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3 장

비애의 바다너머

7

 

양로원의 아래층 현관에 들어서면 맞은편 벽에 걸어둔 커다란 거울이 사람들의 눈에 띄였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교대로 휴식하는 간호원들이며 양로원직원들 그리고 야외에 간간이 산보나가는 늙은이들은 의례히 그 거울에 옷매무시를 비쳐보군 했다.

아침나절에 해가 나자 아직도 걸어다닐수 있는 몇사람의 녀자양로생들이 거울앞에서 머리모양이며 옷매무시를 고치다가 현관문을 밀고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한무리의 늙은 사나이들이 낡은 군복을 걸치고 웃층에서 내려왔다. 답답한 양로원생활을 잠시라도 잊을가 해서 야외의 봄볕을 쏘이러 나가는 남자양로생들이였다.

《뭘, 그렇게 오래 꾸물거리는가?》

군화뒤축에 달린 박차를 울리며 번대머리 늙은 사나이가 재촉을 해도 옷토는 그대로 제모습을 거울에 비쳐보고있었다.

거울앞에서 군복단추를 채우고있는 옷토의 눈에는 북해로부터 마지노선에 이르는 긴 전선이 나타나고있었다. 하늘을 쓸며 내리꽂히는 급강하 폭격기들, 적의 비행장이며 중요교량들우에 날아내리는 락하산부대들, 파도를 가르는 뽀트들, 쾌속전차집단들이 네데를란드, 벨지끄, 룩셈부르그, 프랑스, 노르웨이 그리고 쓰딸린그라드를 향해 돌진하고있다. 젊은 옷토소좌는 강점지역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고 녀인들을 짓밟고있다. …

누가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 기척에 정신이 든 옷토는 그쪽을 돌아다보았다. 남조선간호원 안겔리까가 외출을 하려는듯 옷을 갈아입고 현관을 나서려 하고있었다. 그는 소리쳤다.

《쉬베스타!》

흠칫 놀라 뒤돌아보는 윤옥에게 옷토는 거울을 가리켜보였다.

《왜 너희들은 이렇게 거울을 닦지 않는가? 거울이 흐려서 보이지 않는다. 어서 거울을 깨끗이 닦아라.》

그의 노기어린 목소리를 듣고 프리츠간호장이 나타났다. 윤옥은 그들이 시키는대로 그 거울을 닦아주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의 명령대로 거울을 청소하고있는 남조선간호원을 지켜보며 옷토는 잔인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그는 도이췰란드민족 아닌 《하급인종》-히틀러가 자주 사용하던 《운데르멘쉔》은 도이췰란드인들을 위해서 남자들은 탄광에서 노예로동을 하거나 농사를 짓고 녀자들은 양로원에서 손톱발톱을 깎아주어야만 한다고 늘 믿고있었다. 더우기 남조선에서 온 탄부들이나 간호원들에 대해서는 자기만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그네들을 서도이췰란드로 팔아넘긴 남조선《정부》자체도 그것을 인정하고있음을 그는 게시판에 붙은 남조선대사관의 선전사진만 보고도 알게 되였던것이다.

옷토가 재촉했다.

《빨리 닦아!》

밖에서 기다리는 창수를 생각하며 마음이 다급해진 윤옥은 대강 마른 걸레질을 하고 손을 떼려는데 옷토는 쉽게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거울을 닦고있는 윤옥은 제정신이 아니였다. 혹시 창수가 들어오면 어쩌나 해서였다.

그가 거울을 다 닦을 때까지 다행히 창수는 양로원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손을 씻고 밖으로 나섰다.

윤옥은 죄지은 사람처럼 발걸음이 어줍어지고 고개가 들리지 않았다. 창수는 약속한대로 밖에서 기다리고있었는데 얼굴을 찌프리고 양로원게시판을 쳐다보고있었다. 윤옥의 가슴이 더 세차게 방망이질을 했다.

윤옥을 본 창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에 답하는 윤옥의 얼굴이 이그러졌다. 창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어디 몸이 불편하오?》

《아니…》

윤옥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질문을 해주는것이 고마웠다.

두사람은 뻐스정류소로 가고있었다. 윤옥이 급작스레 무엇을 잊어버리고 온듯 양로원쪽으로 발길을 되돌려 반달음을 놓았다.

《잠간 기다리세요!》

《?》

게시판있는데까지 달려간 윤옥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잽싸게 게시판에 붙은것을 쭉 찢어 땅바닥에 내던지고는 달려왔다. 기다리고있는 창수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이 상기되여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어서 가요.》

《…》

아까부터 아무 말이 없는 창수를 빤히 쳐다보며 윤옥이가 물었다.

《무얼 그렇게 생각하고계셔요?》

《아무것도…》

《이제 한해만 더 고생하면 우리도 돌아가게 되겠죠? … 세월이 빠르죠?》

윤옥은 전에없이 말수더구가 많아졌다.

《우리 한국녀자들보다 더 불쌍한 녀자들은 없을거예요.》

그는 자기가 일하는 양로원에 있는 나치스잔당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거울을 닦은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창수는 전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으나 오늘처럼 그 일로 해서 흥분한 그를 본적이 없었다. 윤옥이 겪고있는 마음고생이, 그가 여직껏 말 안하고 감추고있던 그 모든것이 창수의 심장을 찔렀다.

《뻐스가 왔어요!》

윤옥의 목소리에 창수는 고개를 들었다. 뻐스에 오르자 윤옥은 입을 다물고 차창밖을 내다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뻐스는 목적지에 닿았다. 두사람은 공원쪽으로 걷고있었다. 흰색, 노랑색, 자주색, 파랑색 등 가지각색의 안전모를 쓴 도로보수공들이 그들이 가고있는 도로주변에서 일하고있었다. 흰 안전모를 쓴 사나이가 무슨 지시를 하자 다른 빛갈의 안전모를 쓴 로동자들이 그가 시키는대로 움직이고있다.

《흰 바가지 쓴 저 사람한테 절대 복종하게 돼있는 모양이죠?》

윤옥은 눈에 보이는족족 의문나는것을 창수에게 물어보고있었다.

《흰 바가지는 병원을 두고 말한다면 간호장 같은 사람이겠죠?》

《그렇겠지.》

공원입구로 들어가는 길 량편에 아름드리 키나무들이 서있었다. 꽃밭들이 나타났다. 붉은장미, 튜립, 다리아, 복수선화, 백합… 자기가 아는 꽃이름들을 불러보던 윤옥이 《저리로 가요!》하며 탑이 있는데를 가리켰다. 높다랗게 세워진 탑이 서서히 돌고있었다. 창수도 청춘남녀들이 그 탑우에 올라 아래로 굽어보이는 꽃시계를 내려다보며 서로 맹세를 다진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두사람은 탑우에 올라갔다. 탑이 돌고있었다. 꽃시계가 돌고있었다. 윤옥이 미소를 머금고 이따금 창수에게 시선을 돌리였다.

탑을 내린 두사람은 윤옥의 뜻에 따라 공원안에 꾸려진 인공호수를 구경하게 되였다. 호수안에 세워진 무대에서 까만 연미복차림의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고있었다. 윤옥은 그것도 즐거운듯이 눈을 떼지 못했다.

점심을 같이 나눈 두사람은 사진을 찍었다.

창수는 윤옥을 바래주면서 자기와 함께 때를 보내는것이 기뻐서 들떠있는 윤옥의 마음을 혹시 다칠세라 힘들게 입을 떼였다.

《윤옥! 나를 용서하오. 나는 윤옥이가 얼마나 모진 마음고생을 하고있는가를 알고있어.》

윤옥은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그의 시선이 애원하고있었다.

《윤옥에게 나는 아무런 도움도,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하고있어.》

윤옥이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감추지 않았다.

《저도 괴로워요. 늙고 병들어 누워계시는 아버지의 병구완도 못해드리면서 그런 타락하고 못난 인간들의 시중을 들어줘야 하는…》

그는 목이 메여 잠시 말을 멈추었다.

《우리 한국간호원들은 만나기만 하면 팔려온 몸이라고 눈물을 짓군 해요. 그렇지만 저는 참아내겠어요. 전 여태까지도 참아냈어요.》

창수는 모든것을 자기에게 기대고있는 윤옥의 손을 잡았다. 그는 힘주어 말했다.

《나는 윤옥이가 양로원게시판에 나붙어있던 그 사진들을 갈기갈기 찢어던지는것을 보았소. 윤옥이처럼 우리 탄부들도 여기로 팔려온 몸들이란걸 알고있소.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렇게만 살지 않을것이오. 또 이렇게만 살아서는 안되오.》

그의 음성은 어느덧 격해졌다.

《윤옥! 나는 이런 세월이 끝장날 날이 꼭 있을거라는걸 믿고있소.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들을 이런 처지에 몰아넣은 박정희와 같은 놈들, 여기 온 대사관의 악귀같은 놈들을 쳐없앨수 있을가 하고 그런 생각만 하고있소.》

윤옥은 말없이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그들이 가는 길섶에서 꽃향기가 풍겨오고 지평선에 불그스름한 달이 떠오르고있었다.

창수는 자기가 윁남전쟁터에 끌려가서 보고 겪은 이야기들을 처음으로 윤옥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윤옥이 있는 이곳 서도이췰란드땅을 찾아오지 않을수 없었던 지난날들과 여기서 체험한 그의 고통과 분노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서도이췰란드에 온 간호원들이나 탄부들이 겪고있는 그 모든 설음이 이 땅에 자기들을 보호해줄 참된 주권이 없기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윤옥은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그자신이 체험한 그 모든 서글프던 일들이 그의 말뜻을 쉽게 리해할수 있게 했던것이다.

어느새 지평선에서 멀리 올라온 달이 그들을 비쳐주고있었다. 창수는 자기에게 모든것을 맡긴 윤옥을 진정으로 사랑하자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고있었다.

그를 위해서 또 자기자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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