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3 장

비애의 바다너머

6

 

《늬들 잠은 기숙사에서 자도 밥은 내 집에 와서 묵어라이. 도익형님도 그렇게 하이소.》

짐을 옮기고난 영태가 말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것을 사양했다. 영태는 창수 너만이라도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창수는 듣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와 이렇게 남의 말을 안 듣소?》

영태는 머리를 쓸며 섭섭해하더니 비록 세방이지만 집들이를 했는데 오늘 저녁만이라도 저녁을 같이하자고 했다. 트루게령감도 데리고왔으면 했다.

일을 끝낸 창수는 친구들과 함께 그의 집을 찾았다. 영태의 권고가 있었으나 모두들 탄광식당에서 저녁을 하고 갔다. 트루게령감은 초청을 받고도 자기 집에 손님이 있어서 같이 오지 못했다.

영태부부는 그때까지 저녁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이 식사를 하고 온것을 알자 영태는 몹시 나무랬다.

《이 사람들이 와 나무 말을 묵어치아버리노!》

그는 트루게까지 못 오게 된것을 알자 더 아쉬워했다.

《그 령감을 내가 꼭 한번 만나봐야겠는데… 창수, 니 보기는 어뚜터노? 그 령감이 털보령감이제?》

《아니.》

《털보가 아니라? … 내가 부산 있을 때 창수 니가 말한 그 트루게령감 같은 사람을 만났는데 말이다. 입만 벌리면 사람을 해치는것들이 우글우글한 시상에 보기 드문 령감이였지러. 남의 자식들을 꼭 지자식 보듯 하더라. 그 털보령감은 부두로동자였지러.》

영태의 이야기가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당신은 무슨 말이든 나오면 다른건 다 잊어버리세요. 어서 손님들에게 맥주를 권해드려요.》

경애가 남편에게 주의를 주며 새집들이에 온 손님들을 위해 자기가 마련해온 맥주병들을 상우에 놓았다.

《참, 그 말이 옳지러. 자, 세방살이로 들었지만 터주대감을 굶기서 되것나.》

영태가 맥주를 권했다. 창수는 다시 한집에서 살게 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있는 영태부부를 유쾌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자기의 안해곁에 앉은 영태는 더 믿음성스러웠고 이따금 남편쪽으로 돌리는 경애의 시선에도 포근한 신뢰와 안온함이 깃들어있었다.

이윽고 그는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노시다가 가세요. 전 좀 나가볼 일이 있어서…》

《아즉 멀었지 않소? 손님들도 오싯는데 더 앉았다가 가소.》

《지금 가지 않으면 늦어질것 같애서 그래요. 손님들에겐 죄송하지만 가봐야겠어요.》

경애는 며칠전부터 야간근무를 한다고 했다. 아홉시전에는 닿아야 한다면서 그는 집을 나섰다.

경애가 병원으로 떠나가자 영태가 미간을 모으며 구시렁거렸다.

《하필이면 이런 날에 야근에 걸릴끼 뭐고.》

그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호래비신세를 면했나 컸더니 방이 없어 그러, 방을 하나 얻어놓으니 내 얼굴 보것다고 몽달귀신이 들어와서 요새는 또 이 꼴이다.》

창수는 함께 웃으면서도 유쾌하던 기분이 사라졌다. 모처럼 집을 옮겨온 첫날부터 한사람은 야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들의 형편이 방을 얻지 못해 안타까와하던 그때와 다름없게 보였기때문이다.

친구들은 탄광에서 일어나고있는 크고작은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영태는 얼마전에 귀국한 불구자탄부들이 생각났던지 걱정을 했다.

《팔다리가 온전해도 헤여나기 힘들낀데 그 꼴을 해갖고 어뚜케 살는지 남의 일같지 않구마. 돌아간들 팥 심을데가 있나 콩 심을데가 있나.》

《그 사람들뿐이면 좋게? 여기 와서 벌써 몇사람이나 상했게.》

재균이 맥주잔을 탕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그런 이야기말고 다른 이야기나 하세.》

도익의 말에 모두 동의했으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또 그런 비참한 이야기로 되돌아가군 했다.

밤 열시이후에는 남의 집에 앉아있어서는 안되는 도이췰란드인들의 생활습성을 알고있는 그들은 열시가 되기 좀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태도 세방에 들면서 밤 열시이후엔 외부에서 오는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주인과 했기에 말리지 않았다.

문밖에 따라나온 영태가 창수에게 물었다.

《와 요새는 윤옥이가 안 보이노?》

《바쁜 모양이야. 지난 일요일에 만났어.》

《저쪽에서 바빠 못 오면 니가 자주 가봐라. 창수 니 보고 왔지 양로원 보고 왔나?》

《알았네.》

영태는 이다음 일요일엔 꼭 윤옥을 데리고 자기 집에 들리라고 했다.

그들은 네사람이 한자리에 모일수 있을 날을 헤아려보았으나 그날을 쉽게 정할수가 없었다. 일터가 다르고 주야교대시간이 같지 않기때문이였다.

다음주에도 창수 혼자 그의 집을 찾아가자 영태도 혼자 집에 있었다. 윤옥과 경애는 두사람 다 밤일을 하고있는것이다.

편지를 쓰고있던 영태는 《어서 들어오너라이. 편지 곧 다 써간다.》하며 그를 안으로 청해들였다.

《영규한테 보내는 편진가?》

《아니다. 우리 집사람한테 쓰는 편지 아니가.》

《자네 부인에게?》

《하모, 오늘부터는 내가 밤대거린데 래일부턴 집사람이 낮일로 돌아오게 되었지러.》

편지를 쓴 영태는 그것을 한번 읽어보더니 식탁우에 펼쳐놓고는 빈접시로 눌러놓았다.

영태와 마주앉은 창수의 눈이 문득 그가 쓴 편지쪽으로 갔다.

《집사람 신경애 보시오.》 하는 허두가 눈에 띄였다.

《우리 집사람이 밤대거리일 때는 내가 낮일이지 내가 밤대거리 나갈 때는 집사람이 낮일이라카지 않나. 편지쓰는 재미도 괜찮니라.》

그러나 달이 거듭되고 해가 바뀌여 이듬해 새봄이 왔을 때는 편지쓰는 일이 괜찮다고 하던 영태도 시무룩해있었다.

그날 마침 창수는 윤옥과 함께 그의 집에 들렸는데 영태는 한숨을 쉬였다. 그리고는 창수에게 한탄했다.

《이 사람아, 야단났다. 이것 좀 보래이, 이기이 다 우리 집사람이 나한테 쓴 편지뭉터기 아니가.》

창수와 윤옥은 그가 책상서랍속에서 꺼내보이는 두툼한 편지뭉치를 보았다.

영태는 다른 또 하나의 서랍을 열어보이며 윤옥에게 말했다.

《저건 내가 우리 집사람에게 보낸 편지 아닝기오. 집사람이 읽어보고는 저렇게 차곡차곡 모아두었지러요.》

윤옥은 가볍게 탄성을 올렸다. 전에 경애로부터 집을 비우고 나올 때면 남편에게 편지를 써놓고 온다는 말을 듣기는 했었지만 그 편지들이 저렇게 많을줄은 몰랐던것이다.

영태는 이제는 될대로 되라는듯 한 태도로 편지다발속에서 편지 하나를 쑥 뽑아내더니 소리내 읽기 시작했다.

《…집사람 신경애 보시오. 밤일을 하시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시었소. 아침밥은 지어서 식탁에 갖추어놓았으니 그리 아시고…》

그는 읽던 편지를 집어치웠다.

《이건 편지질을 처음에 하게 됐을 때 쓴거이라. 좀 길지러.》

다음번에는 경애가 자기앞으로 쓴 편지다발에서 편지 하나를 뽑았다.

《시간이 바빠서 몇마디만 간단히 적고 가요. 아침식사를 하실 때는 꼭 찔게를 데워서 자셔야 해요. 그리고 친구분들과 이야기하시느라고 또 주무시지도 못하고 밤일을 나가실것 같아 걱정이예요. 내의를 꼭 갈아입고 나가세요. 빨래한 내의는 트렁크우에 얹어놓았어요. …》

그는 창수와 윤옥을 쳐다보았다.

《편지라는기이 다 이렇지러… 서울 간 리도령도 아닌데 자꾸 편지질만 하고있지 않는가베.》

영태는 서글픈 웃음을 웃었다.

창수의 곁에 앉아있던 윤옥은 경애의 트렁크에 눈이 갔다. 함부르그에 있을 때 짐을 다 거둬넣은 저 트렁크우에 오도카니 앉아있던 그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그 하늘색트렁크밑에는 영태가 식품행상을 하며 들고다니던 닭알색트렁크가 놓여있다. 주인집에서 세를 받고 빌려주고있는 침대며 옷장 하나가 있을뿐 눈에 띄는것이란 빨아둔 영태의 작업복과 경애의 간호복이 걸려있을뿐이다.

윤옥은 영태에게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는지 몰라 꾸물거리고만 있었다.

창수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계속되겠나. 펼 날이 있겠지.》

《하모, 있고말고.》

영태는 선뜻 동의했다.

윤옥은 경애도 없는 집에 더 앉아있기가 뭣해서 돌아가자고 창수에게 몇번이나 눈을 주었다.

두사람이 일어났다.

《이것 안됐고마. 집사람이 있을 때 꼭 한번 둘이서 오너라이.》

영태는 창수와 윤옥에게 대접도 못하고 보내는것이 미안해서인지 여러번 같은 소리를 했다.

밖으로 나온 윤옥은 한참이나 말없이 창수와 나란히 걸어갔다.

《우리도 힘은 없지만 경애집을 도와줘야겠어요.》

《…》

《두사람이 사는걸 보셨죠? 서로 위해주고, 그런 점엔 걱정할거 없지만 말이예요. 너무 사는게 초라해요. 서로 편지만 자꾸 해야 하구…》

《도와주도록 합시다.》

두사람은 자주 말이 끊어졌다. 우습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한 영태부부의 편지래왕이 남의 일같지가 않았던것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지금 자기들의 사이가 그들과 꼭같은것으로만 느껴진것이였다.

기다려지는 일요일에 만나보기조차 그처럼 힘든 그날!

두사람은 요다음 같이 쉬게 되는 날에는 도르트문드쪽으로 산보가기로 약속했다. 윤전이가 창수에게도 윤옥에게도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오고있었는데 둘이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왔기때문이였다. 언젠가 영태로부터 탄광의 사진관이나 복흠의 사진관들보다 도르트문드에 유명한 사진관이 있다고 들은적이 있어 창수가 거기 가서 찍자고 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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