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12 장

3

 

밤이 이슥해서 하숙방에 돌아온 정인선이 잠자리에 누웠으나 흥분했던탓인지 곧 잠이 오지 않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고있는데 뜻밖에도 김룡운이 찾아왔다.

그는 학비난으로 한동안 휴학하고 고향인 전북 익산에 가있다가 올봄새 학기에 다시 서울에 와 배재고보 5학년을 마저 다니고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그가 시름겹게 말했다.

《오늘 우리 학교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났어.》

《그 얘기를 듣자면 오늘 밤 또 밝히게 되였구나.》하고 정인선이 어이없는듯 웃었다.

《하여간 들어봐.》

그리고 김룡운은 그 불미스러운 사건의 전말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김룡운은 동향인이고 한해 하급생인 강철수와 한방에서 자취를 하고있었다. 김룡운이 허우대가 크고 활동적인데 비해 강철수는 체소하나 고추처럼 맵짠 성격이였다.

둘 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서 고학생의 구차한 자취생활을 하다나니 식량이 자주 떨어졌다. 그저께 식량자루를 탈탈 털어 모자라는 저녁을 끓여먹고 이튿날 아침은 굶고 등교했다. 어제 오후에 강철수는 생각다 못해 유도복을 전당포에 저당잡히고 3원을 받아서 식량을 마련했다. 김룡운은 그런줄 감감 몰랐지만 알았다 해도 당장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튿날 즉 오늘 유도시간이 있었고 강철수는 유도복을 안 입고 출석했다. 도장에서 유도사범 최재현앞에 유도복을 입은 학생들이 줄지어 정좌했을 때 강철수는 재빛교복을 입은채 맨뒤에 꿇어앉아있었다. 출석을 부르던 최재현이 강철수차례가 되자 퉁방울눈을 휩뜨며 소리쳤다.

《넌 왜 유도복을 안 입었느냐?》

《…》

《당장 가서 유도복을 가져오라.》

그래도 대답이 없자 최재현은 학생이 자기에게 말없이 반항하는줄로 알고 격분했다.

《너는 도장에 있을 자격이 없다. 나가라.》

그러나 그가 다시 생각해보니 유도하기를 싫어하는 강철수에게 도리여 마음놓고 놀게 할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 처벌로동을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소사한테 가서 사꾸라나무모를 받아다가 교문에서 들어오는 길 량쪽에 심어야 한다. 시간내에 다 심지 못하면 더 많은 벌을 받을줄 알라.》

그래서 강철수는 어쩔수없이 사꾸라나무모를 심지 않을수 없었다. 처벌로동이니 성수가 날리 없고 더구나 학교안에 사꾸라나무모를 심자니 마음에 가책을 받지 않을수 없었다.

때마침 강의가 있어 교문을 들어서던 리윤재가 혼자서 나무를 심는 학생을 보고 이상해서 물었다.

《학생이 심는게 무슨 나무모인가?》

강철수는 다른이도 아닌 리윤재앞에서 감히 사꾸라라는 말을 할수가 없어 쭈밋거리다가 대답했다.

《벗꽃입니다.》

순간 리윤재의 눈에 분노가 내비쳤다.

《이런짓을 누가 시켰는가?》

《최재현선생이 시켰습니다.》

《그 사람에게 내가 심지 못하게 했다고 전하게.》

그리고 그는 이미 심은 사꾸라의 나무모를 와락와락 뽑아 절반 뚝 꺾어서 강철수앞에 내던지며 말했다.

《이 <일본혼>의 상징은 쓰레기통에나 갖다버리게.》

그리고 그는 가버렸다. 강철수는 더는 나무모를 심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정말 사꾸라나무모를 뒤뜨락의 쓰레기더미에 갖다버리고 교실로 돌아가고말았다.

다음시간은 공교롭게도 리윤재의 조선어시간이였다. 지금 이 학교에서 교원이 조선옷을 입고 조선말로 강의를 하는것은 리윤재 하나였을것이다.

총독부에서는 이미 관공서에서 조선말을 쓰는것을 금지했고 학교교단에서 일본말을 쓸것을 강제하고있다. 그래서 이런 우스운 이야기까지 있다.

강씨라는 체육교원은 조회때에 학생들에게 일본말로 구령치기가 싫어서 《읍》이라는 외마디소리로 모든 구령을 대신했다. 교원이 《읍》하고 한가지로 구령을 치면 학생들은 그의 어성과 몸짓, 손짓을 보고 차렷도 하고 쉬엿도 했는데 그보다도 《읍》 하고 구령을 치지 않을수 없었던 선생의 아픈 심정을 학생들은 더 깊이 리해했던것이다.

리윤재는 교탁앞에 섰으나 출석도 부르지 않고 강의노트도 펼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의례히 선생의 입에서 왜적에 대한 규탄이 터져나온다는것을 학생들은 알고있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리완용, 송병준 같은 역적들이 어떤 인간쓰레기였는가?》하고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중근의사의 총에 맞아죽은 이등박문의 장례식이 도꾜에서 벌어지자 매국노들은 제각기 도꾜에 건너가서 매국흥정을 벌렸소. 그때 일본수상 가쯔라를 찾아간 송병준이 벌린 매국흥정은 이렇소. 가쯔라가 조선을 <합병>하자면 자금이 얼마나 들겠는가고 묻자 송병준은 1억원이 필요하다고 대답했소. 그러자 가쯔라는 <너무 비싸다. 그런 큰돈이 어디 있는가. 과거에 일본이 조선을 위해서 쓴 돈만 해도 30억원이나 되는데(이것은 청일, 로일전쟁에서 쓴 돈이다.) 그것을 6푼변으로 하면 그 리자만 해도 한해에 1억 8천만원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돈을 썼는데 <합병>하는데 무슨 돈이 또 1억원이나 필요하단 말인가?> 하고 대답했소. 그에 대한 송병준의 대답은 이렇소. <조선은 삼천리금수강산이고 금은보화가 많으며 인구는 2천만이 넘는다. 이것을 1억원으로 환산하는것은 결코 비싼것이 아니라 너무 눅은것이다.>》

리윤재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너무도 기가 막힌지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이윽고 계속했다.

《이렇게 가쯔라와 송병준이 우리 나라 삼천리금수강산을 무슨 물건짝처럼 1억원이 비싸다 눅다 하며 천하에도 더러운 흥정을 벌렸던거요.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였는가? 1억원이 3천만원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3백만원으로 되더니 송병준이 왜놈에게서 실지로 받은 돈은 고작 10만원이였소. 그 더러운 매국역적은 10만원을 받고 우리 나라를 왜적에게 팔아넘기려고 혈안이 되였던거요. 그리고 매국역적 리완용이와 통감 데라우찌가 1910년 8월 22일에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는데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소. 단 10분에 매국노가 나라를 팔아먹었단 말이요. 그러니 이 조약체결에서 왜적이 얼마나 횡포무도했는가를 알수 있소. 이런 비법적인 날치기조약은 세계력사에서 류례가 없을거요. 리완용이와 같은 매국역적이 리재명의사의 칼에 꺼꾸러지지 않은것은 두고두고 한스러운 일이요. 그러나 안중근, 리재명 같은 애국렬사들은 우리 민족이 살아있는 한 끊기지 않을거요.》

교실안은 물을 뿌린듯 고요했다. 학생들은 두주먹을 부르쥐고 비분에 떨었다.

이윽고 리윤재가 말을 이었다.

《학생들, 이 교실에서 내가 조선말을 하는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소. 조선의것이라면 무엇이나 없애려는 그네들이 조선사람인 교원과 학생들이 제 나라 말로 의사를 소통하는것조차 허용하지 않소. 조선의 말과 글에는 조선의 얼이 담겨있기때문이요. 그러나 우리가 일본말을 쓴다고 일본사람이 되겠는가. 신성한 교정에 일본의 국화를 심는다고 조선의 넋이 사라지겠는가. 아니요, 우리는 백번 죽어도 조선사람이요.》

별안간 강철수가 벌떡 일어서서 소리쳤다.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리윤재는 손짓하며 강철수를 앉히고 말을 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일은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아야 하오. 참된 사람이라면 의를 위해 살고 의를 위해 죽을줄도 알아야 하는거요.》

이것이 한생을 바친 교단에서의 그의 마지막말이였다는것을 그때는 그자신도 학생들도 알지 못했다. 리윤재는 교실에서 나가버렸지만 시간이 끝날 때까지 어느 한 학생도 자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숙연히 앉아있었다. 더우기 강철수에게는 리윤재의 마지막말이 가슴깊이 새겨진게 분명했다.

휴식종이 나자 소사가 와서 강철수를 훈육주임이 부른다고 알렸다. 그 훈육주임이 유도사범 최재현이였다.

뭇시선이 강철수에게 쏠렸다. 그러나 그는 《념려말아.》라고 한마디를 남기고 훈육주임에게로 갔다.

방에는 최재현이 혼자 앉아있었다. 강철수가 방에 들어가자 최재현이 도끼눈을 해가지고 쏘아보며 소리쳤다.

《강철수, 심으라는 사꾸라는 왜 안 심었는가?》

《…》

《왜 안 심었는가. 누가 심지 말라고 했는가?》

《심지 말라고 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새끼, 거짓말말앗!》

최재현은 격검대를 들고와서 강철수를 뭇매질하기 시작했다.

《바로 말해. 누가 시켰어?》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쯤되면 경찰심문과 다를바없다. 최재현은 격검대로 강철수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강철수가 얼굴을 피하는 찰나에 격검대가 그의 코를 쳐서 코피가 왈칵 터졌다. 코피는 입과 턱을 적시고 뚝뚝 떨어져서 재빛학생복의 앞섶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그러나 강철수는 꼿꼿이 선채 온몸의 피가 다 쏟아져나온다 해도 까딱하지 않을 자세였다.

최재현은 신문지를 쭉 찢어서 내밀며 소리쳤다.

《코구멍을 틀어막아.》

그러나 강철수는 신문지를 받지조차 않았다. 코피는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이제는 최재현이 당황했다. 그는 하는수없이 신문지쪼각을 두개 뭉그려서 강철수의 코에 틀어박고 그의 목덜미를 두어번 세게 쳤다. 잠시후에 코피가 멎었다.

이제는 최재현이 강철수를 더 잡아둘 필요는 없었으나 당장 밖에 내보내기도 난처했다. 아직 날이 환한데 얼굴이 퉁퉁 붓고 피칠갑을 하고 옷도 피로 게발린 그는 학생들의 주목을 끌것이다.

그는 제풀에 성이 나서 소리쳤다.

《이놈아, 저 구석에 가서 꿇어앉아있어.》

강철수는 말없이 가리킨 방구석으로 갔으나 꿇어앉는것이 아니라 벽을 기대고 편안히 올방자를 틀고앉았다.

최재현은 끝내 강철수의 말없는 저항을 꺾지 못하고 속으로만 윽윽 별렀다.

시간이 흘러 창밖이 어두워지자 최재현이 그제서야 소리쳤다.

《이놈아, 나가!》

강철수는 천천히 일어서서 문을 소리나게 탕 닫고 나가버렸다.

그가 복도에 나가니 김룡운과 동급생들이 일여덟명 그때까지 가지 않고 기다리고있었다.

그제서야 강철수는 피로 시뻘겋게 물든 가슴을 쭉 폈다. 그 피자국은 훈장같았고 그는 영웅처럼 떠받들렸다.

그들은 교실로 갔다. 격분한 친구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어두운 길목에 지켜섰다가 그놈을 두들겨패자.》

《그놈이 유도5단이란걸 잊었어?》

《아냐, 그런 방법으론 안돼. 그놈을 학교에서 내쫓을걸 요구하여 동맹휴학을 하자.》

《언제?》

《래일 아침에 당장.》

학생들의 의견이 대부분 그 방향으로 쏠렸다.

대야에 물을 떠다가 퉁퉁 부은 강철수의 얼굴에서 피자국을 닦아주고있던 김룡운이 말했다.

《래일은 안돼. 학생들이 다 돌아갔는데 어떻게 련락을 취하겠나. 학교당국과 싸우려면 우리도 상당한 준비를 해야 할게 아닌가. 이제 최재현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보면서 우리도 준비를 해가는게 좋겠어.》

언제나 대개 그렇듯이 김룡운의 말이 결론으로 되였다.

김룡운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맺었다.

《지금 철수의 얼굴이 말이 아니야. 터진 자리에 백고약이라도 발라주면 좋겠는데 어디 약살 돈이 있어야지. 그래서 너의 도움을 받으러 왔다.》

정인선은 군소리없이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여 통채로 내주며 말했다.

《약만이 아니겠지. 먹을것도 없겠는데 지갑채 가져다 써.》

김룡운은 열적은 기분을 굼때려는듯 우스개 한마디 했다.

《앞으로 나도 몽떼 끄리스또백작처럼 벼락부자가 되여 간악한 원쑤들을 돌아가며 복수할 날이 올지 누가 알겠나.》

정인선이 빙그레 웃다가 신중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이럴 때 네가 단심선생을 만날수 있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수 있을텐데.》

《단심선생이란 누구냐?》

《내가 언젠가 말한 이상한 동냥중 말이야. 그가 실은 대단한 혁명가더군.》

《그가 지금 어디 있어?》

《그저 단심선생이랄뿐이지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수 없어.》

어이없어하는 김룡운을 보고 정인선이 오늘 성대예과 독서회에서 있은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김룡운이 긴장해서 물었다.

《그러니 그가 백두산에서 온 혁명가가 아닐가?》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어.》

《자, 그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좀 보자.》

《그게 있을게 뭐야. 우린 귀로 들었을뿐이니까.》

《아뿔싸, 나무아미타불이군.》하고 김룡운이 서운해했다.

《실망할건 없어. 나는 그 내용을 거의 그대로 외웠으니까.》하고 기억력이 비상한 그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한조항한조항 거의 그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혈적인 김룡운은 첫 조항에서부터 흥분했다.

《야, 통쾌하군.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광범한 반일통일전선을 실현함으로써 강도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정부를 수립할것.> 이거야말로 우리의 소원 그대로가 아닌가.》

《마저 듣고 머리속에 집어넣어.》하고 정인선은 침착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렇게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후 김룡운은 정인선을 통하여 단심과 관계를 가지게 되였다.

최재현이 학생 강철수를 구타한 사건이 있은 한주일후에 드디여 학교에서 학생들의 수업거부투쟁이 벌어졌다.

학생구타사건이 있은지 닷새만에 엉뚱하게도 학교게시판에는 《4학년 1반 학생 강철수가 교원의 지시를 어기고 불온한 행동을 했으므로 무기정학에 처한다.》는 고시가 나붙었다. 흑백을 전도한 이 고시를 보고 학생들은 격분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떻게 새여나왔는지 최재현이 사꾸라나무모사건을 학무당국에 밀고하여 리윤재가 학교교단에서 추방되였다는 소식이 알려져서 학생들은 물끓듯 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조성되였다. 김룡운은 드디여 결심을 했고 각 학급에 래일 아침에 일제히 수업을 거부한다는 지시가 내려갔다.

이튿날 아침조회가 끝나고 일본인학감이 일장의 훈시를 한 후 훈육주임 최재현이 나서서 구령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그 구령에 응하지 않았다. 체육교원의 《읍》 한마디에도 눈치있게 움직이던 학생들이 오늘따라 최재현이 아무리 목에 피대를 세우고 소리쳐도 요지부동이였다.

《이놈들이 귀구멍이 먹었나. 웬 일이야?》하고 최재현이 욕설을 퍼붓자 학생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여러 목소리가 일제히 웨쳤다.

《학생을 구타한 악덕교원 최재현은 교단에서 물러나라!》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학감이 나서서 고양이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들, 이게 무슨 일이요. 자, 할 말이 있으면 내게 하시오.》

《우리는 교무주임선생과 담판하겠다.》

교장은 일본인학감이 학교의 실권을 장악하고 모든것을 좌지우지하게 된 후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았고 교장사업은 대개 교무주임 현철이 대리했다. 조회를 끝내고 교직원실에 돌아갔던 현철이 부득이 학생들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수 없었다.

《학생들, 비록 학교당국이나 어떤 교원에게 불찰이 있었다 해도 학생들이 이렇게 소요를 일으키는것은 학생의 본분에 어긋납니다. 그러나 일단 그렇게 된 이상 나는 학생들의 의견을 듣겠으니 누구든 말해보시오.》

교무주임이 말을 마치자 잠시 침묵했던 학생들속에서 김룡운이 일어서서 나왔고 그뒤에 네명의 학생들이 따랐다.

학생의 대표로 나선 김룡운을 보자 현철은 배신감 비슷한 마음의 아픔을 느꼈다. 그는 뛰여난 수재로서 자기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제자가 아닌가. 스승과 제자가 이렇게 대결을 하게 되다니…

김룡운이 교무주임에게 말했다.

《우리가 교무주임선생에게 요구할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학생을 류혈이 랑자하게 구타한 유도사범 최재현을 학교에서 추방하라는것이고 또 하나는 리윤재선생을 무단히 해임한것을 취소하라는것입니다.》

현철은 난처했다. 최재현은 학감의 수족노릇을 할뿐아니라 총독부 학무국과도 줄을 대고있어 교무주임의 힘으로써는 어찌할수 없는 인물이다. 리윤재의 해임은 학무국의 지시이니 이것 또한 권한밖의 일이다.

답변에 궁한 그는 옆에 서있는 학감에게 말했다.

《학감선생이 답변해주시오.》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교무주임이 대답을 회피하는것으로 보아 자기들의 요구조건이 학교로서는 어찌할수 없는 문제라는것을 김룡운은 즉석에서 깨달았다.

교무주임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구미여우같은 학감이 상냥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교원이 학생을 구타하는것은 도저히 허용할수 없는 일이니 우리는 이를 엄중히 처리하겠소. 그래서 이런 일이 앞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것을 약속하고 리윤재선생의 건은 솔직히 말해서 우리와는 관계없이 학무국의 지시에 의한것이니 우리로서는 어쩔수 없으나 가능한 한 우리가 당국과 다시한번 절충해서 해결을 보도록 하겠소. 그러니 학생들은 우리를 믿고 교실로 들어가주시오.》

비난할데라곤 없는 대답이였지만 요구조건을 해결할 담보란 아무것도 없었다. 김룡운이 강경하게 말했다.

《우리는 요구조건이 관철될 때까지 수업을 거부할것입니다.》

《안되오. 학생들이 이렇게 힘을 행사하려 하고 이런 사태가 오래 끌면 외부의 힘이 개입할수 있소. 그때 생길수 있는 불상사에 대해서는 교무주임선생도 나도 책임질수가 없소. 나는 그런 불행이 이 학교에서 일어나는것을 바라지 않소.》

대표로 나왔던 한 학생이 불의에 말했다.

《이 이후 어느 한 학생도 처벌하지 않는다는걸 약속하시오.》

이것은 큰 실수였다. 고조되는 투쟁에 찬물을 끼얹고 타협을 모색하는것이였기때문이다.

《약속하겠소, 약속하겠소. 나를 믿으시오. 그리고 빨리 교실로 들어가시오.》

회심의 미소를 띤 학감과 끝까지 싸울 의지를 잃은 학생들사이에 침묵의 대결이 한동안 끌었다. 그러다가 결국 학생들은 자리를 교실로 옮기고 오전중 수업거부투쟁을 벌렸다.

텅 빈 교정에 혼자 남은 백발이 성성한 현철은 무거운 다리를 옮기며 회한에 잠기였다. 학감이 빈소리로 학생들을 얼릴 때 자기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바른말을 한마디도 못했다. 왜놈의 무제한한 권력을 등에 진자들앞에서 아무 힘도 없는것이다. 이미 교장과 자기는 교원 하나 받고 내보낼 권한도 없는 허재비가 되고말았다. 민족운동의 전통이 있는 이 학교에서 뜻있는 교원은 하나하나 교단에서 사라지고 한생을 민족후비교육에 바쳐온 이 현철도 수명이 다되였다. 학교의 되여가는 꼴도, 자기자신도 조락하는 가을의 황량함 그대로였다.

그날 저녁 현철은 이번 사건의 주모자들에 대한 엄벌을 주장한 학감과 훈육주임 최재현과 좌충우돌했으나 이미 그들을 누를길이 없는 그는 사표를 내고말았다.

학생들의 수업거부투쟁은 보람없이 끝났다.

며칠후 게시판에는 또다시 김룡운과 네명의 학생들을 무기정학에 처한다는 고시가 나붙었고 리윤재는 다시 교단에 나타나지 않았다.

최재현은 여전히 훈육주임으로서 더욱더 기세가 등등했다.

김룡운은 간악하고 교활한 왜놈들에 대한 원한을 가슴속에 또 하나 쌓아올리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학교의 교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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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실화소설]민족의 얼 (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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