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3 장

비애의 바다너머

1

 

신문들의 구인란을 뒤적이는것이 일과처럼 되여버렸다. 창수는 그중에서도 특히 《빌트》지를 주의해서 읽었다. 서도이췰란드의 일반서민들이 널리 보는 신문답게 구인광고도 여러가지였기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가 해당 부문의 기능공을 구하고있고 기능이 별반 없어도 됨직한 곳이 간혹 눈에 띄는가 하면 그런데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는 탄광촌에서 통근할수 있는 일자리를 찾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그날도 아침부터 《빌트》지를 펴놓고 이런저런 구인란을 읽는것으로 창수의 일과가 시작되였는데 광고란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 한편이 실려있었다. 웬 시를 여기다 실었을가 하는 호기심에 끌려 읽어보았다.

 

인생의 황혼은 쓸쓸하여라

창밖에 락엽지면 이내 마음 서럽네

그 누가 지는해를 멈출수 있을소냐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손길도 미치지 못함이여

영생의 락원을 천당에 꾸렸도다

 

들으소서 나에게는 자우거(흡진기)가 있고

양광을 받는 발코니가 달린

2층집 사유가옥이 있나니

목욕칸도 있고 방은 세칸이노라

마당에는 두그루 보리수가 서있고

철따라 우듬지가 자라고있노니

 

그 누가 없느뇨, 이내 칠십 늙은 몸과

인생의 황혼길을 더불어 손잡고 갈

오십미만 홀아비를 나는 구하노라

 

창수는 어이없어서 쓰거운 웃음을 웃었다.

구인란의 광고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던 그의 시선은 한곳에서 멈춰섰다. 쾰른 남쪽에 있는 코부렌즈라는 도시의 한 철공소에서 잡역부 두명을 구하고있다. 그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좀 먼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겠는가, 여전히 좋은 곳을 고르고있을 처지가 못된다. 마음만 먹으면 기차로 통근할수 있을것이다. 그는 수첩에 그것을 적어넣었다. 같은 도시의 주물공장에서도 주물공을 구하고있었다. 그 주소도 겸해서 적어두었다.

가보기로 마음을 정한바에는 빨리 가야 한다. 그가 분주히 옷을 꿰입는데 한 탄부가 찾아왔다. 최근에 와서 일에는 붙어보지 못하고 무급휴가에 들어간 신입탄부였다.

그는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들고 온 보자기부터 펴놓았다. 헌 뜨개옷이며 양복따위가 나타났다. 그는 미안해하면서 말을 꺼냈다.

《이집저집 아는 탄부들을 찾아다니며 얻어먹고있지요. 그대로 기대고만 있을수가 없거든요. 모두 무급휴간데, 그래서 떠나올 때 가지고왔던 이런것들을 들고 나왔어요.》

그 정상이 딱해보였지만 창수도 누구를 동정할 형편이 못되였다. 실망하고 나가는 신입탄부의 어깨가 축 처진 뒤모습을 바라보며 창수는 후- 한숨을 쉬였다.

창수는 본행기차를 탔다. 차창밖으로 낯선 이역의 거리와 마을들이 지나갔다. 찾아가는 코부렌즈시가 가까와질수록 그의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윤옥이를 생각해서라도 오늘은 일자리를 꼭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기때문이다.

윤옥이 양로원으로 옮겨왔다면서 다녀간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가 옮겨온 도르트문드까지는 이 탄광에서 기차로 네댓정거장을 지나가야 한다. 그런데 더 먼 탄광으로 이동하게 되면 어찌겠는가, 창수가 그런 걱정을 하였더니 윤옥은 태연하였다.

《일없어요. 멀어진다 해도 함부르그처럼 멀겠어요? 그리고 여기 남조선탄부들이 도르트문드쪽으로 간다는 말도 있어요.》

그가 걱정하는건 다른 문제였다.

《요즘 뭐 하세요? 트렁크를 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지는 않으시겠지요?》

전날 창수가 함부르그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짐속에서 꽁꽁 꿍지고 종이로 싼 마르크지페 몇장이 나왔었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트렁크를 들고 나서지는 않도록 하자는 그의 갸륵한 심정의 표시였다. 그러한 윤옥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창수는 차에서 내리자 우선 함께 내린 사람들에게 길을 묻기 시작했다. 정거장에서 나온 후에도 길가는 사람들에게 자주 길을 물었다. 그러나 그쪽으로 가는 방향만이라도 그에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스무집씩 묶어서 하나의 거리로 만든 관계로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 거리이름들이 많이 있었다. 이 도시에 오래전부터 살아왔노라는 사람도 거리이름을 듣고는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그냥 가버렸다.

창수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빨리 가봐야지 그사이에도 어떻게 될지 알겠느냐고 마음은 급한데 도이췰란드의 거리는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아낼 재주가 없었다.

이리저리 헤매던 끝에 시청을 찾아갔다. 거기서도 해당 부서를 여러번 물어서야 찾아갔다. 도수높은 안경을 낀 사내가 창수에게 그곳을 찾아가는 목적을 재삼 확인한 후에야 두툼한 책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알파베트순서로 수없이 많은 거리이름들이 적혀있었다.

시청관리가 가르쳐주던대로 창수는 시변두리로 찾아갔다. 그러나 거기서도 다시 어리둥절할수밖에 없었다. 집들이 허술한 볼품 없는 그 변두리에도 이름이 각각 다른 숱한 거리들이 있었던것이다.

창수는 어느새 취직여부에 대한 걱정은 잊어버리고 철공소를 찾는데만 열중하고있었다. 거기서도 두시간가까이 헤맸다.

저만큼 철공소가 나타났을 때 그의 가슴은 이상하게 부풀어올랐다. 그처럼 힘들게 찾았으니 노력한 보람이 꼭 있을것만 같았던것이다.

창수는 철공소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의깊게 잠시 바라보았다.

철공소마당에는 구부러진 철판이며 녹쓴 철판들이 너저분하게 딩굴고있는데 한쪽에서는 용접을 하고있는가 하면 다른쪽에서는 메를 휘둘러 깡! 깡! 소리를 내며 철판을 펴고있다. 그들옆에는 오십 남짓한 도이췰란드인이 일감을 맡긴듯 한 젊은 녀자와 함께 철문의 돌쩌귀를 살펴보고있었다. 그것이 고장나 때려고 온 모양이였다.

창수가 요새 구직행각에서 알게 된바에 의하면 신문 구인란에 그런 광고를 내는 구인처는 대개가 이런 소규모의 공장들이였는데 보아하니 이 철공소는 이렇다할 기능이 별로 없는 자기로서도 할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어보였다.

그가 주인을 찾자 철문돌쩌귀를 만지고있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창수는 신문 구인란을 보고 왔다고 했다. 그러자 주인인듯 한 그 사내는 철판을 펴고있는 두 로동자를 턱으로 가리켜보이며 벌써 자리가 찼다고 했다.

등을 이쪽으로 돌리고 철판을 펴던 사내들이 그들의 말소리를 들었는지 뒤를 돌아보더니 반색을 했다. 둘이 다 같은 탄광에서 일해온 남조선탄부들이였다. 그들은 실망하고 돌아서려는 창수에게 한마디씩 말을 걸었다.

《형씨! 미안하게 됐소.》

《예까지 오셨던바에야 담배나 한대 피우고 가시죠. 변두리에 있는 거리를 찾기가 여간만 힘들지 않습니다. 피곤하실텐데 여기 앉아 쉬여서 가시지요.》

창수는 맥이 빠지고 갑자기 사지가 나른해짐을 느끼면서 그곳을 떠났다. 한낮이 기울도록 찾아헤매던 일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수첩에 적어두었던 주물공장이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힘들지 않게 찾을수 있었던것만은 다행이였다.

창수는 벽돌집 단층으로 되여있는 주물공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먼저 공장안에서 일하고있는 로동자들부터 찬찬히 살펴보았다. 남조선탄부들이 와있지나 않는가 해서였다.

창수가 만난 공장주인은 먼저 주물공으로 몇해나 일한 경험이 있는가부터 물었다. 경험은 없지만 곧 배울수 있겠다고 대답했더니 주인은 쇠물을 주형에 붓고있는 로동자를 가리키며 저 일이 보기와는 달라서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했다.

컴컴한 공장안에서 런닝그바람으로 일하는 로동자들은 전신이 땀에 젖어있었다. 한 주물공은 쇠물바가지에 담긴 쇠물을 주형에 갖다 붓고있었는데 벌겋게 단 쇠물찌가 사면으로 튀여났다. 그것이 옷을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에 가끔 떨어졌지만 주물공들은 끄떡도 않고 쇠물바가지를 비울 때까지 참고있다.

쇠물찌가 살을 지지는데 오죽하랴싶어 창수는 낯을 찡그렸다. 그러나 어찌겠는가, 먹고살자니까 참고 일하는 모양인데 나라고 못 참을게 뭐겠는가.

《나도 할수 있습니다. 견디여낼 자신이 있어요.》

드디여 결심하고 이렇게 말했으나 공장주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경험이 없는 사람은 불찌가 튀면 아무래도 놀라지요. 그러면 주형이 이지러지며 주물에 금이 가기 쉽소. 경험이 없으면 안되오.》

말은 친절했지만 그의 관심은 뻘겋게 단 쇠물이 살을 태우는 아픔에 있지 않았다. 그 아픔이 자기의 재물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데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창수는 몸도 마음도 무거워져서 거리를 걸었다. 치밀하고 정연하게 나누어놓은 거리들과 오십보정도의 간격으로 비치해둔 거리의 휴지통들과 집집마다의 문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잠겨있는 자물쇠들까지도 자기를 놀려주는것만 같았다. 낯선 남의 땅, 남의 나라에 와있다는 외로움이 심장에 잦아들었다.

다른 사람이 리용할가봐 쓰레기통에도 자물쇠를 잠가두는 서도이췰란드땅이다. 탄부로 고용해놓고도 남조선탄부들은 갱내 로동만 할수있지 갱외에서의 로동은 할수 없도록 만들어놓은것이 어느 한 광업회사의 처사가 아니라 정부의 방침으로 되고있는 서도이췰란드땅이다. 이러한 땅에서 이렇다할 기술도 없는 남조선사람들이 직업을 구한다는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 창수는 자신이 가련해보이기만 했다.

어찌다가 휴직중의 남조선탄부들도 꽤 할수 있어보이는 일자리가 생기면 그들사이에 맹렬한 경쟁이 벌어진다. 제 나라에서도 서글프던 치렬한 취직경쟁을 이국땅에 와서까지 되풀이할수밖에 없는것이다.

갑자기 시장기가 밀려왔다. 거리 도처에 붙어있는 시계들이 벌써 네시를 가리키고있다. 창수는 탄광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거리 한모퉁이에 사람들이 모여서있다. 만사가 다 시들해보여서 창수는 그쪽엔 눈도 주지 않고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구노오의 세레나데였다. 그는 무심중 돌아보았다. 젊은 남녀들과 로파들까지 섞여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서있는 한가운데 얼굴에 화장까지 한 도이췰란드젊은이가 피리를 불고있다.

한낮의 길거리에서 세레나데는 무슨 세레나데냐고 창수는 사람들뒤에 서서 들여다보았다.

피리를 분 사내는 모자를 벗어 뒤집어보이면서 피리소리를 듣고있던 사람들에게 돌렸다. 몇사람이 동전을 모자안에 던진다. 동전이 부딪치는 소리가 날 때마다 거리의 음악가는 머리를 숙여보였다. 창수가 자리를 뜨려 하자 거리의 음악가는 그에게 모자를 돌리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창수는 할수없이 동전 한잎을 던져주었다.

그 도이췰란드사내는 실직자였다. 그러나 그 실직자에게는 그래도 피리가 있었다.

창수는 자기도 실직자라는 사실을 여기 모여선 사람들이 안다면 싱거운자라고 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쓰겁게 웃었다. 진종일 누구한테서 뭇매를 맞고 웃음거리가 되여 망신만 하면서 돌아다닌것만 같았다. 그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탄광으로 돌아갈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내려 휘청거리는 다리를 끌며 걸어가던 창수는 배도 출출하고 사지에서 맥이 빠져 탄광촌이 바라보이는 언덕길에 오르자 돌을 깔고 주저앉았다.

석탄버럭산너머로 황혼이 깃들고있었다. 가까운 마을에는 여기가 남조선이 아님을 말해주면서 고풍의 교회당이 서있었다. 그의 입에서 까닭모를 한숨이 나왔다.

창수는 눈을 들어 무연한 벌판을 바라보았다. 남조선에서라면 의례히 논벌이였을것이고 벼가 자라고있어야 할 일망무제한 들판에는 도이췰란드인들이 주식으로 삼고있는 감자와 밀이 자라고있다. 농장과 농장들을 구획지어 세워놓은 방책들너머로는 사나운 맹견들과 렵총을 메고 말을 탄 사람들에 호위되여 젖소들과 양의 무리가 밀려오고있다.

이따금 탕! 총소리가 저녁공기를 찢으며 울렸다. 과수원들에 장치한 총이 발사를 한것이다. 새가 날아와 앉거나 누가 함부로 나무가지를 건드리면 저절로 발사되는 총이다.

세상은 넓고 서도이췰란드의 벌판도 가없이 넓다. 그러나 창수에게는 마음붙일데가 없었다. 마음놓고 몸둘데가 없었다.

요즘 일자리를 구하러 부근도시들을 싸다녀본 결과 서도이췰란드도 겉으로 보기에는 번드르르하지만 뒤골목과 변두리들에는 남조선에서도 많이 볼수 있던 그런 조그마한 공장들이 의외로 많고 거기서 일하는 작업조건도 남조선에서 보아온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들이 많다는것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남조선사람이 일자리를 얻기란 남조선에서나 마찬가지로 힘들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뭣 하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올랐고 여기는 남의 나라 땅이구나하는 생각이 가는 곳마다 떠올라서 외로움만 깊어지게 하는것이다.

사랑하는 청년이 외국에 와서 식품행상으로 다니는 일만 없었으면 하는 윤옥의 소원이 그래 분에 넘친것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처녀의 어설픈 수입에 매달려 목숨을 이어가게 되지만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그래 분에 넘친단 말인가? 어째서 이 자그마한 소원마저 실현하기가 이처럼 어렵단 말인가?

창수가 가슴속이 쓰리고 울적해져서 풀이 죽어 앉아있는데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어 창수!》

돌아보니 트렁크 하나씩을 든 영태와 재균이 언덕길을 올라오고있다.

그들의 얼굴을 보자 창수는 저도 모르게 성큼 일어섰다. 몸이 갑자기 가벼워진듯싶었다. 자기를 불러주는 목소리가 그지없이 정답게 들렸다. 그는 언덕길을 마주 내려갔다. 재균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좋아했다.

《오늘은 일자리가 생긴 모양이군. 얼굴만 봐도 알수 있어.》

《곧 생기겠지.》

창수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영태의 손에서 트렁크를 빼앗아 들었다.

재균이는 영태의 얼굴을 넌지시 곁눈질해가며 말을 꺼낸다.

《오늘 탄부종합병원에서 본거나 이야기해볼가?》

재균의 말이 떨어지자 영태는 공연히 당황해했다. 창수는 전에도 재균이가 하던 말을 들은바가 있어서 듣기 전부터 웃음을 띠우고 귀를 기울였다.

재균의 말에 의하면 오늘 예정했던 곳을 일찌기 다 돌고나서 돌아오던 길에 복흠에서 내렸다고 한다. 탄부종합병원에 입원하고있는 환자를 만나보고싶었던것이다. 그런데 길에서 우연히 영태를 만났다.

《어째 복흠에 너무 자주 오는것 같군.》

재균이 넌지시 묻자 영태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씰데없는 소리해쌌네. 한주일전에 오고는 오늘이 처음인거죠.》

《아무튼 복흠에 오기만 하면 윤형을 만나게 되니까.》

《거기이 또 무슨 소리고?》

전에도 영태는 신경애간호원을 만나러 종합병원에 자주 간다고 재균이한테 놀림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이날도 그러했다.

그가 누구를 만나러 왔는지 잘 알고있던 재균은 종합병원까지 오자 자기는 입원중의 환자를 만나보고 나올테니 그새 단골들이나 만나서 많이 팔라 말해두고 병원으로 들어가는데 바삐 층층대로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신경애였다. 2층에서 영태가 오기를 기다리고있다가 뛰여나오는 모양이였다.

재균은 장난기가 생겼다. 병원 현관문밖에 서서 이야기하는 두사람을 슬그머니 내다보았다. 신경애는 위생복주머니에서 뭔가 꺼내여주면서 말했다.

《이거 어제 말씀하시던거예요.》

재균은 거기까지만 보고는 입원실로 들어가 환자를 만나보고 나왔는데 그때까지도 둘이는 그 자리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돌아오던 길에 신경애간호원한테서 받은것이 뭐냐고 놀려주고 달래여 그것을 끝내 보고야말았는데 조그마한 손수건이 하나 있을뿐이더라면서 재균이 웃었다.

《허어! 이 사람 봐라, 씰데없이…》

영태는 더 쩔쩔맸다.

그렇게도 입심이 좋은 영태는 경애간호원앞에서처럼 친구들앞에서도 이런 말밖에는 더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주고받는 말소리를 묵묵히 듣고있던 창수는 답답하던 가슴이 좀 열리는듯 했다. 항상 깔끄럼한 시선을 하고 도전적으로 아래입술을 내밀고 다니던 신경애의 날렵한 모습과 영태의 투박한 모습을 나란히 세워보며 창수도 미소를 지었다. 서럽고 고달픈 이역에서 영태 한사람만이라도 좋아하는 녀인을 만나 부디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날 저녁 다음날 들고 나갈 트렁크를 챙기고있던 창수를 조용히 불러 영태가 말했다.

《내, 장가 갈라칸다.》

《경애간호원한테?》

《하모. 처니가 괜찮고 영규도 좋아할끼다. 니 생각은 어뚜노?》

《언제쯤 하겠어?》

《내달에 할란다. 경애도 그러자고 했다. 쐬뿔은 단김에 뽑아뿌려야 한다.》

《경애양은 훌륭한 주부가 될게다.》

《뭐 이 사람, 그기이사 지내봐야 알끼이지만… 그런 처니도 그리 흔치 않을끼다.》

《마련을 해야겠는걸. 내달이 곧인데…》

《아무리 없다 케도 남의 나라에서 밤잔치는 할수 없을끼이고…》

《념려말게, 우리가 있지 않는가.》

창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영태를 도와줄것을 혼자 생각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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