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3 장

비애의 바다너머

2

 

윤옥이 일하고있는 양로원의 프리츠간호장은 시인 괴테의 숭배자였다. 그는 나이 마흔여덟살이라 했는데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였으며 항상 얼굴에서 술내가 나는 코삐뚤이의 키큰 사나이였다.

프리츠는 자기가 숭배한다는 시인의 저서에 나오는 녀주인공들의 이름을 남조선간호원들에게 붙여주고있었는데 윤옥이보다 먼저 온 혜숙이라는 처녀에게는 《롯테》, 옥경은 《그레트휀》의 이름을 달아주었다. 그것이 또 그의 자랑으로 되고있었다.

윤옥에게 혜숙이 귀띔해준데 의하면 프리츠간호장은 말끝마다 괴테를 숭배하며 그의 책은 안 본것이 없다고 자랑하는데 《젊은 웨르테르의 번민》에 나오는 녀주인공의 이름은 알지만 그로 해서 유서까지 남기고 자살한 남자가 누구인지 모르더라고 했다. 그러니 《그레트휀》이라는 녀자가 나온다는, 그가 애독한다고 뽐내는 《파우스트》라는 책을 프리츠가 보았을리 만무하고 그것도 누구에게 얻어들은것일거라고 혜숙은 입을 비쭉거렸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남조선간호원은 처음에 이곳 양로원으로 배치되여왔을 때 도이췰란드음식이 당기지 않아 고생하고있었는데 식사를 안하면 프리츠간호장이 다짜고짜 주먹으로 구타하며 우격다짐으로 먹이더라고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프리츠간호장의 감독밑에 윤옥이 맡아보는 두개의 방안에는 녀자양로생들이 들어있었다. 윤옥의 간호를 받는 로파들은 저마다 자기의 침대밑에 낡은 상자들과 고물딱지들을 즐비하게 걷어넣고있어서 이쪽 침대로부터 저쪽 침대쪽으로 발길을 옮기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양로원에 들어오면서 자기의 마지막 재산들을 옮겨와 그렇게 침대밑에 간수하고있었는데 한가한 나머지 새벽일찍 눈을 뜨면 짐짝들을 열어보고는 하나하나 안에 든것을 꺼내 침대우에 널어놓는것이 일이였다.

늙은이들의 시중을 드는것은 처음이 아닌데 그들을 간호하는 일이란 참으로 어지럽고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간호원대기실은 전에 그가 있어본 함부르그의 병원과 다른것이 없었으나 이곳 양로원에서는 늙은 환자들이 심심하면 호출종을 누르기때문에 전보다 더 마음이 급해지고 더 빨리 환자곁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그럴 때면 고물상자며 빈 맥주통들을 겨우 건너뛰다가 침대다리에 비끄러맨 후라이스판이나 우산나부랭이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얼굴을 붉히며 일어나 환자들의 시중을 들어주고 대기실로 돌아가는 윤옥은 마치 창수가 가까운데서 엿보고있는것처럼 여겨져 저도 몰래 시선이 창밖으로 가군 했다. 처음에는 창수가 있는 루르지방으로 온것이 기쁘기만 했었는데 날이 갈수록 자기가 일하고있는 험한 모습을 혹시 전번처럼 불시에 찾아온 그가 볼세라 하루에도 몇번이나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는 윤옥이였다.

창수는 아직 그가 있는 양로원가까이 있는 탄광으로 오지 않고있었지만 그가 이쪽으로 올것이 거의 확실해지고 간호원들사이에서 그런 소문이 돌 때마다 그의 마음은 더욱 설레였다.

저녁 9시에 하루일을 끝내고 3층대기실에 혼자 앉아있는데 호출종이 울렸다. 간호장이 부르는 신호였다.

무슨 용무로 부르는가 해서 서너방 건너편에 있는 프리츠의 방에 들어서자 서랍속에 넣어두고있는 빵을 안주삼아 라인주(술)를 마시고있던 간호장이 눈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안겔리까, 래일부터는 남성수용실에서 일해야겠다. 도로테와 교대해서…》

도로테란 인디아에서 온 간호원인데 윤옥과 혜숙이와 함께 한방에서 지내는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말이 없는 처녀였다. 윤옥이 무어라고 대꾸를 하려 하자 빵을 뜯어 입에 넣던 프리츠는 손을 저었다. 나가라는 신호였다. 그의 성미를 알고있는 윤옥은 한마디 말도 해보지 못하고 그의 방을 나왔다.

녀자양로생이나 남자양로생이나 그네들의 시중을 들어주는데는 별반 차이가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녀자병실쪽이 나은것 같아 그냥 눌러있고싶었지만 할수 없는 일이였다.

윤옥은 자기가 맡은 녀자양로생실에 잠간 들려 래일부터는 남자양로생들을 돌보게 되였다고 인사를 했다. 평소에 그의 친절한 간호를 고맙게 여겨오던 로파들은 그와 헤여지는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튿날부터 윤옥은 남자병실로 옮겨가게 되였다.

남자양로생들이 있는 병실의 규모와 수용인원은 녀성들과 비슷했다. 그들도 역시 자기의 침대밑에 고물들을 걷어넣고있었는데 일광욕을 하기 위해 그들이 방을 비우고 나가면 마치 어느 고물상의 창고를 련상시켰다. 녀자들과는 달리 남자양로생들의 재산가운데는 박차가 달린 물날은 장화들과 군모 그리고 긴칼도 있었다. 그런것을 소중히 거두고있는 늙은 사나이들은 그것을 상자나 트렁크속에 넣어두는것이 아니라 잘 보이는 자리에 걸어두고있었다. 그들중에는 심심하면 훈장이 달린 낡은 군복들을 받쳐들고 침대에 앉아 손질을 하고있는 사나이들도 있었다.

코삐뚤이 프리츠간호장을 뒤따라 그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선 윤옥은 간호장의 소개에 이어 인사를 했다.

침대우에 드러눕거나 혹은 낡은 군복이며 군화들에 솔질을 하고있던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윤옥에게 쏠렸다. 그중 구두를 닦고있던 번대머리사나이가 힐끗 윤옥이를 치떠보더니 옆침대에 드러누워 그의 얼굴을 지켜보고있던 늙은 사나이에게 눈을 찡긋했다. 상대방은 잠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이며 머리를 끄덕이더니 다시 윤옥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성근 백발과 코밑수염을 염색한 아직도 걸어갈 때면 빳빳이 허리를 펴고 다니는 륙십이 훨씬 넘어보이는 사나이였다.

윤옥은 그들의 침대를 고쳐주게 되였을 때 은연중 무섬증이 들었다. 그가 방안에 들어섰을 때 다른 사나이들은 몇마디씩 말을 건늬기도 하고 저들끼리 쑤군거리기도 했는데 그 두 사나이는 인사도 받을줄 몰랐다. 더우기 침대에 비스듬히 몸을 눕힌채 묵묵히 그를 지켜보고만 있는 머리를 염색한 사나이가 그러했다. 윤옥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시선이 계속 따라오고있었다.

그가 다른 양로생의 침대를 정돈하고 허리를 펴자 늙은 사나이의 시선이 또 그쪽으로 따라오고있었다. 그것을 피하느라고 반대쪽 침대들을 고쳐주고 청소를 한 후 돌아서려 하는데 역시 그의 시선이 윤옥을 지켜보고있었다. 그가 반대쪽으로 갔을 때 그 사나이도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있는것이였다. 윤옥을 쫓고있는 그 시선은 깜박거리지도 않았다.

불쾌하기도 하고 무섬증이 나서 대강 일을 거두고 나오려는데 그때까지 입을 봉하고있던 그 늙은 사나이가 윤옥을 불렀다.

《쉬베스타!(간호원!)》

그가 다가가자 한쪽손을 내보였다. 손톱을 다스려달라는것이였다. 그것을 끝내자 다른 손을 내보였다.

윤옥이 그의 곁을 떠나려는데 이번에는 두팔을 뻗쳐보였다. 잡아일으켜달라는것이였다. 그의 얼굴이 까매지는데 옆침대에서 훈패들을 손질하고있던 번대머리사나이가 어서 일으켜주라고 턱질을 했다.

윤옥은 할수없이 그에게 손을 뻗쳤다. 줌안에 든 그의 손을 힘있게 잡고 일어나며 그 사나이는 고맙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척추카리에스환자인가 했더니 그렇지도 않았다.

간호원대기실로 돌아온 윤옥의 잔등에는 진땀이 내배여있었다. 그는 자기를 뒤쫓아오는 깜박일줄 모르는 늙은 사나이의 재빛눈을 그냥 등뒤로 느끼고있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본 인디아간호원이 그 까닭을 물었다. 윤옥은 머리를 저어보일뿐이였다.

혜숙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혜숙의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그 늙은 사나이는 프리츠간호장의 옛 상관인데 히틀러시절에 소좌인가 중좌를 지낸 군인출신이고 전에 프리츠가 이야기하는것을 들으면 쏘도전쟁때 모스크바근교에까지 갔다온자라 했다. 이름은 옷토라고 부른다고 했다.

간호원대기실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있는데 호출종이 울렸다.

심한 류마치스를 앓아 운신을 못하는 양로생 하나가 자기를 일으켜달라고 부르고있었다. 윤옥이 그를 간호해준 후 침대아래 널린 고물들때문에 자기 침대 있는데로 갈수 없으니 길을 틔워달라는 늙은이의 청을 들어주고있는데 서너침대 건너쪽에서 옷토와 그때까지도 군복저고리를 손질하고있던 사나이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총통의 오유가 아니라 게링그원수의 처음이자 마지막 실책이였지.》

옷토의 석쉼한 목소리에 이어 번대머리사나이의 굵은 저음이 울려왔다.

《아니지. 그걸 소각 못한 책임이야 히믈러의 책임으로 봐야지.》

그들은 나치스도이췰란드가 항복하기 직전에 미처 소각하지 못하고 압수된 당시 도이췰란드정부와 륙해군, 외무성, 나치스당, 히믈러의 비밀경찰들의 기밀문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있었다.

《헬더륙군참모총장은 무슨 필요가 있어서 그따위 일기를 매일매일 기록해두었다가 우리 도이췰란드제국의 위신을 떨어뜨렸는가 말이다. 할 일이 없으면 술이나 마실게지.》

《헬더장군뿐인가. 괴벨스도, 최고참모본부 요들작전부장도 그따위 놀음을 하다가 죄다 그것들을 압수당했지. 생각할수록 분한 일이야.》

옷토의 목소리가 끊어지더니 가벼운 한숨소리가 났다.

《그때 자네는 슈로스홀테에 있었던가?》

《패전하던 날 말이지?》

《그걸 묻고있어.》

《거기서 복무하고있었네.》

《그 수용소에는 로씨야포로들이 6만명인가 있었지.》

《그랬어. 프랑스메뚜기들도 거기 수용되여있었고…》

《그 모래사장에 있던 바라크들은 다 어떻게 됐나? 많기도 하더니…》

《지금도 그대로 있어.》

《누가 사는가?》

《양로원으로 쓰고있어. 쓰고사는 주인만 달라진거야.》

《몇급양로원인가?》

《그건 물어보지 못했는걸.》

두 늙은 사나이는 대화를 중단한듯 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옷토의 석쉼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슈로스홀테에서 파도본과 빌레펠트중 어느쪽이 더 가까운가?》

《파도본일걸. 아니지, 비슷비슷할거야. 그건 왜 묻는가?》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그래…》

다시 잠잠해졌다.

일은 이쪽에서 하면서도 온 신경을 그쪽에 쏟고있는 윤옥이 문득 고개를 들자 침대에 드러누운 옷토가 불렀다.

《쉬베스타!》

그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옷토는 한쪽팔을 내밀었다. 잡아일으켜 달라는것이였다.

그때 마침 반대쪽 침대에 있던 환자 하나가 침대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윤옥은 그것을 기회로 그쪽으로 달려가 허우적거리는 늙은 사나이를 가까스로 침대우에 올려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기실로 달려갔다. 그의 이마며 코마루가 흠뻑 땀에 젖어있었다.

이윽고 낮 휴식시간이 되였다.

윤옥이 잠시 바람을 쏘이려고 정문밖으로 나서는데 양로원게시판앞에 붙어서있는 양로생들속에 끼인 옷토와 번대머리사나이가 보였다. 서도이췰란드의 여러 병원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 양로원게시판에도 남조선대사관에서 내붙이는 선전물들이 때때로 나타나군 했는데 새달에 나붙은것은 외자도입을 유치하는 사진들이였다.

아침에 윤옥이 본 《약진하는 한국》이라는 그 사진들에는 남조선에 직접 투자를 하면 어떤 유리한 점들이 있는가를 사진과 도표를 곁들여 설명하고있었다. 거기에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눅다는 로력비와 전력값, 물값 등이 밝혀져있었고 남조선에 투자를 하면 5년간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설명까지 붙어있었다. 그리고 《로동쟁의 없는 경영보장》이라는 표제가 붙은 한 사진에서는 미국, 일본, 서도이췰란드 등 각국 자본가들이 세운 공장들을 소개하고있었다.

윤옥은 처음에 그런 사진들을 보았을 때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언젠가 함부르그의 병원게시판에 나붙어있었던 《한국의 비참상》이란 사진을 보았을 때는 직접 그것이 자기와 관련되는것으로 알았었는데 남조선의 값눅은 로동력이며 전력값, 물값 등은 자기와 별로 관계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저 스쳐지나갔던것이다.

그 게시판을 들여다보고있던 옷토가 뒤에서 나는 발자국소리에 돌아다보고는 윤옥을 발견하자 게시판의 사진들과 윤옥이쪽을 손가락질하며 번대머리사나이와 무어라고 지껄이고있었다.

얼른 고개를 되돌린 윤옥의 온몸에 전류처럼 흘러가는것이 있었다.

그가 깊이 생각하지 못한 그 사진들과 자기를 번갈아 손가락질하면서 히히덕거리는 옷토의 모습은 게시판의 선전물들이 가지는 수치스러운 의미를 번개같이 깨닫게 하였다.

저렇게 사람도 전기값도 물값도 땅값도 눅으니 어서 자본을 투자하라고 부르고있는 광고사진이 눅거리로 팔려온 자기들의 신세와 뗄수없는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것이였다.

양로원밖을 나온 윤옥은 옷토와 도이췰란드양로생들이 그냥 자기를 손가락질하고있는듯 해서 급히 길을 꺾어 보리수나무며 가문비나무가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발밑에서 사라구며 냉이, 달래가 캐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자라 쇠고있었다. 고국의 들판에서 정든것들이였다. 그는 꽃이 달린 사라구를 뿌리채 캐여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보고있었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나라에 와있다는 느낌이 새삼 깊어왔다. 만약에 창수가 없다면 어떻게 자기가 이 고된 나날을 이겨낼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혹시 자기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하는 근심과 그가 가까이 있지 않으면 순간도 견뎌낼수 없겠다는 서로 엇갈리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오후 일이 시작될무렵 간호원대기실에 들어서던 그는 프리츠간호장이 데리고 온 한 간호원을 보고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게 되였다고 프리츠가 소개하는 그 간호원은 틀림없는 손보금이였다.

《아주머니?! …》

《네가 여기 있었구나.》

그에게 달려간 윤옥은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 다만 가슴만 뛰였다.

윤옥은 보금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얼마동안 흐느껴울고있었다. 그러나 손보금은 무표정한 얼굴이였다. 보금의 얼굴에 나있는 멍자리들이 그를 더욱 놀라게 하였다.

《그새 어디 계셨어요?》

《요제프병원에 있었다.》

요제프병원은 거기서 약 20리밖에 있는 정신병원이다.

호출종이 울려 윤옥은 더 이야기를 나눌수 없었다.

그날 저녁 윤옥은 자기가 있는 3층기숙사 방의 바로 맞은편에 있게된 보금의 방을 찾아갔다.

윤옥은 그가 이끄는대로 밖으로 나가 양로원뜨락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네 총각이 이쪽 탄광으로 온다지?》

《그건 어떻게 아세요?》

《여기 있는 네 친구들한테서 들었다. … 정자는 잘 있는지 모르겠다.》

윤옥이 최근에 정자로부터 온 편지이야기를 하자 그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윤옥은 보금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함부르그에서 같은 방에서 지낸 일이 있는 그와는 전혀 달라진 딴 녀자를 대하고있는듯싶었다.

두 녀인은 말이 자주 끊어졌다. 보금은 조용히 마치 속죄나 하듯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죽자구 마음먹었었지. 그러다가 고쳐 생각했어. 그냥 죽을수는 없으니까. … 살자니 그게 또 조련치 않아. 나도 정자처럼 매일같이 미친것들한테 얻어맞아가며 살았었다. 겨우 빠져나왔다. 그랬더니 네가 여기 있었구나.》

그는 쓸쓸히 웃었다. 그전에는 남아있던 얼굴의 부드러운 빛을 찾아볼수 없었다.

나이보다 민첩하던 그의 동작도 볼수 없었다.

흐려진 보금의 두눈가엔 잔주름이 그물을 치고있었으며 일매지게 다물려있던 입술에도 주름이 가고있었다.

《나는 죽지도 못하는 산송장이다.》

그는 한참이나 기침을 깇었다. 윤옥은 그가 페를 앓고있음을 알았다.

《팔려온 몸이 죽지 않고 살자 했더니 이 꼴이 되고말았지. …》

보금은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뇌였다.

《나는 자식들의 얼굴을 다시는 대할수 없는 몸이다.》

보금의 독백은 윤옥에게 형언할수 없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네 총각을 자주 만나겠지?》

《네, 가끔…》

《자주 만나도록 해라. 너는 깨끗이 살아야 한다. … 너는 나처럼 되여서는 안돼.》

《…》

《너와 함께 일하는 애들은 어떤 애들이냐?》

윤옥이가 간호원들의 이름을 꼽아가며 이야기해준 후 간호장이며 양로원관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건 나도 알고있다.》

보금은 더 말을 시키지 않았다.

윤옥은 하준혁부처에 대한 소식도 알렸다. 장숙희며 수석로무관이며 백은덕간호원의 이름도 나왔다. 손보금은 그저 고개만 끄덕여보일뿐이였다.

윤옥이가 경애가 곧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에야 보금은 상대가 어떤 사람이며 언제 하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것을 대주고 영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주머니도 그날엔 저하고 같이 가세요.》

윤옥이가 권해도 보금은 머리를 흔들뿐이였다.

《그건 그때 가서 보자. … 나는 그런 자리에 나갈 자격도 없는 녀자다.》

보금은 의자에서 일어서며 함부르그에 있을 때처럼 도이췰란드놈들을 경계하라고 주의를 주고 몸조심해야 한다고 거듭 타일렀다.

그와 헤여져 방으로 돌아온 윤옥은 잠이 오지 않았다.

보금에 대한 동정과 그의 전신에서 풍기던 그 어떤 불안하고 두려운것이 자꾸만 가슴에 실려왔다. 그럴수록 창수가 도착할 날이 더 안타깝게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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