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마지막회)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2 장

 

북방의 겨울밤도 끝나 희읍스름 먼동이 터온다.

나는 만년필의 뚜껑을 닫는다. 그동안 김동무의 이야기를 받아쓰던 공책도 접었다.

김동무는 물주전자를 난로우에서 내려놓았다.

두사람은 잠시 밝아오는 창밖을 내다본다. 송이눈만이 아직도 그대로 내린다.

20년전에 나는 주인공이 어둠속에서 방황하던 얘기를 듣느라고 한밤을 꼬박 뜬눈으로 보낸바 있다.

그런데 지난밤엔 주인공이 찬란한 빛발을 온몸에 받으며 살고있는 이야기를 듣느라고 꼬박 밝혔다.

내가 김동무의 현지연구실을 다녀온 때로부터 얼마간 세월이 지났을 때였다.

중앙의 각급 신문들은 유압식종합기계동발에 대하여 한면씩을 바쳐 특집기사를 실었다.

신문들은 일치하게 유압식기계동발이 태여나고 대량생산되기 시작했으며 일부는 벌써 생산에 도입되였다는것을 보도하였다.

작업장에서 새 기계동발이 어떻게 힘을 내고있는가를 보여주는 사진들과 현재 대량적으로 제작생산되는 기계동발의 사진들 그리고 석탄생산관계자들의 담화내용들이 그 특집면들에 함께 실렸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겐 인젠 삽과 괭이가 필요없게 되였다》라는 제목으로 된 동발공 김영탁의 소감과 관리국 일군의 글 《이 기계는 우리로 하여금 종전처럼 석탄생산을 지도할수 없게 한다》가 특히 흥미있는것이였다.

동발공 김영탁은 《…삽과 괭이가 없이 일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홀린듯이 기계동발을 한참씩 바라보군 한다. 30년동안이나 동발공으로 일하면서도 삽과 괭이를 놓을수 없었던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새 기계동발은 함께 일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우리모두가 <끔찍이> 사랑하는 동무가 되였다.》라고 했고 관리국의 한 지도일군은 《우리는 나라의 석탄생산계획을 통제하고 집행해야 하니만큼 기술진보의 매 걸음과 그 일보일보가 몇메터의 채탄장을 더 넓힐수 있는가를 계산하지 않을수 없다. 그런데 새 기계동발의 도입은 우리로 하여금 그전처럼 계산해서는 석탄생산량을 정확히 알수 없게 한다. 기술혁신, 이것은 곧 <사회주의 내 조국 앞으로!>이다.》라고 썼다.

드디여 김응빈동무의 연구는 결실을 보게 된것이다. 그의 새 설계는 시험제품의 단계를 넘어 대량생산의 길에 들어섰으며 탄광막장들에서 일을 시작한것이다.

어데건 작업현장으로 달려가서 그 기계가 작업하는 광경을 보고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또한 그 기계로 하여 더는 괭이질이나 삽질을 하지 않으면서도 푹푹 일자리를 내는 탄부들의 모습이 보고싶었다.

눈을 감으면 김응빈동무와 마주앉아있던 현지연구실의 풍경이 선하게 떠오른다. 벌겋게 단 난로우에 놓였던 주전자가 끓는 소리도 들려오는상싶다.

《지금쯤 김동무는 집에 가있을가? 아니면 자기 기계가 일을 시작한 어느 막장에서 탄부들과 함께 있을가?》

나는 김동무의 가정을 한번 찾고싶었다. 그래서 그런 기회가 생기기를 고대했다.

약학학사이며 전날의 의용군녀병사인 박윤희도 보고싶었다. 장난이 심한 아들이며 딸도 보고싶었다.

오늘에 이르러 그들부부가 생각하는것은 어떤것들일가? 바라는바는 무엇이며 느끼는바는 무엇일가? 그들사이에 그리고 나와의 사이에 오고간 불행과 행복에 대한 견해는 예전이나 다름없이 여전한것일가? 특히 내가 알고싶은것은 아직 대면할 기회가 없어 의견을 나누어보지 못한 박윤희의 견해였다.

그랬는데 마침 박윤희를 보게 되고 또 그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것은 정말 기쁜 일이였다.

그것은 텔레비죤화면을 통해서였다.

텔레비죤방송편집국은 학계의 최근소식들을 시청자들에게 알리는 뜻에서 과학자들의 좌담회를 마련했었다.

좌담회에는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일군들이 참가했는데 그중에 약학학사 박윤희가 있었다.

언젠가 김동무가 보여준 사진에서 낯을 익힌 모상이여서 나는 첫눈에 그를 알아볼수 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눈표정뿐이였다. 전날엔 두 어린것을 데리고 산책하는 어머니로서 사진기앞에 섰던 부드럽고 그윽한 시선이였는데 이번엔 보다 엄격해보이는 리지적인 시선이였다.

좌담회에 참석한 과학자들은 자기 전공분야에서 달성한 성과들을 말하였고 현재 진행중에 있는 연구사업들에 대하여서도 말하였다.

주최자는 박윤희에게 많은 질문을 하였다. 오늘까지 박윤희연구사가 해결한 약품들에 대해서는 알고있으나 앞으로 할 연구사업들에 대해서는 모르고있다는것, 고향을 남조선에 둔 과학자로서의 심정이 어떠한가 등이였다.

윤희는 주최자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마디마디가 맺혀서 페부속에 스며드는듯 한 맑고 박력있게 울리는 음성이였다.

자신의 성과보다도 동무들의 성과에 대해서 주로 말하였고 앞으로의 연구계획도 동무들의것을 주로 소개하였다. 그러면서 주최자의 마지막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하였다.

《고향을 남조선에 둔 사람으로서 저는 많은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머지않아 서울의 과학자들도 통일의 그날 오늘의 저처럼 행복한 처지에 놓이게 될것이라고 생각하면 흥분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저는 종종 오늘의 자신을 두고 행복에 대하여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저에게 있어 행복, 이것은 나에게 참된 과학의 길을 마련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그 은혜, 그 배려에 보답하는것입니다. 그리고 학문탐구며 그것의 무한대한 가능성이고 실천이며 그 탐구의 결실이 조국과 민족에게 유익한것으로 되는것입니다.

저도, 저의 남편도 이것외 더 바라는것이란 없습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것이 보장된 연구사의 탐구조건이 있는 한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행복에 대한 박윤희의 견해는 곧 김응빈의 견해였다.

어쩌면 저들 부부의 행복에 대한 견해는 이렇게도 같을수 있을가.

하나의 념원으로 결합되고 하나의 행로를 거쳐왔기때문일가.

《남편도 나도 오늘의 이 행복, 이 학문탐구자의 자격과 길을 얻기까지 쓰라린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위대한 어버이수령 일성원수님의 품에 안긴 우리에게 학문탐구의 자유로운 길이 열린 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하여 인제는 이것이 평범한 하루하루의 생활로 되고있습니다. 간혹, 이 평범한 보통로동일과 보통탐구의 날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겐 평범한 날들로 되지만 이 보통로동일을 부러워하고 또 부러워하는 과학자들도 있다고 생각하면 새삼스러이 자기들의 행복한 처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우리에겐 오늘 이처럼 평범한 보통로동일로 되였지만 이 평범한 보통로동일이 영원히 자신에겐 차례지지 않을것이라는 절망을 안고 스스로 생을 던져버린 선배들도 있다는것을 생각하면 더없이 이것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

갑자기 텔레비죤화면이 밝아지며 윤희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순간 그의 눈엔 슬픔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억울하게 일생을 마친 오빠 박순현박사를 생각한거나 아닐가?

지금쯤 서울거리를 외로이 헤매고있을 조카들을 그려보는것이나 아닐가?

《저는 이 시각에도 조국의 통일을 위해 투쟁하고있는 남조선형제들의 모습이 그려질 때면 나도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더욱더 분초를 아껴 일하겠다는 결의를 굳게 하게 됩니다.》

화면은 다시 멀어지고 윤희의 말도 끝났다.

윤희와 그의 남편인 김응빈의 쓰라린 과거를 잘 아는 나로서는 감회가 실로 큰것이였다. 윤희의 현재심정을 정확히 들여다볼수 있는 나였다.

텔레비죤방송국이 자기 프로를 끝냈고 방송원이 친절한 인사를 한 후에도 나는 오래동안 그대로 앉아 담배를 피웠다.

기계연구사 김응빈과 그의 부인인 약학학사 박윤희를 두고, 아니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두고 끝없이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고싶은 밤이였다.

 

주체62(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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