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1 장

살아있는 사람들의 주소

8

 

돌산을 허물어내는 발파소리가 울릴 때마다 가을갈이가 끝난 논밭살피에서 분주히 먹이를 찾고있던 갈가마귀떼가 까맣게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오른다. 마을어귀에 있는 처져내린 초가지붕이영에 부리를 닦고있던 까치 한마리가 벌써 그 소리에 버릇이 된듯 멀리 가지 않고 집뒤뜰에 서있는 늙은 감나무가지로 옮겨앉으며 깍깍거린다.

산아래 아늑히 삼태기처럼 벌려앉은 마을복판을 꿰질러간 고속도로공사장에는 채양이 긴 물날은 미군작업모를 쓴 젊은이들과 머리에 수건을 동인 나이지긋한 농민들이 하얗게 몰켜 일하고있다.

솟구쳤던 돌쪼박과 흙기둥이 내리기가 바쁘게 밀차를 세워둔채 몸을 숨기고있던 한무리의 로동자들은 아직도 화약내가 감돌고있는 채석장으로 저마다 앞을 다투어 밀차를 밀어올리기 시작한다. 여러 가닥으로 늘어난 밀차 선로뒤쪽 먼발에는 길을 건너간 강이 가을해를 받아 반짝이고있다. 그쪽에서는 옹벽을 쌓고있는 로동자들이 움직이고있다.

허물어낸 돌들을 잽싸게 남먼저 밀차에 실은 도급로동자들은 같은 선로를 타고 온 밀차들이 아직 꾸물거리고있자 호된 욕설과 함께 부르짖는다.

《제껴라! 비켜라!》

밀차를 선로밖으로 제껴 자기의 밀차가 나갈 길을 틔워달라는것이다. 낡은 작업모로 깊숙이 이마를 가리우고 검붉은 얼굴을 치켜들며 부르짖고있는 청년들속에는 리창수의 얼굴도 보인다.

물매를 타고 내린 그의 밀차가 옹벽공사장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이윽고 올리막이 나타나자 밀차에서 뛰여내려 다시 두팔에 힘을 뻗쳐 밀어올리기 시작한다. 앞에서 가던 밀차의 속도가 느리여진다. 창수는 음울한 눈을 들어 낮게 부르짖는다.

《제껴!》

그러나 앞쪽에서는 이런 대답이 온다.

《너무 덤비지 말게. 노가다판에서는 이마에 땀이 나면 죽는 법이야.》

창수는 할수없이 앞사람과의 간격을 조절하며 천천히 밀어올린다.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밀차에 올라 제동막대로 속도를 죽이며 가는데 앞에서 가던 사람이 《어?》하고 웨치더니 부리나케 밀차에서 뛰여내린다. 곡선을 돌던 밀차의 속도를 조절하며 가던 그가 실수로 쥐고있던 제동막대를 놓자 그의 밀차는 자기의 속력에 못이겨 휘딱 뒤집히고말았다. 창수는 혀를 차며 자기의 밀차에 돌을 물리고 그쪽으로 달려가 돌을 도로 싣는것을 거들어주었다. 뒤따라오던 밀차들에서 고함소리가 났다.

육체를 압박하는 막중한 로동강도를 참아내느라고 거칠어진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뒤집힌 밀차의 임자를 노려보다가 창수를 보자 그가 자기 밀차로 돌아올 때까지 입을 다물었다. 평소에 말이 없을뿐더러 책상물림으로 보이는 그가 이 공사장에 나타난 후 힘겹게 일하고있는것을 유심히 보아왔기때문이였다. 밀차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수는 그가 기대했던 공장의 일자리도 얻지 못하게 된 후 영태와 한고향내기라는 부두로동자를 통해 부두일이라도 해볼가 하여 애써보았으나 그 일마저 얻자면 적지 않은 뢰물을 먹여야 함을 알게 되자 그무렵 한창 벌리고있는 이곳 고속도로공사장에 나오게 되였었다.

그가 리력서를 품고 찾아가 문을 두드리기만 하면 철벽으로 닫기고말던 치렬한 취직전선도 받아주는데가 있었던것이다.

일본자본들이 남조선 토착자본가들과의 합작명목으로 저네들의 본국에서는 격심한 반대를 받아 엄두도 못 내는 유해산업들을 땅값이며 전기값 특히 로동력이 싼 남조선에 들여오면서부터 벌리는 공장의 토목공사들과 또 고속도로확장공사장들이 그것이였다.

창수는 왜놈들의 공장으로 통하는 도로공사장에서 일하기보다 이쪽이 나으리라고 하여 고속도로공사장을 택했던것이였다. 부산쪽에서 동래를 거쳐 통도사에 정류소를 내고 다시 울산, 경주, 영천방면으로 뻗어 대구시로 가는 도로공사장이였다.

물방아간으로 옮겨앉은 매부집으로 다녀온 창수가 도로공사장으로 나오게 되였을 때 영태보다 영규가 더 말렸었다.

《어뚜케 그런데 가서 일하겠심니껴? 지하고 책방이나 같이 봅시더.》

영태도 그를 말렸으나 이것도 저것도 할수 없게 된 창수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가 공사장으로 나오던 첫날 아침이였다. 영태는 친구가 지어보이는 밝은 얼굴을 쳐다보며 그를 위로했다.

《니 공부 아깝다. 하기사 희한한 세상이지. 니 같은 사람을 품팔이군으로 만들었으니께.》

영태형제까지 그렇게 기다리던 취직자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그럭저럭 창수도 한사람의 토공이 되고만것이였다.

발파소리가 또 나고 새들이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흐려오는 생각에 까닭없이 반발심이 나서 제 몸을 제손으로 찢고싶은데 그의 얼굴에 내리는 땀과 날을 따라 넓어져가는 길폭을 노한 눈길로 바라보고선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업고 혹은 걸리면서 이불이며 옷보따리들을 머리에 인 녀인들이 섞인 리농민들이였다. 거적으로 둘둘 말아 묶은 세간짝들과 새끼로 동진 검댕이투성이의 솥이며 바가지짝들이 창수의 눈을 찔렀다. 고속도로가 마을을 꿰질러나가는 바람에 생활의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새 고장을 찾아가는 농민들이 차마 정든 땅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듯 가던 걸음을 멈추고있는것이였다.

그즈음 여간한 세상일엔 뜨끔하게 느끼지 않던 창수는 자기와 눈길이 부딪친 한 로파의 모습앞에서는 고개가 들리지 않았다. 거기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 그는 든든한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듯 비틀거렸다. 《제껴라!》 하는 소리가 뒤에서 연방 울렸다.

고향을 떠나는 농민들이 멀리 사라졌으나 밀차를 부리고있는 창수의 걸음은 공중으로 발이 뜬듯 붙지 않았다.

고속도로는 더 앞으로 뻗어갔다. 일본의 오사까에서 부산을 거쳐 서울까지 련결되는 길이라는 말도 돌았다.

창수가 붙었던 공사장의 일이 끝났을 때 함께 일하던 뜨내기로동자들은 더러는 왜관쪽으로, 더러는 다른데보다 경기가 좋다는 공업지구쪽으로 흩어져갔다. 그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공사장을 따라가는것을 그만두었다.

다시 날이 흘러갔다. 창수가 영태네 집에서 천정을 쳐다보며 윤옥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를 두고 생각에 잠겨있던 어느날 오후 매부가 나타났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왔던 걸음에 어떻게 지내는가 해서 들렸다는것이였다.

매부는 잠간이면 볼일이 끝나니 함께 나가 식사를 하자고 끌었다. 창수는 바람도 쏘일겸 그와 동행하기로 했다.

먼지속에 딩굴고있던 락엽들이 두사람의 발에 밟혔다.

문대식은 처남의 취직과 관련된 이야기를 입밖에 내지 않았다. 한두번도 아니게 헛되이 기대를 걸게 한 처남앞에서 그는 무력한 자기를 사죄나 하듯이 이런 소리를 했다.

《물방아간에 6마력짜리 발동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누가 변을 놓겠다는 사람만 나서면 곧 될거다. 그때까지만 참아라.》

매부는 지금 하루저녁에 기껏 낟알 한섬밖에 찧지 못한다는 그의 재래식물방아에 4만원이면 살수 있다는 발동기를 사서 동력화할 자기의 계획을 자세히 설명하고있었다. 그 일때문에 시내에 왔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발동기만 있으면 하루에 스무가마니의 낟알을 찧을수 있으며 정미기와 함께 제분기도 아울러 설치할수 있을것이라고 했다.

이야기가 오고가던 도중에 창수가 취직자리를 구해 윤영조사장이 경영하는 회사를 찾은 일도 있었음을 알게 된 매부는 저으기 흥분하여 자신이 계획하고있는 현대식수력도정공장의 륜곽을 더 상세히 처남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8.15직후에는 한갖 협잡군에 불과했던 윤영조가 미국놈들이 뻗친 줄을 잡아 소위 적산불하로 밑천을 장만한 다음 집권층을 끼고 《락하산》융자로 갑부가 된 놈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뿐만아니라 근년에는 자신의 명의를 빌려주어 왜놈들로 하여금 방대한 공장부지와 건물들을 손에 넣을수 있게 해주고있으며 최근엔 왜놈들이 남조선에서 저들 공장에 쓸 기술자들을 키우기 위해 기술학교들을 세우는데 적극 협력하고있는 사실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윤영조의 회사에서 나오는 트리코틴(릉직라사천의 하나)이며 포라천들이 땀을 잘 빨지 못해 피부위생에 매우 해로우며 그자가 일본자본으로 새로 세운 방직공장에서 나는 천이라는것도 순 면제품이 아니고 통풍이 잘 안되는 엉터리천이며 그것을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는 광고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다.

매부는 바로 그놈의 기업이 이 일대의 중소기업을 도산시켰고 그바람에 자기의 견직공장도 망하게 된것을 창수에게 말해주었다.

매부가 열을 올리며 윤영조사장의 죄악을 폭로하고 그의 공장제품을 까밝히는것을 보고 창수는 자기가 매부와 나아가서는 자기 집과 어떤 관계에 있는 회사에 일자리를 바라고 갔던가를 깨달을수 있었다.

나이에 비해 로숙한 안목을 가지고있는 매부는 자기보다 키도 몸도 큰 처남을 가끔 훔쳐보며 그런 소리를 하며 가다가 입을 다물었다. 창수가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기때문이다. 혼자 흥분하여 침을 튕기던 매부는 처남의 침묵앞에서 멋적은듯 화제를 돌렸다. 그의 이야기는 물방아이야기로 되돌아갔다.

식사를 마친 매부와 함께 선창가의 음식점에서 나왔을 때는 해가 기울고있었다. 매부는 일간에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문대식과 헤여진 후 창수는 저무는 바다가를 거닐고있었다. 휴지광주리를 등에 지고 쓰레기통을 뒤지고있는 젊은 넝마주이가 왜 그런지 자꾸 눈에 띄웠다. 부두로동자들이 그의 앞으로 가고있었다. 긴긴 나날 일터를 찾아다니며 허탕을 치고 돌아오던 길에 시간을 보내려고 어찌다 싸구려 영화관에 들렸다가 영화가 끝나고나면 느끼군 하던 그 허전함과 누를길 없는 외로움이 되살아났다.

매부가 돌아가면서 집에 전할 말이 없느냐 했을 때 없다고만 대답한 자신이 후회되였다. 어머니에게 일자리를 또 잃은 자기 이야기를 매부가 전할것 같아서였다.

향방없이 바다를 따라 어깨가 처져 가고있던 그는 물속에 들쑹날쑹한 구죽바위들이 들여다보이는 굽이진 기슭의 바위등에 올라 오래동안 잊고있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릴 때부터 정든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그는 락엽이 진 후박나무며 국화들을 헤치고 바다쪽으로 코숭이를 내밀고있는 바위너설에 가앉았다.

일본기발을 날리고있는 상선쪽으로 둥실둥실 전마선 하나가 떠가고있다. 전마선너머로 길게 혹은 둥글게 오륙도가 아스란히 바라다보이는데 미국군함들이 언제나처럼 닻을 내린채 움직이지 않고있다.

이윽고 기우는 석양에 붉게 물든 바다가 그의 발밑에서 설레이기 시작했다. 으리으리한 수면을 힘껏 끌어당기며 헤염치던 소년시절의 꿈이 되살아났다. 아슬히 먼 수평선을 향해 날개를 펼쳐들었던 갈매기들이 날아갈 때면 그의 어린 꿈도 함께 날아갔었다. 그는 북빙양끝까지 가는 원양선의 항해사가 되고싶었고 산호림이 우거진 남양군도로 배를 모는 선장이 되고싶었다. 물에 잠긴 울퉁불퉁한 바위너설에 붙어있던 굴이며 조개며 미역을 따던 그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중학교에 들어가 세상리치를 깨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번에는 세계의 문명을 꽃피운 에네르기의 존재에 경탄했다. 만물의 본바탕을 이루고 그 근본이 되는 복잡한 물질원소를 물리적으로 분리하고 또 화학적으로 분해해서 벌써 백여종이나 원소를 얻어낸 사실을 배우게 되였을 때는 물리학자가 되고싶었고 또 화학연구사가 되였으면 했었다. 세계에 대한 그의 경탄과 환희는 청년기에 들어서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그만큼 더 착실한 희망으로 바뀌여졌다. 그것이 윤옥에게 알린 그 기계기사였었다. …

바다가 저물어갔다. 물이 꺾였다가 되살아나는지 쏴아 쏴아 파도소리가 높아졌다. 기슭에 와 부서지며 소리치는 바다가 그를 보고 왁자지껄 비웃는듯싶었다. 어둠속에서 허옇게 부서졌다가 길길이 뛰여오르는 바다는 그를 비웃다가도 부릅뜬 눈을 흘깃거렸다.

문득 가슴에 참을수 없는 아픔이 밀려왔다. 윁남으로 끌어가던 수송선이 이 기슭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그를 삼켰다. 그의 눈앞에는 발목까지 빠지는 우기의 윁남땅이 펼쳐지고 독사와 모기와 거마리들이 우글거리는 숨막히는 밀림이 파도쳤다.

몇달째나 벗지 못한 비에 젖은 군복자락을 쥐여짜며 팅팅 부어오른 발로 무거운 군화를 끌며 포연탄우속을 걸어온 그 길이 피의 연기속에 잠겨있었다. 겨우 살아와 첫발을 디딘 강토,  사랑하는 윤옥의 얼굴을 그리며 실로 오랜만에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하던 땅이였다. 대패질을 하며 자귀질을 하며 사개를 맞추면서 마구간옆에다 그가 지었던 새 방이 어두운 바다밑으로 잠겨가고있었다. … 그는 윤옥이가 왜 서도이췰란드로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는가를 알았다.

그날 밤늦게 영태의 집으로 돌아간 창수가 어머니를 보러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 영태는 놀랐다. 래일 날밝을 때 가라고 권해도 듣지않고 기어이 그날 밤으로 떠나겠다는 창수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근심하며 뻐스정류소까지 영태네 형제가 따라나왔다. 영태는 떠나가는 친구의 두손을 움켜쥐고 당부했다.

《이 사람아, 딴 마음 묵지 말고 꼭 돌아오너라이. 내가 기다린다이.》

영규도 그에게 당부했다.

《창수형님, 꼭 돌아오시이소. 창수형님이 집에 안 오시면 형님이 적적해서 몬살낌니더.》

뻐스에 오른 창수는 영태형제에게 손을 들어 어서 돌아가라고 흔들어보였다. 영태형제의 눈에는 그가 울고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후 매부의 집에서 돌아온 창수가 영태에게 말했다.

《이 땅에선 더는 살수 없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되질 않아.》

그리고는 자기도 서도이췰란드 탄부로 가겠다고 했다.

창수에게 함께 가기를 권하던 영태는 그의 말이 떨어지자 기뻐할 대신에 한숨을 쉬였다.

그해 2월 하순 진눈까비가 내리던 어느날 오후, 김포비행장에는 서부도이췰란드 루르지방으로 떠나가는 남조선 탄부 130명을 태우기 위해 비행기가 대기하고있었다.

김포비행장을 출발하여 도꾜 하네다비행장을 거쳐 히말라야산맥을 넘은 다음 디마스끄, 아테네, 쮸리히를 돌아 도이췰란드의 듀쎌도르프에 닿는 긴 항로를 앞에 둔 비행기였다.

비행장에는 려객들을 맞고 혹은 바래기 위해 각색의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여있었다.

하늘에서 폭음이 요란히 울더니 지상유도를 받으며 제트기 한대가 서서히 원을 그리며 내리기 시작한다. 《JAL》이라고 씌여진 동체가 보이더니 한쪽날개를 기웃거리며 활주로에 들어선다. 일본에서 오는 정기려객기이다.

비행기문이 열리자 일본인들이 즐겁게 담소하며 승강대를 내리고있다. 그들사이에는 미국인들도 끼여있다.

목도리를 치장한 개를 안고 내리던 사람들이 검문소쪽으로 가는데 그들을 맞이하러 나와있던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바삐 몰려간다.

이윽고 그들이 귀빈실쪽으로 빠지자 한무리의 일본인관광객들은 대기중이던 차에 올라 곧바로 비행장을 빠져나갔다.

진눈까비가 오는데도 활주로를 연장하는 공사를 다그치고있는 로동자들이 그들의 뒤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일손을 잡는다. 새로 크게 건물을 짓느라고 저쪽에서도 로동자들이 일하고있다.

창수의 어머니는 난생처음 와본 비행장안에서 눈을 줄데가 없어 아까부터 공사장에서 용접봉을 휘두르고있는 한 로동자의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용접봉이 뿜는 파란 불빛이 파르락거리며 옆으로 퍼지고있다.

그의 등뒤에는 사위 문대식이 상을 찌프리고 서있고 몇걸음 떨어져 사람들속에 끼여 영규와 윤전이가 나란히 서있다. 윤전이는 처음 만난 영규와 어느새 친해져 그의 팔을 붙들고 호기심에 찬 눈으로 비행장안을 두리번거리고있다.

윤전이 어머니는 어제오늘 김학배의 병세가 좋지 않아 나오지 못하고 윤호는 신문배달을 하느라고 나타나지 못했다.

비행장 전용뻐스를 타고 집단적으로 오게 되여있는 서도이췰란드행탄부들이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고있는 로파들과 젊은 아낙네들이 보인다.

아들을 바래주러 멀리 서울에 올라온 어머니는 이제나저제나하는, 아들을 태운 뻐스가 영영 나타나지 않았으면 했다. 진작 그 녀인이 두려워하던대로 창수는 또다시 어머니의 곁을 떠나려 한다. 아들을 붙잡지 못하는 슬픔과 원한이 그의 가슴을 저며냈다.

남편과 어머니마저 집을 비우게 되면 외딴 물방아간에서 혼자 있기 무섭다 하던 딸에게 창수를 바래주는 길로 곧 돌아가마 했었는데 차라리 이 자리에 오지 말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윁남의 죽음터로 끌려가던 아들의 얼굴도 볼수 없었던 그 원한이 되살아나 이렇게 어려운 길을 달려왔건만 머나먼 이역땅의 일년 열두달 해빛을 볼수 없다는 깊은 굴막장으로 흘러가는 아들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해줄수 있으랴싶었다.

어머니는 세상을 버린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아버지가 살아있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질 않았을텐데 이 어미가 못나서 아들을 또 죽이는구나 하는 생각에 억이 막혔다.

어린 창수를 업고 친정집에 나들이를 가던 먼 옛날이 참기 어려운 슬픔의 시각에 보여왔다. 처녀시절에 그네를 뛰던 늙은 느티나무가 그의 눈앞에서 휘청거렸다. 시름모르던 그 시절에 하늘에 눈을 주고 그려보던 아름다운 꿈과 소원을 지니고 태여난것이 아들 창수였었다. 창수는 그의 얼굴을 닮았다.

학교에 처음 들어간 어린 아들이 그 느티나무밑으로 해서 책가방을 메고 달랑거리며 온다.

《엄마! 배고파!》

《오냐, 어서 들어오너라.》

아들의 손발을 씻어주고 옷을 빨아주고 밥을 먹여주며 그는 늙었다.

배불리 먹고난 아들이 어머니를 찾는다.

《엄마! 나 강에 고기 잡으러 갈래.》

《얘야, 깊은데로 가면 못써, 혼자 가면 못써!》

창수가 혼자 깊은 강가로 가고있다.

《창수야!》

강가에 혼자 세워둔 아들을 부르며 어머니는 달려가고있다. …

《아주머님! 저기 뻐스가 와요.》

윤전이가 그를 부른다.

비행기에 오를 사람들을 실은 뻐스가 여러대나 오고있다. 뻐스가 멎자 젊은이들이 줄지어 내리기 시작한다.

사위에게 부축되여 어머니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음을 뗀다. 창수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있다. 한사람이 무슨 주의를 주는지 그들을 붙들고있다.

이윽고 헤여진 젊은이들이 바래주러 나온 가족들쪽으로 몰려오고있다. 창수가 영태와 함께 이리로 오고있다. 사위 문대식이 급한 걸음으로 다가가 창수에게 묻고있다.

《몇시에 떠나지?》

《30분후에 떠난다고 했어요.》

어머니에게 다가온 창수가 말한다.

《어머니, 오시지 말랬는데 왜 오셨어요? 날도 추운데…》

《오냐, 날이 춥다.》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고만 있다. 아들은 시선을 땅에 떨군다. 저쪽에서 영규가 자기 형에게 하는 말소리가 들려온다.

《형님, 거기 가면 물이 좋지 않다캅디더. 물 조심하이소.》

《오냐. 영규, 니 몸 조심해라이. 약 묵는것 잊지 말아라이.》

《예, 아부님께는 지가 편지해도 좋겠습니껴?》

《고만둬라. 내가 가서 할게. 돈도 없는데 이런걸 뭘랏고 사왔노?》

《가시다가 자시이소.》

영규가 참고있던 기침을 깇기 시작하자 괴로운 눈길로 동생을 바라보던 영태가 또 한번 다짐을 받는다.

《니 약 묵는것 잊어뿌리면 안된다.》

《예.》

《이건 뭔고?》

《흙임니더. 서도 가면서 다들 가져칸다카기에…》

《엣따, 이런거 뭘랏고 가져가겠노? 누가 죽으러 가나? 곧 갔다올낀데. 이건 안 갖고 가겠다.》

《형님, 좋은대로 하시이소.》

영태가 어머니와 창수가 서있는데로 다가온다.

《어무이, 안녕히 기시이소. 3년후에 또 보이겠슴니더.》

《부디 잘 갔다오게. 어디 가나 꼭 둘이서 다니게.》

《예, 산이 높아야 굴이 깊다카지 않슴니껴. 한번 거기 가서 떠보고 오겠슴니더.》

윤전이가 창수에게 말한다.

《아저씨! 몸조심하세요. 언니 만나시면 그것 꼭 전해주시고… 돈보내겠다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어머니가 말씀하더라구 꼭 전해주세요.》

《알았다.》

《아저씨, 언니에게 편지하셨죠? 이건 어머님이 아저씨에게 드리라 했어요.》

《편지했다.》

창수에게 매부가 말했다.

《자네가 없으면 집사람이 더 적적해하겠구나. 닿는 즉시로 편지하라고 집사람이 부탁하더라. 안됐다, 몸조심해라.》

창수가 어머니에게 얼굴을 돌린다.

《어서 돌아가세요. 거기 가면 곧 편지 올리겠어요.》

《꼭 편지하거라. 윤옥이를 만나거든 안부 전해라.》

《네.》

어머니의 등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그와 나이가 비슷한 50대녀인이 아들의 두팔에 매달려 울고있다.

《편지해라, 가자마자 편지해라!》

하나로 엉켜 리별을 슬퍼하던 사람들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 다가오는지 개찰구가 열렸다.

창수는 어머니앞에 깊이 머리를 숙여 절을 한다.

《어머님! 안녕히 계십시오.》

《오냐…》

어머니와 아들이 작별하고있는데 빨리 줄을 지어 서라는 소리가 난다. 방금전에 젊은이들에게 주의를 주던 사람의 목소리다.

어머니는 더는 참을수 없었다.

《창수야!》

비틀거리며 아들을 끌어안은 그는 창수의 얼굴을 더듬으며 몸을 떤다.

《창수야! 네가 이 어미를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

진눈까비가 그의 머리우에 흩날리고있다.

애끊는 어머니의 통곡소리는 날아오른 비행기의 폭음을 누르며 하늘땅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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