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3 장

비애의 바다너머

5

 

20분간격을 두고 한차례씩 오르내리는 지하승강기가 일을 마친 탄부들을 운반탑 밖으로 뱉아냈다.

창수는 몸에 찬 남포불과 구명대가 천근무게로 무거워 승강기에서 내리고도 마음대로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비칠거리던 그는 운반탑아래 서있는 마로니예나무를 잡고 서서 숨을 크게 내쉬고 들이쉬군 했다. 심호흡을 거듭해도 머리가 뗑하고 토하고만싶다. 얼마 안 가서 왈칵 목구멍까지 올라온 구토증에 못이겨 몇번이나 입을 벌리고 토해냈다. 그때마다 그가 잡고있는 마로니예나무가 흔들리면서 밤알같은 열매가 하나둘 떨어졌다. 입안에 계속 신물이 고였다.

갱도에서 함께 나온 재균과 도익도 두어번 토하는 소리를 내더니 아무렇게나 땅에 드러누워 빈 하늘을 올려다보고있다. 어찌다 개인 하늘에 낮게 구름장들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또 비가 올것 같다.

마지막차례로 승강기가 탄부들을 담아냈다.

이쪽으로 서로 몸을 의지하여 오던 탄부들이 재균이 옆에 와 주저앉는다. 더러는 벌렁 드러누워 차거운 지면에 등을 붙인다. 그들의 이마에도 송글송글 땀이 돋았다. 몸을 쪄내던 지열과 목구멍을 쏘아오던 가스에 시달린 몸들이라 땅에 등을 대여 싸늘한 랭기를 받고있으니 한결 숨쉬기가 나아진 그들은 네활개를 쭉 폈다.

《창수! 서있지 말고 드러누워.》

재균이 권했으나 창수는 어지럼증을 참느라고 여전히 나무를 잡고 서있었다.

땅바닥에 누워있다가 먼저 일어나 앉은 도익이 중얼거렸다.

《이번엔 영낙없이 죽을고에 들었는걸! 일이 꼬이기만 하는군.》

도익은 자기들보다 먼저 출갱한 탄부로부터 담배를 받아물며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담배를 입에 가져간 그의 손끝이 떨리고있다.

《저런! 어느 갱의 친굴가?》

락반사고로 다리를 치인듯 채탄부 하나가 무덕무덕 탄가루가 묻은 바지가랭이를 피로 적시며 들것에 실려 주차장쪽으로 가고있다.

맨땅에 드러누워있던 탄부들이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외면을 한다. 남의 일같지 않기때문이리라.

부상자가 차에 실리는것을 끝까지 보고있던 도익이 물고있던 담배를 뱉아버리고 창수를 불렀다.

《창수, 옷이나 갈아입으러 가세.》

창수는 어지럼증이 더해와서 나무를 붙든채 고개를 들었다. 그도 몸에 열이 올라 두눈에 피발이 서있다.

《먼저 가보세요. 좀 있다 가겠어요.》

《그럼, 곧 오게.》

도익은 술에 취한 사람처럼 다리를 휘청거리며 목욕칸쪽으로 간다. 그를 따라 재균도 일어섰다.

《곧 오게.》

《념려말아, 곧 갈테니.》

그들의 뒤를 따라 몇사람의 탄부들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러나 창수는 쑤셔오는 머리와 구토증을 참느라고 마침내 땅에 드러눕고말았다.

선광장에서 나는 기계의 동음소리가 더 높아갔다. 창수는 지면에서 스며드는 랭기를 느끼며 아까 도익이 하던 말을 되씹고있었다. 그의 말대로 이번에는 꼼짝달싹 못하고 죽을것만 같았다.

무급휴가로 시달리던 남조선탄부들을 다른 나라 탄부들이 입갱하기를 거절한 이 탄광 막장으로 몰아넣은 대사관놈들을 생각하니 이가 갈렸다.

처음에 멋모르고 입갱했다가 인명피해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였을 때 남조선탄부들사이에는 언제 죽을지 알수 없는 막장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소요를 일으켰었다. 창수는 그들의 앞장에서 항의도 해보고 입갱을 거절한적도 있었다.

그러자 윤종기수석로무관이 달려와 설득하기를 탄광측에 작업안전을 보장받도록 하고 그 조건이라면 들어갈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었다.

그의 말대로 그후 탄광측에서는 일정한 안전대책을 취하는척 했었고 통풍갱의 통풍량도 개선했다기에 남조선탄부들은 다시 일을 시작했으나 실지로 나아진것은 별로 없다. 갱내에 차있는 가스는 전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숨구멍을 막아왔고 락반사고도 그치지 않는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귀국할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그동안 매달 월급에서 비행기 전세값을 물어오고있지만 그것도 아직 남아있고 돌아갈 려비도 없었다. 설사 귀국려비를 마련한다 해도 대사관에서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것이다. 만약에 다문 몇사람이라도 제 마음대로 일자리를 포기하고 귀국하는 일이 있게 되면 외화벌이를 위한 탄부를 더 데려올수 없기에 귀국수속을 해줄수 없다는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리유였다.

창수의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들고일어나 입갱을 다시 거부하던지 즉각 귀국시켜줄것을 요구했으면 좋으련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땅에 드러누운 창수는 눈을 감았다. 자기 힘으로는 어쩔수 없었다. 쇠사슬에 사지를 묶이운 몸이나 다름없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그가 탈의실쪽으로 갔을 때는 재균과 도익이 벌써 옷을 갈아입는중이였다.

두사람은 한걸음 먼저 밖으로 나갔다. 후둑후둑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창수가 목욕을 끝내고 어깨를 두드리는 비를 맞으며 기숙사로 돌아오자 먼저 와있는 영태가 이틀째 누워있는 같은 8호갱 굴진공의 머리맡에 앉아있었다.

영태는 이 탄광으로 온 후 수평갱보다는 덜 위험한 굴진에 붙어있었는데 아직까지 개인집을 얻지 못해서 경애를 병원으로 돌려보내고 창수와 함께 기숙사생활을 하고있었다.

창수가 앓는 친구의 병증세를 알아보고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며 자리에 앉는데 누구보다도 원기가 왕성하여 우스개소리로 침울해있는 창수를 곧잘 웃기군 하던 영태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또 누가 치웠다카제?》

《응.》

《그 사람도 처자가 있을끼인데.》

두사람이 탄광의 잦은 사고를 근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있을 때 탄광사무소에서 나온 목대가 센 도이췰란드인사무원 하나가 조진규통역원을 데리고 찾아왔다.

그들은 요즈음 부쩍 늘어난 결근자들을 찾아다니며 그 리유를 알아보고있는데 기숙사에서는 평균 한방에 두서너사람이 나가지 않고있었다.

조진규통역원은 창수쪽으로는 될수록 얼굴을 피해가며 앓아누운 환자에게 자기들이 찾아온 목적을 알렸다.

병가신청에 첨부해야 하는 구역공의의 진단서를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환자가 내지 않고있으니 탄광측에서는 《꾀병》으로 보고 만약 래일까지 진단서를 내지 못하면 즉시로 해고처분을 내리게 되여있다는것이다.

《어떻소? 래일부턴 나오실수 있겠습니까?》

조진규는 머리에 수건을 처매고 누워있는 굴진공에게 보기 드물게 경어를 썼다. 도이췰란드인사무원은 통역원과 환자를 번갈아 보며 그 굴진공의 고유번호를 확인하고있었다.

《그거는 래일이 돼봐야 알끼인데.》

영태가 환자대신에 대답을 했다. 환자는 자기의 이마우에 손을 얹어보려는 통역원의 손을 피하며 일어나 앉았다. 그가 대꾸를 못하고있자 영태가 또 대신 한마디 했다.

《칼자루는 탄광에서 쥐고있는기이라. 해고도 마음대로 할수 있는 기이고, 그렇지러?》

《오해를 마시오. 내가 그러는것도 아닌데…》

조진규는 자기쪽을 노려보고있는 창수의 험한 눈길을 느끼자 황급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서둘러 신발을 찾았다.

도이췰란드인사무원과 통역원이 나가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소리내여 웃었다. 환자도 함께 웃었다.

《병원에 가보았소?》

창수가 묻는데 굴진공은 머리에 처매고있던 수건을 풀어던지며 대답한다.

《진단서를 못 떼주겠다 하지 않겠어요. 무슨 병인지 도이췰란드의 의학으로도 알수 없다면서…》

그는 히죽이 웃었다.

《할수 없지러. 래일부턴 나하고 같이 나가면 될터이니 그까지로 겁내지 말고 따라오이소.》

《그럴수밖엔 별도리가 없게 됐어요.》

그 굴진공은 얼마전에 8호갱에서 사고가 일어난 후 신경이 예민해져 헛손질만 나간다기에 창수와 영태가 병가신청을 내고 쉬라고 권했었는데 이틀째 쉰 지금에는 좀 진정됐다고 한다.

식사를 마친 창수는 몸이 그냥 찌뿌둥해서 일찌감치 그물침대에 누웠다. 옆방친구들한테 놀러 갔다 온 영태가 창수의 웃침대 그물에 들어가며 혼자 중얼거렸다.

《좋기사 총각때가 그저 그만이지러. 돌망구가 떨어져도 지 머리우에만 떨어지니께.》

수수께끼같은 탄광이였다. 가스도 가스려니와 멀쩡하게 보이던 천반에서 불시에 구들장같은 돌이 우수수 쏟아져내리군 했다. 그렇게 무너져내린 천반 상층부 허공의 웅뎅이 량벽에 나무를 가로질러놓고 널판자를 세로 질러 쏟아져내리는 돌덩이들을 받게 하고는 굴진해가는데 순간도 마음을 늦출수가 없었다.

탄광사무원과 조진규통역원이 환자들이 있는 방들을 찾아다니며 위협을 해도 일 못 나가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있었다. 사흘만엔 일단 출근했다가 며칠 안 가 어디서 사고가 일어나면 다시 나가지 못하고 자리에 눕는것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창수는 드디여 그 탄광의 래력을 알게 되였다. 그것을 알려준것은 트루게라는 도이췰란드정비공이였다.

정비공들은 갱내 기계고장을 살펴보는 일을 맡아보면서 정비가방을 메고 갱내를 거닐기가 일쑤인데 그는 남조선탄부들을 동정하여 작업에 필요한 조언을 주거나 한자리에 오래 머물러 앉아서 불쏘시개감을 만드는 때가 많았다.

창수는 탄광고유번호가 6번인 그 늙은 로동자가 오는것을 반가와했다.

그날도 트루게령감은 여느때처럼 창수가 일하는 막장에 와서 불쏘시개감을 자르기 시작했다. 창수는 그의 손을 거들며 물었다.

《어디 쓰실건가요?》

《집에 가져가서 불쏘시개로 할걸세. 석탄불을 피우자면 이런것이 있어야 하니까. 임자네들도 자취를 할 때 쓰일테니 잘라가게.》

《우린 아직 개인집을 얻지 못했는걸요.》

《그렇다면 필요없겠군.》

《령감님은 고유번호가 6번이신데 몇해나 이 탄광에서 일해왔어요?》

《25년이지.》

《25년동안 내내 이 탄광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고유번호가 6번이지.》

《많은 일을 하셨겠군요.》

그와 이야기하는 과정에 창수는 이 로동자가 매우 유식하며 나치스시절에는 군대에 징집되여 전쟁판에 내몰렸다가 수용소에 갇힌 일이 있었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히틀러가 유태인들만 많이 죽인게 아니라 로동자도 많이 죽였지. 나는 내 마누라 힘으로 살아나왔지만…》

그는 군대에서 탈영하다가 수용소에 갇혀있은 자기를 찾아와 철조망너머로 먹을것을 넣어주던 자기 안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 불쏘시개감은 내 마누라를 위해 지금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조지.》

창수는 그와 이야기하는 과정에 탄광의 래력을 물어보았다. 이미 50줄이 훨씬 넘은 거무스레하고 길쭉한 얼굴에 이마가 주름투성이인 트루게령감은 탄광의 제일 년장자였을뿐아니라 탄광의 수수께끼를 풀수 있는 몇사람 안되는 증견자이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또 해야겠군. …》

트루게령감은 창수가 묻는대로 탄광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차세계대전당시에 히틀러가 전쟁포로들을 강제로 끌어다 개발한 탄광이라고 들은것이 사실이였다.

트루게는 그때를 회상하며 몸서리쳐지는 이야기들을 전했다.

《그 악독하고 야만적인 히틀러도당은 다른 나라 로동자들과 젊은이들을 계획적으로 붙잡아오기내기를 했었지. 이 탄광에도 그런 사람들을 처넣고는 신발도 신기지 않고 맨발로 일하게 했었네. 그때 죽은 포로들의 백골이 지금도 때로 발견되군 하지. 가끔 무너져내리는 천반의 그 허공을 이룬 자리들은 옛날에 그 불쌍한 포로들이 탄을 캐던 막장들이네.》

트루게는 탄광과 부근농촌들에 끌려왔던 맨발에 마대를 두른 포로들이 무리로 죽어나가던 이야기를 하다가 물었다.

《임자네들은 뭣때문에 하필이면 이런데를 골라왔는가? 모를 일인걸.》

창수는 철썩 귀퉁배기를 얻어맞은듯 했다.

그는 트루게에게 되물었다.

《이런 위험한 탄광에서 령감님은 왜 떠나지 않는거죠?》

《그건 안되지. 내가 없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수 있지. 그런 위험개소들을 아는 사람은 이젠 내밖에 없으니 말일세.》

어디 개인집 방 하나를 구해줄수 없느냐는 창수의 청을 쾌히 승낙한 트루게는 불쏘시개감을 정비가방속에 넣고는 일어섰다.

《조심들 하게.》

《고맙습니다.》

그로부터 탄광의 무서운 력사를 알게 된 창수는 저도 몰래 주먹을 불끈 쥐였다. 이런 곳에 자기들을 밀어넣은 대사관관리놈들을 쳐죽이고싶은 조바심이 났다. 가슴속에는 분노의 불덩어리가 이글거렸다.

자기를 포함한 남조선탄부들이 포로 아닌 포로로 되고있는 엄연한 현실을 그는 절실히 느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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