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제 5 회)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1 장

어 둠

 

다음날 아침 제일먼저 일어난것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윤희였습니다. 두번째로 일어난것은 나였습니다. 그러나 박사만은 늦게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침상이 준비된 후에도 박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기에 지친 윤희가 서재로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거듭하여 몇번 문을 두드린 윤희는 여전히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하자 살며시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악-》하는 비명과 함께 윤희는 손잡이를 잡은채 주저앉고말았습니다. 급하게 달려간 나는 서재로 들어갔습니다. 했을 때 나 역시 하마트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질번 했습니다.

그건 참 몸서리쳐지는 광경이였습니다. 박사가 자살을 한것입니다. 짤막짤막한 두장의 유언서를 남기고는 침대우에 자는듯이 누워있었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박사가 영영 떠나가기 앞서 마지막으로 펜을 잡고 썼을 유언서를 손에 잡았습니다.

《윤희야, 이렇게 가는 오빠를 용서해다오. 이 불모지에서 내가 택할수 있는 길이란 달리는 없었다.

어제 저녁 애들의 외가에 가서 길수와 평수하고 한동안 즐기다가 돌아왔다. 그애들이 커서 후날 아버지에 대해서 묻거든 저세상에서나마 내가 섭섭해하지 않도록 대답해다오.

그애들과 너를 두고 그리고 하려던 일의 만분의 일도 하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자니 고통스럽구나.

하지만 이 모든 고통보다도 놈들에게 굴종하여 짓밟힐 치욕은 더욱 클것이여서 이렇게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네가 김군과 함께 이 암흑속에서도 빛을 찾아 힘차게 살아나가리라 믿는다.

잘 있어라, 윤희야. 귀여운 동생아.》

내 손은 부르르 떨렸습니다. 심장이 찢기는듯 하여 더는 아무것도 볼수 없었고 분간해낼수도 없었습니다.

살인귀들에 대한 격분, 박사에 대한 련민, 자신의 처지 또한 암담함을 생각해보는 내 가슴은 금시 터질듯만싶었습니다.

용납 못할 사회악앞에서, 파산당한 괴로움앞에서, 반항이냐 굴종이냐 하는 판가리격전에서 박사는 끝내 견디여내지 못했던것입니다.

나는 두번째 유언장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김군, 나는 내가 약자로 될망정 굴복한 노예로, 량심에 대한 배신자로 되지 않기 위하여 이 길을 택했습니다.

어제 밤에 나는 <순현-8>호와 <순현-13>호를 불살라버렸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도 놈들의 손에 그것이 들어갈수 있다면 그건 무서운 일일것입니다.

이제 막상 세상과 손을 끊자고 보니 하려다가 하지 못하고 가는 일들이 너무도 매혹적인 힘을 지니고 나타납니다. 또한 평소의 내 불운한 생활에 힘을 보태주고 따뜻한 애정을 주었던 은혜로운 사람들에게 아무런 보답도 하지 못하고 가는것이 부끄럽습니다. 김군이야말로 나에겐 더없이 고마왔던 벗이였습니다. 우리가 함께 일한 전기간의 일을 두고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싶습니다. 이 더럽고 추악한 말세의 진흙탕속에서 진주가 되려 했던 우리들의 연구소는 좀더 문을 두터운 철판으로 만들어야 했을것이였습니다.

김군, 나는 패했습니다. 그리고 약자입니다. 그렇다고 지조나 과학도의 량심이 패했다고 말하고싶지는 않습니다.

불행한것은 내가 정의와 진리가 온갖 악에 눌리워있는 시기에 태여났다가 가는것입니다. 전날 나는 나라도 없고 민족의 존엄도 무참히 짓밟히던 식민지국가의 청년으로서 미래만을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때문에 해방이 되였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했던것은 나였습니다. 인제는 조국을 가진 과학자로서 더는 망국노의 쓰라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또한 인제는 학문연구와 그 연구결과를 실현시킬수 있는 사회적길이 열리리라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그처럼 기쁨에 취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해방된 기쁨은 그 순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일본놈들을 대신한 미강점군은 이 땅에 또다시 파괴와 략탈과 암흑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일제통치하에서 꿈꾸었던 나의 미래는 결국 이러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과학연구의 길을 계속하려고 몸부림쳐보았습니다. 선대로 물려받은 가산과 나자신의 생계비 지어는 하나밖에 없는 녀동생의 학비마저 희생하면서 학문탐구를 계속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썩을대로 썩어빠진 세상에서는 과학자의 길이란 결국 파산밖에 차례지는것이 없었습니다. 이 황무지와 같이 살벌한 땅에서는 기계연구사가 탐구해낸 그 어떤 농쟁기 하나 실현시킬 방도가 없었습니다. 나는 동서고금의 인류사회사와 문명발달사를 배운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어둡고 잔인하며 무지막지한 사회를 알지 못합니다. 미제침략군이 강점한 남조선은 오늘 무인지경과도 같이 되였고 놈들은 모든 재부를 략탈해가고있습니다. 인제는 나의 탐구결실물까지 강탈해내려고 합니다.

나는 오래동안 모대기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학문탐구의 길을 찾아보려고 애썼습니다. 했지만 그런 길은 이 땅에서 찾을수 없다는것을 확신하게 되였고 그것을 확신하게 되자 더는 산다는것이 무의미해졌습니다. 나는 언젠가는 이 교살자들의 머리우에 정의와 진리의 준엄한 심판이 내리워지리란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틀림없이 진리와 정의는 어덴가에 살아있을것이며 언제인가는 그것이 온갖 악의와 오물들을 쓸어버릴것이리라 믿고싶습니다.

김군은 과학도의 성실성과 결백한 지조를 지켜 끝까지 굳세여주기를 바랍니다.

날이 밝으려 합니다. 김군, 밝은 시각에 떠나고싶지는 않습니다. 안녕히.》

그리고 박사는 줄을 달리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윤희는 외로와졌습니다. 오빠를 대신하여 그를 기쁘게 해주기 바랍니다.》

나는 더이상 그대로 서있기가 힘들었습니다. 좀더 서있으면 나자신이 설음에 져서 영영 일어날것 같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힘을 가다듬은 나는 어서빨리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악착한 살인귀들이 박순현박사의 생명을 어떻게 빼앗아갔는가를 고발하기 위하여 대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나는 박사의 유언장을 신문지상을 통해 세상에 공개하려 마음먹었습니다.

거리는 보통날처럼 사람들로 가득차서 흘러가고 흘러왔습니다. 오가는 차들의 경적소리도 변함없이 소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신문사들을 찾아 걷는 나의 눈과 귀엔 모든것이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박순현박사가 갔다. 그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

방금 내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건만 믿기가 어려운 진실이였습니다.

《나도 기계공학자가 되려 한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렇게 죽어야 하며 그렇게 고통을 당해야 한다. 나는 깨끗한 량심과 과학도다운 성실과 지조를 지키려 한다. 그렇다면 나 역시 박순현박사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 이 세상에 진리가 있다면, 정의가 있다면 성실과 결백에 대한 교살이 이처럼 백주에 감행될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것이 알고싶었습니다. 거리 한복판에 서서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붙들고 이것을 물은 후 해답을 얻고싶었습니다.

이것이 의문인채 남아있는 한 나에게 있어 생의 목적 그자체도 믿을수 없는것이였습니다. 나는 앞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야 하는것이고 살아도 정직하게 살아야 할 사람이였습니다. 하거늘 그 정직, 그 성실, 그 결백함이 아무런 보호도 못 받고 악마들의 손에 내맡겨진다면 미래는 보다 무서운것이였습니다.

생이란 결국 상처와 모욕과 고통을 받기 위한것인가? 박사의 파산과 죽음은 나에게 너무도 많은것을 묻게 했고 너무도 아픈 사연을 목격하도록 했습니다.

《박순현박사가 갔다. 그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끝끝내 이 사실을 믿기가 어려워 몇번이고 혼자서 외워보는 나였습니다.

《박사는 갔다. 스스로 갔다.》

이 《스스로》라는 말을 입밖에 내던 나는 마치 무엇에 부딪치기라도 한듯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아니다!》

전혀 리해되지 않던것이 리해되는듯 한 그 어떤 강한 깨달음이 오면서 나는 이렇게 부르짖어보았습니다.

《나는 박사가 택한 길을 찬동할수 없다. 놈들은 바로 우리모두가 그런 길을 택하기를 원하고있다. 박사는 결국 놈들의 소원대로 해주었다. 약자만이 그런 길을 택할수 있으며 싸움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그런 길을 택할수 있다.》

그러자 나는 답답하던 속이 얼마간 트이는듯 했습니다.

《설혹 내가 그 어떤 말할수 없는 역경에 처한다 하더라도 박사와 같은 길을 선택하지는 않을것이다. 놈들과 싸워 머리도 몸도 온통 피투성이가 되여 이 대통로 한복판에 쓰러진다 해도 나는 그런 길-자살의 길 같은 너절한것은 생각지 않을것이다. 길다란 서발막대를 잡고 사방을 휘저어도 걸릴것이란 아무것도 못 가진 알몸뚱이지만 나는 나로서 나의 존엄을 지켜갈것이다. 나의 존엄, 그것은 짓밟으려는자와의 무자비한 격투로써만 지켜질것이다.》

나는 새삼스러이 자기 존재를 인정하는듯만싶어 흥분하였습니다. 심장도 주먹도 갑자기 커지는듯싶었고 피도 갑자기 몇갑절이나 더 뜨거워지는듯싶었습니다. 그때문에 거리를 지나고 골목을 지나고 사람들속을 빠지고 자동차들속을 빠지며 걷고있었지만 주위에 무엇이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분간 못할 지경이였습니다.

어느 한 골목에 접어들어 꺾임길을 돌 때 누군가가 《김군!》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머리를 들었습니다.

나를 부른 사람은 색날은 교복을 입고 먼지가 뿌옇게 앉은 구두를 신은 청년이였습니다. 그 청년은 꺾임길 경사면에 자리잡은 병원의 층층다리 정문옆에 앉아있는 서군이였습니다.

서군은 나와 함께 대학을 다니던 친우였습니다. 남해가 어촌이 고향인 서군 역시 나처럼 고학의 피눈물나는 하루하루를 지내며 근근히 대학을 다녔습니다.

대학에서 쫓겨난 이후로는 처음 만나보는 군이였습니다. 그러다나니 서군이 아직 대학에 다니는지조차 모르고있었습니다.

《웬 일인가, 서군?》

몰라보게 변한 서군의 용모였습니다. 키크고 살집이 좋은데다 힘이 세여서 배달용 연탄상자쯤 한어깨에 메나르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창백해져서 피줄이 밖으로 내비치기까지 했습니다.

훌쭉하니 살이란 죄다 빠져서 뼈대만 앙상한 죽은 나무를 련상시켰습니다. 허름한 외투 하나 걸치지 못한 그 사람은 쿨럭쿨럭 속빈 기침때문에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병든 몸이 되였네.》

서군은 웃어보이려 했지만 오히려 얼굴륜곽은 볼품없이 이지러들었습니다. 한때 서군과 나는 교외의 다락방에서 자취를 하며 지냈는데 그때엔 감기한번 앓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몰골이 되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등교는 계속하고있나?》

《대학말인가? 쫓겨났지. 일주일이 되였네. 고향에 되돌아가려 하네만 당장은 려비도 없고 또 가다가 죽을것만 같아 비상약을 좀 구하려고 병원엘 왔네. 하지만 돈액수가 차지 않는다구 그마저 주지 않네. 내 몸엔 인제 팔아버릴 피도 없지. 김군과 헤여진 이후는 주로 혈액은행덕에 등교할수 있었으니깐…》

《…》

《지금쯤 김군은 고향에 있을줄 알았는데…》

서군의 푹 패인 눈엔 생기라고 할만 한 빛이란 전혀 없었습니다.

《…》

또 하나의 비극을 보게 되는 나였습니다. 서군은 벌써 내 기억속에 살아있는 대학생, 불덩어리같이 뜨거운 청년이 아니였습니다.

겨울밤이면 살점을 베여낼듯 한 칼바람이 벽짬으로 들어오고 쥐새끼들이 구석에서 구석으로 뛰여다니던 교외의 다락방, 밤은 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군과 나는 그 바람, 그 추위, 그밤들을 굳세게 견디여냈습니다.

우리에겐 미래가 있거니… 너는 전기공학자, 나는 기계공학자, 그날을 위해 오늘의 이 고생, 이 곤난쯤 웃어넘기지 못하랴.

우리는 그 미래를 속삭였습니다. 그 미래의 생활을 설계했습니다. 내 이름을 단 기계발명품들이 줄지어 달리고 서군의 설계로 된 수력발전소의 언제들이 두사람의 고향땅들에도 높이 섰습니다. 미래에 대한 꿈은 우리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새벽 어둠속으로 뛰쳐나와 언손을 녹이며 연탄을 배달했고 신문을 배달했습니다.

그랬던 서군이였습니다. 그 서군은 지금 병든 몸이 되여 간신히 내앞에 서있었습니다. 새벽부터 거리를 뛰여다니며 연탄배달을 해도 학비는 모자라 피까지 팔았건만 끝내는 대학에서 쫓겨나고말았습니다. 고향으로 되돌아갈 려비도 없고 도중에 먹을 비상약도 구할 길이 없어 겨울날의 서울거리를 헤매고있었습니다.

박사의 죽음, 서군과의 상봉, 현실은 이렇게도 악밖에 활개치는것이 없단 말인가?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머리를 숙인채 주머니마다를 뒤지였습니다. 했지만 서군을 도와줄 지페란 보잘것없는것이였습니다.

《자, 이것이 나에게 있는 전부일세. 액수를 채우게.》

서군은 금시 터지려는 울음을 삼키면서 그것을 받아쥐였습니다.

《그리고 이건…》

나는 내 몸에 걸친 외투를 벗었습니다.

《이건 입고 떠나게. 도울게란 이것밖에 없네.》

나는 깨여진 유리창으로 겨울의 을스산한 바람이 들어올 남행렬차에 외투도 없이 앉아있을 그를 생각했습니다.

《괜찮어, 김군. 피차일반인데. 내가 입으면 군이 벗어야 될게 아닌가?》

서군은 외투를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외투는 금년겨울에 접어들면서 윤희가 나에게 선물한것이였습니다. 윤희의 얼굴이 몇번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까지 했습니다.

《고집일랑 말고 입게. 고향에 가거든 소식이나 전해주게.》

우리는 서로서로 젖은 눈을 마주보며 손을 잡았습니다.

《고마와, 김군.》

손을 놓지 못하는 서군이였습니다.

《지금 나는 지체 못할 용무가 있네.》하면서도 나 역시 손을 놓지는 못했습니다. 늦도록 우리의 젖은 시선은 마주보며 움직일줄 몰랐습니다.

(기어이 벼락은 내려 이 저주받을 놈들의 세상을 뒤집어엎으려니 벗이여, 그날을 믿고 힘차게 살아나가자.)

그때 우리의 심장과 심장을 련결하며 새겨진 글발들은 이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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