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제 11 회)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2 장

 

…나는 윤희를 오래동안 찾았습니다. 윤희는 항상 내 가슴속에서 살고있었습니다. 전선에서 생활하던 기간에도 그러했지만 평양에서 대학생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윤희의 행방을 알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습니다.

승리한 조국땅은 그 어데 가나 전쟁으로 하여 갈라졌던 가족들과 친지들이 상봉하는 감격어린 장면들을 볼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남편과 안해 그리고 친구들의 상봉…

대학생기숙사 역시 밤이나 낮이나 이런 사람들로 하여 흥성거렸습니다.

대학으로 되돌아온 사람들, 애인을 찾아온 사람들, 오빠나 녀동생을 찾아온 사람들…

그러나 나만은 윤희를 찾지 못했습니다.

전쟁시기에 윤희와 함께 싸운 사람을 겨우 찾아냈을뿐이였습니다. 그 사람은 서울에서 윤희와 함께 대학에 다니던 녀동무로서 역시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싸우다가 현재는 의학대학에서 공부하고있는 백양숙동무였습니다.

그 동무는 윤희와 함께 야전병원에 있다가 헤여진 후 아직까지 주소조차 몰라서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 녀동무로부터 들을수 있었던것은 간단한것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무한히 기뻤습니다.

 

…제2전선의 밤. 멀지 않아 먼동이 터올 시각이다.

야전병원이 림시로 쓰고있는 청사는 두텁게 내린 눈속에 묻혀있다.

윤희는 부상병들이 가지런히 누워있는 병실의 중간통로로 오가며 그들을 보살피다가 난로곁으로 와서 의자에 앉았다. 상처의 동통이 심하여 잠들지 못하고있던 부상병들도 인제는 조용해졌다.

윤희는 참지 못하리만큼 몰려드는 졸음과 싸우면서 또 하루밤을 지새운것이다.

야전병원의 모든 성원들이 그러한것처럼 적후에 있게 된 때로부터 잠 한번 제대로 자본 일이란 없는 윤희였다.

제2전선에서의 야전병원은 때로 최전방 붕대소와도 같이 분주했다. 적후전선에서는 왕왕 1제대전투지구와 2제대전투지구를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생기듯이 야전병원이 자리잡은 골짜기, 때로는 마을에서 불의의 격전이 벌어지는때도 있었다. 이때면 야전병원성원들은 물론 움직일수 있는 부상병들마저 총출동하여 사격진지를 차지하고 적들의 공격을 저지시켜야 했다.

야전병원의 위치 역시 자주 이동하여야 했다. 치료기구도 약도 침구도 언제나 부족했다. 치료성원들도 부족했다. 군의가 간호원이나 담가병이 되기도 하고 약제사나 준의가 위생병이나 접수원이 되기도 했다.

윤희는 난로의 온기로 하여 온몸의 피곤이 녹아버리는듯 했다. 눈을 감았던 그는 잠에 취해들다가 드드득 하는 소리에 눈을 뜨며 일어섰다. 순간 손은 권총집의 단추를 풀었다. 이 모든 동작은 순간에 그리고 동시에 진행되였다.

《눈보라소리인걸요. 맘 놓으시고 10분만이라도 잠드시라요.》

가까운 곳에 누워자는줄로만 알았던 낯익은 부상병의 말이였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그 청년하사의 목소리엔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걸 난 그만…》

윤희는 약간 낯이 붉어지며 자리에 도로 앉았다. 섣달그믐대목의 눈보라는 기승을 부리며 처마에 부딪치군 했다.

《준의동무처럼 청각이 예민하면 전쟁마당에서는 피곤해 못 견디지요.》

본래는 공병이였으나 적후에서 활동하게 되면서부터 정찰병이 되여 미제침략군이나 괴뢰군장교놈들쯤 배추통 메오듯 한쪽어깨에 메고 온다는 그 가슴이 넓고 어깨가 무쇠처럼 단단한 하사관은 초저녁부터 윤희에게 군화를 《보관》당하였다.

《…》

윤희는 더이상 그 정찰병과 얘기를 계속하려 하지 않았다. 만일 두세마디씩만 무슨 말이나 더 주고받게 되면 틀림없이 보관한 군화를 돌려줄것을 간청할것이였기때문이다.

이것을 눈치챈 정찰병은 윤희가 어쩔수없이 자기 말에 대꾸하도록 하게 하느라고 궁리하는듯 하더니 《준의동무는 많이 달라졌습니다.》하고 커다란 눈을 어물쩍하게 한번 굴리였다.

《다른 동무들께 방해될텐데요.》

윤희는 정찰병의 꾀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진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생각 좀 해보십시오. 병원이 남해근처에 있을 때는 준의동무가 얼마나 마음이 좋았어요. 그저그만이였지요. 그리고 또 병원이 가래골에 있을 때도 그랬구요. 그런데 지금은 군화까지 회수하니 이거야 어디 화가 나서 견디겠습니까?》

정찰병은 자기가 달성하려는 목적이 명백했기때문에 말을 끝내자 윤희의 표정변화를 사소한것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윤희는 정찰병이 달성하려는 목적을 명백히 알고있기때문에 태연하려 했고 귀도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찰병의 말은 윤희로 하여금 많은것을 회상하도록 해주었다.

격전 또 격전, 그리하여 조국의 섬들이 바라보이는 남해는 밑바닥까지 헤쳐지고 물결은 맞부딪쳐 기둥처럼 솟구치군 하였다. 적군비행대는 낮게높게 떠돌면서 폭탄을 퍼붓고 포병대들의 진지에서는 불길이 타올라 하늘을 뒤덮었다. 돌격전에서, 반돌격전에서 부상당한 전투원들이 화선병원들에 실리여왔다. 해방된 서울시의 의료일군들로 편성된 의용군대렬에 편입되여 전선에 나온 박윤희가 처음으로 치료하게 된 부상병들은 이런 전투원들이였다.

그때 바로 이 공병하사도 담가에 실리여왔었다. 적들의 지뢰원을 해체하고 돌아오다가 매복에 걸려 육박전을 치르면서 빠져나오기는 했으나 자신도 어깨죽지에 상처를 입었다. 첫 이틀동안 공병은 착실히 치료를 받았다. 그리하여 급한 고비를 넘기게 된것이다. 했는데 3일째 되는 날엔 퇴원시켜줄것을 요구하였던것이다.

《준의동무가 수고해주신 덕에 인젠 이 어깨도 쓸수 있게 되였지요.》

윤희는 대뜸 눈이 커지도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이제 치료는 시작되였을뿐인걸요.》

사실 그런것이였다.

《여긴 후방이 아니라 전선이 아닙니까?》

용감한 공병하사는 전선지구로 처음 나온 의용군출신 녀준의를 《전선》이라는 말로 넘기려 했다.

《하지만 초보적인 의학적요구가 제기하는 치료기한은 있어야 하지 않을가요?》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여기는 전선이니 그걸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병하사는 별치않은 일에도 수집어져 얼굴색부터 붉어지는 녀준의에게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보게끔 만들려고 엄엄하고 위풍있게 말하였다. 그래도 준의가 말을 듣지 않자 자신은 적들과 싸우고싶은 순간에 싸우지 못하면 심장이 터질 지경이 되고 혈압이 올라가 상처가 더 악화된다고 했다.

이 마지막말은 윤희를 움직이는데 상당한 작용을 했던것이다. 윤희는 그의 상처를 다시한번 구체적으로 본 다음 얼마간 치료기간이 더 필요했지만 상처가 《더 악화》될가 두려워 퇴원수속을 해주었다.

그런데 전선지구에서의 준의생활은 윤희로 하여금 차츰 자기가 그 공병하사에게 속았다는것을 알도록 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자기를 퇴원시켜달라고 졸라대는 부상병들은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던것이다. 그들중엔 그럴듯한 말로 요청하는 부상병이 있는가 하면 그 공병하사처럼 자기가 적과 싸우고싶을 때 싸우지 못하면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식으로 《위협》하는 부상병들도 많았다.

《속지 마시오, 윤희동무.》

전쟁 첫날부터 전선지구에서 치료임무를 수행하고있는 오랜 군의들과 준의들이 윤희에게 알려주었다.

《그 동무들은 대단한 배우들이지요. 병원생활을 하고있는것을 전투원들의 수치로 생각하지요. 그래서 급한 고비를 넘기고 활동할수 있게만 되면 <연기>를 시작한답니다.》

그 다음 전선은 북으로 옮겨지기 시작하였다. 윤희도 북상하는 모든 전투원들이 겪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중환자들을 이끌고 수십수백리 산길을 넘고 강을 건너야 했다. 야전병원은 때로 다른 전선지구에서 퇴각하고있는 부대들과 길우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때면 응빈이가 그들속에 끼워있지 않나하여 눈길이 자라지 못할 때까지 그 대렬을 바라보기도 했다.

윤희가 속한 야전병원은 제2전선사령부에 소속되여 적후에 남게 되였다. 말할수 없이 어려운 환경에서 야전병원은 전투부상병들을 치료하게 되였다. 전날의 용감한 공병이였고 오늘의 명성높은 정찰병인 《배우동무》가 담가에 실려 두번째로 야전병원에 온것은 이때였다. 다섯시간이나 의식을 잃고있던 그는 의식이 회복되자 주위를 둘러보았고 자기를 담당한 준의가 낯익은 사람임을 알고는 부상병답지 않게 여유있는 미소를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준의동무.》

그의 이런 태연성에 윤희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이게 누구예요? 하사동무가…》

《그 개같은 미국놈자식이 죽은척 하고 누웠다가 수류탄을 던졌단 말입니다.》

정찰병은 속은것이 너무도 분하여 주먹을 흔들어보이였다.

그는 일주일동안 치료받는 부상병으로서는 나무랄바 없는 모범을 보이면서 급한 대목을 넘기였다. 그 다음엔 윤희앞에 나타나서 정중하게 청원하였다.

《이젠 저는 퇴원할 때가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윤희는 그때 쓰고있던 치료대장에서 시선을 들지 않은채 대답하였다.

《번마다 준의동무에게 수고를 끼쳐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시작되였구나.)

윤희는 밖으로 내비치려는 웃음기를 억지로 참으며 말하였다.

《퇴원은 아직 일러요. 앞으로 일주일은 있어야 해요.》

《여기는 적후입니다. 그리고 저는 정찰병입니다.》

(예전엔 《여기는 전선입니다. 저는 공병입니다.》라고 했었지.)

《돌아가십시오, 정찰병동무.》

윤희는 치료대장을 접고 만년필뚜껑을 닫으며 잘라버렸다.

《준의동무는 제가 적과 싸우고싶을 때 싸우지 못하면 심장에 부작용이 오고 혈압이 높아져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것을 알고있지 않습니까?》

정찰병은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때엔 내가 저런 《위협》에 양보했더랬지. 이 정찰병은 나를 그때처럼 알고있는것 같다.)

《정찰병동무의 <연기>와 <대사>는 언제나 똑같군요. 병실로 돌아가세요.》

정찰병은 자기의 퇴원은 일주일후에야 승인된다는것을 알고는 기분이 언짢아져서 병실로 돌아갔다.

했으나 이 범처럼 날쌘 전투원은 그 일주일을 참지 못하고 그날 밤 짤막한 사죄편지를 침대우에 써놓고 부대로 가고말았다. 그랬던 정찰병 하사가 세번째로 담가에 실려와서 치료받고있는 지금 그런 《기회》를 탐색하고있었다. 그것을 안 윤희는 그의 군화에 실밥이 터졌으니 수리해준다는 리유로 그것을 보관하고있는것이다.

병실밖에서는 여전히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고있다.

윤희는 정찰병으로 하여 이밤 자기의 전선생활 반년간을 더듬어본다.

(나는 얼마나 변했는가?)

윤희는 자신의 변화에 놀라는 때가 자주 있었다.

(음악과 그림, 박사의 녀동생… 푸른빛 등갓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받으며 이처럼 눈오는 겨울밤이면 훈훈하고 아늑한 자기 방에서 소설이나 시를 읽었다. 행군, 행군, 몸가까이에서 터지는 폭음소리, 비물고인 전호, 잠에 취하여 농가의 허청간에 잠시 머물러앉았다가도 총소리와 수류탄터지는 소리에 놀라 깨며 자신도 기관단총을 메고 그 전투의 소음속으로 달려야 했다.

바람이 불면 날려갈듯만싶던 서울의 녀대학생, 응빈동무는 온실의 장미나 코스모스라 했었지… 그때는 그것이 모욕에 가깝게 들렸지. 연약한 신경, 슬픔을 이겨낼 힘이란 없었던 심장, 굳세고 단호하고 전투적인것이란 나에게 없었다. 그러나 전선생활은 나에게 그것을 가져다주었다. 나에게도 힘이 있고 의지가 있으며 조국의 원쑤이자 내 가정의 원쑤인 미제와 매국역적들에 대한 불타는 증오를 키워주었고 내 손으로도 그놈들을 처단할수 있다는 자신심을 갖도록 해주었다. 조국을 수호하는 길, 그 길이 나의 원쑤를 갚는 길이며 참된 삶의 길이라는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지금 나는 최고사령관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전사로 살고있다. 응빈동무 역시 어느 전선에선가 일성장군님의 전사로서 용감하게 싸우고있을것이다. 이 길에서 우리는 어느때인가 다시 만날것이고 이 길에서 영원히 살며 행복을 누리게 될것이다. …)

드디여 겨울의 긴긴밤도 밝아왔다.

윤희는 일어섰다. 밖으로 나온 그는 병실앞 얼어붙은 내물로 갔다. 얼음구멍을 내고 부상병들의 아침세면물을 길어다가 난로우에 덥혀주자는것이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벌써 거기서 얼음을 까고있었다.

《윤희동무요?》

《난 누구라고…》

먼저 와서 얼음구멍을 까고있는 그 동무는 백양숙준의였다.

서울서 함께 대학에 다닌 동무이면서 함께 입대한 동무였다.

《피곤하지 않어?》

《아니, 목소리가 높으면 안돼.》

두 녀준의는 어린 간호원들이 좀더 자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소리없이 부상병들의 세면물을 긷기 시작하였다. …

 

지금쯤 윤희는 어데 있을가? 아직 군대에 그냥 있을가? 아니면 나처럼 제대되여 어느 대학에 있을가?

나는 거리를 걸어도 주위를 오가는 녀동무들을 무심히 보지 않았습니다. 윤희가 방금 내앞으로 마주오는것 같은 환각도 여러번이였습니다. 지어는 영화관좌석에 앉아서도 윤희가 그속에 꼭 있는것만 같아 열심히 살펴보군 했습니다.

명절이 되면 시위대렬들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네거리나 광장거리에 품놓고 한나절씩 서있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서있느라면 윤희와 용모가 흡사한 녀동무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내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어두운 밤에 문밖에서 녀동무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라도 듣게 되면 혹시 윤희의 목소리가 그속에 섞여있지 않나 하여 귀를 기울이군 했습니다.

그랬지만 끝내 윤희를 만나지 못한채 대학을 졸업하고말았습니다.

윤희는 어데 있는가? 졸업후 연구사가 되여 현지에서 현지로 연구실을 옮기면서도 나는 계속 윤희를 찾았습니다.

그러던중 ㅍ탄광에 갔을 때였습니다. 그해 여름에 나는 새 연구과제를 받고 그것을 수행할 현지를 선택하여야 했습니다.

ㅍ탄광의 갱구들은 나의 새 과제수행에 여러가지로 유리한 조건들을 구비하고있었습니다. 그러나 몇가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조건들도 있어서 결심채택을 인차 하지 못했습니다.

탄광 기사장이고 나와는 대학동창인 오동무가 나의 이런 동요를 들여다보고 나무람조로 말했습니다.

《딴 생각말고 우리한테 아주 정하고말게.》

벗은 조건타발을 하는 내가 어느 정도 못마땅했던것 같습니다.

《글쎄… 몇가지 실험조건이 적당치 않아서…》

《우리가 백방으로 방조해주겠네. 우리 탄광처럼 연구사님들을 환대하는 곳이 또 어데 있겠나. 그래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온다네. 와서는 모두다 성공하고 간단 말일세. 말하자면 터가 좋은셈이지. 함흥서 온 약학사도 여기서 성공했다네.》

오동무는 그럴듯하게 구슬려서 나를 잡아두려고 했습니다.

《함흥서 온 약학사란 누군가? 약학사가 탄광에 와서 무슨 론문을 쓸게 있나?》

《연구소의 학사지. 녀동무야. 그 동무는 지하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있을수 있는 직업적질환을 근절할수 있는 새 품종의 약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우리 나라의 고산지대 식물들에서 그 성분들을 얻어냈단 말일세. 서울서 온 동문데 아직 독신이야. 개인생활엔 곡절이 있는것 같아. 탄광병원의 한 녀의사는 그 동무와 전선병원때부터 함께 있어서 래력을 잘 알더군. 대단한 학자네 가문출신이라던가? 좌우간 몇년전에 학위론문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고 하네.》

《그 동무의 이름은 모르나?》

《알지… 왜 모르겠나, 우리 탄광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걸. 미안하네만 햇내기 탄광기계연구사인 자네보다는 그 동무의 명성이야 더 높지.》

내가 자기네 탄광의 이러저러한 부족점때문에 자리잡으려 하지 않는걸로 하여 뒤틀린 벗의 심사는 잘 펴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나는 그 학사의 이름을 묻지 않았나?》

《덤비지 말게. 나는 우리의 모든 학문탐구가들이 그 동무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네. 우리에게 와서 일한 기간은 길었지만 그 동무는 단 한번도 여하한 성질의것이던 불만을 나타낸 일이 없었단 말이네. 그럼, 인젠 그 학사의 이름을 대주지. 박윤희, 혹시 들었을수도 있을거네.》

《뭐?!… 박윤희?!…》

벗을 보며 부드럽게 웃고있던 나의 눈은 갑자기 커졌고 커진 상태에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아니, 왜 이러나?》

나를 놓고 약간 이죽거리던 벗도 급변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똑같이 눈이 커지며 긴장해졌습니다.

《?!…》

너무도 뜻밖이여서 나는 벗의 물음에 대답조차 할수 없었습니다.

《아는 동문가?》

《알지.》

나는 어데건 나갈것처럼 일어섰습니다.

《어델 가려나?》

《탄광병원에 있다는 녀의사를 좀 만나야겠네.》

방복판에 우두커니 선 나는 자신의 목소리가 어떠한지도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내가 안내하지. 그 녀학사는 그 녀의사네 집에 거처를 정하고있었네. 아직 한번 더 실험투약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오기로 되여있으니깐 짐도 그대로 있을걸세.》

《지금은 연구소로 갔나?》

《연구소에 들렸다가 고산지대로 약초원천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떠났을걸세.》

우리가 탄광병원현관에 들어섰을 때 그 녀의사는 막 퇴근하는 길인듯 가방을 들고나오던중이였습니다.

《안녕하시오, 양숙선생.》

기사장이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기사장동무가 병원에 오실 때도 있군요.》

몸이 실한편인데다 목소리까지 굵어서 시원시원한 인상을 주는 녀의사였습니다.

《글쎄말입니다. 병원에 와보려고 해도 감기 한번 안 걸리는군요.》

《그러니 환자면회를 오셨군요. 하지만 그건 일요일이 아니여서 어려우실걸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벌써 만나지 않았습니까? 이 동무가 양숙선생을 뵙겠다고 해서 모시고 오는 길입니다.》

드디여 녀의사의 시선이 나에게로 왔습니다.

《저를요?》

《처음 뵙습니다. 실은 저-》

나는 윤희소식을 듣게 된 순간부터 크게 흥분했던터여서 순조롭게 말조차 할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벗이 또 대변해주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이 동무는 내 대학동창인데 박윤희학사가 혹시 전날 서울서 헤여진 자기 애인이 아닌가싶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러자 녀의사의 약간 도고하고 침착하던 눈매가 놀란듯 빛을 쏘며 나에게로 향해졌습니다.

《그럼, 저, 김응빈…》

그러다가 녀의사는 내 얼굴에 넘치게 나타나는 감격과 환희를 보고는 더이상 묻지조차 못했습니다.

《제 이름까지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윤희가 그렇게도 애타게 찾던 성함이여서 저한테도 깊이 새겨졌어요. 이건 꿈만 같아요.》

녀의사의 집은 아빠트 5층이였는데 텅 빈 커다란 두방이였습니다. 남편은 현재 외국에 가있어서 아래방은 녀의사가 어린애 둘을 데리고 사용했고 웃방은 윤희가 사용하고있었습니다.

나는 윤희가 사용하던 방에 들어서자 금시 심장이 멎어서는듯 하여 움직이지 못하고 복판에 멍하니 서버렸습니다.

책상우에도 책더미, 침상아래에도 책더미, 바람벽들에도 책더미, 윤희는 책더미속에서 살고있었습니다.

윤희가 벗어놓고 간 달린옷들과 위생복 그리고 제때에 치우지 못한 계절지난 옷들이 휘장뒤에, 트렁크우에 포개여져있었습니다.

녀의사가 스위치를 돌리자 푸르스름한 등갓을 쓴 탁상전등이 켜졌고 그러자 방안은 아늑해졌습니다.

방금 윤희가 문을 열며 막 뛰여들어올듯싶었습니다.

윤희, 윤희, 동무는 여기에 있었구만… 나는 책상 한옆에 쌓인 발취문공책들과 잉크병이며 필통에서까지 윤희의 온기와 숨결을 느꼈습니다.

녀의사가 책꽂이에서 두터운 책 한권을 뽑아냈습니다.

《저는 윤희동무가 김선생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전하지 않겠어요. 이걸 보시면 모든걸 아실수 있을테니깐요.》

나는 그 책을 받아쥐자 첫장을 번지였습니다. 그건 일종의 그림일기였습니다. 윤희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무척 취미를 가지고있었고 재능도 있었습니다. 그 첫장에는 두그루의 이름모를 고산지대 넓은잎나무가 그려져있었습니다. 바른쪽 웃구석에 그려진 나무밑엔 이렇게 씌여있었습니다.

《집중구역 확인.》

그리고 왼쪽 밑구석에 그려진 식물-그것은 키가 낮으나 옆으로 활짝 펼쳐진 관목이였습니다. 그아래엔 또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임선생에게 이 약재의 원산지가 어딘지를 알려줄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냄.》

흔히 볼수 없는 이 나무들은 윤희가 현재 얻어내려는 약재합성에 필요한 성분을 가지고있는것들인듯싶었습니다.

몇장을 넘기던 나는 박순현박사를 그린 그림과 그밑에 시작한 글줄에 시선을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있었습니다.

《오늘은 나의 오빠가 세상을 버리고 영원히 간 날이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나는 오빠에 대하여 생각한다.

연약한 처녀, 꿈속에 살던 처녀, 단 하나의 혈육인 오빠를 잃었을 때 나는 이러한 처녀였다.

나는 오빠를 존경했다. 학자로서의 오빠도, 인간으로서의 오빠도 나에겐 더없이 높은 존재였다. 오빠는 나의 자랑이였다.

오빠가 간 후 어둠으로 가득찬 세상 한복판에 섰을 때조차도 나는 <지조를 지켜 스스로 간 학자>의 녀동생으로서 떳떳했었다. 나는 나의 이 떳떳함을 당연한것으로, 자연스러운것으로 여겨왔다. 량심을 팔지 않은 학자의 녀동생은 응당 세상사람들앞에서 떳떳할수 있다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오늘 나의 그 믿음은 없어졌다. 오빠는 물론 지조를 지켜 순사한 학자임엔 틀림없다. 오빠는 학자로서 청청백백하게 살려 했다. 그 더러운 암흑의 땅에서 구차한 생명이나마 부지해보려고 매국과 반역의 길에 나서지는 않았다. 재부와 권세앞에 아부하지도 않았다. 그는 학자로서, 인간으로서 살려 했다. 그러나 오빠는 너무도 좁은 울타리안에서 살다가 생을 끝마쳤다. 오빠는 진정한 의미에서 참된 학자의 삶, 참된 인간의 길을 알지 못했다.

오빠는 학자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가장 큰것, 가장 귀중한것을 심장속에 지니지 못했었다. 이때문에 오빠의 삶은 보다 큰 비극이였고 오빠의 최후는 결코 빛날수 없었다.

오늘 또 한해 오빠가 세상떠난 날을 당하여 나는 이것을 섭섭히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오빠는 참된 학자의 삶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 이 말속에 얼마나 아름다운 꿈이 있고 투쟁이라는 심장을 불태우는 말속에 자신이 그처럼 열망하던 학자다운 삶의 길과 인간의 길이 있다는것을 끝내 리해하지 못한분이였다.

오빠는 갔다. 간 오빠를 두고 나무람하고싶지는 않다. 그렇다. 지금의 나는 단 하나의 혈육이였던 오빠가 간 길을 놓고 그 길이 어떠했던가를 더듬어보지 않을수 없다. 오빠의 일생은 너무도 좁은 오솔길우에서 흘러갔다. 그리고 최후는 비장했으나 그것은 무의미했다. 오빠를 죽인 원쑤놈들을 족치는 복수의 화선천리 불비속을 지나 대학을 거쳐 보람찬 나날을 보내는 오늘에야 나는 오빠가 간 그 길이 어떤 길이였던가를 정확히 볼수 있게 되였다.

(오빠, 오빠, 제가 만일 그때 연약한 처녀, 꿈속에 살던 처녀가 아니고 지금처럼 과학자로, 참된 삶의 길을 걸어가는 녀동생이였다면 오빠를 그 길로 가도록 두지는 않았을거예요.)

이 그림일기에는 이와 함께 무딘 연필끝으로 그려진 내 얼굴이 있었습니다.

전선으로 떠나기 직전의 모습이였습니다. 그 다음장 그리고 여러장에 내 모습을 크게작게 그려넣은것들이였습니다. 군복을 입고있는 나를 그렸는가 하면 전날 교복을 입고있었을 때의 모습도 그렸습니다.

그중엔 상상화들도 있었는데 포연과 불길속에 잠긴 전호속에 사격자세를 하고있는 내가 있는가 하면 제대되여 대동강유보도에 서있는 내 모습도 있었습니다.

연필화, 펜화, 연필화, 펜화… 그림마다엔 그것을 그릴 때의 자기 감정을 짤막짤막하게 기록해두기도 했습니다.

《동무는 지금 어데 있어요? 저를 찾으실테지요?》

《또 한해가 가요.》

《오늘 대학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을 대표하여 제가 연설했어요. 그리고 밤엔 동무를 이렇게 그려보며 잠 못 들고있어요.》

《눈이 내려요. 불행했던 과거가 회상되여 오빠의 령전에 안식을 빌었어요. 만일 오빠가 살아서 우리처럼 수령님품속에 안겼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했을가요.

오빠의 과거는 너무도 참담했어요. 동무도 지금 이 시각에 눈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리라 믿어져요.》

《그리워요. 그리워요.》

《오늘 학위론문이 통과됐어요. 학사… 한 불행한 녀성을 이처럼 키워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앞에 오래도록 서서 감사를 드렸어요. 동무와 함께 영원토록 그이께 충실한 전사로 살겠어요.》

《동무는 어데 있어요? 어데 있어요. 전후에 제대되였다 하더라도 인젠 대학을 졸업하셨을테지요? 그렇다면 어데서든 일하고계시겠지요? 저는 동무가 무엇을 하나 성실하리란것을 의심하지 않아요.》

나는 그 책의 마지막장까지 번져쥔채 그대로 서있다가 윤희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차시간을 알아봐주게.》

나는 그동안 나와 함께 그림을 들여다보던 벗에게 부탁했습니다.

《곧 떠나려나?》

《그럴 생각이야.》

《어데로 말인가? 이 세상의 산이란 산은 죄다 뒤질텐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네. 나한테 맡겨주게. 내가 연구소에 련락해서 찾도록 하겠네.》

나는 사실 그길로 막 달려나와 윤희가 탐사중에 있다는 북부고산지대로 가고싶었습니다. 생각대로 한다면 그 산마다에 뛰여다니며 목청이 다하도록 윤희를 소리쳐 부르고싶었습니다.

내 목소리가 산울림하여 이산저산에 부딪치면 그에 화답하는 윤희의 목소리 또한 이산저산에 메아리칠듯만싶었습니다.

《혹시 찾아 떠나셨다가 도중에서 어길수도 있지 않을가요? 우리가 꼭 찾아내여 오도록 하겠어요.》

녀의사 역시 기사장과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의견을 쫓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녀의사 양숙선생과 기사장 오동무는 전보도 치고 장거리전화도 하여 윤희가 곧 돌아오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런 얼마후에 윤희는 내앞으로 전보를 보냈습니다.

《정말 응빈동무예요?! 곧 떠나요.》

나는 렬차도착시간 30분전부터 정거장에 나가있었습니다. 렬차가 연착되는 경우는 간혹 있어도 시간전에 도착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나가있었습니다.

그 30분이 얼마나 길었던지요. 그동안 변했을 윤희의 용모를 그려보며 정거장구내를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얼굴모습은? 살색은? 몸은? 그리고 음성은 예전과 같은것일가?

멀리서 기적소리가 울렸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피우던 담배를 던져버렸습니다.

《좀 진정하라구.》

흥분을 억제 못하는 나를 보며 함께 나온 기사장이 한마디 했습니다.

《윤희도 지금 그런 심정일거예요.》

녀의사 양숙선생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한번 기적소리가 가까이에서 울리더니 렬차는 산굽이를 돌아 힘차게 구내로 돌입했습니다.

차가 멎자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느라 한동안 부산스러웠습니다. 그 다음 렬차는 또다시 기적을 울리며 떠나갔습니다. 굵은 모래가 깔린 홈우엔 한 녀자만 서있었습니다. 흰 샤쯔를 입고 검은빛양복치마를 입은 녀자, 그가 윤희였습니다.

윤희는 홈의 이쪽 끝머리에 역시 자기처럼 서있는 나를 보며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윤희, 윤희, 내 눈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윤희의 눈도 그렇게 흐려지는듯 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만났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고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하나 있습니다.

함흥에 오시면 우리 부부는 귀한 손님으로 초대하겠습니다.

안해는 지금 새로운 의약품을 연구중에 있습니다. …

김동무는 빼람을 열더니 그속에서 커다란 사진 한장을 꺼내놓았다.

《우리 가족이지요.》

김동무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나 얼굴빛은 약간 붉어졌다.

풍만한 몸매의 젊은 어머니가 여유있는 미소를 머금고 왼쪽엔 아들을, 바른쪽엔 딸을 세운채 사진기앞에 선 모습이였다. 숱많은 머리칼이 알릴듯말듯 물결을 짓고있는 젊은 어머니의 인상은 끝없이 부드러워보였다.

《화목과 온정이 느껴지는 가정이구만.》

나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화목합니다. 간혹 애녀석때문에 소동이 일어나는 정도지요. 장난이 하도 심해서.》

우리는 다시 담배를 한대씩 피워물었다. 난로우에서는 물주전자가 여전히 고르로운 소리로 주절대면서 끓고있다.

 

…첫 설계가 끝나갈무렵이였습니다. …

김동무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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