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2 장

조국이여, 너는 어디 있느냐?

5

 

윤옥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다리고있은듯 보금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

《윤옥이냐?》

《네.》

《왜 늦었니?》

《거리를 한바퀴 돌고 왔어요.》

《거리는 뭣 하러 쏘다니니? 저녁때가 벌써 지났는데…》

모가 선 목소리다. 손보금은 윤옥의 밤외출에 대해서는 언제나 신경을 썼다. 잔말많은 어머니들보다 더한데가 있었다.

윤옥은 집에서 어머니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을 때처럼 혀를 뽑아보이며 혼자 웃었다. 떼를 써 여기로 옮겨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랄라간병원과 다투어 말썽이 생겼을 때 자진해서 집으로 데려다가 조선음식을 차려가며 위로해주던 손보금이다. 그러나 함께 있게 해달라는 윤옥의 청만은 좀체로 들어주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망설이였고 다음번에 간청했을 때는 매정스러울 정도로 딱 잡아뗐었다. 여러번 조르고 떼를 써서야 승낙을 받고 이리로 옮겨오게 되였는데 윤옥은 그러기를 잘했다고 늘 생각해오고있었다.

부모와 동생들이 보고싶고 집이 그리운 이국땅에서 언제나 옆에서 자기 일을 어머니처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윤옥의 마음은 여간만 밝아지는것이 아니였다.

설겆이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서던 보금은 윤옥의 손에 들려있는 우산을 보더니만 주름살을 폈다. 윤옥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백화점에 들렸다가 오느라고 늦어졌음을 짐작한 모양이다. 얼마 줬느냐고 값부터 물어보더니 우산을 펴들고 깐깐히 살펴본다.

《값도 싸고 잘 골랐다.》

윤옥은 웃으며 그 말을 받는다.

《아주머닌 그저 값만 싸면 좋은가보죠.》

《너도 돈 아까운줄 모르고 살 형편이 못되지 않느냐. 그 우산은 우리 제품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야. 기왕이면 우리네 제품을 쓰는게 좋지 뭐냐.》

《그래요? 상표랑 이렇게 있고 해서 전 여기 제품인줄로만 알았는데요.》

《그렇단다. 우리 제품은 값도 남들것만큼 받지 못하면서 가짜 도이췰란드제품행세를 하는 일이 많지.》

보금은 세상물정에 매우 밝았다. 특히 서도이췰란드에 와있는 남조선사람들, 그중에서도 간호원들의 동정에 대해서는 모르는것이 없었다.

그날은 우산이 변명을 대신해주어 긴말이 나오지 않았으나 며칠후 윤옥이 밤늦게 돌아오자 보금은 여러가지로 잔소리를 했다.

윤옥은 창수가 있는 탄광 가까운 곳으로 병원을 옮기려고 신경애네 병원 대표간호원을 통해 힘써오고있으나 자기 마음처럼 진척되지 않아서 하준혁에게도 부탁하러 갔다오는 길이였다. 그가 집에 없어서 부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다가 밤늦게 돌아온 하준혁을 만나고 오느라고 늦었던것이다.

정신병원의 간호원인 정자는 벌써 잠이 들었는지 이불을 푹 쓰고 누웠는데 보금은 잘 차비를 않고 기다리고있었다.

《하선생님댁에 갔었다면 걱정할게 없지만… 아무튼 밤에 나다니는것은 좋지 않다.》

보금은 윤옥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보금의 잔소리가 싫지 않아서 윤옥은 그의 고운 눈매를 정을 담아 바라보았다.

《아주머닌 너무 일찍 늙겠어요. 그 고운 얼굴이…》

윤옥의 말에 보금은 버럭 화를 냈다.

《웃을 일이 아니야. 철없는체 하지 말아.》

보금의 목소리가 전에없이 딱딱하게 울렸다. 그는 이런 어지러운 곳에 온 윤옥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해 여러가지로 타일렀다.

여기서는 젊은 녀자들도 맥주 마시는것을 례사로 알고있지만 윤옥은 맥주를 배워서는 안되며 친구들이 맥주홀에 가자고 끌어도 가지말고 누가 춤을 추러 가자고 꾀여도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했다. 더우기 아는 사내든 모르는 사내든 자동차로 집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하거나 산보를 하자고 해도 절대로 응하지 말아야 하는것은 물론 병원에서 단체로 산놀이를 간다든가 뻐스를 내여 장거리려행을 하자고 할때 여럿이 함께 간다고 해도 따라가서는 안된다, 그런 때에 실수를 해서 몸을 망친 애도 적지 않다, 그리고 영화관에도 구경이 좋다고 드나들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던 보금은 《영화야 TV로 봐도 되잖아. 너도 영화관에 더러 가봤으면 알겠구나. 에그, 그런델 뭐 하러 가나.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그런게 당연하게 뵈게 되면 그땐 사달이 나기 시작한거야.》

서도이췰란드영화관들에서는 영화를 시작할 때면 의례히 인체의 모형을 가지고 동작해보이는 성교육영화를 먼저 보여준다. 보금이 《그런 분위기》라고 한것은 이런 사실들을 두고 한 말이였다.

《병원에서 내주는 피임약도 간호원들이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한다는 명목이지만 그것도 몸을 망치라는 권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야 해.》

서도이췰란드에서는 락태를 법으로 금하고있다. 그 반면에 피임은 극성스럽게 장려하고있다. 병원에서는 휴식일이면 간호원들에게 피임약을 무료로 내주었다. 독신간호원들에게 피임제가 필요로 되는것이 사회적으로 공인된 사실이라고 알려주는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는것이 보금의 견해였다.

윤옥은 얼굴이 빨개져서 가만히 듣기만 했다. 보금의 이야기는 우선 젊은 처녀로서는 얼굴을 붉히고야 들을수 있는 내용이였고 무언지 보금의 걱정을 자아내게 한 그런 거동이 혹시 자기한테 있지나 않았는가 하여 더욱 얼굴이 붉어지는것이였다.

《언닌 그런 걱정이 많으니까 윤옥이 말대로 일찍 늙는거예요.》

자는줄만 알았던 정자가 이불에서 얼굴을 내밀고 말참견을 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던 윤옥은 흠칫했다. 정자의 얼굴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병원에서 정신병환자들한테 또 얻어맞은듯 했다.

병원에서 매를 맞고 돌아오는 날이면 죽지 못해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다고 정자는 눈물이 글썽해서 한숨짓군 했었다. 오늘도 속이 상해 이불을 쓰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정자는 자기나 해요, 방해말고!》

보금이 쏘아붙였다. 그러나 두살아래인 정자는 윤옥이처럼 그렇게 그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언니의 그 고운 얼굴이 자꾸만 늙어가니까 하는 말 아니예요.》

보금은 동그스름한 코끝을 우로 쳐들며 외면해버린다. 그 순간 윤옥의 눈에는 그의 얼굴이 더 곱게 보였다. 소녀시절의 표정을 방불케 하는 그 표정이 그를 더 젊어보이게 하고 더 예뻐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손보금은 서른여섯살이다. 아름다움이 한창 무르익을수도 있는 나이다. 그러나 5년간의 서도이췰란드간호원생활에 시달린탓인지 잔소리를 할 때의 그의 얼굴은 마흔이 넘은 중년녀인으로 보이는 때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서른전의 한창나이로 보이는 때도 가끔 있어서 《언니》라고 부르는 간호원들도 더러 있으나 흔히 《아주머니》로 통했다.

녀고시절에 2년 아래반에 다녔다는 정자의 말에 의하더라도 보금은 처녀시절엔 참으로 고왔었다고 한다. 졸업후에는 여기에 와서야 다시 만나게 되였다고 하는데 보금은 결혼후 남편이 죽은 다음에는 딸 둘을 친정에 맡기고 여기로 왔는데 가난에 쪼들리는 친정집살림까지 그의 어깨에 매달려있다고 했다.

보금자신은 자기 집 형편에 대해서 좀체로 입을 열지 않았다. 언젠가 한번 고국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하여 윤옥이 물어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보금은 딸들을 친정에 맡겨두었는데 많지도 않은 두 자식을 먹여살릴수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노라는 탄식섞인 말을 두어마디 들려주었을뿐이다.

어쨌든 보금은 윤옥에게 정이 가는 고마운 아주머니였다. 그런데 그는 윤옥을 어리둥절케 하는 측면들을 가지고있었다.

그 하나가 절약심이 너무나 강한 점이였다. 한잎 돈도 쪼개쓰고 푼전을 쓰는데도 망설이고 다시 고쳐 생각하는 그를 보고 처음에는 본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윤옥은 날이 감에 따라 이건 너무하구나 하고 놀라는 경우가 많아졌다.

보금은 값진 옷을 사입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색갈을 잘 고르고 옷이 몸에 맞아서 외출할 때 입는 옷은 언제나 말쑥하고 옷매무시가 단정했다. 그러나 집에서 입는 옷은 늘 볼품이 없었는데 그건 병원에서 장기환자들이 입다가 버린것을 주어다 빨고 기워서 입는것임을 알게 되였다.

딸 둘을 맡겼다는 친정형편이 딱한 모양이니까 하고 리해하려고는 하면서도 외국에 와서 망신스럽지 않느냐고 생각하느라면 윤옥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때도 있었다.

그러한 린색보다 윤옥을 더 어리둥절하게 한것은 가끔 보금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였다.

그를 찾아오는 방문객도 윤옥이나 정자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많은편은 아니였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다 멋쟁이 남조선간호원들인데 그중에는 어지러운 소문을 꼬리에 달고 다니는 윤옥이네 병원 간호원들도 있었다.

자기보고는 말끝마다 처신을 삼가하라고 그처럼 시끄러울 정도로 단속하는 보금이 왜 하필 저런 애들과 자주 상종하는지 윤옥이로서는 그 까닭을 알수 없었다.

하루는 살것도 있고 해서 윤옥은 거리를 한바퀴 돌아서 아빠트로 돌아왔었다. 문을 열려고 손잡이에 손을 가져가던 그는 흠칫하면서도 저도 몰래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누군지 흐느껴우는 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분명히 젊은 녀자의 울음소리였다. 무뚝뚝하고 엄한 보금의 목소리가 흐느껴우는 녀자를 꾸짖고있었다.

남의 이야기를 엿듣고있기가 뭣해서 윤옥은 발소리를 죽여가며 3층으로 내려와 세탁장곁에서 서성거리는데 가방을 손에 든 보금이 층층대를 내려왔다. 그뒤로 몸매만 보아도 눈에 익은 녀자가 고개를 숙이고 따라내려왔다.

전에도 두어번 찾아온 일이 있었던 난희라는 멋쟁이간호원이였다.

둘이 아래로 내려가기를 기다려 윤옥은 웃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 보금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있었다. 마침 정자는 수직을 서는 날이여서 혼자 있는 방안은 어쩐지 적적하고 밤이 깊어감에 따라 공연히 마음이 설레였다.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보금은 나가던 때처럼 그 가방을 들고 돌아왔다.

《왜 아직도 자지 않니?》

《아주머니, 어디 갔다 이제 오세요?》

《응, 그저 잠간 볼일이 생겨서…》

자세히 대답하기를 원치 않는 말투였다. 윤옥은 더 묻지 않았다. 그대신 가슴속에서 정체모를 의문이 커졌다.

며칠후 윤옥의 의문을 한층 더 깊게 하는 일이 또 생겼다.

윤옥은 그날 아침녘에 사망한 환자가 있어서 시체를 손수레에 실어 사체실에 옮겨다 주고 오던 길에 중병동에서 일하는 남조선간호원 하나를 만났다. 그도 사망자를 옮겨놓고 오는 걸음이였다.

윤옥과 나란히 빈 손수레를 끌고 오던 그는 주위를 살펴보며 말을 걸었다.

《윤옥이, 넌 뭣 하러 보금이네 집으로 갔니?》

어딘지 비난조로 묻기에 윤옥이 되물었다.

《그건 왜 물어?》

《만일의 경우엔 편리할거라구, 그런 말들이 뒤에서 돌아간다는거나 알고있어?》

《편리? 뭐가?》

《보금아주머니가 산파면허까지 가지고있다는건 너도 알지?》

《응?!》

《소파수술엔 일류산부인과 의사만 못지 않다고들 해. 수술료도 그만큼 비싸구…》

그의 말에 심한 모욕을 느낀 나머지 윤옥이 쏘아붙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누굴 어떻게 보구 하는 소리야!》

윤옥이 발끈해지는것을 본 그 간호원은 입을 비쭉거려 응수하더니 손수레를 소리나게 몰고 빠른 걸음으로 가버렸다.

윤옥은 분해서 견딜수 없었다.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가쁜숨만 쉬고있었다.

(그럴법이 어디 있어? 나를 어떻게 보구! 그따위로 입을 더 놀려봐.)

오래도록 분기가 내려가지 않았다. 자기만 청백하면 그만이 아니냐고 되뇌였으나 마음속에 일어난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간호원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리고있었다는듯이 호출종이 울렸다.

담당호실로 달려가던 윤옥은 마주오던 보금을 지나치다가 문득 돌아다보고는 입에서 터져나오려는 앗 소리를 간신히 삼켰다. 요즈음 간호원들의 말밥에 오르고있는 또 하나의 멋쟁이간호원이 보금을 붙들고 휴계실쪽으로 가고있었다. 무슨 급한 일이 생긴 얼굴이였다.

중병동의 그 간호원은 결코 자기를 흉보자고 했던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였다. 그는 보금을 두고 이야기하고있었던것이다. 보금을 믿기만 해온 윤옥은 자기 귀가 그 말뜻을 미처 새겨듣지 못했을뿐이라는것을 알았다.

보금아주머니가 사실을 숨기고 락태수술을 한단 말이지. 설마…

윤옥은 그것을 부인해보려 했으나 부인할수록 마음속에는 의혹만 쌓여갔다.

설마…

그러나 눈앞에는 보금을 찾아오던 멋쟁이처녀들이 떠오르고 그의 귀에는 방안에서 들려오던 그 녀자의 흐느낌소리와 보금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휴식일이 왔다.

윤옥은 반나마 뜬 창수의 세타를 빨리 마무리하려고 뜨개바늘을 잡았다. 보금과 정자는 한잎이라도 더 벌기 위해 각기 병원으로 나가고 없었다.

혼자 뜨개질을 하고있는 윤옥의 손이 점점 느리여지고 빈번히 뜨개질코가 빠져나갔다. 그는 뜨개질을 단념하고 방안청소를 시작했다. 중병동실 간호원의 말을 들은 이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문득문득 밀려드는 괴로운 상념을 쫓아버리려고 일어섰던것이다.

그는 방안 구석구석을 털고 쓸고 걸레로 닦아냈다. 침대밑으로도 기여들어가 남김없이 말끔히 쓸고 닦기 시작했다. 그것을 끝내자 이러저러한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장도 끌어내놓고 그뒤를 걸레로 훔쳐냈다.

그 다음 장을 제자리로 되돌리려고 뒤로 미는데 무엇에 걸렸는지 뒤로 가면서 장이 앞뒤로 흔들렸다. 그바람에 문이 벌컥 열리며 가방하나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보금이 가끔 들고나가던 그 가방이였다.

가방을 도로 집어넣으려던 그는 벙싯 열린 그속을 무심코 들여다보다가 서둘러 그것을 장속에 던져버렸다.

가방속에 들어있는 고무줄이 달린 그 의료기구를 간호원인 윤옥은 재빨리 알아본것이였다. 그가 품어온 의혹이 뚜렷한 확신으로 굳어지는것이 싫어서 다시 청소에 마음을 팔려고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윤옥은 걸레를 쥔채 멍히 앉아있었다.

저녁늦게 정자가 돌아왔다. 오늘도 정신병환자들에게 맞았는지 부은 얼굴을 하고있었으나 얼굴엔 어딘가 화색이 돌았다. 종일토록 마음이 뒤숭숭해 앉아있던 윤옥은 그를 보자 가슴이 더 아팠다.

《오늘은 그만두실걸 그랬어요. 휴식일에까지…》

《그러게 말이지.》

정자는 자기를 보고 한 말에 대해 보금을 념두에 두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전과는 달리 옷을 갈아입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서울서부터 알던이를 우연히 길에서 만났어. 이런 꼴 하고 말이지. 창피했다.》

창피는 했으나 차라리 잘되였다는 얼굴이였다. 정자의 말에 의하면 길에서 우연히 만난 남편의 친구는 병원을 옮겼으면 하는 그의 희망을 알게 되자 병원옮기는것쯤 뭐 그리 힘들겠냐면서 이곳 주재 령사와는 허물없는 말도 할수 있는 사이니 부탁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인제는 도이췰란드미치광이들한테 매를 맞지 않게 되였다고 정자는 날아오를듯이 좋아했다.

조금후에 돌아온 보금이 그 말을 듣더니만 잘되였다고는 하면서도 《령사가 그런 생각만 있으면야 되기야 되겠지.》하며 어딘지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저녁을 마치고 설겆이도 끝나자 보금은 에그 다리야 하면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윤옥은 자기 침대에 걸터앉아 종일토록 벼르던 말을 꺼냈다.

《청소를 하다가 그만 아주머니 가방을 봤어요. 일부러 본건 아니예요. 장이 흔들리면서 저절로 떨어졌더랬어요.》

《뭐라구?》

깍지낀 손으로 머리를 고이고 남자들처럼 누웠던 보금이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눈이 이상스레 빛났다. 증오인듯 적의인듯 알길없는 날카로운 그 무엇이 깃든 눈이였다. 윤옥은 보금의 눈을 바라보며 계속했다.

《친정댁 사정이 딱하신줄 저도 들었어요. 그래두, 여기 법이 어떤지 아시잖아요? 전 아주머니가…》

윤옥은 하려던 말이 목에 걸려 더 나오지 않았다.

《어서 말해. 하고싶은 말이 잔뜩 있는가본데 다해. 들어줄테니.》

보금은 일어나 앉으며 윤옥을 쏘아보았다.

윤옥은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요전날 이 방에 와서 울던 애는 누구예요? 그날도 저 가방을 들고 나갔죠?》

《그랬어. 가방 들고 나갔어.》

보금의 목소리는 의외로 조용했다.

《돈에 눈이 어두워 그것을 한다 그 말이지? 그건 사실이야, 돈 안받고 공짜로 락태시켜줄수는 없잖아. 내가 뭐 자선가냐? 그래도 생각해봐. 윤옥이, 네 생각엔 스물을 갓 넘은 그애가 그래 아비도 없는 노랑머리트기를 낳아야 속이 씨원하겠냐?》

싸움을 거는듯 한 보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자가 한마디 했다.

《너무 흥분말아요. 윤옥이도 언닐 걱정해서 하는 말 아니예요.》

보금은 정자에게도 짜증을 냈다.

《그래, 너도 윤옥이 편이냐?》

《난 우리 주인편이고 우리 애들편이지 누구 편이 되겠어요.》

평소와 다름없는 정자의 잔잔한 목소리가 효과를 나타낸듯 했다. 보금은 잠시 눈을 흘겼으나 입을 다물고말았다.

한때는 싸늘해지고 긴장했던 분위기도 시간이 감에 따라 풀려서 셋이 자리에 들려고 했을무렵에는 보금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다시 이야기했다.

《몸을 망치는 그런 애들을 보면 나는 욕도 해주고 막 미워. 그래도 말이지 밉기는 해도 불쌍해 못 견디겠어.》

보금은 한숨을 쉬고 계속했다.

《한국에서보다야 여기선 봉급을 더 받는건 사실이야. 여기서는 그만큼 생활비가 더 드니까 돈을 더 주는건데 그런 생각은 못하고 돈을 더 준다는데만 눈이 팔려서 나부터도 온게지 뭐냐. 와보니까 어떠냐 말이야, 너희들도 보았지?》

서도이췰란드에서 간호원은 어떤 직업보다도 일이 고되고 몸종같은 시중까지 들어야 하는 반면에 봉급은 평균로임보다 훨씬 낮게 받는다. 도이췰란드녀자들이 좀체로 간호원이 되려 하지 않는것은 그때문이다. 그런데다 남조선간호원들은 박봉을 받을뿐아니라 많은 경우 집으로 돈을 보내야 한다.

꿈많은 시절의 처녀들이 외로운 이국땅에 와서 남들보다 고되고 욕된 일을 맡아하면서 남들보다 훨씬 구차하게 살아야 하는 사실 하나만도 참기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서도이췰란드란 어떤 곳인가. 성해방을 운운하면서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는 곳이다. 길을 가다가도 발부리에 채이는 돌멩이가 없는 날은 있어도 낯이 붉어져 차마 눈을 뜨고 볼수 없는 일들을 매일같이 봐야 하는 곳이다.

이런 고장에서 처녀애들이 그저 부모동생을 먹여살려야겠다, 동생의 공납금을 보내줘야겠다, 집에서 진 빚을 물어야겠다는 일념으로 푼전도 아껴쓰고 휴식일에도 나가서 버는것은 실로 힘에 겨운 일이였다. 무거운 짐을 지고 낭떠러지길을 가는것이나 다름없는 위태위태한 일이기도 하다. 갖은 올가미를 걸어 그들의 일생을 망치려 하는 강요된 환경때문인것이다.

정자도 윤옥이도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자신들이 이겨가야만 하는 그 모든 사태들을 생각하고있었다. 보금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나는 그런 애들을 수없이 보아왔어. 인제는 고국으로 돌아갈수도 없어졌다고 울던 애들을 보아왔어.》

맵짜게만 보이던 보금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는 마치 두눈에 맺힌 이슬을 털어버리기 위해 내젓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런데로 한국의 처녀애들을 자꾸만 내보내면서 외화주머니가 늘어난다고 기뻐하고있는 사람들 심보를 난 모르겠다.》

이렇게 말한 보금은 서도이췰란드에 와서 륜락의 길로 떨어진 간호원들의 일이 문제거리가 되였을 때 거기 참석했던 외교관이란자가 《가로 가나 세로 가나 외화는 벌게 되여있군!》하며 너털웃음을 짓던 이야기를 했다.

《난 그 말을 듣고 한 사나흘 잠을 못 잤어. 외교관이랍시고 점잖은체 하는 그자의 낯바닥에 침을 뱉아주지 못한게 두고두고 한이야.》

보금은 윤옥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자기 몸을 지킬줄 알아야 해요. 우리 한국녀자들에게 제일 소중하고 값진게 절개라는걸 알아야 해. 한걸음만 잘못 디디면 다야. 윤옥이도 아마 맏딸로 태여났겠지?》

《네.》

《맏딸들이 고생을 많이 하지. 맏딸이기때문에 제 몸을 희생하는 경우도 많고… 아무튼 내 말을 잊지 말고 몸을 지켜야 해요. 윤옥이처럼 나도 맏딸로 태여났더랬어. 저기 있는 정자도 그렇고…》

《나도 그래요.》

정자가 대답했다.

세 맏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쓸쓸히 웃었다.

언제부터 남조선땅에서는 첫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아들을 기다리던 시가에서 첫딸을 낳아 미안해하는 며느리를 위안하기 위해서만 생겨난 말이 아닌가싶다.

오빠대신에 맏이로 태여난 가난한 집 딸들은 벌써 예닐곱에 나면 양지쪽에 모여서 밥짓고 국끓이고 나물무치는 소꿉놀이를 했다. 그리고는 어린 입을 나붓거렸다.

《이건 아버지 밥.》

《이건 어머니 밥.》

《이건 내 동생꺼.》

생활에 쫓기는 어머니가 아직 힘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여린 잔등을 믿고 동생들을 업혀주고는 먹을것을 구하려고 산을 넘어갔다. 힘도 채 오르지 못한 가느다란 허리를 몇돌기나 돌고도 끝이 땅에 닿는 긴 띠를 두른 그들은 등에 업힌 동생들을 토닥거리며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대문밖에 나서서 어머니가 사라진 산너머에 있는 거리와 마을과 항구들을 호기심에 찬 눈동자로 그려본다.

등에 업혀 새록새록 잠이 들었던 동생이 무엇에 놀래서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얼굴을 찌프리며 울기 시작한다. 아무리 엉뎅이를 토닥거려주어도 동생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길가에 노란 민들레가 피여있다. 그는 그것을 꺾어 등너머로 바람개비처럼 돌려보인다. 그의 손끝에서 뱅뱅 돌아가는 민들레를 본 동생은 흐느끼던 울음을 뚝 그치고 코와 눈물로 범벅이된 얼굴을 그의 등에 문지르며 누이의 팔을 붙들고있던 고사리같은 손을 펴보인다. 그것을 받은 동생은 납죽 입으로 가져간다. 먹지 못하게 빼앗자 동생은 다시 머리를 내두르며 울기 시작한다.

아카시아꽃들이 피여있다. 키낮은 아카시아나무에 달려있는 꽃언저리에 발돋움한 그의 작은 손이 겨우 닿는다. 울어대던 동생은 그의 놀라운 행동을 보고 울음을 그친다. 그 꽃언저리를 먼저 자기의 입에 가져다 보인 그는 그것을 동생의 손에 쥐여준다. 그것을 받아 씹으려던 어린 동생은 이가 없어서 다시 운다.

소녀는 어머니가 사라진 산마루에 너울거리는 석양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부른다. 동생들의 울음소리에 그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진다. 그래도 먹을것을 구하러 간 부모들은 돌아올줄 모른다. 산마루에서 너울너울 춤추고있는 석양이 눈물이 고인 소녀의 어린 눈망울에 비껴있다.

그는 울보채는 동생을 업고 집으로 돌아와 부엌으로 들어간다. 간신히 들어올린 솥뚜껑밑이 비여있다. 그는 거기 있는 빈숟가락을 집어올려 울고있는 동생에게 보인다. 민들레도 아카시아꽃도 마다하던 동생은 울음을 그치고 해죽거리며 그것을 받으려고 손을 내민다. 혹여 눈을 찌를가 조마조마하여 쥐여준 숟가락을 입에 가져간 동생은 그것을 핥기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자기가 속은줄 안 동생은 숟가락총으로 누이의 머리를 쥐여박는다. 소녀는 그것을 피하려고 이러저리 머리를 돌린다. 동생의 울음소리가 다시 나자 눈물이 글썽해있던 그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어느덧 숙성해진 그는 어머니를 뒤따라 아침일찍부터 부엌에 들어가 동생들이 먹을 밥숟가락들을 챙긴다. 그는 솥에 쌀을 안치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산에 올라 나무도 하고 거리에 나가 광주리장사도 하며 바다가에 나가 조개를 캐고 미역오라기를 뜯으러 물속에도 들어간다.

그러나 동생들은 빈숟가락을 빨고있다.

누나! …

동생들은 어머니 다음으로 친근한 이 이름을 부르건만 그들에게는 동생들에게 줄것이 없다. 그들은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방직기술을 배우고 리발기술을 배우고 재봉기술과 간호기술을 배운다. 동생들은 학교에 못 가서 운다. 눈물에 젖은 동생들의 두볼이 그의 등을 비빈다.  그들은 식모살이로 들어가고 녀공이 되고 뻐스차장이 되고 식당의 접대원이 된다.

누나! …

아버지가 죽거나 혹은 어머니가 죽으면 누나는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된다. 그의 손은 트고 발은 벗었다. 그러나 동생들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는 망연자실하여 닳고닳은 자기의 손톱, 발톱을 내려다본다. 그는 자기가 쓰고있던 머리수건을 내다 팔고 저고리를 내다 팔고 마지막 속치마를 저당잡힌다. 그러나 동생들의 흐느낌소리는 멎지 않는다. 그의 두볼을 타고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알몸이 되여 울고있는 그들의 머리우에 사나운 계절이 흘러가고있다.

집과 동생들의 일을 걱정하여 주야로 울고있는 그들이 남조선의 위정자들, 역적무리들의 눈에는 둘도 없는 외화획득밑천으로 비친다.

흉악한 매국배족의 무리들은 벌거벗은 그들을 파주로, 문산으로, 동두천과 왜관으로 끌어갔고 도꾜, 오사까 등지의 《뉴우코레어》술집과 《무궁화홀》로, 《서울하우스》로 실어갔다. 3천마르크의 비행기전세로 발을 꽁꽁 묶어 마리아와 랄라와 장숙희가 있는 악취나는 병원 환자실로 실어보냈다.

이리하여 남조선의 《살림밑천》들인 우리의 윤옥과 보금과 정자도 이곳에 와서 차거운 서도이췰란드의 달을 쳐다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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