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2 장

조국이여, 너는 어디 있느냐?

4

 

주변을 대낮처럼 밝히고있는 무수한 전등불이 희끗희끗 조그마한 점으로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인공석탄산들이 띠염띠염 밤하늘에 우람한 륜곽을 나타내며 서로 위혁하고있다.

한칸에 2천여명을 수용할수 있는 탈의실들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탄부들이 지하용남포등과 가스마스크들을 옆구리에 차고 서둘러 입갱대기실로 가고있다.

지하출입의 관문인 높다란 운반탑이 그것을 움직이는 발동체에서 나는 굉음을 울리며 탄부들을 빨아삼킨다.

밤대거리로 나온 탄부들의 마지막집단이 그속으로 사라지자 로천에는 불빛아래 여기저기 널려있는 철재들과 넓은 주차장에 들어찬 각종 차량들 그리고 운반탑을 움직이는 발동체와 자동선탄장에서 쉼없이 울리는 기계의 동음소리만 남았다.

정각 밤 10시 30분, 운반탑문지기가 치는 종소리가 네번 울리자 그것을 받아 지하 천오백메터지점에 있는 지하문지기가 역시 네번 종을 치며 화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운반탑을 수직으로 두리기둥모양으로 곧추 내려간 굴안에서 승강기 4대가 상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섯층으로 된 승강기의 매칸마다 탄부가 열두명씩 타고있다. 탄부들의 출갱입갱을 보장하고 석탄이나 기타 소요되는 기자재들을 싣고 오르내리는 승강기다.

문지기가 문을 닫고 스위치를 넣자 승강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십분만에 천오백메터를 하강한 승강기에서 내리자 철길로 꽉 찬 바닥은 뜨거운 지열을 뿜어내며 강렬한 전기촉광아래 번들거리고있다.

창수는 같이 일하는 굴진공들인 권도익과 한재균, 그밖에 두사람과 함께 도이췰란드인감독 한스를 뒤따라 인차에 올랐다. 지하에서 수십갈래로 난 갱도의 하나를 따라 전진하던 인차가 30여분만에 멎었다.

창수일행은 감독의 뒤를 따라 오백메터지점까지 나아갔다. 그곳에서 다시 두갈래로 난 왼쪽 좁은 굴이 그들의 작업장이였다. 옆구리에 찼던 남포등을 리용하여 굴끝에 다달은 탄부들은 운반갱도에 내보내는 버럭처리에 달라붙었다. 창수도 런닝샤쯔바람으로 삽을 들었다. 운반기를 중심으로 삽질이 시작되였다. 자욱한 돌먼지가 일고 운반기에서 나는 소음때문에 옆소리도 들을수 없다.

숨이 가쁘고 눈이 아려왔다. 창수는 가래침을 톺아올렸다. 시커먼것이 입안에서 나온다. 옆자리에서 삽질을 하던 한재균이 벌써 두차례나 물통을 빨고있다. 다른 친구들도 삽을 어깨에 기대여 세우고 물통을 빨기 시작했다.

창수는 갱내 작업을 하는지도 이미 오랬건만 땀이 나고 목이 타는것만은 아무래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마시려고 들었던 물통을 그는 그냥 놓고말았다. 맹물을 저렇게 들이키다가 위장을 상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작업은 규정대로 네시간 계속된 다음에야 짧은 휴식시간이 되였다.

감독이 운반기의 스위치를 끈 다음에도 창수의 귀는 그대로 멍멍 울리고있었다. 지하에서 일체 금지되고있는 담배생각이 났다.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빵쪽을 뜯어 입에 넣고있던 한재균이 런닝샤쯔의 땀을 짜고있는 창수에게 다가왔다.

《리형! 꼭 부탁이요. 나도 좀 그렇게 함께 있게 해줘요.》

《글쎄, 같이 있는 친구가 얻은 방이 돼서…》

《수평갱의 채탄부로 팔린 그 사람말이요?》

《그렇소.》

탄광기숙사에서 지내는 재균은 두어달전에 창수가 도이췰란드인 개인집을 얻어간 수평갱의 영태와 함께 자취생활을 하고있는것이 부러워 만날 때마다 같이 있게 해달라고 조르고있었다. 더우기 영태와 친해진 권도익이 며칠전에 창수네 방으로 옮겨가는것을 보자 쉬는 시간에까지 그 이야기를 꺼내군 했다.

소년시절에 부친을 따라 북에서 온 재균이 남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면서 혼자 쓸쓸해있고 같이 일해보면 사람이 나쁜것 같지 않아서 창수는 함께 있어도 무방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태나 도익의 동의를 얻기 전에는 대답을 줄수 없었다.

《꼭 부탁해요. 믿고있겠어요.》

한재균은 사투리는 가셨으나 아직도 남아있는 억센 함경도말씨의 억양으로 또 한번 부탁했다. 창수는 권도익에게 그의 뜻을 전했다. 도익은 영태와 창수만 좋다면 자기로서는 다른 말을 할게 없노라고 했다.

휴식시간이 끝났다. 버럭들을 처리한 창수네는 쇠동발을 세우는 작업을 하게 되였다.

탄광기자재들이 도이췰란드인들의 체격에 맞게 만든것들이여서 그들에게는 힘에 부쳤다. 2메터 50센치짜리 쇠동발을 네사람이 간신히 운반해가서 천반에 걸쳐놓은 쇠들보에 대고 나사못으로 고정시켰다. 창수는 나사못을 단단히 죄였다. 쇠들보와 동발을 련결한 그 나사못이 헐거우면 갱도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고 하기때문이였다.

갱장이 나와 그들의 작업동태를 살펴보고있었다.

《귈릭 아움!(조심하시오!)》

창수도 탄광내 인사로 되고있는 이 말로써 그를 맞이했다.

같은 말로 인사를 되받은 갱장은 그들이 일해놓은것을 살펴보고나서 한스감독에게 무어라고 지시를 주었다.

한스감독의 명령에 따라 창수네는 갱장의 눈앞에서 발파작업을 준비하게 되였다. 정면 암석에 구멍을 뚫기 시작한 창수는 감독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구멍뚫는 각도를 잘못 정했다는것이였다.

창수는 갱장과 감독의 지시하에 구멍을 고쳐뚫기 시작했다. 착암기가 자욱한 돌먼지를 날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발파작업에 뒤이어 버럭들을 쳐내고 쇠동발을 세우며 굴진작업이 계속되였다.

창수가 쇠동발과 암석사이에 지압을 막기 위해 나무토막들을 채우고있는데 갱장이 다가와 그것을 검열했다. 기둥감나무를 잘라 그런데 사용하는가 해서였다.

천반에서 주먹만 한 탄덩이가 간단없이 떨어져내렸다. 입갱하여 얼마 안되였을 때는 그것을 피하느라고 서둘던 창수도 이제는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있었다. 탄부용안전모와 런닝샤쯔만 걸친 몸뚱아리가 온통 땀과 탄가루로 범벅이되여 꺼멓게 번들거리는데 꼿꼿한 탄덩이와 돌덩이들은 계속 그의 잔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창수는 요새 버릇이 된대로 몸을 약간 바른쪽으로 틀어보일뿐이다. 그러나 굵직굵직한 탄덩이와 돌덩이들은 사정이 없다. 그것들은 도이췰란드화페 5마르크짜리 동전 한잎 얹을데가 없다고 탄식하는, 이미 먼저 건너온 남조선탄부들의 멍들고 덕지덕지 딱지가 앉은 그 잔등처럼 상처입은 그의 등에도 내리꽂히고있다.

작업상태를 돌아보던 갱장은 한스감독에게 몇마디 남기고는 통역원을 데리고 인차 정류소쪽으로 사라졌다.

새벽 네시경에야 겨우 쇠동발 넷을 세우고 갱도 2메터를 전진했다. 한스는 우긋한 코를 만지며 머리를 흔들었다. 작업성적이 좋지 않다는 표시였다. 한스는 코수염을 찡긋거리더니 휴식시간을 리용해 그때까지의 작업평가를 내렸다.

그는 창수가 잘못 뚫었던 발파구멍각도와 재균이 쇠동발을 들어올릴 때 힘이 딸리여 땅에 떨어뜨린 사실을 가지고 그 원인을 본인들이 이야기하도록 했다.

창수는 자기가 지상훈련을 받을 때 배운대로 한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한스는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남조선탄부들이 자기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비록 배운 규정대로 했다 해도 반드시 고쳐하게 하는 감독이였는데 창수는 아직 그때까지 그러한 한스의 성벽을 잘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작업은 아직 두시간이나 더해야 했다. 창수는 물에 담갔다 꺼내놓은것 같은 런닝샤쯔를 다시 벗어 땀을 짜내고 장화속에 흥건히 고인 땀방울들을 털어낸 후 착암기를 틀어잡았다. 착암기가 신속히 회전하며 돌가루를 휘뿌리기 시작했다.

《카마리트(친구)! 그렇게 갖다대면 구멍각도가 또 삐뚤어져.》

창수가 일하는것을 옆에서 지켜보고있은듯 한스가 다가와 그의 손에서 착암기를 빼앗아 자기가 해보였다. 창수는 감독의 동작을 눈여겨보았다.

아무리 주의깊게 살펴보아도 한스감독이 시범을 보이는 일솜씨는 자기가 하는거나 별차이가 없었다. 다만 자기는 착암기를 쥘 때 왼쪽손을 먼저 놓고 오른쪽손을 뒤에 가져가는데 한스감독은 그 반대로 하고있을따름이였다.

착암기를 도로 받은 창수는 이미 손에 익혀진 방식대로 일을 계속하였다.

재균과 도익 등 다른 굴진공들의 작업상태를 돌아보고 온 한스는 창수의 여전한 작업자세를 보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시키는대로 안하는가? 윁남에 끌려가 죽고싶은가?》

자욱히 내리고있던 돌가루와 탄가루속에서 땀을 흘리며 작업에 열중하고있던 창수는 시커먼 가래를 뱉으며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도이췰란드인감독들은 남조선탄부들의 일솜씨가 서툴거나 느릴 때면 의례히 《윁남전쟁터로 내보내게 하겠다.》라는 말을 하군 했었다. 창수는 그런 말을 처음 듣게 된것도 아닌데 그날만은 왜 그런지 더 참을수가 없었다.

허리를 펴고 일어선 창수의 손에서 착암기가 소리내며 떨어졌다.

아무말없이 고개를 들고 일어선 그의 눈을 본 한스감독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창수는 물러서는 한스앞으로 한걸음 다가갔다.

창수의 거동을 본 권도익과 한재균이 일손을 놓고 달려왔다. 아직도 도이췰란드어를 깨치지 못한 권도익은 재균으로부터 한스가 한 말을 듣게 되였다. 도익이 한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윁남전쟁터에 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요.》

재균이 서투른 도이췰란드어로 그의 말을 통역하자 한스는 흠칫 놀라며 공포에 질린 얼굴이 되였다. 그는 눈을 점점 더 크게 뜨며 입을 쩍 벌리는데 거기서는 경악과 공포의 비명이 튀여나올것만 같았다.

한스의 폭언에 참을수 없었던 창수는 걷잡을수 없는 분노에 못이겨 부들부들 주먹을 떨었다.

《창수! 참아. 갱내에서 손찌검을 하면 사형법으로 다스린다는걸 알고있지 않소.》

권도익이 창수를 말렸다. 창수는 그대로 우뚝 선채 말이 없는데 한스는 휭 다른 갱도로 가버렸다.

착암기를 다시 손에 든 창수의 어깨와 등어리에 딴딴한 탄덩이들이 다시 내리박히고있었다.

《우리가 여길 오고싶어서 왔단 말인가, 망할 자식!》

착암기를 암석에 갖다대고있는 창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있는데 재균이 한마디 했다.

작업이 끝났다. 소지품을 챙기고 인차정류소로 가는 탄부들은 아래도리가 휘청거려 헛발을 놓고있었다. 과도한 로동과 땀을 쏟을대로 쏟은 그들은 술에 취한것처럼 비틀거리고있었다. 오늘따라 창수가 더 심했다.

그들이 정류소쪽으로 가고있는데 아직까지도 일을 계속하고있는 수직갱 채탄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창수는 휘청거리는 두다리를 멈추고 서서 그들이 까맣게 올라가있는 사다리를 올려다보았다. 채탄부들은 수직으로 퍼져나간 탄층을 좇아 높다란 사다리우에 올라가서 함마로 채탄하고있다. 발을 헛딛거나 만약에 사다리의 간막이가 빠지는 날에는 그대로 떨어질수밖에 없는 위험한 작업이다. 무거운 발길을 떼여 창수는 비틀거리며 정류소로 갔다. 운반탑에 닿자 각국에서 온 탄부들이 탄가루를 얼굴에 바른채 꼬리잡이로 길게 줄지어 서있다. 승강기의 차례를 기다리고있는것이다. 피로한 대렬속에서 새치기를 하는 패들을 꾸짖는 욕설이 들려오고있다.

둥둥 풍선처럼 몸이 날아오른 창수는 지상에 오르자 눈이 부시여 한참동안 한자리에 서있었다. 이윽고 출근카드를 자동시계상자에 넣어 퇴근날인을 찍고 남포등과 마스크를 제자리에 놓은 다음 그는 탈의실로 올라갔다.

2975번, 그의 이름이 되고만 고유번호가 달린 표시판앞으로 가서 쇠줄을 당겨 대룽대룽 천정에 매달려있던 사품바구니를 내려 우선 담배를 찾았다.

목욕을 마치고나니 일곱시 반이 되였다.

수평갱에서 아침 여섯시 반에 입갱하는 아침작업반인 영태가 일하고있을것 같아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재균이 거듭 함께 있게 해달라던 청을 물리칠수 없어 그와 상의하려고 했다.

영태가 일하고있는 수평갱은 수직갱과는 달리 옆으로 깔린 탄층을 따라가며 채탄하는 높이 70센치~1메터밖에 되지 않는 굴이였다. 영태가 락반사고가 잦은 그와 같은 위험한 수평갱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창수는 자기와 같이 굴진반에서 일할것을 권했었다. 그러나 영태는 위험하기는 굴진이나 채탄이나 50보, 100보차이라고 하면서 굳이 채탄으로 가고말았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굴진공들은 갱도 상층부에서 쏟아지는 구들장 같은 돌에 얻어맞는수가 적지 않았다. 그런 곳은 대체로 옛날 석탄을 캔 막장들이여서 공기가 들어가 여물어진 바위들이 지압에 못이겨 약한 고리를 뚫고 우수수 떨어져내리군 했다. 그밖에도 무서운 가스사고가 일어났다.

《목매죽는 놈이 가시나무 가리겠나.》

이렇게 말하는 영태의 속심에는 다른것이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죽을 놈은 접시물에도 코박고 죽는데 이러나저러나 《제 팔자소관》인 위험한 이곳 탄광일에서 내남없이 다 그렇고 그럴바에야 힘은 좀 들더라도 수입이 많은 채탄쪽을 택하자고 나선것이였다. 그래야 동생 영규의 병을 고칠 약값도 벌수 있고 집에 돈을 보낼수 있겠다고 타산한것임에 틀림없었다. 채탄공들은 힘이 곱절 드는 대신에 공휴작업도 자주 할수 있고(남조선탄부들은 휴식일에도 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했다.) 임금에 있어서도 정식 탄부자격으로 100% 전액을 받을수 있었던것이다. 다른 직종은 3개월간으로 정해져있는 《교육기간》이 끝난다 해도 90%밖에 탈수 없는것이다.

갱배치와 작업종배치가 있었을 그때 굳이 채탄공으로 지원해가던 영태의 심정을 헤아리며 창수는 수평갱작업장에 들어섰다. 허리를 펼수 없는 나지막한 수평갱들이 옆으로 뻗어나간 탄층을 따라 뿡 뿡 뚫려있는데 깜둥이가 된 탄부들이 거부기처럼 기여다니며 채탄을 하고있다. 수직갱내의 굴진공들은 탄가루와 돌가루를 들이키고 가스사고나 락반위험이 있지만 창수가 보기에는 머리를 들수 있는것만 해도 이 사람들보다 나은것 같았다.

이윽고 수평갱안에서 런닝샤쯔도 걸치지 않고 웃동을 벗어제낀 다기진 탄부 하나가 기여나왔다. 윤영태였다.

《와 그러노? 무슨 일이 있었나?》

마침 오줌을 누려고 나오다가 창수를 본 영태가 물었다.

《아니, 그저 가던 길에…》

창수는 다문 몇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눈앞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있는 친구를 번거롭게 할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그가 집으로 돌아오면 이야기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영태는 다우쳐물었다.

《이 사람, 뭘 그렇게 혼자 입에 씹고있노? 빨리 말해라. 일할라칸다.》

그의 재촉에 못이겨 한집에 같이 있게 해달라던 한재균의 부탁을 알렸다. 영태는 잠간 생각하던 끝에 《그런 이야기는 나종에 하자. 7월더부살이가 누굴 걱정해싸켓나.》하며 탄가루를 들쓴 이마의 땀을 주먹으로 훔쳤다.

창수는 약간 뜻밖이였다. 남을 도와주기를 잘하던 영태가 아닌가. 혹시 그도 감독놈한테서 윁남을 운운하는 욕설을 방금 듣고 나오는 길인지도 모른다.

허리를 굽히고 네발걸음을 할듯이 엉금엉금 수평갱으로 들어가는 영태를 보면서 창수는 처량한 마음이 들었다. 《국군》에 있을 때 그 무시무시한 감시속에서도 도망쳐서 윁남에 목숨버리러 가기를 거부했던 영태일진대 여기 와서까지 윁남에 보내 죽게 하겠다는 위협을 늘쌍 받아가며 저런 자세로 고된 로동을 해야 하는 그 마음이 어떻겠는가. 언제나 락천적으로 보이는 그의 마음 뒤면에는 울분과 안타까움이 뒤따라다니고있을것이 아닌가.

창수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서는데 영태가 수평갱에서 다시 기여나와 그를 불렀다.

《창수, 방이 좁아도 한사람 더 잘수 있을끼이다. 그렇제? 우리가 방 얻을랏고 손이야 발이야 빌던 생각 해서라도 같이 있는기이 좋겠구마.》

영태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는 갱안으로 되돌아갔다.

영태와 헤여진 창수는 무리를 지어 숙소쪽으로 돌아가고있는 탄부들속에 섞이지 않고 혼자 뒤에 떨어져가고있었다.

어느덧 해가 바뀌였건만 며칠전에 립춘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물러갈줄 모르는 북풍이 눈덮인 탄광촌에 줄지어 서있는 앙상한 뽀뿌라나무들과 보리수나무들을 잡아흔들며 투레질을 하고있다. 종루가 달린 성당에서 땡땡 종소리가 울렸다. 오늘 이곳 주민들에게는 휴식일이다.

《개자식같으니라구! 놀라기는 왜 그렇게 놀라는거야. 윁남 갔다왔다니까 무덤속에서 나온 망령인줄 알았나.》

창수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살을 에이는 차거운 추위도, 성당의 종소리도 열기를 띤 창수의 이마를 식혀주지 못했다. 한스가 뇌까리던 말이 되살아올수록 뜨거운 피가 그의 혈관속으로 또다시 치달아올랐다.

한스감독이 보기에는 윁남이란 인간살륙장이고 남조선청년들이란 푼전에 목이 메여 죽음을 당하려고 열대쟝글속으로 끌려다녀야 하는 그런 값싼 목숨들로 보일것이다. 한스뿐만아니라 도이췰란드감독들은 약속이나 한것처럼 모두다 남조선탄부들을 그처럼 멸시하고 천대하려드는것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분한 일이였다. 한스가 단순한 인식부족으로 그런 아니꼬운 생각을 품고있다면 비웃어줄수도 있겠는데 그런자들의 못된 생각을 안받침해주는 엄연한 사실들이 있다는것만은 숨길수 없지 않는가. 윁남에서는 지금도 3백딸라의 월급을 받는 미군놈들의 목숨을 아끼기 위해 24딸라의 월급만 주어도 되는 《국군》사병들이 있는 사실은 이미 세계가 다 알고있지 않는가.

누가, 어떤 놈들이 우리들을 이처럼 값싼 목숨으로 떨어뜨리고말았단 말인가!

어데다 터뜨리면 좋을지 모를 분노를 안고 지척지척 가고있던 창수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서서 길녘 눈속에 핀 꽃들을 멍청히 들여다보았다.

노란색, 자주색, 흰색빛갈의 꽃들이 눈우에 펼쳐져있었다.

희디흰 눈바탕을 연한 색갈들로 물들이고있는 그 꽃들을 지켜보던 창수는 한숨을 쉬였다. 오고가는 길에 보아오던 기이하고 아름다운 꽃도 오늘은 그의 마음을 어둡게 할뿐이다.

지구의 끝에서 끝까지 팔려다니는 몸이 되였구나 하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어제는 삼동에도 장마비가 내리고 모기가 끓던 윁남으로, 오늘엔 눈속에 핀 서글픈 꽃을 보는 여기 유럽의 서쪽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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