

《이 사람이 곧 죽어도 남의 집 제사밥은 안 묵을라카네. 하기사 오동나무 보고 춤추겄나. 우얄꼬 하고 아모리 점을 쳐도 벨수가 없어서 니보고 해보는 말이다. 탄부라는기이야 밥그릇 물고 뺑뺑이 돌라카지는 않을끼라.》

영태는 창수와 함께 《국군》에서 당해본 기합이 생각나는 모양이였다. 이윽고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엉켰다.

《니 안 가믄 내 혼자라도 가얄갑다.》

《가지 말게. 그따위 서도에는 왜 가겠어. 여기서 살지.》

《누가 그런줄 모르나. 경상도 물묵고 자란 놈이 이웃전라도에 가 살라케도 싫은데 뭐이 좋아서 가것다 말것다 하겠노. 바람받이에 선 초불신세가 돼서 그런다.》

《딴 이야기나 하세.》

《그럴까… 거참, 내 족질간인 그 사장은 팔자도 좋더라. 내가 그사람 회사로 찾아가니까 무슨 책을 읽고있는데 책이사 내가 모르는기이 있나.》

《무슨 책인데?》

《장수백과를 보고있더라. 관상을 보면 이문이 밭은게 오래 몬살기인데… 허기사 돈이 있으니카 귀신도 부려묵을끼이다.》

《귀신만 부리겠나?》

창수가 혀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니 그 소리 들었나?》

《뭔데?》

영태는 최근에 고위집권층에 있는 두 사나이가 한 녀자를 두고 서로 다툰다는 소문이 퍼지고있다면서 위정자들에 대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부엌칸에서 잔기침소리가 났다. 영태는 잠간 입을 다물고있더니 소리를 낮추었다.

《그기이 가짓말은 또 잘하데. 농사군들 살리준다고 해싸면서 새 마을운동이요, 살기 좋은 뭐요 카는데 우리 아부님도 그바람에 쫄딱 녹지 않았는가베. 농촌에 가봐라, 진종일 돌아도 소새끼 한다리 구경 몬할끼다. 황소힘으로도 뜸배질을 해싸며 허둑허둑 끌던걸 말이다. 사람들이 다 끌어야 할 지경이다.》

영태는 더 낮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잘 묵여준다고 살살 꼬아가지고 우리를 윁남에 가라칸것도 그기이 미국놈한테 우리를 팔아묵자 한거 아니가.》

영태는 창수에게 정신차려 들으라는듯이 그의 어깨를 한번 툭 치며 다시 말을 계속했다.

《고것 묵고 그러나, 들어보래이. 그 박정희새끼는 쪽발이만 보면 살살 꼬리치제. 양코배기들이 밑구멍 핥아라캐도 예- 하고 엎드릴 놈 아니가.》

부엌에서 연거퍼 기침소리가 나던 끝에 누가 나가는 기척이 난다.

그러나 영태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계속했다.

《그 녀편네는 왜년하고 붙어 난 쪽바리트기다. 그 집안족보도 개도라지판이다.》

영태의 이야기가 번져가고있을 때 어머니는 혹시나 하고 대문밖으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누가 엿들을가 해서였다.

하늘에는 둥근달이 떠있었다. 소리없이 내리비치는 달빛이 푸른 비단필을 펼쳐 어머니의 여윈 어깨와 흰 머리카락을 감싸주고있었다.

어머니는 슬펐다. 마구간옆에다 아들이 신방을 꾸리고있을 때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쉴새없이 윤옥이가 오고갔다. 어머니의 예민한 심장은 아들의 그 행동에서 그가 자기에게도 감추고 말하지 않는 그의 속마음을 읽고있었다.

윁남의 전쟁터에서 겨우 살아온 아들이 무엇을 믿고 누구를 보려고 달려왔는가를 어머니는 알고있었던것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도 울지 않았던 어머니의 늙은 두볼을 타고 비애의 눈물이 줄을 지어 흘러내렸다.

죽었던 목숨을 건진 아들이 이제 한번 살아보겠다고 사랑하는 처녀를 찾아왔건만 그 처녀는 더는 이 땅에서 배길수 없어 남의 나라로 흘러간것이다. 그리고 아들은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매부가 끌던 말고삐를 쥐고있고 자기 손으로 꾸린 새 방에서 혼자 자고 일고있다.

자기가 낳은 아들이 눈앞에서 흘리고있는 피눈물을 보며 살아야 하는 어머니, 밤마다 아들의 주검을 안고 선 꿈을 꾸다가 소스라쳐 깨여나 정한 물 떠놓고 빌고빌던 어머니의 텅 빈 가슴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은것이 없었다. 아들을 도와줄 힘이 없었다.

어머니는 문득 여윈 젖가슴에 두손을 가져갔다. 어린 창수가 이마를 비비며 젖꼭지를 찾던 그 옛날이 되살아났다.

아들에게 물려주던 젖꼭지는 말라붙었다. 이제는 사랑하는 아들을 감싸줄 힘이 자기에게 없다는것을 안 어머니는 몸부림치며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아들이 바라는것, 또 자기가 아들을 위해 바라고있는 소원이 이렇게도 작고 너무나 당연한데 그것조차 이룰수 없는 세상이 저주로왔다. 어머니는 불시에 발걸음을 멈추고 가슴을 누르고있던 한손을 홱 뽑았다. 어머니는 마치 아들과 윤옥의 사이를 떼놓은 원쑤를 눈앞에 본것처럼 뽑아든 손을 내리쳤다.

어머니가 멈춰선 언덕우에는 한아름이나 되는 늙은 버드나무가 올올이 풀어헤친 녀인들의 머리단같은 가지들을 수없이 늘어뜨리고 적막한 밤을 지키고있었다.

상념에 잠겨있던 어머니는 흠칫 놀라 뒤돌아보았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창수와 영태의 목소리가 들려왔기때문이다.

《쉬고 가라는데도…》

《내 집 두고 와 여기서 자것노. 부산에 오면 꼭 오너라이.》

《응.》

대문을 미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몰래 버드나무그늘속에 몸을 감추었다. 생각에 잠겨있는 자기의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는것이 어쩐지 싫었다.

《앗따, 조곰 묵었는데 그노무 술 취한다. 내 집 주소 적어준거 잊어뿌릴라. 부산에서 취직하믄 내 집에서 다니라이.》

《고맙네.》

영태는 자전거에 올랐다. 어머니는 혼자 남은 아들을 지켜보았다.

멀어져가는 영태의 자전거를 지켜보며 아들은 약간 비틀거리며 어머니가 숨어있는 버드나무앞을 지나가다가 중얼거렸다.

《벼락을 맞을… 이 세상은 개판이다!》

문득 발길을 멈춘 아들은 두팔로 허리를 짚으며 달을 쳐다본다. 잠시 그대로 서있다.

《저것은 달이다. 저것은 윤옥이가 아니다.》

《윤옥이가 아니다.》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또 한번 울렸다.

어머니는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왔다. 술에 취한 아들은 계속 중얼거리고있다.

《나는 서도로 안 간다. 나는 이 땅에서 윤옥이와 살고싶다. … 윤옥이가 온다.》

아들은 밑도 끝도 없이 《윤옥이가 온다.》고 하더니 대문안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아들이 방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그대로 문밖에 서있었다.

노마가 울리는 숨소리가 마구간쪽에서 들렸다. 선채로 잠들고있는 말은 사람처럼 이따금 긴 한숨을 내쉬였다.

밤이 깊어도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어머니를 찾아 딸이 나왔다. 딸은 마구간앞에 서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딸의 부축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는 어머니의 귀전에는 혼자 중얼거리던 창수의 목소리가 울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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