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제 8 회)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2 장

 

예견했던대로 위치이동을 하라는 명령이 전달되였다. 우리는 밤을 보낸 산상봉으로부터 얼마쯤 떨어진 산중턱쪽으로 내려와서 천막을 쳤다.

우리가 한잠씩 자고 일어났을 때는 한낮의 뜨거운 여름해볕이 수림속을 환히 비치고있었다.

그날 밤에 적후파견대가 도착했다. 그리하여 적들의 소굴인 ㅂ시가를 순식간에 공격하여 점령해버렸다.

그 이후에도 김동무와 나는 오래동안 함께 싸웠다.

락동강 남북단지구에서의 전 전투기간을 함께 싸웠고 재진격때에도 함께 싸웠다.

우리가 갈라지게 된것은 내가 상급의 명령으로 부대조동을 하게 된 1951년도의 늦은여름이였다.

부대만 달라지게 된것이 아니라 싸우는 전선지구도 달라져서 이때부터 우리는 전혀 만나볼 길이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생활로정이 같지 않아서 서로의 소식조차 알아볼 기회란 생기지 않았다.

전쟁후 나는 학교로 되돌아와서 학업을 계속했다. 그러면서도 김동무의 그후 행방이 궁금했고 또 만나보고싶은 생각이 간절한 때가 많았다.

그가 아직 부대에 남아있는지 아니면 제대되여 다른 지방에 가있는지 두루두루 알고싶었다.

그렇게 한해, 두해, 여러해가 지나갔다. 학업을 필한 후 나는 신문기자가 되였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분주한 하루를 맞이해야 하는 직업이였다. 조국땅 그 어데나 찾아다니지 않는 곳이란 없었다.

이 과정에 나는 수많은 옛 전우들을 만날수 있었다. 어제날의 조국수호영웅들이였던 전우들은 새로운 초소들에서 전투를 계속하고있었다. 용해공, 농장원, 정권기관이나 당기관의 간부직에서 일하는 전우가 있는가 하면 교단이나 무대생활을 하는 전우들도 있었다. 그랬지만 김응빈동무만은 만나보지 못했다. 어데 있는지 알아내지조차 못했다.

도대체 그 사람은 어데서 무엇을 하는것일가? 어쩌면 이렇게 조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사이에 우리 두사람은 로상에서 부딪쳤을수도 있었으련만 변모로 하여 서로가 알아보지 못한것이나 아닐가? 내 모습이 이렇게 변했을진대 그 사람의 용모 또한 몰라보게 되였을게 아닌가?

윤희는 만났을가? 지금쯤은 부부로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것이나 아닐가?

그런 어느해 늦은봄이였다. 나는 서북지방의 채굴지대인 ㅊ무연탄광에 대한 취재를 하게 되였다. ㅊ무연탄광을 중심으로 원근이웃의 크고작은 탄광들에 대한 특집준비를 위해 파견된 우리 기자단은 현지에서 집필기사분담을 하게 되였다. 그때 나는 이 지구에 있는 석탄채굴기계분연구소의 연구성과와 현재 진척중에 있는 연구정형을 소개하는 기사를 맡게 되였다.

연구소는 탄광구역의 동쪽끝머리에 자리잡고있었다.

출입하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정숙이 보장되여있는 깨끗한 2층집이였다. 뜨락엔 연구사들이 짬나는대로 나와서 가꾸는것 같은 무성한 화초들이 있었고 유리창마다엔 기울어진 저녁해발이 함뿍 실려있었다.

이속에 훌륭한 특집기사감이 있으리라는 나의 기대는 헛된것이 아니였다.

백발의 선량한 늙은 소장은 기자의 질문들에 대하여 만족한 자료로써 대답해주었다. 연구소의 성과는 컸다. 채탄, 굴진, 운반, 통기, 배수 그리고 조명에 이르기까지 이 연구소의 무연석탄기계연구사들은 탄광들이 현실적으로 절박하게 요구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있었다. 연구과제들중 많은것이 이미 완성되여 제작중에 있거나 최종설계중에 있었다.

소장은 종합적인 성격을 띠는 연구소의 일반정형을 설명해준 후 연구실들로 직접 안내하여주는 친절까지 보여주었다.

소장이 처음으로 안내해준 연구사는 자동화된 무연탄채탄기를 연구했고 두번째로 안내해준 연구사는 무인운반용련결광차를 설계하고있었다. 세번째 연구사는 채탄막장들에서 형성되는 공간으로 하여 반복채굴이 진행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무연탄채탄포를 연구하고있었다. 삼십전후의 그 연구사는 소장이 낯선 사람을 데리고 들어온지도 모르고 계산수자에만 주의를 집중하고있었다.

우리가 자기의 설계탁상곁에 이르렀을 때야 사람기척을 알고 얼굴을 들었다.

보통키, 흰 얼굴, 넓은 어깨, 탐구의 무거운 사색이 실린 침착한 시선이 웬 사람이냐는듯 무표정하게 한동안 나를 향해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에서 반짝 빛을 쏟으며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동시에 짧은 외마디환성… 그 사람이 바로 김응빈이였다.

나 역시 첫눈에 그를 알아보기란 어려웠다. 어둠속에서 허덕이다가 감옥으로 끌려갔던 사람, 병약한 인상을 주던 창백한 얼굴, 갸름한 목, 조심스럽던 눈매, 그 모든것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것이다.

틀잡힌 의젓한 그의 거동마다엔 생활에서 여유를 가진 사람의 당당함이 느껴졌고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 그의 얼굴엔 긍지와 자부심이 비껴있었다.

《만났군요.》

응빈은 내가 틀림없는 자기의 옛 전우인가를 확인이나 하려는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날 밤 우리는 외지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탄광숙소의 아담한 방에서 단 둘이 마주앉았다.

봄밤은 우리를 위해 너무 짧았다. 추억할 일도, 물어볼 일도, 전해야 될 일도 많은 우리였다.

긴 날의 행군과 전투들, 고막을 찢어놓을듯 울부짖으며 덤벼들던 적군포병대와 비행대의 기습, 토막토막 끊어진 전호들, 그속에서 보낸 여름밤과 겨울밤들, 급변한 정황으로 하여 불가피하게 죽음을 각오하며 최후의 결전에로 나서던 피의 전장, 이 모든것을 추억하자면 끝이 없었다.

그 전투의 어느한 날에 의용군병사 김응빈은 자신의 불행많던 과거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오는 거리, 서울의 밤, 밑도 없이 그밤은 캄캄하였다. 그속을 헤매며 교문밖으로 쫓겨난 대학생은 세상을 저주하였다. 절망과 희망의 모순된 감정을 안고 그는 비오는 서울의 밤거리를 방황하였다. 불운한 일생을 보낸 서울의 한 공학박사와 그의 연구소 그리고 감옥…

나는 굵은 비방울이 천막지붕을 소란스러이 두드리던 경상산줄기의 밤에 들려준 그의 이야기를 지금껏 생생히 기억한다.

정직한 재사인 공학박사와 성실한 그의 조수는 미래를 믿었다. 악과 협잡과 살인음모가 없는 미래를 갈망했다.

그 김응빈의 래일, 미래는 오늘이였다. 그렇다면 오늘의 김응빈은 지난날의 슬픔과 완전히 결별했을가?

오늘의 자기 생활을 놓고 그 시절에 자기가 바라던바가 곧 이것이였다고 생각하는것일가?

나는 그것이 알고싶었다. 나야말로 얼마나 많이 김동무에게 인젠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 안기였으니 불행과는 리별하게 되였다는것을 설명해주었던가.

나는 회상과 전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기가 바쁘게 김동무의 생활을 듣고싶다고 말했다.

《허허, 옛날에 하다만 이야기를 계속하라는셈이군요. 그때엔 어둠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런데 인젠 빛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전쟁후 사단은 나를 공업대학으로 추천해주었습니다. 대학으로 보내는 사람들의 명단을 발표할 때에 《중사 김응빈》이 호명되였지만 나는 제때에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뜻밖이여서 어리둥절했기때문이였습니다. 좌우쪽에 서있던 동무들이 옆구리를 찔러서야 대답했는데 그 대답이 너무 때늦었는데다 정상이상으로 높고 길었기때문에 대렬속에서는 웃음이 터지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대답이 아니라 놀람이며 환성이였으니깐요. 대학으로 가는 렬차속에 앉아서도 눈을 감으면 꼭 꿈만 같이 생각되여 내처 눈을 뜨고 앉아있었습니다.

대학, 가슴깊이에 너무도 쓰라린 상처를 남겨준 이름이였습니다. 두눈속에 흙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교문밖으로 쫓아내던 놈들과 또 쫓기워나가던 처량한 자신의 모습을 잊지 못할 나였습니다.

그랬던 대학으로 가는 내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대학… 대학… 어버이수령님 품에 안겨 대학을 다닌다는것은 나의 희망이였고 꿈이였습니다. 우리의 어버이수령님께서 그 희망, 그 꿈을 주신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 이보다 더 큰 배려란 생각할수도 없는 나였습니다.

승리한 조국땅우로 우리를 싣고 달리는 렬차의 기적소리는 창창대공에 높이 울려퍼지는데 창밖의 전야를 내다보는 나는 명절기분으로 하여 진정할 길이 없었습니다.

첫 강의를 받기 위하여 앉았을 때 나는 학부장인 로교수의 얼굴이며 교탁이며 흑판을 한동안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이건 꿈이 아닌가? 믿을수 없지 않는가? 진정 나는 돈없이도 저 명성높은 교수의 강의를 들을수 있단 말인가? 강의를 필하면 래일의 먹을것과 입을것, 학습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품팔러 뛰여다니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이 훌륭한 대학의 강의실엔 내 책상이 있고 기숙사엔 푹신한 내 잠자리가 있단 말인가?…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채굴기계학을 배우게 됩니다. …》

교수의 강의는 이렇게 시작되였지만 복받은 자신의 처지를 놓고 깊은 생각에 잠긴 나는 그 목소리가 먼 꿈속에서 들려오는듯 했습니다.

《…조국의 채굴기계공학은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인 과학의 길을 따라 해방된 때로부터 빛나는 전진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미제와 그 주구들이 도발한 전쟁은 우리 조국에 준엄한 시련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렬처절한 전시환경에서 과학원을 창립해주시였으며 사회주의건설의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주시였습니다.》

강의시간에는 보기 드문 현상이지만 요란한 박수가 터져올랐습니다.

《…전쟁이 승리한 오늘 우리는 새로운 터전우에서 조국의 채굴기계공학을 급속도로 전진시켜야 할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채굴기계공학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데 대하여 특별히 교시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지하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무연탄광로동자들과 광산로동자들을 무거운 구시대의 작업방법에서 해방시켜주는것, 이것이 우리의 채굴기계분야에 종사하는 학자, 전문가, 기사, 일군들의 임무라는것을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시군 합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렇듯 영예로운 임무를 지닌 전선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우리의 채굴전선은 문명과 기계화를 요구합니다. 그것 없이는 사회계급적해방을 얻은 우리의 탄부들과 광부들을 어려운 중로동에서 해방해줄수도 없고 주체조국의 인민경제에 열을 주고 원료를 주는 채굴공업을 발전시킬수도 없습니다.

참된 과학자가 되는 길, 그것은 자기앞에 맡겨진 임무가 무엇인가를 깊이 깨닫는데로부터 시작됩니다. …》

나는 나의 대학생활 첫 강의시간에 들었던 신교수의 이런 내용의 강의구절들을 지금껏 생생히 기억합니다.

종이 울려서 우리들의 첫 강의가 끝났음을 알리고 교수도 강의실에서 나갔지만 나는 흥분된 심정그대로 의자에 그냥 앉아있었습니다. 이렇게 나의 행복한 북반부의 대학생활은 1학년 첫 강의부터 흥분속에서 시작되였습니다.

대학생활 5년간 역시 그런 심정속에서 흘러갔습니다. 여름교복을 타입을 때나 겨울외투를 타입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눈앞에 선히 떠오르는것은 서울에서 고학의 피눈물 흘리던 지난날의 자기 처지였습니다.

오늘의 처지가 행복하면 할수록 웬 일인지 그 가슴찢는듯 한 고통스럽던 과거가 진한 빛으로 되살아나군 했습니다. …

 

그런데 김동무의 그후 이야기는 이처럼 시작되려다가 끝나야 했다. 한것은 우리 현지파견기자집단의 긴급소집이 있었기때문이다.

본사로부터 전보가 왔는데 전원 지체없이 떠나오라는 지시였다. 서운한대로 나와 김동무는 만나자 작별을 해야 하였다.

우리는 새벽 정거장으로 나왔다. 완행차도 일분밖에 서지 않는 조그마한 시골정거장엔 차를 타야 할 사람이 많지 않았고 또 보내는 사람 역시 많지 않았다. 구내 전등아래에서 김응빈은 발차를 알리는 기적소리와 함께 손을 들었다. 렬차는 서서히 짧은 시골정거장의 구내를 벗어나서 산굽이를 돌아가고 나와 그와는 마지막 손저음을 했다. 그랬을 때 문득 가장 알고싶었던것이면서도 묻지 못했던 어느 한사람의 일이 생각났다. 그것은 윤희에 대한 소식이였다. 그들이 만났는지, 어쩌면 지금 부부로 있는지, 그만 뜻밖의 상봉으로 하여 온 흥분때문에 나는 그것을 미처 묻지 못했고 김동무 역시 그것을 알려주는걸 잊었던것 같다.

먼동이 터올무렵의 단잠에 든 손님들 짬에 빈자리 하나를 얻어앉은 나는 이것으로 하여 자신의 덜퉁함을 자책하고 또 자책하였다.

그때 헤여진 후 김동무를 다시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벌겋게 단 난로우에서는 여전히 물주전자가 끓는다. 북방대지의 밤은 깊어가고 내앞엔 옛 전우가 앉아 다정한 목소리로 자기 설계제품에 대한 설명을 계속하는데 그 머지않아 탄생할 기계의 의의를 리해하면 할수록 나의 놀라운 감정은 커지기만 한다.

(김응빈동무, 동무가 정말 이처럼 귀중한 기계를 연구했단 말인가?)

나는 그가 자기의 새 설계제품에 대한 설명을 끝내기를 기다려 언젠가 들려주다가만 《빛과 어둠》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시켰다.

물론 나에겐 그의 새 설계제품에 대한 리해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그가 오늘 어떻게 행복하며 또 삶의 보람을 느끼고있는가 하는것이다. 그리고 그의 불행했던 과거와 함께 련결된 애인 박윤희에 대한 그후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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