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제 11 장

2

 

리윤재가 집안일에는 무능하리만큼 관여를 안했고 정씨는 머리에 센털이 보이기 시작하는 이날이때까지 드센 시어머니밑에 살아 버릇하여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일이 거의 없어 이 집안에서 무슨 일이건 도맡아서 풀어가는것은 역시 김해댁이였다.

그가 하루는 김한규에게 넌지시 말했다.

《김생원은 홀애비라면서 언제 봐도 옷차림이 말쑥하니 어디 마누라 하나 봐둔게 아니요?》

김한규가 길게 한숨을 쉬였다.

《내게 웬 그런 복이 다 차례지겠나요. 난 처복도 자식복도 인복도 다 없는 놈이지요.》

《이 세상에서 복이란거야 자신이 만들고 돈이 가져다주는거지 남이 거저 안겨주겠소.》

《팔자가 사나운 놈이 뭘 더 바라겠나요. 이젠 서울살이도 복덕방주인노릇도 귀찮아서 촌에 나가 땅이나 뚜지며 살가 합니다.》

이 말에는 김해댁이 놀랐다.

《촌이라니, 어디기에?》

《내 여러해전에 늘그막을 생각해서 고향인 광주(경기도)에 눅거리땅이 있더라니 한정보가량 사서 대강 개간하고 과일나무를 심어둔게 있지요. 그동안 남이 밭으로나 리용하고있었는데 이젠 내려가서 직접 다루지 않으면 과일 한알 딸것 같지 않아요. 농막 같은것도 하나 지어놓은게 있으니 그런대로 살겠지요.》

《언제 떠나시려오?》

《해동이나 하고 봐야지요.》

김해댁은 애초에 혼담을 꺼내보려던 생각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김한규의 외로운 처지에 마음이 처량해졌다.

《원, 궁상스럽게도. 촌에 가면 신수가 달라진답디까. 외롭기만 더하겠지.》

《그래서 댁의 따님을 생각해본지 오랜데, 아직도 색시같은 따님이 나같은 령감을 돌아볼것 같지 않아 혼자 생각하다가 그만두었지요.》

그 말에 김해댁이 혀를 끌끌 찼다.

《아니, 그런걸 왜 이제야 말하시오. 글방샌님이란 할수가 없군. 그나이에 무슨 외기러기 짝사랑하듯 하오. 길고짧은거야 대봐야 할게 아니요.》

《그럼 어머니는 좋다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과부의 재가란 꿈도 꿀수 없었지. 하지만 과부의 수절처럼 천하에 몹쓸법이 어디 있겠소. 그래서 내가 금옥이를 재가시키려고 마음먹었던거요.》

《어머니는 언제나 씨원씨원해서 좋다니까.》

이런 이야기로 시작된 금옥과 김한규의 혼담은 급속히 무르익어 설명절이 지나자 곧 혼사를 치르게 되였다.

잔치랬자 처녀총각의 결혼식과는 달라 섭섭하지나 않게 집안끼리 모여앉은 조촐한 잔치였다.

김해댁은 늘 마음에 체증처럼 얹혀있던 금옥을 재가시키고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같이 있던 금옥이 갑자기 없어지니 김해댁의 마음 한구석이 빈것 같았지만 이제는 청승맞은 딸을 보며 속태우지 않게 되니 먹는것이 살로 갈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후에 난데없이 일본 오사까에서 이름도 아리숭한 구영조가 보낸 편지가 왔는데 어머니가 정월달에 사망했다는 부고였다. 구영조는 김해댁의 둘째딸 금지의 맏아들이다. 금지의 남편은 간또대지진때에 왜놈에게 학살당하고 이번에는 어머니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밟아보지 못하고 이역땅에서 죽고말았다는것이다. 구영조가 스물한살이고 그밑에 동생이 셋 있다고 하니 이 네 남매는 남의 나라에서 고아가 되고말았다. 우리 글도 배우지 못하여 서투른 일본글로 편지를 썼다.

리윤재는 이 조카들의 장래운명에 대하여 심각히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해외에 쫓겨간 조선사람의 후예들이 과연 조선사람으로 살수 있을가. 조선의 말과 글을 배우지 못하여 일본글로 편지를 쓰는 그 아이들이 어떻게 민족의 넋을 가질수 있겠는가. 이래서 제 나라에서 못살고 남의 나라로 쫓겨간 수많은 조선의 후예들이 이민족으로 화하고말것이다. 왜놈의 조선어말살정책으로 국내의 우리 후대들도 조선말과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데서는 결국 한가지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리윤재는 조선어교육과 고수의 절박성을 더욱 절절히 느끼는것이였다.

김해댁은 이 편지를 받은 후 이틀을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마음에 얹힌것을 하나 덜어놓으니 부리나케 또 하나 얹히는것이다.

건너방에서는 타는 속의 반향인양 애꿎은 재털이를 두드리는 대통소리만 끊임없이 들렸다.

아들과 며느리가 문안하러 들어가도 김해댁은 벙어리마냥 멍하니 앉아서 말을 안했다.

이 번거로운 날에도 리윤재의 일은 바빴다. 2월이 거의 가고있으니 《한글》잡지 3월호의 편집이 급해졌다. 3월호는 박승빈일파의 죄행을 폭로하는 글로 특집을 하기로 어학회 월례회에서 결정했다.

철자법통일운동이 날로 왕성해지자 그것을 반대하는 박승빈일파의 발악적인 책동도 더욱 우심해졌다. 이미 학술상론쟁의 한계를 벗어났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관지 《정음》을 통하여 조선어학회와 그 활동에 대한 비방중상을 더욱 악랄하게 했으며 심지어 《시내 중등학생승방기》 같은 글에서는 맞춤법통일안에 대한 여러 학생들의 감상을 허위날조해냈으며 대동상업학교 교원 김명진과 배재고보 유도사범 최재현은 선천, 녕변 등지를 돌아다니며 우리 글에 대하여 거의 무관심한 사람들을 선동하여 맞춤법통일안을 반대하는 취지서를 돌리고 도장까지 받는다는것이였다. 박승빈일파는 이미 모략과 음모에 매달리고있었다. 가련한자들이지만 그들이 빚어낼수 있는 후과를 경계하여 모든 사실을 폭로하지 않을수 없었다.

리윤재는 그자들에 대한 글을 쓰기가 불쾌했고 그보다도 귀중한 잡지면을 그자들때문에 허비하는것이 아까왔지만 하는수 없었다.

《한글통일운동에 대한 반대음모공개장》이 《한글》잡지에 실려 세상에 나가 사람들의 이목을 놀라게 하였으나 박승빈은 굽어들지 않았다.

흔히 사람들은 박승빈이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리지가 없는 그런 의지는 파렴치한 야심으로 나타나고 저돌적인 만용으로 번지는것이다. 그 야심을 만족시키려고 명분없는 싸움에서 만용을 부리며 끝내는 음모에 매달리며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황당무계한짓도 서슴지 않는것이였다.

훈민정음반포기념일인 음력 9월 29일을 한글날로 정하여 사회적으로 기념식을 거행하고 각 신문잡지에서 특집을 조직하는것은 이미 거의 10년동안 하나의 관례로 되여왔다. 특히 488회(1934년) 한글날에는 조선어학회에서 조선어학도서전람회를 송현동 보성전문학교 전교사에서 열어 한글운동사상 특기할만 한 자취를 남기였고 사회에 큰 자극을 주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박승빈은 료리집에 일부 사람들을 청해놓고 훈민정음반포기념일의 날자에 대한 시비를 벌리고 기념식을 다른 날자에 따로 가지는 분렬행위를 서슴없이 하였다.

학술상론쟁에서 망신만 당한 그가 그 다음은 《훈민정음 원본발견》이라는 공언으로 세상을 놀래우고 그것이 거짓임이 들장나서 세인의 웃음거리가 되더니 또다시 그의 야심은 훈민정음반포날자를 가지고 시비를 일으켰던것이다. 어떻게 하든 시시콜콜히 국문통일운동을 분렬시키려는것이 그의 필사적인 목적 같았다. 마치 정치적인 파벌싸움 같았다.

공개장에서 전에도 그랬거니와 앞으로도 아예 박승빈일파를 상대로 하지 않을것을 공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윤재는 하는수없이 《한글》잡지 3권 9호에 《한글날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훈민정음반포기념일과 관련한 시비의 일단을 폭로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한글을 반포한 날자에 대하여는 실록에 시월이라 한것이 문제가 되였으니 곧 나라에서 그달동안 행한 일을 나날이 적어가다가 남은것은 대개 그달 그믐의 날자아래에 적고 첫머리에 시월이라고 쓴것이 보통이다. 우리 역시 이에 대하여 생각하지 아니한바도 아니나 그 정확한 일자는 어떠한 문헌에도 찾을수 없는것이니 꼭 그날이 아니라 하여 그만둔다면 몰라도 이에 기념할 날을 정하는데에 있어서는 한가지 표준이 없지 아니 할것이다. 곧 실록에 실린 9월 29일아래에 그 사실이 나타난것이며 또 그때의 9월이 작은달, 곧 29일이 그믐날이니 그날이 특히 그달의 대표할 날자가 될수 있는것이며 또 근 10년동안이나 9월 29일로 지켜와서 이미 전 민중적으로 깊이 인식이 된것을 새삼스레 새 날자로 고치여 궤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는것이다. …》

이와 같이 박승빈일파의 훈민정음반포기념날자에 대한 시비는 시비감도 안되는 시비였고 순전히 한글운동의 통일을 깨뜨리고 호란을 야기시키기 위한 시비였다.

그후에도 박승빈일파의 악랄한 도전과 음모책동이 멎은것은 아니였지만 《한글》잡지는 이를 전혀 무시하고 침묵을 지켰다. 이미 운명이 결정되다싶이 한 박승빈일파와 말시비나 할 시간여유도 없었다. 표준말사정을 결속하고 사전편찬에 다시 착수할 중대한 임무가 앞에 놓여있었기때문이다. 더우기 조선어학회 회관건축문제로 리윤재와 리극로는 또 하나의 번거로운 일에 고심하고있었던것이다.

 

련재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1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2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3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4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5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6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7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8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9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10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11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12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13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14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15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16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17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18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19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20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21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22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23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24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25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26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27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28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29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30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31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32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33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34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35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36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38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39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40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41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42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43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44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45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46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47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48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49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50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51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52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53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54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55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56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57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58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59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60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61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62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63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64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65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66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67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68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69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제70회)
[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마지막회)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8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