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3 장

비애의 바다너머

3

 

조촐한 결혼축하연은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무르익어갔다.

창수는 신랑신부의 행복을 위해 축배를 들고 영태에게 잔을 넘겼다. 영태는 그에게 약간 머리를 숙여보이며 그 잔을 단숨에 비우고말았다.

신부보다 약간 나앉아있는 영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황량한 고국산하에 내리던 폭양과 이역 서도이췰란드의 탄광지구에 자욱히 날고있는 탄가루와 돌가루 그리고 몸을 삶는 지열이 아울러 비껴있었다.

창수는 영태의 소박하고 슬기로운 정신이 잔잔히 물결치고있는 세파에 그슬린 얼굴과 거쿨진 손이며 든든한 어깨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신부와 나란히 앉아있는 그는 백년가약을 맺은 안해를 그 어떤 풍랑에도 보호해줄것을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있는듯 했다.

창수와 함께 이날의 잔치를 위해 그새 동분서주하던 윤옥도 그 자리에 있었다.

윤옥은 친구의 결혼을 충심으로 축하해주면서 시종 미소를 머금고 경애의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이날 신경애의 아릿다운 모습은 평소에 그를 잘 알고있는 윤옥이마저 경탄케 했다.

윤옥은 경애의 얼굴과 의상을 홀린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부엌으로 되돌아가 손님대접에 바빴다. 그러다가 방안에서 터지는 웃음소리가 날 때면 그쪽으로 얼굴을 내밀고 함께 웃었다.

이윽고 재균이 신랑신부의 노래를 듣자고 했다. 결혼날에는 의례히 있는 일이라서 모두 박수를 쳤다. 부엌에서 일하던 윤옥도 백은덕도 행주치마에 손을 씻으며 나왔다.

경애는 영태가 눈짓하는대로 먼저 노래를 불렀다. 《들장미》였다.

그의 입을 통해 불리운 《들장미》는 사람들에게 비상한 감동을 주었다.

그가 부른 노래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영태의 랑랑한 노래소리가 울려퍼졌다.

 

십오야 밝은 달이 님 없으면

단장에 상사로 눈물이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아리랑 얼씨구 노다 가세

 

심산금곡 깊은 곳에

오작이 한쌍이 입에 물고 논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아리랑 얼씨구 노다 가세

 

영태가 길게 뽑는 고국의 민요는 모인 손님들의 어깨가 들썩거리게 했다. 영태와 같은 수평갱에서 일하던 탄부들이 그 노래를 받으면 재균과 도익이 다시 받아넘겼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있었으나 눈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히고있었다. 정다운 고국의 민요는 그들이 자라난 대숲 우거진 마을과 늙은 버드나무가 서있는 정든 벌판을 회상케 한것이였다.

이국땅의 탄가루에 쩌든 얼굴을 들고서 노래가락을 넘길 때마다 눈물을 떨구는 친구들을 본 창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태의 결혼식에서 눈물을 보는것이 가슴아팠던것이다.

그는 친구들의 노래에 맞추어 더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머리우에 뽑아든 그의 팔이 번갈아 놀고 그의 다리가 장단을 맞추며 오르내렸다.

하나둘 그를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돌아가며 춤을 추었다.

구슬픈 노래가락에 맞추어 마침내 거기 있던 탄부들이 모두 일어나 춤판이 벌어졌다.

한바탕 탄부들의 춤이 끝났을 때였다. 그때까지 그 광경을 홀린듯이 보고있던 백은덕간호원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독실한 신자라고 들은 그가 과연 어떤 노래나 춤을 벌릴가 해서였다.

백은덕이 일어났을 때 가장 기뻐한것은 창수였다. 그는 친구의 잔치날에 서려있던 슬픔의 그림자가 이제는 사라졌다고 들떠있었다.

그가 선참으로 박수를 치자 모두다 백은덕의 노래를 듣겠다고 박수를 쳤다. 무슨 노래를 할가 해서 호기심도 났다.

백은덕간호원은 양과 같이 생긴 온순한 눈을 내리깔더니 두손을 앞으로 모두어쥐였다.

 

제비 제비 저 제비야 강남갔던 저 제비야 너희들은 나는듯이

재고 빠른 네 날개로 여기저기 돌아다녀 먼데까지 봤을테니

우리 엄마 찾아다오 이 가락지 너 줄테니 우리 엄마 찾아다오

 

이건 우리 어머니가 그때그때 날 껴안고 손가락에 끼워주며

이제 많이 자라거든 날 본듯이 끼이라고 주고 가신 이 가락지

이 가락지 너 줄테니 건너마을 장사집에 가져가서 팔아다가

그 돈으로 로자삼아 여기저기 다니다가 우리 엄마 만나거든

엄마 엄마 찾는다고 어서어서 전해다오

우리 엄마 날과 함께 등잔밑에 마주앉아 바느질도 배워주고

이야기도 들려주고 널도 뛰고 그네 뛰고 베도 짜고 그러자고

우리 엄마 만나거든 부디부디 전해다오

 

백은덕간호원은 마침 남자들이 민요들을 부르고 춤을 추며 결혼잔치를 축하하는것을 보고 처녀시절에 자기가 동무들과 함께 익힌 《사모가》가 생각나서 잔치날의 흥에 끌려 노래를 부른것이다.

경애는 자기가 따르는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의 입에서 찬송가밖에 들어본적이 없었기에 호기심이 나서 귀를 기울이고있었는데 백은덕이 뜻밖에 이런 노래를 하기에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우리 언니가 저런 노래도 알고있구나 하고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는데 차츰 그 노래에 담긴 사연이 경애의 가슴을 쥐여짜기 시작했다.

자기의 결혼식에 꼭 오라고 친구들을 청하기도 하면서 들떠있던 그의 마음속깊이 감추고있은 부모형제들에 대한 생각이 물결처럼 밀려온것이였다. 백은덕의 엄마를 찾는 노래를 듣고있느라니 죽은 어머니생각이 북받쳐오르고 자기의 결혼날에 한사람도 볼수 없는 살붙이들이 못견디게 그리웠다. 다소곳이 다시 이마를 숙인 경애의 두볼을 타고 눈물방울이 아롱지기 시작했다.

노래를 끝내고 얼굴을 붉히며 윤옥이곁에 도로 앉았던 백은덕은 울고있는 경애를 보자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는 방안의 분위기에 끌려 처녀때 익힌 그 노래를 하면서도 노래속에 담겨진 구슬픈 내용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돌리지 못한것을 후회하고있었다.

경애의 울음소리가 높아가자 윤옥이 따라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떨구었다.

노래를 부른 백은덕이 경애와 윤옥이의 울음소리가 높아지자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외면을 했다. 그의 얼굴에도 눈물이 흘렀다.

오늘만은 슬픔을 다치지 말자고 무진 애를 쓰던 창수는 단장의 비애를 씹으면서 손님들이 헤쳐간 후에도 맨 나중까지 윤옥과 함께 앉아있었다.

창수가 새 탄광으로 옮겨가게 된것은 영태의 결혼식이 있은지 보름만에 있은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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