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2 장

조국이여, 너는 어디 있느냐?

10

 

신경애는 천성이 쾌활하고 담찬데가 있는 처녀였다. 그런 점을 윤옥이도 좋아해서 서울에 있을 때부터 둘이는 무척 친하게 지내왔었다.

그러한 경애가 윤옥의 마음속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주려고 무등 애를 쓰는데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는데 따라 윤옥이는 점점 더 불안해져서 보기가 딱할 지경에 이르렀다.

구속되여가는 창수를 자기 눈으로 보고 오는 길이라면서 울상을 하고 찾아왔던 첫날엔 경애가 그런 일쯤은 걱정도 하지 말라, 곧 나올거라고 위로해주자 창백했던 윤옥의 얼굴은 곧 혈색이 돌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처녀들사이에 흔히 할수 있는 그런 종잡을수 없는 이야기를 하노라고 밤깊은줄을 몰랐었고 윤옥은 자리에 들자 곧 잠이 들었었다. 잠간 갔다올테니 기다리라던 창수의 말과 영태랑을 만나서 알아본 사건의 전말이며 경애의 장담이 다 한곬으로 흘러서 그를 안심시키기에 족했던것이다.

이튿날 아침 윤옥은 이번에 가기만 하면 돌아와있는 창수를 만날것으로 믿고 마음이 부풀어오르기까지 하면서 탄광으로 가는 기차를 탔었다.

그런데 밤에 맥이 빠져 돌아온 후엔 걱정이 끓어서 경애가 무슨 말을 해도 화제를 창수의 신변으로 끌고갔다. 불을 끄고 누운 다음에도 몸만 뒤채였다. 그 다음날에 탄광촌까지 갔다온 그는 그저 한숨만 쉬였다.

이러한 나날을 보내며 경애네 방에서 닷새째 있던 그날 아침에도 안가고는 견딜수 없어 윤옥은 탄광마을로 다시 찾아가기는 하면서도 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련일 찾아와서 인제는 낯익어진 방문앞에서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였다. 창수의 목소리가 들려올듯싶었던것이다. 그는 떨리는 가슴을 안고 문을 두드렸다.

방안에 들어서던 윤옥은 갑자기 뭔지 어제와는 다르다고 느꼈다. 영태랑 셋이 모두 환히 웃고있었다. 그의 가슴이 뛰였다.

《무슨 소식 있었어요?》

셋은 그냥 웃기만 했다. 그들의 시선이 가는데를 따라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쪽 방구석에 한 사내가 웃동을 벗은채 얼굴에 비누칠을 잔뜩 하고 서있었다. 창수였다.

윤옥은 반색하며 《어마나!》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물론 반갑고 기뻐서 지른 환성이였으나 거기에는 놀라고 당황해진 그의 심정이 섞여있었다.

윤옥은 눈이 우묵 꺼져들어가고 볼이 쑥 빠진 그를 오금이 저려오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서있었다.

말이 나가지 않았다. 고초가 얼마나 심했기에 며칠사이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했단 말인가!

《하찮은 일로 공연히 걱정만 끼쳤소.》

창수는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였다는듯이 말했다. 저 몰골이 되도록 고초를 겪고서도 이런 말을 하지 않을수 없는 그의 심정이 가슴에 확 안겨와 그는 간신히 들리는 소리로 말했다.

《어서 세면이나 마저 하세요.》

창수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돌아서 세면기우로 몸을 숙였다.

《아니 그것?》

윤옥은 소름이 끼치는듯 어깨를 바르르 떨며 한걸음 다가섰다. 창수잔등에 무수히 찍혀있는 꺼뭇꺼뭇한 반점들과 푸르딩딩한 상처들이 눈에 띄였던것이다. 그것이 경찰에게 악형을 당한 흔적인줄로 안 그는 자기 몸에 가해지는 아픔을 느끼면서 비명이라도 지를듯 얼굴색이 변했다.

그의 표정에서 그 심정을 짐작한 영태가 지나가는 말처럼 설명을 했다.

《우리 탄부들은 잔등이 다 그렇지. 탄을 캐다가 탄에 얻어맞은 잔등이 성을 낸거라니.》

윤옥은 그게 정말이냐 하는 얼굴로 재균과 도익의 얼굴을 바라보고 나서야 그의 말을 믿었다. 그런데 모를 일이다.

《작업복을 한벌 더 껴입으면 되잖어요? 석탄이 박히지 못하도록 말이예요.》

재균이가 어림도 없는 말이라고 허전한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두벌씩이나 껴입는다는게 다 뭡니까? 천오백메터나 내려가면 갱내가 한증탕이나 다름없어요. 모두 웃동을 벗고야 일하지요. 신바닥이 뜨끈뜨끈해오는 판이니까요.》

윤옥은 눈이 둥그래지면서 창수의 잔등을 다시 돌아보았다. 이번에 경찰서에서 겪은 고초는 횡액이라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창수가 겪어야 하는 고초가 어느 정도의것인가를 알수 있었기때문이다.

창수는 서둘러 세면을 끝내고 잔등을 감추면서 돌아섰다.

얼굴을 수건으로 대강 닦고 내의를 입어버렸다. 그제야 여유가 생겨서 윤옥에게 빙그레 웃어보이더니 탁자우에 벗어놓았던 뜨개옷을 꿰입었다.

《재서 뜬것처럼 꼭 맞군. 이렇게!》

그는 두팔을 들어올려 보였다.

여느때라면 무척 기쁘게 들렸을 이 말이 윤옥에게는 나무랍게만 들렸다. 그가 궁금해서 견디지 못해하는것은 그따위 아무래도 좋은 그런 말이 아니였다. 자기를 놀래우지 않고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저런 얼림의 말을 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가 입을 다물고 멍히 서있자 영태가 창수를 대신하여 변명했다.

《엊저녁에 돌아오더니 그길로 병원까지 만나러 갈랐고 그래쌉디더. 지가 말렸심더. 날만 밝으면 또 올낀데 안 그래도 고달플 사람이 뭐하로 가겠나고 했심더.》

윤옥이가 나무람하는것은 경찰서에서 놓여나왔으면 곧장 자기한테 와서 알려줄것이지 그런줄도 모르고 자기는 공연히 밤새껏 속을 태웠다고 생각하기때문이라고 보았던것이다. 그런데 영태의 이 말은 사실대로 한 말은 아니였다. 어제 저녁 창수는 집까지도 간신히 왔다. 병원까지 간다 안 간다 하는것은 문제로도 되지 않았었다.

《왜 그러고 서있소. 앉지 않고… 휴가를 받았다지?》

창수가 의자를 옮겨다 주며 말했다. 윤옥은 얌전히 앉으며 잦아드는 소리로 대답했다.

《네.》

《별러오다가 겨우 휴가를 받았는데 일이 그만 우습게 됐소.》

《그래도 말이예요.》

《뭘?》

《이번에 휴가받기를 잘했지 뭐예요. 나는 이런줄도 모르고있을번 하지 않았어요.》

격동되였던 윤옥의 마음이 가라앉아 창수와의 사이에 차츰 이야기가 어울려나가게 되자 권도익이 재균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그럼 우리는 나가보지.》

《그럽시다.》

재균이 먼저 일어섰다. 둘은 트렁크 하나씩을 들고 나가면서 앉아서 천천히 놀다 가라고 인사들을 했다.

이런 경우 한쌍의 젊은이들을 위해 옆의 사람들이 자리를 뜨는것이 아량이라면 남은 두사람은 게면쩍어서 공연히 낯을 붉히는것이 통례이다. 그것을 깨닫고 영태가 설명을 해주었다. 권도익과 재균은 식품행상을 하러 나갔다는것이다. 무급휴가 두달동안을 벌지 않고 지낼수는 없는 형편이여서 셋중의 하나가 멀리 네데를란드와의 국경을 넘어가서 식료품들을 받아왔으나 창수일이 걱정되여 나가지들 못하고있었다는것이다.

《나는 오늘 가까븐데를 돌가 해서 아직 안 나갔심더.》

이런 말을 하더니 조금후에는 영태도 트렁크를 들고 나갔다.

방안에 둘만 남자 윤옥이는 벼르고있었던듯 곧 물어보았다.

《창수씨도 멸치장사할 생각 아니예요?》

대답이 없다.

《그것만은 그만두세요.》

《왜 그러오?》

《…》

《구슬픈 일이야 그것뿐이라고…》

《그래도 말이예요. 어떻게 해서든지 두달이야 못 견디겠어요? 그건 걱정마세요.》

자기가 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느냐는 말이다. 그러지 않아도 윤옥이한테 그런 말을 듣게 되는 지경에 이르지나 않겠나 해서 벌써부터 겁을 먹고있던 창수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말았다. 이 이국땅에서 두달동안이나 벌이없이 지낼수는 없지만 윤옥이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러는 모양이니 어찌겠는가, 그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지도 못하면서 자존심만 상하게 만들수야 없지 않는가, 일자리를 따로 얻어보는수밖에…

《잔등을 좀 보여줘요.》

《그건 봐서 뭘 하겠소?》

《덧나서 곪기 시작한데가 있던것 같아서 그래요.》

《일없소. 걱정마오.》

그래도 윤옥은 한사코 보여달라고 했다. 창수는 하는수가 없었다. 내의와 세타를 함께 껴쥐고 머리까지 끌어올리고서 자기 무릎우로 몸을 숙였다.

윤옥은 그의 잔등을 들여다보면서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창수의 잔등에는 크고작은 석탄흔적들이 박혀있었다. 더러는 그우에 이미 피부가 덮어져서 검은빛이 희미해졌고 더러는 석탄빛이 그냥 번들거렸다.

그 하나하나의 점들, 지금은 비록 극히 작은 점으로 남은것이라 해도 거기 박히기까지 하자면 얼마나 세차게 때렸겠는가. 별처럼 많은 석탄점들이 모두 창수를 때리고 모욕하고 괴롭힌 자취인것이다. 윤옥, 자기에게는 둘도 없이 귀중한 사람을…

《일없지? 도졌던 곳도 이제는 다 나았을거요.》

윤옥은 여전히 대답이 없다. 보여달라는대로 다 보여준것으로 생각하고 창수는 내의를 내리우며 일어나려 했다. 윤옥은 내의가 내려오지 못하도록 손으로 눌렀다.

《기다려요. 잠간… 약없어요?》

윤옥은 탄부들의 비상약함을 가져다 놓고 도졌던 자리에 약을 바르면서 물어본다.

《이 퍼릇퍼릇한 자국들은 뭐예요? 이것도 석탄에 다친거겠죠?》

《그건 모기한테 물린 자국이요.》

《모기요?》

《윁남모기는 독하오. 한번 물리기만 하면 부스럼이 되거던.》

윤옥은 아무 말도 없다. 처치가 끝나기만 기다리며 그냥 엎디여있기가 답답해서 창수는 윁남이야기를 한마디 더했다.

《쟝글속을 걸어다니다 보면 군화속으로 어떻게 비집고 들어왔는지 거마리가 발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군 하지.》

윤옥은 역시 아무 말도 없다.

《그놈의 거마리 참 지독하오. 한번 피를 빨아먹기 시작하면 아무리 잡아떼려 해도 떨어지지 않거던. 끊어지면서도 떨어지지가 않지. 쟝글속이란 대개…》

잔등에 더운것이 한방울 떨어졌다. 그 순간 창수는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말았다. 윤옥의 눈물이 또 한방울 그의 잔등을 지졌다.

끝내 윤옥이를 울리고야말았구나, 이 못난 녀석아! 자신의 운명을 지고 다니듯 윁남으로, 서도이췰란드로 다닌 자욱들을 지고 다녀야 하는 내 신세가 가긍해서 울고있구나, 기쁘게 해주고싶고 기뻐하는것을 보고싶던 바로 그 윤옥이를 울릴 재주밖에 없는 못난 녀석아!

창수는 윤옥이를 달래고 위로해주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함께 끌어안고 실컷 울어보고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어제 대사관감방에서 딩굴며 흐느껴울던 일이 되살아나서 울수도 없었다.

윤옥은 약바른데다 가제를 대고 반창고를 붙였다. 그리고는 내의자락을 내리워주었다.

창수는 일어나 앉으며 윤옥을 보았다. 윤옥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없었다. 살눈섭이 젖어있을뿐이였다.

《도르트문드부근에 양로원이 있는데 간호원을 구하고있다는가봐요. 거기로 올가 해요.》

가라앉은 조용한 목소리다.

《기왕 기다리던바에는 조금 더 기다려보오. 우리들은 어느 탄광으로 가게 될는지 그것도 모르니까.》

《어디 다른데로 가겠어요? 이 루르지방 어디겠지요.》

《양로원일이 병원일보다 더 시끄럽고 고되다던데…》

《아무러면 뭐래요. 옮기고말겠어요.》

창수는 윤옥이가 무엇때문에 갑자기 이런 결심을 하는지 알고싶어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윁남 가서 죽을 고생하실 때 나는 가서 옆에 함께 있을수가 없었어요. 여기서야 뭣때문에 멀리 떨어져서 속만 태우고있겠어요?》

윤옥의 말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 얼마나 큰 감정, 얼마나 깊은 애정이 담겨있는가를 창수는 충분히 리해할수 있었다. 바로 그러한 감정, 그러한 애정이 그자신의 가슴속에도 있었기때문이다.

《그처럼 괴로움을 당하고 슬픔을 당하는줄 알면서 혼자 함부르그에 가있을수가 없어요.》

듀쎌도르프비행장에 내리던 그날에 벌써 창수는 어렴풋이나마 그것을 느꼈었다. 괴롭고 슬프기때문에 윤옥에게 창수가 필요한것이고 창수에게 윤옥이 필요한것이다.

남조선청년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픔을 함께 나누는것이 사랑으로 되였단 말인가. 왜, 무엇때문에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그런 사랑은 누릴수가 없단 말인가.

《이번에 사실은…》

창수는 말을 시작하다가 그만두었다. 고통과 슬픔을 윤옥이와 함께 나누고싶어지는 충동에 못이겨 대사관에서 겪은 일들을 죄다 말하려 했던것인데 고쳐생각해보고 그만두기로 한것이다. 남자인 자기도 감당해내기 어려운 그러한 슬픔을 녀자의 여린 심장이 능히 감당해내겠는지 그것이 걱정되였기때문이다.

《어떻게 됐어요?》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합시다.》

《지금 하면 안돼요?》

《다음에 이야기하지. 그건 그렇고, 언제 돌아가겠소?》

《글쎄요. 봐서…》

《하준혁선생도 한번 만나볼겸 갈 때는 나와 함께 가기요.》

《고마와요.》

윤옥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의 귀에는 하준혁의 이름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함부르그까지 그가 자기를 데려다 준다는 사실이 그를 기쁘게 했을뿐이다. 그러나 창수는 하준혁을 만나보고싶은 충동을 갑자기 느꼈던것이다. 말하고싶은것이 많았다. 혼자 가슴에 안고 다니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윤옥이에게 말하기에는 너무나 무서운것을 다 털어놓고싶었다. 자신이 당하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체를 알수 없는 비애에 대해서도 그에게 한번 물어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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