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제 13 회)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2 장

 

…이것은 1호설계전투에서 실패하여 더는 출로를 얻지 못하게 된 최후의 퇴각선으로부터 반격으로 나갈수 있는 길을 열어준 위력한 중화력지원이였습니다. 때문에 나는 교수로부터 이 축소판설계도들을 받았을 때 소년처럼 기뻐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설계 1호가 가지고있던 부족점들을 극복하는데서 신교수의 이 귀중한 연구자료는 결정적인 열쇠로 되였습니다.

설계 2호가 순조롭게 풀리게 되리란것이 명백해졌을 때 나는 신교수의 고마운 마음을 두고 내 조국의 한없이 따사로운 품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원수님의 따뜻한 손길이 있음으로 하여 산에는 백화가, 들에는 오곡이 설레이는 밝은 내 나라, 밝고 깨끗하고 아름다운것은 산과 들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모두가 화목하고 또 화목한 내 조국, 그 화목, 그 협조, 그 오가는 정으로 하여 래일에로의 힘찬 전진이 이룩되는 나라, 이런 나라에 나서, 이런 나라에서 살고있다는 영광은 나로 하여금 백밤천밤을 자지 않고 일하고싶게 해주었습니다.

살인과 음모만이 활개치는 남조선, 내가 겪은 서울의 비극, 내가 아는 그곳의 학자들, 그들에겐 래일이란 없었습니다. 때문에 화목도, 협조도, 아름다운 희생정신도, 사제간의 의리도 없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승냥이가 되라, 내가 저놈에게 죽든가 저놈을 먼저 죽이든가》 그 둘중 어느 한쪽의 운명만이 차례지는것이 그들의 처지입니다. 어제신문엔 미국의 한 화학자가 자기 연구성과로 하여 암살당한 소식이 있고 그제신문엔 서도이췰란드의 한 기계발명가가 경쟁자의 칼에 심장을 찔리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서로서로 승냥이가 되여 강한 이발을 가진자만이 살아남아서 죄악의 흔적을 남기는 곳… 이런것을 생각해보느라면 소름이 끼치군 합니다.

신교수가 제자에게 보낸 방조의 손길-그 손길을 어찌 단순한 신교수의 손길로만 생각할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손길, 그 아름답고 숭고한 정신에서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보며 그런 사회주의제도에서 살고있는 행복을 다시금 느끼는것이였습니다. 나는 낮이나 밤이나 이 행복에 목이 메여 일하고 또 일했습니다. 깊은 밤, 두텁게 실린 졸음이 앞을 흐리게 할 때나 눈망울이 쑤시기 시작하여 더는 설계점들과 선을 들여다보기 어려울 때도 나는 행복을 생각하고는 눈을 번쩍 뜨고 일손을 다그쳤습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난계선들을 돌파하고 2호설계의 마지막선을 그었습니다. 그것을 본연구소에 띄워보내고야 잠자리에 누워보았습니다. 세상에 잠이나 휴식이 이처럼 달콤하다는것을 이전엔 미처 몰랐더랬습니다.

그런데 이밤이 저에게 영원한 영광과 자랑으로 될 밤으로 될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때 이곳 탄광에서는 분기계획을 넘쳐 수행하기 위한 돌격전이 벌어지고있었습니다. 탄광지구는 마치 하나의 사단작전지대와 같이 긴장하여 움직이는 사람들로 들끓고있었습니다. 탄부들은 물론 간부들까지 굴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가정부인들도 채탄장을 지원하여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전투는 매우 치렬해서 탄광일군들이 신발을 벗어볼 시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때였지만 비서나 지배인은 나의 현지연구실을 찾아주는걸 잊지않군 했습니다. 그날도 연구실에 들렸던 탄광당위원회 일군은 내가 마지막선을 긋고 막 연필을 놓기가 바쁘게 잠잘것을 강권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밀렸던 잠을 자느라고 소낙비가 쏟아지는줄도 몰랐으니깐요.

그런데 이날 밤이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당비서동지에게서 이곳 채탄공들의 전투정형을 전화로 보고받으셨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생산전투의 보고를 받으신 후 현재 이곳 채굴장들에서의 기계화진척정형을 물으시였습니다.

《나는 탄광동무들이 지하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한다는것을 생각할 때마다 잠들지 못하오. 우리 당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장들에서의 종합적기계화를 완성해야 하오. 동무는 잠시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하오.》

그 다음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말씀을 끊으셨다가 《과학원에서 파견되여 현지연구를 하고있는 김응빈동무의 연구사업은 어떻게 되고있소?》라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비서동지는 사실대로 말씀올린 후 전화있는데까지 데려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김응빈동무의 잠을 깨우지 마시오. 후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지요. 래일 아침 나의 인사를 전해주시오. 그리고 건강에 특별히 주의하라고 일러주시오. 통일의 날도 가까와오는데 건강한 몸으로 남조선에 계시는 부모님들을 만나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내가 말하더라 해주시오. 당은 지금 유압기계동발의 연구가 성과적으로 진행되고있는데 대해서 만족하게 생각하고있다는것도 겸하여 전해주시오. …

그 다음 수령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또 한번 저의 건강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튿날 아침 이 영광의 소식에 접하자 나는 그만 심장이 너무 세차게 뛰여서 숨쉬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이름없는 젊은 연구사의 건강과 그의 연구제품에 대하여 수령님께서 관심하고계신다는것을 알았을 때 나는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있다는것도 잊고 끝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은 내 생애에 있어 빛나는 절정을 이루는 행복이였습니다. 내가 만일 두번다시 태여난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큰 영예, 더 큰 자랑을 떨치지는 못할것입니다.

이때 나의 머리속에는 피의 원한을 품고 암담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남조선에서의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란 자기에게 남다른 행복이 차례지면 부모형제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 기쁨을 나누는것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미풍이건만 나는 이처럼 행복한 날에도 부모형제들과 이 기쁨을 나누지 못함이 가슴쓰라린 일이였습니다. 행복, 진정 나는 이것이 갖는 의미를 이때처럼 절절하게 가슴에 안아보기는 처음이였습니다.

바람처럼 피뜩 스쳐지나는 한 남조선학자의 행복론이 회상되였습니다. 그것은 《의식주의 위협에서 벗어나 학문탐구를 하는것》이였습니다.

만일 이러한 사람들이 오늘 공화국의 품에 안겨 나와 같은 행복을 가슴에 안는다면 그 기쁨이 어떠하겠습니까?!

나는 그 하루를 방안에 앉아있을수 없었습니다. 방안에 앉아있기엔 너무도 큰 격정의 파도가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습니다.

밖으로 나온 나는 강변의 자갈길을 따라 끝없이 걸어보기도 했고 풀밭을 따라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하늘에서 태양은 찬란한 빛을 뿌리고 여울목을 스치는 물살도 반짝이며 반기는듯 했습니다.

그 태양빛을 온몸에 받으며 높은 산, 넓은 땅, 맑은 강물을 향하여 목청껏 소리쳐 자기 심정을 알리고싶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과 인민을 위한 과학자로 살아가리라 몇번이고 결의하고 또 했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한동안 침묵하였다. 침묵속에서 김동무를 축하해보는 나였다. 김동무의 복받은 생활과 영예는 진정으로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포연과 흙먼지가 구름처럼 날리던 남진의 길에서 사귄 전우, 악몽과도 같은 감옥살이에서 풀리여 어버이수령님 품속에 안겼으니 미래는 물론 행복할것이지만 어떻게 행복할것인지를 그려보던 김동무였다.

그런데 인젠 그 행복이 어떤것인지 더이상 상상속에서만 그려보지 않아도 될 김동무였다.

의용군출신병사 김응빈은 20년이 지난 오늘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 되였다.

멀리에서 깊은 밤 고요를 깨뜨리며 렬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그 기적소리로 하여 김동무도 나도 자기 생각에서 깨여났다.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