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2장 청춘의 분수

15

 

하자영교수는 그의 짧지 않은 생애에서도 그와 같이 격동하는 날들을 일찌기 보지 못했다.

력사에 크게 기록된 날들이 일초일초를 피로 기록해가며 격랑으로 흐르고있다.

슬프고 애처롭고 통분한 일도 많았다. 그러나 장한 일이 더 많았다. 남조선의 청년학생들은 힘차게 살아있다.

교수는 폭압이 있는 곳에 반드시 반항이 있다는것을 력사의 경험으로 봐서 굳게 믿어왔지만 과연 남조선의 학생들은 용감하게 일어난것이다.

학생운동에서 그같이 치렬하고 완강한 실례를 교수는 세계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4. 19는 우리 나라 학생운동의 자랑이였다. 학생들이 이미 과감하게 일어나서 피를 흘렸으니 그 피가 헛되게 보도에 스며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

채남이 집에 잠간 들려서 선규의 죽음을 이야기했을 때 교수는 딸을 붙들고 울었었다. 그날부터 하자영은 친한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그의 초조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 교수들도 누구나 같은 마음들이였다.

S대학에서는 구속학생들의 석방과 계엄령해제를 요구하기로 대다수의 교수들이 비공식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K대학에서도, Y대학에서도, T, H, C 등 각 대학에서 그와 비슷한 내용의 건의서 혹은 요구서들을 작성하고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자영교수가 집에 돌아와 다음날 각 대학이 공동보조를 취하도록 전화련락을 하고있을 때 밖에 자동차 멎는 소리가 나며 웬 알지 못할 군인이 들어왔다.

중령의 계급장을 단 그는 교수를 모시러 왔노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계엄령을 펴놓고 한편에서는 경찰이 다시 힘을 얻어 일부 학생들을 구속한다. 교수도 그런 계통이 아닌가 의심해보는데 밖에서 뜻밖에도 원익홍박사가 어서 나오라고 불렀다.

교수는 원박사와 함께 아사원으로 가게 되였다.

그곳에는 교수가 잘 아는 다른 대학 교수들도 몇사람 와있었고 놀랍게는 권세환이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반갑네. 이런 시국에 교수와 자리를 같이하는게 난 참으로 감개무량하네.》

그가 채남을 며느리로 탐내다가 교수편에서 모욕적으로 거절을 해버린 이후 처음 만나는 그들의 대면이였다.

《국회》 문교분과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시국수습을 위한 간담회였다.

자유당이나 《정부》의 명의로는 교수들을 초청할수 없다고 깨달은 그들은 군인을 리용하여 각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향력이 있다고 보는 교수들을 초청해온것이다.

시국수습을 빙자하여 교수들의 초청과 같은 회합이 각계 인사별로 여러곳에서 벌어지고있었다.

재야 정치인들, 재정인들, 교육가들을 경무대로 불러들이였다.

초청을 받은 인사들은 혹은 거절하고 혹은 무슨 큰 벼슬자리가 차례질가 하여 배를 튀기는가 하면 급히 달려와보기도 한다. 《부통령》당선을 사퇴하는 선에서 시국을 미봉해보느니, 어쩌느니 갖은 계책과 음모가 《국무회의》에서, 경무대에서, 계엄군사령부에서, 미국대사관에서 뻔질나게 진행되고있었다.

초조와 당황, 랑패의 한 일환으로서 지금 권위있는 교수들을 모시여온것이다.

아직 올 사람들이 다 오지 않았다. 아무러한 예고도 없이 불리여온 교수들은 휴계실에서 친한 사이들끼리 자연히 모여앉게 되였다. 주최자측에서는 되도록 사담의 밀의를 방지하는 목적에서 긴치않게 그들속에 끼여들며 평소에 없던 친밀감을 표시했다.

권세환은 하자영교수옆을 떠나지 않았다.

《좋은 의견을 말하게. 건설적이고 실현성이 있는 방안을 말야.

교수의 그러한 제안이 리승만<대통령>의 마음에 들어 그것이 실현되고 시국이 안정되면 국가의 다행이고 교수의 영예가 아니겠나. 난 진심으로 그걸 기대하네. 사람이란 따지고보면 선한것이여서 교수와 나와의 과거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오직 교수의 성공과 영달을 바랄뿐일세. 뭐니뭐니해도 우리 둘사이는 고추자지 맞대고 자라난 죽마지우가 아닌가. 부탁하네. 대담하고 건설적이고 실현성이 있고…》

권세환은 혼자서 지껄였다. 교수는 그 말을 흘려버렸다. 기신기신 따라다니는 그를 피할수도 없어서 담배만 빨고있었다. 원익홍박사가 앞을 지나다가 사교적인 너스레를 늘어놓는다.

《권선생은 늘 그렇게 하선생과 만나고싶다고만 하더니 오늘은 두분이 떨어지실줄을 모릅니다그려. 역시 고향친구란 늙을수록 좋은것이죠. 하하…》

권세환이 자리를 내주었으나 원박사는 《두분 정담에 제가 방해되죠.》하고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아까 오전에는 대학총장들을 모시였네.》

권세환은 그날 오전에 있은 일을 이야기했다.

《좋은 말씀들을 들었네.》

《어떠한 말들을?》

하자영교수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되도록 대학교직자들의 동향을 알고싶었다. 이미 많은 교수들의 그것은 알고있지만 《정부》나 문교부와 직접 관계를 갖고있는 총장들의 동향은 잘 파악하고있지 못했다.

총장들가운데는 량심적인 사람도 있지만 평소부터 시세에 편승하는 어용학자들도 있다. 그들이 권력과 결탁하여 교육계를 혼란케 만들어놓았다. 가까운 실례만 보더라도 지난 선거때에 9명의 대학총장들이 《자유당정, 부통령선거중앙대책위원회》 지도위원이라는 감투를 쓰지 않았던가. 진선미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것을 천부의 사명으로 하는 그들이 스스로 은전 몇푼에 진리를 배반하는 속물이 되기를 기뻐하였고 학생들의 량심에 고통의 씨를 뿌리였다. 원익홍박사가 그런 부류에 속하는 학자였다. 권세환이 투자해 경영하는 모대학의 학장이 바로 그러한자였다.

모대학 학장은 국민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면 《못살겠거든 이북으로 가라!》고 보내주지도 않으면서 뇌까린 일도 있다. 그날 오전에 열렸다는 총장회의(일부 총장들이였다.)에서는 4. 19사태로 하여 리승만《대통령》에게 《심려》를 끼쳐드렸으니 총장들이 먼저 사과를 하고 다음에 학생들의 석방을 간청하자고 제의를 했던것이다.

오전회의에는 원익홍박사도 참가하였지만 그는 이쪽저쪽에 다 참가하면서 하자영교수와는 다른 의미에서 대학교수들의 동향을 탐지해내자는것이였다.

권세환이 대강 이야기해주는 말을 듣고 하자영교수는 몸이 떨리는것을 간신히 참았다. 관료화된 총장들의 회의였고 그중에서도 특정한 한두사람의 발언이였지만 그것이 대학이란 이름과 관련될 때 그것은 참을수 없는 모독이였다.

간담회가 시작되였다.

자유당 원내총무도 참석했다. 전국이 피를 흘려도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고 기승을 부리던 그가 소원대로 피를 보았으니 만족하련만 그 기세는 어디로 가고 매우 저자세가 되여 교수들의 손을 일일이 돌아가며 잡아보고 자리에 앉았다.

회의를 화기애애한 가운데 진행한다고 술이며 음식을 먼저 들여왔다.

《천천히 잡수시면서 좋은 말씀들을 해주십쇼.》

원내총무가 일어나서 인사 겸 간담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솔직히 말해서 <정부>나 자유당으로서는 이미 지나간 불행으로 알고있습니다. 계엄령도 폈고 질서도 잡혔습니다. 남은 문제는 학생들이 학원에 복귀하는 문제가 남았을뿐입니다. 이는 여기 모이신 교수제위들께서 큰 역할을 해주셔야겠다 그 말씀입니다. 어떤 의미로 봐서는 선생님들의 책임도 크다고 봐야겠습니다. 교육이란 정신분야에 속하는 문제여서 스승의 감화랄가, 훈육이랄가 그게 절대적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 책임을 여기서 묻자는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선생님들의 그 명성이나 감화력으로 학생들을 온건하게 학원으로 복귀시키느냐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젭니다. 그 의견을 기탄없이 듣자고 해서 이렇게 바쁜 시간에 여러분을 모시게 된것입니다.

와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천천히 잡숴가시면서들…》

접대부들이 음식을 날라왔다. 밖이 어두워감에 따라 장식등불빛이 휘황하고 날라오는 음식들도 값진것이고 술도 고급양주들이였다. 가난한 교수들에게는 드물게 보는 환대며 향연이라고 할수 있었다.

하자영교수가 일어났다. 년령으로 봐서 우선 그가 교수들을 대표하게 되였다.

《이러한 취지의 간담횐줄 알았더라면 나 개인은 오지 않았을걸 오게 됐다는걸 미리 말씀드리고… 그러나 이왕 왔으니 말석에 있다가 가겠습니다만 먼저 이 음식들을 거두어주시는게 우리들, 교수들에 대한 례의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제자들이 많이 죽었고 또 지금도 죽고있으며 또 장례를 금방 치르고도 왔습니다. 그러한 우리의 심정이 이렇게 주연을 놓고는…》

《알겠습니다.》

총무가 대번에 알아들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한것인데 과례도 비례라고 선생님들의 기분이 그러시다면… 어이, 뽀이!》

총무는 접대부를 불러 음식을 거두게 했다.

그들은 차를 놓고 앉게 되였다.

《하자영교수는 나와 어릴적부터 친구지만 워낙 청렴하고 도학자가 돼서…》

권세환이 한마디 하고 뜨거운 엽차를 소리나게 마시였다.

《자 그럼, 하자영교수께서 먼저 말씀을 좀 해주실가요. 듣자니까 S대학에선 하교수의 <정당론>강의가 있은 그날부터 학생들이 시위를 준비했다는 설도 있고… 지금 그걸 말하려는게 아니고 그만큼 학생들을 움직이게 할 연구가 있으시다면… 또 학생들을 안착시킬 연구도 있으시다고 봐서…》

《사실이 그렇기도 합니다.》

원익홍박사가 하자영교수를 보면서 총무에게 맞장구를 쳤다.

거기다가 권세환도 한깃 들었다.

《아까 내가 사담으로도 교수에게 루루이 부탁해두었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건설적이고 실현성이 있는 좋은 안을 건의하라고 말입니다.》

《옳습니다. 선생님들, 지금 권세환의원이 말한바와 같이 국가를 위해서 건설적이고 실현성이 있는 제안말입니다. 그러한 안이 있기만 하다면 <정부>나 우리 당으로서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자, 어느 선생님이 먼저 말씀을 해주실가요. 완전한 안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서로 의견을 모아서 여기서 안을 하나 만들자 그것입니다. 하교수께서 아무래도 먼저 말씀하셔야 될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말하기 싫은 자리였다. 의견들이 많겠지만 계엄령하에서 까딱하다가는 어느 귀신도 모르게 어찌될지 모른다. 상대방이 자유당이요, 지금까지 그들은 그렇게 해왔기때문이였다. 《실현성이 있는》 그것을 권세환도 총무도 강조하는것으로 봐서 타협안을 내라는 뜻인데 그들은 학생들을 죽였고 지금까지 12년동안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그들과 타협이란 있을수 없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밝은 장식등불빛만 쳐다들 보다가 가끔 하자영교수에게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따분하고 지루하고 거북한 시간이 흘러갔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음식이라도 그대로 두어 먹는체 하며 거북한 립장을 굼땔것을 그랬는가.

교수는 진리앞에 용감한 태도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느끼였다. 사륙신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갈릴레오를 생각해보았다.

그날 장례를 지낸 선규의 맑은 얼굴을 눈앞에 떠올려보았다. 그의 유언을 높이 프랑카드에 써올린 학생들의 지향을 생각해보았다. 그렇다. 자기가 강의한 《정당론》이 S대학에서 4. 19를 촉발시킨 계기중의 하나가 되였다면 자기는 그이상 영광이 없겠다. 채남이 그날 얼마나 기뻐했던가.

교수는 일어났다.

《아까 <정당론> 말이 나왔는데 정당정치의 본질로 봐서도 자유당이나 리승만박사가 12년동안 잘못한 정치의 책임을 지고 깨끗하게 물러앉는외에는 학생들을 온건하게 복귀시킬 길은 없습니다. 지극히 자명하고 지극히 간단한 이 진리를 여러 말로 이러니저러니 하는것은 사태를 모호하게 만들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교수들의 의견을 허심하게 듣고싶다면 오직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자유당과 리승만씨가 빨리 내려오시오.》

교수는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그 내용으로 봐서 그것은 추상같은 호령으로 들렸다.

주최자측들, 총무도 권세환도 그밖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피가 싹 가시고 푸들푸들 떨기까지 했다.

교수들은 자세들을 바로했다.

원익홍박사가 분연히 일어났다.

《하교수께서 자신의 의사를 말하는것은 물론 자유라 하겠지만 우리들, 교수들의 의견이란 월권이 아닐가요? 여기 어디 누구 한사람이 당신에게 의사를 대신해달라고 부탁했습니까. 취소하십시오.》

하자영교수는 앉은채 말했다.

《그 점 잘못됐습니다. 당신 한사람은 제외합니다. 나는 평소부터 당신과는 뜻이 같지 않았다는것을 밝혀둡니다. 그렇기때문에 나의 발언에 당신은 조금도 공동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다른분들, 평소부터 내가 인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존경하는분들로 말하면 내가 대신해서 월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원익홍박사가 또 일어나려 할 때에 총무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하교수가 다른 선생님들을 대신해서 하는 발언은 역시 월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자신의 기탄없는 의사표시는 물론 좋고요. 그러나 한가지 말씀드릴건 학생들 몇쯤 죽은걸 가지고 세상이 뒤집힐 사건같이 보는건 과대망상으로, 그 도가 넘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외국에서도 그런 실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말씀들 하시지요.》

원익홍박사가 누구에게 언권을 빼앗길가 겁이라도 나는지 재빨리 일어나서 가슴을 쭉 펴고 천천히 말했다.

《하교수가 그렇게도 <정당론>과 정당정치를 말씀하니 나도 그 각도에서 문제를 고찰할가 합니다. 정당정치의 우월성과 민주주의적성격이 어디에 있느냐, 물론 여러가지를 말해야 하겠습니다만 여기는 대학의 강당도 아니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성격만 밝힌다면 평화적<정권>교체에 있습니다. 평화적선거나 의회단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하교수의 주장대로 자유당이나 리승만박사께서 12년동안 실정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렇다 하여 이번같이 데모를 계기로 <정권>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우리 <대한민국>력사에 폭력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실례를 하나 만들어놓는것으로 됩니다. 이것은 결코 용허될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폭력정치를 의미하기때문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자유당이나 <정부>가 이 기회에 국민들에게 앞으로 선거를 다시 한다는 약속을 주고 국민과 학생들의 민심을 수습하는 길이 유일한 시국수습책이라고 봅니다. 이 길밖에는 없습니다.》

《좋으신 의견입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또 다른 선생님들 말씀해주십시오. 여보, 잘 기록해두시오.》

총무는 옆에 앉은 사람에게 지시도 주며 다른 교수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하자영교수의 발언에 하얗게 질렸던 얼굴에 화색도 돌기 시작했다.

K대학의 정치학교수가 일어났다.

《원익홍박사는 폭력정치의 전례를 만들어놓을가 매우 원려를 하시는데 그러한 원려는 민주주의정신을 좀먹는 독소는 될지언정 앞으로 민주주의를 위하여 또는 정당정치를 위하여 백해무익한 궤변입니다.》

총무의 지지를 받고 매우 만족해서 그와 눈길을 맞추며 담배연기를 푸푸 뽑고있던 원박사는 놀란 눈으로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으며 총무도 또다시 얼굴근육이 실룩거렸다.

《… 사태를 분명히 봅시다. 학생들은 평화적으로 데모를 했습니다. 언론, 출판, 집회, 시위, 결사는 민주주의의 기본권리입니다.

이 기본권리를 행사하는데 대해서 총은 누가 쏘았습니까? 그리고서 이제 와서 폭력정치의 전철이라고요? 뻔뻔스럽습니다.》

그는 책상을 쳤다.

《나는 아까 하자영교수의 말씀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립장입니다마는 자유당이나 리승만씨가 물러앉는다 해서 그것이 폭력으로 <정권>을 교체한것으로 되겠는가, 후세의 사가들은 그렇게 기록할것인가, 아닙니다. 국민이 민주주의의 기본권리를 행사해서 <정부>를 타도한, 민주주의를 수호한 빛나는 력사로 볼것이며 평화적인민에게 총을 쏜 폭력배는 반드시 망한다는 좋은 교훈을 남길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나라의 정치를 건전하게 만드는 공간력으로 된다고 봅니다. 어디에다 대고 그따위 말을 합니까? 하자영교수가 우리들을 대신할수 없다는 말 같은데 과연 우리들은 그분에게 위임장은 써주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형식이 무슨 소용인가. 옳은 의견은 언제나 여럿을 대표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정 그러한 형식이 필요하다면 나는 거수를 제기해도 좋습니다. 그것이 바쁜 시간에 공론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옳소!》

어느 한 교수가 그것을 찬성하고 손을 들자 교수들의 손이 일제히 올랐다. 그것은 마치 기치창검과도 같았다.

타락한 정상배들, 저명인사들이란자들의 몰골들, 권력에 아부하는 일부 어용학자들은 학생들의 피가 흐른 그 마당에서도 《정권》과 총검앞에 아부하고 타협하고 흥정하는 추태를 보였는지 모르지만, 그렇기때문에 그 달콤한 재미를 또 한번 보자고 교수들을 모았겠지만 남조선의 교수들, 지성인들은 꿋꿋하게 살아있었다.

어찌 보면 궐기한 학생들의 그 영웅성과 장엄성의 영광의 절반은 교수들에게 돌려져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교수들은 학생들을 그렇게 가르쳤기때문이다.

미국의 세기말적인 문화가 홍수같이 쏟아져 들어오고 실존, 실리 등 반동철학이 젊은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마당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을 생각하는 정신을 배양한것은 교수들, 중고등학교 교원들이 아니겠는가.

그들에게 영광을 주어 마땅한 일이였다.

자유당의 원내총무, 권세환, 원익홍박사 따위가 교수들을 회유해보려들었을지 모르나 교수들과 학생들전체를 두고 학원이라고 본다면 학원에서는 이미 4월 18일, 19일에 분화구를 터뜨린것이다.

한번 분화구를 연 휴화산은 용암을 다 토하기 전에는 그 불문을 닫지 않는 법이다. 하자영교수가 아사원 2층계단을 천천히 내려올 때에 K대학의 젊은 교수가 슬며시 옆으로 오며 말했다.

《선생님, 오늘 밤에 댁에 계시지 마십시오. 놈들은 미친갭니다. 무슨짓을 할지 그러나 선생님, 장하십니다. 저도 선생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고 말을 했습니다만 걱정은 됩니다.》

《선생은 피하십시오. 나는 집에 있겠습니다. 놈들이 혹시 잡아간다면 제물이 되지요. 그것으로 학생들이나 교수들을 또 한번 폭발시킨다면 난 그걸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피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좋도록 하죠. 그러나 빨리 교수들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각 대학교마다 그 기분이 태동하고있는 모양인데 아직 조직자가 없어서…》

《저들이 하겠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알았습니다.》

아사원현관에 나오자 주최자들도 그만한 렴치는 있는지 자동차를 대기시켜놓았고 권세환이 따라나왔다. 그는 하자영교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교수, 난 오늘 매우 섭섭하네. 자유당은 아주 망하지 않았어.》

교수는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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