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2 장

조국이여, 너는 어디 있느냐?

3

   

본주재 남조선대사관 수석로무관 윤종기는 아침부터 담당별로 파견되였던 두 로무관이 제출한 현황보고를 살펴보고있었다.

년말이 다가오는 때여서 대사관으로서도 그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것이였지만 서울에 보낼 년례보고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던것이다.

루르지방의 아켄, 크로크나, 함본, 에슈바일로탄광들을 비롯한 여러 탄광들에서 일하고있는 남조선탄부들을 담당한 로무관의 조사자료에 눈을 주고있던 그는 최근에 듀이스부르그의 C광업소에 투입된 탄부들속에서 일어난 몇가지 에피소드(그는 탄광이나 병원들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사건들을 그렇게 부르고있었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 에피소드는 남조선에서 새로 모집해온 탄부들중에서 의례히 일어나는 성질의것이였다. 지상훈련을 받을 때 1 500메터깊이로 뚫린 수직갱속에 내려가 작업현장을 견학하게 된 청년들중에서 훈련이 끝나고 갱내 작업에 들어가라 재촉해도 겁을 집어먹고 꽁무니를 빼거나 한사코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사건이였다.

윤종기수석로무관은 혀를 찼다. 지난번에 서울에 들렸을 때에도 탄부인선에 만전을 기해서 능히 일을 할수 있는 로무자들을 골라보내도록 강경히 요청한바 있었는데 이런 불미한 사태가 끊기지 않고있는것이다. 그는 외화획득에 지장을 줄수 있는 이러한 사태가 근절되지 않는것은 자기 지론대로 해외개발공사에다 탄부인선을 맡기지 말고 탄광협회와 의사협회의 공동책임으로 인선을 하도록 진작 건의서까지 낸 그의 요청이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있는데서 온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젊은 수석로무관은 그가 주장하는 모집방법에도 커다란 맹점이 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서도이췰란드당국에서는 결핵보균자, 간염환자 등 기타 탄광로동을 감당하기에 어렵다고 보는 병이 있는자가 자기네들이 실시하는 정밀한 신체검사에서 나타날 때는 무조건 계약위반이라고 하여 취업을 거절하는데 남조선의 탄광들에서 실지로 로동경험을 쌓은 탄부들중에는 그 신체검사에 합격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것을 모르고있는것이다.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대사의 녀비서가 그에게 오는 편지 몇통을 던져주고 나갔다.

서울의 대학동창으로부터 온 편지가 한장, 남부윁남에 있는 남조선대사관 타자수가 보내온것과 프랑크푸르트와 뮨헨에 있는 친지들로부터 보내온것들인데 그중 한장은 듀이스부르그의 C광업소주소로 된 《윤영태》라는 사람이 보내온것이고 한장은 대사앞으로 보내온것을 수석로무관도 참고하라고 돌려진 편지이다.

서울에서 온 친구의 편지는 보나마나 지난번에 알려온 자기 누이동생의 도이췰란드류학과 관련된 부탁이겠고 도이췰란드에 있는 친지들의것도 새로운것이 없을것으로 본 그는 타자수가 보낸 편지봉투를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바라보다가 그것도 한켠으로 밀어놓는다.

1년전에 그가 남부윁남주재 남조선대사관에서 로무관으로 있을 때 사귀게 된 녀성인데 뜯어보나마나 여전한 소리를 해왔으리라고 짐작한것이다.

그러나 그 편지는 잠시 그의 전임지를 회상하게 했다.

나이젊은 수석로무관인 그를 평하는 사람들이 갑옷장같은 부친의 뒤배경이나 여당의 실력자이며 《국회》의원인 그의 형의 주선으로 수석자리를 얻게 된것처럼 알고있는것이 못마땅할뿐만아니라 우습기조차 했다.

《천만에!》

입밖으로 소리를 내며 머리를 젓는 그의 진한 눈섭이 꿈틀거렸다. 담배를 붙인 그는 시뿌연 눈알을 들어 천정을 쳐다보다가 다음 서류를 만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생각은 여전히 사이공에 가있었다.

실은 그가 자부할수 있는 근거가 있었다. 의정부에 지사를 둔 미국의 빈넬회사가 남조선로무자들을 모집하여 남부윁남으로 진출한지 얼마 안되여 일어났던 로동쟁의를 무마할수 있은것은 오로지 그의 공로라고 할수 있다.

서류를 뒤적이면서 그때 있은 일을 되씹고있던 윤종기의 기름밴듯 한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오르고있었다.

당시 사이공항구에서 하역작업에 고용되여있던 로무자들이 임금 30%인상을 요구하여 쟁의를 벌렸을 때 그것은 S대사까지 나서서 그들을 무마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완강하고 치렬했었다.

S대사는 쟁의에 들어간 로무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경제전사로서 여기 반공전선의 최전선에까지 나와 조국근대화의 알찬 밑거름이 될 외화획득에 헌신분투하고있는줄로 압니다. 그런데…》

대사의 말이 도중에서 중단되고말았다. 부두가에서 웅성이던 로무자들중에서 한사람이 불쑥 일어나 웨쳤기때문이였다.

《외화획득이 그렇게 좋으면 녀대다니는 네 딸년들이나 머리를 지져 양공주를 시켜라! 듣기 싫다, 내려오라!》

사태는 심상치 않게 번져지고있었다.

S대사는 말문이 막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있었다. 로무자들속에서 폭소가 터졌다.

이때 윤종기는 대사를 밀어제끼고 자기가 연단에 올라섰다.

그는 로무자들앞에서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있었다. 폭소를 터뜨리며 웅성이던 군중이 조용해졌다. 윤종기는 이 기회를 타서 높지도 낮지도 않는 목소리로 여러분들이 당하고있는 이 고충은 우리가 《약소민족》인 까닭에 부득이 겪는 설음이라고 하고 만약 로무관인 내가 여러분들의 요구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나를 저 바다속에 짐짝처럼 처넣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로무관인 자기가 미국회사와 교섭하는데 유리하도록 제발 작업만은 계속해달라고 또 한번 눈물을 흘려보였다.

그는 눈물과 끈덕진 기만술책으로 로동쟁의를 무마하고 주모자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체포하여 본국으로 송환하였다.

이것이 그의 출세를 직접 밑받침했는데 아직까지도 그것을 시인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는 때로 분노까지 느끼군 하는것이다.

윤종기는 타자수가 시끄럽게 보내군 하는 편지를 내용도 보지 않고 벅벅 찢어 휴지통에 집어던지고는 다른 서류에 다시 머리를 박았다.

서도이췰란드 3백여개의 병원에 분포되여있는 남조선간호원들의 동태며 문제점들을 기록하고있는 박로무관의 보고서는 언제나 상세하고 극명하다.

윤종기수석로무관이 보기에는 광신자, 그것도 이단자로밖에 보이지않는 고지식한 심리학자인 간호원담당 박로무관은 때로 자기의 과격한 언행으로 하여 말썽을 일으키기는 해도 간호원들의 동태를 일일이 자기 눈과 발로 직접 확인한 자료에 근거해서 보고하기때문에 빈틈이 없다. 더군다나 그와 한고향내기라는 녀자 하나가 루르지방의 탄부종합병원의 남조선대표간호원으로 있는데서 간호원과 관련된 사정은 시시콜콜히 모르는것이 없다.

박로무관의 보고서에는 각 병원에 배치한 간호원들중의 많은 성원이 정맥류가 튀여나오고 류마치스나 신경쇠약증, 각기병 등 각종 병에 걸려있으며 과도한 수면제의 복용으로 위장병을 앓고있다는 등 불필요한 사항들까지 빠짐이 없다.

윤종기가 속이 빈 빈털터리가 아니고 자기 소관 사항에 대해서는 모르는것이 없는 수석로무관으로 자처하며 알은체 할수 있게 된데는 박로무관이 발과 눈으로 확인해서 보고하는 조사자료들에 힘을 입는바가 대단히 컸다. 오늘도 상세한 새 자료들로 엮어진 박로무관의 보고에 적잖은 흥미를 가지고 읽어내려갔으나 다 읽고나서는 혀를 찼다.

《제에길, 중학생도 아니고!》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관리라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직무와 실지로 해야 하는 직무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법이고 해외공관의 관리는 더더구나 그러한데 박로무관은 그것을 리해할줄 모르는 《인물》이라고 보아온다. 사십 가까운 사내가 세상물정에 대해서는 어린 중학생만도 못하지 않느냐는것이 그의 평이였다.

자신은 어떻게 행동하든지간에 상대편이 언제나 고지식하게 나오는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박로무관은 그런 면에서는 안심하고 대할수 있는 상대방이다. 이 보고에서 언급된 선도문제만 하더라도 남조선탄부들이나 간호원들을 선도한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들을만 하게 일러준바 있는데도 박로무관은 공식적으로 표명해오는 직무에만 일변도로 매달리고있는것이다. 조만간 말썽을 일으키고야말것이고 그 불티가 자기한테까지 튀여오지나 않을지 그것이 불안했다.

《안되겠어, 야단이야.》

가볍게 한숨을 쉬던 그는 밀어두었던 편지들을 집어들었다. 친지들의 편지들은 그가 예상한대로였다. 그는 대사앞으로 되여있는것을 참고하라고 자기에게 돌린 편지를 집어들었다. 편지봉투에 붙어있는 대사의 지시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편지를 돌리는 목적을 밝힌것 같다.

《가능한 한 출신자의 요청을 들어줄것. 단 안보와 관련된 조치일때는 적의하게 처리할것.》

군출신의 대사는 걸핏하면 《안보》에다 모든 문제를 비쳐보는 퇴역장군인데 윁남파견 《국군》부대들의 사령관직을 력임한바도 있는 인물이였다. 윤종기가 보기에는 《안보제일주의》만 내세우는 이 대사는 외교관으로서의 기본적인 수련을 쌓지 못하고있었다.

외교관이란 모든 일을 다 알고는 있어야 하되 일단 한 나라의 무게로 발언할 때에는 삼가해야 할 사항들이 적지 않는 법인데 이 대사는 외교의 초보적인 A , B , C도 모르고있다고 보아온것이였다.

《흥!》

젊은 수석로무관은 코방귀를 뀌였다.

《발신인이 아니고 출신자라고? 이런 수준이니까 그따위 실책을 하고도 잘한것처럼 뻐기고있단 말이야.》

그가 이렇게 중얼거린것은 얼마전에 나뽈레옹동상앞에서 사진을 찍기를 즐기는 프랑스의 국가원수가 서도이췰란드에 왔을 때 있은 일이 생각나서였다.

당시 서도이췰란드의 신문지상에도 널리 보도된 그 불상사란 다른것이 아니였다.

서도이췰란드 외무성에서는 수백년동안이나 서로 으르렁거리던 이웃나라 국가원수의 자국방문에 큰 의의를 부여하여 본주재 각국 대사들과 외교사절들은 물론 그들의 부인들까지 연회석상에 초대하면서도 유독 남조선대사관에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 당연한 결과로서 대사를 비롯한 남조선외교관들은 그 성대한 연회광경을 텔레비죤을 통해서만 볼수 있었던것이다.

지난날에도 이와 같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게 있은데서 대사는 외무성앞으로 《본국정부》의 이름으로 수차 항의한바 있었는데 이번에도 항의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자 푸리케외무차관은 《만약 그날 행사와 관련하여 꼭 알고싶은 사항이 있으면 미국대사관에 가서 물어보라.》는 짤막한 한마디로 대답을 대신했다. 남조선대사관에서는 크고작은 정치 및 외교관계문제들을 미국대사의 설명과 지시를 받아가며 처리하는것을 알고있는 푸리케는 미국대사가 그 연회장에 초대되여있었으니까 구태여 남조선대사를 초청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있었던것이였다. 그래서 프랑스국가원수의 방문과 관련해서도 궁금한것이 있으면 여기로 올것이 아니라 미국대사한테 가서 알아보는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것이였다.

입이 간지럽다고 해서 망탕 말해서는 안되는것이 외교관의 몸가짐이고 수완인데 대사는 《본국정부의 이름으로》 운운하면서 《정식항의》까지 들이댄것이 아니였던가.

윤종기는 입술을 이그러뜨리며 편지알맹이를 꺼내보았다. 그의 이마에 주름살이 또 잡히기 시작했다. 그 편지에는 뮨헨지방에 배치된 어떤 간호원이 자기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던 친구 하나가 거리에 나갔다가 실종된 사실을 전하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자동차를 몰고 온 괴한들에게 랍치당했다기도 하고 어디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는 말이 떠도는데 대사님이 그 진부를 가려줄수 없겠느냐는 내용이 담겨져있었다.

《만사가 이렇다니까. 문화과 친구들이 보아야 할것을 나에게 보내고…》

윤종기는 그 편지도 도중에서 읽다말고 옆으로 밀어놓았다. 문화과란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위장하고있는 부서인데 그 편지에 적혀있는 랍치사건이나 정신병원에로의 간호원추방은 알아보나마나 문화과에서 꾸민것이 틀림없겠기에 끝까지 볼 필요가 없었던것이다. 물론 수석로무관인 자기도 중앙정보부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고 탄부들이나 간호원들의 신상조사를 비밀리에 진행하며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지만 위험분자로 인정된자들을 직접 랍치하거나 추방하는것은 문화과에서 전담한 일이다.

《이런 일이야 알고도 모르는체 하는 법인데, 흥!》

그는 또 한번 대사를 비웃어본다. 자기가 중앙정보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대사도 알고있는 모양이지만 그런것은 모른체 해야 한다는것이다. 수석로무관 겸 중앙정보부 요원이니까 이 편지는 네가 처리하는것이 좋겠다는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대사가 서툴어보이기만 했다.

머지않아 대사직에 오를것을 꿈꾸고있는 윤종기는 항상 대사와 자기의 수완, 견식 등을 비교해보는데서 자부심을 길러오고있는것이다.

다음 편지를 뜯어본 수석로무관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윤영태》라는 인물이 보낸 편지에는 자기가 부산에서 족손인 종기를 한번 본 일이 있다고 하고 족질간인 영조(윤종기의 부친)의 권고도 있고 해서 외국려행하는셈 치고 이번에 친구와 함께 손잡고 서도이췰란드로 오게 됐다는것과 타국만리밖으로 와본즉 고국에 두고 온 족친들 생각이 새롭다고 적혀있었다. 또한 같이 온 친구의 약혼녀가 함부르그의 병원에 있는데 족손의 힘으로 그를 루르지방으로 올수 있게 해줄수 없겠느냐고 묻고 그런 일은 대사관이나 령사관에 있는 사람들은 전화 한통만 걸면 쉽게 될수 있는 일이 아닌가고 썼다.

편지는 끝으로 외지에 와도 족손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든든하다고 쓰고 자기 소식을 알릴뿐이라고 했다.

《여기에 와서도 종가집이 통하는줄 알고있군. 선거때도 아닌데…》

윤종기는 코웃음을 쳤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부산에서 자기 부친을 찾아왔던 청년이 생각나기는 했다. 앞으로도 선거는 또 있겠으니까 형의 일을 생각해서 종가집 족손을 괄시말아야 한다는것이 부친의 의견이였으나 윤종기는 그때 괘씸하게 보았던터라 편지를 북북 찢어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그가 오전사무를 대강 끝내고 더운 차로 목을 추기고있을 때 외출중이던 박로무관이 들어왔다.

《날씨가 춥군요.》

그의 고지식한 얼굴과 고정한 걸음걸이만 보아도 일종의 불안감을 느끼군 하는 윤종기는 그를 보자 먼저 입을 열었다. 박로무관의 손에 들린 서류가 그를 더욱 불안하게 했기때문이다.

실내에 들어올 때면 코로 냄새를 맡아보군 하는 박로무관은 담배냄새가 싫은듯 낮게 코를 분다. 그의 도수가 높은 근시안경과 매일 아침면도질을 하고 나오는 진지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윤종기는 이 친구가 사사건건에 모를 세우고 융통성이 없는것은 담배도 술도 못하기때문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종기는 덤덤히 상대방의 얼굴만 바라보고있는데 박로무관은 손에 들고 온 서류를 탁자우에 놓더니 거기 놓인 대사의 필적이 분명한 편지봉투에 눈이 가자 그것을 집어들었다.

《대사님께서 돌려보라 하신거군요.》

박로무관은 겉봉투에 붙은 대사의 지시를 재빨리 훑어본 후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윤종기는 자기만 알고있어도 될 일이라고 보았으나 그 편지가 이미 박의 손에 잡힌 다음이여서 할수없이 그가 다 읽기를 기다렸다.

《이런 일이 종종 있죠. 얼마전에는 한 간호원에게 고향 오빠의 친구라고 전화를 걸어 부탁받은 선물을 전해줄테니 다방에서 만나자고 불러내가지고는 랍치해간 사건도 있었죠.》

박로무관은 자기가 보던 편지발신인의 주소성명을 수첩에다 적어넣으며 계속했다.

《여기에는 필경 그 어떤 음모가 있다고 봐요.》

윤종기는 그에게 감추고있는 문제를 더 다치려고 하는 박로무관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있는데 박은 의자를 그에게로 더 가까이 당겨와 다른 문제를 연거퍼 꺼냈다.

《문서로도 제 의견을 보고했지만요 간호원들이 매음행위에까지 떨어지게 되는데는 서도이췰란드정부와 우리 정부가 체결한 협정에 맹점이 있다고 보이는데요.》

윤종기는 또 그 타령인가 하고 화제를 돌렸다.

《행방불명됐다는 그 간호원은 그후 어떻게 됐는지 모르세요?》

박은 그의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협정문제만 해도 그렇지요. 국제로동기구협약에도 보통 고용계약기간이 1년이고 다른 나라 간호원이나 탄부들은 1년간만 취업하면 전직도 가능한데 왜 오직 한국인들만 3년간이라고 못박아놓았는가 말이예요.》

《더 말씀하세요.》

《그것도 려권에 지정된 병원에서만 근무하게 되여있고 도중 귀국도 전직도 할수 없게 체결했는가 말이예요. 이런데서 여러가지 불미스런 일들이 생기는데…》

《그거야 고용계약이라기보다 일종의 기술협정이니까…》

《아니, 수석로무관님도 그런 말씀을 하세요? 서도에서 기술을 습득시켜 한국탄광들의 개발과 병원운영에 이바지한다고 한 그 조항을 그렇게 기술협정으로 해석하세요?》

《아니죠, 그렇게도 볼수 있는, 말하자면 우리와 같은 후진국들이 처한 어쩔수 없는 딱한 처지라 보겠고 더우기 약소민족인…》

수석로무관이 자기의 《약소민족론》을 펴려고 하자 박로무관의 안경이 번쩍거렸다.

《세계 어디에 이런 종류의 기술협정을 맺은 나라가 있는지 말씀 좀 해주세요. 우리와 같은 그따위 기술협정을 말이예요.》

박로무관은 130만명의 외국인력을 수입하여 리용하고있는 서도이췰란드와 계약한 나라들의 이름을 꼽아가면서 반문해왔다. 수석로무관은 누구와 약속을 한듯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박로무관은 계속했다.

《국제관례상 3년계약은 강제로동으로 엄연히 간주되고있는걸 저보다 더 잘 알고계시면서 그러세요? 이러한 협정의 체결이 세계 어디에 있어요? 저에겐 한국자격간호원들을 키우기 위해 지출된 교육교양비를 통계낸 자료가 있어요. 그렇게 간호원들을 양성하기 위해 많은 지출을 부담하면서도 국내에서는 간호원이 모자라 아우성치는데 남의 나라에 와서 그따위 기술협정에 따라 우리가 짝지는 놀음을 한다는것도 우습지 않아요?》

윤종기수석로무관은 더는 참을수 없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상냥한 목소리가 나왔다.

《약속한 사람이 있어서-》

꼬치꼬치 따지면서 허물을 잡아내려는 박로무관을 되게 꾸짖어 입을 막아놓으려다가 그만두기로 생각을 달리한것이다. 박로무관은 아직도 윤종기에게 도움이 될 이런저런 측면을 가지고있는것이였다. 그러나 박로무관은 대사관의 사명과는 관계없는, 아니 자기에게도 결코 리로울것이 없는 일에 너무나 열중하고있는것이다. 갈아치워야 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그에게 구태여 듣기 싫은 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윤종기수석로무관은 차를 타고 그리 넓지도 않은 본거리를 한바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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