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제 6 회)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1 장

어 둠

 

먼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후파견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 하루 새날을 또다시 우리는 여기서 대기해야 한다. 그러나 위치를 이동하라는 명령이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김동무의 이야기도 속히 결속을 지어야 했다.

검은 구름장들이 찢어지며 별들이 하나둘 반짝인다.
…박사의 장례식은 흐리고 바람부는 음산한 날에 진행되였습니다. 장례행렬은 초라했습니다. 친척들과 박사의 두 아들 그리고 박사의 동창친우들과 사회계와 학계의 인사들 몇사람이 관을 앞세우고 시가를 빠져나갔습니다.

박사의 장례를 치른 후 치솟는 격분을 참을수 없어 나는 슬픔에 잠긴 윤희를 남겨둔채 연구소를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가끔 들리여 윤희를 위로도 하고 이 더러운 사회와 맞서싸워야 한다는 말로 그에게 힘을 주기도 했습니다.

윤희는 오빠의 억울한 죽음과 파산을 생각하고는 견딜수 없는 고통으로 하여 번민하군 했습니다.

아무도 세상을 버리고 간 박사의 녀동생과 조수를 불쌍히 여겨 찾아주는 사람이란 없었습니다.

윤희 역시 문밖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뜻밖에도 이런 우리들에게 방문객이 나타났습니다. 그건 전에도 우리를 여러번 방문한바 있는 한 신문사의 중견기자였습니다.

그동안 서울의 크고작은 신문들은 박순현박사의 죽음에 대한 부고들을 낸바 있고 또 고인의 생시업적과 유언서를 공개해주었습니다.

침착하고 무게가 느껴지게 처신하는 기자는 주머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내면서 말했습니다.

《지금 서울시민들은 전화나 서면으로 우리 사에 박박사의 자살과 파산의 진원인이 어데 있는지 밝혀주기를 요구해오고있습니다. 박순현박사가 평양이 파견한 밀정망의 성원으로서 정체가 점점 명백해지자 자살해버렸다는 당국자들의 발표는 진실한것인가? 그리고 박사에 대한 발작적인 비방중상을 조직한자들은 무슨 필요에서였는가? 만일 박사가 청백하다면 무엇때문에 자살했는가? 틀림없이 여기엔 어떤 상서롭지 못한 사연들이 있는것으로 추측되는데 신문사가 이것을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할것이 아닌가 하는 요청들입니다.》

나와 윤희는 박사가 살인귀 페인톤의 박해를 받게 된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다음날부터 이밖의 여러 신문사들과 잡지사들에서 기자들이 계속 찾아왔습니다.

그리하여 살인악당들의 죄악이 온 세상에 밝혀지게 되였습니다.

이것은 사회의 여론과 분노가 폭발적성격을 띠게 했습니다.

학계와 대학들에서는 모임이 열리고 이 용서 못할 악당놈들의 죄행을 폭로규탄하는 단죄문까지 채택했습니다. 한 연극단은 《박사의 죽음》이란 극을 상연할 준비까지 하게 되였습니다. 악마들에 의해 희생된 량심있는 공학자의 녀동생과 조수에게 사회계의 많은 인사들이 때늦기는 했으나 조애의 뜻과 위문의 뜻을 표하는 인사들을 전해주었습니다.

사회계의 이러한 여론과 분노가 걷잡지 못할 정도에 이르자 당황해진것은 살인악당들이였습니다.

신문사들에 위협적인 제지도 가하려 했고 제놈들의 죄행을 은페할 방도를 모색하기도 했습니다.

밤중에 놈들은 나를 체포했습니다. 놈들이 나를 끌고 들어간 방은 구석진 으슥한 곳이였습니다.

거기엔 살인귀 페인톤과 변동길이란 놈이 있었습니다.

페인톤이란 놈은 멀찍이 놓인 안락의자에 앉은채 외투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조는듯이 눈깔을 내리감고있었습니다.

책상에 자리잡고 앉은것은 변이란 놈이였는데 놈이 심문을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박순현박사의 조수였다지요?》

《그렇소.》

《그럼, 우리가 낯익을텐데…》

《잘 아오.》

놈은 소름이 오싹 끼치는 싸늘한 눈웃음을 웃더니 담배를 피워물었습니다.

《박박사에게 대단히 성실했다지요?》

《할수 있는껏 그분을 위했소.》

《성실성은 미덕이니 좋은 일이요.》

변이란 놈은 슬쩍 멀찍이 방열기곁에 앉아있는 페인톤을 살펴보았습니다.

백인살인귀 페인톤은 여전히 모르는척, 조는척 눈을 감은채 앉아있었습니다.

《몇살인가? 박박사의 녀동생과는 보통사이인가?》

변이란 놈은 완전한 반말질로 넘어갔습니다.

《그럼, 너를 이렇게 데려온 용무를 말해주마. 그건 어려운것이 아니다. 너는 오래동안 박순현박사에게 성실했다. 그런데 인젠 우리를 위해서도 수고를 좀 해야겠다.》

변이란 놈은 이미 준비해놓고있었던 문서를 빼람속에서 꺼내여 내앞에 밀었습니다.

《보아라, 그리고 수표해라.》

나는 그것을 읽어내려갔습니다.

《나는 세상사람들이 지금 괴이하게 생각하는 박순현박사의 자살사건내막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으로…》

놈들이 나에게 수표하도록 요구하는 《진상문》은 이렇게 시작되는 강도들의 문건이였습니다.

《박사는 평양이 파견한 밀정인 시인 최의 막역지우로서… 나는 어느날 박사와 최근에 오랜 밀담을 진행하는것을 보았다. 그때 시인 최는 북조선측이 보낸 순금덩이를 박사에게 주고 박사는 자기의 특수기계설계인 <순현-8>호와 <순현-13>호를 넘겨주었다. 이 사실을 경찰당국이 알고 시인 최를 감금하자 박사는 몸이 불편하다는 구실로 일체 문밖출입을 하지 않다가 결국 자살하고말았다.》

이 상상조차 못할 살인문서를 읽어보던 나는 기절할번 하였습니다. 협잡이나 사기라는 말로써 불리워지던 놀랄만 한 행위들은 본바 있어도 이처럼 험악한것을 날조할수 있다는것은 당하니 처음인 나였습니다.

《수표할테냐?》

변이란 놈은 나에게서 일초도 눈총을 떼지 않았습니다.

《…》

나의 심장은 극도의 격분으로 하여 금시 탕 하고 폭발되며 불길을 토할듯만싶었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한 거기에 기록된 내용은 모두 진실이다. 우리는 너자신도 그 밀정망의 한 성원이 아닌가 의심하고있다.》

《…》

《페인톤각하는 네가 만일 이 사실을 해명하는데서 우리를 돕는다면 미국으로 류학보내줄 의사가 있다는것을 말씀하신바 있다.》

했을 때 그때까지 조는듯 하던 살인귀가 뱀이 미끄러져오듯 내곁으로 접근해왔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그것을 다시금 확언할수 있습니다. 당신은 학비때문에 공업대학을 마치지 못했지요. 가난과 수재란 언제나 비극을 낳는 원인으로 되고있습니다. 우리 미국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비극의 주인공들을 건져주는것을 하나의 의무로 생각하고있습니다.》

《…》

《만일…》하고 변이란 놈이 뒤를 따라 나에게 육박했는데 놈은 약간의 여유도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네가 우리 일을 돕지 않는다면 감옥으로 가야 할것이다. 우리는 너에 대한 문건도 이처럼 만들수 있다.》

더는 참지 못하고 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강박하지 마시오. 나는 이런 강도단의 리용물로 되고싶지는 않소.》

변이란 놈의 눈알은 갑자기 피살로 덮이고 턱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하시오.》

살인귀 페인톤만이 랭담성을 잃지 않고 서있더니 다시금 나를 굽어보며 말했습니다.

《미국류학은 감옥보다 낫습니다.》

하지만 나는 끝내 놈들의 강요와 위협공갈을 이겨냈습니다. 놈들은 이런 식으로 여러날 강박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의 뜻이 확고부동한것임을 알고는 재판에 넘겨버렸습니다. 재판은 엉터리없는것이였습니다. 재판장엔 내가 밀정망의 하급성원이라는것을 보증하는 매수된 개들이 출두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마어마한 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하게 되였습니다.

감방에서의 하루하루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울분과 쓰라림속에서 흘러갔습니다.

어느날 나는 우연히 감방안을 서성거리다가 쇠살창이 붙어있는 벽면에서 연필로 잘게 써놓은 몇줄의 시를 발견하게 되였습니다.


        갇힌 몸 되여 봄가을 보냈구나
        또 한해 흘렀으니 산천도 그만큼 변했으리
        철창밖 먼 창공은 아득히 푸르른데
        날지 못하는 수리개 가슴만 찢는다


        또다시 저 창공 날며
        싸움의 노래, 피의 노래 부르고싶어라
        묻노니 나처럼 불씨를 지니고
        여기서 새 싸움 마련한이 몇천몇만이더냐?!

 

이 두련의 시를 두번세번 읽어보는 나였습니다. 절절하게 가슴에 안겨오는 매 줄, 매 련이였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심정을 대변한 시를 읽는다는것은 명절처럼 즐거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시편이 적혀있는 벽쪽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한번두번 그리고 또 한번 읽는 과정에 그 두련을 외우게 되였고 매 줄에 맞는 억양과 감정을 담아 나직나직 랑송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의 머리속엔 번개처럼 떠오르는 또 하나의 류사한 시가 있어 기억을 더듬게 되였습니다.


        여기는 이름높던 성터
        조상들의 발자욱이 찍힌 곳
        옛정이 그리워 찾아왔더니
        봄가을 푸르던 저 둔덕도 헐벗었구나
        고달픈 후손들이 발펴고 누울 잔디쪽 하나 없어라
        수난의 생령들의 탄식높은 불모의 땅이여
        격노하노라
        이 성터, 이 둔덕의 활기를 걷어간자
        그 누구이더냐?!…

 

너무도 비슷한 시풍이였습니다. 감정의 흐름도 그러했거니와 물음조로 끝나는 결구 또한 같은것이였습니다.

시인 최선생, 선생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 내 눈시울은 뜨거워졌고 뒤이어 박선생의 모습이 이에 합쳐 그려지자 두볼로는 눈물방울이 흘러내렸습니다.

《그건.》

감방생활을 시작한이래 벗이 되여 다정하게 지내는 서울대학교의 강교수가 자기 자리에 앉은채 침울한 어조로 입을 열었습니다. 강교수는 학생들에게 대미관계사를 강의하면서 《셔먼》호사건을 그 어떤 미국의 친선사절들에 대한 《폭행》행위로 미화분식, 외곡하는 위정자들을 무자비하게 규탄하면서 《친선》과 《침략》은 동의어가 아니며 조국방위의 애국적《영웅성》과 《폭행》은 동종이 아님을 열렬하게 론증한바가 있었습니다.

놈들은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서 교수에게 《반미선동분자》라는 죄명을 뒤집어씌웠습니다.

지금도 놈들은 교수를 굴복시켜보려고 자주 불러내갔는데 그때마다 이런 말이 오가군 했습니다.

《미군이 침략자가 아니라는것을 인정하느냐?》

《아니요.》

《자유의 몸이 되고싶지 않느냐?》

《개처럼 되여 자유롭게 살고싶지는 않소.》

그러면 강박하던 놈은 일어서며 졸병놈에게 소리지르군 했습니다.

《이 늙다리를 끌어갓!》

그 강교수가 지금 입을 연것입니다.

《그건 이 방에 함께 있던 시인 최선생이 남긴거지요. 불덩이처럼 뜨겁고 고결한분이였지요. 자나깨나 시인 최선생은 위대한 민족의 수령 김일성장군님을 뵙는것이 소원이라고 말하군 했지요. 그 시인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저 시를 읊어보군 합니다.》

《지금은 어데 계시지요?》

《놈들은 그분을 딴 형무소로 이송했는데 믿을만 한 소식통에 의하면 도중에 탈출하셨다는것 같습니다.》

나는 기뻤습니다. 그 소식이 진실이기를… 그리고 탈출에서 성공하기를… 그리고 지금쯤 어데서건 힘차게 불길을 일으키며 싸울것을 바라는 마음이 절절했습니다.

나의 감방생활은 어떤 의미에서 사상단련과 학습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감방성원들은 자주 바뀌군 했는데 그들은 모두 항쟁의 길에서 굴할줄 모르는 강한 투사들이였습니다. 이로 하여 몸은 비록 감방속에 있었지만 남녘땅 전 지역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그칠 사이없이 하군 했습니다. 그이께서 령도하고계시는 공화국북반부의 소식 역시 감방마다에 새라새롭게 전해지는것이였습니다. 나는 공화국북반부가 얼마나 만민이 일치하게 원하는 훌륭한 세상인가를 이때에야 비로소 정확하게 알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배울수 있고 일할수 있고 학문을 탐구할수 있는 땅, 시간이 지나갈수록 공화국북반부를 동경하는 내 마음엔 나래라도 돋친듯 걷잡을수가 없었습니다. 철창을 부시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한달음에 달려가 그처럼 꿈마다에서 뵈옵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품에 안기고싶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념원이며 소원이며 희망이였습니다.

형무소생활에서 나에게 또 하나의 기쁨이 있었다면 그건 매주 한번씩 찾아주는 윤희의 얼굴을 보는것이였습니다.

내가 윤희에게 정식으로 사랑을 고백한것도 어느 면회일이였습니다.

《무엇때문에 우리사이에 그런 고백이 필요해요?!》

윤희는 낯을 붉히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사실 새삼스러운감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대체로 면회일마다 이런 말이 오고갔습니다.

《슬픔을 이기고 굳세게 사오, 윤희.》

《슬퍼하지 않아요. 이 땅에서 량심있는 사람들이 살 곳은 형무소뿐인걸요.》

《내 몸, 내 마음은 든든해질뿐이요. 걱정일랑 하지 마오.》

《가능한 한 운동을 많이 하세요.》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