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1

 

서울은 넓은 도회지이지만 첩첩한 산으로 옹위된 도시이다. 삼각산을 배경으로 하고 그 좌우에 인왕산, 락산을 울타리로 삼고있으며 외곽에는 관악산, 남한산,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등이 련련히 진산을 이루고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남쪽에는 남산이, 북쪽에는 북악산이 솟아 서울의 풍치를 돋구고 도시의 남단에는 한강이 흘러 서울의 젖줄기를 이루고있다. 이러한 위세로 서울은 조선봉건국가 5백여년간 도읍지로 발전해왔다.

《국파에 산하재라》(나라는 망했으나 산하는 그대로 있다.)고 옛 시인은 말했으나 나라가 망하고 근대문명의 탈을 쓰고 왜색이 조수처럼 밀려드니 가장 크게 변모한것도 서울이다. 혼곤히 잠에 취한듯 한 경복궁 앞뜰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과시한다는 건설중의 조선총독부의 석조건물이 복마전처럼 우뚝 막아서있고 궁성을 남쪽에서 지켜서있던 웅장한 광화문도 왜적에 의하여 파괴될 운명에 직면했다가 궁성 북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였다. 사철 푸른 남산에는 왜놈의 귀신 아마데라스 오미까미와 조선침략의 원흉인 왜왕 명치를 제사지낸다는 신궁이 터를 잡고 풍치좋은 북악산기슭에는 총독관저가 자리를 잡았다. 거리의 이름도 변했다. 진고개라고 불리우던 뒤골목이 《흔마찌》라는 왜놈의 상가로 번성하여 냄새도 색갈도 공기도 우리 민족에게는 인연없는 왜인촌으로 변했고 회현동은 《아사히마찌》로, 인현동은 《사꾸라마찌》로 바뀌였다. 서울의 경치좋은 산기슭에는 례외없이 왜놈들의 주택거리가 즐비하게 형성되는 반면에 청계천 남쪽으로 길게 뻗은 거리와 4대문밖의 변두리에는 조선사람의 빈민굴이 날을 따라 늘어났다.

서울역에서 남대문통을 지나 광화문쪽으로 외줄로 뻗은 철길로 그나마도 현대문명을 시위하듯 뗑뗑 종을 울리며 전차가 달리는데 남대문앞 공지에서는 갓쓴 늙은이가 《토정비결》을 펼쳐들고 허름한 아낙네에게 사주를 봐주고있다.

《월명중천하니 천지명랑이라, 달이 중천에 밝았으니 천지가 명랑하다. 집안이 화평하고 재수가 있겠소.》

궁상스러운 늙은이의 호물거리는 입에서 흘러나온 이 너무도 비현실적인 말에 순간이나마 위안을 받고 입을 헤 벌렸던 아낙네의 얼굴이 곧 질려버린다. 한무리의 일본군대가 로일전쟁시기의 애상짙은 군가를 구령치듯 부르며 기세등등히 행진해갔기때문이다.

남대문은 이 모든것을 굽어보고있다. 이미 5백여년을 서울과 운명을 같이해온 남대문은 한때는 서울의 관문으로서 옹벽을 병졸처럼 거느리고 수성장(산성을 지키는 무관의 벼슬)처럼 웅장화려하게 도성을 지켜서있었는데 이제는 옹벽도 헐리우고 전차길에 압축되여 길 한귀퉁이에 옹색하게 서있다. 세상의 풍상으로 단청도 흐려지고 힘을 과시하던 육중한 2층지붕의 기와도, 우람찬 석축도 력사의 이끼에 덮여있다. 시대의 변천과 망국의 증견자인듯 한 남대문의 어두운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며 한 나그네가 서있었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발이 굵은 진회색모직홀태바지에 품이 솔고 깃이 짧은 양복저고리를 입고 크지 않은 려행가방을 손에 든품이 어딘지 이국풍이다. 그는 중국 베이징에서 갓 돌아온 리윤재이다.

이전에는 남대문이 경복궁을 향하여 광화문과 직선로상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광화문도 제자리에 제모습대로 없고 그 도로도 없어졌다. 광화문을 사이에 두고 좌우에 즐비하게 서있던 유서깊은 건물들도 다 헐리웠다. 남의 나라 궁성에 자리잡은 총독부를 위하여 모든것이 변형되였다. 남의 나라를 침략한 원쑤가 남의 나라의 력사유적을 존중할리가 없다. 리윤재의 가슴에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19세기 60년대이후 조수처럼 밀려드는 유미렬강의 이양선의 포소리와 함께, 그에 편승한 왜적의 《운양》호무장도발사건으로 나라의 운명이 도마우에 오른 고기의 꼴이 되였건만 단지 권력을 지키기 위한 대원군의 수구적인 쇄국과 명성황후일파의 사대매국 그리고 그들사이의 권력다툼은 급기야 이 나라를 로, 청, 일 3국의 세력권을 위한 각축전장으로 만들고 청일, 로일전쟁의 와중에 휘몰아넣어 거기서 솟아난 일본강도의 독점적무대로 만들게 했다. 나라의 근대화를 시도한 갑신정변은 청나라무력간섭과 일본침략자들의 배신에 의하여, 갑오경장(갑오개혁, 1894년 혁신관료들에 의하여 단행된 부르죠아개혁)은 왜적의 악랄한 도전에 부딪쳐 실패하고 현대문명에서 아득히 뒤떨어진 봉건조선은 그대로 자본주의팽창의 길로 내닫는 일본의 식민지로 굴러떨어졌다.

이 뼈아픈 수난의 력사를 서울은 이미 잊었는가. 독립만세의 함성이 전국에 메아리쳤던 3. 1인민봉기가 있은지 다섯해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해일같이 일어났던 그 거대한 민중적저항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리윤재가 본 서울은 랭담하고 무표정하고 침묵에 잠겨있었다. 왜놈의 세상으로 되여버렸기때문이다.

리윤재는 저도 모르게 길에다 침을 탁 뱉았다. 그것은 그의 악습의 하나이다. 이런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딱히 몰라도 평양감옥에서 나온 후 현저해진것만은 사실이다. 길을 걸으면서 흔히 생각에 골똘해지군 하는 그는 타기할만 한 일이 생기면 모든것을 부정하듯 머리를 저으며 침을 탁 뱉군 했다. 그것이 버릇으로 굳어진것이다. 분명히 평양감옥에서 나온 후 생긴 또 하나의 버릇은 두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젓지 않고 앞만 곧추 바라보며 걷는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걸음걸이를 곁에서 보면 마치 성이 났거나 급한 일이 생겨 엎어질듯이 다우쳐 걷는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사람이 엇갈리면서 인사를 해도 알아보지 못하기가 일쑤이다. 이런 거동으로 보아 그의 성격이 몹시 과격해보이지만 실은 그 반대이다. 지금 세상에 그와 같은 역경에서 그만큼 성격이 유하고 어진 사람도 드물다. 그는 손아래사람에게도 하대를 못하는 겸손한 사람이다. 기름한 얼굴에 류달리 두툼해보이는 입술사이로 실하고 긴 이발을 드러내보이며 빙그레 웃을 때면 그의 성격의 본바탕인 선량성이 그대로 드러나보인다. 그는 심한 근시안이다. 농민의 자식으로서 땅처럼 듬직한 체력을 타고난 그가 선천적으로 시력이 나쁠리 없는데 스무살이 다되여 비로소 신학문에 들어서 목마른 지식욕을 채우려고 밤을 새워가며 호롱불밑에서 글자가 깨알같은 책들을 오랜 기간 읽은것이 그의 시력을 못쓰게 만들었다. 시력이 나쁘면서도 오래동안 안경을 쓰지 않아 무엇을 볼 때면 눈을 쪼프리는것이 버릇으로 되였다. 여느때도 쪼프린듯 한 길게 째진 눈에서 큰 동공만이 예리한 빛을 뿌린다. 농민처럼 갈색인 후더분한 얼굴에서 이 눈 하나만이 그의 지성과 의지력을 보여주는 표징같다. 이제는 도수높은 안경을 끼였는데 역시 그의 얼굴에는 불필요한 장식물처럼 보인다.

무식한 집안에서 이름 석자나 배우라고 동네서당에 보냈더니 그는 신동이라는 말까지 듣게 되였고 사서삼경까지 뗀 다음에는 석잠 잔 누에가 뽕잎을 뜯어먹듯 유학경서들을 읽어갔다.

이렇게 한문공부에 소년시절을 다 보낸 그는 열여덟살때 일제놈들이 날조한 《을사5조약》이라는 망국사태를 겪고 온 나라가 비분에 몸부림칠 때 그도 가슴을 치고 통곡하더니 한문공부를 그만두고말았다.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더니 그가 10년동안 한문을 공부하고 얻은 결론은 이렇게도 어렵고 쓸모도 없는 남의 나라 글자를 무엇때문에 일생 배워야 하느냐 하는것이였다.

망국의 력사와 운명을 같이해온 그에게서 싹튼 민족의식의 첫 표현은 력사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자기 나라의 말과 글에 대한 사랑이였고 그것을 연구하려는 지향이였다.

혼곤한 중세기적잠에서 깨여난 그는 서당동학인 리은상과 함께 망국적인 유학을 규탄하고 새 학문을 동경했으며 대담하게 그 길로 나아갔다. 그후 마산창신학교에서 교원을 할 때에는 같이 교원을 하던 김윤경과 함께 망국의 설음을 안고 민족을 지키는 마음으로 조선어연구에 몰두했다. 그들은 학문을 더 닦기로 결의하고 김윤경은 일본으로, 리윤재는 중국을 향하여 떠났다. 그러나 그는 부득이 한 사정으로 국경을 넘지 못하고 녕변에서 떨어져 숭덕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리고 여기서 3. 1인민봉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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