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제 7 회)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2 장

 

…6. 28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윤희가 감옥문앞에서 나를 맞아주었습니다.

서울은 꽃의 바다, 환호의 바다였습니다. 인민군전사들을 에워싼 시민들이 거리도 골목도 광장도 메웠습니다.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면서도 울었습니다. 윤희도 나도 울었습니다. 두뺨은 쉬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로 하여 뜨거웠습니다.

꽃의 바다, 환성의 물결은 영원히 계속될것만 같았습니다.

내 눈에도, 윤희의 눈에도 모든것은 새로왔습니다. 푸른 하늘빛마저도 예전엔 달랐던것처럼 생각되였습니다.

윤희는 꽃의 바다, 환성의 물결속을 헤치며 나를 이끌었습니다.

가고가고 또 가도, 부르고부르고 또 불러도 지칠것 같지 않은 서울의 거리며 만세며 노래였습니다.

해방된 서울은 깨지 못할 꿈속에 있었습니다.

윤희와 나는 집으로 돌아와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오랜 세월 빗장을 찔러두던 대문, 박사는 박사대로, 윤희는 윤희대로, 나는 나대로, 더 굳게, 더 빈 짬이 나지 않게 단단히 걸어매던 대문이였습니다.

놈들과 등지고싶어, 놈들과 외면한채 지내고싶어 저 문을 닫아매던 우리였습니다.

그랬던 대문을 우리는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그동안 뜨락의 구석구석과 깐돌 짬바구니마다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났습니다.

슬픔에 잠긴 외로운 처녀가 억울하게 세상과 리별해버린 오빠를 생각하며 거닐었을 뜰안의 양어못주위길에만 풀들이 돋아나다 짓밟혀있었습니다. 또한 넘어가는 해가 던져주는 마지막빛을 받으며 늦도록 앉아서 감방속에 있는 애인을 그려봤을 양어못가의 잣나무아래 의자주위에도 풀들이 누워있었습니다.

우리는 뜨락 한복판에 서있었습니다. 활짝 열린 대문과 머리우에 펼쳐진 창창한 대공멀리로 울려가는 거리의 만세소리와 환성이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그 만세소리, 그 환성을 들으며 뜰안복판에 서있는 우리의 감회는 실로 깊었습니다.

이 뜻깊은 날을 함께 맞지 못하는 박사의 얼굴이 떠오르자 내 가슴은 찢어지듯 쓰라렸습니다.

지금은 비여있는 박사의 서재, 거기서 방금 문을 열며 박사가 나올듯만 싶었습니다.

《늦었네. 김군, 일을 시작하세. 어둠은 가시고 새날이 왔네.》

박사가 손을 내밀어 나를 이끄는듯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활짝 열린 대문으로 박사가 웃으며 걸어들어오는듯도 했습니다.

《해방이 되였네, 김군. 우리가 원하던 그런 세상이 왔어. 간판을 다시 내걸게. 연구사업을 계속하자구. 인제부턴 밥을 먹기 위한 연구소가 아니라 진정한 발명품을 위한 연구소야.》

흥분한 박사의 목소리가 귀전에서 맴돌이쳤습니다.

진정 박사가 살아서 오늘을 맞았다면 무슨 일부터 시작했을가? 그때를 가상해보는 나였습니다.

박사는 틀림없이 《순현-8》호와 《순현-13》호를 꺼내놓았을것입니다. 박사가 숨지기 전까지 머리속에 익히고 또 익히면서 완성시켰던 력작품이였던 그것은 서울의 한 기계공학자가 민족의 위대한 수령이신 일성장군님께서 주시는 빛을 받아 세상에 내놓는 재생품으로 될것입니다.

할 일 많은 조국의 기계공학분야에서 성실한 일군이 되여 보람찬 탐구의 나날을 보낼수 있었던 박순현박사였습니다.

그가 발명한 기계들이 조국부강과 민족의 번영을 위한 길에서 자기 사명을 다할것이였습니다.

아직 이 세상에 태여나보지도 못하고 재가루가 되지 않으면 안되였던 《순현-8》호와 《순현-13》호, 단 한번도 자기 재능을 꽃피워보지도 못했고 열매조차 맺어보지 못한채 한많은 세상을 저주하며 스스로 고혼이 된 억울한 학자였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두사람의 눈과 눈이 오래도록 마주쳐있었습니다. 윤희의 눈은 내 시선과 마주쳐있는 사이에 점점 더 빛을 뿌리는듯 했습니다.

나는 윤희의 눈동자속에 이런 빛, 이런 희망, 이런 환희도 있었던가싶었습니다. 그 순간의 내 눈동자속에도 그런 빛, 그런 희망과 환희가 어리여있지 않았을가 하고 생각합니다.

오래동안 마주보던 윤희가 수집은듯 웃었습니다. 나도 웃었습니다. 순간 가없이 넓은 하늘은 더욱더 푸르러진듯싶었고 거리쪽으로부터는 더욱더 높아지는 환호성이 대지를 드놀게 하는듯싶었습니다.

우리가 마주보며 웃어보기는 처음이였습니다. 적막만이 세월따라 사면으로부터 죄여드는것 같던 건물의 구석구석도 갑자기 발광체로 변하여 빛을 뿜는듯 했습니다.

 

해방된 서울은 새 생활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발과 팔저음새까지도 새로왔습니다.

상점들의 문에도 명절처럼 붉고푸른 테프들이 드리워지고 곳곳마다에 나붙는 선전화와 표어판들도 화려했습니다.

놈들의 온갖 매국행위가 실행되던 건물마다에 매달려있던 간판들이 땅바닥에 동댕이쳐지고 그 자리엔 인민이란 신성한 이름이 우에 붙는 기관들의 간판이 세워졌습니다.

학교들도 병원들도 영화관들도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아들였습니다. 거리의 확성기들은 남쪽으로 멀어져가는 전선소식과 함께 새로 해방된 도시와 마을들의 이름을 알려주느라 분주했습니다.

전선은 남으로… 군악단을 앞세운 보병대렬이 대통로로 지나가고 또 지나갔습니다. 전차대렬이나 포차대렬들도 흘러갔습니다. 시민들은 자신들을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의 학정밑에서 해방하여준 인민군대렬을 만세와 꽃다발로 맞이했고 또 보냈습니다. 이 들끓는 거리로 뛰쳐나온 윤희와 나도 인민군전사들에게 꽃다발을 드렸습니다. 나는 형무소의 문을 까부시고 《동무들, 나오십시오.》하고 나의 손을 잡아 끌어내준 애어린 인민군전사를 혹시 만나지 못할가 하는 희망을 안고 큰 거리, 작은 거리에서 인민군병사들만 보면 한참씩 서있군 했습니다.

날이 지나감에 따라 의용군대렬들도 속속 남으로 떠나갔습니다. 인민군전투대오속에 섞이여 전선지구로 떠나가는 의용군들을 볼 때마다 나는 부러움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형무소에서 잃었던 나의 건강도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인제는…》하고 나는 남쪽으로 멀어져가는 한 의용군대렬을 환송하고 돌아오며 윤희에게 말했습니다.

《떠나시겠어요?》

그 다음 윤희는 말없이 자기 발끝만을 내려다보며 걸었습니다.

《그럴 결심이요. 총을 잡은 전사가 되고싶소.》

만일 내 몸이 형무소에서 상한 처지가 아니였던들 벌써 첫 의용군대렬의 첫줄에 선 병사가 되여 남쪽전선으로 갔을것입니다.

《…》

윤희도 무엇인가를 결심하는듯 했습니다.

《미제원쑤놈들을 마지막 한놈까지 조국땅에서 내쫓기까지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우려 하오.》

집으로 돌아와서도 우리는 밤늦도록 마주앉아있었습니다.

《그 몸으로 견디여내실가요?》

사실 그때까지도 내 몸은 놈들에게 체포되던 때만큼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걱정마오. 윤희, 미국놈 백명쯤은 감당해낼수 있을거요.》

윤희는 이후에도 오래동안 잠자코 있다가 드디여 말했습니다.

《떠나세요. 저도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윤희의 음성은 굳세게 울렸습니다.

《…?!》

나는 윤희를 건너다보았습니다.

《오빠의 원쑤를 갚고싶어요. 어느 전선에 가든 당신을 자주 생각하며 싸우겠어요. 그리고 어떤 경우나 당신을 잊지 않겠어요.》

우리는 승리의 날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이튿날 전선으로 떠났습니다. 윤희는 전선의료일군들의 대렬에 끼여 서부쪽으로, 나는 보병부대의 병사로서 전선중부쪽으로,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송을 받으며 의용군대렬들은 떠나갔습니다. 우리들의 머리와 가슴은 꽃송이와 꽃보라속에 파묻히군 했습니다.

내가 시인 최선생을 다시 본것도 이때였습니다. 시인은 전선으로 떠나는 의용군들을 위해 마련된 가설무대우에 높이 올라서서 시랑송을 했습니다. 해방된 서울에서 그를 다시 보니 가슴은 진정할길 없이 설레였습니다. 폭풍과 불비속을 뚫고 매처럼 날던 불덩이시인 최선생은 드디여 자유로운 창조의 세계를 맞이한것입니다.

 

        …

        미제의 가슴팍에 총창을 박으라

        승리자가 되여 돌아오라

        서울은 월계수로 그대들을 맞으려니

        그날의 영광, 천년을 두고 빛을 뿌리리

        …

 

그날 최선생은 전선으로 떠나는 의용군 한사람한사람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다가 윤희를 알아보고는 주위사람들이 놀랄만큼 큰소리로 반기였습니다.

《네가 군복을 입었구나… 김군도.》

선생은 왼손으로는 윤희의 손을, 바른손으로는 나의 손을 잡았습니다.

《너희들을 보니 해방의 기쁨이 더욱 커지는구나.》

《우리도 그래요.》

《보아라, 얼마나 설레이는 서울이냐. 이건 새 력사의 시작이다.》

최선생은 그칠줄 모르는 환호의 꽃바다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음순간 최선생과 윤희의 눈엔 약속이나 한듯 서글픈 기색이 나타났습니다. 이 만천하가 들끓는 해방의 감격어린 날에 한사람은 오빠를, 한사람은 벗을 회상한것이였습니다.

《슬퍼말자, 윤희야. 네가 이처럼 보복의 길에 나서지 않았느냐. 이 기쁜날에 벗과 함께 이 광장에 나와서서 너희들을 보내지 못하는 내 마음도 쓰라리다. 나는 박군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다는 소식을 탈옥전야에 들었지. 비통하기란 이를데없었다. 하지만 내가 박군을 그렇게 규탄해보기는 처음이였다. 그건 누구에게도 칭송받지 못할 최대의 비겁쟁이들만이 할수 있는 일이였다. 만일 박군도 그런 길을 택하지 않고 싸움의 길에 나섰더라면 오늘의 이 광장에 함께 섰을게 아니냐.》

시인은 그처럼 다정했던 벗의 죽음을 놓고 슬픔의 감정도, 규탄의 감정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의용군대렬들에 출발구령이 떨어지고 군악소리가 높아지자 시인은 마지막으로 윤희와 나의 손을 굳게 잡고 흔들어주었습니다.

《잘 싸워라. 윤희야, 그리고 김동무,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들은 어떤 싸움에서나 승리하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았소.》

지금도 시인 최선생이 랑송하던 시구절들이며 우리를 바래워 점도록 손저어주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떠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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