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2장 칼과 목탁

6

 

유정은 읍거리를 벗어나 반나절쯤 가다가 어느 산밑 촌락에서 우뚝 서버렸다.

동네의 가옥들이 온통 불에 타서 재더미만 남았는데 매캐한 연기가 뿌옇게 서린 집뜨락들과 길가에는 칼날에 헤갈리우고 탄환에 짓터져 피투성이로 변한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피비린내, 살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제 밤 식량략탈을 나왔던 왜군들이 저지른 만행이라는것이였다.

유정은 까무라칠듯이 놀라며 굳어졌다. 자기가 왜군장수들앞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선과 자비를 목이 쉬도록 설교하고있을 때 뒤에선 이런짓이 벌어졌기때문이였다.

피가 꼭두로 치솟고 흉중에서는 홍두깨가 와들짝 요동을 쳤다.

《옴마야- 옴마야-》

지척에서 예닐곱살났을 계집애가 젊은 녀인의 시체를 허비며 슬피 울고있었다.

녀인은 칼에 젖가슴이 란탕쳐진 상태인데 놈들이 잘라갔는지 두귀마저 없었다.

으흐윽- 하고 오열을 삼키던 유정은 장삼을 벗어 시신을 덮어주었다.

그러다가 손에 시뻘건 피가 질벅히 묻었다.

유정은 피묻은 두손을 떨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우매하도다. 이런 아수라(불교에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악한 귀신)들을 사람종자라고 여겼던 내가 어리석지.》

처절한 회오로 해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유정은 녀인의 시체를 산기슭에 감장해준 후 계집애를 업고 다시 길에 나섰다.

그는 로상에서 초토사가 되여 군사를 모집하러 다니는 김판서를 만났다. 애젊어 한때 문우로 사귄적이 있는 김판서한테서 팔도강산 어디나 다 전란의 불바다에 잠겼고 이 몇달새에 조선관군이 풍지박산된 사실을 알았다.

왜군이 도처에 쫙 널렸으며 살기등등해진 놈들이 요즘 압록강가로 쫓겨간 조선국왕을 사로잡고 명나라까지 들이치려고 날뛴다는 말을 들은 유정은 그만 절망하여 몸서리쳤다. 어허어- 이 나라는 풍전등화의 신세가 됐구나. 국왕도 지경끝으로 쫓겨나고 유명한 장수들과 군사들이 몰살됐으니 이제 무슨 힘으로 기울어진 운명을 바로잡으랴.

옛적에 입적하던 날 수계의식을 주관하며 사미십계(사미승들이 지켜야 할 10가지 계률)를 주던 법사의 지엄한 음성이 하늘공간에서 되울렸다.

《…손에 무기를 잡지 말고 사냥을 하지 말라. 장사나 점치는 일을 하지 말고 풍년, 흉년에 관심하지 말며 나라일에 참견말라. 부모처자나 친척친우들, 고향사람들을 생각지 말라.》

물론 불법의 리치상 나의 나라, 나의 사람들, 나의 재산이란 있을수가 없는것이다. 불법에서 일체 번뇌를 일으키는 없애야 할 여덟가지 생각중에 고향과 부모친척을 그리는 《친리각》, 나라를 생각하는 《국토각》, 문벌을 생각하는 《족성각》같은것을 꼽고있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속세를 등지던 그날부터 수십년동안 철칙으로 삼아온 불법이였건만 지금은 그에 대한 충의적인 복종감이 희미해지고 반발심이 살아났다.

아무리 세상을 등졌다 한들 중도 밥을 먹으며 살고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일진대 제 나라, 제 사람들의 운명에 무관심할수가 있으랴.

유정은 격한김에 낮과 밤을 내처 걸었다. 구배심한 온정령을 넘어 수십리에 달하는 신계사 골안지름길, 구룡연벼랑길, 신라 마의태자릉 비탈길을 밤새 이어걸어 해뜰녘에는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근처에 이르렀다. 표훈사와 유점사로 빠지는 측대봉골짜기로 곧추 질러넘으려고 비로봉등판 오솔길을 휘적휘적 톺아올랐다.

하늘을 떠이고 아득히 치솟은 비로봉마루에 올라서니 금강산의 1만 2천 봉우리가 눈아래로 굽어보이고 흰 구름은 발부리를 감돌았다. 아침안개가 축축히 드리운 전나무, 측백나무밑에서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키니 화끈 달아올랐던 가슴이 한결 식어져 개운해진다.

저 멀리 동해 삼일포와 총석정의 정기를 담아싣고 불끈 솟아오르는 불덩어리같은 둥근해가 하늘, 땅, 바다, 구름을 온통 시뻘겋게 물들이며 천봉만악들에도 황홀스러운 일만경치를 펼친다.

동쪽으로는 고성과 통천앞바다에, 서쪽으로는 말휘리근방에 뿌리를 박고 북쪽의 통천 국도와 남쪽의 감호까지 백여리지역에 웅좌를 틀은 금강산은 실로 그 모습이 장관이다. 집선봉, 일출봉, 초대봉, 채하봉들은 칼끝처럼 뾰족하고 기세찬데 온정령에서 오봉산까지 뻗어온 북쪽등마루와 내무재령에서 차일봉에로 굽이친 남쪽등마루 그리고 관음련봉들은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다. 또한 장수의 위용을 시위하는듯 한 장군봉과 날창을 추켜든 군사의 모습을 방불케 하는 채하봉은 볼수록 미덥고 장엄하기가 그지없다.

그 호걸스러운 산악의 위세는 사철 눈꽃 피여나는 수정봉의 수정체들과 기암괴석이 층층계단을 이룬 사자봉의 황홀한 절경에 의해 더욱더 돋구어지는듯싶었다.

어느덧 중천에 걸린 눈부신 태양이 백광의 열기를 내뿜어 젖빛안개발을 휘걷자 가까운 산, 먼산들에 널린 가지가지의 물상들과 칠색무지개 령롱한 명소들이 시야로 안겨들며 만시름을 가셔준다. 심기가 어지간히 느긋해지자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현무(북)쪽으로 향작을 두며 한줄기로 뻗어 솟음친 백두산, 묘향산, 지리산, 한나산 등 삼천리전역의 금수강산이 화폭으로 떠오른다.

그러자 한찰나 격류마냥 흐름치던 감흥은 불시에 아픔으로 변해 심장을 모질게 비틀어댄다.

이 아름다운 산천, 금은보화 가득찬 이 땅, 이 나라를 감히 강탈하려들다니?! 안된다, 이놈들아!

유정은 《아-아-악-》 고함을 치며 아찔한 절벽아래로 몸을 날렸다. 천길나락을 던져진 돌덩이마냥 곧추 떨어지다가 날쌔게 벼랑중턱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느릅나무가지를 부여잡고 매달려 한숨 돌리고는 재차 휙휙 두어고패 몸을 휘돌리는듯싶더니 나무가지를 놓고 허공을 가로썬다.

《이 땅의 호걸들이 다 죽은줄 아느냐?-》

분노한 웨침이 골짜기에서 드르릉 공명을 일으킴과 동시에 그의 모두 발차기에 맞은 벼랑턱과 무쇠주먹타격을 받은 바위가 풀썩 먼지를 일으키더니 돌가루로 변해 휘뿌려진다.

 

금강산에 들어선 유정은 유점사에 들려 자기를 눈빠지도록 기다리던 식솔들과 문안을 나눈 후 인차 표훈사로 올라갔다. 로삼주지와 왜놈치는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표훈사에서는 중들이 섬벙거리며 피난짐을 꾸리고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짐짝 꿍지는 젊은 중들한테 이래라저래라 훈시를 하던 로삼이 유정을 보자 환생한 부처를 보기라도 한듯이 펄쩍 반색을 하며 뛰쳐나왔다.

《무사했구려! 원, 사람의 간장을 그렇게두 태우시오? 송운을 찾느라고 사방 돌아다니다가 허탕만 치고 엊그제야 돌아왔소. 대체 어딜 갔댔소?》

《왜군을 기갈질해 교화하자고 찾아갔댔소.》

《그처럼 장한 거사를 어째 혼자 단행하셨소? 그래 별고는 없었소?》

《별고는 무슨 별고. 특대우를 받으며 잘 먹고놀다가 왔는데.》

《역시 송운은 대틀이웨다.》

로삼은 엄지손가락을 내흔들며 감탄했다.

쓸쓸해서 그를 응시하던 유정은 여기선 왜 이리 부산인가고 거슬리는 말투로 물었다.

《현재 상황에선 식솔들을 당분간 피난시키는게 상책인것 같아 자릴 옮기는 중이요.》

《피난이나 새나. 병쟁기를 가지고 떨쳐나 그것들을 쳐죽이면 될텐데.》

유정이 을근해서 내뱉는 소리에 로삼의 눈이 떼꾼해졌다.

《뭐, 살인쟁기로 생사람을 쳐죽인다고?! 도대체 지금 제정신이요?》 이러며 한길이나 올리뛴다.

《내 듣긴 왜군이 명나라로 가느라 길을 빌렸다던데 군사들이 원정도중 식량과 재물을 탐내 못되게 놀았다면 설법으로 교화를 해야지 창이나 칼로 찔러죽이자니 그게 어디 불도인이 할짓이요? 스산하기란 참.》

손을 홰홰 내젓던 로삼은 표훈사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며 대문을 탕 닫고 들어가버렸다.

《얼빠진 수작이라구야.》

기가 막혀 입이 항 벌어진채 담장안에 한참이나 눈총을 쏘던 유정은 믿고 의지하려던 언덕이 무너졌을 때처럼 허전한 심정이 되여 돌아내려왔다.

그날 저녁이였다.

활을 메고 말을 탄 젊은 중이 유점사에 나타났다.

《묘향산의 서산대사님께서 보내서 왔소이다.》

《뭐, 휴정스님께서?!》

승방안에 우두커니 앉은채로 행색이 류다른 중을 의아스럽게 내다보던 유정은 튕기듯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그래 스님께선 지금 어떻게 지내나?》

《서산대사님께선 친히 관서승의병대를 무으셨고 얼마전에는 임금님으로부터 8도 16종도총섭(전국의 승의병들을 통솔하는 총대장)이라는 임명장까지 받으셨소이다.》

《휴정스님께서 총의병대를 조직했단 말이지?》

《예. 대사님께서 보내는 서신이옵니다.》

묘향산에서 온 젊은 중은 씽긋 웃으며 품속에서 종이말이를 꺼내 유정에게 넘겨주었다.

유정은 그것을 정중히 받아 펴보았다.

 

이 땅 방방곡곡의 산중사찰에 웅거한 중들이여!

조상대대로 물려오는 삼천리금수강산 내 나라를 빼앗으려 하고 백성을 해치는 흉악한 왜적을 쳐물리치기 위해 떨쳐나서자. 손에 병쟁기를 잡으라! 무장한 원쑤는 무장으로 맞서야 이길수 있다. 나라가 망하면 승려의 운명도 비참해진다. 모두다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분발하라. 젊고 힘있는 중들은 용약 전장으로 나서고 늙고 병든 중들은 절간에 남아 애국애민의 기도를 열심히 드리라!

 

유정은 흉중이 끓어올라 숨이 막힐것만 같았다. 격정을 금치 못해하는 그한테 묘향산의 승병이 보짐을 헤치더니 하얀 명주천으로 감싼 딱딱하고 기다란 물건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주었다.

《서산대사님께서 유점사주지님한테 보내시는 무기옵니다.》

《?!…》

유정은 떨리는 손길로 그 물건을 넘겨받아 명주천을 풀었다.

장검이 나졌다.

왼쪽손으로 옻칠을 한 갑을 잡고 오른쪽손으로는 룡문양이 새겨진 자루를 쥐고 당기니 번쩍 광채를 뿜는 길다란 칼날이 삐여져나왔다.

《서산대사님께서는 그 칼이 사랑을 지키고 사랑을 실현하는 대자대비의 가장 위력한 수단이라고 하시며 친히 자비검이라는 이름까지 달아주셨소이다.》

선들선들 날이 서고 창창 여무진 소리를 내는 장검을 어루쓸며 눈시울을 슴벅이던 유정은 격앙된 음성으로 뇌였다.

《스님께서 우리 불승들한테 불법의 진짜 리치를 깨우치셨구나. 불법의 진리를…》

 

련재
[장편력사소설]사명당 제1부 (제3회)
[장편력사소설]사명당 제1부 (제4회)
[장편력사소설]사명당 제1부 (제5회)
[장편력사소설]사명당 제1부 (제6회)
[장편력사소설]사명당 제1부 (제7회)
[장편력사소설]사명당 제1부 (제8회)
[장편력사소설]사명당 제1부 (제9회)
[장편력사소설]사명당 제1부 (제10회)
[장편력사소설]사명당 제1부 (제12회)
[장편력사소설]사명당 제1부 (제13회)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7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