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3 장

비애의 바다너머

4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까마득 솟은 석탄산과 울묵줄묵 주름잡힌 수평갱들의 탄층을 씻어내며 드넓은 운동장에 내리꽂히고있었다. 꺼멓게 튀여오르는 비방울을 피해가며 트렁크와 배낭들을 들고 진 남조선탄부들이 귀를 세우고있는데 번호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되였다.

다른 탄광으로 가게 된 그들은 점호를 받고있었다.

《2750번!》

《네!》

《2751번!》

《네!》

《2752번!》

수석로무관은 번호를 불러도 대답이 없자 손에 든 탄부명부에 박고있던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비옷자락이 바람에 날렸다.

잠시 웅성거리던 탄부들속에서 대답이 왔다.

《그 사람은 휴가기간에 잘못됐어요.》

수석로무관은 눈섭을 찌프리다가 무급휴가기간에 자살을 한 한 《석사탄부》가 생각난듯 명부에서 그 번호를 그어버리고 다음 번호로 넘어갔다.

번호를 불리운 탄부들은 번호순서대로 50명씩 줄을 지었다.

《2975번!》

두번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자 수석로무관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영태가 다급히 《예!》하고 대답했다.

《이 사람, 뭘 하고있노? 니 번호 불렀다.》

그때까지 수석로무관의 비옷자락이 바람에 날리고있는것을 멍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창수는 영태의 주의를 듣고서야 자기를 대신하여 그가 대답한것을 알았다. 뒤이어 영태와 도익, 재균 등의 고유번호가 불리우고 그들도 50명조를 무어 줄지어 섰다.

창수는 다른 탄광으로 옮겨가기에 앞서 대사관에서 나온 관리가 탄부들의 고유번호를 부르고있을 때 일찌기 그가 체험한 《국군》살이에서 군번을 찍던 일을 회상하고있었던것이다.

그때와 다름없이 서도이췰란드 탄부로 온 그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탄광에서 매겨준 그의 고유번호인 2975번-이것이 그의 얼굴이였다. 2976번, 2990번, 2998번 등등은 영태와 도익 그리고 재균의 얼굴이였다. 탄광의 출근카드에도 탈의실에도, 기숙사의 관리인 장부에도 그들이 든 방 문턱에도 그 번호들이 붙어있었으며 서도이췰란드의 탄광국, 병원, 동회, 경찰서, 세무서 등에서도 그 번호로 통했다. 사고로 인해 죽거나 자살해죽으면 그 고유번호들은 그것이 속한 탄부진이 만기후 귀국할 때까지 비여있었다. 그대신 그 번호들은 이곳 장의사에 이관되여 상두군들이 매장의뢰인이 내는 돈액수에 따라 등급별로 자리를 골라 묻어주는 그 매장수 의뢰날자와 함께 매장대장에 기록되였다가 때가 지나면 소각되였다. 이름이 없는 인생들이였다.

수석로무관은 고유번호들을 다 불렀다. 남조선탄부들은 고국에서 가져온 옷가지들과 마늘이며 고추가루, 미역오라기 등이 든 짐들을 안고 지고 비내리는 탄광촌에서 꾸역꾸역 밀려나기 시작했다.

일행과 함께 창수는 고속도로로 빠지는 뻐스정류소를 향해 나갔다. 낯익은 버럭산들, 숨을 죽인 운반탑, 일요일이면 잠도 못 자게 울어대던 교회당의 종루와 툭하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을러대던 도이췰란드의 주부들이 내다보고있는 둔중한 창문들이 지나갔다.

대렬은 누가 명령한것도 아닌데 말소리를 내지 않고 저벅저벅 움직이고있었다. 새로운 낯선 탄광으로 가는 불안감과 철새처럼 먹을데를 찾아가야 하는 떠돌이신세가 한스러워 누구도 먼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고국에서 보내오는 편지들을 전해주던 우체부들이 제복을 입고 나타나던 언덕길이 나지고 이딸리아진달래와 개나리가 피여있는 나지막한 야산들을 지나자 함초롬히 비를 맞으며 참새와 까치들이 날개를 접고 앉아있는 뽀뿌라나무며 봇나무들이 바라보였다. 남조선에서 보던것과는 좀 큰 참새와 까치들은 사철 비가 내리는 풍토에서 살아서 그런지 비를 맞아도 아무렇지 않는 모양이였다.

탄부들의 발자국들이 어지러이 찍힌 길바닥에 굵게 차바퀴자리를 내며 수석로무관이 탄 대사관 무번호차가 뒤따라왔다. 뻐스정류소가 나타났다.

《세상에! 저 사람들이 큰일이구마.》

다른 탄부들과는 달리 자기들이 벗어난 탄광촌에는 눈 한번 돌리지 않던 영태가 중얼거렸다. 그는 멜빵으로 식품트렁크를 어깨에 걸친 팔없는 청년과 겨드랑이지팽이로 철석철석 물을 튕기며 따라오고있는 불구자가 된 탄부들에게 눈을 주고있었다. 그들은 다른 탄광으로 가게된 남조선탄부들의 맨 뒤줄에서 저들끼리 렬을 지어 따라오고있었다. 기를 쓰고 따라오는 그들이 멘 트렁크들도 축축히 비에 젖어있다. 한참후 그들은 마지막으로 정류소에 닿았다.

창수의 시선을 받은 외팔이청년이 알은체를 했다. 사회보험료가 아직 나오지 않은듯싶었다.

창수는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있는지도 모르는 새 고장으로 가고있는 자기들의 우울한 처지를 더한층 두드러지게 강조해주고있는듯 한 그들을 더는 눈을 뜨고 바라볼수 없었다.

다른 탄부들도 그와 같은 심정인듯 될수록 그들쪽을 외면하고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들속에는 사회보험료에 대한 이야기며 휴가기간에 대사관을 찾아가 귀국시켜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후 자살한 탄부의 이야기들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보험료가 왜 그렇게 빨리 안 나올가?》

창수가 눈길을 들며 중얼거리자 《빨리 나오면 부상자가 더 많이 난다는거야. 누가 그러더군.》하며 재균이 어디서 듣고 온 말을 했다.

《보험료 바라고 지 손목 짜를 놈이 어디 있을끼라고 그런 숭악한 소리를 돌리쌌노.》

창수는 두 친구의 대화를 듣고있기가 언짢아 화제를 돌렸다.

《자네 부인은 출근했었지?》

《하모, 이자 가는데도 괜찮다. 기차로 복흠까지 30분 길이라니께 탄광에서 한시간이문 통근할끼다.》

영태는 경애가 이쪽으로 두번 걸음을 안해도 되도록 집안의 짐들을 몽땅 거두어가면서 새 탄광촌에 가서 살림할 집을 얻기만 바라고있었다.

영태의 짐을 나누어 트렁크를 하나 더 들고 서있던 창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영태부부가 살림할 방이 근심되였다.

《방을 하나 빨리 얻게 되여야 하겠는데…》

그의 말에 영태는 《솥 떼놓고 3년이사 가겠나?》 하면서도 이번 걸음이 서먹해서 입을 다물고말았다.

이윽고 대형뻐스들이 꺼멓게 먹물처럼 우러나온 흙탕물을 가르며 줄지어 다가왔다. 탄부들은 자기의 번호에 따라 배정된 차에 올랐다. 차안에서 인원조사가 있은 후 뻐스는 떠났다.

차창밖으로 뿌옇게 흘러가던 들판의 한끝이 들리면서 멀리 지평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오는 모양이였다.

울창한 숲속에서 비를 긋고있던 양떼가 길차게 자란 목초지대를 흘러가고있는데 길모퉁이를 돌자 수십정보나 됨직한 넓은 면적에 각종 색갈의 다리아를 심은 포전들이 펼쳐졌다. 그것이 사라지면 다시 무연한 벌판과 교회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의 울긋불긋한 지붕을 한 집들이 멀리 혹은 가까이 보여오고 우뚝 솟은 공장굴뚝들이 지평선끝에서 나타나군 했다.

창수는 처음에 서도이췰란드땅에 내려 탄광으로 가던 뻐스에서 보던때와는 다른 눈으로 그 광경들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때는 그래도 이역풍경을 접하는 약간의 호기심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호기심을 대신하여 감당하기 힘겨운 허탈증과 혐오감이 그의 마음속에 자라잡고있었으며 새 탄광지구가 다가올수록 더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것은 그동안 그가 해본 탄부생활과 무급휴가기간에 구직운동을 하느라고 방황하던 이런저런 체험에서 온것인지도 몰랐다.

창수는 차안의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무뚝뚝한 얼굴들이였으며 무엇에 놀란 사람들처럼 안절부절 못하고있었다. 뻐스는 속력을 더해갔다. 차길가까운 밀밭에서 종달새가 솟구쳐올랐다.

《여기도 노고지리가 있구마!》

영태의 말에 탄부들은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차안을 감고돌던 답답한 분위기를 그 종달새가 풀어준듯 했다. 이구석저구석에서 한사람두사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노고지리는 굶어죽은 농사군의 넋이라 카지 않는가. <내 새끼 불쌍타! 내 새끼 불쌍타!> 하고 운다 카지.》

영태는 차창을 밀어올려 얼굴을 내밀어 하늘쪽으로 이리저리 돌려보다간 도로 제자리에 앉았다.

종달새이야기가 오고가던 차안이 조용해졌다. 버리고 온 탄광촌에서 본것과 같은 거창한 석탄산들과 운반탑이 나타난것이였다.

창수는 뻐스정류소부근에 몰켜있는 한무리의 도이췰란드인들속에 섞인 윤옥이를 보았다. 이미 기별한대로 오늘 낮경에 도착한다는것을 알고있는 그는 비닐비옷을 벗어들고 이쪽으로 오는 뻐스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고있었다.

뻐스가 멎을 때마다 상기한 얼굴로 발돋움을 하며 자기를 찾아 두리번거리고있는 그를 본 순간 창수는 입안이 말라들었다. 비가 지나간, 한결 개운해진 이국의 산야를 등에 지고 경황없이 서있는 그의 모습은 그지없이 처량해보였다.

먼 타국땅에 와서 고생하고있는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여 그에게 마음의 부담으로 되여왔고 오늘엔 이렇게 떠돌이신세가 된 자신을 보여야 하는것이 창피스럽고 또 민망했다. 그를 두고 생각할 때마다 샘솟군 하던 애련한 감정이 창수의 심장을 죄였다. 항상 무엇인가 앞서 잘못한것과 같은 뉘우침이 뒤따라왔다.

차창에서 얼굴을 내민 창수를 본 그는 손을 흔들려다말고 방긋이 웃으며 뻐스쪽으로 달려왔다. 그는 창수가 내리자마자 말했다.

《내 말이 맞았죠?》

자기의 예상대로 이쪽 탄광으로 오게 된 그를 기꺼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윤옥은 말을 보탰다. 그의 음성은 들떠있었다.

《생각한것보다 뻐스가 빨리 왔어요.》

윤옥의 얼굴에는 기쁨의 빛이 력력히 어려있었다.

《오래 기다렸소?》

《아니…》

그는 활짝 웃으며 창수에게 자랑하듯 또 한번 말했다.

《내가 이쪽 탄광으로 오시게 된다구 하지 않았어요.》

《맞았소.》

《양로원에서 여기까진 걸어서 30분이면 올수 있어요. 빨리 걸으면 20분!》

《…》

자기가 일하고있는 시변두리에 위치한 양로원가까이 오게 된 창수를 보고 흥분해있는 그의 모습을 창수의 친구들이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고있었다. 윤옥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먼데로 돌렸다.

《양로원이 여기서 그렇게 가까운데 있는기요?》

《네.》

《어디쯤 되능기요?》

영태가 묻는 말에 윤옥은 손을 들어 울창한 숲이 있는 한곳을 가리켜보였다. 양로원인듯 한 흰벽에 빨간색지붕의 건물 하나가 숲에서 반쯤 드러나보였다.

창수도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있었다. 도익과 재균 등 창수의 친구들도 그쪽을 바라보고있었다. 마치 그렇게 하는것이 가엾은 윤옥에게 하는 자기들의 인사가 되기나 하듯이…

탄부들이 기숙사에 들어갈 때까지 거기 남아있던 윤옥은 다음 휴일날에 자기가 다시 올 때 꼭 만나자 하더라고 경애한테 전해줄것을 영태에게 부탁하고는 발길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창수는 그를 바래주면서 자기의 무거운 심중을 감추려는듯 뻐스를 타고 오던 도중에 들판에서 종달새가 날아오르던 일이며 젖소들과 양무리가 떼를 지어 풀을 뜯고있던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윤옥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잠자코 듣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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