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제 3 회)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1 장

어 둠

 

내가 박순현연구소에서 일한지도 오래되였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란 없이 지나갔다고 말할수 있는 기간이였습니다. 그런 어느날 박선생은 나에게 배가 불룩한 봉투 하나를 내밀어주었습니다. 그동안 주지 못했던 봉급이라면서 약속되였던 금액의 배나 되는 돈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어떤 설계대상자로부터 보수를 받았던것 같습니다.

나는 오래간만에 거리로 나와 필요한 책 몇권을 산 후 리발까지 하고 언제인가 그 어둡던 밤에 들어갔던 일이 있는 만두국집에서 점심까지 먹었습니다. 그리고도 한참 돌아다니며 고향의 녀동생 순이의 치마저고리 한감과 어머니의 고무신 한컬레를 사서 소포로 부쳐주었습니다. 그런 후 내가 돌아왔을 때는 박선생과 윤희가 기다리던 끝에 지치기까지 한 표정이였습니다. 그들남매는 방금 외출하려는 옷차림을 하고있었습니다. 박선생은 가을날에 어울리는 연한 회색양복에 넥타이를 맸고 윤희는 풀색세타를 입고있었습니다.

《기다렸네, 김군. 오늘은 바깥바람을 좀 쐬자구. 며칠전부터 제탕회사가 새 설비로 일을 시작했다누만. 우리 연구소의 설계로 개조된 그 변모를 한번 보러 가세.》

박선생의 기분상태는 매우 좋았습니다. 어찌 보면 명절날 아침의 애들처럼 들뜬것 같기도 했습니다. 박선생의 이런 기분상태는 나와 윤희에게도 옮겨지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박선생은 대문밖 돌층계를 내려갈 때 우리들보다 더욱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뒤따라가는 나와 윤희는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일본놈들은 그 제탕회사를 만들어놓고 기계를 실어올 때 제놈들의 본국에서는 벌써 낡아서 버리기 시작한것들을 가져왔거던. 그 기계들은 거의가 사람들의 손으로 힘들게 돌려야 하는것들이야. 이번에 나는 로동자들이 전혀 힘들이지 않고 일할수 있도록 설계해주었네. 로동자들은 매우 좋아들 할걸세.》

박사는 거리를 걸어가며 이제 얼마후면 그 새 설비의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일할 로동자들을 보게 될 기쁨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사의 이런 생각은 너무나 천진한것이였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공장에서는 무서운 광경이 벌어지고있었습니다. 공장정문에 들어서자 사무실을 둘러싼 로동자들이 돌덩이와 쇠몽둥이로 유리와 책상들을 까부시는것을 보게 되였습니다. 공장의 관리원들과 사무원들은 어데론가 뺑소니를 친듯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집단해고를 반대하는 로동자들의 투쟁이였습니다. 공장측은 설비를 개조한이래 종래의 로동인원중 절반밖에 필요하지 않게 되였으므로 나머지 인원들은 해고해버렸던것입니다. 무엇이나 닥치는대로 까부시던 성난 사람들은 우리를 발견하자 웬 사람들이냐고 묻는 시선들을 집중했습니다.

마치 우리는 무대우에 올라서서 단독조명을 받은 사람처럼 되였습니다. 그리하여 겁에 질리고 놀란 우리들과 그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선채 말없이 바라보게 되였습니다.

우리의 출현으로 하여 수라장이였던 공장구내엔 한동안 무서운 정적이 깃들게 되였습니다. 우리들의 잔등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제는 돌아서지도 못하게 된 형편이였습니다. 갑자기 그들속에서 술렁거리는 말소리들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도록 설계해준 박사란자야.》

누군가가 높은 소리로 웨치자 뒤이어 그들은 우리쪽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삽시에 그들은 우리앞에 이르렀습니다.

《여보시오 나으리, 우리들의 이 꼴을 보고싶어 오셨는가요?》

그들의 맨 앞장에 선 40대의 사나이가 말을 건늬였습니다. 검은빛얼굴에 단단하게 앞가슴이 퍼진 그 사나이가 이발을 앙다물고 하는 이 첫말은 우리도 공장의 유리창이나 책상을 쳐부시듯이 두들겨팰수 있다는 증오의 표시처럼 들렸습니다. 우리들중 맨뒤에 서있던 윤희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여 박사와 나의 옷자락을 슬며시 끌며 말했습니다.

《달아나요. 얼른 가요.》

그러자 그 얼굴검은 사나이의 입술엔 경멸의 조소가 나타났습니다.

《아가씨, 우리는 폭도들이 아니요.》

이때 나는 박선생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생의 얼굴빛은 창백해지다 못해 푸르게 보일 정도로까지 절망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나으리는 우리들과 무슨 원쑤진 일이 있어서 밥탁까지 빼앗아내는 일을 생각해냈는가요? 눈을 좀 똑바로 뜨고 나으리덕에 밥탁을 떼운 이 불쌍한 사람들을 살펴보란 말입니다.》

우리들의 눈앞엔 그가 살펴보라는 사람들, 밥탁을 떼운 그 불쌍한 사람들이 서있었습니다.

영양실조로 하여 살빛이 노래진 처녀들이며 소년들, 허기진듯 금시 쓰러질것만 같이 생각되는 여윈 몸매의 부인들, 누데기와 흡사한 작업복을 걸친 중년남자들, 굶주림을 견디여내지 못하여 돌덩이라도 씹어넘길 기세인 청년들… 이들이 서있었습니다. 이번엔 녀인들속에서 젖먹이애를 안은 서른살안팎의 한 녀자가 박선생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나으리는 박사님이시라지요. 박사님들은 돈많은 놈들과는 다르시지 않아요. 학식이 있는분들은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셔야 하지 않아요.》

순간 그 녀인이 안고있던 애기가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녀인은 좀더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 사람들속으로 그냥 들어가버렸습니다.

《…》

끝끝내 박선생은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인듯 하려고 한번은 반쯤 입을 열기는 했으나 그만 가느다란 비명소리만 나오고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쇠몽둥이로 되게 맞기나 한듯 중심을 잃고 휘친거리더니 주저앉았고 다음엔 의식을 잃고말았습니다. 윤희와 나는 선생을 업고 공장밖으로 나와서 지나가는 택시에 올랐습니다.

박선생은 자기 친구가 경영하는 병원 입원실에 누워버렸습니다. 선생이 입원한 후 텅 빈 집엔 나와 윤희만 남아서 쓸쓸하게 지내고있었습니다. 나는 한참씩 실험실의 북쪽창턱에 붙어서서 서울시가의 일각을 내려다보면서 멍청하니 서있을 때가 많아졌습니다. 제탕회사의 파업군중들을 본 후부터 나에겐 이런 습관이 붙었습니다. 윤희 역시 이때부터 이상하리만큼 변했습니다. 웃는 일도 없었고 롱담을 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시간만 있으면 책을 펴놓고 공부하던 윤희였습니다만 그마저 하는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전축을 틀어놓고는 비장한 곡들을 들으면서 주먹으로 턱을 고인채 명상에 잠겨 늦게까지 앉아있군 했습니다. 손님들만은 여전히 찾아와서 초인종을 울리였지만 윤희는 아무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간혹 창밖을 내다보며 말없이 서있는 나에게 윤희가 와보군 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고계시죠?》

그러면 나는 그때따라 솔직한 대답을 하군 했습니다.

역시 내가 그렇게 서서 창밖을 내다보던 어느날 윤희가 왔습니다. 그날 나는 여느때와는 좀 다른 기분이여서 윤희가 무엇을 생각하는가고 물었을 때 선듯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비밀인가요?》

윤희는 나의 공개 못하는 내면의 움직임을 알고싶어했습니다.

《꼭 그런것도 아닙니다. 다만 윤희씨 남매에게 실례로 되지 않겠는지 걱정될뿐입니다.》

《오빠와 저에 대하여 생각하셨는가요?》

《그렇습니다. 윤희씨,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내 고향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지요.》

《그래요? 듣고싶어요.》

하지만 나는 얼마간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정직하게 생각한바를 그대로 말한다면 윤희가 틀림없이 언짢아할것이였기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롱담으로 돌리기엔 내 생각이 너무 무거운것이였습니다.

주저하는 나를 보자 윤희는 재촉했습니다.

《왜 그렇게 주저하세요?》

《아니요. 강철같이 굳세게 사는 사람들과 장미나 코스모스처럼 연약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지요.》

내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윤희의 얼굴색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빠와 저는 장미나 코스모스처럼 연약한가요? 그리고 응빈씨의 고향사람들은 소나무처럼 굳센가요?》

윤희는 반쯤 눈을 내리깔고 날카로운 론쟁조로 물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윤희씨,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나는 평상시부터 그들남매에 대하여 생각하던바를 말하기로 했습니다.

《더 정직히 말씀드리면 박순현선생이나 윤희씨까지도 저에겐 리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저의 눈엔 두분이 지나치게 약한 사람들처럼 생각됩니다. 나는 탄광촌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죽음이 부단히 위협하는 생활환경에 습관되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박사의 <출입페지>나 윤희씨의 <한숨>이 무기력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로동보호시설 하나 없는 막장에서 일해야 하는 제 고향 사람들은 매일, 매 시각 굴벽이 터지고 천장이 내려앉아 파묻혀버릴 위기를 겪어야 합니다. 때로는 무릎이나 허리까지 묻혀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안고 손톱이 닳아서 피가 지도록 앞을 뚜지며 위험구역을 빠져나오군 합니다. 두분도 이 악착한 사회악앞에서 뻗대여볼수 없단 말입니까! 아무리 서재와 실험실밖에 모르는 처지라한들 말입니다. 두분의 이런 연약성을 보는 저의 가슴은 숨이 막히게 답답합니다. 생각처럼 된다면 당장 박선생과 윤희씨를 끌고 거리로 나가고싶습니다.》

《거리로요?》

윤희는 내리깔았던 눈을 들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리로 말입니다. 저는 두분을 거리의 한복판에 세우고 <자, 보십시오. 저 사람의 부르쥔 주먹이 보입니까? 저 사람의 불타는 눈동자가 보입니까?> 하고 일깨워드리고싶습니다.》

《…》

윤희는 다시 시선을 떨어뜨렸을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두사람은 다시금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기였습니다. 답답한 가슴들이였습니다. 무덤속같은 이런 분위기와 기분에서 벗어나보려고 우리는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동안 신문들은 박순현박사의 입원과 제탕회사에서의 졸도를 두고 그 무슨 큰 뉴스거리나 되는듯 떠들어대고있었습니다. 그중 한 신문은 이렇게 썼습니다.

《…박순현씨는 입원후 오늘까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단 한마디의 말도 없다. 낮이나 밤이나 천장 한점에 시선을 박고 누가 찾아가나 반기는 기색없이 누워있을뿐이다. 과학의 량심이라고 할수 있는 씨에게 제탕회사사건은 너무도 큰 타격으로 된듯싶다. 지금 씨가 입원실에 누워서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도 궁금하거니와 금후 씨의 동향이 어떠할는지 세인들에겐 크게 주목되는바이다. …》

사실 박선생은 입원기간 말 한마디 없이 천장만 바라보았습니다. 나와 윤희가 찾아간 때도 선생의 얼굴에 나타난건 보일듯말듯 할 정도로 알리는 미소였을뿐입니다.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선생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고 서재에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를 들여놓지도 않았고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나오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뜰안을 거닐기 위해서뿐이였습니다. 이렇게 지내는 선생은 자기의 밝지 못한 기분이 나와 윤희에게 작용한다는것을 알고 미안해하기도 했습니다. 하면서도 쉽사리 자신의 기분을 전환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박사의 그런 기분상태는 나나 윤희에게 직접적으로 옮겨지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박사는 고민하고있었습니다.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제탕회사에서 겪은 일을 계기로 박사는 자기가 살고있는 세상과 자기가 믿어온 생각과 미래에 대한 꿈을 두고 재검토를 하는것만 같았습니다.

결재서류를 처리할것이 있어서 서재로 들어갔던 나는 한번도 본 일이라군 없었던 대학생시절에 찍은 박사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사진첩의 한면 복판을 혼자서 차지한 그 사진은 책상우에 펼쳐져있었습니다. 흰 목과 얼굴을 뚜렷하게 나타내주는 검은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젊은 박순현은 희망과 사색과 기백이 함께 담긴 천진한 눈매로 먼 창공을 쳐다보는것이였습니다. 나는 그 사진을 보는데만 시선을 집중했다가 이외의 광경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물러섰습니다.

그것은 책상 한옆에 서서 그 사진을 내려다보고 선채 움직이지 않는 박사의 눈에 비장한 빛이 어려있음을 보았기때문입니다.
박사는 자기의 청춘시절을 보며 서있었습니다. 이 순간 박사는 자신이 그렇듯 모든것을 바쳐 쌓아놓은 기계공학의 탑이 결국 형체도 없이 무너져내리는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밀고 밖으로 나오고말았습니다. 자기 방으로 돌아갔으나 일감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견디지 못하리만큼 쓰라린 가슴이였습니다.

딱히는 찍지 못할 슬픔의 덩어리가 심장을 무겁게 눌러놓는가 하면 방안의 공기가 갑자기 사라진듯 숨쉬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벽에 걸린 코트를 벗겨내려서 입은 후 마당에 나섰습니다. 대문을 삐걱 열고 가을날의 석양거리로, 사람들의 물결속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웅성거리고 떠들썩한 거리소음의 덕택으로나마 울적한 기분에서 벗어나보려는 나였습니다.

끝없이 짐차와 승용차들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거리, 어데론가 밀려가고 또 가는 형형색색의 사람들의 떼로 가득찬 거리, 대통로는 술렁거리는 하나의 거대한 바다와도 같았습니다.

바다, 안정의 포구 하나 없는 탁류의 바다 서울! 사람들은 물결인양 끝없이 흘러가지만 활기띤 얼굴 하나 찾아볼 길 없는 거리! 나자신 그 바다의 어느 한 물방울이 되여 이 거리에 나섰건만 활기란 없지 않은가? 나는 그렇다 하고 저 사람들의 얼굴은 왜 이다지도 어두운가?

기분을 밝게 해보려던 나는 갑자기 대통로 한복판에 서서 두주먹으로 두드리고싶게 가슴이 답답해왔습니다.

(나는 얼마나 큰 희망을 안고 서울로 공부하러 왔던가? 그런데 오늘은 박사와 함께 제탕회사의 개조설계를 한 한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그건 수천수만 사람들에게 원한과 저주받을 일로 되였다. 박사는 괴로와하고있다. 울고있다. 나 역시 몸부림치고있다. 선행이 악행으로밖에는 달리될수 없는 땅, 서울!)

멀리 교외밖으로 기적을 길게 울리며 기차가 사라져갔습니다. 나는 그 렬차우에 올라 어데론가 이 더럽고 추악한 땅을 떠나버리고싶은 심정이였습니다.

거리엔 어둠이 서서히 내리고 하나씩둘씩 전등이 켜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대로 헤매였습니다. 때로는 멍하니 서서 상점 진렬장들에 세워놓은 인형들도 들여다보았고 때로는 쌀쌀한 가을바람에 머리칼과 코트자락을 날리면서 다방들에서 새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한곳에 못박힌듯 서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섰습니다. 연구소는 여전히 쓸쓸했습니다.

박사는 자기 서재에 불조차 켜놓고있지 않았습니다. 불켠 방이란 윤희방뿐이였는데 나는 그 방에서 박사남매의 말소리가 울리는것을 듣게 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느라면 나한테도 그 무엇인가를 확고하게 결심할 힘이 생길게다.

지금으로서는 무엇 하나 똑똑히 생각할수도 없고 계산할수도 없으며 결심할수도 없다. 단 하나 명백해진것은 내가 세상형편에 대해서 너무도 어두웠다는것이다. 나는 지금 내 인생관을 검토하는중이다. 너는 내 기분에 관계없이 명랑하게 지내라. 김군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김군은 요즈음 무얼 하고있지?》

박사의 음조엔 우울과 자기 번민의 서글픔이 실리여있었습니다.

《저는 오빠의 기분과는 관계없이 명랑하게 지낼수가 없어요. 응빈씨 역시 그런가봐요. 그이도 지금은 오빠처럼 고민하고있어요. 과학탐구냐, 그에 앞서 투쟁이냐 하는 문제인것 같아요.》

《알겠다. 그건 시인 최선생과 같은 전투파대렬의 행동구호와 흡사하구나. 그런데 요즈음 나는 너희들사이에 오고가는 따뜻한 시선들을 눈치챘다. 윤희야, 오빠는 진심으로 알고싶다. 김군은 좋은 청년이지?》

《그래요, 오빠. 기계공학도가 아니라 시인과 같은데가 더 많은 사람이야요.》

《나의 결심이 어떠할는지 신경쓰지 않느냐?》

《…》

《주저할거란 아무것도 없다.》

《아직 우리들사이에선 그런 류의 말이란 어떤것도 오간것이 없어요.》

《그런 일엔 말이 중요하지 않고 감정이 중요한거다. 그만하고 음악이나 좀 듣자꾸나.》

잠시후에 그 방에서는 힘차고 전투적인 선률로 가득찬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윤희는 오빠를 위해 우야 그런 곡을 선택한것 같았습니다.

그후 나는 박사가 뜨락출입이나 하는것을 보고는 고향에 한번 다녀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일감 하나 없이 커다란 실험실에 우두커니 앉아있거나 서있기란 고역을 치르는것과 같은것이였습니다. 박사처럼 진종일 명상에 잠겨서 한곳을 뚫어지게 바라보거나 윤희처럼 음악이나 들으며 해가 지고 달이 뜨는걸 본다는것이 나로서는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것이였습니다.

만일 이대로 기분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연약성이 전염되여 나자신도 일어나지 못할것 같았습니다.

고향, 나는 고향이 그리웠습니다. 반면에 서울이 싫어지고 연구소분위기가 싫어졌습니다. 살기 위하여 어뜩새벽부터 아득바득하는 고향사람들의 이악한 모습이 보고싶었습니다. 식구들의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하여 자기 기분이나 변덕 같은것은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바위처럼 끄떡없는 모상을 보고싶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두팔을 한껏 걷어붙이고 머리칼이 빠지도록 무거운 임, 뜨거운 임을 이고 안고 부엌문턱을 넘어다니는 어머니의 모습, 그 강한 어머니가 보고싶었습니다. 그 다음엔 활짝 필 나이에 버럭탄무지를 뒤지는 일을 하는 순이의 얼굴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순이가 서울로 공부하러 가는 오빠와 헤여지는 정거장에서 꼬깃꼬깃 접은 지전을 내밀던 광경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잊혀지지 않을것입니다. 그 순이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가?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은? 고향산천은?

서울로 온이래 한번도 다녀오지 못한 고향이였습니다. 공납금에 몰리워다니던 고학생때엔 방학철도 없었고 휴식일도 없었습니다. 박순현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한 후엔 여러가지 잡무로 하여 또한 분주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고향에서는 내가 대학에 다니는것으로 알고있을것이였습니다. 박사도 윤희도 내가 고향에 다녀올 의사를 꺼냈을 때 쾌히 동의해주었습니다. 윤희는 《아들의 선물》로 될 물품들과 《오빠의 선물》로 될 물품들을 마련해주었고 정거장에 나와서 바래워주었습니다.

고향, 거리도 골목도 사람들도 검은빛일색인 탄광마을, 고동소리 시간따라 길게 울리며 사람들을 굴속으로 밀어가는 곳, 고달픈 생령들이 하루 또 하루 악으로 살아가는 땅이였습니다.

기차는 덜커덩거리며 밤의 전야와 산협을 지나는데 나는 그동안 많이 변했을 고향사람들과 산천을 그려보았습니다.

세월이 2~3년 흘렀으니 변화도 많을것이였습니다.

사실 오랜만에 본 고향의 탄광마을엔 변한것이 많았습니다.

산천도 집들도 거리도 옛 모습 그대로였으나 놀랄만큼 살벌한 공기가 느껴지는것이였습니다. 개찰구에 서서 손님들의 증명서검열을 하는 순경녀석들의 눈엔 피발이 번뜩이였고 고함소리엔 악이 섞여있었습니다.

《서울 사는 놈이 뭣때문에 오는거야?》

《집에 왔소.》

《집?! 하필이면 왜 이런 때 오나 말이야?》

《이런 때라니?… 당신은 제 집 출입도 날을 받아 하는거요?》

《이 자식이 서울 산다고 주둥이 조심을 모르는군, 혼쌀이 나볼테야?!》

순경놈은 약이 올라서 나의 뺨이라도 치고싶은걸 간신히 참는듯 했습니다. 서울사람이니 혹시 뒤에 빽이 있지나 않나 하여 주저하는 기색이였습니다.

《흥, 증명서를 이리 내놓소.》

나는 순경놈의 손에서 증명서를 뺏아냈습니다.

《집에 왔지만 조심하란 말이다. 폭동이다, 폭동. <빨갱이>들이 뭐나 다 들부셨단 말이야.》

폭동, 귀가 번쩍 트이는 말이였습니다. 그러고보니 탄광마을의 흐린 아침에 떠도는 살벌한 공기가 뭣때문인지 리해되였습니다.

정거장으로부터 집까지는 탄광지구의 중심거리를 지나가야 했는데 긴장한 정적만이 깔려있었습니다. 전같으면 가게방들도 문을 열 때고 아침차에 내린 손님들을 맞기 위하여 음식점들도 문을 열었을 시간이지만 사람그림자하나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주재소의 창유리가 산산쪼각이 나고 탄광사무실 문짝들이 마당에 동댕이쳐져있었습니다. 저탄장과 련결된 철길들이 들떠버렸는가 하면 그우로 달리던 탄차들이 곳곳에 수십개씩, 한두개씩 처박힌채 있었습니다.

참고참고 또 참다가 더는 그대로 있을수 없어 들고일어난 사람들의 격분이 파도가 되고 불길이 되여 모든것을 휩쓸고 흘러간 흔적이였습니다.

이 폭동자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린근지역들에서 증원대로 파견된듯 한 무장경찰들의 행렬이 텅 빈 거리로 오고갔습니다.

나는 그놈들한테 세번씩이나 증명서를 내보이고야 집에 닿을수 있었습니다.

내가 고향집 아래방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첫눈에 뜨인것은 누워계신 아버지고 그 다음은 아버지곁에 지켜앉았다가 나에게 달려오며 매달리는 어머니와 순이였습니다.

《네가 어떻게 알고 왔느냐?》

어머니는 내 손을 잡더니 이 말 한마디를 하고는 더이상 말을 못했습니다.

나는 몸을 움직일수 없어 일어나지 못하는 아버지의 머리맡에 가서 꿇어앉았습니다.

《네가 왔구나.》

아버지는 간신히 말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온 아들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려던 아버지는 어깨쪽으로 손을 가져가며 아픔을 참는듯 했습니다.

《웬 일입니까? 아버지.》

나는 그동안 더 깊게 밭고랑처럼 패여들어간 아버지이마의 주름살을 내려다보면서 물었습니다.

《오면서 못 봤느냐. 우리도 사람이니 먹어야 할게 아니냐. 놈들은 다섯달씩이나 돈 한푼 주지 않고 거짓말로 우리를 속여넘겼다. 사람이 참는것도 한도가 있는거야.》

《많이 다치셨습니까?》

나는 드디여 아버지의 어깨부분에 두텁게 깐 피묻은 솜이 붕대에 감겨져있음을 보게 되였습니다.

《그 찢어죽일 놈들이 네 아버지를 총창으로 찔렀다. 령감이 좀 조심했으면 좋았을걸…》

어머니의 말씀이였습니다.

《또 쓸데없는 소리… 아이들앞에서 거 무슨 못난 소리요. 머리가 허옇게 될 때까지 그놈들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피땀을 빼앗겼으면 되였지 계속 조심해야만 한단 말이요. 일어설수만 있으면 다시한번 그 광주놈의 골통을 곡괭이자루로 내리칠테요.》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나서 부엌으로 내려갔습니다.

《…》

《때마침 왔다. 네가 몹시 보고싶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자 진정하지 못하는듯 했습니다.

《…》

《어째 말이 없느냐? 네 눈엔 모든게 스산해보이기만 하냐?》

《…》

사실 나는 입이 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온순하게 한평생 일밖에 모르는것으로 알고있었던 아버지가 이처럼 피투성이항쟁터에 나섰다가 총창에 찔리울만큼 결단성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더랬습니다.

《여기엔 스산할것도 없고 놀라울것도 없어. 살기 위해서 싸운것뿐이야. 지금 온 남조선사람들이 그렇게 하고있지 않느냐. 그래 서울얘기나 좀 해라. 공부는 제대로 하고있느냐?》

《네.》

나는 거짓대답을 했습니다. 누워계신 아버지앞에서 차마 진실을 얘기하기란 너무도 어려웠기때문입니다.

《그러자니 고생이 막심할테지?》

《뭘요.》

《…》

이번엔 아버지측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얼굴만 올려다보았습니다. 순간 나는 아버지의 눈에서 더없이 따뜻한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그 그윽함은 벌거숭이시절부터 내가 보며 자란것이였습니다. 아버지는 단 한번도 이 표정과는 다른 표정으로 아들이나 딸을 본 때란 없었습니다. 가족들만이 아니라 이웃들이나 면목있는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대했던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고향의 아버지 하면 온순과 성실 그리고 따뜻함만을 회상하는것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이 순간 아들의 서울생활을 상상해보는듯 했습니다.

나 역시 지난밤에 떠나온 서울을 그려보았습니다.

쫓겨난 대학, 번민하는 박사, 슬픔에 잠긴 윤희, 그들의 연구소는 언제쯤 그 슬픔에서 깨여날가? 매국이 판을 치고 사회악이 사람들의 목을 졸라매려고 덤벼들기엔 여기나 거기나 매한가지건만 너무나 판이하게 대조되는것이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살기 위하여서는 항쟁의 길에 나서서 싸워야 한다는것을 알지만 그 사람들은 사회악을 피하여 대문에 빗장을 더욱 굳게 지를뿐이였습니다.

이놈 세상을 짓부셔버리려는 사람들과 등지고 살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

나는 아버지의 머리맡에 앉은채 깊은 생각에 잠기였습니다.

부엌에서는 어머니와 순이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빠는 또 가요?》

《오빠가 오니 기쁘지…》

《다시 가지 못하게 해요.》

《얘두 참, 오빠는 공부를 계속해야지.》

《오빠가 아예 서울사람 되면 어떻게 해요.》

나는 순이의 이 말을 들으며 웃음이 나오려는것을 참았습니다. 나는 우리 고향 사람들이 《서울사람》이라고 부를 때 그속에 숨어있는 다른 뜻을 알고있습니다.

그것은 《연약》, 《흰 손》, 《흰쌀밥》을 의미하는것이였습니다.

순이는 오빠가 그런 서울사람이 될가봐 겁내는것이였습니다.

3년동안에 순이도 몰라보게 자라났습니다. 비록 버럭탄더미에서 일은 했지만 굳세고 몸매단단한 처녀로 자라나고있었습니다. 윤희의 모습만을 대하던 나는 순이의 그 씩씩하고 활달한 모습을 보자 기분이 달라지는듯 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집 밥상을 대하고 가족들과 함께 앉아보았습니다. 나는 어머니나 순이에게 그 무슨 정다운 말을 해주고싶었습니다. 어머니나 순이 역시 나를 기쁘게 해줄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일어나지는 못하지만 아버지도 흐뭇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의 이 단란한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열이 높아지기 시작했기때문입니다. 아들의 도착으로 하여 얼마간 화색이 돌던 아버지의 기분은 또다시 흐려졌습니다.

나는 약을 구해보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순이도 따라나섰습니다.

탄광지구는 폭풍이 휩쓸고간 뒤처럼 여전히 잠잠했습니다. 무장경찰대가 삼엄한 경계진을 펴고있을뿐이였습니다.

나는 탄광지구의 중심에 있는 약국으로 갔습니다. 약국의 앞문은 닫겼으므로 뒤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넨가?》

나처럼 약을 구해보려고 온 여러 사람들속에 에워싸인 약국주인은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아버님상처는 좀 어떤가?》

그도 걱정할뿐이였습니다. 약이란 약은 벌써 없어진지 오래되였습니다. 폭동은 수많은 희생자와 부상자들을 내였습니다.

그러니 소독약 한병 남아있을리 없었습니다.

약국주인도 곧 서울로 약을 구하러 떠날 결심이였습니다.

나는 순이를 데리고 그곳을 나온 후 약이 있음직한 몇군데에 들려보았으나 생각했던것처럼 사정은 매한가지였습니다.

만일 그대로 둔다면 아버지의 상처는 악화될것이 뻔하였습니다.

《괜찮다, 칼에 찔린 상처가 이만치도 않겠느냐?》

근심에 젖은 가족들의 얼굴을 둘러보는 아버지의 시선속엔 여전히 따뜻한 빛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높아지고 동통은 심해지기만 했습니다.

나는 드디여 서울로 되돌아갈 결심을 했습니다. 저녁차로 가서 필요한 약들을 구해가지고 다음날 저녁차로 다시금 내려오자는것이였습니다.

시계를 보니 차시간이 급했습니다. 첫추위가 시작된 황혼길로 마지막락엽들이 딩굴어다니며 정거장으로 나가는 내 발잔등을 어루만졌습니다.

검은구름이 낮게 드리워 싸락눈이라도 쏟아부을것 같았습니다.

서울로 가는 차에 뛰여오른 나는 잠들어보려고 눈을 감았으나 끝끝내 잠들지 못했습니다.

고향, 아버지, 폭동… 나의 머리는 무거웠습니다. 언제면 이 땅에서 이런 참상이 자취를 감추게 되고 아버지처럼 일생을 두고 큰 고함 한번 친 일이 없는 사람들까지 총창에 찔리워야 하는 세상이 없어질것인가?

나의 눈앞엔 굴종에 반항하던 아버지의 성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서빨리 약을 구해가지고 아버지곁으로 되돌아갈 생각뿐이였습니다.

그러나 박순현박사와 나자신에게 닥쳐온 뜻밖의 보다 무서운 사건으로 하여 인편에 약만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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