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제 3 장

비애의 바다너머

11

 

세월이 흘러갔다.

어두운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있었다. 고달픈 이국살이에 거칠어지고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쓰다듬어 잠재워주려는듯 소복소복 내리는 굵은 눈이였다.

창수는 시계를 보다가 방안의 은밀한 장소에서 책 한권을 꺼내여 정중히 책상우에 놓았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로작이였다. 벌써 여러달째 열심히 학습하고있는 책이다.

창수는 문득 눈내리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마음속의 깊은 곳을 응시하고있었다.

그는 하준혁으로부터 위대한 일성장군님의 로작을 처음으로 받아안던 명절같은 그날을 회상하였다.

그것은 마가을의 소슬비가 잔잔히 내리던 어느날 저녁이였다.

그가 동무들이 기다리고있는 이웃마을로 가려고 집을 막 나서려는데 하준혁이 찾아왔었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가고 물어도 대답없이 두손으로 창수의 두어깨를 짚고 선 그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했다. 스승은 열정에 불타는 눈으로 제자의 얼굴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이 있고말구, 그것도 아주 중대하고 좋은 일이 있지!》

그는 가방속에서 겹겹이 포장한 네모반듯한것을 꺼내더니 두손으로 정중히 창수에게 넘겨주었다.

《열어보게, 어떤 책인가! 목숨처럼 귀중히 간수해야 하네.》

포장을 헤쳐보니 김일성장군님의 로작이였다. 창수는 가슴이 후더워왔다. 더구나 첫장을 열었을 때 선명히 비쳐오는 거룩한 장군님의 영상을 우러르자 무한한 감격으로 금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선생님, 이렇게 귀중한 책을 저에게 주십니까!》

스승을 쳐다보는 그의 눈은 젖어있었다.

《깊이 학습하게. 세상의 모든 진리가 밝혀져있네. 창수군과 우리모두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것을 가르쳐주는 책이네!》

준혁은 비발이 휘뿌려지는 창밖으로 생각에 잠긴 눈길을 보내며 조용히 계속했다.

《나는 평생 공부를 해오는 사람이네. 수많은 책을 읽어보았네. 사회학, 정치학설, 철학서적들, 동서양의 유명한 지성의 거인들이 남긴 전집들과 선집들을 열심히 읽었지. 그중에는 편견으로 찬 유해로운것도 많았지만 무척 감동을 주며 나의 지성을 키워준 좋은 책도 적지않았네.》

그는 열정적으로 계속했다.

《그러나 이 책처럼, 일성장군님의 로작처럼 나를 감동시키고 기쁨에 가슴뛰게 한 책은 세상에 없었네. 장군님의 로작속에 담긴 위대한 자주사상! 그것은 인간해방을 위한 최고의 철학이네. 우리 민족은 물론이고 온 인류를 행복하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락원으로 인도하는 찬란한 기치이지!》

스승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는 창수의 눈앞에는 그가 마음속깊이 그려오던 황홀한 새 세계가 펼쳐졌다.

준혁은 방안을 거닐며 말을 이었다.

《그속에는 모든것이 다 있어. 외래침략자들을 쳐이기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그놈들과 한짝이 되여 나라를 팔아먹고 민중의 피와 기름을 짜먹는 매국노, 지주, 매판자본가, 반동관료배와 같은 추악한 놈들을 쳐부시는 방법이 있지. 그런가 하면 로동계급이 자기가 주인인 나라를 세우는 방법 또 나라를 부강하고 자유로운 락원으로 건설하는 방법 등 없는것이 없어. 한마디로 이렇게 말할수도 있겠지. 주체사상이란 천대받던 로동계급을 비롯한 근로하는 인민이 세상에 있는 만물의 주인으로 되게 하는 위대한 과학이라고… 그래서 인간해방의 최고철학이란거야. 나도 아직 공부가 짧지만 벌써 인생관이 확 달라졌거던. 알겠나? 창수군도 열심히 공부해보라구! 그러면 세계가 우러러 칭송하는 위대한 일성장군님을 따르는것보다 더 큰 보람, 더 큰 행복이 없다는걸 알게 될거네!》

이렇게 말하는 준혁은 온몸이 빛나는것만 같았다. 그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어려있었다. …

창수는 지금도 그 빛나는 눈을 보는것만 같았고 그때에 받은 그 형언 못할 감동이 다시금 온몸에 되살아옴을 느꼈다.

그는 오래도록 위대한 일성장군님의 영상을 우러러보았다.

한없는 예지와 자애에 빛나는 거룩한 영상, 그이의 영상을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창수의 얼굴은 무한한 감격에 넘쳐있었다.

지치고 거칠어지고 얼음이 박힌 마음속에 불이 켜지고 활짝 꽃이 피는것만 같았다. 눈부신 해돋이바다앞에 선것처럼 마음이 열리고 저도 모를 힘이 차올라 세상에 무서울것이 없을것 같았다. …

그는 학습에 들어갔다.

…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은 생명입니다. 사람이 사회적으로 자주성을 잃어버리면 사람이라고 말할수 없으며 동물과 다름없습니다.

사회적존재인 사람에게 있어서는 육체적생명보다도 사회정치적생명이 더 귀중하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비록 목숨은 붙어있어도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정치적자주성을 잃어버린다면 사회적인간으로서는 죽은 몸이나 다름없습니다. …

일성장군님께서 몸소 창수에게 말씀해주시는것만 같았다.

창수는 그 누구로부터도 이처럼 살뜰하고 따뜻한 말을 들어본적이 없다고 느껴졌다. 일성장군님께서는 그가 걸어온 고통에 찬 길을 헤아려보시고 이렇듯 따뜻하고 힘찬 말씀으로 그의 손을 잡고 이끌어주시는듯싶다.

창수는 윁남전쟁마당에 끌려갔던 그때로부터 이역만리 탄광촌으로 흘러오게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사람으로서는 감당할수 없는, 피와 눈물이 질쩍이던 형극의 길에 대해 회상했다.

포연에 잠긴 윁남의 밀림속에서 미국놈들의 총알받이로 개죽음을 당한 수많은 친구들의 얼굴이 그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부상당한 자기를 등에 업고 흙탕물을 튕기며 달려가면서 여기서 이런 꼴로 죽어서는 안된다고 울먹이던 송일병과 황상병의 주검이 눈앞에 선했다.

창수와 한분대에 속해있던 그들은 늘 파병도중에 탈영한 윤영태상병을 부러워하고있었다.

송일병이 짊어진채 죽은 그 배낭안에는 식모살이로 들어갔다는 자기의 누이동생을 생각하며 구해둔 긴 녀자양말과 편지봉투들이 여러장이나 있었다. 그속에는 문맹자인 그가 창수 자기더러 대필해달라고 해서 써준 미처 보내지 못한 그의 고향 부모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들어있었다.

륙자배기를 잘 부르던 황상병은 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였었다.

그의 배낭속에서도 고향에서 온 편지가 있었다. …

그리고 그 두사람이 살아있을 때 그렇듯 부러워하던 윤영태도 서도이췰란드탄광에 흘러와 무참히 죽은것이다.

산 사람의 처지도 다를바없었다. 소나 말보다도 무서운 고역을 강요당하고 아무런 죄도 없이 지하실에 갇혀 깡패들에게 의식을 잃도록 채우고 짓밟혀야 했다.

제땅에서 태여났음에도 제땅을 위해 일할수 없고 제땅에서 마음놓고 살수 없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사람을 총칼과 자본으로 죽이고 짓누르고 몇푼의 딸라와 서슴없이 바꾸어 팔아먹는 박정희일당과 그놈들의 상전인 미국놈들과 왜놈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그 누구도 사람답게 살수가 없는것이다.

창수는 민족의 태양이신 일성장군님께서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에게 있다고 하신 말씀을 온 심장으로 받아들였다. 삶을 포기할수 없는것처럼 투쟁은 삶을 위한 갈망이였다.

생활의 파괴자들, 인간의 존엄과 민족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무리를 쳐부시지 않고서는 살수도 없고 삶자체가 무의미하다는것은 불을 보듯 명백했다. 오직 투쟁의 길만이 삶의 길, 행복의 길, 자유의 길이다. …

장군님의 로작을 학습하며 창수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가슴에 안았다.

그는 조용히 머리를 들었다.

눈앞에는 온 세계인민들이 우러러 흠모하는 위대한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밝혀주신 찬란한 앞길이 활짝 열려있었다.

그 길이 바로 윤옥이와 함께, 한재균과 권도익과 함께 일성장군님의 민족자주사상을 배우며 그려보는 새세상, 참된 조국을 찾는 길이였다.

그것은 투쟁의 길이였다. 박정희무리들을 타도하는 길이였다.

창수는 문득 심장을 죄이는 아픔을 느꼈다.

자기가 깨닫게 된 이 진정한 삶의 길, 진리의 길을 찾기도 전에 아깝게 희생된 벗들의 고통에 이그러진 모습들이 안겨온것이였다.

그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영태부부가 살던 방이다.

구석에 영태의 닭알색트렁크와 경애의 트렁크가 포개여져있던 방이다.

영태와 함께 일성장군님의 품에 안길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기쁘랴!

지금 자기와 함께 진리를 배우고있는 재균이나 도익이와 함께 그도 어깨겯고 함께 간다면 얼마나 좋으랴! …

이렇듯 깊은 생각에 잠겨 로작을 읽고 또 읽어가는데 일을 마친 윤옥이가 약속한 시간에 나타났다. 창수는 그에게 장군님의 로작을 넘겨주었다.

그는 그것을 안고 되돌아갔다.

문밖까지 바래주러 나온 창수와 헤여져 양로원기숙사쪽으로 가고있는 윤옥은 갓난아이 태호를 안고 먼저 귀국하던 경애를 붙안고 함께 울던 일을 회상하고있었다.

그리고 자기도 창수처럼 학습을 열심히 하여 고국에 돌아가면 꼭 경애에게 참된 삶의 길을 깨우쳐주겠다고 마음먹고있었다.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일성장군님의 로작을 가슴에 안고 눈내리는 들길을 총총히 가고있는 윤옥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리창수는 어깨에 눈을 맞으며 탄광언덕길에 서있었다.

그는 언제나 가슴을 아프게만 해오던 윤옥과의 상봉과 리별에 대하여 생각하고있었다.

삶의 희열과 기쁨을 안고오던 걸음으로 되돌아가는 윤옥을 바라보며 그는 처음으로 가슴속에서 샘솟는 기쁨과 희망을 느끼고있었다.

 

주체63(1974)년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