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제 9 회)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2 장

 

…그런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지요.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다할수 있을가요. 이곳 현지연구생활기간에 있은 사실만 몇가지 이야기할가요.

3년전 봄이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부지구의 ㅇ탄광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면서 채탄공들과 굴진공들, 기사들과 해당 전문가들을 만나시였습니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오랜 시간 담화하시고 다음과 같은 교시를 하시였습니다.

…탄부들을 무거운 중로동에서 해방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탄부들은 사회계급적처지로부터는 해방되였지만 중로동의 무거운 부담에서는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탄광작업 특히 무연탄광을 기계화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

수령님의 이 교시를 받들고 우리 탄광채굴기계연구사들은 총궐기했습니다. 매개 연구사들은 탄광기계화를 위한 크고작은 연구과제들을 담당하고 분초를 다투는 투쟁을 하게 되였습니다.

나의 기계동발연구도 그때부터 시작되였습니다.

이 연구과제는 처음부터 나의 힘엔 부치는것이였습니다. 설계의 기초를 이루는 문헌조사를 끝낸 이후에도 구상은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생각다 못하여 연구실을 현지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현지는 새로운 연구의 길을 열어주리라 믿어졌기때문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연구사들은 본소의 연구실외에 자기 필요에 따라 임의의 현지에 연구실을 차려놓을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버이수령님의 배려속에 살고있는 우리들만이 누릴수 있는 특전으로 됩니다.

남조선과 같은 곳에서 한 연구사가 자기의 발명품때문에 필요한 임의의 장소에 현지연구실을 꾸려놓는다는것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입니다. 현지연구실은 고사하고 본연구실조차 못 가지고있는 학자들이 절대다수를 이루는것이 남조선입니다.

현지에서 살면서 현지조건을 연구사업에 마음껏 리용할수 있고 현지의 로동자들이나 기술자집단의 방조를 받을수 있다는것은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우리 연구사들은 본소의 연구실에서 어려운 고비에 부딪치면 현지로 떠나가군 했습니다. 연구실을 현지에 옮겨다놓은 나는 막장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설계할 기계동발의 형태를 종이와 머리속에 그려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형태는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려보는것치고 불만스럽지 않은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는 사이 나의 사기는 떨어져갔습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창조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있을수 있는 일시적침체현상으로 여기고 시간이 구원해주리라 믿고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만들어보는 동발, 기계동발, 나는 이 《앞이 막힌 때》에 외국의 연구사들이 지난날 이것을 만들어보려고 고심했던 나날을 기록한 수기들을 읽었습니다. 별반 시원한 성과를 보지 못한채 몇개의 고비를 넘기고는 주저앉아버린 그런 수기의 필자들은 많았습니다. 나는 그 수기들을 읽으면서 나만은 기어이 성공하리라 몇번이고 속다짐했습니다. 이제 시간은 나를 침체에서 구원해낸 후 고속도로 전진시켜주리란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시간은 점점 더 나로 하여금 자신심을 잃게 해주었습니다. 창조의 고민에 싸인 낮과 밤이 흘러갔습니다. 깊은 밤, 남 다 자는 시각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치락거리다가 밖으로 나오는 때가 많아졌습니다. 밖으로 나온 나는 발길이 닿는대로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느라면 버럭산들을 넘기도 했고 탄광지구를 멀리 벗어난 그 어떤 둔덕우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높은 산 비탈길에 서서 불빛밝은 탄광지구의 상공을 내려다보며 늦도록 있기도 했습니다.

(나 역시 결국은 길다란 수기만을 남기고 그만둘 운명에 처하지 않을가?)

인제는 더이상 참고할 문헌조차 없었던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무연탄전들은 어느 나라에서도 볼수 없는 특성과 물리, 기계적성질을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또 분탄이라는 특성으로 인하여 이에 적합한 완전한 의미에서의 독창적인 우리 식 기계를 만들어야 했던것입니다. 때문에 나의 임무는 주체적인 우리의 채굴기계를 만들어야 하는것이였습니다.

그런데 힘이, 능력이 나에겐 부치였습니다.

하루하루가 이처럼 아무런 소득도 없이 지나가고보니 초조는 걷잡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만일 계속 이런 감정이 지배되여 초조에서 해방되지 못한다면 불가불 본연구소에 이 사실을 알리고 회보를 기다리는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어느날 저녁이였습니다. 물기를 먹은 구름장들이 떠도는 사이로 내비치는 달빛이 유난히 밝은 저녁이였습니다. 이날은 막장에도 들어가지 않고 설계대에 앉아 《인내성》으로 《난구역》을 돌파해보려고 여러장의 설계지만을 어지럽혔습니다. 그런 뒤끝이라 지치고 불만에 차 일찍 자리에 누웠습니다. 종일 내내 몸부림치다싶이 하며 《난구역 돌파》를 시도하다가 좌절된 돌격수가 되고보니 모든것이 싫어져서 불도 켜지 않았고 저녁밥도 건늬고말았습니다.

누군가가 밖에서 찾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유리창을 밀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거기엔 낯모를 사람이 서있었습니다. 50대의 탄부인 그 건장한 사람은 달빛을 온몸에 뒤집어써서 얼굴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으나 누군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데서 본 사람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것 같기도 한 사람이였습니다. 어쨌든 찾아온 손님이여서 방안에 불을 켜고 맞아들인 다음 원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습니다.

어깨가 약간 안쪽으로 휘여들고 온몸은 무쇠처럼 든든해보이는 구레나룻의 쉰다섯 아니면 그 전후일 탄부였습니다.

《연구사선생은 나를 잘 모르실거외다. 3갱에서 일하고있습니다.》

나를 건너다보는 그의 눈망울이 전등빛을 받아 번쩍이였습니다. 목소리는 우렁우렁해서 갱도속에서처럼 방안을 채우며 울리군 했습니다. 3갱이란 말에 나는 그 사람을 여러번 본것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여기 현지에서 설계를 시작한이래 주로 3갱막장에서 지냈습니다.

현지에서 다년간의 경험을 쌓은 기사들과 탄부들로부터 지혜로운 조언을 들으려 했고 또 과제제품이 막장의 작업기구인 기계동발이였기때문입니다.

《선생과 알고지내자고 찾아왔지요. 내 이름은 김영탁인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탄광에서 늙었지요.》

바위처럼 듬직한 그 사람은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그의 굵직굵직한 손놀림이며 삼킬듯이 빛을 내는 눈으로 여유있게 건너다보는 시선은 어덴지 위압을 느끼게 했습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그때 몹시 위축되는듯 했습니다.

《급하게 왔더니 목이 마르는군요.》

그 사람은 나의 침상머리에 있는 받침대우에서 고뿌를 당겨다가 놓더니 물병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도 한번 웬 학자어른이 굴로 들어와서 두달가까이 함께 지낸 일이 있지요. 뭐 탄캐는 기계를 연구하기 위해서 왔다고 합디다. 그러더니 끝도 못 맺고 흐지부지 가버리고말았지요. 나도 그렇고 우리 사람들모두가 몹시 섭섭해했지요. 우리가 혹시 대접을 소홀히 한게나 아닌지… 대접을 좀더 잘 해드릴걸…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였다오.》

《…》

《듣자니 선생은 기계동발을 연구하시려구 오셨다지요. 그러니 이번엔 단단히 잡아두려고 합니다. 실상은 오늘 나와 함께 여럿이 오려고 했지만 선생이 떠들썩하는걸 좋아하는지 몰라서 혼자 왔수다. 우리한테 오시여 지내는 기간 어떤게 필요되고 불편한 점은 어떤건지 말씀하시우. 우리가 다 해결해드리겠수다.》

영탁은 단숨에 큰 고뿌의 물을 다 마시고나더니 직선으로 육박하듯 곧바로 건너다보며 말했습니다.

《아무런 불편도 없습니다.》

《앞으로 있게 될는지도 모르지요. 그때엔 주저할것 없이 말씀하시우. 그런데 지금 선생에 대해서 섭섭한 소문이 떠도는건 헛것이겠지요?》

《소문이라니요?》

나는 사실 그동안 이 탄광지구에서 어떤 소문이 떠도는지 모르고있었습니다.

자기네들에게 잠시 와서 있다가 갈 한 연구사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소문 같은걸 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깐요.

《내가 선생한테로 올 때 우리 사람들이 이런걸 물어보라고 했지요. <그 연구사가 자신없어하는게 사실인가?>구요, 거짓말일테지요?》

영탁은 내 눈에서 그것을 읽으려고 함인지 잠시도 시선을 옮기지 않았습니다.

선뜻 대답을 못하는 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시선속엔 육박하는듯 하는 위압감만이 아니라 질책이 그리고 그 어떤 절절한 기대가 실리여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나의 초조한 시선은 그의 불같은 시선에 부딪치자 중도에서 타버리는듯 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

늦게야 나는 입을 열었습니다.

《그건 진실입니다.》

《그러니 떠난단 말이지요?》

순간 그의 불덩이처럼 타오르던 시선이 흐려지더니 빛을 잃으며 내 가슴우로 미끄러져내리였습니다. 그것은 나의 심장 한구석을 잘라내듯 아프게 했습니다.

《처음엔 자신심이 있었습니다만…》

말끝을 맺지 못하고 원탁의 한구석으로 나의 시선은 떨어져내리고말았습니다.

《아직 떠날 결심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어찌되겠는지 모르신다 그런 말씀이우?》

영탁은 더운듯 앞가슴의 단추들을 풀어놓더니 하던 말을 계속했습니다.

《자꾸 따지는것 같아서 안됐소만 기계동발을 만들어보실 생각이 점점 엷어지는가요?》

《제힘엔 부치는것 같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들앞에서는 거짓말을 한다는것이 죄악이라는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진실그대로를 실토했습니다.

《힘에 부친다?… 그럴테지요. 선생은 공짜로 기계동발을 만들어내려고야 생각지 않겠지요. 힘에 부치면 힘을 키워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요? 우리네한테 오셨으니 우리한테 계시면서 힘을 키워봅시다. 돌아간다고 누가 그런 힘을 넘겨주지는 않겠지요.》

나는 그 사람의 말마디들에서 전해져오는 진정을 느끼고는 눈시울이 뜨거워났습니다.

《…》

《선생들이 힘에 부친다고 손을 떼면 우리처럼 일생을 동발 들이는데 바친 사람들의 허리는 언제 펴져보겠소. 힘을 키우는데 필요한게 무엇인가요? 우리 탄부들이 마음만 먹으면 못 구해올것이 없지요. 땅밑에 있는것을 구해내는 우리라 땅우에 있는것쯤 구해내는건 아무도 어렵게 생각지 않지요. 이제 당장이라도 좋으니 종이에다 선생이 힘을 키우는데 필요한거라면 무엇이나 적어주시우. 인삼록용쯤은 문제도 안되지요. 책이름도 좋고 실험재료들도 좋수다. 기계동발만 만들수 있다면 무엇을 아끼겠소. 그것이 성공하면 우리가 힘도 덜 들이고 탄도 더 많이 캐낼테니 나라가 얼마나 부유해지겠소.》

말을 마친 김영탁은 또 한번 고뿌에 물을 가득 붓더니 마시는것이였습니다. 굵직굵직 매듭이 진 그의 손가락과 큰 주먹은 무쇠처럼 단단해보였습니다. 이 오랜 동발공은 저 드센 손으로 수없이 많은 탄갱들에 동발을 세웠을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매듭 하나하나는 무쇠처럼 굳어졌으리라 생각하니 그의 손에서 시선을 옮길수 없었습니다.

내가 자기의 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것을 안 김영탁은 자기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쥐였습니다. 하더니 감격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탄광에 현지지도차로 나오셨을 때 글쎄, 저의 이 손을 잡아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요?!》

나는 눈이 커지며 반문했습니다.

그는 잊을수 없는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는듯 잠시 창밖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탄광이 생긴이래 그날처럼 기쁨으로 들끓은 때가 언제 또 있어봤겠소. 온 탄광이 그저 꽃천지였지요. 그날은 해볕도 봄날치고는 어찌나 따뜻했던지…

수령님께서는 갱구들을 돌아보시고, 마을집들을 돌아보시고, 유치원아이들의 노래도 들어주시구 또 탁아소 울기쟁이들의 잠자리까지 돌보아주셨지요. 그러시고는 우리처럼 오래된 채탄공이나 동발공들과 허물없이 한자리에 앉으시여 담화까지 하셨지요.

수령님께서는 제가 동발공으로 일한다는 말씀을 들으시고는 저의 이 볼상없는 손을 잡고 부드러운 손길로 쓸어주시면서 <많은 일을 했겠구만. 동무의 손은 동발을 들이느라고 이렇게 굳어졌소? 얼마나 힘이 들겠소.> 글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소. …》

그의 목소리는 걸그렁해졌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그리고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끼면서 그의 말을 재촉했습니다.

《저는 그이의 안색이 흐려지시는것을 보고 그만 죄송하여 수령님의 덕분으로 이제는 로동안전시설이 철저히 갖추어진 갱내에서 힘들이지 않고 일하며 높은 영양제와 휴식조건을 보장받으면서 부럼없이 살고있다고 말씀드렸지요.

수령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우리는 자주 탄광이나 광산촌들을 해방하군 하였소. 그 이국땅의 지하막장들에서는 살길을 찾아 류랑해온 조선사람들이 등이 휘도록 일을 하고있었소. 그 고생하는 동포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하루빨리 조국을 해방한 다음 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동포들에게 계급적해방을 주고 기계를 주는 새 나라를 건설해야겠다는 각오를 더욱 굳게 다지군 했소. 그후 우리는 조국을 해방하고 새 사회를 건설했지만 아직까지 탄광이나 광산에서 일하고있는 동무들을 힘든 로동에서 완전히 해방하지는 못하고있소. 이 동무들이 쉽고 헐하게 일하지 못하는 한 내 가슴한구석은 언제나 무겁소.>

수령님께서는 그러시고 곁의 일군들을 돌아보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우.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 부문 특히 채굴공업의 기계화를 완성해야겠소. 그리하여 점차 모든 탄광들과 광산들이 종합적기계화에로 이행하도록 해야겠소. 여기에서 중요한것은 우리 나라에 풍부한 무연탄광의 기계화에 주목을 돌리는것이요. 물론 이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될 혁명과업이요.>

그 순간 그이의 안광은 근엄한 빛으로 번쩍이였지요. …》

나는 김영탁의 말이 끝났으나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었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위대한 사랑에 목이 메여왔던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끄심을 따라 우리 과학자들은 오늘의 자랑찬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것을 생각하면 한없이 가슴이 설레이고 또 설레이였습니다.

밤이 늦어 김영탁은 돌아갔습니다. 그가 있을 때는 비좁아보이던 방안이 갑자기 텅 빈듯 했습니다. 그가 사라진 후에도 나는 방복판에 한동안 우두커니 서있었습니다. 하면서도 잠자리에 누울 생각은 없어졌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거닐고도싶었지만 사나운 바람이 터지면서 비방울들을 몰아다가 창유리에 뿌리는걸 보고는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대신 창문에 붙어서서 얼굴에 찬 기운을 받으며 탄광지구의 멀고 가까운 산발들을 내다보았습니다.

뚜! 하고 벌써 새 교대로 들어갈 탄부들을 준비시키는 구내고동이 길게 울렸습니다. 탄광지구의 멀고 가까운 산발들을 내다보고있었지만 눈앞엔 어째서인지 김영탁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도 천반을 울리며 계속 들려오는듯싶었습니다. 눈앞에 마주 대하고 앉아있을 때보다는 떠나간 다음에 생각하게 하는 사람! 그는 이런 사람이였습니다. 눈앞에 그려지는 그 사람의 주름살 하나하나와 무쇠같이 든든해보이는 어깨며 굵직한 매듭이 진 손을 회상하느라면 생각은 더 멀리 전진하여 이 나라 탄부들의 발자욱이 찍힌 길을 따라가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진 실오리길들이였습니다.

이 나라 탄부들의 한많은 발자욱들로 헤쳐지고 다져진 그 오솔길들은 구불구불 고개를 넘기도 하고 골짜기를 따라 오르기도 하다가 탄광마을들에 이르러 끝나군 했습니다.

탄광, 탄광, 그것은 수난에 찬 이 나라 류랑민들의 집결처였습니다. 나라잃고 살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소가 되고 말이 되여 등살우에 채찍을 받던곳이였습니다. 석수 흘러내려 온몸을 휘감는 굴속들에서는 곡괭이와 삽날이 처량한 소리를 내며 무덤을 파듯 석벽을 힘없이 두드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불붙는 돌을 캐내기 위해 돌투성이벽을 두드리다가 죽어갔겠습니까? 말하지 말라, 허리를 펴지 말라, 일만 하라, 왜놈들의 채찍은 이 굶주린 사람들의 마지막피방울까지 긁어냈습니다.

략탈과 린색과 잔인성밖에 몰랐던 왜놈들이였습니다. 미쯔비시도, 노구찌도, 북성주식도 이 렴가의 로력대군에게 쥐여준 쟁기란 삽과 곡괭이와 정대뿐이였습니다.

《기계가 무슨 필요있는가. 눅거리실업자 류랑민들이 강물처럼 모여드는 이 땅에서는 그런것이 필요없다. 채찍 하나로 이 땅의 보화들을 밑바닥까지 캐내여라.》

그때 왜놈들의 탄광채굴문헌들에서는 이런 구절들을 자주 보는데 그것은 탄광주들이 기계화시설을 건의한 기사, 기수들에게 준 대답이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 탄부들은 푸른 하늘조차 올려다보지 못하면서 일생을 소가 되고 말이 되여 탄속에 묻혀죽고 동발무게에 눌리워 죽었습니다. 우리의 탄부들이 본 기계시설이 있다면 그것은 8키로그람의 레루장들과 바퀴에만 쇠테를 씌운 나무통탄차였습니다.

현대의 기계문명이 밀어버린 이방지대가 탄광마을들이였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내 고향 탄광마을은 그러할것이였습니다. 내 어린시절이 흘러갔고 지금은 혈육들이 살고있을 고향의 탄광마을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가슴이 쩌릿해지며 아버지의 얼굴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놈들의 폭압과 학대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굳세게 살아가실 아버지였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다녀올 때의 고향거리는 항쟁의 거리, 피의 거리였습니다. 산산쪼각이 난 경찰서와 탄광사무실의 창유리들, 아무렇게나 처박힌 탄차들… 더는 참을수 없어 아버지도 이웃들도 싸움의 마당에 나선 고향의 탄광마을, 그 탄광마을은 오늘도 역시 투쟁으로 불타오를것입니다.

그들은 통일을 위해 지금도 싸우고 또 싸우고있을것입니다.

그 대렬의 첫줄엔 아버지와 내가 잘 아는 고향사람들이 서있을것으로 생각되였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나는 벌거숭이 어릴 때처럼 아버지를 불러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주려고 고무신짝으로 삭도를 만들어 쇠줄에 걸던 꼬마연구사시절도 떠올랐습니다. 그 꼬마연구사가 진짜연구사가 되려고 서울로 떠나던것이 어제런듯 선했습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일성원수님의 품에 안겨 연구사로 자라났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영예로운 전사가 되여 기계화초소에 서게 되였습니다. 우리의 탄부들을 중로동에서 해방시키실 수령님의 위대한 구상을 실현하는 영예로운 임무까지 맡게 되였습니다.

내가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창문엔 벌써 다른 얼굴들이 그려져있었습니다.

오랜 탄부들인 김영탁과 그의 작업반원들이 나에게로 육박해오는듯 했습니다.

자신심이 없다니… 동무가 무슨 수령님의 전사란 말인가? 누가 오늘까지 동무를 키워주셨는가? 동무는 누구 덕에 기사로, 연구사로 자라났는가?》

수백수천의 목소리가 천반에서, 책상밑에서, 창유리에서 김영탁의 목소리와 합쳐지면서 나에게로 향해오는듯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동안 사라졌던 아버지의 얼굴모습이 다시 비물 흘러내리는 창문에 나타났는데 이번엔 아버지 역시 혼자가 아니였습니다. 녀동생 순이와 어머니가 그리고 내가 고향을 떠날 때는 형님이란 말을 겨우 할뿐이던 동생들이 어른이 되여 나타났습니다.

첫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노염띠신 목소리였습니다.

《이 게을러진 놈아, 지난날 처지를 잊은 놈아, 배은망덕한 놈아, 네가 날마다 누리는 행복이 한없이 크거늘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할 네가 자신심이 있고없고는 다 무슨 말본새냐?》

그 다음 목소리는 순이의 목소리였습니다.

《오빠는 우리를 잊었나요?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굶었어요. 응철이나 응경이는 학교도 못 가고 자라났어요. 언제쯤 오빠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가요?》

참다 못하여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돌아서버렸습니다. 잠들수 없는 밤이였습니다. 창턱에서 물러나 잠들어보려고 누우면 천장엔 다시 서울의 제탕회사 로동자들이 떠올랐습니다.

굶주려 살색조차 변한 사람들이 새 설비로 하여 밥탁을 떼우고 원성을 높이던것을 목격한것이 어제런듯 생생했습니다.

박순현박사를 둘러싸고 《나리님은 무엇때문에 우리와 원쑤로 될 일을 생각해내셨는가요?》 하고 접근해오던 그들이였습니다. 거기서 기계는 살인귀들의 치부리용물이고 로동자들에겐 원쑤였습니다.

또다시 김영탁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선생을 도우면 안되는가요? 기계동발만 만들수 있다면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기계연구사에게 이보다 더 귀중한 사람들이 또 어데 있으랴,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난 나는 다시 전등을 켜고 방안을 거닐기 시작했습니다.

《기어이, 기어이 기계동발을 만들어내리라.》

그날 밤부터 나는 용기백배하여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설계제품의 출발선도 정확치 않았고 종착선도 정확치 못했지만 나는 주저를 몰랐습니다.

설계품의 형태가 오늘은 이렇게 되고 래일은 저렇게 되기도 했지만 일하고 또 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심은 생겼습니다. 자신심, 지금에 와서 나는 이 중요한 힘의 원천은 능력 하나만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

 

우리는 뜨거운 물에 설탕을 탄 후 한고뿌씩 마시며 잠시 휴식한다. 김동무는 말하느라고 담배도 한대 피우지 못했고 나는 그의 말을 받아쓰느라고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이번에도 김동무는 윤희에 대한 소식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성급성을 나타내여 물어보려다가 참고말았다.

한것은 사람들의 일이니 건드리지 말아야 할것도 있기때문이다. 그러자니 나의 추측은 복잡해진다.

아직껏 윤희를 만나지 못한거나 아닐가? 전쟁을 겪고났으니 불행한 일도 당할수 있지 않았을가?

바라건대는 그들이 지금 부부였으면 하는것이였다. 나는 이 휴식의 짧은 틈을 리용하여 그의 책상이며 바람벽들을 둘러보았다. 만일 그들이 부부로 되였다면 이처럼 장기간의 현지생활을 하는 조건에서 안해의 손길을 느낄수 있게 하는 일용품이라도 하나 볼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심정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책상우엔 그런것이 없었다. 제도지들과 계산수자들이 적힌 종이들, 참고하기 위하여 펼쳐놓은 책들과 쌓아놓은 책들뿐이였다. 또한 각종 유압변들의 실물표본들이 놓인 대들과 자물쇠가 채워지기도 하고 열려진채 있기도 하는 서고들이 눈에 뜨일뿐이다. 그외 랑만적인 기분을 불러일으킬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김동무도 나도 담배를 한대씩 다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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