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2 장

조국이여, 너는 어디 있느냐?

8

 

굴진공들은 천반에 동발을 대고있었다. 창수, 도익, 재균 셋이 안깐힘을 쓰고있건만 쇠들보는 쉽게 밀리지 않았다.

《왜 너희들은 그렇게 힘이 없느냐?》

언제 왔는지 한스감독이 남포불로 천반을 비쳐보며 소리쳤다. 그러나 세사람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스는 증이 난듯 남포불을 그들의 얼굴로 돌렸다.

《왜 대답이 없느냐? 너희들은 벙어리냐?》

얼굴에 비치는 불빛을 피하며 창수가 대답했다.

《작업때 입을 열면 돌먼지가 들어가지 않소?》

어데서 잔뜩 기분이 상해서 왔던 한스감독도 대답의 임자가 창수임을 알자 입을 다물고말았다.

이어 다른쪽 쇠들보를 밀어올리는데 그것을 지켜보던 감독은 제일 힘을 못 쓰는 한재균을 밀어내고 자기가 대신 들어섰다. 그런데 투덜거리던 그가 쇠들보를 잡았던 손을 놓치고말았다. 쿵 소리와 함께 쇠들보가 떨어졌다.

하마트면 발등에 떨어질번 한 쇠들보에서 물러서며 제풀에 노발대발한 한스는 거기 있던 곡괭이를 집어들고 재균이를 향해 던졌다. 재균이가 발밑에 떨어진 곡괭이를 집어올리며 다가섰다.

《당신은 왜 그렇게 신경질을 부리는가?》

재균의 손에 잡힌 곡괭이를 본 감독놈은 《그래 너는 신경질이 없느냐?》하고 되물었다. 곡괭이를 던진 자기가 신경질이라면 그것을 들고 선 너도 다를바 있느냐는 뜻이다.

권도익이 한마디 했다.

《우리는 일 배우러 왔지 당신들의 신경질을 배우러 온것이 아니요.》

한스는 웃입술을 말아올리며 이발을 드러내보였다.

《그것도 여기서는 곧 끝장이 날것이다.》

셋은 그 말뜻을 알아차릴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일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규정대로 일을 해야 한다.》

한스감독의 말이다.

한스가 말한 끝장이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퇴근길에서 떠도는 소문을 듣고서야 그들은 비로소 알게 되였다. 이 탄광은 머지않아 페광되고 다른 탄광으로 옮겨가게 될것 같다는것이였다.

《정든 고장이라고 찾아왔던가. 제길헐, 아무데 가나 마찬가지지.》

창수는 혀만 찼을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이튿날에는 새로운 소식이 또 들려왔다. 다른 탄광으로 간다고 해서 오늘까지는 여기서 일하다가 래일부터는 다른 탄광에서 일하는 식으로는 되지 않고 몇달동안은 쉬면서 기다려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리고 쉬는 동안은 로임을 받지 못하니까 큰일났다고들 했다.

창수도 야단이 났다고 생각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 헤매던 나날을 잊을수가 없는 그였다. 여기엔 매부네 집도, 영태네 책가게도 없다. 생활비가 많이 드는 여기서 어떻게 생계를 꾸리겠는지 난감했다.

남조선탄부들은 너나없이 걱정이 끓기 시작했다. 실업의 쓴맛을 톡톡히 보아온 사람들이라 모여앉기만 하면 걱정들이고 한숨들이였다. 일이 손에 잡힐리 없었다.

갱들에서는 새로운 굴진이 중단되고 갱내에 들였던 기자재들중에서 도로 내갈수 있는것들을 내가는 작업들이 시작되였다. 페광이 확실한 일로 되고 탄부들의 불안은 더 절박한것으로 되였다.

하루는 창수가 어수선한 마음으로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와보니 윤옥의 편지가 기다리고있었다. 편지에는 신경애로부터 기별이 왔는데 루르지방 맞춤한 곳에 주선해보겠다기에 빨리 아퀴를 지어달라고 회답을 했다는 사연과 옮겨가기 전에라도 휴가만 받으면 한번 놀러 갈가 하고 생각하였지만 휴가도 쉽지가 않아서 뜻대로 안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 편지를 읽고나니 마음이 더 뒤숭숭해졌다.

며칠전에만 받았어도 얼마나 좋아했을지 모를 편지였다. 갖은 모욕과 천대, 멸시를 받아가며 살아야 하는, 자기곁으로 오지 못해 안타까와하는 윤옥을 기다리는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기쁨이였는데 그것마저 이룰수 없을것 같다. 이런 경황에 윤옥이 찾아오면 어찌랴 하는 불안과 한편으로는 그가 오기를 기다려지는 조바심이 서로 다투며 그를 괴롭혔다.

그가 자기 마음을 걷잡지 못하고있는데 재균이 바삐 방안으로 들어서며 친구들을 찾았다.

《다들 어디로 갔어? 새 소식이 있는데…》

《무슨 소식인데?》

《무급휴가란 말이 돌고있지만 그동안의 임금은 제대로 준다고들 하더군.》

《그러면 그렇지! 무급휴가란 말이 잘못 돌안게로군.》

창수는 그럴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서도이췰란드정부의 사정에 의해서 페광을 하게 되고 다른 탄광으로 옮겨가게 된다면 그건 응당 그쪽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것이였다.

《나도 그럴줄 알았어. 몇달이 될지도 모르는 휴가기간을 돈없이 살라면 굶어죽었지 별수가 없지 않겠어.》

재균은 신이 나서 모나꼬에서 온 탄부들도, 에스빠냐와 뛰르끼예탄부도 꼭같은 소리를 하더라고 전했다. 그 나라 탄부들은 탄광측의 사정에 따라 그동안 앉아서 로임을 받아가며 쉬게 된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알고 모두 페광할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창수는 안도의 숨을 쉬였다.

어느 한사람만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온 여러나라 탄부들의 말이 맞아떨어지고 더군다나 그들은 휴가기간에 자기네들 나라를 다녀올 생각으로 흥성거리고있다니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것이다.

무슨 새 소식을 얻어들을가 해서 마을돌이를 하고 온 영태와 도익도 역시 같은 소문을 듣고 왔다. 도익은 휴가기간에 일시 자기 나라를 다녀올 계획을 하고있는 여러 외국인탄부들이 돌아갈 때 들고 갈 선물들을 사들고 떼를 지어 오는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 소식은 남조선탄부들사이에 날개가 돋친듯이 퍼졌다. 까맣게 죽어서 다니던 얼굴들에 화색이 돌고 공연한 걱정을 사서 했다고 웃기도 했다.

그러나 남조선탄부들의 그 기쁨은 며칠을 더 가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에서 온 탄부들은 휴가기간에 제대로 로임을 받게 되고 일시 자기 나라로 갔다올수 있지만 남조선탄부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새 소문이 퍼진것이였다.

창수는 영태가 어디서 듣고 온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걸 말이라고 믿어?》하며 그에게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창수말이 옳지. 그건 말이 안되지. 같은 탄부들인데 우리들만 빈주먹을 빨면서 몇달간이나 살아야 한다는 그따위 소문을 아예 들고 다니지도 말아야 하네.》

권도익도 이런 소리를 했다. 그럴수가 없다는것은 리치로 따져보아 너무나 명백하였고 그따위 헛소문을 믿는것은 제 얼굴에 제가 침뱉는 어리석고 허망한짓이라고 생각한것이다.

그러나 남조선탄부들만 무급휴가이고 다른 나라 탄부들은 모두 유급휴가가 된다는 소문은 끈덕지게 돌았다. 남조선탄부들은 누구라 할것없이 처음에는 그 소문을 일소에 붙였으나 그 이야기를 조진규통역원이 한 탄부에게 귀띔해주었다는 말이 나돌게 되자 차츰 얼굴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두사람만 모여도 침방울을 튕기며 그 이야기를 했다.

드디여 그 소문의 사실여부가 밝혀지는 날이 왔다.

작업중이던 남조선탄부들에게 모두 지상으로 올라오라는 련락이 왔다. 탄부들은 웅성거리며 승강기있는데로 모여들었다. 한시가 급한 초조한 얼굴들이였다.

지상에 오른 창수가 옷을 갈아입고 광업소사무실앞 넓은 운동장에 들어섰을 때는 먼저 온 탄부들로 떠들썩했다.

그는 사람들 틈을 헤치고 앞쪽으로 나갔다. 광업소 소장이 조진규통역원을 데리고 나타났기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조용하라는 목소리가 나고 차츰 입들을 다물기 시작했다. 창수는 발돋움질을 하며 광업소 소장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빼빼 마른 체구에 코걸이안경을 낀 소장은 매부리코를 치켜들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자기들의 운명이 달려있는줄 알고있는 탄부들은 그의 입만 쳐다보고있었다. 호이벨스라고 불리우는 그 소장은 딱딱 마치는 도이췰란드어를 거의 억양이 없는 평탄한 어조로 말했다. 탄광국의 결정에 따라 오늘부터 페광한다는것, 다른 탄광으로 이동할 때까지 2개월간 휴가를 준다는것, 이동할 탄광과 그 시일은 서도이췰란드탄광국과 남조선대사관사이에서 결정될것이라는것 그리고 뒤처리를 하게 될 일정한 인원의 탄부들에 한해서만 로임지불이 있을것이라는 내용을 책을 읽듯이 내리엮었다. 조진규통역원이 그 말을 받아 통역을 했다.

남조선탄부들만 무급휴가로 들어가게 된다고 하던 그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다. 운동장이 설레기 시작했다.

창수는 옆사람의 발등을 밟으며 앞쪽으로 더 나가려고 기를 썼다. 소장의 말을 더이상 가만히 듣고만 있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몇걸음을 더 나가지 못했다. 저마다 앞으로 쏠리며 분통을 터뜨리고있었다.

《뭐 우리만 무급휴가라고?》

《두달동안 뭘 먹고살라는거야?》

여기저기서 탄부들이 분을 이기지 못해 떠들썩한데 맨 앞줄에서 누가 소장을 향해 소리치고있다.

《무슨 리유로 우리 한국탄부들만 차별대우를 받아야 하오? 왜 우리들만 무급휴가를 받아야 하느냐 말이요?》

소장은 여전한 어조로 대답했다.

《당신의 질문은 리해할수 있고 또 정당합니다. 우리 광업소에서는 그 리유를 이미 당신들의 대사관에 알렸습니다. 그 대답은 당신들의 대사관에서 들려줄것입니다.》

다른 탄부가 질문을 퍼부었다.

《우리는 당신들과 계약을 맺고있소. 한국대사관이 여기 무슨 상관이요?》

소장은 차거운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조진규가 통역을 했다.

《당신은 무슨 오해를 하고있는것 같소. 우리는 한국정부와 계약을 맺었지 당신들을 계약상대자로 선택한것이 아니요. 다른 나라들에서 온 탄부들과는 이 점에서 차이가 있소. 당신은 유감스럽게도 오해를 하고있소.》

조진규는 통역을 끝내자 자기 말로 발을 달았다.

《여러분! 이 사람네들 하고 옴니암니할 필요가 뭐요. 대사관에서 곧 수석로무관님이 오시게 되여있으니 그때 물어보면 될것 아니겠소.》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는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계속 광업소 소장에게 질문들을 들이대는 분격한 목소리가 났다. 한 탄부가 웨쳤다. 제일먼저 질문을 하던 그 목소리 임자였다.

《우리들도 여길 와서 거주신고와 함께 로동계약서에 우리 손으로 서명을 했소. 모나꼬나 뛰르끼예, 에스빠냐탄부들과 남조선탄부들이 다른게 뭐요?》

광업소책임자의 대답이 왔다.

《당신이 오해하고있는 점을 명백히 알게 되였소. 당신이 지적한 그러한 나라들에서 온 탄부들은 개인자격으로 우리와 계약을 맺었고 당신들과 우리는 당신의 나라 정부를 통해 계약을 맺은것이요. 당신들은 우리의 계약일방이 아니라는것이 이제는 명백히 납득된줄로 믿고있소.》

그 탄부는 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로동계약서에 무슨 필요가 있어서 우리의 서명을 요구했는가고 그 탄부가 따지자 소장은 엷은 미소를 띠웠다.

《그 로동계약서는 당신이 우리 탄광에서 일할 때 제정된 규정과 로동질서에 동의한다는 계약을 한것이요. 모나꼬나 뛰르끼예탄부들이 한 그 서명내용과는 다른것이요.》

창수는 더 견딜수 없었다. 그는 등을 꼿꼿이 세우고 소장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일방적으로 의무만 지우는 그런 로동계약이 어데 있단 말이요? 그건 여기 말을 모르는 우리를 속인것이 아니고 뭐요?》

그의 웨침소리가 울리자 그때까지 빽빽이 막아섰던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서며 길을 열어주었다. 속시원한 소리를 한 이 청년이 자기들의 사활적인 문제를 가지고 무슨 리로울 말을 할것 같아서였다. 창수는 사람들이 조금씩 드티며 길을 열어주자 앞쪽으로 더 가까이 나갔다.

광업소 소장의 차거운 눈알이 내다보던 어웅한 눈확에 잔잔한 웃음이 고이면서 그의 안경이 번쩍이였다. 조진규가 통역했다.

《우리 정부는 우리 말을 잘 아는 한국외교관들을 통해 계약을 맺었소. 우리는 당신들을 속인것이 없소.》

창수는 소리를 더 돋구었다.

《우리는 뛰르끼예나 모나꼬, 에스빠냐탄부들과 꼭같이 일했소. 그들에게 주는 휴가기간 월급을 왜 우리 한국탄부들에게는 줄수 없다고 하는가 말이요. 같은 탄광에서 같은 일을 했으니만치 같은 대우를 받을 권리가 우리에겐 있소. 그리고 당신네 탄광측에서는 같은 일을 한 사람들에게 같은 대우를 해줄 의무가 있소!》

통역을 통해 그의 말을 알게 된 소장은 잘 알았다는듯 조진규에게 가볍게 머리를 끄덕여보인 후 고개를 창수쪽으로 돌렸다.

《당신은 권리와 의무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그러면 우리 탄광측이 당신들과 맺은 계약상의무를 위반한 사항들이 무엇인지 그것을 지적하시오. 우리는 그 의무를 남김없이 다 리행했소.》

창수는 약간 주저했다. 왜냐면 자기를 비롯한 남조선탄부들이 서명한 그 로동계약서의 내용을 잘 모르고있었기때문이다. 탄부들이 준수해야 할 로동질서 즉 지하작업장에서만 취역할수 있다는것과 3일간 무단결근하면 무조건 해고당한다는것, 갱내에서 사람을 치면 사형법으로 다룬다는것 등은 알고있었지만 정작 탄광측에서 리행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 그것을 잘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자기들이 처음에 탄광에 왔을 때 그 로동계약서에 서명해야 한다고 알려주던 대사관 관리들은 그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았던것이다.

잠시 입을 다물었던 창수는 재차 따지기로 결심했다. 그 계약내용을 자세히 모른다 해도 이와 같은 차별대우를 할수 있게는 되여있지 않을것으로 생각되였던것이다.

《하나 더 묻겠소. 동일한 작업에 대한 동일한 대우를 할 의무가 당신들에게 있소 없소? 그 로동계약서엔 이렇게 일방적인 차별대우를 해도 일없다는 당신들의 권리가 명기되여있냐 말이요?》

그는 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국가간의 계약에 빙자하는건 핑게만 있으면 줄것도 안 주고 떼먹겠다는 도둑놈심보가 아니고 뭐요?》

창수의 말이 떨어지자 탄부들이 호응해나섰다. 여기저기서 웨침소리가 났다.

《그건 틀림없는 도둑놈심보요!》

《그 말이 옳소!》

조진규는 통역을 할 생각은 안하고 창수를 향해 엄포를 놓았다.

《저 친구가 물인지 불인지 모르고 함부로 날뛰는군! 입이 있다고 아무 소리나 해도 되는줄 아오?》

조진규는 남조선탄부들사이에 《남산끄나불》로 통하고있다. 그는 그것을 코에 걸고 다니는데 지금도 그 버릇이 나온것이다. 창수가 요구했다.

《어쨌든 통역을 해야 할게 아니요. 통역을 하시오.》

《저 친구 좀 봐, 공연히 난체 하다가 뒤에 가서 제 손가락 깨물지 말고 대사관에서 나오는거나 기다려. 이제 곧 올테니.》

그는 한사람의 탄부에 대한 위협이 다른 탄부들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키고있는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창수는 자신이 직접 도이췰란드말로 소장에게 말해볼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아직 도이췰란드말이 서툴었으나 조통역이 해주지 않으니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다. 광업소 소장은 그가 하는 도이췰란드어의 내용을 알아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시늉을 해보였다.

창수가 주먹을 쥐고 그와 조진규를 노려보고있는데 탄부들이 술렁거렸다. 대사관차가 온다는것이였다.

앞에 기발을 단 무번호차 두대가 주차장에 와 서더니 거기서 네사나이가 내렸다. 소장은 마침 잘되였다는듯 그들을 안내해 사무실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밖에 남은 탄부들은 긴장한 얼굴로 그들이 나오는것을 기다리고있었다. 대사관에서 나왔으니 이와 같은 억울한 사정을 알게 될것이고 다른 나라 탄부들처럼 휴가중 로임을 받아내주겠지, 낯설은 이 이국땅에서 두달동안이나 맹물만 먹고 지내라고야 하지 않겠지, 동포라면 덮어놓고 초면이 구면으로 되는 외지에서 동포들을 돌보고 보호할 직분이 있는 대사관에서 모른체 할리야 만무하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들을 했고 또 그런 말들을 하면서 기다리고있었다.

얼마후 대사관원들이 사무실에서 나왔다.

창수는 옆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서야 자기들앞으로 다가오는 사나이가 윤종기수석로무관이고 그와는 몇걸음 떨어져 양복저고리 호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두손을 찌르고 서서 버럭산만 올려다보고있는 사나이는 강균 문화과 참사라는것을 알았다.

두 대사관원은 그들을 옹위하듯 뒤에 벌려섰다.

윤종기수석로무관은 탄부들앞에 나서더니 분을 참을수 없는 사람처럼 말을 시작했다.

《우리 대사관도 앉은벼락을 맞은셈입니다. 급작스레 보자고 해서 온즉 일이 이렇게 되고있지 않겠어요. 형님들이 이런 곤경에 처한것을 보는 이 동생의 립장이 딱하고 한스럽습니다.》

수석로무관은 자기의 가슴을 두드릴듯이 주먹을 그리로 가져갔다. 그를 쳐다보던 탄부들은 숨을 죽였다. 어떤 사람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있는데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감동의 빛이 어렸다. 좀전에 거기 서있은 도이췰란드인소장의 말이 너무나 랭랭하고 몰인정했던것과 대조적으로 동포애를 느끼게 하는 낱말들이 수석로무관의 입에서 나오는것을 보자 고드름이 맺혀있던 가슴속에 그만 화기가 도는것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탄부들의 이목이 자기에게 쏠리기를 기다려 윤종기수석로무관은 국내외정세를 풀이해보였다.

그는 지금 유럽과 아메리카 각국의 경제에 일대 파문을 일으키고있는 통화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금시세의 광란적인 변동과 경기후퇴의 징조들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이 모든 사실들이 《형님네들》이 겪게 된 곤경과도 뗄래야 떼놓을수 없는 관계가 있는것이라고 했다.

아직 도이췰란드어에 서툴어서 도이췰란드신문은 읽을수 없고 남조선에서 오는 신문들은 보고싶어도 볼 길이 없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있는지 알지 못하는 그들 탄부들중에는 수석로무관이 넓은 학식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서 감탄을 금치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윤종기의 이야기는 점차 도이췰란드의 경제계와 재정계형편으로 넘어가 국제경제계의 이미 말한 그러한 여러가지 요인과 추세로 말미암아 서도이췰란드정부에서는 자기 나라 석탄을 캐쓰는것보다 외국에서 수입해오는편이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여 이번에 채탄조건과 성적이 좋지 못한 탄광들을 페광처분하게 되였는데 거기에는 심한 각축전을 벌리고있는 도이췰란드정계의 옥신각신이 작용하고있는것으로 자기는 믿고있다고 설명했다. 윤종기수석로무관은 이윽토록 탄부들을 바라보며 눈을 슴벅이다가 잘 울리는 목소리로 자기의 긴 연설을 매듭지었다.

《어느 한 탄광의 고자세와 일방적인 처사로 형님네들이 이번과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됐다면 나로서도 생각이 있고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겁니다. 허지만 이제 말씀드린바와 같이 여기에는 국제경제사정과 도이췰란드의 경제 및 재정사정, 거기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서도이췰란드정계의 이러저러한- 그 이야기만 하자 해도 끝이 없겠습니다만- 그런 복잡다단한 사정들이 얽히고얽혀 이런 결과를 가져온것이니 누구를 탓할수도 없게 되였구요.》

그는 침을 꿀꺽 삼킨 후 계속했다.

《억울하지만 어찌겠습니까. 참을수밖에 없게 되였습니다. 이것이 다 약소민족의 설음인데 하소할데도 없습니다. 두달만 참읍시다. 참고 견디기가 수월치 않겠습니다만 우리 민족이 지니고있는 겸양과 인고의 미덕을 발휘하여 말썽이 나지 않게 하는것이 좋을줄로 압니다.》

그는 연설을 마치자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할 이야기는 다했다는 태도였다.

무급휴가를 취소해주도록 해주던가 그것이 안되면 앞으로 생활보장을 담보받을수 있게 탄광측에 요구할 그 어떤 말이 나올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뚱딴지같이 그의 입에서 국제통화위기가 어떻고 약소민족이 어떻고 겸양과 인고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는 등 괴이한 소리가 나오자 그를 쳐다보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맨 앞줄에 서있던 탄부 하나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러면… 휴가비는 어떻게 되는가요?》

《그러게 말이요. 그래서 이 동생의 립장이 난처하다고 아까 설명해드렸죠.》

윤종기수석로무관은 다시 한걸음 나섰다.

《저 사람들은 자기 나라 사정이라 해서 사전련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그렇게 나왔다고 했습죠. …정세가 복잡해졌죠.》

다른 탄부 한사람이 또 물었다.

《국가간에 맺은 로동계약때문에 우리한테 불리하게만 되였다는데 그건 왜 그렇습니까?》

《한마디로 그렇게 속단할수야 없죠. 긴 안목으로 국가적인 높은 차원에서 볼줄도 알아야 할겁니다.》

다른 탄부가 질문했다.

《다른 나라 탄부들이 개인자격으로 맺은것보다 정부가 나서서 맺은게 불리하다니 그걸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부야 개인보다는 우세할게 아니요?》

버럭산에만 눈길을 돌리고있던 문화과 참사가 고개를 돌려 그 젊은 탄부를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윤종기와 시선이 마주치자 턱을 끄덕여 보인 후 자기는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과는 관계없는 사람이란듯이 재차 버럭산에 눈길을 가져갔다. 버럭산우에 수리개 한마리가 돌고있다.

윤종기수석로무관은 겉으로는 태연한듯 꾸미고있었으나 어서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것이 좋을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는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질문자에게 친절한 어투로 말했다.

《우리야 기술협정이니까. 다시말해서 여기서 기술을 배워내여 한국탄광의 개발에 이바지할 중요한 내용이 포함돼있어서 그러는거죠. 그건 어쨌든 우리 정부에서 하는 일인데 저 사람들앞에서 너무 장시간 가타부타하지 맙시다. 앞으로 계속 여기로 오게 될 후배탄부들도 생각하셔야지요.》

그때까지 수석로무관을 지켜보기만 하던 창수가 그를 향해 불같은 말을 던졌다.

《대관절 그 말은 우리 이남탄부들을 위해 하는건가요, 탄광편에 서서 하는건가요? 알고보니 광업소 소장과 꼭같은 소리를 하는군요.》

윤종기수석로무관은 무엇에 이마빼기를 얻어맞은것처럼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그는 자기의 당황과 불안을 감추기 위해 미간을 찌프려보였다. 군중들은 조용해졌다. 강균참사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번뜩이며 창수를 찾았다.

창수는 노려볼테면 노려보라 하고 자기편에서도 마주 바라보았다.

창수의 얼굴을 군중들속에서 찾아본 강균은 더는 관심이 없는듯 고개를 되돌려 버럭산을 여전히 살펴보고있다.

미간을 찌프렸던 윤종기수석로무관은 이내 웃음을 띠고 질문자를 바라보았다.

《로형의 그 심정을 알만 해요. 얼마나 기가 차고 딱하면 그런 막말이 다 나오겠어요. 난 로형이 한 그 말을 절대로 모욕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이건 진정입니다.》

군중들속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윤종기수석로무관이 《진정》이라고 한 말이 우스웠던것이다. 그러니 여태껏 한 말은 진정이 아니였다고 그가 제입으로 말한것처럼 들렸던것이다.

실로 미묘하게도 창수가 던진 그 질문과 뜻하지 않게 수석로무관이 한 그 대답은 그때까지 대사관측이 거미줄처럼 치고있는 기만술책의 정체를 드러내보인것이였다.

윤종기수석로무관은 손수건을 꺼내여 코를 풀었다. 그는 또 한번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죠. 오늘은 시간도 그렇고 다음 기회에 더 이야기하기로 할가요?》

그는 강균참사와 몇마디 소곤거리더니 탄부들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 대사관에서도 형님네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힘써드리겠어요.》

수석로무관은 대기시켜놓은 자동차있는데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강균참사와 두 대사관 관원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을 태운 차가 움직이자 윤종기수석로무관은 차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탄부들에게 흔들어보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에 주의를 돌리는 사람이 없었다. 탄부들은 암담한 얼굴을 숙이고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기발을 날리며 본쪽으로 사라져가는 대사관차들에 시선을 박고있던 창수의 가슴에 불이 붙고있었다.

탄부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창수는 땅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기막힌 무급휴가 2개월 같은것은 어느새 뒤전으로 물러가고 다른 그 무엇이 가슴속에서 분명히 머리를 들고있는데 그것이 어떤것인지를 그자신도 알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체험한 그 어느 분노보다 더 큰 분노가 마음을 휘여잡고있는데 그것이 어떤것인지 잘 알수 없다. 지금까지 숱하게 느껴본 어느 환멸보다 더 큰 환멸이 그를 떠밀고있다.

눈을 든 그의 앞에 맥주홀 《도미노》가 나타났다. 화김에 마시고 싶어진 탄부들이 떼를 지어 들어간다. 창수도 들어갔다.

한꺼번에 5백명의 손님을 받을수 있는 넓은 홀안은 손님들로 끓고있었다.

창수는 타드는 목을 랭수로 추길 때처럼 연거퍼 맥주를 들이켰다. 그래도 갈증을 풀수 없었다. 쉴새없이 떠드는 잡다한 목소리들이 자욱한 담배연기속에 들려왔다. 간간이 탄부들이 주고받는 토막말들이 잡혔다.

《그 친구도 야단이야. 두고 온 안해가 살길이 없어 집을 나갔다는군. 두 계집애만 집에 남겨두고…》

《그래서 그렇게 취해있었군.》

《…》

《어느 탄광으로 갈는지 아나?》

《못 들었는걸.》

《함본에선 또 붙었다는군.》

《…》

《맥주는 집어치우고 독한걸 하세.》

《라인주로 하지.》

《…》

문득 귀에 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났다. 창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바로 뒤식탁에 조진규통역원과 두 탄부가 앉아있는데 둘중의 한사람은 트렁크를 들고 도이췰란드 각지를 돌아 인제는 고국까지 갈 거리를 다니고도 넘었다고 탄식하던 그 외팔이청년이였다.

말소리, 웃음소리, 발자국소리,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들이 함께 어울려 왕왕거리던 홀안에서 소곤소곤 주고받는 뒤좌석의 말소리가 따로 떨어져나왔다.

《전에도 말하지 않았소? 보험료가 빨리 나오자면 내 힘만으론 안된다고 말이요.》

《수석로무관님에게 말씀드렸다면서요?》

《그거야 물론이죠. 문화과 참사님한테도 걸어두었소. 사회보험료를 제대로 타내자면 진단서를 어떻게 떼느냐 하는데 달렸소. 거쳐야 할데가 한두군데가 아니오.》

《부탁합니다. 여태 보험료는 나오지 않고 페광까지 하게 되니까 정말 아뜩합니다.》

뒤좌석의 목소리들은 사회보험료를 빨리 타게 해달라는 부탁에서 보험료가 빨리 나오게 해주면 어떻게 사례를 할것인가 하는 흥정으로 넘어갔다. 조진규는 그들의 사회보험료를 타내주려고 숱한 교통비, 숙식비, 운동비를 썼노라고 생색을 내고있다.

《제잡담하고 6대4로 나눕시다. 5천마르크정도 나올듯싶다는데 6은 제가 가지고 4는 조선생 드리죠.》

한팔이 없는, 멸치를 팔러 다니던 사람의 목소리다.

《그렇게는 안되지. 생각해보오. 여기엔 수석로무관님이 끼여있고 문화과 참사님도 힘써주고계시는데 돈 타내고는 수염 내리쓸고 모른다 할수 없지 않겠소?》

《아무래도 3천마르크는 있어야겠는데…》

《운동비가 정 아까우면 직접 해보시오.》

《조선생, 오해하지 마시오. 우리들 사정을 끝까지 봐주셔야지. 말도 잘 모르는데 어디 가서 어떤 수속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우리가 아니오.》

청년이 울먹한 목소리로 매달리자 조진규는 더욱 고자세를 취한다.

《쬐쬐하게 그게 뭐요. 누구를 장돌뱅이처럼 보는지 에누리만 하려들고… 난 손을 떼겠소.》

《조선생, 용서하십쇼. 보험료도 못 타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나 말이요. 오도가도 못하고…》

《그러면 6대4요, 5대5요 하지 말고 나한테 만사를 맡기시오.》

여기까지 듣고있던 창수는 벌떡 일어나 조진규앞으로 다가갔다. 조진규는 창수의 그러쥔 주먹에 겁을 먹고 한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우려는 자세를 취하면서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창수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어도 분수가 있지, 동포가 저 몰골이 됐는데… 팔은 저분이 잃고 보험료는 자기가 타먹으려 하고… 개만도 못한 놈!》

조진규는 멱살을 잡힌채 비칠비칠 뒤로 물러섰다. 창문턱까지 밀려간 그자는 목이 죄여들어 숨쉬기를 어려워하면서 멱살 그러잡은 창수의 손을 풀려고 기를 썼다. 그러나 창수의 손은 억척같았다. 손의 힘만이 아니라 전신의 증오가 거기에 응결되여있었다.

부근식탁들에서 맥주를 마시던 남조선탄부들이 와아 밀려왔다. 이 사태가 왜 일어난지를 안 그들은 무급휴가의 울분이 조진규에 대한 증오로 변하면서 흥분해 소리소리 질렀다.

《저런 놈은 모가지를 비틀어라!》

《창밖으로 내던져라!》

누군가 창문을 열었다. 창수는 팔을 뻗쳐 조진규의 몸을 창문밖으로 밀었다. 누군가 버드럭거리는 그놈의 발을 들어올렸다. 여러 탄부의 증오를 한몸에 받은 그자는 짐짝처럼 창문밖으로 내던져졌다.

맥주홀은 단층집이였다. 그러나 현관밖의 층층대를 다섯단 올라가서 들어가는 구조여서 조진규가 떨어진 창문턱에서 길바닥까지는 길반쯤은 되고 남았다. 아무데도 다치지 않고 그저 무사했을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일어나지를 못하고 몸을 비틀면서 딩굴고있는 그를 내다보는 탄부들중에는 그가 진정으로 어디를 다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통쾌히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 조진규의 꼬락서니를 내려다보면서 창수는 통쾌감보다 뭔지 알수 없는 불만감을 맛보고있었다. 최근 며칠동안 쌓이고 쌓여왔고 오늘에는 폭발점에 다달아가던 울화가 조진규를 징벌하는 행동으로 나타났는데 내려다보며 섰노라니까 저 버러지같은 놈이나 혼내줘서 과연 무엇이 시원하냐는 생각만 자꾸 떠올랐다.

이 맥주집에도 경찰끄나불이 없을 까닭이 없었다. 경찰차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것을 보면서도 창수는 자기와 관계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미처 떠오르지 않았다.

《쳇, 벌써 경찰을 불렀어!》

옆에서 누군가 혀를 차면서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사태를 깨달았다. 그러나 량심에 찔리는바가 없었기때문에 경찰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현장에 나타난 경찰은 홀주인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후 그가 가리켜보인 창수에게로 곧장 와서 손에 쇠고랑을 채웠다. 이어 경찰은 오늘싸움으로 파괴된것의 손해배상한도를 면밀히 조사했다.

창수는 쇠고랑을 찬채 태연한 태도로 걸어나갔다. 당당한 태도라고 할수도 있었다.

나는 잘못한 일이 없다, 간악한 흡혈귀에게 응당한 징벌을 가했을뿐이다, 나를 처벌할 그런 법은 세상에 없을것이다, 이런 생각이 그로 하여금 쇠고랑을 차고도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게 했던것이다.

맥주홀을 나서서 경찰차로 걸어가던 그는 한자리에 우뚝 서버리고말았다. 호기심많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서있는 행인들사이로 걸어오는 젊은 녀자, 가슴에 꾸레미 하나를 안고 걸어오는 녀자, 기다리고 기다려온 바로 그 윤옥이를 보았던것이다.

그 순간 당당하던 그의 태도는 흐트러지고 한대 얻어맞았을 때처럼 머리가 아찔했다. 그렇게도 그립고 만나고싶던 윤옥을 이런 꼴을 하고야 만난단 말인가!

윤옥도 안고 오던 꾸레미를 땅에 떨어뜨리며 우뚝 서버렸다. 그 발밑에서 꾸레미를 쌌던 종이가 헤쳐지고 뜨개옷이 드러났다.

《이게 웬 일이예요?》

윤옥은 땅에 떨어진 뜨개옷을 밟는줄도 모르고 창수앞으로 달려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예요?》

윤옥은 같은 말을 되뇌이며 창수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걱정마오. 내 잠간 갔다올께 집에 가서 기다리오.》

당황해하고 슬퍼하는 윤옥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이런 말을 하면서 머리를 쓸어올려보려고 손을 쳐들었다. 오른손이 올라가자 왼손도 따라올라갔다. 쇠고랑이 채워있다는것이 비로소 실감있게 느껴지면서 마음이 갑자기 구슬퍼졌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기쁨도 안겨주지 못하고 이런 꼴로 그를 슬프게나 하는것이 고작이란 말인가!

그는 다시 할 말을 찾지 못하여 고개만 끄덕여보이고는 자기를 압송해갈 경찰차를 향하여 걸음을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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