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살아있는 사람들의 주소

7

 

창수는 며칠동안이나 자리에 누워있었다. 그날 비를 흠뻑 맞은것이 좋지 않았던지 신열이 몹시 났다.

몸도 몸이려니와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할 걱정이 산같았다.

잡았던 소년도적을 놓아준것으로 하여 그는 야경원자리에서 쫓겨났다.

창수는 어쩌다 모르고 한번이지 알고는 다시 들어갈수 없는 그 지긋지긋하던 야경원자리를 벗어난것이 차라리 시원스레 잘되였다고 생각했다. 허나 매부가 전부터 없는 돈을 짜내여 취직운동을 벌리고 창수자신이 힘닿는껏 알아보아도 적당한 일자리는 여태껏 나타나지 않는데다 전번에 다녀간 매부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를 모시고있는 집사정도 쪼들려가기만 했다.

그는 요즘 아침이면 일과로 되고있는 신문구인란을 열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누이도 그랬었지만 처음에 매부가 나서서 그의 취직자리를 알아보게 되였을 때는 될수만 있으면 고교출신인 그의 학력에 알맞는 사무원자리를 원했었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그 희망은 점차 바래여지고 이마적에 와서는 이런저런 자리를 가릴 처지가 못되였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여도 영태네 형제들의 밥을 무작정 뺏아먹을수 없는노릇이였다.

창수는 구인란에 나있는 몇몇 회사이름을 수첩에 적어넣고 열이 내리는대로 찾아갈 궁리를 하고있었다.

가게를 보는 영규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땅이 진대도 영태는 아침일찍 자전거뒤에 책상자를 얹고 이웃고을장터로 나갔고 영규는 여느때와 같이 가게에 나가 조무래기들을 상대로 하고있다.

창수는 영규가 매일매일 자세히 기록해두는 가계부가 밥상우에 놓인것을 보고 무심코 그것을 펼쳐보았다.

수입란이 지출란보다 많아야겠는데 여름에 접어들면서 거꾸로 되여있다. 《술 한되(막걸리) 50원, 미원 1통 40원…》이라고 지출란에 씌여있는 날이 그가 이 집에 처음 온 날이다.

그것을 보다가 덮어두고 방 한구석에 두고 간 영태가 틈틈이 공부하고있는 속성도이췰란드어를 집어들었다.

영태는 자기의 어느 친척이 권한대로 서도이췰란드 탄부로 가서 집을 추켜세우기로 결심하고있는듯 했다. 영규의 병에 맞는 좋은 약이 그곳에 있다고 들었다 하던 그의 말에 비추어보면 여러가지 생각을 돌리고있는것 같았다.

고향에서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으나 중학강의록을 통해 일정한 지식수준에 이르고있는 영태는 쉬운 도이췰란드어는 혼자 뜯어보고있었다. 그가 붉은 줄을 쳐둔 곳이 여러 군데나 눈에 띄였다.

영어를 알고있는 창수에게는 들어가기가 그다지 힘들것 같지 않다.

심심풀이로 그 책을 뒤적이고있는데 영규가 《손님 오싯슴니더.》하고 얼굴을 보였다. 창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와 애기를 업은 누이가 서있었다.

어머니는 상냥한 웃음을 짓고 손에 들고 온 종이에 싼 조그만 선물을 굳이 사양하는 영규의 손에 쥐여주고 자리에 앉았다.

누이의 말에 의하면 동생이 사는것을 네 눈으로 보고 오라고 하다가 누이가 길차비를 하자 어머니도 따라나섰다는것이였다.

《어디 아프냐?》

어머니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창수는 머리를 저었다.

《아녜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어머니는 이윽토록 아들의 여윈 모습을 지켜보다가 품속에서 편지 한장을 꺼냈다.

《윤옥이가 너한테 보낸 편지를 갖고 왔다.》

창수는 편지를 손에 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쓸쓸한 미소가 떠있다. 누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너한테 전해주겠다고 해도 어머니는 자기가 갖고 가겠다면서 이렇게 오시지 않았겠어.》

《…》

어머니의 입가에는 그대로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있었다.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창수가 야경원자리를 내놓게 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도 어머니는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누이의 얼굴에는 수심이 비껴있었다.

《너 매부는 볼일이 있다면서 사흘전에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무슨 일로 나가셨게요?》

《우리 집이 야단났다. 노마를 보겠다는 사람이 세사람이나 나타났다.》

누이가 말을 펴기 시작하자 어머니가 밀막았다.

《윤옥이가 보낸 편지를 어서 뜯어봐라.》

《나중에 보지요.》

《아니다. 잘 있는지 어서 읽어다오.》

누이도 하던 말을 미루고 편지를 보라고 권했다.

윤옥이는 동생 윤전이의 편지를 통해 창수가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고 그의 어머니와 매부일가의 안부를 묻고있었다.

《…제 꿈에 자주 나타나던 그 험한 땅에서 귀국하셨다는 동생의 편지를 받았어요.

수락산골짜기들이 얼음에 잠겨있던 지난겨울에 저를 이 머나먼 서부도이췰란드의 북변끝으로 실어오던 비행기승강대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뒤돌아본 그 땅이 자주 눈앞에 나타나군 해요.

저는 창수씨가 돌아오실 그 땅에 남아있었어야만 했어요. 아무데도 떠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창수씨! 저를 용서해주세요. 제가 창수씨를 기다리며 모대긴 그 많은 낮과 밤을 위해 용서하시라는게 아니예요. 저는 제 몸을 바쳐야 했어요. 병석에 누우신 아버지를 위해서, 병골이신 어머니가 밤늦도록 붙이고계시던 그 삯봉투를 위해서… 그리고 학교를 다니고싶어하는 두 동생들을 위해서… 아니예요. 저는 제가 그처럼 애타게 기다리던 창수씨를 위해서 넘어지지 말고 죽지 말고 이를 악물고 살고 또 살아보자고 했어요. 그것이 저를 창수씨가 없는 이 산설고 물설은 이역만리밖으로 흘러오지 않으면 안되게 했어요. …》

윤옥의 편지를 듣고있던 어머니는 손수건을 눈에 가져갔다. 누이도 동생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윤옥이는 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다만 잘 있다고만 간단히 전하고 창수의 그후 소식을 알고싶어 여러모로 묻고 또 자기의 세심한 념려도 권했다.

편지를 다 듣고난 어머니는 아들에게 타일렀다.

《어서 답장을 해주어라. 그 편지가 두어달이나 전에 띄운것이라는데 네가 곧 답장을 써도 가을에 가서야 그애가 보겠구나.》

누이가 껴들었다.

《윤전이한테는 답장을 했니?》

《네.》

어머니는 아들의 대답을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취직이 곧 될듯 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와 먹든 굶든 함께 지내자고 아들을 타이르던 어머니는 윤옥에게 오늘 밤이라도 잊지 말고 회답을 꼭 하라고 거듭 신신당부했다. 그리고는 영규에게 영태가 돌아오면 내가 왔다갔다고 전해달라고 이르고는 거리에 나섰다.

《전에 살던 집 이웃들을 찾아보겠다고 하시더니 왜 그리로 가세요?》

딸이 B읍쪽으로 가는 뻐스정류소를 향해 가는 어머니를 보고 걸음을 멈춘채 소리쳤다.

《그럴 짬이 없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뒤돌아보지 않고 잰걸음을 놓았다. 창수와 누이는 어머니를 뒤따라갔다.

창수의 아버지가 남기고 간 자그마한 견방직공장은 범일동쪽에 있었다. 딸과 함께 부산시내로 들어올 때는 지난날 처마를 맞대고 살던 이웃들을 찾아보겠다고 하던 어머니는 그런 생각이 없어진것 같았다.

창수는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리며 누이와 나란히 어머니를 뒤따라 가고있었다.

《읍내에선 야단이 났다. 왜놈들이 뻔질나게 싸다니더니 날랜 왜놈들의 오토바이에 맵시나는 용달차까지 쓸어들어왔다.》

누이가 아까 하다가 그만둔 이야기를 꺼냈다.

《너 매부는 이제 말몰이도 못하게 됐다. 어디 물레방아간을 내놓는 사람이 있다고 노마를 팔아 그것을 사겠단다.》

《그 일때문에 나가신게로군요.》

누이는 일본자본과 합영해서 현대적인 운수수단을 가지고 들어온 C기업의 활동을 전했다.

《너 매부 말 들으니까 그것들은 왜놈들을 업고서 우리 고을만 아니라 마차가 다니던 길을 죄다 차지했단다. 이대로 가다간 왜놈들 세상이 또 된다고 아우성들이다.》

창수는 누이의 입에서 자기 남편의 말을 좋게 인용하는것을 처음 들었다.

《누가 그걸 이겨내겠어? 너 매부가 말몰이군이 된것도 왜놈들때문에 그렇게 된건데.》

누이는 한숨을 쉬였다.

창수의 매부 문대식은 활동력이 있고 똑똑한 사람이였다. 창수의 부친이 물려주고 간 네댓명의 로동자를 부리던 견직공장을 맡게 되였던 초기에는 비록 낡은 직기들이였으나 철따라 류행에 맞추어 자기가 고안한 새로운 비단무늬로 한몫 보고있었다. 그러나 미국놈들을 등에 업고 배가 부를대로 부른 매판자본들의 횡포로 그 견직공장은 어려운 처지에서 헤매다가 드디여 넘어지고말았다.

미국놈들이 8.15이후 저들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계획적으로 육성한 매판자본가들은 《한일협정서》가 체결되자 일본자본까지 끌어들여 중소규모의 장난감같은 공장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말았던것이다. 그런 매판자본과의 합작명목으로 세워진 일본화학섬유계의 왕자 D산업이 군림하게 되자 우선 새롭고 기발한 비단무늬들이 중소공장들에서 나온 비단천들을 가리우게 되였었다. 고객들은 눅고 참신하며 질기기도 한 비단천옆에 펴놓은 비싸고 촌스러운 천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문대식은 고객들을 끄는 새로운 무늬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다가 그것을 본딴 천을 짜냈었다. 그리고는 고객들의 눈을 끄는 무늬가 돋힌 천들을 시장에 내갔었다. 그러나 이미 상점매대들에는 새로운 류행을 자극하며 사람들의 눈을 끄는 여러가지 새로운 무늬의 천들이 쏟아져 나오고있었다.

견직공장이 넘어지게 되였을 때 문대식은 타올공장으로 옮겨갔으나 사정은 역시 매한가지였다.

이미 남조선경제계에 거대한 흡반을 들이박아 말릴대로 말린터에 뒤이어 백만원대의 문방구공장으로부터 수억대의 제철, 제유, 전자, 화학섬유 등 대규모의 공장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잠식해들어온 일본자본은 창수의 매부와 같은 중소규모의 업자들이 발붙일 여지를 남겨주지 않았던것이다.

창수의 누이는 말끝마다 남편을 칠칠하지 못하다고 지청구를 먹이지만 똑똑하던 그로서도 별도리가 없어 마침내 종착한 곳이 그의 고향인 B읍이였고 그때까지는 경기가 괜찮던 우마차조합이였는데 말몰이도 이제는 시원치 않게 되였다고 한다.

창수의 눈앞에는 왜놈들을 등에 업고 일본제오토바이와 대형차량에 올라앉은 C기업을 상대로 잘 먹이지 못한 노마가 끄는 고무바퀴마차에 올라앉은 매부가 경쟁을 하다가 앞에서 달려가는 차량들이 날리는 뽀얀 먼지를 덮어쓰고 밀려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너무 걱정마세요.》

창수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위로하자 누이는 《걱정해서 될 일도 아니야.》하고 말하며 앞쪽에서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향해 창수보다 앞서 반달음을 놓는다.

어릴 때부터 령리하고 똑똑하기로 이름났었고 바로 그렇기에 똑똑한 젊은이로 알려졌던 매부를 골라 가정을 이루었던 누이의 처량한 뒤모습이 우수를 자아냈다.

 

어머니와 누이를 바래준 창수는 몸이 오싹했으나 애써 참으며 신문구인란에 나있던 취직처를 알아보려고 시내로 들어갔다. 걸음걸음 윤옥의 편지가 머리에 떠올랐다.

장마철에 접어들면서 물쿠기 시작한 날씨는 가뜩이나 답답한 그의 숨을 막히게 했다. 어제 저녁녘에도 구질구질 지나간 장마비에 씻겼던 가로수들엔 공장굴뚝들에서 뿜어낸 매연과 재가 어느새 한벌 깔려있다. 목욕탕들에서도 중유를 때는지 그 주변 인가들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거무죽죽하게 변하고있다.

뻐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던 창수는 공중전화실로 들어갔다. 수첩을 꺼내 고교출신이상의 학력소유자를 구한다는 가정교사자리를 찾았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해본 일도 있었기에 구인란을 보다가 적어둔 전화번호였다. 수화기를 든 그의 귀에 젊은 녀자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처음에는 그 집이 있는 광복동 어느 다방의 이름을 지정해주면서 오후 다섯시경에 돌아올 주인과 거기서 만나도록 하라고 하더니 누가 뒤에서 그 녀자에게 지시를 하는듯 잠간 기다리라고 했다.

이윽고 다시 전화통에 나타난 녀성은 창수의 리력을 묻기 시작했다.

《전화로 실례지만서두요, 혹시 공연한 걸음을 하시게 될가 해서요.》

창수는 먼저 자기가 한때 서울에서 중학생의 가정교사를 한 경험이 있다는것, 수학과목을 가르쳤다는것을 알렸다. 상대방은 서울이라는 말과 수학과목이라는 말에 흥미를 느낀듯 친절한 목소리로 변했다. 창수는 상대방이 묻는대로 윁남파병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자기의 리력을 알렸다. 저쪽에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전화가 끊어진것이나 아닐가 하고 《여보세요.》를 련발했다. 저쪽 목소리가 울려왔다.

《미안하지만 다른데를 알아보세요. 방금 외출하셨던 주인이 돌아오셨는데요, 벌써 다른 사람이 오기로 결정했다는거예요.》

전화가 끊어졌다. 창수는 할수없이 수첩에 적어둔 《사원모집》이라고 하던 영어로 이름을 단 회사앞으로 전화를 걸어 지금 찾아가면 만나주겠는가고 물어보았다. 상대방은 응낙했다.

부산진쪽에 있는 그 회사는 해외이민을 알선하는데 국제적으로 여러나라들의 이민단체들과도 련계가 밀접한 회사라고 했다. 창수에게 그것을 알린 회사 사장이라는 30대의 젊은 사나이는 정식 사원이 되면 사업상 해외려행을 가끔 하게 될것이라고 하고는 그의 리력서에 적힌 윁남파병근무경력에도 머리를 끄덕일뿐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창수는 락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입사시험에 합격한다 해도 적지 않은 보증금이 요구된다고 들었기때문이였다.

창수는 그밖에도 외판원(직접 소비자를 찾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을 구한다는 출판사와 출자는 안해도 활동력만 있으면 가능하다면서 동업자를 구한다는 모종합상사(알고보니 그것은 교통부를 끼고 외국관광객들에게 녀자들을 알선하는 뚜쟁이들의 기업체였다.)에도 가보았다. 집집에 돌아다니며 월부로 책을 놓는 외판출판사도 보증금을 요구했는데 《종합상사》라는 곳은 창수자신이 거절했다.

몸에서 열이 더 났다. 무거운 걸음으로 영태의 집에 돌아온 창수는 윤옥의 편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는 한자, 한획을 소홀히 하지 않는 윤옥의 글씨를 정겨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헛되이 거리를 돌며 깨물어 씹던 울화증이 차차 내려갔다.

윤옥의 아버지는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사람됨을 곧 알아낼수 있다는 말을 하군 했었는데 그런 아버지밑에서 자란탓인지 글씨가 단정하고 고왔다.

윤옥에게 자기가 먼저 편지를 보내지 못한것을 뉘우쳤다. 그가 자기 몰래 먼 타국으로 간데 대해 품고있던 노여움은 벌써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왜 그에게 아직껏 자기 손으로 편지를 하지 않았었는지 스스로 놀랄 지경이였다.

창수는 윤옥이가 그저 잘 있노라고 적어보낸 간단한 편지구절에서 그의 고통을 읽었다. 참고있던 오한이 또 왔다.

그는 윤옥에게 답장을 쓰려고 붓을 들었다.

이제사 편지를 쓰게 된 자신의 불성실성(그는 그런 표현을 썼다.)을 사과한 후 외국땅에서 고된 간호원생활을 하고있는 그의 어려움을 위로했다. 귀국후 윤옥이네 집에 들린 이야기며 하준혁을 만나 그의 소식을 들은 이야기 그리고 윤전이한테서 자기앞으로 편지가 두번 왔었다는것과 그에 대한 회답을 보낸 사실도 썼다.

그는 윤전이로부터 보내왔던 편지내용과 자신의 회답내용을 간추려 적어넣기도 했다. 그것을 보는 윤옥이가 기뻐할것 같아서 그렇게 상세한데까지 빠뜨리지 않고 전하고저 한것이였다.

달리던 붓이 멈추어졌다. 자신의 최근생활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대목에서 붓이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생각다 못해 윤옥이가 한것처럼 그저 아무 탈없이 잘 있노라 쓰고 봉투에 넣으려다가 대충 다시한번 훑어보았다.

윤옥이에 대한 이야기를 쓴 대목은 자기 마음에도 드는데 자기자신에 대한 일을 전한 곳은 다시 보니 역시 마음에 걸렸다. 그에게 뻔한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느껴진것이다. 차라리 자기 일은 쑥 빼버리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면 윤옥이가 보내온 편지의 회답으로는 될수 없었다.

《귀국후 매부와 그의 친구분들의 주선으로 적당한 일터를 얻어 바삐 지내다가 최근에는 나에게 보다 적합한 일터를 찾을양으로 그럭저럭 지내고있으니…》 이렇게 씌여진 개소가 아무리 보아도 윤옥이를 속이고있는것으로만 느껴졌다.

야경원노릇을 하다가 면직당했다는 말은 안한다 하더라도 《적당한 일터》라고 쓴것이 너무나 자기의 심정과는 어긋나는 표현으로 되고있다. 뿐만아니라 《보다 적합한 일터》를 운운한것을 보며 윤옥은 대뜸 실직을 한것을 알고 걱정하게 될것이고 소태같이 쓰거운 생활의 쓴맛을 맛보면서 《그럭저럭 지내고》라고 한것도 너무나 사실과 어긋나는것으로만 안겨왔다.

윤옥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어물쩍해넘겼던 대목들이 도리여 그에게 걱정을 더 끼치도록 되여있는것이다.

이리저리 궁냥하던 끝에 창수는 적합한 말이 생각날 때까지 윤옥이에게 보낼 답장을 당분간 미루자고 마음먹었다.

그가 다 쓰지 못한 편지를 밀어놓고 덤덤히 앉아있는데 영태의 자전거소리가 났다. 방안에 들어선 영태는 창수가 쓰다만 편지를 보고 웃었다.

《편지 왔나? 편지할데가 있는 사람은 좋지러.》

《비를 맞았군.》

《그래서 왔뿌렸다. 니 춘향이한테서 왔나?》

《응.》

《빨리 회답해주라. 눈이 빠지기 전에 말이다.》

윤옥의 편지를 두고 이야기가 오고가다가 창수의 취직이야기가 나왔다. 창수로부터 그날에 있은 일을 듣고있던 영태는 아직은 맞아죽는 사람보다 굶어죽는 사람이 그래도 적다고 하면서 진드근히 줄을 놓고 기다리라 했다. 그의 말에서는 자기 집에서 식객노릇을 하지 않을수 없게 된 친구의 딱한 심정을 다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후 한달이 가고 두달이 지나도 윤옥에게 갈 편지는 그대로 창수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느새 거리에는 가을빛이 짙어가고있었으나 편지는 그냥 그의 품에 있었다. 그의 실직생활이 여전했기때문이다.

그사이 변한것이란 그의 매부가 읍에서 다시 60리가량 들어간 락동강지류에 위치한 외딴 산골짝의 물레방아간으로 옮겨앉은것뿐이였고 그가 내내 친구집에 있기가 미안해서 매부집을 두세번 왔다갔다 한것뿐이였다.

이 고지식한 청년은 자기의 결백성이 편지회답을 안타깝게 기다리고있는 처녀에게 어떤 근심과 고통을 주고있는가도 모르고 계속 그에게도 자기에게도 납득이 갈 적당한 편지구절이 발견되기만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가을비가 내리던 어느날 창수는 벌써 여러달째 찾아가게 된데서 안면을 익힌 구직자들이 몰켜선 직업소개소에서 대신동쪽에 있는 큰 화학섬유공장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였다. 군대필무자, 특히 윁남파병근무자우선채택이라는 말을 들은 그는 희망을 안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당시 윁남파병에서 돌아온 부상제대된 군인들이-그것은 전체 윁남파병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일자리와 생계비를 요구하여 도처에서 들고일어난데서 겁을 집어먹은 당국자들이 더 큰 사회적문제가 되기 전에 그것을 무마하려고 각 공공기관들과 업체들에 시달했던 《파윁근무자 우선》의 구인광고를 창수도 보게 되였던것이다.

간흉한 위정자들은 윁남전쟁터에 청장년들을 끌어갈 때 윁남파병근무를 마치고 오면 취직을 쉽게 할수 있다는 감언리설도 늘어놓았는데 저들의 그 기만선전이 폭로되고 귀환병들의 동향이 험악해지자 이러한 미봉책을 쓰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창수의 리력서를 들여다보고있던 늙수그레한 인사과장은 리력서에 눈을 준채 물었다.

《야경원은 왜 그만두게 되였소?》

《사정이 있어서… 그때 제 건강이 좋지 않았더랬습니다.》

《무슨 병인데?》

창수는 어물거리다가 대답했다.

《지금은 일없습니다.》

《음…》

인사과장은 통지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창수는 이번에도 틀렸구나 하는 예감이 왔다. 이럴줄 알았으면 애당초 야경원노릇을 한 사실을 올리지 말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가정교사를 구하는 어느 집에서 그가 윁남파병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제대자라고 하자 만나주지도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윁남파병근무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한다기에 그 리력과 함께 야경원경력도 올린것인데 이런 질문을 받을줄은 몰랐던것이다. 인사과에서 그가 근무하던곳에 알아보기만 하면 임무태만으로 면직된 사실이 드러날것은 뻔하고 그렇게 되면 채용하지 않을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던것이다.

아닌게아니라 그가 복도에 나서자 그를 면직시킨 일터를 찾는 인사과장의 전화거는 소리가 났다.

차거운 가을비를 맞으며 창수는 공장문을 나섰다. 매캐한 화학약품냄새와 뚜껑도 없는 공장페수구에서 풍기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맥을 놓고 가고있는 그를 누가 뒤에서 불렀다.

뜻밖에도 영태가 방금전에 창수가 들렸다 나온 공장문을 나서며 그를 부르고있다.

《니가 우이된 일이고? 여기를 다 오고…》

영태는 창수가 묻고싶은 말을 자기쪽에서 먼저 했다.

《사람을 채용한다기에…》

영태는 창수의 말을 가로챘다.

《니가 정신 나갔고나. 이런데 뭘랏고 오겠다카노. 우리 영규 꼬라지가 될랏고 그러나?》

영태는 점점 모를 소리를 한다. 창수가 의아해하자 영태는 나란히 걸어나오면서 이런 소리를 했다.

《내 족질벌 되는 사람이 이 회사 사장이다. 그 사람을 내가 만나보고 오는 길이 아니가.》

《아들 하나가 국회의원이라는 그 사람말인가?》

《하모. 장수백과를 짬만 있으믄 읽고있는 그 사람이지러.》

영태는 전에 창수에게 이야기하던 자기의 족손벌이 되는 서도이췰란드대사관 수석로무관 윤종기가 마침 자기 부친의 회사에 들렸다고 기별이 왔기에 만나보고 온다면서 《서도로 갈 탄부와 간호원들을 데리러왔다고 하더라. 아모리 물구나무를 서도 여기서는 땅에 발을 못 붙인다. 간 큰 놈이 널장사한다카지 않더나. 니 한분 더 생각해봐라.》하고 말하는것이였다.

벌써 자기는 서도이췰란드 탄부로 가기를 결심한 말투이다. 요사이 시골 장날에도 나가지 않고 외출이 잦더니 그새 영태는 친척벌이 된다는 수석로무관이 내려오는 날을 기다리고있은것 같다.

창수가 대답을 안하자 영태도 더는 말을 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두 청년이 공장의 긴 벽돌담을 에돌아 비를 맞으며 가고있을 때 그들의 모습을 굽어보며 사장실에서는 윤영조부자간에 영태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고있었다.

《생김새도 별나지만 아버님앞에서 당돌하게 굴어서 내쫓을가 했어요.》

《그러지 않기를 잘했다. 그런자들도 쓸모가 있을 때가 있으니까. 허허허.》

윤영조사장은 눈언저리에 축 처진 살주머니를 흔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아비보다 키는 작으나 입을 열 때마다 송충이처럼 움씰거리는 눈섭이며 날카로운 코마루며 몸에 배고 능갈친 표정이 신통히도 아비의 얼굴을 빼박은듯 한 윤종기는 얄팍한 입술끝으로 입에 문 담배를 가지고 놀면서 아비의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너는 그래서 탈이라니까. 밉고 귀찮은자일수록 떡 하나 더 줄 시늉을 해보여야 일에 실수가 없는거다. 네 형 말을 들으니까 너는 이번에도 실수를 했다며?》

윤영조사장은 넌지시 아들을 내려다본다. 윤종기는 미간을 찌프린다.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들은 구태여 상사앞에서 말하지 않는것이 좋다. 그렇다고 겁날거야 없지만서도 말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항변했다.

《서도에 간호원들을 팔아먹는다는거야 그 작자들이 저보다 더 잘알고있는걸요.》

《그렇다면 뭘 안다고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란 사람앞에서 네 입으로 그 소리를 했는가 말이다. 그 사람들은 너처럼 서도에 누구를 판다고는 말하질 않아. 근대화의 밑거름이 될 외화획득에 헌신분투하고있다, 이렇게 말하지. 허허허.》

아들도 따라웃었다.

서도이췰란드에서 일시 귀국한 윤종기가 소관사무에 대한 보고를 끝낸 자리에서 어찌다가 화제가 서도이췰란드에 가서 륜락된 간호원들의 이야기에 옮겨가자 대사관이 《무번호 포주》라는 말을 듣고있다고 롱담삼아 한마디 했다가 상사로부터 핀잔을 들은 일이 있었는데 부자는 그 일을 회상하고있었던것이다.

윤영조가 아들에게 물었다.

《네가 보는 서도탄부나 간호원들도 꽤 벌어온다지? 윁남에 간 국군들과 산업전사들도 두둑이 국고를 채우고있으니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윁남에 끌어낸 로무자들보다야 서도탄부들이 더 벌고있어요. 하긴 서도간호원들이 일본에 내보낸 기생들보다 더 버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아까도 주의를 줬는데 아직도 버릇을 못 고치는구나. 기생이 뭐냐? 산업전사라고 부르던지 문교부 장관녀석이 뽐내듯이 일류예술가라고 해야지. 그런데 너는 언제는 윁남편이더니 요새는 서도편이 됐구나. 정말로 윁남보다 그쪽이 외화벌이가 괜찮단 말이지?》

아들은 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윁남대사관에 있을 땐 아버지나 형님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어요.》

《뭐라고? 내나 네 형이 할 일이 없어서 너에게 손해를 지우겠냐? 그 손해를 봤다는게 뭐냐, 말해봐라.》

윤종기는 무어라고 말하려다말고 눈을 부릅뜬 아버지에게 말했다.

《국고가 두둑하다고 하셨는데 그거야 박서방의 주머니지 아버지주머니는 아니잖아요?》

《또 저런 소리를 하는군. 박대통령이야 한집안식구와 같은데 촌수를 따질거야 없지. 허허허.》

윤영조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울산에 나가보신 일은 어떻게 됐어요?》

아들은 화제를 돌렸다. 윤영조사장은 그때 마침 울린 전화를 받고나서 대답했다.

《이제 온 전화도 그 일때문에 온거다. 네 친구들중에 어디 믿을만한 사람이 없냐? 기술학교 교장에 알맞춤한 사람말이다.》

《교장은 또 어디 쓰게요?》

《우리 공장에 돈을 대여주는 미쯔이가 그곳에다 기술학교를 세운다. 미쯔비시도 세우고, 일본정부도 4백만딸라나 원조해주게 됐다. 그 학교들을 위해서말이다.》

아들이 자기의 말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있음을 본 윤영조사장은 자기가 일본자본을 끼고 진출한 그쪽에 기술학교들이 서고있으며 졸업생들은 일본기업에다 취업시킬 원대한 구상이 당국과 일본정부간의 협약하에 착착 진전되고있다고 했다. 잠자코 듣고있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도 조심하세요. 공장앞으로 내는 길을 닦던 로동자들이 곡괭이를 들고일어난 일이 있다면서요? 형님이 그러더군요.》

윤종기는 방금전에 아비가 자기를 타이르느라고 끌어대던 형의 이름을 자기도 끌어댔다. 아들의 얼굴을 보며 두눈을 껌벅거리던 윤영조는 웃음을 날렸다.

《누구 말마따나 미국량반들의 총과 일본어른들의 돈이 떠받들어주는데 무서울게 뭐람!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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