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제 12 회)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2 장

 

…이곳 설계실로 낯모를 사람 하나가 찾아왔더랬습니다. 키가 크고 용모가 단정한 마흔살전후의 남자였습니다.

첫눈에 탄광지구 사람이 아니라는것이 알릴만큼 살색도 와이샤쯔도 지나칠 정도로 흰 사람이였습니다. 곧게 선 바지주름밑에서 구두 역시 반들반들 빛을 냈습니다. 그때는 나의 설계작업이 상당한 정도로 진척된 시기였습니다.

《김응빈동무이신가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사람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의자를 권한 후 나는 그 사람이 어데서 온분인지 궁금해서 자기소개를 기다렸습니다.

《ㅌ기계공장에서 왔지요. 책임기사 신배근입니다. 출장용무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렸습니다.》

나 역시 적당히 대답하고 마주앉게 되였습니다.

《앞으로 김동무가 설계한 이 기계동발을 우리 공장이 담당생산하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기계제작에 종사하는 우리들로서는 우리 연구사들의 설계로 된 이런 류의 현대탄광기계를 생산하게 되는데 대해서 기쁨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한가지 꼭 알리고 오라는 공장동무들의 부탁을 전하려 합니다.》

대단히 세련된 몸가짐을 할줄 아는 이 기계제작기사는 옷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낸 후 어느 한장을 펼쳐들고 읽었습니다.

《첫째로, 책임기사 신배근은 이번 북부지구 관계기관들과의 출장용무를 끝내고 돌아올 때 연구사 김응빈을 만날것, 둘째로…》

나는 웃음이 터지려는것을 참았습니다. 별난 사람이였으니까요. 그 무슨 결정서랑독이나 하는것처럼 정확하게 성문화한 내용을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둘째로… 연구사 김응빈에게 현재 연구설계중에 있는 기계동발을 장차 우리 공장이 생산하게 된다는것을 알리고 그 성공을 축원할것. 셋째로… 연구설계시에 다음과 같은 제한성의 령역에서 벗어나도 좋다는것을 알릴것. 즉 고도의 정밀도와 제작상의 기술적요구를 제기해도 좋다는것, 설사 그 요구가 한다하는 선행기계문명국들의 제작공업에서조차 어려운 문제로 될수 있다 해도 서슴지 말고 설계상요구대로 할것. 넷째로… 연구사 김응빈동무의 연구진행상 혹은 개인의 사생활상 우리 공장 기술자, 로동자들의 도움을 받을것이 없는가를 알아볼것.》

제작기사는 수첩을 본래대로 접은 다음 안주머니에 찌르고나서 옷매무시를 다시한 후 말했습니다.

《이상입니다.》

《고맙습니다, 책임기사동무.》

《이 부탁은 우리 공장 기술자집단과 기능공집단이 김동무에게 정확히 전달하라는것입니다. 우리의 현재결의는 기계동발제작에서 선행기계문명국들의 제품에 비해 그 질적측면에서 약간의 손색도 없게 하자는것입니다. 념려되는것은 연구사자신이 제작능력을 고려하여 높은 요구를 제기할수 있는 길을 에두르지나 않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청소한 우리의 기계제작공업은 이제까지 고난의 길을 헤치며 전진해오는 사이 물질기술적토대를 충분히 쌓았지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들의 의도가 연구사동무에게 충분히 리해되였다고 믿어집니다.》

제작기사는 작별의 인사를 청했습니다. 그 사람이 일분일초를 쪼개여 쓴다는것을 안 나는 좀더 앉아있을것을 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대신 창문에 서서 또 다른 출장대상구역으로 멀어져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습니다.

기계연구사들에게 더없이 행복한 말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였습니다. 그 사람은 옛 버럭무지가 있는 둔덕밑으로 난 길을 따라 바쁘게 걸어가고있었습니다. 둔덕밑 아득히 뻗은 길우에서 그 사람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더니 산굽이를 안고 사라졌습니다. 그대신 그가 사라진 지점으로부터는 새 사람 하나가 걸어오고있었습니다. 처음엔 하나의 점으로 나타났던 사람이 점차 걸음새며 얼굴모습이며를 알아볼 정도로 가까와졌습니다. 그 사람은 연구소뜨락을 지나 우리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반갑게 소리쳤습니다.

《안녕하오, 김군. 나는 군이 부러워서 찾아왔소.》

그 사람은 박순현박사였습니다.

《군은 내가 했던 말들을 기억하오. 기계연구사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런 문제였소. 군이 만일 오늘의 이 처지이상의 더 많은것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선배들에 대한 모독으로 되오.》

내가 이런 환각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두뺨으로는 눈물이 몇방울 굴러떨어졌습니다.

그렇게도 애타게 기계연구사의 본분대로 살고싶어했던 박선생이였습니다. 귀중한 기계연구를 완성하고도 실현의 길이 막히여 불태워버리던 문헌들, 그리고 마지막엔 사람 못살 악의 세계를 저주하면서 자신의 목숨마저 스스로 끊어버린 박선생이였습니다.

박순현박사가 다가오는듯 한 환각에 사로잡혔다가 깨난 후에도 나는 오래도록 방안을 거닐었습니다.

예전엔 박사가 눈앞에 그려질 때면 마음저릿한 련민의 정으로 하여 서글퍼지군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박순현박사에 대하여 련민의 정만이 있는것은 아니였습니다. 그 련민의 정외에 또 다른 감정이 강한 힘으로 나타나군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알고있는 박순현박사의 모든 인간적면모와 그의 사색체계 그리고 죽음까지를 두고 《자각하지 못한》 혹은 《가장 큰것, 가장 귀중한것》을 리해 못한채 살았고 또 그로 하여 아무런 출로도 찾지 못한채 한생을 끝마친 사람이라는 비판의식이였습니다.

나는 마치 아득히 높은 곳에 올라서서 박순현박사를 내려다보는듯 했습니다.

(학자-그는 우선 학자이기 전에 애국자로 되여야 한다.)

자신이 이렇게 되기를 열망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며 생각하는 오늘의 나였습니다.

이제 와서 그를 생각해볼 때 자신의 처지는 너무도 행복한것이였습니다. 오늘도 남조선기계연구사들은 지난날의 박선생처럼 무덤속 생활을 할것이였습니다.

거기서는 이 순간도 기계연구사들이 생계수단을 찾아 거리를 헤매다가 미제침략자들의 롱락물이나 희생물이 될것입니다. …

 

…첫 시험제품 유압식종합기계동발 1호가 만들어졌을 때입니다. 이곳 탄광 2갱에서 작업시험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첫걸음에서 이 기계는 여러가지 결함들을 나타내였습니다.

가장 큰 결함으로 되였던것은 각종 유압변들의 조직이였습니다. 페쇄변들을 통합함으로써 회로가 하나의 선에 련결되게 조직한것은 나의 잘못이였습니다. 만일 이런 조직으로 페쇄변들이 통합되여있으면 작업중 어느 하나의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교체하기 어렵다는것이 작업시험에서 명백해졌습니다.

그외 들보, 동발다리, 고압호스, 이설기와 강판, 기초틀과 좌우쪽 틀들에 대해서도 의견들이 제기되였습니다.

작업시험에서 보여준 1호의 우결함은 전문학보와 잡지들, 신문들에 보도되였습니다.

나는 개작설계에 착수했습니다. 가능한 한 최단기간내에 1호의 결함이 퇴치된 2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분초를 아껴가며 일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연구기량엔 제한이 있었습니다. 제기된 의견들 하나하나를 수정한다는것은 단순한 의미에서의 개조가 아니라 보다 복잡한 재창조과정을 의미했습니다. 종종 사색은 암벽에 부딪쳐 전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날엔 종일 우울한 기분에서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유압변들의 재조직설계과정이 그러했습니다. 나로서는 여러종의 새로운 조직을 시도했으나 만족하게 생각되는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고난의 탐색과정이 연장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나를 구원해준것은 사회적지원이였습니다.

학보와 잡지, 신문들을 통하여 기계동발 1호의 시험작업결과와 그 우결함을 안 과학계인사들, 현장들에서 일하는 기사, 기능공집단들이 나를 지원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개인 혹은 집단의 의견들을 기록한 편지들을 보내주었습니다. 그중엔 초보적인 기초계산까지 하여 보내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성격의 편지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문가적조언을 목적으로 한 편지들과는 달리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고무격려의 내용들이였습니다. …

 

김동무는 일어서더니 방 한쪽구석에 세워놓은 서고로 가서 그속에 쌓여있는 편지묶음들을 안고 왔다.

《이게 모두 그 편지들이지요.》

나는 책상우에 쌓아놓은 그 편지묶음들에서 손에 잡히는대로 당겨다가 읽어보기 시작했다. 과학원의 이름있는 학자들, 연구사들, 대학의 강좌장들과 학부장들, 기계부문에 종사하는 보통기사들, 전문가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편지를 띄워보냈다.

그 편지들 매 장엔 지혜롭고 귀중한 그리고 진정이 느껴지는 조언의 구절들이 적혀있었고 힘과 용기를 주는 격려의 말들이 적혀있었다.

《…동무는 지금 주체적인 우리 기계공업의 최전선초소에 있습니다.》라고 쓴 발신인이 있는가 하면 《…동무는 우리모두가 주목하는 시험비행을 하고있습니다. 부럽고 또 부럽습니다. 성공을 바라고 또 바랍니다.》라고 쓴 발신인도 있었다.

나는 그 하나하나의 편지를 읽으며 필요한 구절과 내용들을 취재수첩에 옮겨베꼈다. 그사이 김동무는 말없이 조용히 앉아있다가 내가 그 편지들을 죄다 읽기를 기다려 서류고로 가더니 보통봉투가 아니라 문건보관용의 두텁고 넓은 봉투를 꺼내가지고 왔다.

《대학시절에 우리를 가르쳐주던 신교수가 보낸것입니다. 60평생을 채굴기계학연구와 기사들을 양성하는 교육사업에 바친분이지요. 제자를 돕기 위해서 유압변조직에 대한 자신의 연구성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놀랄만큼 정성을 들여 그린 축소판제도들이 그 봉투속에서 나왔다. 교수는 제자를 돕기 위해서 자신이 연구한 일련의 유압변조직형태들을 제도지에 그려서 보내준것이다.

교수는 제자에게 유압변들의 통합이 어째서 좋지 않은가 하는것을 론증한 다음 그 유압변들의 개별화와 분리를 권고하고있었다.

교수는 별지에다 이렇게 썼었다.

《내자신의 연구결과가 김동무에게 약간이나마 방조로 될수 있다면 매우 기쁘게 생각하겠소.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거쳐 진행되던 연구였던만큼 김동무에게 참고로 될수는 있음직하오.

부단히 탐색하시오. 전진하시오. 휴식하지 마시오. 휴식과 정지는 과학도의 죽음이요. 정면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측면돌파구도 찾아낼줄 아는 다양한 수법을 소유하기 위하여 노력하시오. 본시 과학엔 불가능이란 없는 법이요. 탐색하고 또 탐색하시오.》

김동무는 내가 그 편지들을 읽는 사이 즐거운 미소를 띠고 난로주위를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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