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살아있는 사람들의 주소

6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물기머금은 비릿한 바람이 매연과 재가루와 먼지가 자욱히 앉은 가로수잎새들을 하나하나 뒤집어보이고있었다. 잎새들이 뒤집힐 때마다 여물어진 해볕에 드러나는 신록이 눈을 찔렀다.

몇군데나 리력서를 냈으나 거절당하고만 리창수는 당분간이란 말에 자기를 위안하면서 매부가 줄을 이어준 일자리를 찾아 부산시내를 가고있었다.

가난한 로동자들이 몰켜사는 서면의 빈민촌에 있다고 들은 영태의 집은 왼쪽으로 나타난 상업고등학교를 지나고도 약 30분이나 더 걸어가야 했다.

소년, 소녀들의 월간잡지광고며 책광고 등을 간판대신에 붙인 녹쓴 양철지붕을 인 자그마한 만화가게에는 영태를 닮은 옹골차게 생긴 젊은이가 만화책을 보고있는 조무래기들을 감시하면서 무릎에 놓인 가계부인듯 한 장부에 무엇인가 적고있었다. 이따금 쿨럭쿨럭 기침을 깇으며 애들과 무릎의 장부책을 번갈아 보고있던 영태의 동생은 창수의 이름을 듣자 어서 들어오라고 권했다. 가게방이 비좁은데다 조무래기들때문에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창수가 들어서기를 망설이자 영태의 동생은 책을 보고있던 소년들을 소리쳐 내쫓았다. 창수는 더 당황했다.

《일없습니더. 만날 와서 거저 보고 가는 애들입니더.》

영태의 동생 목소리는 형을 련상시켰다.

가게 뒤전에 사이문을 통해 들어갈수 있는 비교적 큰방이 하나 있었다. 그쪽으로 창수를 안내한 청년은 베개를 내려다 주면서 고단할텐데 자기 형이 돌아올 때까지 푹 쉬라고 하고는 나가버렸다.

형으로부터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해도 이렇게 처음 만난 사람을 집안에 들여놓고 나가버리는 청년을 보고 창수는 아연해졌다.

창수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영태의 동생 영규는 형의 말이라면 콩을 팥이라 해도 곧이듣는 성품이였다. 종가집 종손이라고 하던 영태네 집가풍에서 길러진것인듯 했다.

갖가지 헌 책들과 낡은 잡지며 중학교 교과서들을 가려놓은 방 한구석에는 오지항아리가 두어개 놓여있고 반나마 줄어든 쌀자루가 그옆에 놓여있었다.

판자대신에 굵은 장나무로 맨 시렁에는 낡은 트렁크와 얇은 이불을 올려놓고있는데 시렁끝부분에만 올려놓은 널판자우에는 표지가 깨끗한 신간잡지들이 얹혀있다.

잠시 방안을 둘러본 창수는 혼자 앉아있기가 뭣해서 영태가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릴가 했으나 처음 본 자기를 믿고 방안에 혼자 남겨둔것을 생각해서 할수없이 청년이 권한대로 베개를 베고 드러누웠다.

그는 저녁녘에 영태가 돌아와서야 잠을 깼다.

자취를 하고있는 형제는 저녁을 끓이겠다고 일어섰다.

형과 동생은 서로 자기가 밥을 짓겠다고 다투었다. 영태가 동생의 손에서 바가지를 빼앗아 쌀을 일자 동생이 말했다.

《형님, 고만두이소. 그러면 지가 할 일이 없어집니더.》

기침을 련속 깇고있는 동생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영태가 물었다.

《전번에 사온 그 약 좀 묵어봤나?》

《다 묵었십니더.》

《그 약이 어뚜터노?》

《그 약 묵고나서 많이 좋아졌십니더.》

이렇게 형에게 대답하면서도 영규는 또 쿨럭거렸다. 창수의 눈에도 영규가 자기 형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고있는것이 알렸다.

영태는 더는 동생을 보지 않고 창수에게 저녁을 권하며 저으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놈들까지 춤판을 벌리더니 멀쩡한 아이를 저렇게 만들어놓지 않았나. 직일놈들!》

영태의 동생은 아까 창수가 오면서 바라본 독한 매연을 뿜어내는 굴뚝들이 서있던 화학공장의 유해직장에서 일하다가 수은중독에 걸려 저렇게 새파란 젊은 나이에 천식증을 얻었다고 했다. 그 공장도 일본인들이 어느 한 자본가와 합영으로 세운 공장이라고 했다.

《애놈들은 좋은 바다를 두고도 헤염도 몬 치게 되였십니더.》

형의 말이 끝나자 영규가 기침을 참느라고 얼굴이 빨개지며 입을 열었다.

《그놈들이 흘린 독물을 묵고 괴기도 다 죽고있십니더.》

창수는 의가 좋은 두 형제와 함께 저녁 불빛아래서 둥그런 상앞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있는것이 즐거웠다.

자기의 형앞에서 애써 기침을 참다가 이따금 쿨럭거리는 영규를 위해 어디 가서 어떤 약을 구해올수 있을가 하고 생각하면서 놀리던 숟가락질이 뜨게 되는 창수를 보고 영태형제는 어서 많이 들라고 자주 권했다.

세사람사이에는 따뜻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누가 보아도 창수가 오늘 처음 이 집에 온 사람으로 볼수 없을것 같았다.

다음날 매부가 줄을 달아주어 찾아가보니 그 직업은 야경을 보는 일이였다. 리력서를 낸데가 따로 있었으나 그 어디도 믿을데가 없었다. 그래서 창수는 야경원노릇을 하게 되였다.

그가 돌게 된 순찰선은 부산시내에서도 가장 번화한 거리의 하나인 초량동일대였다.

며칠후 창수의 매부는 그가 부탁한대로 그의 짐을 싣고 왔다.

그가 덮고 잘 이불이며 갈아입을 옷가지들이였다.

창수의 옷가지들은 그가 윁남에서 지고 다닌 군대배낭속에 들어있었다.

병석에서 일어난지 얼마 안되여 얼굴이 까칠해진 매부는 무엇을 물어도 흥심없는 대꾸를 하며 자기가 지고 다니던 군대배낭을 영태의 집안으로 안고 들어가는 처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조금만 참게. 또 한군데 부탁해두었으니…》

그러나 창수본인은 물론 그의 어머니와 누이와 영태형제까지도 바라마지 않던 그의 취직자리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를 일변시킨 무자비한 생활은 벌써 그를 그리는 처녀의 사랑의 천리안으로도 내다볼수 없는 먼곳으로 그를 떠밀어갔다.

괴괴한 밤거리를 돌고있는 창수의 가슴에는 불이 당기고있었다.

그날도 출근시간인 저녁 다섯시부터 밤거리를 돌고있는 그의 눈은 참을수 없는 분노로 하여 무섭게 번쩍이고있었으며 굳게 다물어진 그의 입귀는 푸들거리고있었다.

그가 순회하고있는 세칭 텍사스거리로 불리우는 초량동일대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한낮의 깊은 잠에서 깨여나 얼룩덜룩 네온등을 켜들고 미친듯이 취주악을 풍작거리며 엉뎅이춤을 추기 시작했다. 창수의 눈앞으로 미항만기지사령부와 후방기지사령부소속 군인들, 부산항을 드나드는 외국선박선원들 그리고 부쩍 늘어난 일본관광객들, 게다가 일시 전시휴가를 보내기 위해 윁남전장에서 남조선에 상륙한 미군놈들이 비틀거리며 지나간다.

《쌘프랜씨스코》, 《뉴욕》, 《시카고》, 《바바산》, 《미라노》, 《도꾜》, 《브라보》, 《서울》, 《코바우》 등등 수다한 홀과 클럽, 캬바레, 카페들을 찾아 단골들과 새로 상륙한 무리들이 몰려갔다. 보는것마다 더럽고 소란스런 밤거리의 광경앞에 창수는 분격을 참을수 없었다.

창수는 통근고동소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뭘 그렇게 한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어?》

같이 야경을 도는 동료인 장씨성을 가진 사나이가 앞으로 전진하자고 재촉했다. 창수는 할수없이 걸음을 뗐다.

스적스적 걸음을 옮기는 그의 앞에는 별의별 기괴한 군상들이 지나간다.

눈망울이 불거져나온 미국놈 하나가 열대여섯밖에 나보이지 않는 소녀를 유혹하고있다.

거리 저쪽에는 또 다른 참경이 벌어지고있다. 소년들과 녀인들이 당과류와 과일이 든 상자를 메고 앞을 다투어 미군들을 향해 《유바이 (좀 사세요.), 유바이》하고있다.

창수는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의 꿈이 깨강정으로 부서지고만 땅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무슨짓이라도 해야 하는 기갈이 든 사람들의 얼굴들이 그의 시선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창수의 두눈은 우묵히 패이고 그의 입은 얼어붙었다.

동료인 장씨와 함께 연장 40리길이 잘되는 순찰선을 느릿느릿 돌고있을 때 예비고동소리가 울렸다.

통행금지시간을 어기지 않으려고 택시들이 속력을 가하며 질주한다. 밤일을 하고 돌아가는 로동자들인듯 한 사나이들은 도시락을 끼고 반달음을 놓고있다.

이윽고 마지막고동이 울렸다.

인적이 끊어진 밤거리를 창수는 동료와 함께 더듬기 시작했다. 앞쪽에서 찦차가 한대 달려왔다. 그는 호르래기를 불었다. 그러나 찦차는 속력을 늦춤이 없이 휙 그대로 지나간다. 뒤자리에 녀자를 태운 미군놈이 그의 얼굴도 보지 않고 껌을 질근거리며 사라졌다.

매일같이 당하는 일이였으나 이날따라 창수는 더 참을수가 없었다. 아까 허우대가 큰 미군에게 팔을 잡혀가던 소녀를 목격한탓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안 가서 또 한대의 찦차가 나타났다. 창수는 다른 야경원들은 감히 하지 못하는 차단속을 할 생각으로 호르래기소리를 내면서 찦차의 앞을 막아섰다. 순간 차안에서 머리를 내민 사나이가 된욕을 퍼부었다.

《개새끼! 눈구멍은 보라고 냈지 낯가죽이 모자라서 낸거야?》

중앙정보부 요원이였다.

창수는 혀를 깨물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들이 총총한데 바다쪽에서 시커먼 구름이 몰켜오고있었다. 그는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순찰선끝에 있는 순찰함에 수표를 하고 그는 가던 길을 되돌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두사람의 발자국소리만 울렸다. 돌연 장씨가 낮게 속삭였다.

《도상(도적)이야!》

창수는 그가 가리키는쪽을 응시했다. 어둠에 잠긴 골목어귀에서 수상한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겨드랑이에 끼고있는 보퉁이가 별빛으로도 알렸다.

담당관내의 골목골목들을 손금처럼 꿰들고있는 장씨는 창수에게 그 그림자를 뒤따르게 하고 자기는 오던 길을 되돌아 소리없이 사라졌다. 도적이 몸을 감춘 그 골목은 이쪽 골목의 다른쪽 입구인데 도적은 맞뚫린것을 모르는 모양이였다.

장씨가 등뒤로 사라지자 창수는 도적이 두리번거리던 골목으로 나갔다. 뒤켠에서 우회하여 몰아올 동료와 함께 앞뒤에서 조이자고 한것이다.

창수가 이쪽 골목에 거의 접근했을 때 호르래기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도적이 사라진 골목안에서 울렸다. 다음순간 《도적이야!》하는 웨침소리가 나고 골목안에서 두 그림자가 총알같이 튀여나왔다. 그들을 뒤쫓아오는 네댓명 되는 사람들이 도적을 잡으라고 부르짖고있었다. 창수의 예상대로 도적은 하나가 아니였고 방금전에 울린 호르래기는 동료인 장씨가 보낸 신호였다.

《도적이야!》하고 계속 웨치며 몰아가는 사람들의 뒤전에는 장씨가 그들과 합세하려고 뒤쫓아오고있다. 도적들은 거리로 뛰쳐나오자 무슨 약속을 했는지 하나는 왼편 상가쪽으로 빠지려 하고 다른 하나는 오른쪽 학교가 있는 언덕배기로 오르려고 그쪽 길을 찾는다. 창수는 어느쪽을 향할가 망설이다가 오른쪽으로 가는 장씨의 그림자를 확인하자 왼쪽 길을 택한 도적을 쫓기 시작했다.

저쪽은 댓사람이나 붙었으니 문제없으리라고 본것이였다.

겨드랑이에 보퉁이같은것을 끼고있는데도 창수가 쫓는 도적의 발걸음은 의외로 날랬다. 도적은 자기 꽁무니에 야경원이 달린것을 알자 필사적으로 뛰였다. 그러나 창수의 날랜 걸음을 이겨낼수 없었다.

점점 가까이 접근해가도 도적은 겨드랑이에 낀것을 버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짐을 버리고 몸 하나로 뛰여도 견디지 못할것인데 짐까지 낀 도적은 드디여 잡히고말았다.

날랜 다리와 늘씬한 키로 보아 어른인가 했더니 10여살 나보이는 소년이였다.

허리띠를 뽑힌 소년은 한손으로 괴춤을 잡고 다른 손엔 자루를 들고 걷게 되였다.

인적이 끊어진 밤거리를 그들은 가고있었다. 며칠전에 온 장마에 비물이 고인 물웅뎅이들에 별그림자들이 어리여있었다. 물웅뎅이가 나타나도 소년은 피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거기 내려앉아있던 별그림자가 부서졌다.

오른쪽에 골목길이 나타났다. 돌연 소년은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바람에 자루에 든것이 쏟아져나왔다. 쌀이였다.

《아저씨! 저를 용서해주세요.》

《…》

《저를 놔주세요! 제 어머니와 동생이 저안에서 기다리고있어요.》

《무엇이라구? 어디서 기다리니?》

《제 집은 저 골목안에 있어요.》

창수는 울먹이고있는 소년과 자루에서 나온 쌀을 번갈아 보았다.

《그 쌀은 어디서 난거냐?》

《어머니도 동생도 집에 드러누워있어요. 저도 이틀동안 먹지 못했어요. 신문을 팔러 나가던 역에서는 요새 단속이 심해져서 제가 팔던 신문과 비닐우산도 빼앗기고말았어요.》

《아버지는 안 계시냐?》

《돌아가셨어요. 전 도둑질만은 안하자고 했는데…》

《도둑질은 나빠!》

《저도 그걸 알고있어요. 굶어죽어가는 어머니와 동생을 그냥 보고있을수 없었어요. … 헛소리를 치던 동생이 떡을 먹구싶다 해서 저는 그 쌀가게에서 찹쌀을 훔치고… 팥과 콩을 훔쳤어요.》

《찹쌀을?!》

《네.》

창수는 가로등불빛에 비친 낟알을 보았다. 가까운 곳에 집이 있다는 소년은 더는 가지 않겠다고 몸부림쳤다.

창수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듯 했다. 그는 소년에게서 빼앗은 허리띠를 넘겨주었다. 소년은 놀란 얼굴로 그것을 받고도 그냥 땅바닥에 앉아있었다.

《어서 집으로 가. 그 자루도 가지고…》

그는 소년을 남겨둔채 발길을 되돌렸다.

순찰을 그만두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던 창수는 자기 손으로 잡았던 소년의 얼굴에서 다름아닌 자기자신의 얼굴을 보았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소년은 도적질을 했고 일터가 없는 자기는 가난에 짓쫓긴 나머지 할노릇이 못되는 야경원노릇을 하고있는것이 다를뿐이였다.

이윽토록 땅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드리우고있던 그는 쓰거운 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자기를 잡으려던 그를 뿌리치며 증오에 찬 눈으로 바라보던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야간통행자들이 하나둘 눈에 띄였으나 거들떠보지도 않고 창수는 파출소로 돌아갔다.

파출소에 들어선 그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잡았다가 놓아주었던 그 소년이 거기 붙들려 와있지 않는가.

알고보니 자기와는 다른 방면으로 도적을 추적해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던 장씨의 손에 그 소년이 붙잡힌것이였다. 소년도적을 잡은 장씨가 씨벌이고있었다.

《도적이야 하고 몰아가던 그놈들이 사실은 도상들이였다 그 말씀이야. 그런데 이 새끼를 잡았다가 왜 놔주었어?》

창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장씨는 자기가 도적인줄 알고 앞장에서 달아나던자를 붙잡았을 때 뒤쫓아오면서 《도적이야!》하고 웨치던자들은 간데온데 없어졌다고 했다.

흔히 행인에게 술값을 내라고 강요하는 깡패들이 상대방이 그것을 모면하려고 뛰면 뒤에서 그런 방법을 써서 욕을 보이군 하는데 이번에도 일이 그렇게 된 모양이였다.

사팔뜨기순경이 창수를 힐끗 쳐다보더니 소년을 취조하기 시작했다.

소년이 들고 온 창수의 눈에 익은 자루속에서 쌀과 팥 그리고 콩이 서너되가량 나왔다. 창수는 소년이 떡을 찾는 동생을 위해 찹쌀을 훔쳤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침통한 눈으로 자루에서 나온 쌀을 지켜보았다.

소년은 착각하고있었다. 그것은 찹쌀이 아니라 흰쌀이였다. 소년은 난생처음 남의 물건을 훔치려다 흥분한 나머지 그것을 구별하지 못한듯 했다.

사팔뜨기순경은 비상한 호기심을 가지고 한 자루속에서 세가지 종류의 곡물이 나오게 된 원인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 새끼, 너 어느 쌀가게에서 굴러먹는 놈이야?》

《…》

《주인집 물건을 얼마나 쓰리했는가 불지 않으면-》

순경은 시간이 아깝다는듯이 소년을 걷어차 쓰러뜨리고는 그의 정갱이를 질겅질겅 밟기 시작했다. 창수는 외면했다.

《어머님이… 동생이…》

《뭐랏? 네 어미가 시켰다고? 네 동생놈이 훔친거라고?》

비명을 올리던 소년이 울음을 뚝 그치고 순경을 쏘아보았다. 그는 자기가 쌀을 훔친 싸전과 자기 집과 앓아누운 어머니와 동생의 이름을 댔다.

어머니와 동생의 이름을 외울 때 소년은 정갱이를 밟힐 때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순경은 소년에게 장씨가 주장하는대로 일단 그를 잡았던 창수가 놔준 사실여부를 밝히려고 들었다. 소년은 울음을 그쳤다. 순경이 아무리 때리고 차고 얼려도 소년은 야경원에게 잡혔다가 몸을 빼여 달아나던 길에 다른 야경원에게 붙들린것이라고 주장했다.

두손을 묶인 소년은 장씨의 호송하에 류치장으로 끌려갔다. 끌려가던 소년은 문득 창수를 돌아다보며 눈인사를 했다. 목숨이 오고가는 전장에서도 참고 견디여낸 창수의 심장이 터졌다. 밖으로 끌려가는 소년의 뒤모습을 지켜보고 선 그의 귀에 순경이 그를 두고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빠빵(영화)하는덴줄 아는 모양이지.》

창수가 소년을 놓아주었다고 사팔뜨기가 씨부렁거리는 소리였다.

《불온분자들이 부쩍 늘어나고있는데 야경원을 더 늘여야 하겠는걸.》

다른 순경 하나가 씨부렁거렸다.

《저따위 맥도 추지 못하는걸 더 늘이면 뭘 해.》

사팔뜨기순경이 투덜거렸다.

 

《잠이 안 오나? 나도 잠이 안 온다.》

두팔에 얼굴을 묻고 엎드린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창수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영태가 말했다.

밖에서는 후둑후둑 비가 오더니 우르릉 먼발에서 천둥이 울고있다.

새벽녘에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쳐 자리에 눕기가 바쁘게 쓰러져 코를 골던 창수도 소년이 류치장에 끌려간 그날은 눈을 붙이지 못하고있었다.

그가 비소리를 들으며 그냥 엎드려있는데 창수로부터 소년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영태도 잠이 다시 오지 않는듯 했다.

《비가 오제… 니가 말해주던 그애 생각을 하니 나도 잠이 달아나뿌린다. 그애도 지금 류치장에서 비오는 소리를 듣고있을끼라…》

영태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두팔에 얼굴을 묻고있던 창수의 어깨가 흔들렸다. 랑자한 피와 주검을 례사로이 보아온 그의 가슴안에서 뜨거운것이 쏟아져내렸다.

창수가 방안에서 눈을 감고 엎드리고있는데 굵어진 비줄기가 양철지붕을 총알처럼 두드린다.

《흰쌀을 훔쳐내 갖고서 찹쌀이라 했다지? 그럴끼라.》

영태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보게, 세상에서 제일 귀한기이 사람의 목숨인데 사람이 와 이렇게 살아야 하노? 목숨이 아까와 살지, 사람이 살 세상인가?》

먼발에서 비껴오던 우뢰가 번쩍하고 불칼을 내리지른다. 어둠속에서 엎드려 어깨를 들먹이고있는 창수의 모습이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이 사람, 이런데서 어뚜케 살겠나? 나는 더 몬살겠다. 니는 니사람 찾아가는기이 옳고…》

기침소리가 나더니 영태의 동생 영규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한참이나 쿨럭거리던 영규가 입을 열었다.

《형님, 고만하이소. 창수형님도 고만하이소.》

잠시 방안에는 비소리만 가득찼다.

《지도 형님들 마음을 잘 알겠심니더. 지 동생 잡아다 범의 아가리에 처넣고 살라카는 세상이 아님니껴?》

영규는 기침을 다시 깇기 시작한다.

어둠속에서 담배를 빨고있던 영태가 말한다.

《입찬 말은 묘앞에 가서 해라컸지만 한마디 해야겄다. 이노무 세상이 갈수록 험산인데 벼락이나 내리서 하늘과 땅이 한분 맞부딪치는 기이나 봤으면 가슴이 내리겠다. 누구는 배가 고파 가막소에 안 가본줄 아나? 그기이 와 도둑질이가? 진짜 가막소에 가둘 놈들은 따로 있는기인데…》

영규가 서둘러 형의 입을 막는다.

《형님, 와 또 그런 씰데없는 소리를 하십니껴? 누가 듣겠심니더.》

《들이라케라.》

《형님, 진정하이소. 지나간 일은 물에다 흘려보냈는데 뭘랏고 또 해쌋겠슴니껴?》

영규도 목이 메이는지 더 말을 잇지 못한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담배를 두대째 연거퍼 붙이며 영태가 골기침을 하고있는 동생에게 말했다.

《오냐, 니 말이 옳다. 지나간 일들은 물이 다 씻어갔다. 지 어무이와 동생 묵이겠다고 하다가 가막소에 간 그애가 불쌍해서 하는 소리 아니가.》

형제들만이 아는 슬픈 사연이 있는듯 영태가 울먹이는 동생을 위로한다. 영규가 목메인 소리를 한다.

《지가 그때 철이 없어서 자꾸 형님보고 밥묵겠다고 그랬심니더. 지때문에 형님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영규가 흐느껴운다. 영태가 동생을 달랜다.

《그만해라이. 니가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베. 지난 일은 다 물에다 흘러보냈다고 말이다.》

영규는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어린애처럼 흐느껴울고있다.

형제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면서 창수는 더 가슴이 저려왔다.

자기의 손에 잡혔던 그 소년의 나이때 영태형제가 보냈으리라고 짐작되는 지난날이 눈앞에 그려졌다.

참으로 인정깊고 선량하며 그리고 현명하다고 그가 늘 생각하고있는 영태와 영규가 터뜨린 울음은 그에게 형언할수 없는 비애를 더해주었다. 창수에게는 형제가 없었다. 그래서 동생들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해본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영태형제들과 한집에서 생활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 자주 나군 했는데 그가 보기에는 비록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형제일것이라고 부러워하고 경탄한 그 형제들이 그렇듯 쓰라린 소년시절을 보냈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졌다.

영태형제가 눈물로 회상하는 그 아픈 추억은 늘 자기에게도 동생이 하나 있었으면 하던 창수에게 자기 손으로 잡았던 그 소년과 소년의 동생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게 했다.

선량하고 정의감이 강한 그는 남이 겪는 고통에서 자기의 육친이 겪는 아픔을 느꼈으며 제손으로 잡았던 소년이 자기의 친동생처럼 혈육의 정으로 얽혀오는것이였다.

몇끼를 굶은 끝에 떡을 먹고파하는 주린 동생을 생각하며 떨리는 가슴으로 남의 쌀을 훔치지 않을수 없었던 그 소년의 뒤발을 걷어차고 쓰러뜨린 자신이 슬프고 원망스러웠다. 그는 자기의 손가락을 피가 나게 깨물었다.

날이 새면서 어둠이 걷히였다.

바람이 부는지 이따금 비방울이 창문에 부딪친다.

창문에 떨어진 비방울들이 눈물방울처럼 쉴새없이 매달리고있는것이 창수의 눈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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