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2 장

조국이여, 너는 어디 있느냐?

1

 

서도이췰란드의 하늘은 항상 찌프리고있었다. 어찌다 해를 볼뿐 이른봄부터 시작한 가랑비가 끈질기게 내리다가 늦가을에 와서야 멎는가 하였더니 어제오늘 항구쪽에서 제법 쌀쌀한 바람을 몰고온 겨울이 올해 들어 첫눈을 뿌리기 시작한다.

담당병실에서 방금 간호원대기실로 돌아온 김윤옥은 주사기를 손에 든채 눈내리는 창밖을 멍히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느새 벌써 서도이췰란드에 온지도 1년이 가깝다. 처음이니까 그럴수밖에 없겠지 했던 일들이 오늘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는구나 하고 한숨만 나갔다.

부모님들과 동생들 생각, 창수생각이 문득문득 떠올라 외롭고 쓸쓸해지기만 하는것을 마음 독하게 먹고 참자, 세월이 가면 가라앉겠지 했었는데 반년이 지나고 1년이 되여가는데 고국땅과 거기에 두고 온 사람들이 그리워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은 그였다.

병원근무도 고국에 있을 때의 간호원은 얼마나 헐했는가 하는 생각만 하게 된다. 서도이췰란드에서의 간호원은 두곱세곱 힘들었다. 그래도 이제 곧 익숙해지겠지 했었는데 날이 갈수록 피곤이 쌓여만 갈뿐이였다. 더우기 지난봄에 창수가 윁남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마음이 자꾸만 뒤숭숭해지고 서도이췰란드로 오지 않고는 자기 집에 닥쳐온 곡경에서 헤여날 길이 없었겠는가고 이미 뒤늦어진 일들을 곱씹어가며 생각하게 되는것이였다.

병원마당가에 선 보리수나무며 가문비나무너머로 자욱한 하늘이 설레이고있다. 복도에서 분주히 오가는 간호원들의 신발끄는 소리가 자주 멎더니 무시로 대기실문이 여닫긴다. 간단없이 호출종이 울고있다.

그때마다 고개를 돌려 호출종의 번호를 살펴보는 그의 검다못해 푸른 기운이 도는 커다란 눈동자가 자주 깜박거린다.

《아이 속상해! 또 부르네.》

간호원대기실을 빠른 걸음으로 들락거리는 간호원들이 자기가 맡은 병실에서 찾는 종소리를 듣고 늘어놓는 짜증섞인 푸념이 또 들려온다.

윤옥은 아침부터 바삐 뛰여다니느라고 도두룩한 코마루에 송골송골 땀이 돋은채 생각을 달린다.

창수한테서는 왜 소식이 없을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모를 일이였다.

윤전이와 윤호가 보낸 편지에 의하면 윁남에서 온 창수가 집에 들렸다고 했고 그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이 왔었다고도 했는데 그 소식을 받은 즉시로 그에게 편지를 보냈건만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이렇게 겨울이 와도 어찌된 일인지 손꼽아 기다리는 그의 회답은 없다.

윤전이가 전에 보내온 편지에서 창수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했고 눈이 퀭 들어가고 어디 몸이 아픈것 같다고 했었는데 혹시 무슨 병에나 걸리지 않았을가, 그렇지 않으면 혹시 그의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것이나 아닐가, 그래도 편지회답이야 못할리가 없는데…

윤옥이 생각에 잠겨 대기실문이 여닫기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있는데 《하인베!(향수에 잠겨있다!) 하인베!》하는 새된 소리가 그의 귀청을 때렸다. 흠칫 놀라 뒤돌아보니 빨강머리 도이췰란드간병원 랄라가 입을 삐죽거리며 손가락질하고있다.

《안겔리까! 아무리 호출해도 병실에 안 오기에 마리아간호장님이 가보라고 해서 내가 왔어. 저것 봐!》

랄라간병원이 련속 울리고있는 3호실 호출종을 가리켜보인다. 윤옥의 담당병실이다. 깜짝 놀라 달려나가려는데 그와 엇갈리며 대기실로 들어선 손보금간호원이 털썩 의자에 주저앉는다.

《아유 허리야. 잠시도 앉아있을 짬이 있어야지.》

며칠전에 사망한 환자의 시체를 사체실로 옮기려고 들어올리다가 허리를 삐였다고 하더니 그것이 낫지 않는 모양이다.

대기실로 나가려던 윤옥의 시선이 문득 손보금의 두다리에 멎었다. 힘줄이 튀여나와 가로세로 푸르끼레한 정맥이 내돋치고있다.

허리를 주무르며 창밖에 눈길을 던지고있던 보금이 뒤쪽에서 울리고있는 종을 돌아보고 혀를 차며 일어선다.

《또 부르누먼!》

복도에서 윤옥을 뒤쫓아온 손보금간호원이 말한다.

《이것 봐요. 안겔리까, 우리끼리는 일없어두 마리아간호장 있는데선 그렇게 내 이름을 부르지 말어요.》

《잘 알겠어요. 요한나아주머님!》

이런 대답을 남기고 윤옥은 간호모를 고쳐쓰며 한걸음 앞서 휭 달아나듯이 보금의 옆을 떠난다.

손보금간호원은 입귀를 꼭 다물고 앞쪽에서 간호복자락을 날리며 달려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기 담당병실로 걸음을 재우친다.

안겔리까는 병원의 도이췰란드녀간호장 마리아가 윤옥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남조선간호원들은 의무적으로 도이췰란드식이름을 가져야 했다. 도이췰란드간호장 마리아의 말에 의하면 윤옥, 보금, 경애 등 남조선식이름은 발음이 까다로와 그것을 하루에도 수십차례나 부르게 될 환자들의 예민한 신경에 좋지 못한 자극을 줄수 있기때문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안겔리까, 수잔나, 요한나 등으로 불리우게 된것인데 아까 윤옥이 마리아간호장이 있는데서 손보금의 이름을 불렀더니 그것을 두고 보금이 주의를 준것이였다.

윤옥이 바쁜걸음으로 담당 녀환자실에 들어서자 좀전에 손톱, 발톱을 깎아주고 귀구멍까지 후비여달래서 귀지개로 후비여준 환자가 옆침대를 가리켜보였다. 윤옥은 그가 하는 빠른 도이췰란드말을 다 알아들을수 없었으나 말하고저 하는것을 쉽게 짐작할수 있었다.

그쪽에서 풍겨오는 악취로 보아 간염환자가 변을 본것이 틀림없었다.

병실안에 들어설 때부터 끼쳐오던 악취에 울컥 역겨워지는것을 가까스로 누르고 들어섰던 그는 이런 시중을 하는것이 처음이 아닌데도 얼른 손이 나가지 않는다.

닭털이불과 베개의 먼지까지 털어주고 손을 씻자 몇사람 건너 저쪽침대에서 일어나 앉은 환자 하나가 비대한 몸을 뭉기적거리며 《안겔리까!》하고 윤옥을 찾는다. 피임제를 자주 사용하여 간염을 일으킨 환자이다.

그 병동에는 주로 피임제를 자주 써서 병을 얻은 환자들이 적지 않았는데 자궁암환자가 21%, 유선암환자가 17%, 간염이 16% 기타 골암환자, 당뇨병환자들도 일정한 비률을 차지하고있었다.

란잡한 성생활과 거기에 따르는 피임약 등의 사용에서 오는 병이 많았다.

윤옥을 찾은 환자는 입고있던 환자복앞섶을 헤쳐보이며 빠른 도이췰란드어로 무엇인가를 요구하고있었다. 환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자 상대방은 무거운 몸을 들었다놓으며 답답해한다. 삐걱거리며 흔들리고있는 환자의 침대가에서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하고있던 윤옥은 그가 말한 《마른 수건》이란 단어와 안타까운듯 헤쳐보이는 젖가슴에 난 땀을 보고서야 비로소 말뜻을 알아차렸다.

땀이 난것을 훔쳐달라는것이였다.

마른 수건으로 그의 몸을 훔쳐주기 시작했다. 병실에 찬 악취를 맡지 않으려고 페활량이 허용하는대로 호흡을 끊군 하는데 그때마다 숨이 막혀 그의 두볼이 홍조에 붉게 물들었다.

윤옥의 손이 비는것을 기다리고있던 다른 환자가 그를 불렀다. 침대머리맡에 있는 탁자우에 놓인 꽃병의 물을 갈아달라고 한다.

아침녘에 침대를 새로 다듬어줄 때 복도에 내놓았던 꽃병들의 물을 죄다 갈아주었는데 그 환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다리아꽃이 꽂힌 물병을 오전중에 두번씩 갈아주게 했다.

마치도 하녀나 몸종을 부려먹듯 하려는 입원환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습성은 서로 달랐으나 남조선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하나같았다. 남조선간호원들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환자들은 그들을 몸종처럼 부려먹는것을 응당한 일로 여겼다.

일이 힘들고 고됨을 참기는 차라리 나은편이였다. 윤옥에게는 이러한 천시와 모멸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분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싶은 때가 많았다.

그러나 3년을 채우기 전에는 돌아갈수도 없는 몸이고보니 참는수밖에 없었다.

그가 꽃병을 들고 바깥 수도칸에서 돌아오자 마리아간호장이 허리에 찬 열쇠묶음을 쩔렁이며 병실안으로 들어섰다. 마흔일곱살의 독신인 그는 재빛머리를 하고있다. 윤옥은 그를 보자 저도 모르게 불안이 앞섰다.

(저 여우같은 교통순경년이 왜 또 왔을가?)

제2차 세계대전당시에 도이췰란드군대에서 간호장교로 있었다는 마리아는 이름난 척탄수였던 자기의 애인이 이전 쏘련의 쓰딸린그라드에서 전사한 후 독신으로 살아오는 열렬한 카톨릭교신자였다. 남조선, 남부윁남, 먄마 등지에서 온 간호원들의 일솜씨를 돌아보다가는 걸핏하면 신경질을 내는 그를 간호원들은 《교통순경》으로 부르고있었다.

윤옥은 아침일찍부터 병실과 대기실사이를 채바퀴돌듯 줄곧 돌면서 환자들을 보느라고 지쳤고 속이 이글거리던 뒤여서 식당에 가서도 식욕이 나지 않았다.

포크를 쥔채 자기 생각을 쫓고있는데 두어사람건너 같은 식탁에 앉아있던 빨강머리 랄라간병원의 목소리가 났다.

《올라라!(야단났다!) 올라라!》

윤옥이 고개를 들고 보자 랄라가 포크로 맞은편 식탁에 앉은 남조선간호원 하나를 가리키며 어깨를 들썩했다.

도이췰란드인들은 식사때 먼저 쥬패(슈스)를 마신 다음 음식을 받는데 감자가 주식이였다.

그리고 시금치를 갈아서 만든 죽이 따르는데 도이췰란드인들은 영양가가 높다지만 남조선간호원들은 비위에 거슬려서 좋아하지 않아 《말똥죽》이라고 불러온다.

랄라는 맞은편에 앉은 남조선간호원이 그 《말똥죽》을 들려다말고 아무래도 당기지가 않아서 못 먹겠다는 얼굴로 입을 비죽거리는것을 보고 시까슬렀던것이다.

얼굴을 붉힌 그 간호원이 자기를 노려보자 랄라는 슬쩍 시선을 윤옥이 있는쪽으로 돌렸다.

윤옥이 음식이 당기지 않아 먹는둥마는둥하고있자 랄라는 대뜸 《페트 게느끄! 페트 게느끄!》 하며 좋아한다. 남조선에서 고기구경을 못해본 애들이 도이췰란드에 와서 배속에 기름이 찼다, 그래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놀리는것이였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남조선간호원들이 고생을 하는데 동정은 않고 도리여 기름이 배속에 차서 그런다고 비웃는것이다.

윤옥은 도이췰란드간병원을 향해 낮게 소리쳤다.

《에갈!(너나 나나 같다!)》

윤옥의 입에서 나온 억눌린듯 한 이 목소리는 의미심장한것이였다.

그러나 민족적편견에 사로잡힌 이 빨강머리 도이췰란드처녀는 윤옥의 그 소리를 듣자 얼토당토않은 소리 말라는듯이 《멘쉔 진트 에갈?(사람은 다 같다고?)》하며 재빛눈알을 희번득거렸다.

같은 도이췰란드국적을 가졌어도 아리아순종의 혈통을 자랑하며 그 순결도를 미분수로 따지던 선대들의 사고방식과 생활환경에서 자란 랄라는 돌연 키들키들 소리내여 웃었다.

키들거리던 그는 급작스레 얼굴표정을 고치더니 너희들에게 하는 말은 아니지만 들어두라는듯이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쉬바이네!(돼지!) 에갈 쉬바이네!》

이런 소리를 한 다음 랄라는 무엇이 즐거운지 두다리를 꼬면서 커피잔을 당기며 발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자기는 벌써 식사를 끝냈다는 몸짓이다.

발장단을 치고있던 그가 갑자기 비명을 올리며 마루바닥에 나가넘어졌다.

그를 흘겨보고있던 윤옥이 발딱 자리에서 일어나는 길로 자기앞에 있던 《말똥죽》을 한줌 쥐여 랄라의 웃옷에 게발라주며 그를 뒤로 벌컥 떠밀었던것이다.

윤옥이 이러고있을 때 어느새 달려왔는지 랄라와 마주앉았던 남조선간호원도 달려와 랄라의 두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있었다.

《쉬바이네?(돼지라구?)》

파랗게 얼굴이 질린 윤옥은 랄라를 끄당기며 부르짖었다.

윤옥의 첫마디는 도이췰란드어였으나 그 다음부터는 조선말을 하고있었다.

《요 여우같은 계집애! 뭐라구? 우리가 돼지라구? 요 깍쟁이같은것들, 요게 누굴 보고 발질을 해!》

소동이 벌어졌다. 랄라는 엉엉 소리내 울다가 마리아간호장을 찾아 달려갔고 식당안은 여러 나라들에서 온 간호원들이 주고받는 말소리로 소란했다.

옆방에서 식사를 하고있던 마리아간호장이 나타났다. 마리아처럼 제2차 세계대전때 남편을 잃은 전쟁과부인 뚱뚱보 기숙사 사감도 안경을 번쩍이며 달려왔다.

랄라로부터 현장에서 있은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듣고난 간호장은 어지러워진 식탁과 깨여진 커피잔을 지켜보다가 사감에게 말했다.

《경찰을 불러야겠어요.》

그는 곧 경찰에 련락할듯이 전화통에 눈길을 보냈다. 이때 어데서 소문을 들었는지 장숙희대표간호원이 눈을 털며 들어서더니 간호장에게 자기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테니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나섰다.

그러나 마리아는 윤옥이만은 자기 방으로 끌고 갔다. 사감과 장숙희도 뒤따라왔다.

윤옥을 끌고 간 간호장은 병원이 개업한지 100여년이 되였으나 오늘과 같은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윤옥이가 병원의 깨끗한 력사를 더럽혔다고 깔끔한 말투로 꾸짖고 장숙희는 자기 말을 섞어가며 통역했다.

《집으로 가고프면 래일이라도 보내주겠어.》

마리아가 한 그 말은 통역이 없어도 윤옥이는 잘 알수 있었다. 장숙희가 자기 말을 했다.

《전세를 내고서 타고 온 비행기값이 천오백마르크란건 너두 알지? 돌아가자면 그만한 마르크가 또 있어야 하구…》

위협할 때마다 언제나 써오는 그 말에 윤옥은 그만 참을수가 없었다.

《마음대로 해요.》

장숙희는 윤옥을 잡아먹을듯이 노려보며 오금을 박았다.

《너 여기가 어디라고 턱턱 그래? 한국곤죠(근성)를 예까지 와서 보일테야?》

《그게 무슨 한국곤죠예요?》

평소에 얌전하고 온순한 처녀로만 알고있던 윤옥이 뜻밖에도 엇서는것을 본 장숙희는 마리아와 사감쪽에 웃는 낯을 보이며 입을 남실거렸다.

《제가 책임지고 랄라에게 사과하도록 이야기할테니까 이번만 눌러봐주세요.》

장숙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윤옥이 발끈 성을 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왜 내가 사과해요. 창피하지두 않으세요?》

장숙희는 사내처럼 코를 벌름거리다가 두 도이췰란드녀자앞에서 싱갱이질을 하는것이 그리 좋은 일이 아님을 깨달았는지 윤옥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마리아는 승낙한듯 잠잠한데 그새 자기 방으로 곤두박질하듯이 치달아올라갔던 랄라가 쪼르르 방안에 들어섰다. 몹시 숨을 할딱거리고있는 그의 손에는 비닐쪼박으로 표지를 해씌운 저금통장이 들려있다. 좀전에 장난궂은 눈을 하고서 남조선간호원들을 골려주던 때와는 달리 랄라의 두눈에는 섬찍한 푸른 불이 일고있다.

그는 간호장과 사감앞에 자기가 들고 온 저금통장을 내밀며 소리쳤다.

《이건 내 저금통장이예요! 여기 3천마르크 저금돼있어요. 이걸 저 한국녀자에게 주어 당장 내쫓아요!》

그도 남조선간호원들이 3천마르크에 발을 묶이고있음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랄라는 자기 돈을 쓰면서까지도 보기 싫은 남조선간호원을 쫓아버리겠다고 나선것이였다.

마리아는 좀해서 보인적이 없는 미소를 (윤옥은 마리아가 이름난 척탄수였다는 자기 애인의 공훈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미소를 띠우는것을 보았을뿐이였다.) 짓고 윤옥을 지켜보며 그 저금통장을 받으라고 했다.

장숙희는 두눈자위가 검푸르러지면서 윤옥을 맵짜게 돌아보며 이제사 정신을 차렸느냐는듯 코를 벌름거렸다.

참을수 없는 모욕에 숨이 막힌 윤옥은 두손을 꼭 틀어쥐고 움직일줄 몰랐다. 부끄럼과 분함에 붉게 타오르던 그의 두볼은 순식간에 싸늘한 재빛으로 변해갔다. 심장에 날카로운 비수를 박은듯 그의 악물고있던 입술에서 낮게 신음소리가 났다.

다음순간 그는 도전하듯 한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증오에 찬 눈으로 마리아와 랄라 그리고 장숙희의 얼굴을 하나하나 뼈에 새겨두려는듯이 찬찬히 살펴보다가 갑자기 발을 구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날 저녁 일이 끝나자 장숙희가 윤옥을 대기실에 혼자 남게 했다.

《너 정신 나갔냐. 어쩔려구 그런짓을 해. 왜 아직두 정신을 못차려?》

《…》

《나는 다른 애들과는 달리 너만은 그런 앤줄 몰랐어. 너희들은 개인의 몸이 아니야. 한국의 얼굴에 똥칠을 해서 되겠냐?》

《누가 그랬다는 말이예요?》

《아니, 꼭 네가 그랬다는건 아니야.》

장숙희는 잠간 말을 늦추었다가 윤옥의 기색을 살폈다.

《조그만 일을 갖고서 그렇게 들썩하게 만들 필요가 어디 있냐? 난 너희 부모님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네가 여기서 쫓겨나게 될 일을 생각해봐. 3천마르크나 되는 돈을 너희 부모님이 물수 있겠니? 파산하고말게 뻔하지 않느냐.》

《그 말을 하려고 보자구 했어요?》

《또 곤죠냐? 되지 못하게 되려 누굴 가지고 놀셈이야? 좋게 타이를 때 알아차리지 못하구서…》

장숙희의 태도가 일변했다.

《너 영자가 어떻게 된줄 알지? 남숙이는 또 어떻게 신세를 망쳤구?》

《…》

숙희가 입에 올린 영자라는 간호원은 지난여름에 마리아간호장과 다투다가 해고된 후 갈데가 없어 헤매던 끝에 야외수영장에서 음독자살한 처녀였다. 그리고 남숙이라는 간호원은 장숙희의 말을 듣지 않다가 두달전에 남조선간호원들이 《1선》이라고 부르는 중부도이췰란드의 산악지대에 있는 정신병원 간호원으로 쫓겨간 처녀이다.

《여기서 말썽이 나면 너 혼자몸에만 관계되는게 아니야. 여기로 온 너희들은 한국의 명예를 걸고 온 국가의 몸이란걸 여러번 이야기해주지 않았어? 모두가 너처럼 행동하면 다시는 한국간호원들을 받지 않겠다고 할거야. 너희들이 벌어보내는 외화가 지금 얼마나 소중하게 쓰이고있는건 말 안해두 알고있지?》

윤옥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장숙희의 위협이 섞인 설교를 듣고 병원현관을 나서려는데 한무리의 도이췰란드인들이 게시판앞에 몰켜서서 거기 붙은 사진들을 쳐다보고있었다. 윤옥이 피뜩 그쪽에 눈을 주자 랄라도 그속에 섞여있다. 윤옥은 얼굴이 화끈해져 고개를 숙이고 그들옆을 빠져나왔다. 그 게시판에는 《한국의 비참상》이라는 표제아래 서울 빈민굴에 사는 어떤 가족이 초라한 식사를 하고있는 사진과 구루병을 앓는 농촌아이들이 탈려들어간 다리를 내놓고 어머니에게 안겨 젖꼭지를 물고있는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그것은 본에 있는 대사관의 후원밑에 도이췰란드인들로부터 병원을 세우기 위한 기부금을 걷자고 《간호원장사》라는 별명을 가진 한 《자선가》가 며칠전부터 붙여둔것이였다.

도이췰란드인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이런 비참한 생활정경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는지 대사관측과 《자선가》는 《한국의 3대질병》이라고 하여 회충, 성병, 결핵 등을 소개하는 환등까지 내돌리고있었다.

윤옥이 머리를 들지 못하고 병원문밖으로 빠져나가는데 뒤에서 누가 그를 불렀다.

《안겔리까!》

방금전까지 랄라와 함께 게시판의 사진을 들여다보고있던 우즐라간호원이였다. 우즐라는 도이췰란드처녀이지만 랄라와는 달랐다. 두 처녀는 같이 걸었다.

《안겔리까! 왜 너희들 나라에서는 저런 사진들을 내붙이니?》

《…》

《저런걸 내붙이니까 랄라도 그렇게 너희들을 업수이여기지. 내가 랄라를 욕해줬어. 너희 대사관에 말해서 저런걸 붙이지 말도록 해!》

우즐라는 그런건 윤옥이가 말하기만 하면 가능할것이라고 믿고있었다. 그는 명주실오리같은 부드러운 금발을 날리며 웃는 얼굴로 윤옥을 뒤돌아보며 사라졌다.

저녁생각이 없어서 윤옥은 그길로 눈오는 거리를 홀로 거닐다가 병원 5층에 있는 자기 숙소로 돌아왔다. 같이 있는 남부윁남간호원은 친구들 방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윤옥은 까딱도 하지 않고 의자에 혼자 앉아있었다. 창문을 새여나간 불빛에 비친 눈송이들이 자꾸만 흐려왔다. 오늘처럼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면 괴로운 심정을 나누며 서로 위로하던 경애가 있어서 그래도 잠들수 있었는데 그마저 떠나버린 방이 더 쓸쓸하다.

(경애는 잘 갔어. 이런 꼴 더 보지 않게…)

한달전에 루르지방에 있는 탄부종합병원으로 옮겨간 경애가 불현듯 못견디게 그립고 부러웠다. 그와 헤여지던 날의 일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경애는 그날 짐을 꾸리고있었다. 병원에서 늦게 돌아온 윤옥이 거들어주겠다고 하자 그는 《뭐 거들것이 있니? 거기 앉아 구경만 해.》하며 웃어보였다.

《꼭 떠나야 하니?》

《가구말구! 마리아와 랄라, 장숙희 같은게 없는데로 갈테야. 좀 있다 너도 와. 먼저 가서 자리를 봐둘게.》

자기가 쓰던 장안에서 무엇인가 들어있는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트렁크속에 넣으려다말고 경애는 창가로 다가갔다.

그 비닐봉지에는 고향땅을 떠날 때 다른 간호원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담아온 고국의 흙이 들어있었다.

경애는 그것을 창밖으로 내던지려고 하다가 다른 생각이 들었는지 도로 트렁크속에 간수했다. 윤옥은 그를 바라보며 안도의 숨을 쉬였다.

트렁크속에 짐을 다 챙기자 경애는 그것을 한번 들었다 놓고는 총각애처럼 그우에 걸터앉았다.

《너 기다리던 편지 왔니?》

《아니.》

《넌 편지나 기다리며 여기서 살아라. 난 려비 3천마르크만 벌면 집으로 갈테다.》

자포자기한듯 한 소리를 하며 무슨 뜻인지 치마자락을 당겨올려 다리를 내보이며 빙 한바퀴 맴을 돈다.

평소에 성깔이 세고 몸도 마음도 발랄한 경애였고 서울에서 간호원학교도 함께 다닌 친한 사이인데도 그의 말투며 하는짓이 마음에 거슬린 윤옥은 한마디 쏘아붙였다.

《넌 또 그따위 소리냐?》

《내가 왜 뭐랬다구?》

경애의 목소리가 뻣뻣해졌다. 다정하게 지내던 두 처녀사이에는 일찌기 볼수 없던 일이였다. 서도이췰란드 간호원생활에 진절머리가 나서 고국땅으로 돌아가고싶은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자기 신세가 슬퍼서 경애는 친한 윤옥에게 한풀이를 한것인데 윤옥이는 그것을 몰랐던것이다.

《넌 좀 별난데가 있어.》

윤옥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경애를 크게 자극했다. 트렁크에서 일어난 경애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넌 뭐이 다르다구 그래? 넌 3천마르크에 팔려오질 않았어?》

《난 팔려오지 않았어!》

좀해서 목소리를 높일줄 모르던 윤옥이 부르짖었다. 그도 어느새 걸터앉았던 침대끝에서 발딱 일어나있었다.

《흥! 팔려오지 않았다구?》

경애는 윤옥이앞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그래서 몇달째 눈이 빠지게 편지를 기다리구있고 아버님이 누워계시는데도 시중 한번 못해드리면서 그것들의 오줌똥을 받아내줘야 하니? 랄라년한테나 마리아년한테…》

주먹을 꼭 쥐고 여기까지 주어섬기던 경애는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와들와들 떨고있던 윤옥이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운채 침대에 쓰러졌기때문이다. 흐느껴울던 윤옥은 눈물에 젖은 얼굴을 홱 경애쪽으로 돌리며 일어섰다.

《그래, 난… 자리에 누워계시는 아버님께 병시중 한번 못해드렸어. 어머니도 동생들도 내곁에 없어.》

윤옥은 처음으로 자기 입을 통해 창수를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왔어. … 그이는 윁남에도 끌려갔더랬어. 그이는 편지도 하지 않고있어. 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왔어. 그러나 나는 팔려오진 않았어. 난 팔려온게 아니야. 팔려온게 아니야!》

윤옥의 입에서 비통한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침대우에 다시 이마를 박으며 쓰러졌다. 그때까지 이를 악물고 윤옥이의 말을 듣고있던 경애는 달려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울지 마. 내 잘못했어!》

이튿날 경애는 떠나갔었다. 그날 일이 그냥 마음에 걸렸는지 편지에서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거듭 사과를 했었다. …

그칠줄 모르고 내리는 눈발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경애를 생각하고있던 윤옥은 마음속으로 뇌였다.

(경애말이 옳았어. 난 팔려온 몸이야.)

그가 생각에 잠겨있는데 손보금간호원이 우산을 접으며 들어섰다.

《벌써 두번째 찾아온다. 어디 갔다 늦었니?》

보금은 방에 들어서지도 않고 계속했다.

《이야기할게 있어 그런다. 나하구 좀 걷지 않으련?》

윤옥은 그가 쏟아지는 눈도 마다하지 않고 두번이나 들렸다는 말을 듣고 그를 따라나섰다.

《식당에 들렸더니 보지 못했다구 하더구나. 우리 집으로 가자.》

마리안정신병원의 간호원으로 있는 서울에서부터 잘 아는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하는 보금은 백화점으로 들어가 먼저 김치통졸임부터 샀다. 일본에서 수입한 통졸임김치였다.

《요한나아주머니, 그걸 먹어두 일없어요?》

윤옥이 놀라자 보금이 대뜸 《요한나가 무슨 썩어빠진 요한나냐? 보금이라고 불러라. 왜 그렇게 젊은 처녀애들이 속대도 없이 문문하니?》하고 되려 꾸짖는다.

《아까는 보금아주머니 하니까…》

《그건 병원안에서만 부르는 이름이야. 그런거 가지구 그것들한테 말들을게 있니?》

그는 윤옥을 또 한차례 놀라게 했다.

개구리처럼 생긴 폭스 바겐(자동차이름)을 몰고 도이췰란드녀자들이 눈오는 거리를 달리고있었다.

《팔자좋은것들!》

보금은 눈에 뜨이는족족 거슬리는듯 뱉아내더니 《전차 타지 말구 좀 멀지만 걸어가자. 종일 사람에게 시달려서 사람냄새에 못 견디겠구나. 너도 그렇지?》하고 말했다.

두다리에 힘줄이 튀여나오도록 종일 서서 돌아가는 몸이였건만 걷자고 했다.

이윽고 만티니거리가 나타났다. 보금은 윤옥을 이끌고 아빠트 4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갔다. 같이 있는 간호원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있었다.

윤옥이 거들겠다는것을 뿌리치고 옷을 갈아입은 보금은 저녁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된장찌개와 양념을 다시한 김치를 들고 보금이 나타났다.

《자, 어서 들어라. 낮에는 <말똥죽> 안 먹겠다구 싸움했다지?》

《그런게 아니예요.》

윤옥은 김치를 아삭아삭 소리나게 씹으며 보금을 바라보았다. 오래간만에 된장찌개와 김치를 맛있게 먹고있는 윤옥을 보는 보금의 눈이 웃고있었다.

《아!》

김치를 한입 넣고 씹고있던 윤옥이 낮게 부르짖으며 이마를 뒤로 젖혔다. 코피가 쏟아지고있었다.

《저런!》

보금이 서둘러 그의 코피를 훔쳐주고 약솜으로 코를 막아준 후 자기의 침대우에 눕혔다.

《네가 고단한 모양이로구나!》

《일없어요, 아주머니.》

《나도 코피를 많이 쏟았다.》

보금은 윤옥의 다리를 어루만져주었다.

《너도 힘줄이 튀여나오는구나.》

윤옥은 침대에 누운채 맞은편 벽에 걸린 나이팅게일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그 사진아래 놓인 정신병원 간호원의 침대 머리맡에는 열살쯤 난 소녀와 예닐곱살 먹어보이는 소년이 나란히 선 사진이 걸려있다. 고국에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왔다는 그의 아들딸인듯 하다.

윤옥은 고개를 돌려 자기가 누워있는 보금의 침대주변을 살펴보았다. 보금이가 아이들을 두고 온 녀자라는 말을 윤옥이도 들은바 있었는데 그는 아무런 사진도 걸어두지 않고있다.

《너 장숙희한테 불려갔었다며?》

보금이 물었다. 윤옥은 그날에 있은 일을 대충 이야기했다.

《장숙희를 조심해.》

《알구있어요.》

《아니야, 너는 아직 다 모른다.》

윤옥은 그것보다도 게시판에 붙어있던 사진들과 우즐라간호원의 말이 잊혀지지 않아서 그 이야기를 했다.

벽에 걸어둔 두 아이 사진을 바라보고있던 보금이 입을 열었다.

《우즐라가 말한게 옳아. 나도 그 게시판을 봤는데 말이지. 정부요, 대사관이요 하는게 우리를 싸구려로 팔아먹기 위해 그런짓들을 하니까 랄라나 마리아 같은것들도 그런 눈으로 우리를 보는게지 뭐야.》

윤옥은 못견디게 부모가 그립고 집이 그리웠다.

《나도 여기 함께 있을수 없어요?》

《글쎄…》

뜻밖의 말이라는듯 보금이 어리둥절해진다.

《아주머니, 함께 와있게 해주세요. 네?》

《그건 좀 곤난한 일이 있어서…》

《뭔데요?》

대답이 없다.

사흘후 그처럼 기다리던 창수의 편지가 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편지는 의외의 소식으로 그를 당황하게 했다. 창수가 서도이췰란드로 온다는 말은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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