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2 장

조국이여, 너는 어디 있느냐?

7

 

창수를 생각하며 밤마다 뜨던 뜨개옷도 완성한지 오래였건만 그가 있는 지방으로 곧 가게 되리라 믿었던 희망은 날이 갈수록 바래여갔다.

대사관의 박로무관이 신경애와 함께 일하는 대표간호원 백은덕의 고향사람이여서 힘써주겠다고 약속했다기에 다된 일로만 알고있었는데 경애로부터 오는 편지들에는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기다림에 지친 윤옥은 그날 저녁 아홉시에 일을 끝내고 장숙희대표간호원을 찾아 휴가를 신청했다. 창수가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그것이 궁금했고 직접 경애네 병원에 가서 사정을 알아보고싶었던것이다.

《휴가? 좋은 일이 있나보지?》

장숙희는 변죽을 울리는 말을 하더니 떠보는 눈으로 윤옥의 동정을 살폈다. 상대편이 무엇인가 감추고있는것으로 보고 내가 속을줄 알아 하고 넘겨짚어보는 그런 눈이다.

윤옥은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장숙희는 딴청을 피웠다.

《너희들 마음대루 병원을 옮기라고 내버려두면 여기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힘이 좀 드는데선 병원에 남아있겠다는 애들이 하나두 없을거고…》

《병원을 옮겨달라고 온게 아니예요. 휴가를 받자면 대표간호원을 통해야 하기에 왔어요.》

《그래, 휴가때문에 왔다고 했지?》

《래일부터 휴가를 받게 해주세요. 휴간 누구나 다 받을수 있게 돼있지 않아요?》

《누가 그런 소릴 해?》

장숙희의 앙큼한 눈이 윤옥을 다시 뚫어지게 지켜본다. 그를 노려보는 장숙희의 시선이 또렷이 살아온다.

고운 허리맵시, 깨끗한 몸매, 그러지 않아도 맑고 고운 윤옥의 얼굴이 어제오늘 방긋이 터져오른 꽃봉오리같다.

잔주름이 달리기 시작한 장숙희의 살괭이눈에 질투의 빛이 어른거리더니 차거운 목소리를 냈다.

《넌 손보금이하구 함께 있더니 뻣뻣해졌어. 공연히 남의 말 듣고 경거망동해서는 안돼.》

《보금아주머니가 내 휴가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윤옥의 야무진 소리에 장숙희가 퍼더앉았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전에 내가 뭐라던? 똑똑히 처신해야 돼. 잘못하다가는 제 신세 제가 사서 망친다.》

《마리아간호장한테 직접 가서 말해도 좋겠어요?》

《그건 안돼. 휴가는 병원사정 알아보구 대답주겠어. 며칠 더 기다려. 병원사정에 따라 휴가가 밀린다는건 너두 알고있지 않니?》

장숙희의 방에서 나온 윤옥은 불쾌한 기분때문에 망설여졌으나 간호원대기실로 돌아와 차비를 해가지고 예정대로 식물원쪽으로 가는 전차를 탔다.

이윽고 식물원곁에 있는 TV탑이 나타났다. 전차에서 내린 윤옥이 성 밋헬교회당쪽으로 돌아가자 비스마르크의 동상이 나타났다. 하준혁이 사는 아빠트는 거기서 그리 멀지 않다.

3층끝에 있는 준혁의 집문을 두드리자 그의 안해 재숙이 내다보며 반색을 했다.

《어서 들어와요. 요즘은 왜 안 들렸어?》

윤옥은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는 두런두런 사나이들이 주고받는 목소리가 났다. 윤옥이 물었다.

《손님 오셨어요?》

《방금 유수찬박사가 오셨어.》

《문산병원 선생님의 동창이라는 그분이시죠?》

《그럼.》

얼마전에 유수찬박사가 도이췰란드녀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윤옥도 들었기에 부인과 같이 왔는가고 물었더니 혼자 왔다고 한다.

전번에 들렸을 때 루르지방의 병원으로 갈수 있게 힘써달라고 준혁에게 부탁을 하고 갔었는데 그 결과가 궁금했다. 그러나 손님이 와있기에 돌아가려는데 재숙은 놓아주지 않았다. 재숙은 곧 손님이 돌아갈것이라면서 윤옥을 부엌으로 이끌었다.

재숙은 윤옥이 묻는대로 요즈음은 준혁이 려행사에서 일본인관광객들의 통역을 해주면서 부업을 하고있는 이야기며 아직도 자기는 취직하지 못해서 걱정이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간호원밖에는 할수 없다지 않아. 도이췰란드녀자들이 할수 있는 직업은 로동청에서 한국사람들에겐 취직을 일체 거절하고있단다. 간호원 말고는 청소부는 할수 있다고 했어.》

《사모님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시겠어요?》

《집에서 뜨개질감이나 얻어다 해볼가 했더니 그것두 안된다고 해.》

《여기 녀자들이나 할수 있다는거겠죠?》

《그럼, 윤옥이처럼 간호원노릇을 하고파도 나는 그걸 못 배웠고…》

재숙은 쌍까풀진 커다란 눈을 방있는쪽으로 돌렸다. 그쪽에서 큰소리가 나고있었기때문이다.

윤옥은 재숙의 커다란 눈과 밤볼진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런 녀자는 거짓말을 할줄 모를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의 이모도 저런 얼굴을 하고있었던것이다. 재숙은 상그레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

《또 싸움이 붙었는가봐.》

《싸움이라니요?》

《유박사와 우리 집 선생은 만나기만 하면 론쟁을 하시지. 그러다간 인사도 변변히 나누지 않고 헤여지고… 그리고 또 만나면 싸움이고… 우습지?》

윤옥은 마주보고 웃기만 했다. 그가 인사를 하고 막 돌아가려는데 안에서 손님이 나왔다. 손님이 나가자 부엌에서 나온 윤옥을 보고 준혁이 《그 유명한 박사님때문에 윤옥양은 부엌에 갇혀있었군. 나는 이제사 방안에서 풀려나왔는데…》하며 어서 방으로 들어가라고 권했다.

《또 싸웠어요?》

재숙의 묻는 말에 준혁은 《싸우기는 뭘 싸우겠소. 내쫓아버렸지.》하고 찌프리고있던 미간을 펴며 윤옥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윤옥양의 부탁을 받고도 해결해주지 못해 안됐소. 사실은 아까 왔던 그 박사님에게 그 일을 부탁해두었더랬는데 그 량반은 한국사람이기를 그만둔 사람이라 이젠 다른데를 알아봐야겠어.》

《한국사람이기를 그만두었다니요?》

안해가 물었다.

《그 정치학박사는 한국국적을 뜯어고치고 아주 귀화해버리고말았소. 처가살이로, 그 량반 처가집이 있는데로 말이요. 하하하.》

《귀화를요?》

윤옥이 놀라며 물었다.

《귀화한걸 무슨 큰 자랑이나 되는것처럼 알고있는 그런자들이 가끔 있지.》

준혁은 방금전까지 유수찬과 주고받은 불쾌한 대화가 생각났는지 이런 말을 했다.

《이남의 오늘과 래일이 어떻게 되든 그런것엔 눈섭 하나 까딱않고 앉아있을수 있는 인간들이 있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 박사칭호를 받고 남의 나라를 섬기다 못해 호적까지 팔며 서양인인 처를 보고는 남조선이야기를 옛말삼아 들려주곤 키들키들 웃고있지.》

그는 윤옥에게 고개를 돌렸다.

《윤옥양, 정말 안됐어요. 그런 인간에게 윤옥양의 병원옮기는 문제를 부탁했으니. 일이 안될게 뻔했는데 공연히 기대만 걸게 했으니…》

하준혁은 힘을 더 써보겠다고 했다.

윤옥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는 창수가 최근에는 편지도 없다고 걱정하면서 그쪽으로 윤옥이 가게 될 때면 한번 만나고싶다 하더라고 전해줄것을 부탁했다.

그날 밤 윤옥은 울적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처럼 희망을 걸고있던 준혁에게 한 부탁도 바랄수 없게 되였고 쉽게 얻어질가 했던 휴가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병원을 옮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데다 준혁의 집에서 듣게 된 유박사에 대한 이야기도 서글프기만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또 다른 불쾌한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딜 갔다오느냐는 보금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윤옥이가 막 저녁을 먹고났을 때 정자가 돌아왔다.

정자는 외투도 벗기 전에 곧장 보금에게 참고있던 자기의 울분을 터뜨렸다.

《언니! 세상에 그런 법이 어데 있겠수! 그런 흉악한것들이 어디 있겠냐 말예요.》

《왜? 갔던 일이 틀어진게로구나. 그럴게라구 내가 말하지 않던.》

보금은 미리 생각키운것이 있었던듯 놀라지 않았다.

《언니가 그런 말을 할 때도 설마 했었죠. 그놈이 글쎄 오라고 해서 갔더니 뭐라 한줄 아세요. 병원은 틀림없이 옮겨줄테니 그건 걱정말라면서 말이예요. 돈을 내놓으며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겠다나요. 아이, 분해 죽겠어요. 그런 놈들이 글쎄 령사요, 공사요 하고있지 않겠수.》

《령사가 그랬단 말이지?》

《그럼요. 그 능구렝이가 오늘래일하구 끌어오더니 이제 와서 보니까…》

정자는 거칠게 숨을 쉬고 펄펄 뛰였다.

《외투를 벗고 어서 저녁이나 먹어요.》

보금의 목소리는 그저 조용했다.

윤옥이 정자의 저녁을 차려들고 들어오자 정자는 그대로 외투를 입은채 거친 숨을 쉬고있고 보금은 저쪽 탁자에 앉아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보금의 음성에는 치를 떠는 흥분이 담겨져있었다. 그가 흥분할 때면 언제나 이렇게 목소리는 잔잔했다.

《그자들은 직권을 리용해 수욕을 채우고나서 모른체 하면 다인줄 생각하는것들이야. 그렇게 짓밟힌 녀자들의 신세가 어떻게 될는지 생각이나 해보겠어? 입으론 교포들의 선도요 뭐요 하면서 깨끗하던 녀자들을 그런 길로 떠밀어넣는것이 그것들의 일이지.》

보금은 동안을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자살이요, 륜락이요 하는 길이 먼데 있질 않다. 그놈들의 손에 걸려 한번 몸을 더럽히면 그것이 다야. 그런 녀자들이 한둘인가.》

《외화가 뭔지, 제놈들의 녀편네나 팔아먹으라지!》

정자가 부르짖었다.

《정자, 널 노린 그 뚱뚱보령사는 흉악한 마음에 비해선 수법이 소박한거야. 미끼로 낚고 올가미를 씌워서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는자들도 있어. 칼은 그놈들의것이지. 모략엔 이골난 놈들 아니냐. 무슨짓인들 못할라구.》

보금은 정자의 외투를 벗겨주며 말했다.

《저녁을 먹으라구.》

윤옥은 보금의 눈에 맺힌 이슬을 보았다. 보금은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윤옥은 자기가 보낸 하루가 천년이나 만년이나 되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가슴은 마냥 불안과 두려움에 떨리기만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밤에 있은 일이였다.

정자가 정신병원에서 본 미치광이들의 해괴망측한 행동들을 이야기해서 셋이 함께 어이가 없어 웃고있는데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윤옥이 문을 열자 전날 보금을 찾아와 흐느껴울다가 돌아간 난희라는 그 멋쟁이간호원이였다.

《보금아주머니 있죠?》

《왜 그래요?》

윤옥은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간호원의 입에서 술내가 났기때문이다.

비칠거리며 들어선 난희간호원을 본 보금이 소리질렀다.

《난희, 그게 무슨 꼴이야!》

《맥주를 했어요.》

《네 어머니가 그 꼴 보면 우실거다.》

《울고프면 울라지 뭐래요. 난 아주머니한테 욕먹고파 왔어요. 욕을 실컷 먹고파 왔어요.》

그는 손수건을 꺼내 입을 썩 훔쳤다. 윤옥의 눈에는 그것이 사내망나니들의짓으로 비쳤다.

보금은 난희를 노려보고있을뿐 말이 나가지 않는지 눈을 부릅떴다.

난희도 지지 않겠다고 보금을 마주보고있다. 한참후 보금이 입을 뗐다.

《아무튼 거기 앉아라.》

《앉겠어요. 못 앉을줄 알아요?》

난희는 의자에 걸터앉더니 보금을 쏘아보며 입을 비쭉 내밀었다.

《흥, 이제는 욕을 먹어두 무섭지 않아! 나는 다 들었어요. 요한나아주머니, 명심이를 알죠? 본대학병원에 있는 명심이 말예요. 그애한테 다 들었어요. 아주머니, 그놈들과 차도 같이 탔다죠. 모른다고는 말 못하겠죠? 흥.》

보금은 흠칫하더니 무서운 눈으로 난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눈길은 날카로왔지만 목소리는 낮았다.

《난희, 너는 대관절 무슨 소리를 하자는거냐?》

《흥, 눈을 빨면 어쩔테야? 내가 아는건 죄다 말하죠 뭐, 죄다! 나보고는 더러운짓 말라고 꾸짖고 거룩한 말씀 많이 하셨죠? 그런데 알고보니까 참 거룩하시더군요.》

보금은 엷은 입술을 꾹 다물고 그냥 노려보기만 했다.

《성녀인체 말고 가면을 벗어요. 차라리 나처럼 솔직하란 말예요. 화냥년이면 화냥년이라고 내놓고 살아보란 말예요. 이 나라에 와있는 한국녀자치고 몸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어데 있어요?》

그때까지 겁먹은 사람처럼 듣고있던 윤옥은 그만 치닫는 충동을 걷잡을수 없어 저도 모르게 난희의 뺨을 쳤다. 온갖 저주를 다 퍼붓고싶었으나 말이 나가지 않아 그냥 쌔근거리며 난희의 옷섶을 틀어쥐고 흔들뿐이였다.

난희도 윤옥이를 붙들고 악을 썼다.

《니는 뭐냐? 보금이 제자냐? 너두 가짜 성녀냐?》

두 간호원은 서로 그러쥐고 엉켜돌아갔다. 정자는 둘을 떼놓으려고 애를 썼으나 둘중 누구도 지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제자리에 앉은채 까딱도 하지 않던 보금이 입을 열었다.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소란스럽다. 조용들 해라.》

그의 말에는 거역하기 어려운 이상한 힘이 있었다. 두 간호원은 그러잡았던 손을 놓고 한걸음씩 물러섰다. 그러나 둘 다 가쁜숨을 쉬며 서로 상대방을 매섭게 쏘아보고있었다. 다음순간 그처럼 거칠게 날뛰던 난희간호원이 마루바닥에 이마를 박으며 어푸러지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 난 어쩌면 좋아요? 난 다된 몸이예요. 어쩌면 좋아요?》

꼼짝않고 앉아있던 보금은 목이 타는지 고뿌에 랭수를 가득 부어 쭉 마시는데 유리잔이 이발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손과 발, 그의 온몸이 떨리고있었다.

난희간호원은 한참동안 울고나자 취기와 흥분이 걷힌듯 돌아갈 차비를 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보금이쪽을 보더니 눈을 떼지 못하고 홀린 사람처럼 멍히 서있었다. 갑자기 그의 몸이 앞으로 쏠리며 보금에게로 다가가려다말고 고개를 숙이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주머니! 용서하세요. 내가 몹쓸 년이예요. 죽일년이예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보금은 표정 하나 움직이지 않고 극히 랭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용서 빌게 없다. 곧장 가서 자거라.》

그리고는 시선을 딴데로 돌리고말았다. 난희간호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힘없는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그가 돌아간 후 세사람은 아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윤옥은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정자의 침대에서도 밤새 뒤채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보금은 돌아눕는 기색이 없고 그저 조용했다.

끝내 잠을 이룰수 없었던 윤옥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금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주머니!》

윤옥은 용기를 내여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불을 끈 어두운 방이였다. 윤옥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주머니!》

모로 누워있는 보금은 그래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가 자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알고있는 윤옥의 다음말이 갑자기 높아지며 울음이 섞여나왔다.

《아주머니, 말씀하세요. 정말이예요? 아니죠? 그럴수 없죠? … 왜 말을 못해요? 왜 갑자기 벙어리가 됐어요? 난 아주머니가 그렇지 않다는걸 믿고싶어요. 씨원히 말씀하세요.》

그래도 보금은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창문에 비친 희미한 달빛에 들먹이고있는 그의 어깨가 보였다. 대답대신 보금이는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무서운 고통에 눌려 온몸은 불덩어리처럼 달아있었다. 날이 샐 때까지 그는 몇차례 물을 찾았을뿐 다른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이튿날 아침 눈들이 뻘개져 일어난 세 간호원은 서로 시선을 피해가며 아침을 하고 뿔뿔이 저들의 직장으로 향했다.

그날 보금은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집에도 없었다. 이튿날도 나타나지 않았다.

밤이면 윤옥과 정자는 호젓이 마주앉아 누가 들을세라 겁을 집어먹은 사람들처럼 목소리를 낮추어 귀속말을 했다.

《보금아주머닌 어델 갔을가요?》

《글쎄 말이다.》

윤옥은 보금을 다시 만나보지 못할것만 같았다.

《지나친 마음만은 먹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심상치 않은 얼굴표정이였어. 보금언니는 제 한몸이라면 벌써 죽었을거야.》

《무서운 세상이군요.》

《무서운 세상이야. 너도 빨리 네 총각한테 가거라. 인제는 뜨개질도 다했고…》

마치도 옷을 다 뜨지 못해서 윤옥이 루르지방으로 병원을 옮기지 못하고있는듯 한 어투였다. 그러나 윤옥은 옮겨가지는 못할망정 독촉을 해서 휴가라도 빨리 받아야겠다던 생각을 잊고 그냥 보금이 생각에 골똘하고있었다.

심란한 마음을 안고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으나 보금은 나타나지 않고 영영 종적을 감추고말았다.

윤옥은 보금이가 이 세상에는 더는 살아있지 않다고 단정하고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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