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제 14 회)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2 장

 

…내가 2호설계의 합평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본연구소로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평양은 지나칠 정도로 나를 맞아주었습니다.

과학원의 선배들과 벗들, 대학동창들과 스승들은 마치 굉장한 일이나 하고 온 사람처럼 나를 대해주었습니다. 벗들은 저녁마다 자기 집으로 불러주었고 선배들은 보는 사람마다 낯을 붉히게 칭찬의 말들을 해주었습니다. 학부장 신교수는 내가 찾아들어갔을 때 손님으로 와있던 자기 친구들에게 이런 말로 소개했습니다.

《이 사람이 김응빈연구사입니다. 졸업후 첫날부터 오늘까지 현지에서 현지로 옮겨다니며 과학도의 모범을 보여주었지요.》

손님들이 돌아가고 단 둘만 남게 되였을 때 나는 교수가 보내준 조언은 탐구의 암벽을 헤치는데서 결정적인 열쇠로 되였다는것을 말했습니다.

《고맙네. 그러나 부끄럽기도 하네. 기껏 방조했다는게 그것뿐이니까.》

교수는 갑자기 정색해지며 가느스름하게 눈을 내리깔고는 오래동안 침묵했습니다.

교수의 이 자세는 나로 하여금 대학생시절에 시험받던 때를 회상시켜주었습니다. 이 엄격한 로교수를 만족시킬수 있을 정도로 대답하기란 어려웠습니다.

언젠가 한번(그건 졸업학년의 첫 학기말시험때인것 같습니다.) 나는 이 교수앞에서 시험을 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막히는 구절없이 대답을 잘했습니다. 대답을 끝낸 나는 교수가 만족해하리란 기대를 가지고 얼굴빛을 살폈습니다. 교수의 그때 표정이 바로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뜨지 않는 지금의 이 표정 그대로였습니다. 그것이 만족을 뜻하는 표정인지 아니면 불만을 뜻하는 표정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던 나는 초조하게 서있었습니다. 학생을 그처럼 초조하게 한 후 교수는 눈을 뜨며 물었습니다.

《전부요?》

《그렇습니다.》

자신의 생각엔 어떻소?》

《…》

아무리 더듬어도 제기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는 빠진것이 없는듯 했습니다.

《동무는 락제요.》

《락제라니요?!》

나는 교수야말로 제기된 질문(시험표번호)을 착각한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였습니다.

《내가 그 문제를 강의한건 봄이였소. 그런데 지금은 가을이 아니요. 낡았단 말이요. 그동안 우리의 과학은 멀리 앞으로 나갔소. 최근의 우리 학보들을 보았더라면 동무의 대답은 훌륭했을거요. 낡은 소리를 앵무새 외우듯 하는것은 바보들이 하는짓이요.》

《…》

억지가 아닌가? 교수는 이 온순한 학생에게 그 어떤 감정을 품은 일은 없는가? 자신이 한 강의내용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학생의 대답을 부정하다니… 나는 억울함을 간신히 참고 서있었습니다.

《학생은 졸업후 희망하는 직무가 기계공학연구사지?》

《그렇습니다.》

《연구사? 우리 시대 연구사의 두뇌는 1주야동안에 한세기를 앞서 달려야 한단 말이요.》

《하지만 지금 저는 제기된 질문에 대답해야 되는 학생으로서…》

나는 억울함때문에 대답이 류창하지 못했습니다.

《알겠소. 교수가 강의한 내용 그대로를 대답했다 그 말이지요? 그러면 한가지 더 묻겠소. 1년후엔 동무가 연구사요. 담당과제가 내려졌소. 동무는 그때 그 문제에 대한 자기의 기성지식을 밑천으로 할테지, 대학시절의 교과서, 교수의 강의내용, 그렇지요?》

《…》

《그런데 동무에게 그 문제를 강의해준 이 교수의 지식은 1년이 지났을땐 쓸모없는 옛것이 되였단 말이요. 교훈은 어데든 매달리지 말라는거요. 정지된 순간이란 없는 법이요. 사유부문, 지식의 령역, 통털어 말하면 학문이란 그러하단 말이요. 분초를 아껴 지식의 령역을 넓히시오. 새것의 출현을 민감하게 살피시오. 그리고 자신은 그보다 더 새것을 지향하시오. 나가도 좋소.》

그날 시험장을 나설 때 나는 무수한 고무방망이로 머리를 두들기운듯 어정쩡해졌더랬습니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 그 교수앞에 다시 앉게 된 나는 그때의 억울함과는 달리 감사한 생각뿐이였습니다.

《보람있는 일을 했소, 김동무.》

교수는 눈을 떴습니다. 그 다음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 기계부문 전문가들은 동무의 노력과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있소. 그건 나 역시 같소. 요즈음 강의시간엔 자주 연구사 김응빈과 그의 기계동발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설명해주오. 그들이 장차 기사로 일하게 될 막장들에서는 그 기계가 보통기계로 될테니깐. 그때에 가서는 우리의 채탄공들과 기사들이 기계동발없이 일한다는것은 상상도 못하게 될거요. 만일 우리 학부의 매 기계학도들이 동무처럼 한가지이상씩의 기계연구를 한다면 우리 나라 채굴공업의 미래는 얼마나 훌륭하겠소. 그런데 모든 졸업생들이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것 같소. 도중에서 뜻을 굽히는 졸업생들이 있는가 하면 몇가지 창조사업에서 성공한것으로 하여 자만해져서 녹이 쓰는 졸업생들도 있소. 동무도 그렇게 되지 않겠는지 념려되는바요. 지금 동무는 자신을 그 무슨 수재나 되는것처럼 생각하지는 않소? 허영이란 사람을 구름처럼 떠다니게 하오. 땅우에서 발을 떼게 하지요. 김동무로 말하면…》

교수는 방금전에 내가 추측했던바와는 달랐습니다. 그가 눈을 내리깔고 앉아있었던것은 옛 제자와의 상봉을 놓고 그 어떤 회상 같은것에 잠겨있은것이 아니였습니다.

이 엄격한 로교수는 그러루한 감상과는 가까이 지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교수는 내가 쏘파에 앉아 시험받던 때의 일을 회상하는 사이 드물게 한번씩 만나는 제자에게 무슨 말을 해줄것인가를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김동무로 말하면 보통두뇌밖에 소유하지 못한 연구사요. 연구사의 두뇌평정을 최우등, 우등, 보통, 락제로 세분한다면 동무는 보통일뿐이란 말이요. 동무우에는 우등생, 최우등생들이 수두룩이 많소. 끝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우등생들을 따라잡으시오. 그 다음엔 끝없이 탐구하고 또 해서 최우등생계렬로 올라가시오. 우리들에겐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우리 조국의 기계문명을 자랑해야 될 무거운 책임이 지워져있소.》

교수는 말을 맺고 잠시 아까의 자세대로 돌아가서 눈을 내리깔았습니다. 나에게 생각할 시간과 결의를 새로이 할 시간을 주려는듯 했습니다.

교수는 내가 충분히 생각했으리라 믿어지는 시각에 일어섰습니다. 로교수는 시계를 보더니 옷걸이에서 모자를 벗겨내렸습니다.

《우리 집으로 갑시다. 점심시간이요.》

나는 옛시절처럼 공손히 교수의 뒤를 따라 복도로 나섰습니다.

다음날부터 연구소에서는 정기적인 설계합평모임이 시작되였습니다.

나의 설계 2호는 두번째 날에 토론되였습니다.

청중들의 만시선이 집중되는 연탁에 나와서서 자신의 설계를 설명할 때 가슴은 떨렸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더랬습니다.

청중석 어느 한구석에서 잔기침소리가 울려도 그것이 뜻하는 언어가 있지 않을가 하는 정도로 신경은 초긴장상태에 있었습니다.

설계작성자의 보충설명이 끝나자 사회자는 휴식을 선언했습니다.

우르르 복도로 나간 청중들은 여기저기 모여서서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연구사들이 자기 제품을 대중토론에 내다걸었을 때 누구나 그러하듯 나도 초조감으로 하여 휴식시간마저 회의실의자에 그대로 앉아있었습니다.

나의 설계에 어떤 평가가 내려질는지 토론들을 들어보면 명백할것이겠지만 그 시각까지는 대단히 궁금한것이였습니다.

드디여 휴식시간이 끝나고 첫 토론자가 연단에 나가섰습니다.

과학계의 최년로자들중 한사람인 림박사였습니다.

조국이 일제의 발밑에 짓밟혀있던 그 암담한 시기에 도꾜의 어느 한 공과대학에서 초청강의를 하다가 즉석에서 감옥으로 끌려간 유명한 일화가 있는 그였습니다.

그때 박사는 세계의 기계발달사를 언급하면서 조선사람들이 왜놈들에 비해 훨씬 고등한 두뇌를 가지고있다는것을 론증했던것입니다.

많은 기계연구사들이 림박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자신도 전날 신교수의 서재에서 종종 이 로학자를 본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정숙이 흐르는 회의장에 박사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전에 나는 친우인 신교수로부터 우리의 한 젊은 연구사가 기계동발설계를 끝내가고있다는 말을 들은바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연탄광의 기계화문제를 해결할데 대하여 주신 교시를 어떻게 하면 원만히 집행할수 있겠는가 하는 대책적문제를 토의하던중이였습니다.

그때 나는 우리 대학에서 자라난 한 젊은 연구사가 유압기계동발을 설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을 금할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젊은 연구사가 성공할것인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의 혁신적의의를 띠는 설계로서 매우 어려운 문제였기때문입니다.

그때문에 나는 직접 현지로 나가서 그 젊은 연구사의 일을 도와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분주한 사업이 계속되여 오늘까지 끝내 그 연구사의 현지연구실을 찾아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대신 신교수가 이 젊은 연구사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인제는…》하고 박사는 연탁모서리에 놓인 물고뿌로 천천히 목을 추기고난 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인제는 이 젊은 연구사에게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다는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집단적으로 검토한 유압식기계동발설계 2호는 훌륭하며 원만합니다. 필요한 작용을 할수 있는 자기 구조를 다 갖추었는바 그것도 아주 정확면밀하게 갖추었습니다. 이 젊은 연구사의 성공은 의심할바 없으며 또 경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연탁에 나와선 나로서는 이처럼 귀중한것을 창조하여 우리의 무연탄공업에 기여하게 된 김응빈연구사의 노력과 재능에 경의를 표할뿐입니다. 검토된 설계 기계동발 2호는…》하다가 박사는 말을 끊어야 했습니다. 요란한 박수가 터졌기때문입니다. 극도로 긴장했던 나는 눈앞이 아찔해지며 박수소리로 하여 귀가 멍해졌습니다.

(저 림박사는 틀림없이 나와 내 설계에 대하여 말하는것인가?)

나는 박사의 과분한 치하에 몸둘바를 알수 없었습니다.

박수가 멎기를 기다려 이 겸손한 늙은 박사는 토론을 계속했는데 내 설계의 리론실천적우점들을 지적했고 반대로 몇가지 불안전한 점들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박사의 뒤를 따라 기계전문가들이 연탁에 나갔습니다. 토론자들은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리하여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유압기계동발설계 2호는 성공했다. 리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설계 2호는 원만하다. 현 설계 그대로를 제작에 넘길수 있다. 그러나 아직 몇가지 불안전한 점들이 있다. 그렇게 생각되는 개소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핀부분에 대한 개작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는 핀부분이 매우 약하다.

둘째로, 다리부분에 대한 개작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뒤다리부분이 더욱 그러하다고 본다. 좀더 견고해야 할것이다.

담당연구사는 계속 현지에서 이 부분들을 개작하는 설계 3호를 완성할것이다. …

회의가 끝났을 때 동배들과 선배들이 나에게로 밀려와서 나의 성공을 축하해주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터질듯 한 흥분을 안고 정거장으로 나왔습니다. 3호설계를 가까운 시간내에 완성하겠다는 결의를 굳게 하면서 급행렬차를 탔습니다.

기차가 함흥역에 멎었을 때였습니다. 나는 윤희와 애들이 생각나서 몇번이나 내릴것인가 말것인가 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러면서도 3호설계의 완성시간을 하루라도 빨리 당기려고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대신 도착 즉시로 편지를 썼습니다.

《미안하오 윤희, 함흥을 지나면서도 그냥 지나쳐버렸다오. 기차가 함흥역에 멎어있는 기간 내가 얼마나 내리고싶어했는지를 당신이 안다면 나를 나무람하지는 않을게요.

당신과 애들만 남기고 밤낮 나와있기만 해서 정말 죄송하오. 그러나 이번 설계 3호를 완성하면 그 즉시로 당신과 애들곁으로 가려고 하오. 휴가를 받을테요.

맏이는 요즘도 장난이 심할테지? 그애때문에 당신의 연구사업엔 지장이 없소?》

이런 내용이였지요. 기실 나는 윤희와 애들한테 자주 이런 종류의 용서를 비는 편지를 써야 했습니다.

했지만 윤희는 언제나 부드럽게, 오히려 나를 고무해주는 회답을 보내주었습니다. …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