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3 장

비애의 바다너머

8

 

창수는 윤옥을 사랑하고있으면서도 그가 겪고있는 불행과 고통에서 구원해줄수 없는것이 안타깝고 한스러웠다.

그는 잠자리에 누워 오래동안 뒤치락거리기만 했다.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인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락동강인듯도 하고 그가 처음 서도이췰란드에 내렸을 때 본 라인강같기도 했다. 그것이 발밑에서 소리내며 흘러가고있었다. 창수는 몸을 뒤틀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자욱히 연기가 깔린 강녘에 있는 굵은 무쇠기둥에 쇠사슬로 묶여있었다. 먹물처럼 검은 강물이 계속 소란스레 흐르고있는데 강심에는 도이췰란드양로원의 백발로구들이 탄 화려한 륜선이 풍악을 울리며 지나가고 그뒤로는 놀랍게도 윤옥을 비롯한 간호원들이 바줄에 팔을 묶이운채 배전에 드리워져있었다. 윤옥은 높다랗게 솟아올랐다가 부서져내리는 파도속에 몸이 잠겼다가는 몇번이나 솟구쳐오르며 그를 애타게 부르고있었다. 그러나 기둥에 묶이운 창수는 무력하게 몸부림칠뿐 목이 잠기여 소리도 나가지 않는다. 한쪽에서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자 남조선대사관 관리들이 강변을 산책하고있다.

《아이고, 저기이 누구고?!》

갑자기 영태의 목소리가 나더니 그가 나타났다. 영태는 풍덩 물에 뛰여들어 파도를 가르며 헤염쳐 들어간다. 물속으로 끌려가는 녀인들을 구원해주려고 가는것이다. 창수는 자기도 뒤져서는 안되겠다고 만신의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사슬이 감긴채로 기둥이 뽑혀나왔다. 그는 무거운 기둥을 등에 진채 한걸음두걸음 강변으로 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윤옥이도 다른 녀자들도 보이지 않고 풍악을 울리던 륜선도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는데 영태 혼자 둥싯거리는 쪽배우에 네활개를 펴고 누워 꿈꾸듯 하늘을 바라보고있는것이 아닌가. 바람이 불어와 차츰 연기가 가셔지는데 쪽빛으로 맑아지는 드넓은 수면우에 영태의 배가 떠있었다. 갑자기 우뚝 일어선 영태는 눈부신 수평선을 바라보고있다. 창수는 그가 바라보고있는 수평선에 눈길을 돌렸다. 화려한 신기루가 서있다.

원근법을 무시한 기이한 그림같은 신기루… 백학이 날아도는 검푸른 산봉우리우에 빛을 뿌리는 아름다운 정각에 오른 두쌍의 행복한 남녀가 있다. 찬찬히 눈여겨보니 그들은 불로 짠 천인듯 번쩍이는 옷을 입고있다. 그들이 올리는 환희의 긴 웨침소리는 하늘가 멀리 울려퍼져 메아리치고있다. 영태는 위태롭게 기우뚱거리는 쪽배우에서 그리고 창수는 무거운 기둥을 등에 진채 그 환영을 취한듯 바라보고있다. 돌연 등에 진 기둥이 쓰러지면서 창수의 몸을 짓눌러왔다. 등에 지고있는 그것은 그가 매일같이 막장에서 다루던 쇠들보였다. …

신음소리를 내며 꿈에서 깨여난 그는 한동안 멍히 앉아있었다.

시간이 늦는다고 재촉하는 친구들과 함께 출근준비를 서두르고있는데 아래쪽에서 영태의 목소리가 났다.

《벌써 갔나?》

영태는 출근하는 길목에 있는 기숙사앞에서 친구들을 부르는것이 버릇이였다.

창수가 내려가자 그는 뒤짐을 지고 나지막하게 소리없는 휘파람을 불고있었다. 그가 즐거울 때면 의례히 하는 버릇이였다. 아침인사가 오고갔다.

《언제나 빠르구나.》

《우리 집사람이 새벽일찍 일나가야 하니께 늦장을 부릴수 없니라.》

딸기밭너머 바람에 일렁이는 벗나무숲에서 먹이를 쪼으러 내려왔던 새들이 종소리에 놀라 하늘로 날아오르고있다.

그 모양을 이윽토록 좇던 영태가 말했다.

《우리 영규가 또 편지 왔니라. 지 형수사진 받았다카더라. 니 안부도 또 물어왔다.》

《고맙네.》

창수는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기뻐하고있을 영규를 그려보면서 간밤에 본 꿈이야기를 했다. 그것을 듣고난 영태가 소리없이 웃었다.

《꿈에서야 곱추도 훨훨 하늘을 날수 있지러. 니 꿈대로 됐으믄 울매나 좋것나.》

창수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나는 이따금 생각하는데… 우리가 이 고생을 하고있는 사이에 고국에선 무슨 변이 일어날수도 있겠다고 말일세.》

영태는 머리를 끄덕이며 함께 가다가 입을 열었다.

《세월이사 가기마련이지러. 만날 죽으라는 법도 없을끼이고… 니말대로 세상이 바뀌여지믄 나는 고향가서 새 집 짓고 살것다. 산도 좋고 물도 맑은 땅에 가서 마음놓고 살수 있는 세상이 오믄 경애도 더 고아보일끼다.》

운반탑이 나타났다. 승강기에서 먼저 내린 영태는 자기가 일하는 8호갱으로 사라지며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가 꽁무니에 차고있는 물통이 흔들리며 굴속으로 사라졌다.

오전 작업이 끝나갈무렵이였다.

갱내 통역원을 데리고 뚱뚱보갱장이 여러 갈래의 크고작은 침침한 갱도들에 박혀 일하고있는 탄부들을 돌아보고있었다. 갱내 통역은 작업규정대로 일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갱장의 말을 음울한 목소리로 전하고있었다. 최근에 여러가지 사고가 끊어지지 않아서 갱장이 돌고있는것을 본 탄부들은 그가 사라지자 여기저기서 불평을 터뜨리고있었다.

《누가 규정대로 안해서 얻어맞나?》

창수도 투덜거렸다. 심한 과로에 지친 탄부들은 비틀거리며 들어올리던 무거운 쇠동발에 치이는수가 많았고 불시에 천반에서 떨어지는 무거운 돌에 얻어맞게 되는 때도 많았다. 그러니 규정의 준수여부란 한갖 사치한 롱처럼 들렸던것이다.

갱장이 돌아간 후 창수는 일이 손에 붙지를 않았다. 남의 나라에 흘러온것도 한심한데 언제 치일지 모르는 위험한 막장에서 아무런 안전담보도 없이 내버려진 처지를 생각하니 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누군가 급히 달려오더니 그의 팔소매를 끌고 갱도의 한쪽구석으로 갔다. 영태와 같은 8호갱에서 일하는 창수와도 안면이 있는 탄부였다.

《야단났어요. 영태씨가 중상을 입었소.》

《뭐요? 영태가?!》

창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를 뒤따라 8호갱에 올라간 창수는 영태가 일하던 막장에 들어섰다. 일에서 손을 떼고있던 탄부들이 헐떡거리며 들어서는 그를 말없이 눈으로 맞았다. 황급히 영태를 찾았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대신 3~4메터너비로 그 갱도 상층부에서 뭉청 내려앉은 큼직큼직한 돌들과 나무토막들이 그의 정신을 휘둘러놓았다. 락반을 막기 위해 가로질러두었던 나무들이 빠지면서 쏟아져내린 돌덩이들이였다.

《영태가 어디 있소?》

창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방금전에 실려나갔소.》

떨어져내린 돌받이나무우에 걸터앉아있던 탄부 하나가 대주었다.

《어딜 다쳤어요?》

창수가 숨차게 묻는 말에 그 탄부는 머리를 떨구고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요행이였소. 배를 얻어맞기는 했지만…》

다른 탄부 한사람이 절망한 창수의 얼굴을 마주보다가 외면을 하며 말했다.

《그 무던한 사람이 우리를 뒤따르게 하곤 앞장서가고있었소. 작대기로 지나가는것이 어떨가 하고 뚜드려보는데 그만…》

영태는 그 위험개소를 지나게 되였을 때 앞장서서 두들겨보며 가다가 그만 변을 당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창수는 눈앞에 어지럽게 널린 돌덩이들이 다시금 자기 가슴을 때리는 아픔을 느끼며 전률했다.

《영태야!》

창수는 정신없이 갱밖으로 뛰여나갔다. 그길로 영태가 실려간 병원으로 달려갔다.

재균과 도익 등은 아직 갱장의 단속에 걸려있어서 영태가 입원한 탄부종합병원의 입원실에 선참으로 뛰여간것은 창수였다.

영태가 들어있는 병실문을 두드리는 창수의 심장은 불안에 떨었다. 문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 크게 울렸다. 얼굴이 창백해진 경애가 거기 서있었다.

창수가 영태를 찾아 한순간 두리번거리는데 문쪽을 지켜보고있은듯 영태의 목소리가 병실 한구석에서 들려왔다.

《여기 있다.》

창수는 달려가 아무말없이 그를 지켜보다가 그가 덮고있는 이불을 소리나게 벗겼다. 영태는 자기가 부상당한 복부에 감긴 붕대를 조금 아래짬으로 밀어내리며 말했다.

《여기를 다치지 않았나.》

뒤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경애의 울음소리였다.

창수는 조심조심 이불을 도로 덮어주고 친구의 손을 잡았다.

《영태야!》

《너무 걱정하지 말라이. 여보, 이녘도 그러카지 마오. 남들이 웃겠소.》

경애는 그의 말이 떨어지자 울음을 그쳤다. 그러나 울음을 그친 그의 두눈에서는 새 눈물이 다시 솟구치고있었다.

《… 의사는 뭐라고 하던가?》

창수가 목갈린 소리로 겨우 물었다.

잠간 영태는 대답없이 경애쪽으로 눈을 주더니 시선을 얼른 거두었다.

《한번 더 진찰해봐야 알겠다카더라.》

경애가 소리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다시 났다. 창수는 더 묻지 않아도 그가 복부에 입은 상처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가를 알수 있었다.

영태는 천반에서 쏟아진 한아름이나 되는 돌덩이에 복부를 얻어맞고 이미 간이 파렬된것이였다. 영태도 경애도 그것을 알고있었다.

창수가 담당의사로부터 그 사실을 알고 너무나 큰 타격에 비틀거리는 몸을 주체할수 없어 병원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주저앉아 오장을 찢고있는데 눈물을 거둔 경애가 그를 찾아왔다.

《주인이 어서 오시라 해서…》

창수는 일어섰다. 결혼한지 일년도 안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볼수 없어 시선을 돌린채 물었다.

《영태가 나를 찾습니까?》

《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면서 어서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

창수는 힘과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미 자기의 최후를 기다리는 벗이 자기앞에서 지어보인 그 태도에 마땅하게 자기의 몸가짐도 달라져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병실로 돌아오자 영태는 핼쑥해진 얼굴에 웃음을 담고 다가오는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니 어디 갔더노? 아무데도 가지 말고 여기 있거라. 오늘 오후는 쉰다컸제?》

《응.》

《재균이와 도익형은 일하고있나?》

《같이 오겠다 했는데… 갱장과 싸움을 했으나 빠지면 안된다고 해서 일을 끝내면 오겠다 했어.》

《그 사람들이 그럴끼이다. …》

영태는 친구들이 오는것을 막은 갱장을 념두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만 세월인가. 래일도 세월인데…》

친구들이 오늘 못 와도 요다음에는 올수 있겠지 하다가 영태는 자기 생각을 다른데로 돌리고있는듯 했다.

《뭘 좀 먹었나?》

점심전에 그가 부상당한것이 생각나서 창수가 물었다.

《참 여보, 창수가 밥 안 묵고 왔겠소. 뭘 좀 요기 할끼이 없소?》

《네, 있어요.》

경애는 밖으로 나갔다.

《서있지 말고 앉이라.》

영태가 창수를 올려다보았다.

창수는 갑자기 두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친구의 손을 감싸쥐고 흐느꼈다. 그가 고국땅에서 말몰이를 할 때 영태를 다시 만나보게 된 이후 그와 함께 보낸 나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부산교외의 영태와 영규가 살던 조그마한 만화가게 뒤방에서 한이불을 같이 덮고 지내던 그때로부터 하루도 떨어진 일이 없는 친구였다.

《창수야, 울지 말아라. 사람이 죽는기이 뭐이 슬프겠노. 내사 사는기이 더 몬 참겠더라. …》

경애가 곁에 없자 그는 처음으로 자기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하모, 사는기이 더 몬 참겠더라.》

영태는 조용히 뇌였다.

자기의 비상한 해학과 락천으로 온갖 비애와 불행을 누르며 이겨오던 이 고통의 아들은 죽음이 다가오자 자기가 감당해온 그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듯 처음으로 후우 한숨을 쉬였다.

《우리 집사람이 불쌍하지. 그 사람 생각하믄 내가 꼭 살아야 할낀데 그기이 안되게 됐지러. 어린애같은 그 사람이 내 없으믄 어떻게 살꼬…》

영태는 띠염띠염 자기 말을 이었다.

《내 없으믄 우리 영규도 울낀데… 전번에 보내준 기침약 묵고 효과를 좀 봤는지 모르것다. 우리 영규가 지 형수 뎃고 온다고 날 기다릴텐데…》

그는 자기자신과 이야기하고있었다.

《요새같은 뙤약볕에 아부님께서는 농사를 하시느라고 그 고생을 어떻게 하시는지… 혼자 진지를 끓이 자시면서… 내가 불효자식이지. 고향에 돌아가 살수 있는 몸이 몬됐지만… 족질이요 족손이요 하는것들한테 내가 속았지러. 하모, 여기로 와서는 안됐을끼인데… 우째도 내가 죽어서는 안될끼인데…》

그것은 너무도 뼈아픈 진실이였다. 창수는 심장이 터지는 아픔을 느끼며 영태의 손을 두손으로 잡고 세차게 흔들며 소리쳤다.

《영태! 자네가 죽다니?! 우리가 언제 한번 제대로 살아봤다고 죽음이 어쩌고 하며 쓸데없는 헛소리를 치는거냐. 영태! 여기까지 팔려와 자네가 죽어? 내가 죽어? 안돼, 죽어서는 안돼!》

영태는 눈물을 머금고 컥컥 막히는 소리로 꾸짖는 친구의 험악한 얼굴을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창수는 계속 부르짖었다.

《이 바보야! 평생 머슴살이를 하다가 이제 장가를 든지도 얼마 안되였는데 죽겠다고? 부산에서 제 형수 데리고 내릴 너를 기다리고있는 영규를 혼자 남겨두고 네가 죽겠다고? … 한번도 사람답게 살아도 못 보고서… 네발걸음치며 남의 땅에 와서 석탄을 캐다가 죽어? 영태야! 무슨 렴치로, 언제 한번 사람답게 살아봤다고 네가 죽겠다 하느냐! …》

피를 토하듯 부르짖던 창수는 영태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영태도 창수의 머리를 안고 울었다.

《창수, 니 말이 옳지러. 내가 죽어서는 안되지러. 경애를 혼자 남겨두고… 기침을 해싸며 날 기다리는 우리 영규를 두고 내가 죽어서는 안되지러! …》

영태는 벌떡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씻긴 굵은 돌부리같은 주먹을 들어 그는 자기의 가슴을 마구 치며 울부짖었다.

《지땅에 태줄을 묻은 백성들을 방망이질해 잡아떼갖고서 이런데로 팔아묵은 그놈들을 그냥 두고 내가 와 죽것노? 부모님들이 주신 몸에 남의 나라 탄가루를 뒤집어쓰며 살던 내가 와 이대로 죽것노? 앙이다! 내사 몬 죽것다! 내사 몬 죽것다!》

큰 주먹으로 자기의 가슴을 탕탕 치며 그가 울부짖고있는데 병실에 되돌아온 경애가 그 광경을 보고 쓰러져 울고 거기 있던 남조선탄부들도 모두 목놓아울었다.

이윽고 저녁무렵에는 재균이와 권도익을 비롯한 영태가 일하던 갱구의 탄부들이 그를 위문왔다. 트루게도 그들과 함께 왔다. 트루게는 영태의 상처를 보고 자기의 육친처럼 슬퍼했다.

침대가에 주런이 모여든 벗들의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던 영태는 매우 기뻐했다.

《아이고! 이렇게 친구들이 많이 와주니 칼 쓴 놈도 춤을 추겠네!》

영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자신을 칼 쓴 몸으로 알고있었다.

열흘후 윤영태는 경애와 그리고 창수를 비롯한 벗들이 비통한 눈길로 지켜보는 가운데 위독상태에 빠져있었다.

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있던 의사는 묵묵히 청진기를 거두었다.

《림종입니다. …》

의사가 말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영태의 젊어서 얻은 주름이 깊이 잡힌 넓은 이마와 탄가루에 그을린 덩그런 코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경애는 남편이 당부한대로 울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되지 않았다. 억제할수록 높아만 가는 그의 애된 울음소리가 영태를 지켜보고 선 벗들의 가슴을 찢었다.

마치 젊은 안해의 울음소리를 듣기나 한것처럼 영태의 커다란 가슴이 파도쳤다.

문득 그는 천천히 긴숨을 내쉬며 눈을 뜨더니 자기에게 매달려 우는 안해를 이윽토록 바라보고있었다. 경애의 울음소리가 더 높아졌다. 영태의 팔이 떨리더니 손이 약간 움찔했다. 안해의 머리를 쓸어주려 했으나 힘이 없었던것이다.

이윽고 그는 벗들의 정다운 얼굴을 마지막으로 눈동자에 새기고 가려는듯 한사람한사람 살펴보았다. 그의 눈길이 창수에게 못박혔다. 이어 시선은 다시 주위에 모인 모든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영태는 빙긋이 웃으며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이런 말을 남겼다.

《허어! 처음 죽어보니께 잘 죽지 않는다이. …》

그리고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

윤영태의 장례식은 도이췰란드의 풍습대로 지내게 되였다. 창수는 처음에 그것을 반대했으나 그 풍습을 따를수밖에 없었다.

장지는 경애가 일하고있는 병원 가까운 공동묘지로 정해졌다.

경애는 자기가 3년만기를 채우고 귀국할 때 남편의 유골을 고국에 옮기겠다면서 자기 일터 가까운 곳에 묘를 쓸것을 한사코 원했던것이다.

부근에 있는 도이췰란드장의사에서 온 늙은 상두군들이 나와서 많지 않은 조객들이 침통한 눈길로 지켜보는 가운데 도이췰란드식대로 평토장을 치르었다.

추도사가 끝난 후 순서에 따라 검은 상복으로 몸을 두른 고인의 안해가 먼저 흙을 관우에 뿌렸다. 경애는 일찌기 자기가 고국을 떠나올 때 비닐봉지속에 담아왔던 고국땅의 흙을 남편의 관우에 얹어주고있었다.

고국땅을 잊지 않으려고, 어머니의 숨결을 언제나 가까이 느끼고저 그가 간수해온 한줌의 흙이, 젊어서 간 남편의 령혼을 빌며 기막힌 피눈물이 되여 덮일줄 어찌 알았으랴!

흙가루가 푸실푸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경애의 울음소리가 높아졌다. 그가 뿌리는 흙과 몇송이의 백합꽃이 던져졌다.

창수는 이역땅 공동묘지 한구석에서 고인의 안해가 흐느끼며 뿌려주는 고국의 흙을 침통한 눈길로 지켜보고있었다.

자기를 더는 거기서 못살게 내쫓은 땅에서 파온 흙을 몸에 받으면서 영태는 땅속에서 아마 새로운 풍자와 분노의 말을 고르고있을것이라고 창수는 생각했다. 다만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것은 너무도 일찌기 홀몸이 된 안해가 자기의 입을 틀어막고있기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영태의 관 한귀퉁이에 떨어지고있는 도이췰란드의 흙보다 붉은색이 도는 고국의 흙을 창수는 그대로 지켜보고있었다.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들던 세상의 그 어떤 고통앞에서도 놀라지 않던 담력을 지닌 사나이, 온갖 불행을 웃으며 맞받아나가던 그 건강한 신체, 설음과 원한에 가슴이 숯등걸처럼 타도 항상 락천과 해학으로 주위를 밝히며 애달픈 희망(그것은 고향에서 새 집 짓고 살고싶은 그것이였다.)을 이야기하던 그 소박한 얼굴…

그는 또 얼마나 인정깊고 슬기로왔던가!

영태의 그 담력과 근면과 슬기를 가진다면 그 무엇인들 못하랴! 그러나 진실로 인간이면서도 사람다운 삶을 누려보지 못한채 민족의 비애를 안고 이역의 돌덩이에 가슴을 짓눌려 죽은 청년, 팔려온 노예…

창수는 너무나 일찍, 너무나 많은 원한을 안고 가는 그가 살아보지 못한 참된 삶의 공백을 자기의 가슴에 안겨주며 당부하는것 같았다. 자기대신에 인간다운 삶을 살아달라고…

흙이 뿌려지는 소리가 다시 창수의 심장에 마쳐왔다. 그 가벼운 흙소리는 영태가 지고다닌 그 무거운 고통과 함께 아득히 먼 고국과의 거리를 창수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머리가 아찔해지는 그 먼거리앞에서 이를데없는 공허감을 느꼈다. 그러고보면 그 머나먼 거리는 영태와 자기와 모든 친구들이 고국에서 떨어져 내려온 삶의 막장, 지옥과 다름없는 막바지로 쫓겨온 그 깊이였다.

영태는 바로 창수 자기에게 그 고통의 무게와 깊이를 재여보이고 여기에 쓰러진것이 아닌가.

창수는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남은 고국의 흙을 고인의 관우에 뿌려주다가 더는 참지 못해 영태의 무덤우에 쓰러지며 비통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영태야… 영태야! …》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중에는 이 지방에 내려와있는 하준혁도 섞여있었다.

장지 가까운 길목에서 자동차 멎는 소리가 나더니 대사관관리인 윤종기수석로무관이 내렸다.

한 탄부의 장례식을 계기로 남조선탄부들속에서 심상치 않은 공기가 돌고있다는 조진규통역원의 련락을 받고 온것이다. 윤종기는 거짓슬픔을 얼굴에 나타내보이며 손을 앞으로 모아쥐고 입을 열었다.

《대사관을 대표해서 조의를 표하려고 왔는데…》

모두가 그를 노려보았다. 무덤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채 어깨를 떨고있던 창수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는 피발선 눈으로 윤종기를 노려보고있다가 돌연 곁에 놓인 삽을 틀어쥐고 일어섰다.

창수는 삽날을 추켜들고 수석로무관을 향해 내달았다.

그 서슬에 윤종기는 급히 뒤로 물러서더니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동차있는쪽으로 반달음을 쳤다.

그를 뒤쫓아가는 창수를 누가 뒤에서 붙잡았다. 하준혁이였다.

《창수군, 진정하게! …》

창수는 자기의 어깨를 틀어잡은 스승의 손을 뿌리치며 윤종기를 뒤쫓으려 했으나 이미 수석로무관이 탄 자동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하준혁은 며칠간 묵게 된 려관방에서 창수와 마주앉아있었다. 그는 하루밤사이에 눈이 쑥 들어가고 볼이 패인 제자가 하는 이야기를 심각한 얼굴로 듣고있었다.

《저는 숱한 죽음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죽음의 뜻을 깨달은 때는 없었습니다. 다른 죽음도 다 그랬었지만… 영태는 피살당한것이였습니다. 동족을 노예로 팔아먹은자들때문에 영태가 죽었습니다. … 전 분해서, 억울해서, 그놈들을 쳐죽이지 못해서 울었습니다.》

《옳은 말이네. 그것은 엄연한 피살이고말고.》

하준혁은 고역에 거칠어진 제자의 커다란 손을 바라보며 계속했다.

《비참이란 말, 불행이란 말이 있지만 이 지구우에서 한국땅처럼 더 비참하고 고통에 찬 땅은 없어.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강대국의 총알받이로 끌려가고, 외화를 위해 노예로 팔리고, 숱한 녀자들을 외국놈들의 노리개로 던져주고…》

준혁의 격한 목소리를 들으며 창수는 함께 흥분했다. 준혁은 일어나 방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약육강식이 작용하는 야수적이고 썩어빠진, 타락한 자본주의사회하에서는 인간의 참삶을 기대할수 없는것이 명백하지. 더구나 한국과 같은 식민지조건에서는 더 말할나위조차 없네. 그런데 군이 체험한바와 같이 한국은 식민지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비참한 비극의 집결처로 되여있네. 이 지구우에서 이런 생지옥은 더는 찾아볼수 없네. 이런데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수 있겠는가?!》

그는 문득 발길을 멈추고 서서 주먹을 틀어쥐였다. 준혁은 계속했다.

《인간의 생명을 치부의 목적으로 간주하는 그런 땅에서는 모든것이 상실되고 죽어가고있네. 그러니 그런 조건하에서 영태군의 죽음은 불가피했지. 군의 말이 옳네. 그의 죽음은 타살이였고 피살이였네. 통분한노릇이네.》

준혁의 눈에서는 불이 뿜기는듯 했다.

스승이 안고다니는 심중의 고통을 알게 된 제자는 존경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저는 간밤에 잠을 이룰수 없었습니다. 모진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난 영태가 오히려 산 사람들을 동정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입니다. 이 참을수 없는 처지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면 무엇때문에 우리가 살아야 합니까?》

스승은 이윽토록 대답이 없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창수군! 나도 군과 같은 그런 체험을 한적이 있었네. 참을수 없는 민족적고통과 비애앞에서 통곡하고 전률하고… 출구를 찾으려고 몸부림을 쳤더랬어.》

준혁은 잠시 말을 끊었다.

《언젠가 군이 함부르그에 들렸을 때도 말한 일이 있었지. 어떠한 사회가 진정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수 있겠는지 탐구하고있다고…》

《기억하고있습니다.》

창수는 스승의 그 말을 잊지 않고있었다. 준혁은 자기가 걸어온 탐색의 행로를 더듬는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겪고있는 그 모든 비참과 고통이 어디서 오고있는가? 왜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세계와 자기자신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한번은 품게 되는 이 의문을 나도 품게 되였더랬네.》

준혁의 얼굴엔 더욱 진지하고 엄격한 빛이 떠돌았다.

《민족적존엄과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인간의 존엄이 유린될수밖에 없다는것, 민족적자주가 보장되지 않고는 청년들이 팔려가야 하고 녀자들이 외국놈들에게 몸을 바쳐야 하고 그리고 참된 삶이란 있을수 없다는것을 나는 심장으로 깨닫게 되였네.》

창수는 불타는 시선으로 스승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외세가 강토를 유린하고있는 땅에서 민족적자주란 있을수 없고 외세의 주구들이 집권하고있는 정치풍토에서는 다시말해서 매국노들이 총칼을 휘두르고있는 풍토에서는 동족의 목숨보다 딸라와 마르크가 더 소중할것은 정한 리치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한국땅, 창수군과 내가 살고있는 땅이 아닌가!》

창수는 스승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의 생각을 토로했다.

《선생님의 말씀은 제가 살아온 세상을 더 똑똑히 알수 있게 해줍니다. 저는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나라가 없이 살아왔습니다. 제가 겪은 설음중에서도 가장 큰 설음이 저를 윁남으로, 서도로 내쫓은 무서운 채찍은 있어도 저를 보살펴주고 보호해주는 참다운 주권이 이 땅에 없구나 하는 그 설음이였습니다.》

《바로 그것이였네!》

비록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으나 지나온 그의 피와 눈물에 젖은 생활로 뒤받침한 창수의 말은 준혁에게 비상한 충격을 주었다. 그 말은 비단 그가 항상 사고해본 자기 세대와 다음 세대 즉 창수네들의 세대가 부딪쳐 그 많은 문제들의 기본핵을 찔렀다고 보았기때문이였다. 그는 제자에게 반문했다.

《나라라고는 하는데 자기 나라가 아니였다 그 말이지?》

《그렇습니다.》

《식민지란 따로 있는것이 아니네. 외세가 판을 치고 외세의 코김에 따라 움직이는 위정자들, 매국역적들이 판을 치는 곳이 바로 식민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

창수는 생각에 잠겼다. 준혁이 계속했다.

《그러나 락심말게. 우리에게는 진정한 조국, 참된 나라가 있네. 민족의 존엄과 전통과 자주가 확고히 서있고 따라서 인간의 자주성과 창조적능력이 활짝 꽃피고있는 새 사회가 이북땅에 펼쳐져있네.》

그는 자기가 북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모든 제도를 연구하게 되고 민중들의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대해 사색한 지난 나날을 이야기해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계만방의 앞장에서 국위를 떨치고있는것을 보고도 나는 처음엔 그것을 깊이 리해하지 못했었네. 부끄러운 일이네만 민족반역적인 <반공법>을 휘두르는 무리들앞에 도전하지 못하고 이북사회를 접해보려는 적극성이 부족한데서 잘 리해 못했었네.》

그는 창수에게 질문했다.

《창수군은 사람마다 날 때부터 먹고 입고 쓰고살 권리를 가지게되고 일할 권리와 휴식할 권리, 병이 나면 무상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수 있고 교육을 받을수 있는 그러한 권리에 대하여 생각해본적이 있었던가?》

《없었습니다. 그런 권리를 상상도 할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권리들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물질적으로 안받침해주고있는 나라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네! 그렇지, 거기서는 사람들이 남의 나라에 팔려가는것이 아니라 나라를 빼앗겼던 일정때 외지로 쫓겨갔던 동포들이 돌아오고있네.》

준혁은 자기가 알게 된 재일동포들의 귀국과 관련된 감격적인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리가 찾아헤매던 참된 조국이 바로 이것이네. 그래서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조국이라고 단언한것일세. 이것이야말로 우리 전체 조선민족의 참된 조국이 아니겠는가!》

《…》

창수는 새로운 충격을 안고 북으로 귀국하고있는 재일동포들이 첫발을 올려놓는 청진항과 자기가 미국놈의 수송선에 실려 외국으로 끌려가던 부산항을 나란히 눈앞에 그려보았다.

환희와 비탄, 삶과 죽음, 조국과 이역!

준혁은 밝은 얼굴을 제자에게 돌렸다.

《그러한 조국을 세워주신분이 바로 온 세계의 진보적인류로부터 주체의 태양으로, 탁월한 스승으로, 령도자로 무한한 존경을 받고계시는 위대한 일성장군님이시네!》

창수의 심장은 무한한 감격과 흥분으로 하여 세차게 고동쳤다.

그는 스승에게 말했다.

《저는 영원히 이날을 잊지 않을것입니다. 저에게 조국이 있음을 가르쳐주시고 일성장군님의 품속에서 살날이 올것이라고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말씀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준혁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창수가 윁남에서 귀환하던 길로 문산에 가있던 자기를 찾아와 하던 말을 회상하였다.

창수에게도 그때 하던 준혁의 말이 되살아났다. 두사람은 미소를 주고받았다.

며칠후 창수는 함부르그로 되돌아가는 준혁을 바래주기 위해 역에 나와있었다.

하준혁은 멀어져가는 기차에서 자기를 향해 손을 흔들고있는 제자의 모습을 바라보고있었다.

하준혁을 만나던 시간과 거의 같은 시간에 윤옥이가 있는 양로원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빚어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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