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2 장

조국이여, 너는 어디 있느냐?

2

 

남조선탄부들을 태운 서도이췰란드행 전세비행기는 강추위의 대공을 가르며 날고있었다.

비행기창문에 매달려 멀어져가는 고국산천을 눈여겨보던 사람들도 없어졌다.

심한 진동에 걸음발을 헛놓으며 자기 자리로 되돌아온 젊은이들은 이제는 구름아래 조꼬만 점으로밖에 남지 않은 강토를 굽어보며 짓고있던 웃음도 아닌, 울음도 아닌 얼굴표정을 그대로 지니고있었다.

창수는 다른 사람들이 조국땅을 내려다보고있을 때도 까딱않고 제자리를 지키고있었다.

《뭘 저레쌌노? 아이들처럼…》

창문에 매달린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중얼거리던 영태도 시간이 가자 가슴이 비여오는지 두손을 모두어쥐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비행기의 폭음에 귀가 윙윙거렸다.

팔걸이에 한쪽팔을 얹고 정면으로 고개를 세우고 앉아있는 창수의 두눈에는 붉은 실오리처럼 피발이 건너가고있다. 그새 며칠동안 잠을 자지 못한데서 온듯 하였다.

《고만 생각해라이. 일본에 다 왔다. 비행기가 빠르기는 빠르제.》

영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갈마드는 생각을 털어버리고 술로 목을 추긴 영태는 영규가 넣어준 낙지를 뜯고있다.

《뭘 좀 입에 넣어라. 묵으야 심(힘)을 쓴다.》

이마에 힘줄이 부풀어오른 창수를 보고 영태가 말했다. 창수는 시계를 보았다. 1시간 20분이 지났다.

기수를 낮춘 비행기는 하네다비행장에 내렸다. 비행기출입구에는 어깨가 벌어진 사나이가 지켜서서 일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창수는 쓰겁게 웃었다. 윁남전쟁터로 끌려갈 때는 누구 한사람 오줌이 마려워도 5인조로 묶이운 전원이 행동을 같이하지 않으면 안되였었는데 그보다는 좀 나은편이라고 생각한것이였다.

비행기출입구를 막고 서서 누가 가는 도중에서 달아날가 하여 날카로운 눈초리를 돌리고있는 사나이의 긴장한 얼굴을 보면 볼수록 그처럼 다시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살고싶던 땅을 떠나가고있구나 하는 걷잡을수 없는 비애가 창수의 가슴을 죄여왔다.

《저것 좀 보래. 벌써부터 술취한 상제 아니가. 뭐이 그리 급해서 좋은 술묵고 저래쌌노.》

고국을 떠나는 설음에 겨워서인지 강술을 들이키고 토하고있는 청년 하나가 어깨숨을 쉬고있는것을 보고 영태가 상을 찌프렸다.

《그러게 말이요.》

아까부터 맞은편 자리에서 영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나이 서른대여섯에 나보이는 탄부 하나가 창수대신에 말을 받았다. 그것을 계기로 서로 인사가 오고갔다. 첫눈에도 여느 젊은이들과는 달리 로동으로 단련된듯 한 억센 어깨와 검붉은 얼굴을 한 그 사람은 자기를 권도익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리지적으로 생긴 모난 얼굴과 붓초리같이 뻗쳐나온 진한 눈섭이 눈을 끌었다.

말을 걸어도 흥심없어하는 창수를 버리고 영태는 그 사람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야단은 야단이지러, 탄부라는기이사 황소처럼 심을 받아야 하는긴데 보아하니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다 책상물림들이 아닌기요. 호맹이자루도 몬 잡아본 저 손으로 어짤라카는지 모르겠소.》

《그래서 학사탄부라고 하지 않던가요. 허허허.》

《허허허…》

영태와 권도익이 웃는 소리가 창수의 귀에 들려왔다.

한참후 권도익의 목소리가 났다.

《무얼 그렇게 열심히 읽고있소?》

《어깨너머로도 공부를 다하는데 이 좋은 비행기안에서 와 허송세월하겠능기요.》

《도이췰란드책이군요.》

《말타고 보선깁는 사람도 있지 않던기요.》

《그런 말이 있지요.》

창수가 그쪽으로 눈을 돌리자 영태는 자기 가방속에서 꺼낸, 언젠가 그의 만화가게 뒤방에서 창수가 뒤져본 그 속성도이췰란드어를 펼쳐보고있었다.

비행기에 올라탄 사람들은 책은커녕 제 한몸 가눌 경황도 없는데 혼자 유연히 도이췰란드어를 익히고있는 영태의 모습이 유별나기도 해서 창수는 무어라고 한마디 건늬려다가 그만두었다.

비행기출입구에는 어깨가 벌어진 사나이가 여전히 지켜서있었다.

그는 가끔 책을 손에 든 영태쪽을 주시하군 했다. 그가 보든말든 영태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있었다.

비행기는 짙은 구름을 헤가르며 줄곧 날아가고있었다. 그사이 영태와 권도익은 벌써 잠에 든지 오래였으나 창수는 오래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있었다.

어느덧 그들을 태운 비행기는 쾨뻰하븐에 내리고있었다.

이제 여기를 떠나면 서도이췰란드땅으로, 윤옥이 있는 땅으로 닿게 되여있었다.

아침해살을 받아 번뜩이던 라인강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시내에 솟은 둥근탑과 성당과 공장굴뚝들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비행기는 활주로에 들어서고있었다. 듀쎌도르프비행장이였다.

비행기승강대를 내리는 창수의 눈이 마중나온 사람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김포비행장을 떠난지 30여시간을 헤아리는 긴 로정을 뜬눈으로 앉아온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날이 춥제?》

창수의 눈에 선 피발과 그의 이마에 부풀어오른 힘줄을 걱정하는듯 한걸음 앞서 승강대를 내려선 영태가 뒤돌아보았다. 대답없는 창수의 눈길이 그대로 딴쪽에서 헤매고있다.

《니 어디를 보고있노? 마중나온 한국사람들은 저긴데 말이다.》

영태가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켜보였다.

그쪽으로 눈을 돌린 창수의 심장이 고동쳤다. 어떤 낯선 녀자와 함께 자기쪽을 향하고있는 윤옥의 얼굴을 본것이였다.

탄부들을 맞이하러 나온 남조선사람들이란 본대사관에서 나온 로무관과 통역원, 그밖에 탄부들의 친지가 몇사람뿐이였기에 쉽게 알아볼수 있었던것이다.

윤옥은 같이 온듯 한 녀자의 앞장에서 이쪽으로 달려오고있었다. 다가오는 윤옥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던 창수는 문득 몇걸음앞에서 발길을 멈춘 그가 울린 나지막한 탄성을 들었다.

《윤옥이! …》

창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오래동안 애타게 그려보던 얼굴이 나타나자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윤옥이!》

재차 그가 부르는 소리에 상기한 얼굴을 들고 윤옥이 안길듯 달려왔다.

두사람은 손을 잡았다. 오래동안 밖에서 기다리던 윤옥의 손은 차거웠다. 창수의 손에 잡힌 처녀의 손이 오돌오돌 떨고있다.

창수는 윤옥이 입고있는 낯익은 외투를 보았다.

그것은 그가 윁남에 끌려가기 전에 서울에서 함께 눈덮인 거리를 걸을 때면 입고 나오던 자주빛갈의 낡은 외투였다.

이어 애인의 얼굴을 더듬던 그의 시선은 윤옥의 살이 내린 얼굴과 함께 입술에 나있는 자그마한 물집에 머물렀다. 그것은 처녀가 보낸 고달픈 나날을 말해주는듯 했다.

창수의 시선을 받은 윤옥은 무엇에 정수리를 얻어맞은듯 고개를 떨구었다. 사랑하는 청년을 제 나라, 제땅에서 맞지 못하고 천대와 멸시와 학대의 눈총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이역땅에서 맞게 된 슬픔이 치밀어오른것이였다. 그 슬픔이 그대로 창수의 심장에 아프게 실려왔다.

《윤옥! …》

사무치게 그리던 사랑하는 처녀를 눈앞에 두고 기쁨보다 먼저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누르며 나직이 다시한번 애인의 이름을 부르는 창수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고개를 돌린 윤옥의 눈동자에 솟구친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내렸다.

《이 사람아, 와 그렇게 말뚝처럼 서있기만 하노.》

두사람사이의 분위기를 눈치챈 영태가 창수의 어깨를 툭 쳤다.

그 소리에 눈물에 젖어있던 윤옥이 잡혔던 손을 뽑고 공손히 영태에게 인사를 했다.

《편지를 통해 말씀들었어요. 먼길 오시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셨어요?》

《이 사람아, 니가 받을 인사를 내가 몬저 받는고마. 이 사람을 윤영태라 불러주이소. 창수 친굽니더. 서로 떨어지지 못해 이렇게 짝을 지어 왔심더.》

윤옥의 등뒤에서 누가 소리를 죽여 웃고있었다.

윤옥이 어제 창수를 맞이하러 간다고 하자 한사코 자기도 따라오겠다고 해서 함께 온 경애가 웃는 소리였다.

윤옥이 창수와 영태에게 경애를 소개했다.

《제 친구 신경애예요. 서울에서 같이 간호원학교를 다녔어요. 저보다 한해 먼저 이곳에 와서 여기서 얼마 안되는 복흠이란데서 일하고있어요.》

영태와 첫인사를 나누던 신경애는 터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느라고 얼굴이 붉게 물들고있었다.

이윽고 창수는 윤옥의 집소식과 그의 어머니가 윤옥에게 전하던 인사며 윤전이의 부탁도 전해주었다.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만 있던 윤옥은 토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오래동안 편지 한장 안하셨어요?》

《일이 그만 그렇게 됐소.》

창수는 게면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런 불평을 듣게 되리라는것을 모른바 아니였지만 막상 첫인사에서 이런 말을 듣고보니 허둥거려졌다.

《여길 오실거라구 제가 미리 알았더라면…》

무엇때문인지 윤옥의 입에서는 다음말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후 그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면서 울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어떤 곳이라고 오셨나 말이예요.》

창수는 가슴에 세찬 충격을 받았다. 윤옥의 그 한마디에서 그가 서도이췰란드에서 보낸 나날을 짐작할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창수는 서도이췰란드로 온것을 후회하고싶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윤옥에게 그처럼 힘겨운것이라면 그를 혼자 내버려두고 그저 기다리고만 있을수 없지 않았겠느냐 한것이다.

잠시 휴식한 탄부들은 광업소에서 낸 뻐스를 타고 듀이스부르그에 있는 탄광쪽으로 떠나게 되였다.

영태가 윤옥에게 함께 뻐스에 오르자고 했다. 경애도 함께 타자고 했다.

윤옥은 창수가 일하게 될 탄광을 알아두고싶었다. 그러나 남자들만 탄 뻐스에 오르기가 멋하고 또 규정을 앞세우는 도이췰란드인들의 성미를 알고있는터여서 경애에게 그쪽으로 가는 시외뻐스를 리용하자고 했다.

두 처녀가 주고받는 말을 듣고있던 탄부들이 뻐스에 오르면서 소리쳤다.

《여보, 운전수! 저 처녀들을 같이 태워줘요.》

《운자(운전수)가 그 소릴 알아듣겠어?》

키는 작달막하나 목소리가 퉁방울소리 같은 통역원이 이렇게 말하며 운전사에게 무어라고 말을 건늬고있었다.

운전사는 벌컥 차문을 열고 두 남조선처녀를 지켜보더니 자기에게는 태울 권한이 없으니 뻐스를 대여한 광업소측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거절했다.

통역원은 혀를 차며 광업소측에서 나온 탄부인수자가 탄 앞쪽 뻐스를 거쳐 왔다. 운전사는 더 묻지 않고 발동을 걸었다.

뻐스에 오른 윤옥과 경애는 남조선탄부들이 비켜주어 창수와 영태의 옆자리에 각각 앉게 되였다.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토록 뻐스안에서는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두 처녀에게 뻐스에 오르기를 권하던 탄부들도 생소한 이국산천에 불안한 시선을 던진채 저마다 자기 생각에 잠겨있었다.

윤옥과 나란히 한자리에 앉아가던 창수는 순간마다 복잡하고 심각한 감정을 체험하고있었다. 사랑하는 윤옥과의 상봉은 응당 그와 처녀가 자라난 그 땅에서 이루어져야 했을것이였다. 그러나 그것이 안되였다.

창수는 문득 윤옥의 외투아래로 흘러내린 그의 치마자락에 시선이 갔다. 외투뿐만아니라 그가 입고있는 치마도 분명히 눈에 익었다.

둘이 함께 서울거리를 거닐던 일이 잊혀지지 않아서 그때 입던 옷을 골라입고 마중나온것이 아닌지… 그는 그윽히 떨고있는 윤옥의 눈동자와 그의 상기한 얼굴에서 그 대답을 들은듯싶었다.

차가 달림에 따라 윤옥이도 격동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듯 잔잔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생각나는대로 이야기하고있었다.

《숙소를 정하실 때는 기숙사에 들지 마시고 힘드시더라도 친구분들과 자취를 하도록 하세요.》

《…》

《방세가 좀 비싸더라도 그렇게 하세요.》

창수는 그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침울한 시선을 차창밖에 주고있던 탄부들이 윤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기들에게도 앞으로의 탄광생활에서 참고가 됨직했기때문이였다.

《자취를 하시더라도 마늘이나 김치를 자시면 그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그것도 조심해야 해요.》

영태가 그 말을 받았다.

《김치를 몬 묵으면 안될낀데…》

탄부들속에서도 영태의 말에 이어 여러 말들이 오고갔다.

《탄부들을 기숙사에 가둬넣는다카제?》

영태의 물음에 창수가 머리를 끄덕여보이는데 《킥!》하는 웃음소리가 났다.

경애의 웃음소리에 끌려 여태껏 어두운 얼굴을 하고있던 차안의 탄부들도 입을 벌려 웃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처음 만난 처녀가 앉아있는데서 몸가짐이 불편하던차에 자기로 하여 웃음판이 벌어지자 영태는 따라웃으며 앉음새를 고치고있었다.

《그 다음에 또 조심하실게 있어요. …》

도이췰란드인보다 더 조심해야 할 남조선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일러주려던 윤옥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한참 기다려도 윤옥이 입을 열지 않자 한 탄부가 말했다.

《라인강변의 기적이라 하던데 시커멓게 얼어붙어있군.》

웃음을 참고있던 경애가 대뜸 그 말을 받아나섰다. 윤옥이 혼자 뻐스안의 시선을 독차지하고있는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였다.

《그래요, 온통 먹물이예요. 꺼먼 기름과 나무껍질, 나무토막, 그런게 둥둥 떠가고있어요.》

경애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자 말을 이었다.

《여기 듀쎌도르프에서 로렐라이행 유람선이 가고있어요. 이 나라의 어떤 유명한 시인이… 그 사람이 시를 써서 유명해진 바위를 보겠다구 다들 찾아가구있어요. 쾰른쪽으로 가게 되는데 공장이며 성당, 강기슭의 나무들이 보여요.》

《로렐라이는요?》

한 탄부가 되물었다.

《그건 아무것도 없는 절벽 하나가 강쪽으로 쑥 나와있는거예요. 이나라 사람들은 유명짜하다지만 아무것도 볼게 없어요.》

경애의 말은 옳았다. 라인강에 내밀린 그 터실터실한 바위는 시인의 오묘한 환상이 아니였다면 그 누구도 금발미녀가 노래부르던 무대로 볼수 없었던것이다.

경애는 뻐스안의 주의를 끌며 설명에 열중했다. 창수와 윤옥은 미소를 주고받으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듀쎌도르프에서 쾰른을 거쳐 본까지 한시간, 기차로는 40분이면 가게 돼요. 본에서 한시간가량 내려가면 아까 말하던 그 절벽이 나타나요.》

고속도로에 들어선 뻐스는 속력을 내여 달리기 시작했다.

가로수가 많은 2중거리와 빽빽한 산림들이 지나갔다.

이윽고 넓은 벌판이 펼쳐졌다. 숲속이 추워서 해볕을 찾아 내려왔던 사슴떼가 여기저기 농장들의 경계선을 지어놓은 말뚝들을 뛰여넘어가는것이 보였다.

넓은 들판에 솟아오른 거대한 석탄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쪽으로 가고있는 탄부들의 모습이 차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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